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20131020 김성연 목장 보고서★
목장 참석 : 김성연(83), 노나라(84), 김지영(85), 류지혜(85), 김진실(85)
<< 말씀 요약 >>
말씀: 사무엘상 21장 1-15절
제목: 집으로
세상 일은 참 모른다. 어떤 자매가 목사님이 떠나야하는데도 불가리아에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왔다. 엄마아빠가 이혼할 때는 뭔지도 모르고 찬성했는데, 말씀을 듣고 나니 이제야 이게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고 한다. 믿음 있는 남편과 결혼은 했는데, 말씀이 하나도 안들리고 분노조절이 안되서 때려부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교회에서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나 두려운 상황인가,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홀로 서서 너무도 말씀을 사모한다. 곳곳에 두려움의 일들이 너무도 많다. 두려움의 종류는 너무도 다른데, 오늘의 주제인 집으로는 영혼의 집, 육신의 집 등을 이야기 한다. 오늘 말씀으로 모든 것들이 집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말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두려움’이라고 한다. 우리는 천국 마지막 앞에서도 두려움이 있을 수가 있다. 성경에서 두려움은 365번이 나온다. 날마다 두려운 것이다. 두려움은 피할수 없는 성도의 연약이라고 생각된다. 다윗의 이름이 심하게 귀하게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사울의 시기질투를 받아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지혜로운 길을 찾고 찾아 떠났는데 오늘 보니 광야에 내동댕이 쳐졌다. 요나단과 미갈도 없는 광야에 있게 된거다. 이제까지의 모습을 모두 버리고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길 이었다. 하나님은 이제 다윗이 홀로 서기를 바란다. 앞으로 15개의 광야 이야기가 나오는데, 집으로 가는 여정 중의 광야이다. 오늘은 하나님이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하지 않아주시는 것 같은데 이 때에 두려움이 압도당해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는 다윗이 나온다. 그 두려움을 우리도 똑같이 당할 것이기에 두려움의 문제를 같이 살펴보길 바란다.
1.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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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79;1절.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2절.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다윗은 갈 곳이 없었지만 라마 나욧 공동체에 가서 살아났던 것을 생각하며 아히멜렉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갔다. 골리앗의 칼이 그곳에 있었기에 다윗이 용사임을 아히멜렉은 알고 있을 것이고 친분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묻고자 해서 갔는데 아히멜렉은 벌써 다윗이 초췌한 것을 알아보고 떨면서 ‘왜 혼자왔냐’ 물어보고 있다. 그러자 다윗은 아히멜렉이 자신을 사울에게 고발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비밀 지령을 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거짓말의 결과로 나중에 제사장 85명이 사울에 의해 죽는다. 다윗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들키더라도 자신이 거짓말 한 것이니 자신만 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히멜렉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한 것이다. 다윗은 부지 중에 참혹한 살인을 하게 된 것이다.
다윗은 ‘사울이 적어도 제사장은 죽이지 않을거야’라고 오산을 하고 있다. 사울은 믿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다윗은 계속 사울을 믿고 싶어한다. 끝까지 다윗은 사울을 믿어보려고 한다. 사람은 당해봐야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인생 앞에 골리앗이 버티고 있는데도 두려움이 하나도 없었던 다윗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다윗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오래되면 상황에 끌려가 두려움에 넘어가게 된다. 기대도 미움도 없어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두려움은 딤후 1:7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죄의 결과이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 아니다. 두려움은 죄에서부터 비롯된다. 로마서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의, 평강, 희락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고 옳고 그른 정죄감, 죄책감 때문에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럴 때를 위해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부지중에 살인한 자는 도피성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책임 져 주신다.
두려움으로 거짓말을 한 경우가 있는가? 내가 골리앗을 물리친 경험은 무엇인가? 두려움에 쌓여 있을 때에 치면 툭 튀어나오는 것이 거짓말이다. 처음에는 죄의식도 없다가 말씀을 듣고 가니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부지 중에 거짓말을 하고 손해를 끼치게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피성으로 나가길 바란다. 하나님은 각자의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신다.
2. 배고픔의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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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절.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절.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절.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65279;다윗이 거짓말을 한 후에 제사장에게 떡 다섯덩이를 주라고 한다. 정말 급할 때는 하나님이 떡을 주신다. 다윗 역시 원래는 먹어서는 안되는 제사장이 먹는 떡을 받았다. 이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긍휼히 여겨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을 준 것이다. 이 때에 조건이 있었다. 삼일동안 여자를 멀리한 것, 즉 성결한 사람을 이야기한다. 매일 움직이는 것, 이것이 거룩한 가치관이다.
아히멜렉은 해야 할 일을 어기고 다윗에게 제사장들만 먹는 떡을 주었지만 이 일로 인해 징벌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다. (마태복음 12장 3,4절) 말씀 한구절 한구절을 따지며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율법의 완성임을 알아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생명과는 바꿀 수가 없다. 사상, 이념, 법, 종교보다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 생명을 담보로는 그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된다. 그러니 오늘 이 시간에 오기로 마음 먹은 것 만으로도 하나님은 우리의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는다. 하나님은 거룩한 그 떡까지도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
내가 배고팠던 적이 있는가? 주님이 떡을 주실 것을 믿고 바라고 있는가?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을 주님이 생명의 떡임을 아는 것이다.
3. 칼과 무기의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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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다윗이 광야 길을 가는 가장 그 중간에 사울의 부하가 딱 버티고 있다. 사단은 언제나 나를 감시하고 하나님께 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사울은 껌딱지처럼 붙어다닌다. 다윗이 거짓말을 하고, 진설병을 먹은 것 들이 수월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수월하게 넘어가지 않는데, 그것이 축복임을 믿길 바란다.
8절.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절.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를 생각하며 칼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사울이 달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이 칼을 달라고 했어도 결정적으로 실수한 사람은 제사장이었다. 한번 바쳐진 칼이었기에 돌려줘서는 안됐었다. 교회가 잘못 도와주려고 하다가 다 망하게 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다윗의 두려움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아무리 다윗이 섭섭해 해도 칼을 줘서는 안됐다. 그것이 사랑의 처방이었다. 제사장이 칼만 주지 않았어도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윗이 칼을 쥔 것은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나라를 가져갈까봐 두려워 떨고 있기에 다윗을 역모로 죽이고자 하는 상황에서 다윗에게 골리앗의 칼을 준 것이다. 사울의 부하인 도엑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다윗이 역모를 꾀한다고 생각할만한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제사장은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다가 참상을 겪었다. 열린 마음 때문에 망했다. 아무 때나 열린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열린 마음이 아니라 복음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제사장을 의지하고자 갔을 때 제사장이 도와줌으로써 제사장 가족이 모두 죽었다. 다윗은 다윗대로 이 사건으로 인해 방랑자 생활을 10년이나 하게 되었다. 목장에서도 한마다 한마디에 실수가 없도록 해야한다. 아픈 처방이라 할지라도 후에는 알리라는 것을 알고 들어야 한다.
다윗은 거짓말을 하고 먹지 않아야 할 떡을 먹고 골리앗의 칼까지 쥐었다. 자기 방법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광야 길에서 이겨보고자 하지만 그렇게 사울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말씀의 검으로만 이길 수 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말씀 묵상의 힘이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이 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 욕하고 불평해도 예배를 사수하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돌아갈 줄로 믿는다. 말씀의 검으로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예배만이 살 길이다.
4. 두려움은 결정적인 판단의 실수를 가져온다.
10절.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도엑을 보고 다윗이 무서워 도망간 곳이 골리앗의 고향 가드이다. ‘사울의 원수가 블레셋과 나이니 내가 블레셋에 피난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두려움에 쌓여있을 때는 결정하면 안된다.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11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사울을 피해 아기스에게로 갔더니 가드 사람들은 다윗을 알아본다. 예수 믿는 사람은 숨을 곳이 없다. 두려움의 문제는 사람에게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시편에서는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다.
12절.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두려움은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더 두려운 결정을 하게 만든다. 두려움을 자신의 방법으로 피하려고 했더니 더 두려운 상황이 온다.
13절.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절.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절.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가드왕 앞에서 광대가 되어서 미친척을 하게되었다. 가드왕에게 살려달라고 간 것인데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 두려움은 결국 수치를 당하게 한다. 너무도 비굴하게 미친척을 하는 다윗이 되어 살아나게 된다. 다윗이 두려움에 압도되어서 실수가 이어지고 있다.
이후에도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살인죄를 지었고, 인구조사를 하며 교만의 죄를 지었다. 그러나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나야 한다. 악인은 한번 넘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유다와 같이 자살을 하고 사울과 같이 회개에 이르지 못한다. 칠전팔기가 의인이다. 넘어졌지만 또 다시 일어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의 반열에 끼워주실 줄 믿는다.
5.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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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4편 4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신다고 한다. 그 응답이 사울의 위험이 없어지게 하시고 악인이 없어지게 하고 블레셋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시는 것이라고 하신다. 먼저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것은 두려움에서이다.
다윗은 일평생 두려움에서 떨었다. 형들의 질투와 아버지의 무시, 사울왕의 위협, 광야길에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끊임없는 두려움에서 떨었다. 그 모든 두려움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셨다. 마귀는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삶을 포기하도록 유혹한다. 두려움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아기스왕이 속을 수 있었겠나.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정말 두려울 때는 기다려야한다. 평강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분노를 조절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다윗이 천성의 집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했다. 어제까지는 너무도 멋졌던 다윗이었는데, 승승장구하던 다윗이었는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는데 오늘 혼자되고나니 거짓말을 하고, 배고파서 안먹을 떡을 먹게 되고, 칼을 취하고, 판단력의 상실로 가지 않아야 하는 곳을 가고, 미친척을 하면서 살아남겠다고 대문을 손톱으로 그적거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나. 내가 사랑하는 다윗인데 살기위해 미친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속상하셨겠나.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도피성이 되어주시고 생명의 떡이 되어주시고 말씀의 검으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으로 다윗을 한 걸음씩 데리고 가시는 것을 본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주님에게 돌아오기만 하면,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나면 주님의 나라의 일원이 될 줄로 믿는다. 예수님의 조상 다윗이 이런 기가막힌 모델로 걸어왔다는 것 때문에 위로가 되고 체휼이 되고 고난에 동참하는 일주일이었다. 내 삶의 항해의 끝이 예수님이 되기 위하여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고난을 허락하신 줄 믿는다.
항해자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소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 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에 항해의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내 삶의 항해에 방향을 잡아주시옵소서
<< 기도 제목 >>
★ 김성연(83) ★
생활예배의 회복, 말씀 잘 붙들고 사는 한 주 되기를
툭하면 나오는 거짓말 하지 않고 솔직하게 감정 잘 전달 할 수 있기를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전할 수 있길
★ 노나라(84) ★
11월의 강의 계획과 돈에 대한 두려움 모두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길
대학원 진학 관련하여 말씀으로 깨어 분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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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85) ★
직장에서 마지막 날 까지 열심히 일하며 예배의 자리 지길 수 있기를
퇴사 이후의 발검음도 말씀에 근거해 이끌림 받을 수 있기를
고모 돌아가셔서 힘든 아빠의 마음 잘 만져주시고, 아빠가 구원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되길
★ 류지혜(85) ★
직장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적용할 수 있길
예배와 말씀의 회복, QT와 기도 등 일상의 예배가 회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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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실(85) ★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지도록
매일 큐티하면서 말씀으로 사는 한 주 되도록#65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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