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월03일 최화진 목장 - 우리들 이야기]
이번주부터 최화진 목자님이 새로오셨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같이 나누고 공감해주신 목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라며 우리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말씀 : “로마서 08:12~14”
제목 : “영적으로 삽시다.”
설교 : 김진홍 목사
[설교요약]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성령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시다.
저는 경기도 화성군에서 농촌 목회를 시작했다. 막내아들이 시골학교 수학 점수를 30점을 받아와서 이해를 못해 집사람에게 물어봤다가 처가집을 들먹거린다고 기분이 않좋아졌다. 공부도 못하는데 기까지 꺽기면 안될거 같아서 위로했다. 시골에서 양계장가서 일하라고 했더니 사모님이 싫어하셨다. 난 그래도 30점이 이해되지 못해 주께서 주신 은사가 있으니 네가 좋아하는게 있을꺼다했더니 자기는 곤충이 좋다고 해서 파브르의 전기책 “파브르 곤충기” 를 사서 3학년 생일 선물로 주었다. 아이가 저녁 늦께까지 책을 읽다보니 6학년때는 곤충학 박사가 되었다. 시골에서 감자를 다같이 캐는데 제가 처음보는 곤충을 보고 물어봤더니 학명까지 얘기해서 놀랬다. 그 책으로 공부해서 코넬 대학에 들어갔고 미식축구부에서 주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30점짜리가 이렇게 되니 정말 놀라웠다. 제가 아이에게 자랑스럽다하니 아버지 덕분이라면서 초등학교때 기죽이지 않고 위로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에 어디 취업했으면 좋겠냐고 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속에 여기까지 왔으니 중독된 애들을 위해 힘쓰라해서 지금 인터넷 중독 애들 치료하고 있다. 애들을 데리고 와서 자연속에서 예배를 드리니 몇 달뒤 치유가 되어가고 있다. 세상의 교육과 정부의 힘으로는 안된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크리스찬 교사만이 할 수 있다. 부산의 한 사모님이 고통속에 있다가 기도와 금식속에서 병이나았다. 우리 주님은 하늘에만 계시는게 아니라 우리 옆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치유하시는 새로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성공의 비결을 원한다면 성령 받아라!
제가 유신시절 감방에서 시인 김지하씨와 제가 정치범으로 독방에 갇혀 있을 때 오직 성경책밖에 주지 않았다. 감옥에서는 성경을 이스라엘 무협지라고 했다. 저는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성령님의 은혜를 받아서 말씀을 통해 내안의 내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었다. 감옥 나온 후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다. 김지하씨의 자서전을 읽어보고 저는 예수님께 무릎꿇고 감사했다. 김지하 자서전 책말미에 자기에게 세례준분에게 찾아가서 자기는 이 민족을 위해서는 기독교로는 안된다면서 교회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도 내삶이 고통이었으나 말씀을 읽으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영혼이 치유받고 감사드린 것이다. 저는 청년들에게 말합니다. 성령받아라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말씀에 따르다. 이게 성공의 비결이다.
■ 기독교는 그러므로 신앙이다.
제가 농민들이 열심히 일해도 빠듯하게 사는 것을 보고 이들의 위해 앞장서서 개척과 개혁을 했다. 처음에는 잘되서 농민들이 잘듣다가 1년후 돼지고기 파동으로 사료값도 얻지 못하자 나보고 말씀이나 할것이지 돼지!돼지!해서 우리 다 망했다는 것이다.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는다. 사료를 먹이기도 힘드니 아기돼지들을 개펄에 다 버리게 되어서 저 돼지를 보고 다 죽을꺼라 했는데 수영해서 시골 동네 안으로 들어와 꿀꿀돼자 마을 사람들이 새끼 돼지를 가지고 교회마당에 다 뿌리고 갔다. 생매장 할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정말 힘들었다. 국내 소고기값은 비싸지만 호주 고기는 싸서 소 한마리 값으로 여러마리 소를 데리고 와서 나눠주니 농민들이 좋아했다. 젖소도 해달라고 해서 기도하다가 성령님이 좋아하지 않는거 같은데 농민들을 위해 하기로 했다. 농협에 계좌를 개설하고 은행에 입금 했는데 소가 호주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그럼 어떻게 되냐고 했더니 보험처리 계약이 없어서 돈도 소도 못준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다 빚쟁이가 되서 교회안으로 빚쟁이들이 들어와 돈 갚으라고 날리를 폈다. 시골에서 교인이 300명쯤 되었는데 이사건으로 결국 13명만 남게 되었다. 빚을 지고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인격도 품위도 없다. 정말 끔찍하다. 방조제 위에 올라가서 신발을 벗었다가 신었다가를 몇번이고 했다. 결국 물에 빠져 죽는것 보다는 기도하자 죽자는 다짐으로 기도실에 들어갔다. 난 음식도 물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 살고 아니면 죽을꺼라 했다. 자살은 안되고 그래도 기도하다가 죽어야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주께 엎드려 울며 기도했다. 열왕기하 히스기야왕이 울면서 기도했을 때 15년을 연장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5일이 지났는데 날 찾는 여자가 있다면서 날보고 오늘 말씀을 일러줬다. 이 말씀이 나를 내영혼을 살리고 내 삶이 바뀌게 되었다. 성경 말씀을 자기로 나로 읽게 되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을 그러므로 신앙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그러므로 우리가 변화되고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자!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그러므로 내가 믿고 내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 육신을 선택하면 죽음이요 영을 선택하면 살리라
내가 영적이지 못하고 육적으로 새마을 운동처럼 소득 올리는것만 했지 성령님이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질이 영적이니 영적으로 해결해야함을 깨달았다. 네가 육신적 세상적으로 하면 죽겠으나 성령님, 영적으로, 회개와 기도와 응답 받는 삶을 살면 살리라 했다. 무거운 짐이 영적으로 뚫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제가 교인들 앞에서 내 죄를 들어내고 회개 하였다. 그때 찬송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를 부르며 교인들과 회개하였다.
■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자
“새벽을 깨우리오다”라는 책을 썼는데 일본에서 인지세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돈을 조금씩 갚아 나갔다. 인생을 살다보면 벽에 부딪일때가 있다. 그럴때 살아계신 하나님께 무릎꿇고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바란다.
[목장나눔]
■ 목자
저는 예수님을 않믿던 사람이다. 32살때가지 어렸을 때 동네 누나 따라, 군대에서 몇 번 갔었다. 그 동안 예수 믿으라고 아무도 말을 않한게 아니라 고등학교 친구, 여자친구, 큰 누나에게 많이 권면 받았음에도 믿기전에는 오히려 믿는 사람을 괴롭혔다. 우리집은 편안하게 살다가 98년도에 IMF 로 아버지께서 명예퇴직을 갑자기 하시니 당황하셔서 집에 계시면서 술마시고 주식을 하셨다. 엄마집안은 잘사셔 자랐기에 교양과셨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명예 퇴직으로 집안의 문제들이 뛰어 나왔다. 아버지는 신경약을 오랬동안 드셨는데 매일 술드시고 아버지의 병으로 집안이 힘들어지자 아버지를 입원시키기로 했다. 난 아버지만 정신차리고 돌아오시면 된다는 식이었고 아버지를 병원에 보내기로 했다. 동생이 아버지가 포승줄로 묶여가는거 보고 큰 충격을 많이 받은거 같다. 아버지는 다시 풀려난 뒤 형사소송을 하고 식구들이 다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미국이모의 도움으로 엄마가 온누리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나는 그때 영화일을 하면서 시나리오가 않나와서 우울했고 여자 친구하고도 헤어지고 집안도 내일도 환경이 한번에 않좋아졌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신데 내가 믿지 않는거 때문에 어려웠다. 내가 아무것도 안되서 매일 술먹고 새벽에 들어오면 엄마가 새벽기도 갔다오셨다가 차가운 손으로 내손을 꼭잡고 한참을 기도하셨다. 그러다 어느날 새벽에 나도 교회 가겠다고 엄마따라 온누리 교회를 가게 되었다. 예배드리던 중 누군가 나를 꼭 안아주는 느낌을 받고 많이 울었다. 그 후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우리들 교회 와서 여호수아 도피성 말씀을 듣고 정말 많이 울었다. 내 죄를 보고 회개하게 되었는데 새신자 인사때 내느낌대로 얘기했더니 목사님께서 “네가 말씀이 좀들리는구나”하시면서 바로 새신자반을 맡게 되었다. 거기서 네 얘기만 하라고 하셨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다. 우리들 교회와서 양육받고 8년동안 말씀듣고 내가 많이 변화되었다 생각했더니 얼마전 바라던 일을 하게되니 오히려 예배 빠지고 술도 않마시다가 술자리에 참석하였다. 예배가 회복되지 않으니 자연스레 따라가 술을 진탕마신 것이다. 작년 10월에 작업이 끝난뒤로 아직도 회복이 안되는거 같다. 예전에는 영의 문제임을 알기위해 찾고자 애썼으나 요즘에는 육의 생각에 누구누구 탓이라고 하게 되었다. 현재 내삶이 이렇다.
■ 홍태진
모태신앙이고 서울로 취업해서 올라온 뒤로는 선데이 크리스찬으로 다니다가 결혼문제 직장상사와의 불화 대인관계의 갈등으로 힘들 때 친구의 큐티 권유와 이모의 도움으로 2010년 5월에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 학교 체육관에서 한다고 했을 때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예배드리러 온 순간부터 정말 기분이 좋았다. 7월쯤 창세기 야곱의 이야기 “내삶의 결론”임을 듣고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등록하게 되었다. 첫목장 모임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끼리끼리 얘기하고 난 한마디도 못하고 두 시간 반을 있으려니 너무나 힘들었지만 내가 예전교회 있으면서 나도 끼리끼리 텃세아닌 텃세를 부렸구나를 깨닫고 목장 모임때는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다. 그뒤 일대일 양육, 양육 교사 훈련을 받고 부목자를 맡게 되었고 지금은 유아부를 섬기고 있다. 어렸을때 부모님 이혼의 아픔도 있으나 내가 교회 다니면서 말씀 없이 헛것으로 다녔던거 같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때는 교회에 열심이었고 기도도 많이 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편안해 지니 다시 멀어지고 세상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큰일 없이 편안하지만 술,담배를 하지 않으니 부르는 사람도 없어 혼자 있어서 심심하다 못해 한명 붙잡고 전도하려 하고 있다. 힘들때는 큐티하면서 말씀으로 하루의 힘을 얻었는데 요즘에는 해도 않해도 그만인거 같은 영적으로 많이 다운되어 있고 생활에 활력이 떨어져 있다.
■ 김지은
내자신 스스로 수치스러운게 커서 내 이야기를 못했다. 우리들 교회 온것도 오래되니 내 수치가 되었다. 오랫동안 다니면서 변하지 않는 나를 본다. 그래서 내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면서 내가 Open 되지 않으니 사람들과 관계가 어려운거 같다. 아빠가 군인이셔서 전방으로 돌아다니다가 2002년에 서울로 오게 되었다. 우리들 교회온지 7~8년된다. 오늘말씀에 큰형님이 바로 나인거 같다. 동생에게 잘못한게 많아서 하나님께 동생들이 나를 용서해주길 기도한다. 예전에 기도원을 가서 10일 금식을 하면서 거기 있는 동안 한 남자를 잘못 만났다. 내가 말씀을 잘 모르니 누군가 성경공부를 같이하자고 해서 같이 하게 되었다. 지금도 용서 안되는게 나의 연약을 가지고 속였다는것과 모든 불행이 이 남자 때문인거 같다. 우리들 교회와서 말씀을 듣고 내가 분별못한 나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 윤혜진
모태신앙이지만 어렸을때는 습관적으로 다녔다. 아빠는 똑똑하시고 자아가 강하셔서 절대 믿지 않으셨다. 어렸을때 부유하다가 아빠의 사업실패로 망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싸움도 잦아졌다. 아빠는 집에 계시고 엄마는 돈벌기 위해 밖에서 생활하셔서 1주일에 한 두번 오셨다. 초등학교때부터 내가 집안 살림하고 도시락을 내가 싸가지고 다녔다. 그렇게 살다가 중3때 아빠가 간암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엄마가 아빠를 데리고 기도원에 들어가셔서 몇 주후에 돌아가셨다. 그동안 말씀보고 기도하면서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돌아가셨다고 엄마가 얘기해 주셨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힘들지는 않았다. 엄마는 내가 대학교 1학년때 미국 목사님을 만나셔서 재혼하신 후 미국에 가셨다.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피를 토하고 병원에서도 손쓸수 없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다. 엄마는 피를 토할때마다 하나님께서 다 낫게 해주셨다면서 괜찮다고 하셨다. 그때 난 엄마의 믿음을 보게 되었고 이게 하나님을 알게된 내삶의 체험이었다. 미국에서 엄마랑 같이 지내면서 영주권을 받을려 했지만 안되고 있을 때 한국에서 오빠가 백혈병이라는 소식을 듣고 엄마랑 내가 귀국해서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수치가 높으니 그리 진단을 한것이지만 그 뒤 호전되서 퇴원하게 되었다. 3년간 한국에서 혼자 살던 오빠의 집에 들어간 엄마와 나는 집안 모습에 많이 놀랬다. 엄마랑 내가 그 쓰레기를 다 치우고 청소하면서 엄마가 무리하셔서 코피 흘리는거 보고 오빠를 많이 원망했다. 백혈병 사건으로 오빠와 나는 교회 다니게 되었고 엄마는 다시 미국으로 가셨다. 오빠가 혼자 외로이 있으면서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에 많이 울었다. 같이 6개월정도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에서 십일조 말씀을 듣고는 그 뒤로 오빠는 않나간다. 오빠랑 같이 살면서 오빠가 취업하기전까지 내가 돈벌어서 집안살림 내가 맡고 책값, 학원비, 용돈까지 줬기에 생색이 나서 오빠 자존심을 많이 깎아내렸다. 다 큰 성인둘이 같이 살다보니 싸울때도 꼭 부부싸움 처럼 되어 버렸다. 엄마가 기독교 관련서적을 많이 읽으시는데 김양재 목사님의 “가정아 살아나라”를 읽고 우리들 교회를 추천해 줬다. 멀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싫다고 했다가 오빠와의 계속된 싸움일 싫어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 그때가 2010년 11월 “범사의 형통” 설교를 들으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첫눈에 반한것처럼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기초세례부터 양육까지 다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은 나지만 믿음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세상에서 위로받고 싶은데 여기를 떠나면 안될꺼 같고 오늘 말씀 들으면서 엄마, 오빠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1년 반 전쯤 처음으로 독립해서 나혼자 살고 있다. 어렸을때부터 씩씩한 삶을 강요받으며 지금까지 온거 같아 내 어렸을때를 돌아보면 내 삶이 참 슬프다.
■ 박성아
목회자 딸이고 이번 주에 적용으로 상담을 받게 되었다. 중학교까지 난 목회자 딸같이 보냈던거 같다. 우리 아빠의 롤모델은 김진홍 목사님이고 나도 목사님을 좋아한다.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개척한 교회가 잘안되서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부모님이 기도원을 같이 했는데 한자매가 기도원에서 병치료를 받은 은혜에 큰돈을 헌금했지만 건달을 만나면서 헌금한거 내놓으라고 집안을 어지럽혔다. 내가 중학교때 학교 선생님 자제인 애를 만나게 되었다. 이 애도 부모님 이혼으로 상처로 집착과 폭력성이 있다. 전학교에서 자기를 괴롭힌 애를 칼로 찔러서 보호 관찰소를 거쳐 우리학교에 오게 되었다. 다른 애들과 나에게 폭력을 행했다. 이 애기를 처음으로 하는데 상담받으면서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정말 밟아지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언제부터 어두워졌냐고 물으시길래 내 중학교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남자하고는 중간에 헤어지기도 했지만, 애증의 관계로 10년 가까이 만났다. 중학교때 공부하기 힘들었다. 헤어지냐고 하면 자기 죽겠다고 하고 선생님들도 손을 놨다. 고1일 때 그 남자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부모님에게 말은 못하고 내가 해결하려 했다. 목회자 자녀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서울로 오면서 헤어지자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가 자기집에 불질렀다. 그때는 사춘기고 분노조절이 안되서 힘들어했다. 학교진학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상주로 갔다가 다시 전학시험을 보고 합격했지만 학교측에서 허락하지 않아 못가게 되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사회복지사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한 후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다. 16살부터 20대 중반까지 우울하게 보내면서 이 남자하고 계속 만났지만 문제가 있음에도 미화되어 이게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같다. 서울에 있는 기독교 재단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이제 것 난 살아온게 힘들었기에 나 혼자 잘살 수 있을꺼라 생각했지만 공황장애와 사회복지관 중학생에게 폭행당한 사건을 겪으면서도 억지로 회사에 다녔지만 나에게는 큰 상처였다.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어느 여름날 새벽에 목사님 말씀을 듣다가 화가 났다. “내 죄를 보라”, “내 삶의 결론이다.” 라는 말씀이 듣기 싫었지만 그래도 몇번 더 들었다. 다니엘 큐티를 하면서 은혜를 받게 되었고 양평의 제자훈련 2박3일동안 성경말씀 들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목사님 설교와 목장 보고서를 보면서 많이 은혜 받았다. CTS에서 설교하신 “고난이 축복이다.” 라는 말씀에 은혜와 위로가 되었다. 작년 5월에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고 그 동안 참 많은걸 하나님께서 기도와 인도하심에 감사 드린다. 이번 겨울수련회때 김병년 목사님 말씀중에 내가 치유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빛날뿐이라고, 하지만 난 아직도 하나님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인거 같다. 지금은 큐티와 기도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거 같다. 내 욕심이 커서 성령 충만 받고 한번에 확 변하길 원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하려 한다.
■ 윤주희
부모님이 수퍼하신 지하 교회에 몇번 가고 고등학교, 대학때 친구따라 몇번 갔다. 아빠가 주사가 심했다. 아빠가 해줄꺼 다 해주고 친구처럼 해줬지만 주사가 심해서 전화기는 항상 새거였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고 오빠가 3중때 아빠가 주사부리자 오빠가 칼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해서 정말 놀랬다. 그 뒤로 아빠가 술마시고 오면 긴장됐다. 부모님이 같이 장사를 하셔서 싸움이 잦았고 특히 아빠가 술드시고 온 다음날은 집에서 늦께까지 잤기에 아빠가 싫었다. 난 고등학교때 공부않하고 튀지않고 조용히 놀았다. 대학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못갔고 작은 삼촌의 공무원을 보고 안정되고 나혼자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험준비를 했는데 계속 떨어졌다. 결국 회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인정받고 진급도 빨리했지만 합병되면서 힘들어져 그만 쉬고 싶은 마음에 그만뒀다. 아빠가 림프종암에 걸리셨는데 난 그때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내가 아빠 간병을 내가 하게 되었다. 아빠가 처음에는 호전되었다가 재발하시고 또 호전되었다가 재발하시면서 정신을 잃어서 놀랬다. 병원에서는 어렵다고 손을 놓게되자 하나님께 아빠 살려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돌아가신 후 친구의 도움으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고 목사님 말씀과 간증을 듣다보니 다른 교회로 가기는 싫었다. 2010년 11월 전도축제때 같이 묻어서 등록하였고 여기와서 성경통독을 하게 되었다. 요즘 평안하고 나태하게 지내고 있다. 유아부 섬기는 것도 목장 지체들과 같이 들어가게 주께서 은혜 내려 주신거 같다. 요즘 예배시간때 많이 존다. 예전에는 이것 땜에 많은 정죄감이 있었다.
■ 고동욱
오늘 예배때 10년전부터 알고 있던 김진홍 목사님의 삶을 듣고 참 좋았다. 이상하게 눈물이 많이 흘렀다. 형의 정신분열과 목회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저를 많이 보게 되었다. 예전에 전 정신력이 약해서 저도 정신분열인가를 의심했었다. 현실과 약간 혼동되는걸 보고 좀 두려웠다. 대학교때 UBF 에 있으면서 성경공부를 했지만 그안에서 열등감을 많이 느꼈고 훌륭한 분들 보고 나도 저처럼 살고 싶었다. 가족들이 변하지 않는거 보고 부담스럽고 싫었고 내 자신을 보면서 나는 변하지 않고 음란하고 이기적이 모습이 싫었다. 전도하면 가르치는데 가르치는 내가 사랑이 없음을 알고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람 만나는게 싫고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 죄인이라고 계속 자학을 많이 했다. UBF에서 죄를 강요해서 겉으로만 보이도록 했다. 하나님과 만나서 내죄를 봐야하는데 잘 보이고 싶어서 죄를 짖지 않으려 했더니 몇 년뒤 정신검진을 받게 되었다. 부모님은 영월에서 과수원을 하시다가 돈이 안되서 정리하시고 아버지가 한전에 들어가셔서 큰철탑에 올라가서 일하셨다. 아버지는 고졸이라 공부하셔도 승진이 안되니까 그게 한이 되어서 40대후반에 산업대에 들어가셨다. 아버지는 굉장히 성실하시다. 후에 전기공사 회사를 차리셔서 잘나갔다. 아버지가 노조위원 중역을 하시다가 내가 고등학교때 바람 사건으로 엄마가 많이 우셨다. 그뒤 몇 년이 지나고 또 터졌다. 전 삼형제중 둘째인데 부모님의 사랑을 못받은거 같다는 마음에 어렸을때부터 잘 삐졌는데 커서도 바뀌지 않고 잘 삐진다. 회사에서도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진데 지금은 내가 아직도 사람과 섞어지 못했구나 내가 또 혼자 있으려 했구나를 알게 되었다. 어른스럽지 못하고 쪼잔한 어린이의 마음이 있다.
(시편 01편 0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난 회중이라는 말,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회중에 들지 못한다는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 우리들 교회와서 좋은 공동체에 속한게 내 복이라고 여겼는데 나를 돌아보니까 내가 사람들의 귀를 닫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오늘 말씀도 영적인 문제임을 알게 해주셨다. 오늘 나누면서 대부분 공감이 간다. 큐티도 싫고 무기력하고 나태한것에 공감이 간다. 얘기 나누는데 진솔한 대화에 은혜가 되었다. 목장나눔, 초원나눔을 통해 주께서 은혜를 주신다. 나도 요즘 하나님께 실망과 원망이 있는데 때가 중요한거 같다.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게 때인거 같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있고 엄마에게 무신경하고 결혼도 못하고 있고 일도 잘되지 않고 오직 주님뿐이었는데 나에게는 언제 주실까 했더니 나를 회중속으로 보내주신거 같다. 같이 공감되는 것도 많아서 좋다. 우리가 적용하는게 힘들어서 말씀을 듣는게 어려운거 같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회개하는 삶이 계속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