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2014.8.31. 구영미_목장_보고서
“여호와께서 악하게 보시는 것”
사무엘하 11장 6-27절
말씀요약) 지난 주간에 싱가폴한인연합집회를 인도하고 왔다. 싱가폴 교민분들에게도 문안을 전한다. 복을 쏟아주실 때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죄 안짓는 사람이 드물다. 물질적으로 복을 주실 때, 성적으로 무너지고 건강으로 축복하면 그것을 쾌락으로 쓰게 된다. 사람들이 보기에 악한 일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이라면 그것은 죄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선한 일 같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라면 그것은 죄가 된다. 사람은 겉과 속이 같아야 되는데,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속을 보신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시니까 권세를 가지고 순식간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다. 권세를 가지고 좋은 일을 행했지만 하나님이 속지 않으시는 악한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1. 환대를 가장한 은폐를 행하였다.
6-7절) 간음을 행하고 임신이 되었으니 다윗이 그것을 우리아의 자녀로 만들려고 하니까 시간이 급했다. 그래서 왕의 권세로 은폐를 신속하게 하기 시작했다.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고 우리아를 불러들였다. 다윗이 아무 문제 없는 요압과 군대의 안부를 쉴새없이 물었다. 샬롬을 쉴새없이 부르짖었지만 실제로 평안이 없는 것은 다윗집안인 것이다. 8-9절) 우리아더러 발을 씻으라는 얘기는 우리아더러 빨리 들어가서 성관계를 하라는 의미인데, 다윗으로서는 자신이 왕이니까 그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다윗왕국이 이세상과 똑같지 않다는 생각을 다윗이 잊어버렸다. 다윗은 하나님나라의 전령자인 것이다. 10-11절) 우리아에게는 언약궤가 야영중에 있고 요얍이 바깥 뜰에 있는데 내가 어찌 먹고 마시고 내 처와 자리이까 라며 다윗이 해야될 말을 우리아가 말해줬다. 왕을 깨우쳤지만 다윗은 이 말이 들리지 않았다. 우리아의 이 말은 평생 다윗을 찔렀을 것이다. 12-13절) 다윗이 2차시도를 하였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심히 아리따운 아내를 놓고 충성심에 동침하지 않은 것은 전쟁 때는 동침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을 지켰다. 그러나 다윗은 수많은 전쟁 가운데서도 수많은 여자와 동침을 하고 아이를 낳은 전력이 있다. 우리아는 성경에 기록되었고 일부일처를 지켰고 예수님의 계보에 우리아의 아내라고 기록이 되었다. 대단한 적용과 대단한 믿음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아는 충성심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정수라고 할 수 있다.
8-11절까지 내려가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온다. 우리아가 내려가지 않을 단 하나의 행동을 다윗은 왕으로서 요구를 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힘과 권세로 시킬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아는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지만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감동적인 충성심이었다. 우리아는 언약궤가 야영중에 있다고 했다.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그런데 다윗은 그러한 이의 아내를 데려와 잔 것이다. 우리아는 충성스러운 군인으로 자제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왜 다윗이 자기에게 이렇게 배려를 해 주고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관심을 표한 것에 대해서 얼마나 묻고 싶었겠는가? 멀쩡하게 우리아를 왜 불러내서 우리아를 대접하고 자꾸 부인하고 잠을 자라고 했던 것일까. 우리아는 37용사에 들어가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리아는 믿음이 있었다. 헷 사람이다. 이방인인데 개종을 하였다. 자기 자신의 비천함을 알고 있었다. 30용사 중에 못들어 간 것은 출신이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우리아는 구속사를 잘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에 다윗을 신뢰했기 때문에 묻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언약궤가 있다는 것을 중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다#50968;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 의심이 들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나라에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다윗 왕이 잘못되었더라도 그 부분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가 있다. 다윗은 점점 어두움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우리아는 점점 빛으로 나아갔다. 완전히 우리아의 KO승인 것이다.
다윗은 오랫동안 신뢰를 받아온 지도자이다. 잘못 되었더라도 지금까지 인도해온 것을 보니까 하나님게서 인도해가신다는 언약적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충성을 했다고 보여진다. 우리아는 경건주의자가 아닌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믿음의 수준에 따라서는 이것이 분별이 잘 안된다.
경건한 사람과 경건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분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다윗과 우리아의 리더십을 비교를 해 보려고 한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라는 구절이 있는데, 밧세바는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부하를 죽게 만든 다윗의 리더십과 그러한 상관이라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다 죽은 우리아의 리더십을 생각해 본다. 르와 숨뻬이의 책에서 보면,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공기와 같은 지도자라고 했다. 있으나 없으나 자기 할 일을 다 하게 해 주고, 그럼에도 공동체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지도자. #45454;자의 리더십에서도 훌륭한 통치자는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 아는데 있다고 한다. 과중한 통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도자와 백성이 서로 믿을 때 가능한 얘기다. 무위의 리더십인 것이다. 무위의 리더십과 공기같은 지도자는 같은 개념이다. 그 아랫단계는 사랑받고 존경받는 지도자. 그 아랫단계는 두려움을 주는 지도자. 맨 아래, 낮은 단계는 경멸받는 지도자라는 것이다. 리더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자기 가치관이나 신념 자기 취향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맥락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좋고 나쁜 것으로 판단을 하면 제3의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업가는 불안과 두려움속에서 항상 결정을 해야되는데 하나를 결정하는 것이 승패를 결정하는데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결정이 된다. 그래서 항상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예민한 것이고, 예민한 것이 통찰력을 가져다 준다. 항상 질문을 해야 한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의견이 너무나 선하기 때문에 이것이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리더는 공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이 이루어지도록 그것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충분한 사람인 것이다.
다윗은 지도자로서 경멸받을 일을 했다.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그것을 우리아 아이라고 은폐를 하려 하였다. 또 우리아를 환대를 했다. 우리아는 전쟁중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집으로 가지 않고 성문안에서 잤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우리아를 또 죽게하려했다. 무조건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왕을 위해서 어디까지가 유익할까 하나님나라를 위해 무엇이 유익할까를 생각하는 구속사적인 사람이었다. 질서의 우선순위에 복종하는 것은 최고의 예배이다. 우리아는 이방인이어도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간 것이다. 우리아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 같아도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고 상주시는 이시다. 우리아야말로 공기같은 지도자인 것이다.
한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진면목은 가장 최소한의 공동체로부터 비롯된다. 최소한의 공동체로부터 우리아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큰 공동체에서 리더십을 가질 수 없다. 다윗은 환대를 가장한 은폐로 자기에게 가장 목숨을 내놓고 사랑한 충신을 버렸다.
적용) 나는 환대를 가장한 은폐가 있는가? 버리고싶은 충신이 있는가? 공기같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두려워하는, 경멸하는 리더십중 어느 리더십에 속하는가?
2. 은혜를 덮으려는 음모다.
14-15절) 므비보셋을 자신의 식탁에 앉힌 자가 이제는 우리아를 무덤 속에 넣기로 한다. 우리아는 다윗으로부터 전해받은 편지를 요압에게 가져다 주었다. 편지를 들고가는 우리아를 죽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것이 성공하면 다윗 자신이 지은 죄를 은폐할 수 있었다. 은폐를 덮으려는 음모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아는 이 일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편지를 읽어보지 않았다. 그냥 죽기로 작정한 사람같다. 다윗에게는 평생에 중요한 때마다 이러한 사람이 나타날 수가 있는가? 이렇게 기막힌 상황속에서 생명을 내놓고 다윗 대신 죽어주는 우리아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인데 우리는 전부다 나는 죄 짓는데 다른 사람이 우리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아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시려고 하신 것이다. 요압은 편지를 다 읽고 다윗의 행간을 다 읽고 다윗을 위해서 악을 행하는 것인데, 결국은 다윗이 아니라 권세를 위한 것이다. 요압은 다윗이 정죄감을 갖지 않도록 사탕발림으로 보고서를 잘 작성해서 다윗에게 보내었다. 다윗은 요압이 이상한 줄 알면서도 자기 죄를 은폐하려고 간신을 이용하였다. 얼마나 다윗이 비열한지 모른다. 충신은 버리고 간신은 이용한 것이다. 자신이 징계받지 안도록 다윗만 알아보도록 보고서를 작성했다. 요압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다윗의 신복 몇 사람을 우리아와 함께 죽였다. 죄를 지으니까 요압에게 점점 더 힘이 실리게 되었다. 회사나 다른 곳에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되는 요압이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나서는 그후로 완전히 끌려가게 된다. 다윗이 완전히 발목 잡히는 일을 했다. 밧세바 때문에 다윗이 모든 것을 잃을 지경에 처했다. 안목의 정욕, 사소하게 생각하는 이 죄를 처리하지 않으니까 우리아를 죽게 하는 것이다. 큰 죄는 아무도 안 짓는다.
적용) 다윗은 은폐를 덮으려는 음모로 간신을 이용했다. 나의 어떤 은폐를 덮으려는 음모를 한 적이 있는가? 나쁜 사람이지만 내 일을 위해서 간신을 이용한 적이 있는가?
3. 흔적을 지우려는 살인을 행했다.
15-26절) 우리아가 죽었다는 내용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다윗이 우리아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왕의 권세가 얼마나 심하게 그의 인간성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도 이세대를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였다. 돈이 없고 권세가 없어서 음란을 못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 가면 다윗조차도 자유롭지 못하였는데 누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조상 다윗이 그랬으니 말이다.
15-16절) 우리아가 다윗을 위해 충성을 보였지만 그 충성심 때문에 개죽음 당하듯이 죽는 것을 보게 된다. 충성 때문에 아내를 빼앗기고 자기 생명을 빼앗기게 되었다. 인과응보는 이세상에서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레요한은 자기 목이 잘려져서 죽게 되었다. 지금은 슬프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아를 기억하시고 일어나서 영접하셨을 것이다. 우리아도 죽었다는 것은 성공적으로 다윗의 죄가 은폐되었다는 것은 성공의 표식일지는 모르지만, 후일에 당하는 심판이 엄중한 것을 볼 때 재앙의 선고와 같은 것이다. 꼭 아름답게 죽어야 된다는 것도 우리는 내려놓아야 한다.
18-21절) 다윗이 부하들을 위험에 내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다윗이 너무 부하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그런가 하고 넘어갔다. 21-25절)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 일로 걱정하지 마라고 말을 하였다. 다윗이 평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스라엘의 죽음에 대해서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할 자인데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자신의 권세를 사욕으로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신복들을 신복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의 죄를 숨길 수는 있었지만, 이 죄를 하나님께는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실 터인데 다윗이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지 않는가? 책임감없는 위로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적용) 죄의 흔적을 지우려던 적이 있었는가? 지우려다가 발목을 잡힌 적은 없는가?
4. 슬픔을 가장한 기쁨이다.
26절) 드디어 우리아가 죽엇는데, 밧세바가 소리를 내서 울었다. 지금 불륜을 행하다가 은폐하고 음모하고 죽이고싶어 죽겠는데 우리아가 죽었다고 하니까 밧세바가 울었다고 한다. 27절) 11장 전체의 결론은 이 모든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고 말씀하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인데 그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6장에 미갈이 평생에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7장에 다윗이 후손을 통하여서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 후손이란 누구인가? 다윗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주님은 다윗이 배반할 것을 아셨다. 끔찍한 죄를 지은 다윗과 밧세바를 통해 약속을 성취하셨다. 우리는 죄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서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연약한 인생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 은혜 아니고는 설 수 없다. 은혜로만 설 수 있는 것이다.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로 불려지게 되었다. 밧세바로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은 진리 중에 진리이다. 악을 행하는데 사람이 있다. 간음을 행하는데 안목의 정욕을 부추기는 밧세바가 있고 충신을 버리는데 우리아가 있었고, 간신을 버리는데 요압이 있었다. 충신도 간신도 아름다운 여인도 마음대로 하는 다윗을 보면서 누군들 권세를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를 나를 위해 쓰면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큰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계신다. 사장만 되어도, 대통령만 되어도 권세를 나를 위해 쓰면 안되는 것이다. 사욕을 위해 쓰면 안된다.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하시니까 다윗이 순식간에 악을 행하게 되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적용) 좋으면서도 슬픔을 가장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목장 스케치 및 나눔) 지난 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6층 초등부실에서 목자언니와 둘이서 자유롭게 나눔을 하였습니다. 점심을 거른 저를 위해 언니가 사주신 고구마라떼와 컵휘와 건강을 생각한 고소한 우엉차 그리고 희정언니가 주신 달고 맛있는 케익과 청량감 넘치는 음료수와 지난 텀 또래 재정이가 챙겨준 아몬드와 호두까지 조그만 의자에 딸린 테이블이 넘치도록 맛난 간식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
얼굴도 모르고 이름만 아는 목장식구들이 목장에 나올 수 있도록 마음과 환경을 열어주시길 기도하며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목자언니의 시작기도와 간식 폭풍흡입 후 근황토크를 하고 잠깐 쉬고난 다음, 말씀요약이라기보다 쓴 걸 거의 대부분 읽다시피한 다음, 생각나는대로 적용질문 중에 몇 가지를 뽑아서 나눔을 하였습니다.
목자언니: 어떻게 지냈는지...?
은화: 요즘 기도 대신 진로를 걱정하며 무기력하게 무질서하게 보냈다. 중간에 목사님 싱가폴 집회 동영상을 보면서 전에도 여러번 들었던 룻기 설교인데 새롭게 다가왔고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는데 그때뿐이었고 계속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냈다. 시간을 잘 보내려고 계획을 세우는데 의지적으로 잘 안된다.
목자언니: 나도 한주간 다운이 돼서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은지...?
은화: 잘 모르겠다. 지금 드는 생각으론 욕심이 많아서 인 것 같다. 잘 되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안되니까 속상한 것 같다. 전에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방송가 언저리에 걸쳐 있다. PD와 아나운서 기자 등.. 졸업 후 각자 진로를 준비하다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는데, 녹색 창에 친구들 이름을 검색해서 프로필이 뜨는 걸 보면 이 친구들도 3-4년 정도 폐인이 되기 직전까지 치열하게 준비했는데 나는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목자언니: 내 생각에도 욕심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죄 때문인데 말씀을 보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도 오랫동안 구직활동을 해봐서 게다가 속아서 직장을 갔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버티다가 힘이 든 적도 있었다. 기복은 아니지만 우리들교회 청년들도 취업이 안되서 힘들어 하다가 목자로 세워질 즈음 직장이 생긴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목자언니: 그런데 목보는 썼니? 이력서는 어떻게 잘 쓰고 있어?
은화: 아니요. 잘 써야겠다는 압박감에 내내 시달리다가 못썼어요. 이력서도 마찬가지로 몇일동안 괜찮다 싶은 기관 홈페이지도 들락거리고 자료를 조사했는데 또 불안감에 마감시한을 두고 못냈어요. 왜 이렇게 두려움이 많은 건지..
목자언니: 목보는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마감 시한을 정해놓고 그 전까지는 올리겠다고 마음을 먹고 작성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력서는 하고싶은 데는 일단 다 써보도록 하자. 나는 내가 이상한 곳인지 아닌지 기관이나 사람을 분별하지 못할까하는 두려움이 있다. 기도하고 맘 편히 쓰고 너도 면접을 보러가면 너랑 잘 맞지 않으니까 안된거라 생각해. 그리고 너도 그들이 너랑 잘 맞을지 판단하는 거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카페같은데를 가서 편하게 써보면 어떨까.
목자언니: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런데 언니가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은 명쾌하게 정리해줄테니까 궁금하거나 하는 게 있으면 물어봐.
은화: 요즘에도 저는 진로때문에도 그렇지만 우리들교회에 적응이 잘 안되고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고 하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목자언니: 대형교회 출신들이 종종 적응하는 데 오래걸리더라. 그리고 전처럼 활발하게 봉사하는 것도 없으니까 더 그런걸 거야.
은화: 맞아요. 그런데 전에는 신나게 10년동안 예배팀, 북한팀, 회복사역팀에서 하고싶은 대로 섬기고 성경공부인도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에 드는 생각은 전에는 어떻게 신나게 섬기고 그랬는지.. 지금 저더러 교사를 하라고 하면 덜컥 겁이나서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봉사를 안하고 있으니 뭔가를 빼먹은 것 같고, 괜시리 겁은 나고...
목자언니: 이해해. 언니도 K교회에서 오랫동안 섬기고 했었는데 우리들교회로 오고나서 한동안 주일학교 교사를 쉬고 있는데 그 교회 애들 생각에 마음도 아프고 엄청 눌리더라구. 너도 불편하고 하는 감정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일단 양육교사훈련을 받고 또 만약 안되면 일단 목보 열심히 쓰고 수요예배 주일예배 잘 나오고 큐티 열심히 하면서 가자. 그리고 또 어느샌가 섬길 부서에 봉사할 마음을 부어주시기도 하더라구. 그러니까 너가 해야할 것들 성실하게 자연스럽게 하면서 가면 될거야.
목자언니: 그러면 이제 적용질문 중에 나누고 싶은 내용 있어?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갑자기 몇 달 전 일이 생각이 나네. 직장에서 다른 회사에서 하던 업무를 이관해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일을 시작하면서 뭔가 찜짐한 구석이 있었고, 그것을 고객에게 설명해주어야 하나? 일을 맡아할 직원에게 언급을 해줘야 하나? 생각하다 그냥 넘어간 적이 있거든. 그런데 일이 터진 거야. 고객이 화가 잔뜩나서 항의를 했고 물론 당시에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화를 낸 거고 일은 잘 처리가 되었는데 당시에 내가 어떻게 처신을 했냐면은, 나와 직접 상관이 없다며 다른 직원 핑계를 댄 거야. 당시에는 해명을 한 거지만, 한편으론 나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며 선을 그은 거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직원이 알게 되면 얼마나 황당할까 싶더라. 대표님께서 상황을 물으셔서 그 직원이 없는 자리에서 그 직원을 언급을 했으니까. 당시에는 내가 연루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건데, 내가 참 비겁한 사람이구나가 인정이 된다. (그리고 연달아 다른 상황들을 얘기해줬는데 복원력이 제로인 듯 가물가물해져서..^^;;;;; 다음부턴 키워드라도 집중해서 잘 적어보겠습니다!)
은화: 저는 가족들 특히 직분이 있으신 부모님과 가치관으로 충돌하는 게 가장 어렵다. 이러려면 뭐하러 믿나 싶고, 원망만 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부모님께 예수가치관이 전해지기는커녕 복음이 방해받는 것 같다. 이런 부분땜에 너무 외롭다. 그렇지 않아도 자존감이 바닥인데 엄마가 감정이 격해져서 폭언을 쏟아놓고 금새 기분이 풀려서 말을 걸면 그게 몸서리치게 화가 난다. 나는 그때부터 이틀 삼일은 비수가 꽃힌 걸 묵상하느라 마음이 괴로운데, 이래저래 눌리는 것 투성이다.
목자언니: 뭔지 어떤 기분일지 알 거 같아. 힘들겠지만 가족객관화 잘하도록 한텀동안 함께 기도하면서 이부분에서 더욱 성장할 것 기대할게.
덧붙이기) 자기연민에 빠져 찡얼찡얼 대고 잡다한 생각이 많아 결정장애(?)가 있는 저에게 목자언니가 통쾌한 처방을 해 준 부분에서는 감사를, 그리고 직분자인 부모님과 가치관이 달라서 부딪히는 가족의 때를 잘 살아내도록 서로에게 응원과 위로와 기도로 함께 잘 도우면서 변해갈 것을 기도하며, 다른 누구보다 마음다해 공감해주고 체휼해 준 목자언니에게 고마움과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였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필연적인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모임을 마쳤습니다.
기도제목
목자언니
1.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고 가족의 예배가 회복되도록
2. 기도시간 확보 많이 하도록
은화
1. 가족 객관화 잘 하고, 애통하는 마음 회복시켜주시길
2. 건강한 쉼 잘 누리고, 해야할 일 빼먹지 않고 잘 하도록(큐티, 목보쓰기, 이력서 쓰기)
3. 월요일부터 SNS와 카톡 삭제하고 중단했는데, 대체할 만한 다른 유익한 것들 발견해서 다시 시간 낭비 안하도록
4. 새 목장 기도하며 목자언니와 목장식구들 잘 섬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