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지도자를 세우고 일꾼을 세우고 예수를 믿게 하는데는 긴장이 따른다. 백성이 원하는 왕을 세우고 하나님이 세우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새왕을 세우시는가? 어떻게 세워지는가?
1. 세상왕을 향한 슬픔이 있어야 한다.
(세상왕을 세운 것에 대한 슬픔)
슬픔을 느껴야 영적 침체에서 일어날 수 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성품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지도자가 될 수도, 세울 수도 없다.
1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의 슬픔은 사울을 위한 슬픔이었다. 죄의식이 들면 사람은 올바른 행동을 하고 싶어지는데 사울에게는 예배였다. 회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5장 마지막절) 사울은 예배밖에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인본주의가 속에 가득했고 백성이 자기를 세웠다고 생각해서 사람을 두려워했다. 그러니 인생이 힘듦. 끝까지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 = 사람을 의식한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말아야 사람을 분별할 수 있다. 사람에게 잘 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 안에서 잘 지내야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개인적으로 아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슬픔이기도 한다. 역대하 22장) 아달랴 -> 왕의 씨를 진멸하고자 했다. 예수님이 올 집안이었다. 예수씨를 진멸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적용)
문제가 일어나면 잠잠이 기다리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야 하는데, 예수씨를 진멸하려고 한다. 세상왕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한다. 사무엘 = 아들들 뇌물을 받고 판결을 받게 하고, 사사를 그만 두라고했다. 그런데 순종했다. 사울 왕도 실패했다. 말씀만 붙잡고 살았는데 된 일이 없는 것 같다. 예수 평생 믿고 이런 일이 올 수도 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닌 거룩인 것을 뼛속 깊이 깨달아야 한다. 사무엘의 슬픔과 아달랴의 슬픔은 종류가 다르다. 사무엘=교회와 나라를 위한 이타적인 슬픔. 구원을 위한 슬픔. 슬픔=심하게 괴로워 했다는 뜻이 있다.
적용) 우리는 어떤 때 슬퍼하는가? 다른 사람의 죄악 때문에 슬퍼하는가? 다른 사람들 때문에 죽을 것 처럼 슬퍼하는 것을 해보았는가?
사무엘의 슬픔은 이타적인지 알고 찾아오셨다. 이런 슬픔을 느낄 때 새로운 시작을 주신다. 사명을 주셨다. 베들레헴에 가서 새 왕을 세우라는 사명을 주셨다. 베들레헴->이름없는 초라한 동네. 다윗을 통하여서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는데 초라한 동네로 가라고 한다. 사무엘은 한 번 일어나면 초라하든 말든 하나님의 말을 듣는다. 라아 ='준비하다' 9번이나 쓰였다. 하나님이 기뻐서 보시고 만세 전부터 택하셨다는 뜻이다. '너 울고 있니? 내가 준비한 왕이 있다'.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택하고 계신다. 내 감정에 메여서 하나님의 일을 지연시키고 있는가? 가짜 슬픔으로 이기적으로 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라면 속히 일어나야 한다.
2. 목숨을 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라면
2-3절)
2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말씀이 안들리면 말씀이 들리게 하는 사람을 원수처럼 여긴다. 사울은 사무엘과 이미 원수 사이이다. 말씀이 안들리면 그렇다.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죽이려고 한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을 세우고 지도를 했다. 근데 그때 마다 왜 제사드리냐고 하니까 평생 섭섭했다고 한다. 말을 들어준 것이 없으니까. 세워줬는데도 자기 말을 안들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편한 사람이 아니다. 사울이 두렵다. 왕이라는 지위가 주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는가? 왕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왕들이 바른소리를 하면 때리고 죽였다. 죽는날 까지 안본다고 하는데 그게 사랑인지 모르니 앙심을 품는 것이다. 목숨을 거는 것이다 사무엘은 (왕 세우는 것). 나아갈 길을 주신다. 하나님의 일이다. 항상 내일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쉽고 마음이 편하다. 내가 하려니까 힘들고 지옥을 사울처럼 사는 것이다. 다윗 기름 부으러 간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지혜로운 방법을 알려주셨다. 항상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어떤 것으로 괴로워하시는 지 아신다. 새왕을 세우기 위해 내가 찾아가야 할 이새가 누군가? 내가 미리 계획해야하는 것도 있고 일촉즉발로 달라져서 그때 그때 바꿔야도 하고, 한걸음씩 인도 받아야 한다. 내가 할 일을 하나님이 가르친다고 하신다. 인본주의로 나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3. 새 왕을 세우리라. 새 왕은 평강과 거룩으로 세우리라.
4-5절)
4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교만한 사람에게는 말씀을 주시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말씀을 주신다. 사무엘도 알지 못하는 길을 말씀에 응답해서 가는 것이다. 장로들이 사무엘을 보고 떨었다고 한다. 물러가라고 했다. 그랬는데 그런 왕이 평강을 가져다 주지 않고 여전히 외세가 침략하고 사울도 강압을 하니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아서 사무엘을 보니 떨렸다. 말씀보고 행하는 사람을 보면 무서워서 떤다. 또 한 쪽에서는 사무엘에게 너무 미안한 것이다. 사무엘이 평강을 위해서 왔다. 순종하면 평강이 온다. 순종의 평강과 예배의 불안을 보았다. 예배드리면서 순종을 안하니 불안한 것이다. 성경은 구별된 가치관을 가져야 평강하다. 준수함 보다는 성결이 조건이 되고 있다. 거룩=구별된 가치관. 준수함 가지고는 나라를 다스리고, 예수를 믿을 수도 없다. 세상에서는 이기고 또 이기려는 가치관. 거룩=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려는 가치관.
나눔)
에어컨 밑에 화분 두면 어떻하냐고. 당신은 손이 없냐고. 냉동실 손잡이 먼지 닦으라고. 거실 매트의 방향을 바꾸라고 하는데, 살림하다가 남편이 그러니 부글부글 올라왔다. 이런 말에 순종하기 어렵다.
4. 외모보다 중심을 보신다.
6절)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이새의 아들 중에 장자를 보니 사무엘이 뻑이 갔다. 사울이 또 있구나! 모든것을 다 갖췄다. 유다의 가문이니 로열 패밀리이다.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용모와 키가 있는 사람은 교만하다. 사람은 외모만 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졌다. 자기가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외모만 본다. 외모를 안보기까지는 얼마나 낮아지고 처절해야 한다.
8-9절)
8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한번 야단 맞고 정신을 차리고 2에서 7째 지나가고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다.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3번째 까지는 이름이 나와있다. 뛰어난 사람이다. 가문, 학벌, 외모 좋고 준수하고 키크고, 3아들이 모두 군인. 최고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10절)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8-10절까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학교도 좋고, 외모도 훌륭했지만 중심이 바르지 않는 것이다. 기회가 왔는데 중심이 바르지 않아서 놓치고 있다. 기회를 안 준다고 원망하지 말라, 어떤 바닥에 있어도 하나님이 찾아가서 쓰신다. 외모가 훌륭하지만 중심이 준비되지 못했기에 7아들이 택함받지 못했다.
11절)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느 ㄴ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형제 서열로 아주 막내는 무시의 대상. 15살, 학교 없고, 혼자만 양치기 하고 있고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고 내놓을 감이 전혀되지 않는 아들이 있다. 오죽하면 안 보였겠어요. 베들레헴은 촌 동네이다. 이때 사무엘이 사사를 하다가 났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축제인가? 그래서 다 나왔는데, 다윗은 축제에 참여 못하게 했다. 택함을 받지 못할 행동을 한 것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무시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기회도 빼앗아버리는 일들이 있다. 그러니 형들이 이것만 봐도 선택을 받지 못할 일들을 한다. 그러니 모두 제외가 되었다.
적용) 가족 가운데 내가 무시하는 사람은 없는가? 목장에서는 어떤가?
12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다윗이 얼굴이 붉었다. -골리앗과 후에 싸울 때 젖도 안 땠다고 하는데. 어리다는 뜻. 용모를 안보는 하나님이 아름답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서 아름다운것. 특히 눈이 빼어났다고 한다. 눈은 마음의 등불. 말씀은 주의 길의 등불. 눈이 빼어나려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묵상해서 내 죄를 보고 부족을 보는 사람은 눈이 반짝이고 초롱이다. 사람을 뽑을 때, 눈을 본다. 자기의 부족을 보는 겸손한 사람은 눈이 살아있다. 말씀을 볼 때 나의 부족을 보아야,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면에 나온다.
5. 하나님이 세우신 자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신다.
13절)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은 자기의 위치를 안다. 왕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공식적인 마지막 사명. 하나님이 다윗에게 사역 시키기 전에 성령의 감동을 주신다. 성령의 역할 =우리를 의지 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는가.
적용) 내힘으로 봉사하는가? 하나님의 힘으로 봉사하는가?
다윗은 사울에게 혹독한 훈련을 10년동안 받는다. 다윗이 3번 기름부음을 받는다. 유다왕#46468;, 이스라엘 왕때. 사울은 1번 받고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
중1 간증)
모태신앙. 어릴 때 아빠의 바람. 심하게 싸웠다. 형과 울었다. 엄마 구타하는 것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 이혼하자고 엄마가 함. 4살부터 부모님이 따로 살기 시작. 초3,4 우리들교회 참석. 상처가 많아 컴퓨터와 게임에 빠졌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힘든 현실. 엄마와 아빠를 많이 미워했다. 아빠가 수고. 지금은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3년동안 이혼재판. 엄마는 가정을 지키고 지키려고 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기셔서 이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에 다시 또 요구중. 엄마가 아빠를 만나서 주일 예배 나와서 변화가 없으면 해주겠다고 하심. 2주동안 목장도 나오심. 아빠가 힘들어 하시고 계신다. 간증하면 마음을 보시고 아빠의 마음을 회복하실 것 같은 소망을 가지고 서게 되었다.
새왕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궁리하는 것.
<맺으면서>
세상왕 세운것으로 인해 슬퍼야 하고 목숨 건 사명이 있다. 평강과 거룩함으로 세우심. 내 죄와 부족을 봐야한다. 약한 자를 세우시고 성령의 감동을 주신다고 하신다.
<기도>
말씀의 적용이 너무 놀랍다. 아빠가 없어도 글도 잘쓰고 간증을 잘하고, 마음속의 빼어났다. 학생의 아빠가 아들의 슬픔을 듣고 아빠를 세우기 위해서 간증한다. 우리 다들 기도해주길. 사울은 끝까지 안듣고 자기의 길을 갔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옛날에 사명을 다시 감당하기를. 내 옆에 예수믿는 사람을 세우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슬퍼하고 목숨을 내놔야 하는지. 외모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동을 달라고. 내 옆과 나에게도 달라고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