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사람이라"
사무엘하 12:1~12
■ 설교 요약
우리는 책망 받기 참 싫어한다. 책망 받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이야말로 다윗에게 가장 큰 위로가 아니었을까? 성경은 책망의 책이다.
1. 책망하는 믿음의 사람이 있다. (1절)
하나님은 믿음의 나단을 다윗에게 보냈다. 나단=선물,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 자
언제나 풀어 주는 고레스가 아니라 인생을 해석해 줄 수 있는 예레미야를 찾아야 한다. (에스라 1장)
죄 가운데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나단과의 만남으로 친히 찾아오셨다.
위로는 본질적인 회복을 줄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에 위로보다 책망을 먼저 받아야 한다.
나단을 생명을 내 놓고 다윗을 책망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책망은 그 말씀으로 하여금 나 자신이 낮아지게 되고 속이 뻥 뚫리게 된다.
주어진 환경에서 문제를 말씀으로 풀어주는 믿음의 지체가 있어야 한다. 목장이 책망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사람에 맞게 책망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책망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책망이 아닌 정죄가 된다.
2. 책망에는 방법이 있다. (1b~4절)
나단은 적절한 순간을 기다렸다가 민감함으로 책망하였다.
"민감함" 1) 상대방의 이야기에 담긴 감정까지도 느끼고 2) 말 속에 담긴 고통, 한숨, 안타까움 등까지 모두 느끼는 것
민감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 믿음, 경청함 등의 훈련을 통해 얻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비유를 들어 다윗에게 쉽게 설명하며 설득한 나단은 민감한 자였다.
부한 자가 파티하는 모습은 부한 자 다윗이 처첩을 계속 들이는 모습과 매우 밀접하다.
그러나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한 다윗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못 알아 듣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다윗에게 끊임없이 연단을 주셨는데 다윗은 한 순간에 무너져 악을 행하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이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는데 이렇게 죄가 세상에서 드러나는 것이 큰 축복이다.
항생제를 계속 투입하여 상처가 곪아 터지지 않으면 훗날 더 큰 아픔이 된다.
3. 책망에는 반응이 있다. (5~7절)
인간은 인간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
1) 죄에 익숙해져 있고 2) 선한 행위가 악한 행위를 숨겨주니 자신도 속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진짜 용서 받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한다.
제3자적인 비판으로 비유를 듣자마자 화내고 부자를 비판했던 것은 다윗의 믿음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죄를 모르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된다.
밧세바 사건은 다윗의 분수령이 되고 자신의 죄와 직면하게 된 사건이었다. 다윗의 가장 큰 문제는 밧세바도 여자도 아닌 자기애였다. 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되는데 자기애가 있는 사람은 자기로부터 사랑이 시작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늘 긍정적이고 친밀한 것처럼 느낀다. 진짜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낮음과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종교 중독자들이 느끼는 절정의 감정은 다른 중독들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다윗은 주님과의 첫사랑의 감정을 밧세바에게서 찾았을 지도 모른다. 책망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정죄와 판단을 한다.
7절. "You are the man!" 나단은 돌직구를 날렸다. 이런 발언은 생명을 걸고 한 것이기에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다윗 옆에는 이렇게 늘 옆에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의 좋고 나쁨은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달려있다 해도 관언이 아닌듯하다. 하나님은 연약함을 가슴 아파하시지만 진리에 있어서는 단호하시고 양보가 없으시다.
책임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다.
1) 칭찬인지 욕인지 책망의 여부를 잘 모르는 사람
2) 앙심을 품는 사람
3) 꼬인 사람
4) 지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
5) 옳소이다 겸손하게 반응하는 사람
4. 책망에는 "네 자리를 알라"라는 내용이 있다. (8~12절)
다윗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만족했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 아내가 없는 것이 아닌데 이웃의 아내를 취했듯.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다윗은 졸지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됐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것이다. 100개를 가져도 남의 집 1개가 갖고 싶은 우리다.
다윗에게 모진 형벌을 주시며 다윗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가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축복을 취소할만큼 다윗의 죄는 컸는데 책망은 사랑하니까 무섭게 하는 것이다. 혹독한 책망은 회개의 기회이다.
느헤미야도 그랬다. 불신 결혼을 막을 사람은 느헤미야 뿐이 없었다. 교회에서 불신 결혼을 막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어떤 모욕을 줘서라도 불신 결혼은 막아야 한다.
믿는 사람이니까 혹독한 벌을 받는 것이다. 다윗에게는 왕의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자신에게 무엇을 해줘야 한다 생각하는 완악함이 있었다. 여자 문제를 넘어선 교만함의 문제로 터진 것이 밧세바 사건이다.
다윗에게 준 벌은 하나님이 하나님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으신 것이었고 이를 통해 다윗의 회개를 도출하셨다. 감사함으로 책망을 받아야 한다.
■ 자기 소개
박예진(89): 우리들교회에 온지 1년 2개월 정도 됐습니다. 엄마가 우울증이 심하셨는데 우리들교회에 출석하신 지 2년 정도 되자 많이 밝아지셨고 그런 엄마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불신교제를 찐-하게 한 후 헤어져 힘들었는데 말씀이 위로가 되어 정착했습니다. 저의 죄패는 음란, 술, 담배입니다. 제주도 아웃리치로 술과 담배는 끊고 있으며 현재 일대일양육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적용 나눔
1. 나는 좋은 책망자인가 정죄하는 책망자인가?
이혜영(92): 친구를 정죄할 때가 있는데 특히 교회 다니는 친구들을 정죄하곤 합니다. 믿는 친구들을 보며 '저러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내색 하지 않고 속으로만 정죄합니다. 나는 아닌 것처럼. 자기애에 빠진 것 같기도 합니다.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죄가 보이지만 그럴수록 말씀을 알아서 율법적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됩니다.
이나래(89): 저도 정죄하는 책망자입니다. 영혼에 대한 애통함이 없으니 정죄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으로 책망을 하려다가도 상대방에게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으면 그 때부터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타 교인과 나눔을 할 때면 우리들교회에서 하는 대로 말씀으로 문제를 해석하지 못한다고 속으로 무시합니다.
박예진(89): 내가 했던 행동들도 남이 하면 정죄합니다. 예를 들어 나도 공부 많이 안 했다고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면 '뻥치네, 분명 공부 많이 했을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와서 내가 얼마나 정죄를 많이 하는 사람인지 깨달았습니다. 말씀이 교회에 오자마자 들리는 게 내가 잘나서라 생각하며 QT, 수요예배 열심히 드리고 울며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술, 담배는 끊지 못하는 이중성을 보였습니다. 나눔을 할 때면 내 나눔은 큰 것 같고 남의 나눔은 보잘 것 없어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체휼 잘 하는 척했습니다. 벧후 1:5 말씀을 목사님이 전하시며 빈 깡통이 더 요란하단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팍- 와 닿으며 '내가 말씀 좀 안다고 교만했구나' 깨달았습니다.
2. 나는 어떻게 책망하고 어떻게 민감함을 훈련하고 있는가?
이나래(89): '그렇게 안 생겼는데 은근 돌직구 날린다' 라는 평가를 받는데 어떤 이는 좋은 뜻에서 한 말이 아닐텐데도 이 평가가 좋습니다. 그만큼 나름 솔직한 척을 하고 싶어하는데 그 와중에 착한 아이로는 보이고 싶어서 살짝 우회적으로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정죄가 있었음이 깨달아집니다.
목장에서 민감함을 훈련 받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목장에 속해 있다보니 그게 아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줬던 건, 그 사람이 나를 의지하고 있고 내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처음 본 나를 당연히 의지할 수 없었을 목원들인데 그들이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으면 나눔에 귀 기울이는 대신 옳고 그름으로 가득 차 속으로 끊임없이 판단했습니다. 이런 나를 깎아주는 곳이 목장입니다.
박예진(89): 어릴 때마다 사건 사고를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난 이렇게 힘든 시절을 겪은 사람이야'가 베이스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내가 잘 견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말씀처럼 정말 항생제 투여로 상처가 터지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아픈데 교만했습니다. 내 아픔을 드러내긴 싫지만 많이 안다고 생각하여 나도 그러면서 남이 죄 짓는건 보지 못하고 비꼬며 책망했습니다. 사회 생활하면서도 그런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목장과 QT로 민감함 훈련을 받는 중입니다. 목장에서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나눔을 듣는 것이 힘들어 중간에 도망칠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귀도 입도 다 열렸습니다.
이혜영(92): 소심한 편이어서 누가 나한테 책망하면 상처 받고 기분 나빠하기에 저도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는 편입니다. 사실 진심 어린 책망이 무엇인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문제에 조언은 하고 감정 이입은 하지만, 상대의 수준에 맞게 하는 책망이 아닌 내 기준에서의 책망입니다. 배려하는 책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3. 나는 책망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이나래(89):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은 나의 낮음과 부족함을 보기 보다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며칠 전에 회사에서도 "넌 자기애가 넘치나봐"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몰랐는데 자기애가 넘치는 듯하고 이게 교만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도 그런 교만함으로 조건을 따져서임이 깨달아지는데 사실 그것을 내려 놓을 자신이 없어 고민입니다. 또한, 모태신앙이지만 '믿음이 아닌 성품으로 신앙생활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저 긍정적인 것을 좋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책망하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긴 하지만, 옳소이다 겸손하게 반응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오히려 그 사람을 정죄했습니다.
박예진(89): 철통 보안으로 책망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책망을 모함으로 여기기도 했었는데 목장 와서는 좀 달라졌습니다. 1년 정도 된 지금은 조금씩 책망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에서는 기쁘게 받아들이다가도 세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책망을 거부하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래도 '옳소이다'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훈련시켜 주시는 것 같고 이제 아픔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25년 만에 자아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픈 데를 건드리면 기분이 나쁘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늘 내 자신이 부지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너 게으르다'고 하시는 엄마의 말씀 한 마디에 기분이 나빠 바로 방 청소를 했습니다.
이혜영(92): 저도 자기애가 큼을 느낍니다. 고등학교 때 힘들었는데 공부만 하며 살았으니 보상 심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다른 친구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반수 하면서도 그 생각은 이어졌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이 말씀 앞에 떳떳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어떤 책망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리 반응합니다. 환경이 비슷한 친구가 하면 거부하지만 남자친구가 하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싸울 때마다 무조건 받아들이니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늘 옳소이다 반응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4. 은혜가 부족한가? 만족함이 없는가? 내게 주신 벌이 혹독한가, 합당한가?
이혜영(92): 만족하고 있습니다. 교환학생 가서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 정말 감사했고 한국 돌아와서 신앙생활 잘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기도 많이 했는데 우리들교회가 그 응답인 것 같아서 감사하고 만족 중입니다. 진로 고민이 있는데 이것이 욕심인가 생각 중이고 개강과 함께 외모에 대한 비교 의식이 조금 생기긴 했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벌은 없는 것 같은데 어깨 때문에 아파하시는 엄마의 사건이 내게 주신 벌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박예진(89): 저희 가정은 겉은 번지르르 했지만 속은 곪아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벌이라기 보다 하나님께서 채찍질 하시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물질은 다 가져가셨지만, 저희 가정의 내적 성적이 건축되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부모님의 욕심과 저의 이해타산이 맞아 미국에 가서 공부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습니다. 내 욕심으로 간 대학을 난 졸업할 수 없었지만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내가 하는 것은 정말 하나 없고 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부모님은 싸우시지 않으며 저와 동생은 교회에 다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온 사건이 합당한 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나래(89): 내 생활에 만족하다가도 어느 순간 끝없이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외모우상주의에 빠져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치아 교정을 하고 예뻐진 친구를 보고 바로 다음 날 치과 예약하여 진료를 받았으나 치아가 약하다는 이유로 교정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외모 우상을 내려놓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며 감사했지만 요즘은 피부가 걸려 피부과 진료를 받습니다. 진료 받지 않았을 때보다 더 지저분해진 얼굴을 보며 나의 만족하지 못함을 깨닫고 다음 달부터는 피부과 끊기 적용을 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내게 주신 모든 벌은 돌아보면 모두 합당했고 앞으로 주실 모든 벌도 합당할 것이라 믿지만, 이 또한 진짜 믿음이 아닌 성품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 기도 제목
박예진(89)
-진로 문제에 대해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갈 수 있기를.
-교제 문제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를.
-평일에는 10시 이전에 귀가할 수 있기를.
이혜영(92)
-엄마 어깨 아픈 것이 치유될 수 있기를.
-친오빠가 모태신앙이나 방황 중인데 천천히라도 회복되어 주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개강했는데 계획대로 행하고 지치지 않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혜 주시기를.
이나래(89)
-회사에서 받는 책망에 옳소이다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기를.
-기도를 습관적으로 할 수 있기를.
-가까이에 있는 지인들의 영혼에 대한 애통함이 생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