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모임> 20140601
본문: 삼하 5:1~25
제목: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10절, “다윗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걸어갈수록 점점 커졌다는 뜻이다. 그리고의 사건이 늘 있지만 다윗은 걸음을 뗄 때마다 점점 커졌다는 것이다. 점점 되는 일 밖에 없는 인생이 다윗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하 3장, 점점 강하여 간다고 한 것은 유다 왕이었을 때이고 있었던 구절, 지금은 통일 왕국에서 강성해 지는 것이다. 점점 지경이 넓어지는 강성함은 무엇일까? 다윗이 3장에서 내가 약하여 너무 어렵다고 한다. 유다 왕인데 그런 고백을 하니까 4장에서 그런 좋은 소식을 분별할 수 있는 상을 주셨다. 내 환경에서 정말 좋은 소식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편에서 유익을 구하는 것이 좋은 소식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다. 육신의 소욕은 점점 소멸되어 가고 영이 점점 강성하여 간다는 것이다. 다윗이 인생을 통해 점점 강성하여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반복해서 설명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우리기 알기 바란다.
1. 형제 의식이 공동체 안에 편만해졌다는 것이다. 한 골육이라 이야기 하는 것이다. 1~3절, 다윗의 만감이 교차하는 것, 통일 왕국의 왕이 되는 날이다. 다윗은 이미 이스라엘을 한 골육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고 인간의 왕을 달라고 너무나 외쳐서 호 13: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 폐하는 왕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울이라는 왕의 달콤함을 맛보니 상대적으로 초라한 다윗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울이 너무 잘 생겼고 사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윗은 너무 못 생겼나 보다. 잘생긴 사람에 대한 환상이 7년 6개월 동안 깨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진실보다는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무엇이든지 맛을 보았기 때문에 성경적인 가치관은 쓰다. 사울과 이스보셋, 아브넬의 죽음 후, 믿을 것이 하나도 없자 근거 잡을 게 없자, 쫄딱 망하자 친척 아닌가요? 하고 왔다. 아말렉 사람, 레갑과 바아나와는 질이 다른 방문이었다. 이 사람들은 다윗을 너무 괴롭힌 사람이었고 망해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을 들고 왔다. 다윗은 이것을 이해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못 된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고 했다. 어제까지 원수였지만 진짜 손 들고 온 것이고 아말렉, 레갑과 바아나는 미워하지 않다가 자기 유익을 위해 온 사람이다. 한 마디로 교회에 장사하러 사업하러 온 사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망해서 왔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 골육의 구원을 위해서 온 것이기에 아무리 어제까지 그들이 미워했어도 오늘 나와 회개한다면 받아들여 하는 것이다. 오늘 내 아들, 내 남편, 내 부모 형제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무조건 받아줘야 한다. 다윗에게는 이것이 아주 좋은 소식이다. 아무 것도 없는 집이 화목하기 쉽다. 없는 집이 화목한 것을 자랑하지 말자. 없기 때문에 화목하다. 오히려 있기 때문에 화목하지 못하다. 맨 끝에 돈이 있기 때문이다. 환란 당하고 원통하고 빚진 자들이 많은 우리가 화목하다. 끼리 끼리 놀다가 공동체의 지경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다. 대상 12:22,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다윗에게 생겼다.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23~40절, 이스라엘 모든 지파 35만명 정도가 헤브론에 와서 한 마음으로 헤브론에 와서 3일만에 축제를 벌였다. 그들이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 3가지 당위성을 말했다. 1) 골육, 친척이다. 2) 다윗이 사울 시대에 자신들을 데리고 출정했기에 지도자였다. 3)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을 주권자로 삼으셨다. 당위성을 들면서 왕이 되어 달라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미워했다가 한 형제가 될 수 있을까? 한 골육 아닙니까? 하고 왔다. 사울이 죽었어도 한 형제가 되는데 7년 6개월이 되었다. 다윗이 삼상 16장에서 기름부음 받고 23년 뒤의 일이다. 어떻게 형제가 되는가? 날마다 선택하는 기로에서 다윗은 기름 부은 자를 늘 지켰다. 신본주의로 지켰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니까 백성들이 찾아왔다. 다윗이 집안 싸움에서 순종한 것을 아무도 모를 것 같아도 모든 질서와 관계에 순종하는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인정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쓰신다. 다윗을 온 국민이 알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사람을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남들이 모르는 나의 순종을 하나님께서 알아 주신다. 음주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속 썩이는 자녀, 떠나 좋은 세상 가려고 한다. 아무도 순종한 것 모를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아셔서 23년 만에 왕으로 세우신다. 목사님) 시댁과 남편 순종, 외출 금지, 돈 없음에 순종하셨다. 그 때는 누가 알까 했다. 날마다 큐티 하면서 그게 깨달아져서 이게 내 역할이구나 했다. 지금 우리들 교회에 한 명씩 오면 한 가지 순종한 것 때문에 한 영혼을 보내주신다고 믿는다. 아무리 모를 것 같아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하나님께서 내 입장에서 순종할 수 있는 것을 귀하게 보신 것 같다. 잘난 척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어떻게 걸레질, 돈, 시간에 순종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다윗이 사무엘, 유다, 통일 왕국 3번 기름 부음을 받았다. 성령을 받고도 이런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내가 이런 성령 충만함이 없으면 한 형제가 되기 어렵다. 3절, 다윗도 기름 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듯이 백성과 언약을 세웠다. 믿음과 약속의 신앙이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다윗이 주체가 되어 백성에게 충성의 서약을 받았고 이건 독재가 아닌 백성을 위한 봉사였다. 하나님의 영을 서로 받지 못하면 공동체, 형제 이런 것을 못 알아듣는다. 공동체, 다윗은 당당하게 내가 너희의 왕이 되려면 언약을 맺어야 된다고 했다. 한 골육이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만 한 골육이다 라고 주지를 시킨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형제가 뭔지 모른다. 그래서 형제 의식이 생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다윗의 수 많은 연단 후에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 본다. 다들 그런다. 형이 어떻게, 동생이 어떻게,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는데 그럴 수 있다. 형제는 하나님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정말 남보다도 못한 것이다. 특히 부모가 부자일 경우에는 형제가 아니다. 그래서 기대할 것이 없다. 벧후 1:5, 내가 믿음이 있다고 형제 우애하는 게 아니다. 믿음이 있다고 형제 우애까지 얼마나 많은 양육을 받아야 하는지 마지막에 형제 우애가 있다. 형제우애를 하기 위해서 다윗의 연단이 걸어왔다. 모두들 아우르는 leadership, 이렇게 연단 후에 생긴다. 우리들 교회는 고난을 많이 받았기에 비교적 형제 의식이 있다. 고난이 없으면 나와 하나님의 관계 밖에 모른다.교회 왔다 갔다 하며 공동체에 안 들어온다. 우리들 교회, 연단을 많이 받은 사람이 모였기에 그렇다. 부목사님 목장보고서 나눔) 가족간에 사랑하지 못한다. 교회에서와 다르다. 가족 간에서는 받는 사랑에 익숙하다. 아내가 성도들에게 하는 사랑을 우리에게 하라고 했다. 성품으로 하는 사랑을 하다 보니 진정한 사랑을 못한다. 희생적 사랑이 안 된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하고 주의 길에 들어섰지만 공동체의 범위가 넓어지지 못한 것을 본다. Application) 집안 식구, 공동체에서 얼마나 형제 의식이 있는가? 목장에서, 직장에서, 가족간에 얼마나 형제 의식이 있는가?
2. 환란은 경하고 영광은 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강성한 것이다. 4~5절, 왕이 된 후 헤브론에 7년 6개월을 유다 왕으로 지내고 그 때가 30살, 40년 왕 노릇을 했다. 사무엘상, 거의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 받는 내용, 사무엘하에서 다윗의 고난은 계속 된다. 저자가 다윗이 이런 고난에서도, 15광야를 지나 왕이 된 나이가 서른 살 밖에 안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30살, 애송이 아닌가? 다윗이 어마어마 한 고난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30살에 왕이 되어 40년 왕 노릇했다. 태평 성세가 기다리고 있다. 역사상 가장 태평 성세가 기다리고 있었고 솔로몬에게 이어졌다. 물론 삼상 16장, 기름 부음을 받고 헤브론, 통일 왕국에서 7년 반을 있었기에 37살이 넘지만 30살이라고 한 것은 우리의 고난이 짧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동안 모질게 10년 훈련을 받고, 23년 동안을 왔지만 인간은 누구도 예외 없이 죄성을 훈련 받아야 한다. 그래야 지도자가 된다. 다윗에게 훈련을 주셔서 지도자가 되었다. 환경이 이렇게 편한 가운데서는 웬만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품기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도 그렇다. 요압, 구속사를 모르기에 다윗 옆에 평생 있었지만 인격적인 사람, 다윗 밑에서 편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물론 사울 같은 지도자 밑이라고 좋은 부하가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울이 워낙 이상하기에 모진 가운데 다윗이 배출되었고 힘들게 하는 지도자가 불세출의 영웅 한 사람을 만든다. 인류의 예수님의 조상, 다윗을 만들었다. 목사님) 이런 내용을 보면서 좋은 지도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사역자를 잘 길러내는 담임 목사인가? 다윗 같은 지도자냐, 사울 같은 지도자냐? 훌륭한 사역자를 만들고 있는가? 건물, 예배가 없으니 성경 공부도 새벽 예배도 다른 교회에서 사역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목사님도 피아노 치며 인생이 힘들었고, 시집 살이(4시 기상, 시간 맞춰 밥하고 청소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런 훈련이 자신에게 필요했다. 훈련을 안 하게 되면 나중에 힘들어 지는 게 아닌가 싶다. 바울 자신이 당했던 환란을 이렇게 말했다. 고후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했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당해 거꾸로 뜨림을 당했고, 유대인에 잡혀 매를 맞고 너무 많이 맞아서 죽은 줄 알고 가져다 버림 받은 적도 있고 장사 지내려 할 때 살아났고 옥에도 갇히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야 할 때도 있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이 같은 환란을 사도 바울은 경한 것이라고 했다. 중한 영광을 알기 때문이다. 중한 영광을 알기에 환란과 비교가 안 되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믿었기 때문이다. 고후 4:17-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영광의 중한 것, 크고 영원한 영광, 왜 영광일까? 다윗은 왕이 되고 사울의 핍박과는 차원이 다른 환란이 찾아 왔다. 왕이 되고도 불륜을 저지르고 반역, 딸의 강간 당함, 두 아들의 반역과 죽음, 이 땅에서 다윗처럼 축복 받은 사람도 없지만 그런 다윗도 죽는 날까지 죄와 슬픔과 고통에서 피할 길이 없었다. 부러워할 사람이 없다. 그냥 나에게 오늘 주어주신 역할에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할까? 잘 살까? 생각하며 이게 목적이 되었을 때 그 일이 이루어 지는 순간 기뻐할 수 없다. 왕이 되었다고 누리는 것만 생각하면 죄에 대한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죄가 힘을 얻기 시작한다. 다윗, 자녀 고난이 오면서 하나님에 대해 점점 알아가는 기쁨이 생겼다. 아들이 반역하고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고통이 클수록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아가니까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셨다. 기쁨은 자기 악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하늘 나라의 기쁨을 주셨다. 무슨 의미인가?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는 기쁨을 알게 하신다. 그래서 다윗이 우리에게 영원한 롤 모델이 된다. 점점 강성해 진다. 놀랍게, 자기 아들이 다 속을 썩이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내 가족이라는 가족 개념이 생기면서 점점 강성하게 된 것이다. 내 자식, 남의 자식의 개념이 점점 넓어지니까, 온 이스라엘이 찾아와 왕이 되어 달라고 한다. 환란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게 되고 이런 다윗이 걸어갈수록 되는 일 밖에 없고 점점 강성해지고 커졌다. 강성해져 간다고 하면 우리는 돈 많고 집 짓고 자녀 잘 되는 것 생각하는 데 아니고 영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편만해지고 환란은 경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목사님) 13년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30년 더 영광된 삶을 살게 하셨다. 13년의 고난, 다윗도 많은 고난을 받은 것 같지만 사무엘상 전체를 언급했음에도 얼마 안 되는 세월이다. 목사님도 날마다 나누지만 성도들에게 말하지 않은 고난들이 있다. 70,80년 고생을 해도 짧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믿고 후손에게 영원히 남겨줄 것만 있다. Application)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고난, 환란은 경하고 장차 이루어질 영광은 중하다는 것을 믿는가?
3. 강성해 진다는 것은 형제가 하나 되기 위해서 객관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화, 부모, 형제 사이에 객관화가 이루어 지야 한다. 객관화는 지경이 넓어지고 점점 강성해지는 비결이다. 6절, 왕이 되고 처음 한 일이 수도 천도다. 사울과 다윗이 연관되지 않은 제3의 성읍지로 성읍을 옮겼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유다 지파 사람들이 모였고 다윗의 유다 지파는 헤브론에 성읍이 있었고 사울의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에 성읍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브론, 그 곳에 7년 6개월 동안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자기 성읍에서 성읍을 하자(수도를 정하자)고 할 것이기 때문에 다윗과 사울이 연관이 안 된, 지역 감정과 당파를 초월해서 제3의 성읍지로 성읍을 옮겼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감정과 당파를 초월해서 투표하기 바란다. 제3의 장소지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약속의 땅이고 물, 좋은 수원, 기온 샘이 있고 천연 요새고 온 이스라엘의 중심지였다. 두 지파가 자원해서 참여할 만한 좋은 곳을 선택해 내었다. 용의주도하게 다윗은 설득력 있는 정치를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다. 사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미 정복된 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창세기에 보면 가나안 일곱 족속(히위, 브리스 여부스 족속)을 물리치라고 했을 때, 여호수아가 다 물리쳤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 400년이 되도록 정복하지 못한 땅이 바로 여부스 족속의 예루살렘이다. 이 곳이 천연 요새, 깎아 지르는 듯한 지형이기에 아무도 못 올라가고 물이 있고 너무 좋은 곳이었지만 아무도 정복을 못했다. 다윗이 400년 만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되고 나서 저기를 도읍지로 정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자기 마음대로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약속하신 땅이었기 때문이다. 거기가 너무 좋지만 아무도 물리치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면 약속 믿고 가면 될 수가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취직이 그런 예다. 큐티 하며 적용하면서 갔는데 지나고 나면 이루어 진 일이 참 많다. 지나고 났을 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 많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자기 고향 사람, 땅의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면 바로 그곳이 아름다운 성지, 예수님이 오시는 예루살렘 성지가 되는 것을 믿자. 말도 못하는 상상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을 다윗이 적용했다. 공동체 의식이 있으니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를 주셨다. 욕심이 없으면 앞 날이 잘 보인다. 욕심이 많으면 지금은 잘 결정한 것 같지만 훗날 보면 다 결정 잘 못한 것이다. 욕심을 내려 놓고 하나님 음성대로, 말씀대로 가야 한다. 성경을 많이 읽고 역사를 알아야 적용이 풍성해 진다. 그래야 지금의 설교도 이해가 잘 된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읽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바란다. 이 전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쟁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믿고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바로 조롱을 당했다. 6절, 다윗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 것은 사람에 대하여 박사 학위를 딸 정도로 너무 힘든 사람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사단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항상 넘어지는 것이 용모 비하, 사소한 말이다. 여기에 여부스 산성, 어떤 것도 하나님이 외에 거짓된 산성인데 400년이나 누리고 왔다. 우리나라 재벌, 400년 재벌 없다. 여부스 족속이 그렇게 대단한 배경, 모습으로 산성이 되어 조롱할 때 위축해 질 수 밖에 없는 우리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재벌이 와서 조롱하면 얼마나 위축감이 들겠는가? 맹인과 저는 자라도 너보다는 나아 이런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전쟁을 시작한 건데 그래서 하나님이 급해서 7절, 너무 심하게 조롱하니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셨다. 시온 성을 다윗이 빼앗았다. 다윗이 이겼다. 시온 산성의 뜻에는 건조하고 마르고 아무리 잘 살고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너무 dry한 사람이 많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다윗에게 맥없이 무너진다. 건조하고 마른 사람이 involve 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대대로 예루살렘 성지가 되는 것이다. 조롱을 심하게 당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도리어 편한 환경이 오히려 문제다. 문제가 없는 것은 문제고 문제가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8~9절, 어떻게 빼앗았는지 설명한다. 다윗은 전쟁을 오래해서 지형과 특징을 샅샅이 알게 되었다. 사울 과의 전쟁이 도움이 되었다. 다윗은 여부스 족속의 수로를 발견했다. 하수도부터 올라가는 틈을 알고 강점인 수로를 통해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조롱하던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부터 치라고 했다. 6절, 먼저 조롱을 했기에 이것은 기름 부은 자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부터 처단했다. 이것이 다윗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태도는 아니다. 그 때나 이때나 사람들이 악해서 사람의 용모와 장애를 가지고 비하를 많이 했다. 목사님 어렸을 때는 더 심했다. 장애인에 대한 비하, 본능적인 악함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뒤집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1,000년 후, 마태복음 21장에 장애인들에 대한 비인격적 무시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영혼으로 바뀌기 까지 1,000년이 흐르고 지금 2천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못하다. 언뜻 언뜻 다윗도 아직 완전한 거룩의 가치관에 도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 사람들이, 맹인과 저는 자들이 비하했어도 왜 그들부터 쳤을까? 구속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인간적인 사람은 블레셋을 왜 잔인하게 죽이냐 하는데 블레셋, 이스라엘의 원수이고 사단을 대표하는 것이다. 믿는 사람의 원수다. 여부스, 사단을 대표하는 우두머리, 괴수고 400년을 정복하지 못했다. 여기를 쳐야만 되지만 인간적으로 칠 때도 다윗의 미워하는 바 맹인과 저는 자부터 쳐라 하는 것은 다윗이 아직 거룩의 가치관에 들어서지 못한 게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해 되는가? 기름 부은 자를 쳐야 하기에 쳤다. 장애인들을 비하 내용이 아니다. 9절, 다윗이 여부스를 쳐서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안으로 성을 둘러 쌓았다. 한 번 정복했지만 또 틈을 보이면 또 공격 당한다. 다윗이 성을 지키기 위해 굉장히 철저한 방비를 했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 우리들 교회에 발걸음을 한 영혼, 대단한 정복이고 그 누구도 교회에 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사단이 고꾸라져 온 건데 방비를 철저히 못하기에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가거나 가족을 떠나게 된다. 안으로 성을 둘러 쌓아야 하는데 우리가 빈틈이 있어 다 흘려 보낸다. 우리가 다 성으로 안 둘러 쌓기를 하자. 오신 분들에게 돌봄과 배려가 지나치지 않고 부족하지 않게 성을 잘 쌓기 바란다. 우리가 약하여 너무 어렵다. 주님께서 피가 되고 살이 되라고 주신 말이다. 우리가 노력하는 그 마음을 주님은 보신다. 내가 영혼에 대해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는지, 잃은 양 찾기를 생각해 보자. 내가 상처 준 사람은 없는가? 건강한 양보다도 힘들고 어렵고 낙심한 양을 찾아가는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내가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간다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이 오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아 주신다. 기도하고 잃은 양 찾자. Application) 형제가 하나가 되기 위해 객관적이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의 기득권을 내려 놓고 욕심을 내려놓고 치우치지 않으며 객관적이 된 적이 있는지 나눠보자. 얼마나 부모와 배우자,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는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건강한 시각을 갖지 못하고 내 부모, 내 배우자, 내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면 그냥 내 부모, 내 자녀, 내 남편 하면 평생 지경이 넓어지지 못하고 걸을수록 커지지 못할 것이다.
4.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에 점점 강성하여 간다. 10절, 삼하 3:1, 다윗이 강성해 간이유는 사울의 인본주의를 지금 폐하시기 위해서 비교하신 것이다. 삼상 16장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17장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왕이 되면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얼마나 여자 얻어 들이고, 블레셋으로 도망갔어도, 약하고 기쁠 때에도 동행하셨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내가 힘들 때, 다른 데로 갈 때도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이시다. 하나님, 다윗과 친해서 동행하신다. 왜냐하면 대상 11장 4~9절, 6절, 여부스를 친 우두머리는 요압 이었다. 요압이 우두머리이지만 사무엘하에서는 뺐다. 요압은 하나님 나라에 합하지 않기에 자기가 쳤지만 다윗에게 상을 돌릴 수 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에 합하지 않는 사람은 일생 열심히 살아도 욕심과 야망으로 했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모른다 하신다. 욕심으로, 야망으로 했기에 강성할 수 없다. 실컷 회사에서 일 다했는데 전무가 과장이 내 일을 가로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한 나를 기억하신다. 그 분은 지금 잘 될지 몰라도 나중에 생명책에 들어가지 못한다. 성경을 보면 모든 답이 있다. 사울, 15 광야를 지나며 사람을 연구한 다윗은 지략이 뛰어날 수 밖에 없다. 다윗은 날마다 자기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니기에 앞날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하셨다. 400년이 지나도 정복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도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남은 싸움이었다. 400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남은 싸움을 다윗이 효과적으로 잘 수행했다. 목사님 sharing) 여자 목사의 목회, 힘든 여건에서 교회를 지은 것, 400년간 정복 못한 예루살렘이다. 여성 목회는 400년이 아니고 반 만년 만에 넘어서는 불모지 같다. 맹인과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남자는 겉으로 무시, 여자는 속으로 무시한다. 유교적인 영향이 너무 힘들다. 유다 땅의 헤브론도 아니고 베냐민의 기브아도 아닌 난공불락의 곳에서 교회를 지으려고 했다. 판교는 진짜 땅이 별 모양이다. 얼마나 짓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직사각형이면 굉장히 평수가 더 나왔을 것이다. 바위도 경암 이라 파기 어려웠다. 주위에 전철도 없고 대중교통 부족, 음식점 부족, 아파트가 하나도 없는 아파트촌이다. 휘문 채플, 냉난방 안 되고 매주 세팅 해체, 목회하기 난공불락의 성,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맹인처럼 여겨지는 여자 목사가 강남과 판교에서 교회를 짓고 목회하게 하셨다. 바위에 지었으니 반석 위에 세운 집이다. 물이 나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집이다. 상처가 별이 되어 비추는 교회, 별처럼 빛나는 교회가 되게 하셔서 모두가 보이는 곳에 자리잡게 하셨다. 여기에 무슨 남자와 여자가 있겠는가? 400년 미정복지, 난공불락 예루살렘 성 정복이 이게 아닌가 싶다. 다윗에게 오랜 훈련이 있었고 말씀 적용하며 한 걸음 한 걸음 하며 가니까 이렇게 강성하게 하신다.나는 앞날을 몰랐지만 적용하니까 이렇게 인도해 주셨다. Application) 내가 하는 일마다 만군의 하나님이 계셔서 강성하여 져서 커진 경험이 있는가? 일생 열심히 살았는데 나중에 요압처럼 내가 너를 모르노라, 나의 열심과 야망이 하늘을 찌르지만 굉장히 내 놓을 것이 많지만 내가 너를 모른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Summary) 점점 강성해 가는 것은 형제 의식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처리하고 환란은 경하고 영광은 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만군의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My sharing) 1. 환란에 대한 바울의 고백: 고후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7-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말씀을 듣고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면서 환란에 대한 나의 자세를 생각해 본다. 나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복과 인정을 받기 좋아하고 환란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다. Irony한 것은 머리로는 환란이 위장된 하나님의 축복임을 안다는 것이다. 환란이 축복임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조그만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죠?? 라며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는 나, 그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을 보며 비교하고 열등감에 빠지고 깊은 자기 비하와 자기 연민에 빠지는 나, 이런 어린 아이 같은 나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호진아~ 한 번 넘어보자, 하나님과 함께~ 마치 허들 선수와 코치가 허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에 하나씩 하나씩 coaching해 주실 것을 믿고 나가자. 그 믿음으로 간다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내 앞의 환란들이 경하게 느껴지고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이 중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앞으로 상담 공부하고 상담 일을 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결코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니 내려놓자. 마치 풍선을 제대로 다시 불려고 할 때, 풍선의 바람을 다 빼고 나서 있는 힘 다해 호흡을 풍선에 불어넣는 것처럼, 내 인생의 풍선의 “나” 라는 바람을 조금씩 빼고 큐티와 적용으로 “하나님”이라는 바람을 불어넣어 보자!! 호진이, 화이링!!^^**
2. Application) 형제가 하나가 되기 위해 객관적이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의 기득권을 내려 놓고 욕심을 내려놓고 치우치지 않으며 객관적이 된 적이 있는지 나눠보자. 얼마나 부모와 배우자,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는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건강한 시각을 갖지 못하고 내 부모, 내 배우자, 내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그냥 내 부모, 내 자녀, 내 남편 하면 평생 지경이 넓어지지 못하고 걸을수록 커지지 못할 것이다. : 이 적용은 나에게 도전이 된다. 왜냐하면 여전히 나의 죄악과 수치와 씨름하며 주실 복만 기대하는 나의 믿음의 지경이 넓어질 수 있는 적용이기 때문이다. 내 믿음 언제 넓어지고 커지나? 고민했는데 이 application point을 나에게 적용해보자. 내가 만나는 사람들 (가족, 목장 식구들, 상담 class 사람들, 친구들, 대학원에서 만날 사람들) 앞에서 나의 기득권과 내 욕심을 내려놓고 객관적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3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1)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먼저 잘 듣는 것이다. 2) 들으며 이해하고 공감해보자. 왜 저렇게 하지 하며 판단하거나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며 답을 제시해 주려고 하지 말자. 나눔을 들으며 마음이 어땠을까? 기분이 어땠을까?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악하고 음란하고 이기적인 내가 절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자. 3. 해야 할 적절한 말만 하자. 비유도 간단하게 하자. 같은 이야기 나도 들으면 짜증나고 싫은데 아프고 힘든 사람이면 더 그러지 않을까? 입 다물자. 대신 지갑을 열자(아껴야 하는데ㅜ) 4) 기도하자. 진정한 counselor는 하나님이시므로(사9:6)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삶에 개입하셔서 치료하시도록 나는 자리를 내어드리자. 슬램 덩크 강백호의 말(lay up shot할 때 왼손은 거들 뿐!!)을 인용하면, 하나님이 오른손으로(물론 왼손 쓰실수도 있지만ㅋ) 치료하실 때, 난 왼손으로 묵묵히 거들뿐 임을 항상 기억하자.
목장나눔)
이번 주일은 울 목장 현성이 형 세례 받은 날!! 영적인 귀떼기(?) 빠진 날!!ㅋ 형, 완전 축하해용~아래는 축하 기념 스샷 시리즈~~ 짧은 나눔은 스샷 뒤에 이어집니당ㅎㅎㅎ 우리 현성이 형, 영적 아기에서 멋진 영적 청년 되도록, 목보 보시는 분들~~ 기도해 주실꺼죠??^^;

두둥두둥!! 현성이 형, 드뎌 세례 받다!!^^
공리에서 celebration party!!^^**
이어지는 간단한 나눔…
경태: 시험 준비하면서 우선순위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 회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일 예배만 드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 예배 드리고 싶은데 가게 되면 학원이 5시 반에 끝나고 1시간 사이에 가야 될 것 같다.
철주: 경태야, 이번 수요 예배(6/4) 시간 맞으면 같이 드리자.
요한: 방송대 시험 기간이 다가와서 공부할 예정이다. 방통대 시험은 주일마다 있다. 오전 11시반~ 7시 사이다. 총 7과목, 첫 주는 대체 시험, 2주와 3주차는 기말 고사, 논문 제출, 학기 마무리 순이다. 일은 지금 마무리 단계에 있다. 공부하면서 옮기게 될 것 같다. 그 사이에 일에 대한 요청이 올 것 같다.
요한: 오늘 말씀에서 객관화는 형제 안에서의 하나라고 하셨다. 형제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주제로 우리 목장은 각자 의견을 나눴습니당ㅋ)
지환: 하나가 되기 위해서 내가 욕심을 버리고 서로 맞춰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한: 방송대 공부(문화교양학과 4학년) 외에 나의 신앙의 위치,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싶다. 하나님이 나한테 비춰 주시면 영성과 지식으로 깨닫는 게 있다. 지식을 쌓고 싶다. 가장 큰 관심사는 우리들 교회의 신앙관이다. 궁금한 게 많다. 하나 하나 책도 읽고 연관 되어 지식을 넓히고 싶다.
철주: 객관화는 치우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교회에서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은 나의 죄를 보는 것이고 그건 나의 객관화다.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진성아, 어떻게 지냈어?
진성: 일하는 곳에서 상대하는 분들이 고된 노동을 오래 하신 분들이다. 그 분야에서는 경력이 있으시지만 그런 경험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요청하는 사항, 예를 들면 하청 업체 통해 보수 받는 것, 9시 출근 엄수가 지켜지지 않는 것이 있다. 예전에 돈을 못 받는 것에 연결되어 봐 준 적이 있다. 똑같은 시간을 투자해서 일을 하고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어르신이라 잘 해드리려 하지만 “너희가 해 봤어” 하면 우리는 “돈을 드리잖아요” 한다. 작업자 1분이 있는데 상습적으로 늦게 오는 분이다. 몰래 들여 주다가 다른 작업자 신고로 그 분이 현장에 못 들어오게 되었다. 급여와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대화할 일이 많이 있었다. 잘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안 그런 분들이 대부분이다. 잘해주시는 분들은 잘 챙겨주고 싶다.
철주: 결국 원칙이나 융통성이냐 문제인 것 같다. 내 한계를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에서 시작되면 끝이 없다. 수준 높은 사람은 거기서 빨리 돌이킨다. 저는 사람들과 맹인들을 쳤다는 것, 사실 현장에 가면 말씀이고 큐티고 다 잊어버린다. 나도 회사에서 부장님과 싸울 때 보면 내가 문제가 있구나 느꼈다.
진성: 현장 들어가기 전과 후가 달라진다. 석면 가루 냄새를 맡으면서 마인드가 달라지게 된다.
철주: 결국에는 융통성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기본적인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세면 가루 맡으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부분은 끊임 없이 훈련 되어져야 할 부분 같다. 그런 환경에서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죄인임을 보며 깨닫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나도 큐티가 잘 안 되는 날은 실수를 잘 한다. 내가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하게 된다.
말씀에 대해 궁금증을 함께 풀어보고 삶의 사건들을 나누는 형제들, 참 귀하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데로, 남들이 다 하는 데로 하고 싶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성경적인 가치관과 태도를 고민하는 모습이 참 좋네요. 부목자인 저는 이런 형제들 나눔을 잘 들어야겠네요. 가르치는 자보다 듣는 자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용^^ 우리 목장 식구들, 남은 한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What would JESUS do? “ 라는 질문을 던지며 담대하고 지혜롭게 행동하길 바래요. 마치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해서 행동을 바로 했던 것처럼요!!ㅋ 모두 화이링, 현성이 형^^ 다시 한번 축하해요!!^^
기도제목)
요한: 내 삶을 주관하시고 나를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 보시는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고 그 품 안에서 생활하도록
진태: 1. 양육 2주 남았는데 잘 마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시도록
2. 프로젝트 진행 과정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힘든데 잘 감당하도록
3. 양육 마치고 부서 섬길 예정인데
현성: 1. 마음이 잘 잡힐 수 있도록
2. 안 내려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살게 된다. 이런 부분들이 고쳐 지도록
경태: 1. 주님과의 관계 회복
2. 순종할 수 있도록
3. 한 마음이 되도록
철주: 1. 목장의 형제 의식이 편만해질 수 있도록
2. 생활 예배 잘 지킬 수 있도록
3.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호진: 1. 날마다 큐티 하는 남자 되도록
2. 9월 개강 전까지 예비 대학원생 mode 잘 적응 하도록(TOEFL, Listening, 상담 수업 과제 마무리, 운동)
3. 어머니와 새벽 예배 일주일 동안 잘 드리도록(어머니 교회 방문)
4. 아버지와 형을 객관화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5. 아버지와 형의 구원을 목적으로 애통함으로 기도하고 섬기도록
지환: 1. 부부목장 잘 섬기도록
2. 회사 매출 고난, 내 생각대로 아닌 하나님께 물으며 이겨내도록
3. 아내 건강 지켜주시고 어머니 인도네시아 아웃리치 잘 다녀오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