휘문 3부 김지헌 목장 보고서
날짜 : 2014.09.07
본문 : 삼하 12:1~12
제목 : 당신이 그 사람이라.
참석자 : 김지헌 목자, 박소연(81), 이혜림(81), 이슬기(83), 윤경주(82)
▣말씀요약
오늘은 나단의 책망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책망 받기를 싫어하고 어렸을 때부터 칭찬만 듣고 자라서 칭찬 듣기만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책망을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위로를 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오늘 나단의 책망을 보니 이런 책망이야 말로 가장 다윗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몸에 쓴 것이 건강에 좋듯이 영육간에 좋은 것은 쓴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6절에 보이듯이 위로가 없고 성경은 책망의 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책망을 받아 보길 원합니다.
1. 책망은 책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망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1절 책망은 믿음의 사람이 해야 합니다. 죄 가운데 있는 다윗에게 나단을 보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어떤 하나님이요?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을 회복시켜 준 것은 바사의 고레스 왕입니다. 그러나 70년전에 예레미아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고레스 왕을 감동 시켰습니다. 내 인생을 회복 시켜줄 고레스 보다는 신실하게 내 인생을 해석해 주고 책망해 줄 예레미아를 간절히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우리야를 죽었던 11절에서 ‘보내다’는 동사가 12번이나 나왔습니다. 다윗, 밧세바, 요압이 ‘보내다’를 언급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신 줄 알았습니다. 드디어 침묵하시던 여호와께서 보내시며 행동을 취하시기 시작 하십니다. 나단이라는 이름의 뜻은 ‘선물’ ‘주는자’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자' 라는 뜻입니다. 인생채찍, 사람의 매를 맞는 것이 복이라고, 쓴 소리를 해 줄수 있는 이런 나단 선지자와 다윗의 만남이 바로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다윗에게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말라고 이야기 해 준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또 와서 죄를 책망하니깐 다윗은 나단만 보면 기분이 나빴을 것 같습니다. 나단은 책망의 선지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책망을 잘 받는 사람이 드뭅니다. 우리는 “잘한다“ “부자된다“ ”병 낫는다“라는 메시지는 본질적인 회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위로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책망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잘못이 크면 책망을 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상당한 인격을 가지기 전에는 책망을 참 잘 못받습니다. 나단은 다윗왕의 죄를 책망하는 인물로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의 임무는 아주 위험한 것이였습니다. 다윗 왕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부정한다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늘의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통일 왕국의 왕 이였습니다. 헤롯보고 불륜을 책망한 세례요한은 죽었습니다. 아합에게 흉한 일을 예언 했다가 미가야 선지자는 뺨을 맞았습니다. 생명을 내놓고 죄를 지적하는 나단은 왕이 원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말씀을 들려주는 자입니다. 인간적인 책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책망은 그 말씀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나의 막혔던 마음이 뻥 뚫리는 듯 한 시원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말씀으로 인도 받지 못한 사람은 성경의 책망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처소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말씀을 풀어주고 해석 해 주는 믿음의 지체가 필요합니다. 목장 공동체가 그 책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책망자는 자신보다는 듣는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해 줄 수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변화 될 모습으로 대하며 가능성을 가지고 책망하는 자 입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책망해 주는 사람이 나단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죄하는 것이 됩니다. 그 사람에게 맞게 책망해 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책망자입니다.
적용) 여러분은 좋은 책망자 입니까? 정죄하는 책망자 입니까?
2. 책망의 방법 (어떻게 책망하는가?)
나단은 어떻게 책망했을까요? 적절한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책망은 해야 하지만 나단도 밧세바의 임신기간 10개월가량을 기다렸습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픔이 뒷따를 말을 들려주기 이전에 적절한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민감함으로 책망하는 것을 뜻합니다. 민감함으로 책망하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고든 맥도날드는 ‘민감함‘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실려있는 느낌까지도 알아채는 것이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내용과 침묵, 신음, 한숨을 듣는 것입니다. 피곤, 불행, 기대, 고독, 상처 같은 것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민감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러면 민감함은 타고 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민감함도 훈련을 하셔야 됩니다. 기도, 경청, 성숙한 사람들(목장에서 묻기)을 통해서, 삶의 현장에서 무수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 사람은 왜 화를 낼까요?‘ 그들과 같은 삶의 자리에 있을 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주면서 민감함이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사위는 사위대접, 며느리는 며느리 대접을 해줘야 하는데 내가 시어머니 대우를 받으려 하면 상대방에게 책망이 들리겠습니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절을 맞이하면서 가족들을 서로를 대접해 주셔야하고 그것이 바로 민감함의 훈련입니다. 그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픔이 되는 말을 했을 때 여러분들의 본능적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이제 분명히 명절에 가면 아픔이 되는 말을 주고 받을 텐데 그럴 때 여러분들의 본능적인 반응을 써보세요. 기억해 보세요. 나단도 왕인 다윗의 죄를 직접적으로 책망하기 보다는 비유로 깨닫도록 하였습니다.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능히 경험할 수 있는 친숙한 상황들을 예로 들어서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화법입니다. 한 마디로 사건으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우회적으로 설득시키는 것이 바로 민감함입니다. 민감함으로 나단이 다윗에게 책망을 했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말 것을 예고했고 다윗은 순종 했었습니다. 나단은 늘 안되는 일만 가지고 온 것 같지만은 이런 나단의 말을 들어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절 후반부~3절 부자와 가난한자 예를 들으며 부자가 양과 소가 심히 많은데도 가난한 자의 딸과 같이 아끼는 암양새끼를 빼앗아서 자신의 파티에 쓰기 위해서 잡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파티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사람 중에는 다윗처럼 자신의 죄를 감추고자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성도들을 얼마든지 속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한자 인 다윗이 처첩을 두고도 우리야가 딸처럼 아끼는 암양새끼 같은 한 아내를 취한 것을 비유 했습니다. 우리들 교회도 간증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을 합니다. 그말을 듣고 내 죄라고 고백하는 간증자 들이 날마다 있기 때문에 간증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간증을 듣고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다윗이 이처럼 알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자에게는 성공해도 교만해지지 않을 연단을 계속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에게 연단을 많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고생하다가 성공하니 당연하다고 느껴져서 악을 행하고 회개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윗이 지옥가게 생기니 하나님이 개입을 하신 것입니다. 언젠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나 것인데 이 땅에서 드러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자기의 악과 음란을 드러내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고 봅니다. 은폐하고 있는 죄들이 없는 사람이 없는데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전혀 죄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부부, 가족, 교회, 나라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곪은 상처를 가지고 행복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항생제를 수없이 투여하고 곪아 터지지도 못하게 회피하면서 나와 우리, 가정, 교회 행복하다고 주문 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서 터지지 않으면 저 세상에서 터지는데 그 곳은 회복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드러내고 심판받는 사람은 그로인해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어떻게 책망을 합니까? 민감함을 훈련하기 위해서 기도로 경청으로 묻기로 삶의 현장에서 질문하기로 그 자리에서 있어주기로 중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목장에 안 가시는 분은 목장에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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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책망의 반응이다.#65279;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5~6절 다윗은 아직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인간자신보다 중요한 주제는 없습니다. 인간을 연구할 수 밖에 없이 인간은 인간을 날마다 만나는데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가장 모릅니다. 인간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이유는 첫째, 죄에 대해서 익숙해 져있고 둘째, 반은 선하고 반은 악하면 선한 행위가 악한 행위를 감추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속는 것이다. 회피하고 싶고 자기도 속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를수록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혹독하게 판단함으로 자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이려 하려는 것은 본능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가 우리의 주제가입니다. 하나님께 진정 용서를 받은 경험이 없다면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책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보라고 오는 것인데 다윗은 자기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양뺏은 부자를 마땅히 죽을자라고 네배나 갚아주어야 한다고 분노했습니다. 제3자적인 노함으로 자기와 상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비유를 듣자 마다 부자를 욕하면서 자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사건이 하나 나면 비판하고 판단하고 자기는 너무나 선한 것처럼 하는데 바로 다윗이 그랬습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은 남들을 판단하는데 전공입니다. 밧세바 사건은 자기를 직면하게 된 다윗의 분수령이 된 사건입니다. 핍박받고 사울을 용서하고 골리앗을 물리치고의 모든 고난을 건져주신 하나님과 밧세바 사건에서 직면하게 된 봐야하는 자신의 죄와는 차원이 다른 직면입니다. 다윗의 가장 문제는 ’자기애‘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밧세바의 문제가 아니라 다윗 자기 자신의 자기 사랑의 문제입니다. 얼마나 다윗이 믿음의 사람 입니까? 자신을 직면한다고 하면서 뿌리가 ’자기애‘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늘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분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애‘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며 자신의 행복과 이익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적 겸손함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하고 죄많고 절망적인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인데 말씀을 통하여 그것을 깨닫는 것인데 이제 자꾸 ’자기애‘에서 비롯하여 하나님이 용서해 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스티븐아티븐이 말하길 “종교중독자들을 처음으로 신앙을 가졌을때에 절정의 경험을 하길 원하는데 그것이 가만히 있는데 하길 원하니깐 그것이 되질 않고 매너리즘에 빠지니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성적인 중독이 나타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비밀스럽고 수치스러운 성적인 경험들은 종교적인 절정감과 아주 유사한 절정감을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표현되지 않는 정욕은 벗어나고픈 강한 요구와 결부되기 때문에 그토록 헌신적인 사람이 그토록 음란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자들이 신앙적으로 금하게 된 일들에 빠져들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지만 이 ’자기애‘로 주님과의 첫사랑과 같은 절정을 밧세바에게서 찾았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권세를 썼습니다. 부자에게 노하고 판단하면서 책망하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반응이 대비 되고 있습니다. 책망을 못받는 사람은 판단과 정죄를 합니다. 7절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You are the man! 죽어야 한다고 하는 부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다윗에게 말하는 나단. 지극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호와 보시기에 소위가 악하였을 지라도 지금까지 온 다윗입니다. 아무리 애정으로 해도 ’당신이 죽어야 하는 사람이다‘ 라고 목숨을 걸고 나단이 이야기 해줍니다. 절제절명의 순간에 다윗에게 좋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어 놓고 사랑하는 사람인 나단이 사랑으로 다윗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책망을 받을 때 다섯가지 유형으로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9461;칭찬인지 욕인지 모르는 유형
#9462;앙심 품는 유형
#9463;꼬인 사람
#9464;너무나 지극하게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9465;‘옳소이다‘하고 겸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
나눔) 여러분은 책망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여러분은 책망 합니까? 판단 합니까?
4. 책망의 내용이다.
책망의 내용이 무엇인가? 무엇을 책망했을까요? 결론부터 짓자면 “네 주제를 알아라. 네 자리를 알아라” 그리고 모진형벌을 주셨습니다. 7~8절 다윗에게 은혜를 끝없이 베푸셨고 다윗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목동에 불과했었던 다윗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넘치는 은혜 속에서 범죄 했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목동에 불과 했던 다윗에게 원하면 더 주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하지만 승리의 정점에서 이웃의 아내를 탐한 추악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자기의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밖에 없는 이웃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다윗은 졸지에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자기자리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자리는 비워놔야 하는데 하나님의 보좌의 자리에 가서 앉아있었습니다. 내가 죄인의 입장으로 끝까지 간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9~10절 다윗은 직접 죽이지 않고 요압을 통해서 암몬자손의 칼에 맞아 죽였다고 했지만 하나님은“네가 죽였다”라고 하시면서 속지 않으십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에서 만족함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 개종자 우리야를 암몬자손의 칼로 죽이고 아내까지 빼앗았습니다. 백개를 가져도 남의 집 한 개가 가지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로 업신여김을 받으셨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우리야의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였습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의 하나님 나라의 왕국의 왕으로 임명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이것은 업신 여긴 것입니다. 다윗의 범죄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칠계명 간음하지 말라도 어겼고 육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도 어겼습니다. 항상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사단이 한 길로 왔다가 또 일곱길로 도망갈텐데 다윗이 갑자기 편해지니 QT도 안하고 예배도 안드리고 묵상도 빼먹고 목장모임도 안가고 잠시 하나님 안녕이라 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죄의 댓가가 너무 혹독합니다. 11~12절 다윗의 죄에다가 형벌을 행하셨습니다. 모진형벌을 주심으로 다윗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7장 16절과는 상반되게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의 축복을 취소 할 만큼 이 예언들은 다윗의 후손들에게 재앙으로 내려집니다. 참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거짓과 살인과 이것에 대한 보응으로 책망의 보응을 받습니다. 이렇게 책망은 무섭게 사랑하니깐 무섭게 했습니다. 느헤미야 13장 25절 느헤미야가 교양의 여부와 상관없이 불신결혼을 막는 사람을 막을 사람은 느헤미야 한명 뿐이 였기때문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막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수천명 수만명이 모인다고 해도 불신결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년 후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불신결혼을 통해 낳은 자녀들이 유다말을 못쓰고 성경을 못읽게 되었듯이 교회도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결혼, 한 가정의 믿음의 결혼이 진짜 중요합니다. 불신결혼을 막기 위해 어떠한 조롱과 모욕을 주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조롱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신결혼을 한 이후에 겪을 고통이 심하기 때문에 어떤 모욕을 주어서라도 불신결혼은 막아야 합니다. 나단의 책망의 내용이 왕인데 우리야 한 사람 죽였다고 너무 혹독하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한 사람 죽였는데 천만배의 벌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독하게 벌을 받으셔야 합니다. 왜 이렇게 혹독하게 벌을 받았을 것 같습니까? 왕의 권세를 가지고 다른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지은 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로 기름을 부은자 입니다. 비천한 목동을 택해서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이 뽑아서 인도해 가시는데 모든 부분을 인도해 주셨고 어디로 가던지 이기게 해주셨고 여자부분에 대해서도 눈 감아 주신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은 연약한 부분에 대해서도 가슴아파하시고 지나가셨는데 우리야 사건은 다윗의 완악한 부분입니다. 혹독하게 다루실 수 밖에 없으신 부분이란 것입니다. 왜 그럽니까? 여자 문제와 무엇이 다릅니까? 통일 왕국의 왕이 되기까지 은혜로 왔는데 밧세바 사건은 여자 문제를 넘어서는 권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권세를 남용했습니다. 정점에 올라가니깐 다윗이 교만함을 보였습니다. 여자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교만함입니다. 우리야 한 사람죽이고 영원토록 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책임을 물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회초리를 들으신 사건입니다. 후반부에는 징벌을 받다가 슬픔의 인생을 살다가 다윗이 주님 밖에 없음을 외치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면서 주옥같은 시편의 회개를 남겼습니다. 다윗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받다 보니깐 결국 다윗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가 가장 힘든 것입니다. 자신의 ‘자기애’ ‘교만’ 인 것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어느덧 딱 앉아 있습니다. 이것을 여자문제정도로는 다윗을 깨우 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20년 넘게 눈물을 흘리면서 혹독한 칼과 비참한 꼴을 보게 하시면서 다윗이 안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다윗의 회개를 도출해 내십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모든 인생은 밧세바 전과 후는 완전 다릅니다. 지옥가게 생긴 다윗에게 혹독한 징벌은 회개의 기회 였습니다.
적용) 은혜가 부족합니까? 만족하지 못합니까? 나의 징벌이 혹독합니까? 아니면 합당합니까? 앞으로 주님을 위해 크게 쓰이기 위해 합당하게 형벌을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책망 잘 받고 갈 때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목장풍경
추석명절을 앞둔 조급함을 이겨내고 목장식구 전원이 참석하여 까페에서 긴 목장 나눔을 하였습니다.
▣목장나눔
주일 말씀을 요약하며 읽고 목장 나눔을 시작했고 각자의 일주일간의 일상생활 속에서 오늘 적용질문들과 맞는 것들을 나누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말씀이었지만 믿음에 따라 다른 처방을 받으며 책망을 잘 받는 공동체의 나눔이었습니다.
▣기도제목
김지헌 목자
- 포로생활 70년 건강히 미션 수행 할 수 있도록
- 자기애를 버리고 건강한 자존감 회복
- 가족구원과 가게정리
- 더욱더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박소연(81)
- 책망 잘 받을 수 있도록, 내 죄를 볼 수 있도록
- 지체들을 위해 학교학생들 영혼위해 기도하는 무릎 될 수 있도록
- 주신건강 감사하며 관리 할 수 있도록, 분주한 삶 살지 않고 목적안에서 정리되고 일관된 삶 살도록
이혜림(81)
- 사람을 판단하는 나의 교만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도록
- 직장에 잘 붙어 있을 수 있는 힘 주시길
- 명절 증후군 잘 이겨내도록
윤경주(82)
- 일대일 양육 받을 수 있도록
- 매일 큐티 할 수 있도록
- 이성친구와의 감정, 고난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도록
- 업무정리와 집안정리 시작 할 수 있도록
- 영원히 살 것처럼 내게 주어진 현재의 70년 포로생활 잘 보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