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12:1~12
당신이 그 사람이라
1. 책망은 책망하는 사람이 있다.
책망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 이여야 한다.
죄 가운데 있는 다윗에게 나단을 보내시는 하나님.
70년 포로생활 회복 고레스 왕. 내 인생을 회복시켜줄 고레스 보다는 신실하게 내 인생을 해석해 주고 책망해 줄 예레미아를 간절히 찾아야 한다.
우리야를 죽였던 11장에서 보내다 라는 동사 12번 나옴.
나단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 자. 쓴 소리를 해줄 수 있는 나단 선지자와 다윗의 만남이 선물. 나단은 책망의 선지자. 책망을 잘 받는 사람은 드문다. 위로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책망부터 받아야한다. 잘못이 크면 책망 받기 어렵다. 생명을 내놓고 죄를 지적하는 나단은 왕이 원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는 자이다. 인간적인 책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책망은 그 말씀으로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막힌 마음이 뻥 뚫린 듯한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들교회로 인도한 친구가 늘 바른말만해주고 온유한 친구다 라고 생각한다. 결혼생활이 힘들어서 왔는데 이혼하지 말라 라는 말 들었을 때 아프고 분할 수 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말씀을 풀어주고 해석해 주는 믿음의 지체 필요. 목장 공동체가 책망자가 될 수 있다. 좋은 책망자는 자신 보다 듣는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해줄 수 있다. 또한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변화될 모습으로 대하며 가능성을 가지고 책망하는 자 이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보기에 맞게 책망해 줄 사람이 나단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죄하는 것이 된다. 그 사람에게 맞게 책망해 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책망자 이다.
적용: 여러분은 좋은 책망자 입니까? 정죄하는 책망자 입니까?
2. 책망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책망하는가?
나단은 적절한 순간을 기다려서 책망했다. 책망은 해야 하지만 나단도 밧세바의 임신 기간 10개월을 기다렸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픔이 뒤따를 이 말을 들려주기 이전에 적절한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민감함으로 책망해야 함을 의미한다. 민감함으로 책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에 이야기에 실려 있는 느낌까지도 알아차리는 것이고 말로 표현 되지 않는 내용과 침묵이나 신음이나 한숨을 듣는 것. 고독과 상처 같은 것을 읽어내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민감한 사람이 된다는 것.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해야한다. 기도, 경청, 목장에서 묻고, 삶의 현장에서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그들과 같은 삶의 자리에 있을 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고 마땅히 받아야할 대우를 해주면서 말할 때 민감함이 훈련이 된다. 사위는 사위 대접을 해주고 며느리는 며느리 대접을 해주고 해야하는데 “나는 시어머니다”, “나는 장모다” 라고 자기를 내세우면서 책망을 할 때 그 책망이 들리겠습니까? 그들이 마땅히 받아햐 할 대접을 해주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명절을 맞이 하여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대접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대접하는 것이 민감함이다. 이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픔이 되는 말을 했을 때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무엇인가? 나단도 다윗의 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비유로 깨닫게 했다.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친숙한 상황들을 예로들어서 핵심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하는 화법이다. 한 마디로 사건으로 생각하면 쉽다.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위회적으로 설득시키는 것이 민감함이다. 이러한 민감함으로 나단이 다윗에게 책망을 했다. 나단은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말 것을 예고했고 다윗은 순종 했었다. 나단은 늘 안되는 일만 가지고 온 것 같지만 이런 나단의 말을 들어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예를 들으며 부자가 양과 소가 많은데도 가난한 자의 딸과 같이 아끼는 암양새끼를 빼앗아서 자신의 파티에 쓰기 위해서 잡았다는 것. 자신의 파티를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은 상관이 없다는 것. 이런 사람 중에는 다윗 처럼 자신의 죄를 감추고자 더욱 더 교회 열심히 나가고 헌금 생활 열심히 하면서 성도들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다윗이 처첩이 많음에도 우리아가 딸 처럼 아끼는 암양새끼 같은 한 아내를 취한 것을 비유했다. 우리들 교회도 간증을 통해 자신의 죄를 보라고 날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의 죄를 고백 한다.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죄라고 고백하는 간증자들이 날마다 있기 때문에 간증이 끊어지지가 않음. 간증을 들으면서 전혀 나와는 상관없는 소리로 듣는 사람이 있다. 다윗에게 연단을 계속 주심. 다윗이 한 순간에 무너짐.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드러날 것인데 이땅에서 드러나는 것이 축복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자기의 악과 음란을 드러내기가 불가능하다. 음폐하고 있는 죄들이 없는 사람이 없는데도 드러내지를 않는다. 전혀 죄 얘기를 않하고도 부부간에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고 교회가 행복하면 나라가 행복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곪은 상처를 가지고 행복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항생제를 많이 투여 하고 곪아 터지지도 못하게 회피하면서 “나는 행복해”, “우리 가정을 행복해”, “우리 교회는 행복해”를 꼭 주문 걸고 있는 것과 같다. 이 땅에서 터지지 않으면 저 세상에서 터진다. 그곳은 회복이 없다. 끝이다. 이 땅에서 드러내서 심판받는 사람들은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적용: 여러분을 어떻게 책망을 합니까? 민감함을 훈련하기 위해서 기도, 경청, 묻기로 삶의 현장에서 질문하기로 또한 그 자리에서 있어주기 중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3.책망에는 반응이 있다.(5-6절)
다윗은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다. 인간 보다 더 중요한 주제는 없다. 인간을 연구할 수 밖에 없이 인간은 인간을 날마다 만나는데도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가장 모른다. 인간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이유는 첫 째, 죄에 대해서 익숙해져 있어서. 둘 째, 반은 선하고 반은 악하면 선한 행위가 악한 행위를 계속 감추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속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를수록 다른 사람을 평가 할 때 가장 혹독하게 판단 함으로 자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이려는 것이 본능이다. 하나님께 진정 용서를 받은 경험이 없다면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책망하게 된다. 자기 보라고 오는 것인데 다윗은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부유한 자를 마땅히 죽을자 라고 분노한 다윗. 제 3자 적인 노함으로 자기와 상관 없다고 함. 다윗의 가장 문제는 ‘자기애’ 이다. 하나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늘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분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애는 자신으로부터 시작 되며 자신의 행복과 이익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영적 겸손함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나약하고 죄 많고 절망적인 존재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것인데 계속 자기애에서 비롯하여 “하나님이 나를 양자 삼으셨어” 라고 함. 종교 중독자들은 처음으로 자기 신앙을 가졌을 때와 같은 절정의 경험을 하기를 원하는데 않되니깐 매너리즘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성적인 중독이 나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밀스럽고 수치스러운 성적인 경험들은 종교적인 절정감과 유사한 절정감을 가져다 준다고함. 책망을 못 받는 사람은 정죄를 하고 판단을 한다. 다윗이 깨닫지 못하니깐 나단이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 라고 말함. 사람이 좋고 나쁘고는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라는 말은 사랑하지 않으면 못하는 말이다. 생명을 내놓는 사랑 보다 더 한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은 연약하면 가슴아파 하시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양보가 없으시다. 할 말은 반드시 하시고 안하시는 법이 없다. 우리가 적용을 할 때 책망을 받으면 다음의 유형의 반응을 보인다.
1.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는 사람.
2. 앙심품는 사람.
3. 꼬인 사람
4. 지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5. 옳소이다 하고 겸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
적용: 책망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책망합니까? 판단합니까?
4. 책망의 내용이다.
네 주제를 알아라. 다윗에게 은혜 배푸심.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사울이 차지한 모든 것을 다윗에게 주셨고 온 나라를 다윗에게 맡기셨음. 다윗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셨음. 다윗은 넘치는 은혜속에서 범죄했다. 다윗의 범죄는 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리의 정점에서 이웃의 아내를 탐하는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자기의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 밖에 없는 이웃의 아내를 취했다. 다윗은 졸지에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기 자리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하나님 자리는 비워놔야 하는데 다윗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내가 죄인의 입장으로 끝까지 간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않되는 일 같다. 암몬 자손의 칼로 죽였는데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것이다.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행하지 않았다느 것이다. 혹독한 죄의 대가(11절) 다윗의 죄에 형벌을 주심. 다윗을 끝까지 끌고 가시는 하나님.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의 축복을 취소할 만큼 무서운 것. 느혜미야 교양의 여부와 상관없이 불신결혼을 막을 사람을 느혜미야 밖에 없었다. 여자 문제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만함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책임을 물으신 사건. 지옥가게 생긴 다윗에게 혹독한 징벌을 회개의 기회였다.
적용: 은혜가 부족합니까? 만족하지 못합니까? 나의 징벌이 혹독합니까? 아니면 합당합니까? 앞으로 주님을 위해 크게 쓰일것이기 때문에 합당하게 벌을 주셨다고 생각을 합니까?
<기도제목>
지원-연휴 잘 시고 다시 잘 공부하기.
혜윤- 일주일에 한 번 큐티하기
학교 잘 다니기
교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 정죄 하지 않기
안좋은 소리해도 신경쓰지 않기.
정미언니-집에 있어도 시간내서 큐티하기
하나님의 자리 항상 비워 놓기
신교제
언주- 이사님 책망 옳소이다 듣기
영적인 책망 잘 듣기
엄마 양육교사 잘 받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