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3부 김미옥 목장 보고서>
날짜 : 2014년 8월 31일
말씀 : 사무엘하 11:6~27
제목 : 여호와께서 악하게 보시는 것
참석자 : 김미옥목자, 서아름, 김슬기, 유정현
*주일설교*
복을 쏟아부어 주실때 교만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물질적으로 복을 주실 때 성적으로 무너지고, 건강으로 축복을 주실 때 쾌락으로 쓰게 된다.
사람들 보기에 악한 일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이라면 그것은 죄가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선한 일 같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면 그것은 죄가 된다.
사람은 속과 겉이 같아야 하는데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속을 보신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시니 순식간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다고 하신다. 다윗이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나이스하게 행했으나 하나님이 속지 않으시는 악한 일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1. 환대를 가장한 은혜
(6-7절) 다윗이 밧세바가 임신을 하자 이것을 우리아의 아이로 만들려 하니 다급하자 왕의 권세로 은폐를 신속하게 시도하기 시작한다.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고 우리야를 불러 들였다. 그리고 "샬롬"을 쉴새 없이 말하였으나 이 "샬롬"은 평안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오바하면 이상한 것이다.
(8-9절) 다윗이 우리아에게 "발을 씻으라" 라고 이야기 한 것은 "빨리 밧세바와 동침하라" 는 의미이다. 다윗은 왕이기에 모두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이것이 나쁜 일이 아니다' 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은 '다윗 왕국이 이 세상의 왕국과 다르다.' 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목사인 나도 성도인 여러분과 생각과 같이 행할 수 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전령자'인 것이다.
(10-11절) "언약궤와 내 주 요압이 야영 중이니 내가 어찌 내 처와 자리이까?"라는 우리아의 말은 다윗이 해야 할 말이었다. 왕을 깨우쳤으나 다윗은 들리지 않았다. 다윗이 회개한 후에 우리아의 이 말은 다윗을 평생 찔렀을 것이다.
(12-13절) 우리아가 내려가지 않자 다윗이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기 위해 다윗이 직접 먹고 마시면서 2차 시도를 했으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우리아는 '전쟁때는 동침하지 않는다.'라는 법을 지킨 것이다. 율법을 잘 지킨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 가운데에서도 수많은 여자와 동침하고 아이를 나은 전력이 있다. 우리아는 성경에 기록되었고 일부 일처제를 지켰고 예수님의 계보에 우리아의 아내로 기록되었다. 대단한 적용과 대단한 믿음의 인물이다. 우리아는 충성심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인물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11절에 "결단코 내려가지 않겠다."는 단 하나의 행동을 다윗은 8-11절까지 "내려가라."를 네 번이나 말했다. 다윗은 왕으로써 자기의 권세와 힘으로 요구했으나 왕이 시킬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다윗은 알게 되었다.우리아는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감동적인 충성심 이었던 것이다. 우리아가 내려가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언약궤가 야영중에 있다는 것이다. 함께 위협을 무릅쓰는 것을 생각하는데 어떻게 아내와 동침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아는 원칙에 충실한 자로 자제력이 뛰어난 자였다. 구속사가 깨달아지지 않으면 우리아가 아내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아는 믿음이 있는 자이다. 헷 사람으로써 개종을 한 사람이다. 자기 자신의 미천함을 알고 구속사를 깨닫고 있는 사람이다. 다윗의 반복되는 요구에도 의중을 묻지 않았고 이것은 다윗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혹시 의심이 들었어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어둠으로 들어가고 있으나 우리아는 빛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천국에 가면 요나단과 마길과 우리아를 만나보고 싶다. 지도자라서 무조건 충성을 보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윗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신다는 언약적 확신이 있었기에 충성을 다했을 것이다. 밧세바는 구속사 적으로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우리아가 아닌 나쁜남자 다윗과 외도 것이다. 우리아의 충직함이 밧세바를 질리게 한 것이다. 내게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환경이 나를 막아준 것이어서 이혼하지 않은 것이라 나는 잘란 척 할 것이 없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 하나님이 평생을 막아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따라 살라고 고통을 통해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도우라고 아픔을 주신 것이다. 우리아는 경건주의자가 아니라 경건한 자라 매우 유쾌했을 자라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따분해한다. 경건주의와 경건은 다르다. 믿음의 수준대로 분별이 잘 안되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경건하지는 못해도 경건주의자는 아니다. 다윗과 우리아의 리더십을 비교해보자. 마태1장6절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로만 적혀있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공기와 같은 지도자이다. 있으나 없으나 공동체가 잘 돌아가는 노자의 리더십에서도 통치자가 있다는 것만 안다는 것이다. 백성이 과중하게 느낄 통치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무위의 리더십이다. 사랑받고 존경받는 지도자이다. 두려움을 주는 지도자이다. 경멸받는 지도자이다.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 자기 가치관이나 신념에 자기취향 따라 판단하는 자가 아니다. 항상 맥락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좋고 나쁘다를 판단하면 제3의 창조가 불가능하다. 신념이나 가치관은 한 편에 속한 것이다. 기업가는 선택이 승패를 결정하므로 가치관 따라 선택할 수 없어 늘 예민하다. 때리는 남편. 바람피는 사람....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늘 질문을 해야한다. 옳고 그르다고 판단 해서는 안된다. 질문을 잘하는 조짐의 더듬이가 리더의 자격이다. 리더는 공이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주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목사인 나는 여러분의 가정 중수를 위해 이끌어 주는 것이고 공은 행한 여러분의 것이다. 다윗은 지도자로써 경멸 받을 행위를 했다. 우리아는 윗사람으로써 부하들의 사기를 생각하고 아랫사람으로 왕의 명령을 생각하여 집으로 가지 않고 성전 문에서 잤다. 이것이 무조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을 위해서 어디까지 유일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이 유익할 것인가 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구속사적인 사람이었다. 질서의 우선순위에 복종하는 것은 최고의 예배인 것이다! 우리아는 눈가림만 해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방인이였어도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갔다. 우리아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 같아도 하나님 때문에 적용한 일은 하나님은 천년이 몇 번 지나도 반드시 부활하시고 기억하시고 상 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아야 말로 공기와 같은 지도자이다. 여러분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목장에서 모두 공기와 같은 지도자가 되기를 적용하시길 바란다. 한 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진면목은 가장 최소한의 공동체에서부터 비롯된다. 가장 최소한의 공동체서 우리아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큰 리더십을 가질 수 가 없다.
Q 다윗은 환대를 가장한 은폐가 있었는가? 버리고 싶은 충신이 있는가? 리더십의 단계 중 어디에 속하는가?
2. 은폐를 덮으려는 음모
(14-15절) 다윗은 머리가 좋아 우리아를 없애려 편지를 들려 보낸다. 우리아를 없애려는 은폐를 덮으려는 음모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아는 다윗이 자기에게 하려는 일을 알았을 것이다. 편지를 읽을 수 있었으나 읽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보내 주셨다. 요나단, 우리아... 어떻게 우리아는 이런 다윗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우리아의 사랑을 보이려고 다윗이 죄 지은 것이 아닌라는 생각도 한다. 요압은 다윗을 위해 양심도 버릴 수 있는 자이다. 그러나 이것은 권세를 위한 것이었다. 다윗은 충신인 우리아는 버리고 간신인 요압을 살렸다. 요압은 다윗만 알아볼 수 있게 보고서를 장석하고 우리아와 함께 다윗의 신복들을 함께 죽였다. 다윗은 충신인 우리아는 버리고 간신인 요압을 살린 것이다. 이 땅은 너무나 맑은 물에서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인가 되어가기 위해서 요압같은 자도 살리신다. 그래서 다윗은 점점 요압에게 발목이 잡혀간다. 모든 것이 잃을 지경을 향해 간다. 다윗이 사소하게 생각한 안목의 정욕이 우리아를 살인까지 가게 한다.
Q 은폐를 덮으려고 음모를 이용한 적이 있는가? 나의 일을 위해 간신을 이용한 적이 있는가?
3. 흔적을 지우려는 살인
(16절) 16-25절까지죽었다는 이야기가 5번이나 나온다. 다윗이 우리아의 죽음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왕의 권세가 얼마나 그의 인간성을 순식간에 갉아 먹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대를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셨다. 돈 벌려고 악하고 돈벌고 나면 음란하다. 돈이 없고 권세가 없어서 음란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누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예수님의 조상 다윗도 이런 일을 저질렀다.
(17절) 우리아가 다윗을 위한 충성심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인과응보는 이 세상에서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례요한도 목이 잘리는 죽임을 당했다. 지금은 슬프지만 하나님은 우리아를 영접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아가 죽었다는 것, 다윗의 죄가 성공적으로 은폐 되었다는 것은 후일에 당할 엄중한 심판을 볼때 재앙의 선고일 것이다. 꼭 아픔답게 죽어야 한다는 것도 내려놓아야 한다.
(18-21절) 다윗이 부하들을 사랑해서 부하들을 내모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22-24절) 그러나 요압이 우리아도 죽었다 하니 평소 다윗의 반응과 다른 반응을 하게 된다. 마땅히 이스라엘 왕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에 책임을 물어야 할 자인데 더이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다윗은 왕의 권세를 사욕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의 신복들을 죽임으로 자신의 죄를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다윗이 짓고 있는 죄는 하나님께서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었다.
Q 죄의 흔적을 지우려는 적이 있었는가? 지우려다 발목 잡힌 적은 없었는가?
4.슬픔을 가장한 기쁨
(26-27절) 드디어 우리아가 죽자 밧세바가 소리를 내어 울었다. 은폐하고 음모하고자 죽여 기쁜 상황인데 울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 이렇다. 11장 전체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하였다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하셨다. 미갈은 하나님의 저주로 죽는 날까지 자식을 없을 것이라고 기록되어있다. 다윗을 후손을 통해 성전을 지을꺼라 말씀하셨는데 다윗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주님은 다윗이 배반할 것을 아셨다. 끔직한 죄를 지은 다윗과 밧세바를 통해 약속을 성취하셨다. 우리는 죄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서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연약한 인생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 은혜아니면 설 수가 없다. 은혜로만 구원받는다.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로 불려지게 되었다. 밧세바로 불려지지 않는다.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동침하라고 한 일은 충신을 살해하는 심각한 일이 되지 않았는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은 진리 중의 진리이다. 악을 행하는데 사람이 있다. 간음을 행하는데 안목의 정욕을 부추기는 밧세바가 있고 충신을 버리는데 우리아가 있고 간신을 이용하는데 요압이 있었다. 막강한 권세를 가지니 충신도 간신도 아름다운 여인도 마음대로하는 다윗을 보면서 누군들 권세를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를 나를 위해 쓰면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큰지를 계속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사장도 대통령도 나를 위해서 쓰는 권세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고 가는 곳마다 승리하니 음란과 악을 순식간에 행하게 되는 것이다.
Q 좋으면서도 슬픔을 가장한 일이 있는가?
* 기도제목*
#65279;
김미옥
1. 매일 큐티와 기도로 내적 성전 쌓기
2. 직장에서 미운 사람들 안에서 내 모습 보기
3. 목장식구들의 예배사수와 생활예배 위해서
4. 논문과 진로 놓고 기도하기
서아름
1. 주님이 허락하신 유럽 잘 다녀오기를
2. 아빠 한국 나오시는 것 잘 해결되기를 , 아빠 구원
3. 제대로 신교제
4. 가족 화목
김지선
1. 목장 잘 붙어 있기
2. 타지에 계신 아버지 건강, 가족들 건강
3. 예배 방해받지않는 직장생활
유정현
1.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 머물기
2.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기
3. 학교 국가근로 담당자와의 사건 속에서 상대방의 죄가 아닌 내 죄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