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주제 : 배려
말씀 : 룻 2:11-23
배려하면 여유있는 자가 남에게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배려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경의 명령이다. 고대 그리스 극작가 메난드로스는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배려라고 했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얘기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는 배려하려다가, 좋은 일을 하려다가 싸운 적이 많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배려는,
첫째로 믿음으로 배려하는 것이 진정한 배려다.
대상을 차별하지 않는다. 보아스가 배려하는 대상은 이방 여인, 그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원수처럼 여기는 모압여인이다. 사회는 배운 자가 더 이기적이고 가진 자가 더 무섭다고 한다. 학력이 높을 수록 지연, 학연, 인연을 더 중요시 여기고 남녀 평등의식도 아주 낮다. 어떤 목자님이 말하길, 날 존경하는 사람 앞에서는 권위있게 지적하겠지만, 목자를 우습게 보면 더 품어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어떤 환경도 받아들이는 것이 배려이다. 의도적으로 배려하는 인격의 훈련을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문제 제기를 하고 상처받았다고 하면, 그런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배려는 믿으에서 출발해야지, 본질적인 배려가 된다.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면 정말 싸움만 난다.
믿음의 사람이어야 진정한 배려를 주고 받을 수 있다.
보아스와 룻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려를 할 수 있었다. 보아스는 룻의 믿음을 들었고 인정했다. 시모를 위해 매일 이삭을 줍는 룻의 소문이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들렸다. 내가 예수 믿은 것은 비밀이 아니다. 반드시 알려지게 되어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소문을 내신다. 그래서 룻도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믿음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소문을 내신 것이다. 내 믿음의 소문은 어떻게 나고 있을까요? 가까운 사람부터 눈살 찌뿌리는 믿음의 소문은 아닌가요?
12절 :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축복을 했다. 창세기 12:1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곳으로 가라
룻이 떠난 것을 아브람이 떠난 것처럼 감히 견주었다. 출12:1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보아스에게는 룻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온 것은 오히려 여호와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 오셨다는,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그냥 어쩌다가 나오미 집에 시집와서 베들레헴으로 온 룻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하나님을 좇았고 믿음의 일을 했기 때문에 온전한 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사사시대에는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 이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 감격이 다 식어버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재미가 다 없어졌다. 그들이 무시하는 모압 여인 룻이 도리어 사사시대의 이스라엘과 다른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면서 이스라엘로 들어왔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룻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부르고 등따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데, 은혜를 갈망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쫓아온 룻이었다.
레19:9-10 너희 땅에 곡물을 벨 때에 너희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희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곡식을 남겨두라는 명령이 있다. 밭 모퉁이는 원천적으로 거두지도 말라고 하셨다. 이런 말씀을 레위기에 주셨는데, 이 말씀이 실천된 곳은 다른 어떤 곳에 없다. 이 말씀을 실천한 사람이 바로 보아스다. 모두가 자기 옳은 대로 행하던 그 시대에 보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퉁이를 열어놓고 먹였다. 보아스가 말씀대로 사니까 말씀대로 사는 룻을 분별해 냈다.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가 장차 부인을 위한 배려가 되었다.
보아스는 어떻게 룻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까? 결정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바로 어머니가 이방인인 여리고 기생, 라합이었다. 기생이던 어머니가 나라와 언어, 종교를 버리고 상천지 하나님 위에 신이 없다는 이 믿음 하나 가지고 여리고를 배반하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줬다. 이것을 민족주의적 입장으로 보면 완전 매국노이다. 여리고 입장에서 보면 죽을 때까지 라합을 나라를 팔아먹은 반역자 취급했을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방인, 기생의 아들이기에 죽을 때까지 하나님만 부르짖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머니와 똑같은 모압 여인 룻이 나라, 종교, 언어를 버리고 선교사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떠난 것이다. 룻을 보았을 때 자기 어머니를 보았을 것이다. 바로 이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보아스는 너무나 늙은 노총각인데 믿음의 처녀가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믿음이 워낙 좋기 때문에 보아스와 비교되는 믿음이 하나도 없다. 외적으로 형편없어도 같은 입장의 룻을 보니까 같은 입장의 보아스가 아니면 이것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우리가 결혼을 할 때도 바로 이 한사람이면 된다. 나를 알아주는 한사람. 이 한 사람이 있으면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런 한 사람, 이런 보아스가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룻이 이뻐서 결혼을 했을 것이다가 아니고, 보아스와 룻은 공통점이 생겼다. 공통점이 있는 여러분이 이런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믿음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보아스는 감격이 되는 것이다. 보아스가 그 믿음을 만났다.
보아스는 라합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었다. 룻도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된 것이다.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룻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을 것이다. 보아스가 이스라엘 처녀들과 놀아야 할 텐데 좋은게 좋은건 아니다. 믿음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런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 보아스는 정확하게 믿음으로 룻을 분별을 했다. 룻이 하나님이 내 날개 아래 보호함을 받으라고 내게 보내준 사람이구나라는 맘을 가지게 되었다. 13절: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보아스가 믿음 때문에 내가 너를 돕겠다는 것을 밝혔고 룻도 보아스 당신이 은혜입기를 원한다고 했다. 인생에는 수많은 수동적인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자기가 과부가 된 것도, 베들레헴에 따라온 것도, 보아스 밭도 간 것도, 다 환경에 따라서 룻이 끌려갔지만,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그 상황, 상황에서 열심히 말씀 따라서 내가 진짜 열심히 살다보면 그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환경들이 되는 줄 믿는다. 어쩔 수 없이 가야되는 길에서 항상 나는 적극적으로 내 삶을 오늘 잘 살아야 한다. 어떤 환경이 나한테 오든지 잘 살아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되는 것이다.
목사님 - 룻기 할 때 교회 개척을 하면서 계속 이것을 읽고 묵상하면서 인도함을 받았다. 시집살이, 집순이로만 살던 내가 어떻게 유명한 목사님들께 큐티 선교회의 이사가 되어 주시기를 구했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학교를 같이 나온 것도 아니고 오직 기적적으로 코스타 집회에 가서 제 강의를 한 번 씩 들어보셨다는 것, 그것 밖에는 연줄 될 것이 없는데, 큐티 선교회를 하면서 이사님이 되어주시기를 원했을 때, 그 바쁜 목사님들이 3-4일 안에 모두 연락이 되고 모두 허락해주셨다. 찾아간 것도 아니고 비서를 통해 전화로, 한 마디만 했는데, 사실 무모한 일이었다. 내가 교양이 있고 얌전해도 이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과 열등감이 없었기 때문에 신들매도 구하지 못하지만, 보아스에게 은혜입기를 구하나이다 한 것처럼, 시녀도 못되지만.. 과부에 서리집사에 불과했지만 은혜 입기를 구했을 때 yes를 해준 것이 룻 같지 아니한가.
두 번째는 믿음으로 배려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려하는 것인가
(1) 룻이 배불리 먹고 남을 정도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14절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자 옆에 앉으니 그가 복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2) 곡식 단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못하게 함-15절 룻이 이삭들을 주으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주위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이것도 룻 입장에서 배려해 준 것
(3) 조금씩 뽑아 버려서 자존심상하지 않게 줍게 했다. 16절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보아스는 재물이 많을 뿐 아니라 그 지방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정치적 출세를 위해서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
(4) 실제적으로 배려를 했다. 17절-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은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한 에바는 22L, 열두 되 정도 분량이니까 이거 가지고 룻과 나오미가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것, 형식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5) 시모를 잘 섬기도록 배려를 했다. 18-19절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은 것을 보이고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시모가 극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6) 오랜 기간 이삭을 주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배려를 했다. 23절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으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구체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숨가쁘게 동서남북으로 배려를 한다.
(7) 그녀가 그녀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배려를 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당연히 얻어먹을 권리가 있다고 룻에게 곡식을 마음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는 자는 은혜로 주지만, 받는 자는 노력해서 먹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이다. 이것이 진짜 배려이다. 그냥 이삭이나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진짜 사명을 감당하도록 일거리를 주고 도와주고 지속적으로 살피고 그 입장에서, 룻을 무시해도 되지만 룻이 앞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될 것을 미리 바라봤다. 사랑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되지만 열매는 지속적인 긴 배려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만남이 정말 최고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배려의 결국은 구원을 위한 배려가 되어야 한다.
20절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나오미는 보아스의 배려를 통해서 후손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보아스는 이 집에 기업을 물러 주려면 대단한 손해를 봐야 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나의 기업을 무를 근족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죽을 것 같은데 예수님만 만나면 나는 나의 기업을 물러주시는 그 구세주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모든 문제가 끝나게 될 줄 믿는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룻이 보아스에게 은혜 입은 이야기를 했을 때 룻은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었다는 것을 몰랐지만, 나오미가 깨닫게 해준다. 이것이 최고의 동반자이다. 서로 격려하고 깨닫게 해주면서 영적 구원을 이루어가게 하는 것이 최고의 배려이다. 영적 필요를 생각해서 깨어있어야 한다.
22절 - 우리가 나가야 할 밭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분별이 필요하다. 구원을 위해서는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 때문에 우러나오는 사랑이어야 한다. 믿음으로 분별을 잘 하는 비결은 내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가? 영혼 구원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다. 수요 예배가 아무리 추워도 예배를 일찍 끝내거나 안하는 것이 아니다.
23절 - 매일 섬겨야 할 시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이삭을 맘껏 주을 수 있는 것처럼 시어머니를 잘 섬길 때 전도가 잘 될 것이다.
목사님-때로는 평신도, 여자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눈치를 봤는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눈치를 보았는데, 이제는 눈치보지 않고 맘껏 전도를 하게 됐다. 어려움도 많고 사단이 방해하는 일도 많지만 보아스가 울타리가 되어서 꾸짖지도 않고 맘껏 줍게 했다. 이것이 감격, 감사가 된다.
보아스의 배려와 룻의 배려받을 만한 적용이 있었기 때문에 이삭줍기가 가능했다. 내 배를 채우는 이삭이 아닌, 구원으로 인도하는 이삭줍기 사명을 허락하신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는가?
모든 것을 읽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가 기업 무를 자를 만남으로 소망을 회복하는 장면이 기록되었다. 이 만남은 배려에서 비롯되는 것을 봅니다. 배려는 믿음의 배려여야 합니다. 대상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의 사람이어야 진정한 배려를 주고 받을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실제적으로, 지속적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배려의 결국은 구원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힘든 부모님 가운데 이렇게 효녀가 나오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우리 다 천국에서 다 해같이 빛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겸손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믿음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충성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순종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사랑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찬송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불타는 사명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헥헥;;
기도제목 나눕니다~^^
강은영
1. 건강을 생각해서 밀가루 음식 절제하도록
2. 사건에 휩쓸리지 않고 말씀에 서 있어서 기도할 수 있도록
3. 눈치보는 배려나 소문에만 귀길울이지 않고 진정성 있는 배려를 하도록
박은아
1. 진로 결정 잘하고 자유하도록
2. 마음에서 우러나는 배려를 할 수 있도록
3. 배우자 만나는 준비가 잘 되어지도록
4. 때에 맞는 섬김을 잘 할 수 있도록
박자영
1. 내 밭에 있으라 하신 말씀처럼 공동체 안에서 배우자에 대한 소망 갖기를
2. 구원을 위해 배려할 수 있도록
3. 남동생 부부가 예배에 집중하도록
4. 전도대상자들의 마음과 때가 잘 준비되도록
5. 고등부 학생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 나오도록, 지켜주시고 부모님도 만져주시도록
원은숙
1. 회사 조직 개편 잘 적응하며 사명을 찾아 성실히 임하도록
2. 회사에서 보아스같은 겸손과 배려로 직원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3. 믿음의 배우자에 대한 소망을 갖고 보아스같은 사람을 만날수 있는 룻과 같은 믿음 갖기를
조미나
1. 장래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 인생에 대한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 안에서 쉼과 자유를 누리도록
2. 가족이 건강하게 서 갈수 있도록
하주희
1. 남자와의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존감이 회복되기를
2. 직장에서 맡은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3. 가족구원
진경언니 23일에 드뎌 오시구요~ 시골에 계신 승아언니를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요~
주희랑 윤선언니~ 이번주에는 얼굴봐용~^^
Bless you~! 하트뿅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