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20말씀요약]
“집으로” (삼상 21:1~15)
영혼의 집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
정신, 육신의 집 : 정신적 가족, 부부가 하나되는 것. 흩어져있던 가족(사람)들이 돌아가야 할 공동체
집으로 돌아오는 것에 걸림돌 되는 것은 ‘두려움’. 두려움에는 육신적, 정신적, 영적인 두려움이 있고, 성경에 두려움이란 단어가 365번 나오는것 처럼 매일 끊임없는 두려움을 겪는다. 두려움은 피할 수 없는 성도의 연약함.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지혜로이 행하여 심히 귀한 사람이 되었으나, 이로 인해 사울의 시기, 질투를 얻어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도망자 여정에서도 좋은 길을 찾고 찾아 떠나려 했으나, 결국 광야로 내동댕이쳐진다. 요나단도, 미갈도 없는 광야 길에서 다윗은 다시 천성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겪는다.
광야는 다윗의 선택이 아니었다. 사울의 위협속에 험악한 인생을 살아가는 다윗. 그런데 광야여정에서
두려움에 압도당한 다윗이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기 시작한다. 두려움에 압도당한 다윗이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첫째. 거짓말을 했다.
도망길 중에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간 다윗. 제사 장소에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싶었을 것. 그런데, 아히멜렉이 초췌한 모습의 다윗을 알아보았다. 아히멜렉이 자기를 고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히멜렉에게 왕의 비밀지령을 받아 움직이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2절)
거짓말의 결과로 나중에 다윗의 거짓으로 말미암아 제사장 85명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한다. (다윗은 부지중에 살인하게 된 셈. 그러나 이는 엘리가문에 임한 하나님의 예언의 실현이기도 했다.)
아마 다윗은 적어도 사울이 제사장들을 해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꿔말하면 끝까지 사울을 믿고 싶었던 것. 그런데 나중에 사울이 제사장들을 해한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란걸 다시 보게 된다.)
다윗이 두려움이 없을 때는 무시무시한 골리앗도 물리쳤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오래 겪으니 넘어져서 두려움에 끌려다니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며, 철저한 죄의 결과.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음. 주님은 우리의 도피성. 우리가 부지중에 살인했을지라도 주님은 나를 받아주실 것.
적용 : 두려움으로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는지?
둘째. 배고픔으로 성물(떡)을 먹음
절박한 가운데 배고픈 다윗이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진설병)을 받게 되었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긍휼히 여겨 진설병을 다윗에게 주었다. 나중에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행위를 칭찬하셨다. 하나님은 제사보다는 자비를 원하심. 사랑을 행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도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오려고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은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거룩한 상에서 물린 떡까지도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주님이 도피성이고, 생명의 떡이시다.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생명이시다.
적용 : 내가 배고팠던 적이 있나? 그리고 지금 배고픈지? 주님을 의지하면 먹여주실 것을 믿는지?
셋째. 칼을 의지함
다윗이 거짓말을 하고, 먹어서는 안될 떡을 먹었는데, 덮친격으로 경고의 징조가 계속 나옴. (때마침 사울의 신하 에돔사람 ‘도엑’이 제사장과 머물고 있었음.) 다윗은 여전히 거짓말을 하면서 성전에 있는 골리앗의 칼을 달라고 하였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돕는 마음으로) 칼을 내어준다. 그런데, 잘못 도우려고 하면 다 망하게하는 수가 있다. 사랑의 적용은 원칙에 맞지 않는 부탁을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제사장이 다윗에게 칼을 내어준 것은 잘못된 일.
사울에게는 ‘골리앗'이 트라우마. 그런데 다윗이 물리친 골리앗의 칼은 다윗에게 상징적인 물건. 그렇기 때문에 그 칼이 사울을 자극할 좋은 빌미가 된다. 결과적으로 온가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당한다.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칼을 안주는게 섭섭할 수 있으나, 올바른 도움(처방)이 아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은 방랑자 생활을 10년동안 하게 된다. (목장에서도 사랑을 담아서 하는 처방이 쓴 처방일 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가기위해 칼(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의 검"이 필요하다. 순간 순간의 결정은 ‘말씀의 검'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말씀이 쌓여 순간적인 판단을 내릴 때의 힘이 된다. ‘올바른 결정하게 도와주세요’ 하고 한마디만 기도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 말씀의 검이 두려움을 이겨낸다. 말씀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한다.
넷째. 두려움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짐
원수의 나라(가드)로 피한 다윗. 가드는 사울의 철천지 원수 골리앗의 고향. 다윗은 사울과 반대되는 곳에 들어가 손 잡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예 : 우리나라에서 괴로움을 받는다고 적국인 북한과 손잡는 꼴)
그런데,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의 명성을 알고 있었고, 가드에 온 다윗을 알아보았다. 다윗은 두려움으로 인해 판단력이 마비되었고, 두려운 상황을 피하려고 급기야 미친척을 하게 된다. 다윗이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로 시작해서 계속 금기를 어기다가 판단력마저 흐려졌다. 두려움은 수치를 당하게 한다.
그러나 의인은 칠전 팔기. 반대로 악인은 거기서 끝이다. 일어나는 것이 의인. 우리가 일어나면 하나님이 의인의 반열에 끼워주실 것.
다섯째. 하나님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건지심
시편 34:4 다윗의 노래 중,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하나님은 응답 하시는데, 그 모든 두려움의 원인을 없애시진 않는다. 먼저 두려움을 없애신다. 다윗은 모든 무시와 위협을 당해봤다. 먹을 것, 질병의 두려움도 겪어보았다. (마귀는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삶을 포기하도록 꾄다.) 그런데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하나님 은혜가 아니었다면 다윗이 아기스왕 앞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가 없다. 인생 중에 종류별로 두려움이 많은데, 두려움이 왔을 때 기다리고 평강함이 있을 때까지 결정을 미뤄야 한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직장, 자존심, 병, 혈기 등에서 오는 무시에서 벗어나 (영혼의) 집으로 돌아가자.
[기도제목]
상 : 진로에 대한 인도 받을 수 있도록 / 비염치료 잘 받을 수 있도록 / 신교제 인도해 주시길
호 : 항상 주님께 묻고가며 믿음에 온전히 서도록 / 새로온 소년부 아이가 수줍음, 대인기피가 심한데, 기도하며 공동체 안으로 잘 이끌 수 있는 지혜 주시도록 / 주님 안에서 절제하는 생활 / 말씀과 큐티로 준비된 배우자 되기
우 : 학교, 가족, 교회 등 맡은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지혜 주시길 / 역할갈등 생겼을 때 혈기내지 말고 슬기롭게 처신하길 / 건강 책임져 주시길
원 : 양육교사 훈련 잘 받기(주중에 훈련받다보니 시간이 틀어지면 훈련받기가 어려움) / 일과 훈련을 같이 받다보니 몸이 피곤한데, 건강 책임져 주시길.
욱 : 한주동안 주님께 순종하는 삶 살기 / 신교제 인도해주시길
환 : 양육교사 훈련 잘 받기 /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있는데, 큐티생활 잘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일상 잘 인도받을 수 있도록
준 : 일대일 양육 훈련 잘받기 / 내게 주시는 훈련분량 잘 감당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