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기도 (삼상 2:1 ~ 10)
영적 자녀를 낳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1. 오직 여호와를 즐거워하여 찬양해야 한다.
2. 지식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3.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마음임을 찬양해야 한다.
4.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5. 기름 부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 홍태진
이번 주 나의 이슈는 손의 상처였는데 과일 채를 썰다 살집이 나간 것이었다. 살이 베이는 순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목보를 쓰는 것인데, 운동 후 과일 말리는 것을 먼저 하니까 이 사건을 주신 것 같다. 요즘 계속 하나님께서 나를 봐주시다가 이 사건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보 쓰는 것을 패스할까 하다가 손의 상처도 잘 아물어져서 다행히 목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고지식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고지식이란 단어의 이미지를 떠올려 봤을 때 고압적 자세, 한 길로 가야 하는 융통성 없는, 단순, 바보스러움이었다. 나의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더해져서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IT 업계에 들어온 것뿐인데 고지식하다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빴지만 근래에도 내가 고지식한 면이 많았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교회 와서 조금 변한 것은 없나 또 생각해 봤는데 나의 고지식한 면을 융통성 있게 변화시켜 주신 것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께서 사건으로 하나씩 알려주신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고,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감사한 것이 많고 사건을 통해 알려주시는 것이 있는데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심장이 뛰는 것이 나 때문에 불안해서인 것 같다. 말씀 묵상과 적용이 잘 되면 마음이 편하지만 요즘 잘 깨닫지 못하니 외부 환경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이다. 결혼, 돈, 회사, 인간관계 등에 반응하면서 내가 영적으로 많이 다운된 것 같다라는 느낌이다.
회사는 말빨로 다녔고 공부할 시간이 안 되어 눈치껏 옆의 사람을 따라 하며 날을 새고 그러다 보니 기초 지식이 없어서 열등감이 생겼다. 쫓아갈 수 있었지만 리드할 수는 없었기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술, 담배, 야동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이 길이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 맞겠지 하며 올해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전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고1때 친구를 전도하고 7개월 동안 그 친구의 집에서 교회까지 데리러 다녔다. 그 당시 돈도 없었는데 거리도 멀리 살았던 친구가 항상 꾸물거리다 보니 택시도 태웠는데 내가 힘들어져서 친구보고 직접 오라고 하니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 친구에게 돈도 들이고 열심히 했는데 열매가 없으니 그 후부터 전도를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회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도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고 그때 듣는 말씀 없이 충동적으로 전도를 했더니 그런 결과가 온 것 같았고 결과적으로 수치스러워서 전도를 하지 않았다. 그때는 교회에서 전도하라고 하니까 그냥 했다. 요즈음은 회사에서 책도 주고 전도하려고 노력 중이다.
■ 목자님
삶이 무료하고 패턴이 일상적이니 무언가 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패턴을 벗어날 만한 다른 즐거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삶이 지루해지는 것은 사명감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나는 성공이라는 야망이 가득 찰 때에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영화도 열심히 했지만 항상 비교가 되었다. 열등감은 극복하고자 해도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만나면서 야망이 소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내가 비천함을 아는 것이다. 내가 못남, 바닥인 것을 알기 위해 하나님은 나를 깨닫게 해 주셨다.
고지식하다는 말도 사람 살리는데 필요하다. 나의 모든 것이 사람 살리는데 초점이 맞춰지면 쓰임 받게 되는 것이다.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큰 죄 안 짓고 사는 것 안에 영혼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서 그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해 하며, 신앙은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 좋기에 괴로워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지내길 바란다. 그리고 연애하길 바란다.
■ 고동욱
오전 예배를 드리고 집에 어머니를 모셔다 드렸는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머니에 대해 화가 나서 물건을 부쉈는데, 미안해서 부순 것을 다시 치웠다.
금요일에는 업무 발표가 있었는데 그 분야에서 석사를 전공한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내가 해야되는게 부담이 되었고, 목요일 저녁부터 준비를 했는데 내용을 볼수록 내가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학부 때에도 공부를 잘 못했는데 도서관에 앉아 있었지만 의미, 뜻도 모르고 공부했던 것이다. 금요일이 되어 발표를 했지만 네가 정리가 되지 않았으니 그만하라는 말을 들었다. 너무나 창피하고 낯이 뜨거워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분야에서는 수학을 잘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이해도가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미안하고 열등감에도 빠지게 된다. 업무 시간에는 업무를 하다 보니 공부할 시간은 없는데 앞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승진도 안 될 것 같다. 예전에는 밤을 새워서 공부하면 만회가 되었는데 지금은 시간 확보도 어렵고 체력도 떨어진다.
나는 영적 후사를 낳기 위해 하는 것은 없다. 회사에서 드러내면 짓밟히기에 회사에서 전혀 은혜로운 것이 없다. 회사에서 내가 부족한 것을 드러내면 그것을 뺏어서 자기 성과로 올려버리니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내 자신, 가족, 여친과의 관계에서 다 잘못된 것 같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고, 마음 깊이 내 성품이 변하지 않기에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식구들에게 1년에 혈기를 몇 번씩 내지만 타인 앞에서는 의식적으로 좋게 대한다. 이런 모습을 유지하고 살았지만 내 속의 꿈틀거리는 악을 숨길 수는 없는 것 같다. 무엇을 물어보면 아는 척을 하지만 이제는 한계가 왔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걸어 다니는 시간에도 생각하지만 요즘은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 머리 아픔, 몸의 압박이 오니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시는 것 같고 악한 영에 시달리는 듯 하다. 내가 죄를 즐기지 않으면 지혜가 생기는 것 같지만 지금은 내가 완악해졌는지 몸이 너무 힘들다.
수요예배 때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자는 허사를 경영하고,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고, 매어있는 것을 끊고자 하여 하나님이 비웃으신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영혼을 살리지 않는 마음이 헛된 일을 경영하게 만드는 것 같다. 미가서 1장에 보면 성전에서 죄를 다 드러내 주시고 증거해 주신 다고 하셨는데 답답해도 우리가 절대 드러낼 수가 없고 하나님이 다 알아서 드러내 주시기에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다 증거해 주실 것이기에 우리는 그 드러내 주심을 믿기만 하면 된다. 동욱이나 나나 다 똑 같은 삶을 산다. 고난이 없으면 절대 드러날 수 없다. 나는 우리들 교회에 와서 일이 안 되고 한계에 부딪히는 사건으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슬비에 간증을 하게 되었지만 그 오픈은 은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후 1년 동안 괴로웠는데 오픈도 지혜롭게 때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우리는 죄인이고 이런 일들을 하나님이 드러내 주시고 뒤흔들지 않으시면 우리는 절대 깨끗해지지 못한다. 드러내 주실 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 동욱이에게 고난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내 주실 때 다 토설 했으면 좋겠다. 허사를 경영하지 않고, 말씀 들었는데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강원희
집주인과는 해결이 잘 되었다. 화요일에 회사를 쉬고 집을 알아보러 다녔는데 괜찮은 집이 구해져서 계약을 하려고 했더니, 여친에게 전화가 와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빼준다고 전해주었다. 돈이 맞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전세금에 얼마 정도를 더 얹어 주어서 3월 1일에 이사 예정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것 저것 준비하는 것이 많다.
일적으로는 내가 지금의 일을 그만둬야하나 라는 생각이 있다. 집에서 성경책도 읽지 않고 나는 그냥 교회만 다닐 뿐이고 나의 삶을 억지로 성경과 연결하고 있다. 고난이 와야 말씀이 들어 맞는 것인지 내가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도는 다단계 같기도 하고 이상한 곳에 데리고 가는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는 교회 다닌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욕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깊이 있게 하나님을 믿어도 전도는 하기 힘들 것 같다. 친구들은 다 자기 뜻대로 살고 있기에 교회에 오라고 해 봤자 욕만 들을 것 같다.
하나님의 때가 다 있다. 나, 동욱이, 원희 모두 똑 같은 출발선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말씀을 듣고 한 발짝 더 나아가려고 하는 노력이 있는 것뿐이다. 내가 아는 맛집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알려주기 마련인데, 내가 교회를 다녀서 좋은 것이 있으니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자. 전도가 생명을 살리는 문제라고 여겨지면 그냥 넘어가기 힘든 것이다.
■ 김지은
전도를 생각하면 수치스러워서 얘기를 못하겠다. 내가 변하고 싶은 것도 전도가 하고 싶어서이다. 내 스스로 자신을 미워하니 감당을 못한다. 사람이 향기가 나야 하고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데 나의 모든 스트레스가 인간관계를 잘 못한다는 것에 기인하니까 전도도 못하겠다. 적응 잘하고 약삭빠른 군인 가족들을 봤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겉으로는 잘 했지만 무조건 타인을 잘 해주는 것으로 인간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관계가 아닌 타인을 잘 해주고 헌신적인 모습만 보여줬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또 그렇지 않다. 어제 집에 손님이 오셔서 난 학원에 있었다. 공무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내가 나와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씀을 들으면 영적으로 민감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판단하게 되고 생각을 깊게 하게 되니 타인의 탓으로 돌려버리게 된다. 모든 원망과 화를 엄마에게 돌리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단칼에 끊지 못하는 것이 있고 부딪히는 인간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 없이 그냥 내가 연락 안 하고 마음을 닫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 같다. 나도 나에 대한 존중감이 없으니 인간관계도 잘 안 되었다. 예전 보다는 관계 속에서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지내다 보니 사회성이 떨어지고 사람들 속에서 부딪히고 가야 하는 부분이 없으니 더 그러하다. 교회에서만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은이도 나가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학원도 나가서 사람들과 부딪혀 봐야 한다. 그런 속에서 사회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랑 같이 살게 되면서 어머니가 설거지 할 때 내 방식대로 접시를 놓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난 크기별로 접시가 놓여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으시니 내가 다시 바르게 해놓고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는 ‘밥 내가 하잖아’ 라고 하셔서 그 뒤부터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어머니 하시고 싶은 방법으로 하게 해드렸다. 지은이가 차근차근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찬양을 해야 한다.
■ 윤혜진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다. 이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갖다가도 2월이 다 가니까 스트레스를 다시 받는 것 같다.
내가 맡은 아이가 너무 힘이 들고, 일이 지겨운 것인지 아이들 때문에 힘든 것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대화를 잘 하다가 나중에는 설명하는 것도 알아듣지 못하면 화가 나고, 아이들을 걱정하기 보다 내가 가르친 것에 대해 성과가 없으니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면박을 주고 오면 집에 도착해서는 마음이 좋지 않다. 엄마가 8월 말에 한국에 들어오시는데 그 시기에 학원 계약도 집 계약도 끝나는 시점이어서 엄마랑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엄마가 돈을 좀 더 벌라고 하셔서 그렇게 해야 하나 고민 중에 있다. 전에 들어 두었던 저축성 보험들을 이제서야 따져 보고 하니 몇 개씩 들어 두었던 것들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이 보험비를 감당하지 못 할까봐 불안감이 몰려온다. 며칠 전 꾼 꿈도 학원에서 잘리는 꿈이었다. 나는 그 꿈에서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불안해 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꿈에서 깨어 일어났더니 학원이 나쁘지만은 아닌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수업이 시작 되면 답답한 것이 또 시작되어 버린다.
오늘 목사님께서 통찰력을 말씀하셨는데 예수님 때문에 기뻐서 기도한다는 것에 대해 크게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구원의 애통도 없고 아예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욕을 먹을까봐 얘기를 하지 못하고 교회 다녔던 사람들에게만 교회에 가보자고 한다.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는 넘치는 기쁨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찬양 구절에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내가 구원에 대해 확신이 있는 것인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잘 모르겠다.
수요예배 때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모르겠다고 하는 순간이 오만한 자라고 하셨다. 사자가 배고파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히브리어로 ‘하가’(hagah)라고 하는데 이 말은 묵상하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말씀을 묵상하면 나의 고통과 갈급함을 읊조리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천국은 이미 정해졌다라는 것이다. 천국에 가지 못할 수도 있는데 천국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은 영혼에 대한 관심이다. 그럴만한 경우가 있어서 화를 낸다는 말이 성품인지 구원으로 나가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우리는 정답을 찾고 그것을 어떻게 해 나갈지 방향성을 세워나가야 한다. 혜진이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에 대한 긍휼함이 있으나 그것이 성품인지 믿음인지 모르고 성품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수업은 수업으로 딱 끝내고 예수님 믿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런지… 무턱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닐 수 있다. 나는 고등부 3년이 되니 아이들 파악이 되면서 내 힘도 좀 빠지게 되었다. 내가 너무 힘들었는데 내가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드니까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혜진이도 하나님이 주시는 사람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주셨으니 그것에 대한 관심을 두고 때에 맞을 때 아이들에게 교회 다니는 것을 얘기해 보는 것이 좋겠다. 가르치는 것에 대해 목적을 두지 않고 좀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서 조금씩 하나님을 전하면 너도 기쁨이 있을 것이다. 복음을 말하지 않고 지혜롭게 전할 수 있는 묘한 재미를 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성령 충만하면 적용함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 박성아
중학교 시절의 얘기를 하고 나서 기분이 좋지 않았고 상담 시간에 또 얘기가 꺼내어 지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편으로 돌아왔다 라는 말씀이 해석이 되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피해자 입장으로만 나눈 것 같아 마음이 찜찜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일 예배 후 큐티도 다시 하고 기도도 드렸다. 씻으면서 생각이 났는데 하나님께서 너는 아직 젖먹이잖아 라는 마음을 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고 수요일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속상해서 동영상을 찍어둔 것을 보며 이런 일들을 겪어 보았는데도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수요예배를 드리고 회복이 되었는데 바뀐 것이 있다면 안 좋은 감정에서 회복으로 가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아이를 보며 쟤가 삐뚤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이제는 삐뚤어져도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게 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든다.
미가서를 보고 또 재앙이냐 했는데 내 백성의 살을 뜯어먹고 라는 부분에서 나는 그런 적도 없다고 생각하다가 가장 약자인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예전보다 소홀히 대한 부분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요즈음 내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둔 아이들이 없다는 것도 그것을 말해 준다.
나는 앞으로 더 좋아지지 않을까, 성령충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높여주신 것 보다 평안함을 주신 것 같다. 아직 기름 부은 자 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에 하나님을 대적했던 것만큼의 현재 상태는 아니기에 그것에 감사하다. 할머니에게 적용한 것도 있는데 할머니 때문에 기분이 다운되어서 내 능력으로는 할머니를 섬기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고 기도를 더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