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 왕을 세우라.
지도자를 세우고 일꾼을 세우고 그리고 예수를 믿게하는데에는 굉장한 긴장이 따르는것 같다고하신다.
백성들이 원하는왕을 세웠다가 실패한 사무엘에게 새로운 왕을 세우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본문 이다. 그래서 어떻게 세우시고 세워지는가를 알아보려고 한다.
첫째로 새 왕을 세우기 위해서는 세상 왕을 세운것에대한 슬픔이 있어야하고 느껴져야 한다.
우리가 살면서 예수를 믿게 하기위해서 심각한 슬픔도 주신다. 그래서 그것을 느껴야지만 영적 침체에서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슬픔을 느껴야할 때 괜찮다고 성품으로 받아들이면 안되는것이다.이렇게 성품으로 고난을 받아들이게되면 지도자가 될 수 도 없고 세울 수 도 없게 된다.
사무엘 상 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지금 사무엘의 슬픔은 사울을 위한 슬픔이었다. 사람에게는 무엇인가 잘못한 행동을 했을경우에 그것에대한 다른 올바른 행동으로 무마시키고자 하는 행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울에게는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예배중독자처럼 예배를 드렸지만 그것이 회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5장 마지막절에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울은 예배밖에 모르는것같지만 속에는 인본주의로 가득 차 있어서 백성들이 자신을 왕으로 뽑았다고 생각하는것이 있었다. 그래서 백성한테 잘보이려고한다. 백성은 사람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사람한테 비유를 맞추려고 하니까 인생이 힘든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복을 받지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사람을 의식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말아야 분별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못하니까 그들의 노예가 되고만다.
사람들은 한마디만 바른소리를 하면 원수로 몰아가버린다.
사무엘이 사울을 아껴서 사울때문에 슬퍼했지만 이것은 백성들의 슬픔과도 같은것이다. 이것은 아달랴의 슬픔과 비교할 수있는데 아들랴가 유다가문에 시집와서 자신의 아들이 왕이었다가 죽자 어떻게 왕이 죽을 수 있냐면서 분노함으로왕의 씨까지 말려버리려고하고 자신이 왕이 되고자한다. 이것은 다시말해 왕의 씨앗. 즉 예수의 씨앗을 말려버리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적용한다면 문제가 일어나면은 잠잠히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는것이 아니라 예수의 씨를 아주 진멸해 버리려는 경우가 많다. 구원의 사건을 구원으로 받아들이기 못하고 불행의 씨았으로 보고 내 힘으로 싹부터 잘라버리려고 하는 모습인것이다.
아달랴는 가문대대로 왕이고아들까지 왕이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것도 은혜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격어야 하는지 감당하지못하고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게 되어 피해의식, 고정관념, 낙심, 보복, 슬픔등등 연민과 사단의 생각으로 가득 차게되어 예수의 씨를 진멸하고자 하게 되는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시는 일이다.
사무엘도 슬프다. 백성들은 자기를 버리고 아들교육도 실패하고 그러나 준수한 사울왕을 왕으로 세우라는말에 순종했지만 그것조차 실패했다.
자신은 말씀에 순종한 죄 밖에 없는데 얻은것이 하나없게되니 인생이 슬프고 허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슬픔은 종류가 다르다. 사무엘의 슬픔은 매우 이타적이도 구원을 위한 슬픔인데 아달랴는 자신을 위한 슬픔으로만 가득 차있다.
우리의적용은 이것이다. 우리가 다른사람의 아픔과 구원을 위해서 슬퍼하는가 자신을 위한 슬픔인가 생각해봐야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방문해 주시고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 마디만 바른소리를 하면 원수로 몰아가 버린다.
사울을 아무리 초라하게 되었다고해도 언제나 순종적인 모습을 보인다.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런그에게 만세 전부터 택하시고 준비한 왕을 보았다고, 그를 왕으로 세우는 일을 주신다고 하신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위로를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시는데 혹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받기도 전에 나의 슬픔에 얽매여 하나님의 일을 지연시키고있지는 않은가를 생각해봐야한다.
가짜 슬픔으로 이기적이고 분해서 눈물을 흘리고있지는않은가? 생각해봐야한다.
두번째는 목숨을 건 사명감을 가져야 새 왕을 세울 수 있다.
이 사명을 위해 준비하신 왕은 메시아가 나올 베들레헴이라는 도시에 살고있지만 다시에 그곳은 매우 열악하고 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유다 가문에서 1000년전에 나올것이라고 ㅖ언했는데 그 동안은 너무나 열악해서 그럴일이없었는데 이제서야 등장한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살던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이 이상하도라고 듣는것이다. 이제 하나님이 왕을 세우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가는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목숨을 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사무엘 상16:2~3절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말씀이 안들리는 사람은 말씀이 들리는 사람을 원수처럼 여기게 된다. 자신을 위해서 슬퍼해도 당장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않으니 미워하기를 넘어서 죽일려고 까지 한다.
이것이 사울과 사무엘의 관계이다.
사무엘이 사울을 택해 왕으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에게는 사무엘이 하나도 해준것이 없어보이고
자신외에 다른왕을 세우는것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나고 자신의 말을 듣지않으니 그저 싫어할 뿐이었다.
바른소리를 듣고 관계를 유지한다는게 너무 힘든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무엘이 사명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니까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는 아말렉의 탈취물을 제사하기 위한다는 핑계를 마련하여 주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신다.
진정한 제사를 드리기위해 하나님이 갈 길 을 예비해 주신 것이다. 사울은 진정한 제사의 의미를모르기때문에 하나님이 순종의 의미를 알려주기위하여 이러한 일들을 계획하신것이다.
우리도 무턱대고 안믿는 사람에게 가서 자신을 드러내며 생색내고 강요하는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때가 되지않으면 예수님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셨다.
십자가를 지러가는 것도 때가 되기 전에는 알려주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어떤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지 아시는 하나님이다. 사무엘의 속상한 마음도 아시기에 항상 조심히 나를 대해주시는 하나님이다.
내가 찾아가야 할 이새는 누구인가 알아야 한다.
성령의 인도는 조심스럽게 한걸음씩 나아가야 하는것이다. 나를 위해서 기름을 부어야 한다.성령의 인도는 언제나 구체적인 것이다.
말씀을 안놓치고, 말씀을 붙잡고 가야한다.
세번째는 새 왕을 세우리라.
새 왕은 평강과 거룩의 사람을 세우시겠다는것을 뜻한다.
사무엘 상16:4~5절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교만한사람에게는 말씀을주시지 않는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앞일이 하나도 보이지않는데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으로 갔다. 이것이 큐티이다.
이런 그를 보고 장로들이 떨었다. 자기들이 내#51922;고 아들들도 자격없다고하고 그랬는데 자신들이 세운왕이 평강을 가져오고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기는 커녕 여전히 외세는
침략을 하고 왕들이 더욱 강압으로 통치하니 백성들이 자신이 잘못한것을 알고 사무엘을 보고 떤다.
말씀을 보는 사람을 두려워 하는것이다. 또 한쪽에서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평강을 원한다. 평강은 순종하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이들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순정을 하지 않으니 평강이 찾아오지를 않는다.
평강은 성결하여야만 찾아오는 것이다. 평강은 구별된 가치관을 가지는 자만이 찾을 수 있는것이다. 거룩이 큰 조건이 되고있다. 새로운 하나님의 왕은 준수함 보다는 성결이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준수함 가지고는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다. 이 구별된 가치관은 사소한 일에 순종하는것이다.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가치관이다.이것이 새로운 왕의 기준이라고 하셨다.
나눔의 예
가정에서 남편이 지시하는것에 순종하기가 너무 어렵다. 집안에서 살림을 안하는것이 아니기에 내가 살림하는것에 참견하면 너무나 생색이나고 분이난다.
또 사소한 시어머니의 잔소리에도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한다면 평강이 찾아온다. 성경의 말씀처럼 그저 그말에 순종하면 평강이 찾아오는것이다.
네번째 새 왕을 세울때는 외모보다는 그 중심을 보신다.
사무엘 상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그래서 이새의 아들들중에 장자를 보니 사무엘이 그에게 반해 칭찬을 하며 한눈에 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모와 카를 보지말라고 하신다.
사무엘 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우리는 사람을 볼때 자꾸만 외관을 보게되는데, 사울왕을 버렸다는것을 뜻하는것과 같이 하나님이 그것을 버렸다고 하신다. 이것이 사람의 한계이다. 사람은 외모를 볼 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중심에 있는 왕이 되기 위해서는 외모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외모를 안보기 까지는 얼마나 낮아지고 처절해져야 되는지 모른다.
사무엘 상16: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사무엘 상16: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한번 야단맞고 정신을 차리고 둘째부터 일곱째까지 보니 다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은 모두 외적으로 빼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일 어떤 기회를 가지지못했다면 그것을 비관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중심에 있기만하다면 내가 어떤모습을 하고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은 찾아서 쓰시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좋은것을 내가 찾는다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내 중심에 하나님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잡을수가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할 수있지만 외모에 집착하기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사무엘 상16: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사무엘 상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 집안에서 막내는 무시의 대상이자 작은 자였다. 우리는 작은자를 무시하고 가까운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우리의 자녀를 그렇게 본다. 이새의 아들과 다윗의 형들이 왜 못#46124;냐면 사무엘선지자는 이 작은 마을에서 굉장히 크고 위대한 인물이었기에 그가 찾아온다는것은 마을의 대대적인 축제였던것이다.
그러나 형들이나 아버지는 막내를 무시하여 이 좋은일을 나누지않고 제외시켜 버렸다. 이것이 이들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우리는 이 말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가족이나 목장이나 친구들 중 우리보다 작은 자를 무시한적이 있지는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
사무엘 상16: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드디어 다윗이 왔다. 그는 아주 어리고 눈이 빼어난 자였다. 그냥 우리가 보기에 아름다운 사람과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서 아름다운 사람은 매우 다르다.특히 눈빛에서 차이를 알 수 있다.
눈이 빼어나기 위해서는 말씀을 보고 내 죄를 볼 수 있는사람이다. 자신의 부족을 보고 회개하는사람은 눈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조건 성경의 말씀만 본다고 해서 눈이 빼어나게 되는것이
아니고 나의 죄와 부족을 보는것이 중요한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은 성령이 감동을 주신다.
사무엘 상16:13.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안다. 그리고 이것이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사역이다. 그리고 이후 다윗에게 사역을 시키기 전에 성령의 감동을 주신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힘들 더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후 사울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다윗은 기름을 3번이나 부음을 받았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왕이 된다.
나눔 이야기.
지연언니.(78) 아버지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고 아직도 내 열심이 살아있어서 수련회 활동을 하면서 가졌던 감정이 정리가 안되서 힘들었는데 이것이 훈련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이겨나가길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언니가 하나하나 참고 말씀으로 해석해 가시는 모습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낮아지기까지 고된 감정의 훈련이 있었을텐데 과저의 여러가지 사건까지 비교하시면서 말씀해주시니 언니의 영적인 성장과정을 듣는것같아서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슬기(84)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고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가족 이었는데, 어느새 그렇게 기도하던 가족들의 모습에 변화가 조금씩 보이는 모습을 보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 시간에 들은 중학생의 간증이 마음에 와닿고 아버지를 위한 마음이 생겨나서 더욱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고 하고, 가족들이 지금 집안이 어려워서 따로따로 흩어져 살고 있는데 조금씩 힘을 모아 온 가족이 모여서 살기를 원한다고 나눠주었습니다.
슬기는 눈이 참 큰데 그 눈망울 가득히 눈물을 고여가면서 말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중심이 잡히는 자의 모습이 그런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희(83) 저는 스스로 가족들의 이타적인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오만함과 왜 그럼에도 되는일이 없는가를 생각하면서 슬퍼하던 사울같은 모습을 가진 자였는데, 막상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 가족들의 구원을 진심으로 바란것은 제가 그들이 영적으로 회복함으로써 내게 사과하고 먼저 믿은 나를 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었다는 악한 모습을 보게되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용서를 구할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말씀으로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말씀을 통해서 가족들이 화합을 이루는 것을 위해 구원의 기도를 해야하는데 겉모습만 그럴싸 하게 포장하고는 알멩이는 시커먼 것을 보고 집안에 사건이 끊이지 않는것이 저 때문이라는것에 너무도 회개되었습니다. 정말 못된 저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