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드리는 헌신 (대상 11:15~19)
1. 주님은 환경을 탓하지 않는 헌신을 원하신다.
2.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헌신을 원하신다.
3. 생명을 드리는 헌신을 받으시고 놀라운 축복을 주신다.
■ 박성아
나는 힘들다고 엄마에게 얘기한 적 없었는데 요즘 힘드니까 옆에 있어달라고 울면서 아이처럼 처음으로 엄마에게 힘든 것을 표현했다. 엄마 성격이 뭘 물어보시는 성격은 아니셔서 엄마는 그냥 내가 사는 집에 오셔서 도배도 해 주시면서 양육 받을 때 사단이 역사해서 그렇다고 말씀해 주셨고 엄마의 고마움에 감사 드렸다. 오늘 엄마랑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 내내 울었고 선교사님 말씀도 은혜 가운데 들었다. 정리는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바꿔주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양육 받는 동안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주위의 환경을 많이 바꿔주신 것 같다. 엄마가 우리들교회를 약간 이단 같다고 하셨기에 오늘 같이 예배 드리면서 걱정을 했는데, 예배 후 엄마가 좋다고 하셔서 다행이었다. 예배 후 의자를 들고 갈 때 남의 의자까지 들고 가시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 윤혜진
선거 날 쉬었는데 주소지를 안 바꿔 놓아서 오빠네 동네에 가서 투표를 해야 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반찬을 하고 오빠가 쓰는 로션을 사가지고 가면서 분명히 오빠 집은 엉망일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실재로 가보니 더 엉망이었다. 집 곳곳의 페트병, 담배 꽁초, 배달음식 마른 것, 냉장고 안의 음식 찌꺼기들, 더러운 화장실, 싱크대에 쌓여 있는 그릇들을 보니 아침부터 일어나서 도대체 누구를 위해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다 치우지는 못하고 대충 오빠 집을 치우고 내 물건을 챙겨 가지고 나왔다. 버스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났고, 내가 오빠를 신경 안 써서 더 이렇게 되나 싶기도 해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게 좋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엄마에게 오빠의 얘길 할까 하다 대신 메일을 썼는데 쓰면서 서러워서 또 눈물이 났다. 오빠는 회사에서 인정 받는 그런 모습이기에 나 외의 가족들은 오빠를 좋게 보고 있고 스스로 잘 알아서 할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오빠에 대해 칭찬을 하셔도 나는 그렇게 보지 않기에 내가 오빠 집에 가서 본 것들을 세밀하게 메일로 썼다. 밖에서 인정 받으면 뭐하냐며 엄마 목소리도 듣고 싶지도 않다고 썼는데 엄마는 미안하다고, 기도 더 하시겠다고 하셨고,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엄마에게 오빠가 나에게 빌려간 돈 얘기도 했는데 엄마는 오빠가 요즘 돈으로 힘들었다고 하시면서 돈 관계에 있어서 뭔가 배운게 있을 것이라고 얘기 해주셨다. 오빠에 대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오빠가 좋은 소식을 들려준 적도 없고 실망만 안겨 주었기에 지금 떨어져 사는 것이 안 보여서 속 편하지만 이것이 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 목자님
나는 형이 예수 안 믿는 여자와 결혼해서 실망스럽다 짠하다 하는 느낌은 없다. 형이 나에게 실망스러운 일을 한다 해도 내가 왜 실망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형에게 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형을 위해 기도는 하지만 화가 나거나 좌절하지는 않는다. 혜진이는 나와는 반대로 오빠에게 화가 난다고 하니 오빠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감정이 있는 것이고, 타인에 대한 미움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이기도 하다. 혜진이가 오빠를 어머니처럼 돌보아 오면서 힘들고 생색도 났겠지만 혜진이가 취한 것들도 있다. 자신이 오빠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원래 돕는 것은 위의 위치에 있어야 하기에 오빠를 도우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을 나의 의로 만들어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혜진이가 오빠를 챙겨야 했던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착하다고 하는 사람은 타인보다 우월한 일, 희생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면서 보상을 찾는 교만을 갖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의인 것 인가… 오빠가 자신의 인생을 잘 바꾸지도 않고 혜진이에게 고맙다고 표현하지도 않기에 그 동안의 세월과 억울함이 밀려올 것이다. 믿음은 나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혜진이 너는 동생이다. 동생은 어떠한 상황에도 오빠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또래나 혜진이 나이에 비해 성숙하게 될 수는 있지만, 그만큼 더 아프게 된다. 도덕적, 윤리적, 휴머니즘 적인 생각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다. 동생은 동생이어야 한다. 여태까지 혜진이가 한 것은 인간적으로 봤을 때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구속사적, 성경적,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의를 쌓은 것은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한 것을 카운트 하시지, 내 열심과 의를 카운트 하시지는 않는다. 내가 우월적인 입장에서 동정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즉, 동생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발전이 있는 것인 혜진이가 오빠 집을 다 치워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이 사는 것이 오빠를 위한 것은 아니다. 혜진이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야 할 과업을 찾아가야 하는데 오빠에게 에너지를 뺏기고 있으니 밸런스가 없다. 오빠와는 문자를 주고 받거나 가끔 외식을 해라. 말씀을 들으며 오빠 생각을 할 것이기에 오빠에게 무엇을 해 줘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야 한다. 오빠랑 떨어져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극이고 집에 같이 사는 것도 극이기에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오빠가 집을 안 치우는 것에 대해 혜진이 스스로 집을 치우는 것들이 정서적, 영적으로 무언가 스스로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혹시 그런 내면의 모습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기에 더 화가 나는 것은 아닌지…
오빠는 그냥 놔두어라. 때가 되면 혜진이를 보게 될 것이다. 때가 오든지, 안 오든지 간에 전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그 때를 주실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독립시켜 주는 것이기에 이런 방법이 지혜로운 것이다. 대신 그 때가 되었는데도 연락을 안 하고 있는 것은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 윤주희
어제 송년회 겸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키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란 정말 힘든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나중에 저렇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스스로에게 들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뒤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장례식은 내일인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나는 속으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누군가는 죽음의 날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문득 3년 전의 나도 병원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이 떠올랐고, 그때의 내가 참 불쌍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눈물을 얼른 닦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눈물은 나에 대한 연민이었고 아직도 연민 속에 빠져 사는 나를 보며 한심하게 느껴졌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하고 보냈는지 생각이 안 났는데 아버지 제사여서 탄생과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며 보낸 것이었다. 올해는 수련회 마지막 날에 아버지 제사인데 하필이면 나 피곤해져서 집에 갔을 때 그 날이냐며 아버지 덕분에 교회에 온 것을 망각하고 내 편한 것만 찾으려는 이기적인 나를 보았다.
■ 김지은
겨울이 되니까 더 졸리고 학원에서도 졸고, 실재 공부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험은 내년 7월에 본다. 학원에서 누가 자고 있으면 나만 자는게 아니구나 하면서도 너무 잠이 많은 내가 걱정이 된다. 나는 보호본능이 강한 것 같다. 내가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 목자님
지은 누나는 덜 민감하게 느끼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타인의 말, 시선들이 불편하다기 보다 무언가 나에게 남겨져서 그것이 자꾸 생각나게 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 누나가 민감해 하고 더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이 그냥 넘어가는 것도 있어야 하고 무시하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누나는 다 듣던지 아예 듣지 않는 것은 건강한 의사소통이 아니다.
■ 홍태진
회사 상태가 좋지 않고 어수선한 분위기라 내가 이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일단은 적용 차 잘릴 때까지 있어보려고 해서 업무 관련 공부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예전에 엄마랑 대화가 잘 되지 않았을 때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엄마랑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인터콥 선교 교육을 받으시고 티벳으로 단기 선교를 가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아무런 사전 얘기가 없다가 이런 말을 듣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어머니가 신학을 하신다고 해서 목사님 말씀 듣고 나이와 체력 때문에 하지 않으셨는데 교회에서 봉사하고 싶으신 어머니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예전부터 어머니가 선교 가신다고 해 오셔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선교는 너무나 갑작스러워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어머니 생각에는 아들에게서 잘 다녀오라는 좋은 얘기를 들을 줄 아셨다가 따지듯이 물어보기만 하니 기분이 상하셨던 것이다. 권사 직분도 미루어 오시다가 이번에 직분을 맡고 헌금을 했다고 하셔서 내가 또 물어보니 어머니는 기분 나빠하셨다. 더 이상 엄마와 대화하면 화내실 것 같아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어머니가 없는 형편에 돈을 모으고 선교를 가시는 것에 대해 일단은 칭찬을 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지만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3일 후에 어머니에게 배낭은 잘 쌌냐고 여쭤봤더니 어머니는 건성건성 듣고 대답하시는 느낌이어서 일단 전화를 끊고 누나에게 전화를 해서 어머니와 대화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를 물어봤다. 누나는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한 잔재가 있어서 나에 대한 대화를 꺼리고 건성으로 대한다는 말을 해 주었다. 어머니는 내가 물어보고 타박하니 마음을 닫고 대충 나에게 대답하신 것이었다. 어머니가 일, 공부, 교회, 가정일 등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시려는 생각을 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누나와 어머니는 대화가 되고 매형은 1년 밖에 안 됐는데 어머니랑 대화가 잘 되는 것을 보니 매형은 일단 어머니를 잘 인정해 드린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니 그 동안 나의 인간관계가 다 이런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선교사님 설교 중 광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어디서부터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누나에게 처음으로 나의 말하는 방법, 타인과 대화하는 방법들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큰 파트는 내 모든 관계에 있어서 대화이기에 근본적인 것부터 바꿔야 할 것 같다. 선교사님 말씀처럼 1,000명의 전도에 있어서 700명의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애정결핍이 있고 아버지의 부재로 남자에 대한 롤모델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와 누나는 대화나 관계가 잘 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 목자님
인터콥은 가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오래 된 선교단체이긴 하지만 굉장히 radical적인 면이 있다. 다른 선교사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는 frontier 정신을 높이 사긴 하지만 지역신 중심적이다. 예를 들면 아프간에 신이 있는데 그곳에 직접 가서 땅 밟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연합이라는 수련회도 있었는데 평이 좋지 않고 교회 간에서도 지탄을 받고 있다. Back to Jerusalem 을 모토로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것이니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것을 예루살렘에서 이루자는 주의다.
주의 길을 간다는 것은 내가 인정 받고 박수 받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구원을 위함이다.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구분할 것이 있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은 신앙의 색이 다른 것이지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대화법의 문제는 아니다. 매형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시니까 다 받아줄 수 있는 것이기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신앙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대화로 문제삼지 말았으면 좋겠다.
형의 성향을 정리해 보겠다. 성실, 꾸준함, 급함, 정리정돈, 활동적, 화 등의 단어로 표현될 수 있겠는데 이런 것들을 관계로 예를 들어 보자. 형이 여자를 만났을 때 여자가 마음을 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형은 활동적이기에 다음 약속을 계속 잡는데 이것은 여자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여자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좋은 방법인데 형은 그러지 못한다. 형은 관계에 있어서 급하게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이것을 상대방이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다. 형이 인정 받고 싶은 욕구도 있는데 활동적인 성향이 있어 상대방에게 무언가 해 줬지만 그것이 인정이 안 되면 화가 올라오는 것이다. 형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점은 이런 것이다. 형의 성향을 뒤집어서 얘기하면 굉장한 장점이 된다. 컨트롤이 잘 되면 좋을 것이다. 인정 받고 싶어 하는 것을 좀 줄이고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상대방이 편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임을 상기하라. 섬김은 형의 달란트인데 그것이 상대방이 느끼는 편함과 동반이 되어야 한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급함이 플러스이지만 인간관계는 곱하기이기에 잘 해야 한다. 한 번 잘못하면 0을 곱하게 되기 때문이다.
■ 고동욱
양육 과제를 몰아서 낼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 이런 양육이 뻔한 과정이겠거니 생각을 했고 양육을 스스로 하겠다는 마음 보다는 전 목장에서 받으라고 해서 시작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에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있다. 전에 선교단체에서도 몇 년간 훈련을 받았고 제자 훈련도 받았지만, 얼만큼 적용을 잘 하고 사느냐가 핵심이라 여겼기에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보았고, 아무 은혜도 없고 성경을 봐도 느껴지지도 않아서 일대일 양육은 중단했다.
화요일에 여친과 우리 교회에서 성탄예배를 같이 드리기로 했다. 계시록을 큐티하고 여친을 만나러 갔는데 큐티한 것과 신앙적인 부분에 대해 여친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마침 여친이 성경을 읽었기에 기분이 좋았다. 여친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여친은 즐겁게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가치관이 다르니 결혼 후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난 회사에서 무책임 하고 신뢰를 잃고 지내왔다. 부서에서 관리하는 업무를 차장님과 같이 2년 동안 해왔는데 차장님은 나에게 솔직하게 대해 주시지 않고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것만 같다. 매번 혼내시고 실적에 내 이름을 올리시긴 하지만, 나는 내 이름이 올라가는 것도 싫다. 앞으로 최소한 2년 간은 같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버렸는데 차장님은 하지 못하시는 일이어서 나보고 다 맡아서 뒤치다꺼리를 하라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2년 동안 참고 해 왔던 것이 생각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예전에 다른 부서 부장님이 오라고 하셨지만, 그때는 내가 지금의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거절도 했다. 이번에도 그 부장님께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하셨는데 그 부장님이 종교가 이상해서 안 맞을 것 같다는 고민이 든다.
■ 목자님
솔직하게 이런 제안이 들어 왔고 나의 생각은 이런데 부서에서 어떤 필요가 있는지 위의 분과 얘기해 보는 것이 좋겠다.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보다 상의를 하는 것이 낫다. 상의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보고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이것의 전제는 본인의 가치관이 확실히 잡혀 있으면 천국과 지옥인데 내가 약간의 세상적인 가치관이면 전제가 되지 않는다. 여친이 신앙적으로 동욱이를 끌어주길 바라는 것은 자기에게 더 잘하라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타인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쓴느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성품적으로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 강원희
원희야 매번 너 스페셜 해야 되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