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자라매 사무엘상 2:22~36
홀로코스트는 마치 번제처럼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600만명을학살한 사건이었다. 이에 독일은 과거를 인정하고 학생들에 교육으로 수학 여행에 수용소를 보게 하는데, 유대인은 600만명이 죽고도 선민의식에 똘똘 뭉쳐 주님께 돌아오지않고 있다. 마태복음 27장 25절에 주님을 죽이고 그 피를 우리와 자손들에게도 돌리라는데, 그재앙이 2천년 동안 이어지는데도 전 세계의 상권을 쥐고 옛 영광을 기다리는 그들의 무서운 인간 승리는언제 신앙이 자라서 회복될까 하는 기가 막힌 메시지를 주고 있다. 1. 내 옆의 악도 점점 대담해진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알곡처럼 여물지만 어떤 사람은 알곡을 위해 영적인 잡초로 되는 남을 괴롭히는 인생이 있다. 여호와를 모르는 제사장이 여호와를 알리며 날강도처럼 갈고리로 제물을 갈취하였고, 제물은 음란이란 악행으로 이어졌다.
1-1 지도자의 음란의 죄 (22절)엘리가 늙었다는 것은 나이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무력해짐을 의미한다. 우리가 예수믿고 시간이 지나면 자라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 늙기만 하면 안 된다. 동침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반복 동사인데,성전에서 여성들과 계속 놀아났다는 말이다. 죄를 다루는 직분의 제사장은 도덕적이어야 함에도 목회상담이던 학교상담이던 은밀한 상담을 위해 은밀한 곳에서 만나서 들어주다 같이 아파하다 보니 정이생겨 음란해지는 것이다. 그 어떤 상담도 울타리 밖에서 행해져선 안되며, 상담은 마주보지 말고대칭으로 봐야 한다. 불륜을 저지르면 누구든 핑계를 댈 수 밖에 없다.
1-2 듣지 않기로 작정한다.(23, 24, 25절)
엘리아들들의 악행 때문에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고, 죽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던것이라 한다. 애굽의 바로 왕을 강퍅하게 하신 것도 같은 이치다. 회개가안 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하셨기에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자라고 한다. 엘리제사장은 아들들의 죄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지적만 하고 적용은 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에, 하나님이 아들들을죽이시고 제사장을 뺏었었다.
2. 점점 자라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을 받는다. (26절)
엘리 아들들은 악행을 저지르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사무엘은 무럭무럭 자랐다. 사람이이렇게 자란다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이며 사무엘은 옆에서 악행이 벌어지는데도 사랑, 지혜, 관용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면 돈과 비교를할 수가 없다. 은총을 받았기에 이 땅의 돈을 내려놓아야 한다.
(잠언 22:1) 사무엘과엘리 아들들의 차이점은 결국 가치관의 차이고 그래서 사무엘은 은총 받기 합당한 삶을 선택하였다.
(역대상 33:13) 므낫세는일월성신을 섬기는 가장 우상숭배를 한 왕이었는데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니 그 기도를 응답하셔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야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다고 한다. 그 전에는 교회를 다녀도 여호와가 하나님인 줄 모르는 사람이너무 많다. 엘리의 아들들도 하나님을 모르는데도 하나님을 알리는 일을 했다. 엘리의 아들들이 고난이 왜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자녀를 살리는 건전적으로 은혜이기에 자녀가 어리다고 교회에 데려오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강퍅해지기에 어렸을 때 전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여호와를 전부로 받아들여야 구원받기 쉽다.
3. 자라지 못 하는 자녀의 원인은 문제부모 때문이다. (27, 28, 29절)
하나님을 전하는 자가 말씀을 듣지 않으니 이름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충고한다. 제사장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기에 투명하게 숨길게 없는 예배 드리는 삶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했기에 하나님의사람이 와서 수치를 주었다. 엘리는 악행을 저지른 아들들을 야단쳤지만 아들이 갈취한 제물을 가지고 함께살을 찌웠으니 하나님보다 아들을 중히 여긴 것이다. 엘리는 늙고 비둔해서 죽었는데, 이것은 연약하기에 분별이 안돼 하나님보다 아들을 존중히 여겼기에 사람이 저지르는 죄의 마지막은 결국 자식우상이라고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리더십의 덕목이다. 하나님을사랑하기에 가족과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과 할애하지 않고,같이 있어주지 않으면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진짜 사랑은 멀리 떨어져도 통한다. 자녀들에게 관대한 건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예수를 모르게하는 건 재산은 물려줘도 반드시 존경 받지 못한다. 가장 좋은 아버지는 자녀보다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여기는 아버지다.4. 점점 자라지 못하면 형벌이 예고돼 있다. (30~36절)
마지막 유언 마지막 심판의 이야기다.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하나님위해 살려 하면 자식사랑은 못 할 까봐 못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도 존중히여기신다고 하는데 항상 이원론적으로 생각하기에 못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현재적이다. 나중에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것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이 없고 누리는 게 많으니까 말씀이 들리지 않기에 하나님이 여러 경고를 해도 엘리의 가문은 듣지않는다.
5. 점점 자라가는 자를 충실한 제사장으로 일으키신다. (35절)
하나님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를 통해서 기뻐하시는 뜻을 세우고자 하신다.
엘리와 아들들을 버린 이유는 그들의 악행보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 때문이었다. 눈을 뜨고 말씀 듣는 완악한 사람보다는 사모함으로 와서 조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한다. 엘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둔감함 때문에 뜻을 모르고 순종하지 못했지만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들 옆에서도 하나님의사랑과 은총으로 점점 자라나고 엘리의 지도아래 최고의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엘리는 비록 자기 아들들은가르치지 못했어도 사무엘만은 제대로 가르쳤다고 하니 하나님께선 이렇게 환경을 넘어서는 믿음을 주실 수도 있다.
# 목장 나눔
(나눔 거리)
1.엘리의 아들들처럼 교회에 속해서도 행하는 죄(음란, 듣지않음..)와 적용해야 할 것
2.나의 영적으로 자라지 못 하는 부분
한섭: 자신을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거짓말하는 것, 음란
종희: 죄를 짓는 것에 무뎌지는 것과 정죄감에 교회와 더 멀어지는 것
준환, 용훈: 음란
목자: 오늘 설교 말씀을 보면 홉니, 비느아스와 사무엘의 대결구도처럼 보인다. 홉니와 비느아스는 대제사장의 아들인데도 세상적 가치관에 행동하는 악인이고, 사무엘은한나의 아들로 성경적 가치관에 행동하는 선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무엘도 홉니와 비느아스와 똑 같은 죄인이다. 단지 회개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구원에는인간의 노력은 단 1%도 필요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만이 받을 수 있고, 택함을 받으려면 회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선 믿음이 필요한데, 야고보서 2장 17절에 보면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삶에서 행위로 믿음을 보일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는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나의 구원의 사건으로 받아 들이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나는 십자가 사건을머리로 아는지, 아니면 마음으로 깨달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나는 예배에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은혜를 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의무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돌아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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