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0일 김재동 목장 #8211; 우리들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말씀 : “룻기 03:01~06”
제목 : “안식”
설교 : 김양재 목사
[설교요약]
조상들이 우리를 생각하면 꼭 천국에 사는 줄로 알 것이다. 환경이 좋아졌다고 천국에 있는게 아니다. 안식은 하나님께서 창조 후 마지막에 안식을 주셨지만 인간들은 자기 생각대로 행했기에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했다. 안식으로 가는 길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거룩한 중매쟁이가 필요하다.
(01절)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02절)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나오미는 자기에게 한결같이 행하는 룻을 위해 중매하기로 했다. 우리가 안식으로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기도 한다. 영성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나오미가 영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타적이 되었다. 잘되는 집은 모두가 이타적이다. 이기적인 가족 한명 때문에 모두가 교회에 와서 안식을 위해 긴장해야 한다. 나오미는 모압땅을 떠날대 잘못된 중매를 하였다. 두자부에게 모압땅에서 새로 남편을 만나 안식을 얻으라는 것이다. 진짜 영성의 중매는 말씀으로 하는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남편이 죽으면 안식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살리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고엘을 문자적으로 넘어 우리 모두가 형제임을 일반화 시켰다. 그것도 이방인으로 말이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자손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도 예수씨가 없으면 안식이 없는 것이다. 수많은 심령들을 안식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중매쟁이가 되길 바란다.
두번째 정보가 필요하다.
(02절)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보아스를 만나려면 어떻게 할지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우연히 타작 마당에 만나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노력으로 만난 것이다. 그럼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나오는걸 어떻게 알았는가? 나오미는 종들에게 정보를 얻은 것이다. 중매를 할 때 나오미처럼 물밑작업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한 사람을 예수그리스도께 중매하려면 열심과 정성과 관심과 애정으로 정보를 수집해서 인도하는 것이다. 나오미는 보아스를 선택했다. 보아스는 그 집안의 기업1순위가 아니라 2순위인데 나오미가 보기에 예수의 씨가 있는 보아스를 어떻게 해서든 연결해준 것이다. 조건적으로 보면 불가능해도 부자라서 나이가 많아도 이런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나오미가 소개해준 것이다. 긍휼과 인애의 마음을 가지고 한것이다.
셋째 단장이 필요하다.
형식이 어떨때는 내용을 빛내기도한다. 룻의 복음의 내용은 훌륭해도 겉모습은 형편없기에 잘 보이기 위해 형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외모를 가꾸기도 해야 한다. 단장이 외모뿐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가꾸어야 한다.
네번째 모험도 필요하다.
(03절)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단장을 다 해도 때가 중요하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고엘 1순위도 아닌 보아스에게 룻은 이방여인이라는 악조건이 있었다.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고 분별하여 때가 되면 결단해야 한다.
다섯째 수치가 필요하다.
(04절)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일을 네게 고하리라”
우리는 부끄러워 발치에 누울수 없다. 나오미는 왜 오해 받을 수 있는 일을 하라 했을까요? 룻은 모압 이방여인이기에 하나님의 은혜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여인이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고 고정관념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
여섯째 순종이 중요하다.
(05절)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06절)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룻에게 발치 이불을 들라고 하는 것은 수치이나 룻은 순종했다. 룻은 나오미의 말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기고 한마디로 ‘예’라고 했다. 순종할때 안식이 오는 것이다. 거룩한 중매쟁이 사명을 가지고 갈 때 순종이 필요하다. 순종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다. 안식은 순종이 중요하다. 깨닫고 실행하는 적용이 순종이다. 작은 것부터 순종하면 그만큼 말씀이 들리고 또 순종하는 것이다. 안식을 위해 중매도 정보도 단장도 수치도 필요하지만 순종이 가장 중요하다.
[목장나눔]
■ 목자
목사님이 말씀하신 안식말고 우리가 아는 안식은 무엇일까요?
■ 목원들
휴식이 안식이다. 평안을 얻을 때, 관계가 원만할 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편안할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엄마랑 같이 있을 때, 잠잘때 먹을 때 등등..
■ 목자
“진정한 안식”
저는 목장에서 나눔을 할때가 나에게는 큰 쉼이고 안식이다. 교회 행정일을 하는데 피곤하고 지치면 나눔할 때 나에게는 큰 쉼이 된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후에 안식을 주신게 우리에게 쉬라고 주신게 안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버렸다. 우리는 노동의 대가로 쉼을 안식이라고 한다. 노동의 쉼을 주일날 하는 것이다. 5일제 후에는 토요일부터 주일까지 푹쉬는 것이다. 안식을 잃어버린건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을 누리는데 자기 육체의 쉼만을 쫓으며 주일을 자키지 않게 되었다. 거룩하게 지키는게 안식인데 거룩은 구별이고 세상과 다른게 구별 되는게 곧 거룩이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구별 되는건 우리가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놀러 가는 것이다. 일주일중 6일은 같고 7일은 다른 것이다. 내가 구별되는 것 만큼 거룩하게 되고 곧 안식을 얻게 된다. 내 삶, 가치관도 구별되지 않고 24시간 세상 사람과 똑같이 하고 돈,명예를 쫓고 세상을 쫓으니 안식이 없는 것이다. 내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만큼 내가 안식을 얻는다. 안식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삶이다. 내가 안식이 없는건 세상 사람과 똑같이 하기에 하나님 없기에 내 안에 안식이 없는 것이다. 안식은 예수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예수님과 짝지어주는게 안식이다. 진정한 쉼은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이 들어가지 않으면 진정한 쉼이 없다. 진정한 쉼을 얻기 위해 중매쟁이도 필요하고 단장, 모험도 수치도 순종도 다 필요한 것 이다.
나오미가 보아스와 룻하고 짝을 지어준다. 나오미가 보아스와 연결하기위해 중매 역할을 했다. 예수님과 우리를 중매해주는 행위를 사명이라 한다. 예수 믿게 하는게 사명이다. 거룩한 중매쟁이다. 내가 주신 지경과 은사로 각각하는게 사명이다. 나오미가 사명을 안것이다. 보아스에게 룻을 연결시키는게 자기 사명이 되어 거룩한 중매쟁이가 된것이다. 룻이 보아스와 연결하기 위해서 정보가 필요했다. 예쁜 자기 단장과 수치도 모험도 다 필요했다. 중매쟁이, 정보, 단장, 수치, 모험이 필요한데 마지막에 룻이 순종을 한것이다. 안식을 얻는데는 순종이 중요하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건 구속사를 잇는 것이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신부를 맺어야 한다.
“가치관의 변화”
이 땅에서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노동이나 대가보다 안식이 있음을 깨닫는게 중요하다. 교회에 오고 목장에 오고 나누는게 안식이다. 오늘밤 야동을 봐야되나 안봐야되나? 정말 고민하다가 오늘밤은 기도하고 자야겠다고 하는게 이게 참 안식이다. 알코올중독의 대부분 사람들은 저녁에 잠이 않와서 맥주 캔하나가 소주로 점점 심해져서 결국 맥주 캔하나가 알콜중독까지 가게된다.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는게 너무나 어렵다. 이게 안식인데 이걸 어떻게 바꿔? 이게 바뀌면 천국인데 이게 바뀌는게 어려운것이다. 렇게 가치관이 바뀌려면 고난과 사건이 와야 한다. 가장 큰 적은 자기의 옳고 그름이다.
“예수 씨”
목사님께서 예수의 씨를 말씀하셨는데 성경은 일원론이다. 오직 예수의 씨가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예수 씨는 영,호남, 보수, 진보도 아니다. 오직 예수 씨만 봐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느냐 그게 중요하다. 말씀 때문에 적용하는 사람, 사건이 오면 알게 된다. 자기 죄를 오픈하고 주께 나오는게 큰 가치관의 변화이다. 우리는 아직도 좋고 싫고 옳고 그름으로 판단한다. 말씀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니 안되는 것이다.
■ 박성아
“감사의 한주”
감사함이 많은 한주였다. 선교사님 말씀들으며 나도 목사님 자녀로서 많은 생각이 들면서 회개도 많이 했다. 엄마랑 같이 있는 동안 1월에 큐티도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1월에 상담을 받으려 한다. 엄마도 우리들 교회에서 예배 드리시는걸 거부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만들어주시는데 말씀에 따라 깨달으면서 순종했으면 좋겠다. 나도 급한게 있어서 빨리 빨리 바뀌고 싶어하는게 있다. 양육기간 동안 많이 변하게 해주셨다. 아빠가 대구에서 노숙자 사역을 하시는데 엄마도 나도 가기가 싫다. 엄마랑 같이 있는동안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또 그렇게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거 같다.
“바뀐것들”
또 내안의 혈루병이 뭔지 생각하면서 내가 나혼자 끙끙대면서 해결하려다 더 크게 터지는게 있다. 우리들 교회와서 바뀌면서 힘들면 힘들다. 도움도 청하고 속마음도 많이 나누게 되었다. 올해는 힘든것도 많았지만 감사할께 많았다. 직장에서도 좋은 파트너를 만나기 어려운데 서로 자기를 오픈하며 진정한 사랑애를 가지며 지내고 있다. 우리들 교회 오기전에는 친한 친구에게도 오픈하지 못했다. 파트너 선생님도 교회를 다니다가 상처를 받아서 않다니다가 내가 양육 받는식으로 내얘기를 하니까 자연스럽게 자기도 다시 교회가겠다고 했다. 목장에 오고 목장에서 치유받고 양육 받음에 감사드렸다. 앞으로도 힘든게 있겠지만 말씀 붙잡고 안식의 중매쟁이가 되길 바란다.
■ 목자
“사명”
직장이든 가정에서 안식을 얻으려면 자기 수치를 오픈해야 자기에게 안식이 올 것이다. 수치가 없으면 구원이 어렵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수많은 인물이 나오고 그중에 여자가 4명이 나오는데 다 수치의 대상이다. 라합은 창기였다. 조국의 배신자, 밧세바는 남편죽고 다윗에게 당한 여인, 룻은 이방인이다. 룻은 개보다 못한 인물이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동침한 여인이다. 마리아는 처녀가 잉태한 여자이다. 그당시 여자가 남편이 없는데 임신하는게 수치다. 우리가 수치를 감당해야 안식이 있다. 그래서 믿음의 모험이 필요하다. 목사님 같은 중매쟁이가 필요하다. 안식은 치열한 영적 싸움의 결과다. 그럼 어떻게 지속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까요?
사명을 가지고 있기 않으면 깨어있는게 힘들다. 고난가운데 있거나 사명을 가기고 있어야 한다. 결국 다른 사람을 살리려면 말씀을 열심히 들으면서 자기가 깨어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고난도 다른 사람을 살리려는게 없으면 깨어 있을 수 없다. 사명 감당하는게 힘들다.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깨어 있는게 중요하다.
■ 윤혜진
“주일아침”
크리스마스 오후에 김제동 토크쇼를 봤다. 한번 봤으니 됐다는 정도의 쇼였다. 친구랑 곱창전골에 술한잔 했다. 어제도 일정이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불러서 놀았다. 요리해주고 준비하는게 좋았다. 오빠랑 통화 한 것은 없고 엄마한테 메일로 편지 보냈다. 유아부를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많아 매주 아침마다 고민하지만 막상가면 얘들 보는게 정말 좋다. 얘들 보면서 은혜받는것도 많은데 주일 아침마다 힘들다.
■ 목자
내년에는 생활 패턴을 좀 바꿔 보길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해라!
■ 윤주희
“동생교회오던날”
24일 이브날 회사에서 점심먹고 외근후에 청소하는 중에 속이 않좋아서 토하고 집에 오는 길에 버스를 겨우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토하고 택시타고 왔다. 집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설사가 심해서 내일 예배는 드릴수 있을지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 아침에 일어나서 크리스마스 9시 예배 드리고 행사도 보고왔다. 하지만 수요일 찬양예배에 갈 자신이 없었다. 날씨도 춥고 몸이 않좋아서 고민하다가 집에 왔는데 목보 쓰는게 너무 힘들어서 한숨자고 일어나서 목보를 쓰게 되었다. 이번주에 동생이 드디어 교회에 오게 되었다. 아침에 동생이랑 같이 나오는데 정말 기분 좋았다. 동생이 예배들이면서 자꾸 조는 모습에 안타까웠다. 동생을 예배 후 집에 보내면서 이번만이라도 온게 다행이라는 생각이든게 안타까웠고 말씀처럼 중매쟁이 역할이 중요함을 알았다.
■ 목자
“하나님의 때”
김양재 목사님도 남편을 위해 목숨 걸고 인도해서 교회가면 꼭 헌금 설교하신다는 것이다. 전도는 내가 책임지는게 아니다. 전하는게 중요하지 예수 믿고 세례받고 일대일 받는게 아니라 전하라는 것이다. 내가 CBS에서 한 목사님이 간증을 하시는데 태국에서 10년째 선교사를 하면서 자기가 복음성가 가수로 바꾸게 되었다. 자기가 선교할 때 설득하는 자기를 보면서 결국 전하는 것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는데 전하고 끝인가? 난 정말 급하기 때문에 어떤식으로든 할꺼 같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전하는게 우리의 임무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하면 그렇게 나두지 않는다. 동생이 계속 나올 수 있게 부활절에도 데리고 오길 바란다. 하나님의 때가지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 고동욱
“인간관계”
부장님게 부서이동에 대해 말도 못했다. 내가 인정도 못받는데 얘기해도 필요없는거 같아 말안했다. 그 차장님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힘들었다. 저라는 사람이 1년동안 실적을 낸게 없어서 동내북이 되었다. 나랑 비슷한 동기들과 비교해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 그 차장님은 실력은 없으나 실적이 있으니 위에서는 좋아한다. 제가 그분과의 문제도 있고 내가 이성교제로 게으르고 집중이 안된 내 문제가 있는거 같다. 내가 그분과 일할 때 내 신경이 너무 쓰여서 힘들 때 이걸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도 이해해주지 않는거 같았다. 원인은 차장님이 아니라 내문제인거 같아. 부서이동은 말을 못했다.여자 친구가 성탄절 예배를 같이 들이게 되었다.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듣고 좋았다고 했다. 저라는 사람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인식하는데 문제가 있는거 같다. 내가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몸에 이상이 와서 힘든게 있다.
■ 목자
“압력밥솥”
부장님께 얘기를 않했기에 지금 그대로 있는것으로 선택했다. 본인은 말은 한는데 듣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 강하고 자기가 똑똑해서 말은 하는데 듣지 않는다. 자기가 다 생각해서 결과까지 내리고 자기 생각대로 한다. 소통으 ㄴ안되고 일방적이다. 조직 어디서든 윗사람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 여자친구가 성탄절 예배를 같이 들인 것은 자기를 더 사랑해 달라는 것이다. 내가 물어보면 늘 설명을 한다. 자기가 늘 익숙한것만 하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남의 얘기를 듣지를 않는다. 본인이 잘 안다고 해서 예측해서 자기 뜻대로 다해놓고 말한다. 소통이 안되는건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의대로 옳은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윗사람과 얘기해서 나쁠건 없을 것이다. 본인이 괜찮으면 얘기하고 힘들면 하지마라. 내 친구 중에 남친과 헤어지면서 오른쪽으로 돌리지 못하는 강박증이 생겼다. 진창을 받아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결국 고난 가운데 우리들 교회와서 말씀속에 회복되어 강박증이 없어졌다.
부모님이나. 지도 교수나 형이 일방적으로 지시했다고 했는데, 당신도 일방적이다. 어떤 조건에 맞으면 사랑을 주고 안되면 안주는 형태의 사랑이다. 이런게 조건적 사랑이다. 나를 진정한 인격체로 봐주는게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만 나를 봐주기에 감정보다는 일로 보여주게 되고 나중에 쌓여서 감정에 걸리게 된다. 하나주고 하나 받는게 아니라 쭈욱 주고 빵터진다. 주고 받는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결국 신경증이 생긴 것이다. 일방적인 상사를 만나 자기도 일방적인 자신 때문에 힘든 것이다. 영,육도 다 소통이 되어야 한다. 차장님, 여자친구도 다 일방적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압력밥솥에 열을 가하고 김을 빼주지 않으면 뻥터지는 것이다.
■ 김지은
“문제인식”
전화번호나 싸이일촌을 상대방이 지워버리면 내가 다시 해달라는 말을 못한다. 아직도 이런부분에 대해서 말을 잘 못한다. 모든게 사람들에게 기대않하려 하는데 기대를 많이 바란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서 최악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알아가면서 관계가 좋아지는 스타일이다. 우리는 딸이 셋인데 동생은 친구가 많고 나는 친구가 없다. 나하고는 다를께 없는거 같은데 나하고는 달리 동생은 친구가 많다. 동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스타일이고 나는 그런게 없다. 나도 동욱이 말처럼 나도 말씀듣고 나를 아는데 잘 안되는 것이다. 문제는 잘 알고 있다.
■ 목자
“착각하는나”
문제는 내가 잘아는데 못 고치겠다는 것이다. 자기가 잘알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동욱이가 가지 증상을 잘알아도 우리가 일방적이고 소통이 안된다고, 일방적인 사랑 때문이다라고 문제가 나왔다. 사람은 절대 자기 자신을 잘아지 못한다. 인생의 가장큰게 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을 때까지 모르고 하나님은 더더욱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을 통해 나를 비추는 것이다. 그리고 나눔과 다른 사람을 잘 들어야 한다. 절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게 없다. 나 스스로 안되다는 경계를 그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챕스틱을 보고 크고작다는 것은 기준이 없으면 안된다. 우리는 좌우로 치우쳐 있기에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기준으로 봐야 알수 있는 것이다.
누나가 핸드폰이 없는건 상처 받기 때문이다. 반대로 보면 사랑 받기 위해서다. 사람한테 기대하고 싶지 않은게 반대로 큰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누나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 틀이 있는데 나를 버릴까? 안버릴까? 사랑할까? 안사랑할까? 나를 관심갖고 사랑해준다는 사람을 만나면 한번에 쏟아 붓는다. 나는 비우게 되고 상대방은 감당이 안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으로 나를 채우는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기를 채워야 한다. 나는 내가 예수의 씨가 있으니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확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 스스로 채우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소중희 여겨야 한다. 이게 안되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한 것이다. 부정적 생각은 예수님이 주시는게 아니다 내가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기 바란다. 모든 인산은 죄인이다라고 생각해야 분별이 된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사람은 그 누구도 이기적이다. 사람은 안변하는데 예수 믿음으로 자기 힘으로는 절대 에수님을 알지 못해 구원 받을 수 없는데 믿음으로 자기가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우리는 법정 무죄를 받은 것이다. 우리속에 있는 죄성은 바뀌지 않는다. 예수님 때문에 닮아 가는 성화 과정이 있는 것이다.
2차세계대전때 유대인을 수용소에 가두었을 때 어떤 사람이 살아남았냐면 전쟁이 일직 끝날 것이다라고 생각한 사람이 가장 먼저 죽었다. 희망이 꺾여 절망으로 죽은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내가 죽을때까지 않끝날 수 있기에 나는 견딜만큼 견디겠다는 사람이 결국 살아 남았다. 막연한 긍정은 안된다. 사건이 오면 무력해진다. 목사님은 결혼에 대해 환상을 자꾸 무너뜨린다. 미리 예방 주사를 맞은 것이다. 현실에 기반한 영성과 긍정은 괜찮다.
우리 목원들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이 계속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