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만남하면 기대되고 설렌다. 기대하고 만났던 만남 중에서는 지나고 보면 최악의 만남이 많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최고의 만남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 나오미도 룻도 결혼할 때에는 설레면서 기대하면서 만났을 것이다. 근데 좋은 결혼을 했지만 하고 나니 자식 하나 남기지 아니하고 죽어버린 남편 때문에 젊은 나이에 둘 다 과부가 되었다. 만남의 행운과는 그녀들에게는 멀어진 말이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 후에 믿음의 적용으로 광야 같은 베들레헴이 룻에게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믿음으로 떠났더니 진정 최고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남에 대해서 말씀을 들어보려고 한다.
1. 은혜로 예정된 만남이다.
이 세상의 만남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장 중요하고 부모님과의 만남, 배우자의 만남 이 세가지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면 우선순위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지 배우자를 잘 만나고 부모님과의 만남이 최고의 만남이 될텐데 인생은 그렇지가 못 하다. 부모를 잘못 만나고 배우자를 잘못 만나고 그런데 잘못 만나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세상에서의 만남은 좋고 나쁘고가 없는 것을 보게 된다. 룻도 세상적으로 모압의 부모님을 만났으니 부모복도 없고 남편복도 없고 자식복도 없는 그런 여자였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감사의 선택으로 죽음에 이르는 충성으로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떠나는 것 자체가 최고의 준비다. 믿음으로 떠나는 것 하나하나에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주실 것을 믿는다. 전혀 새로운 만남인 보아스가 은혜로 준비되고 예정되어 있었다. 추수할 때를 보니까 보아스가 있는 것이다. 나오미의 친척이 아닌 엘리멜렉의 친척이라는 것은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있는 친척이라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친척이 있는 것이다. 고헬의 책임을 질 친척이 났는데 게다가 너무나 보아스(힘이 있다는 뜻)가 힘 있고 유력하고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물질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엘리멜렉과 보아스를 비교하면 보아스는 흉년의 때에 떠나지 않은 사람이다. 많은 고난을 겪고 더 힘 있는 자가 된 것이다. 보아스의 어머니는 여린 기생 라합인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니까 라합이 너무나 기도하는 어머니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방출신의 기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를 받았겠는가. 겸손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기도를 먹고 자란 것이다. 예수님의 조상이 자기 어머니 인 것이다. 보아스가 흉년을 겪고 기도 때문에 풍년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여러분들은 흉년을 당했을 때에 살 길을 세상 모압으로 놓고 떠나는 엘리멜렉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흉년 든 땅에서 머물고 있는 보아스를 택하겠는가? 엘리멜렉이냐 보아스냐 만남의 문제가 우리 인생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오미는 자신은 실패했던 결혼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룻에게는 은혜로 최고의 만남이 준비되어 있다고 암시를 받으니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 힘으로 어떻게 사람 잘 만나는가?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 믿음의 분량만큼만 만남을 가지겠지만 ‘주님 나는 내 육신은 엘리멜렉을 원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보아스를 만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기를 바란다. 보아스를 만나기 위해서 은혜로 예정되었지만 직접적인 만남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2. 소중한 만남의 태도가 필요하다.
탁월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려면 삶에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그녀는 모든 사람과 환경을 소중히 여겼다.
룻이 재혼을 포기하고 적용으로 시어머니를 따라왔다. 대단한 복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당장 굶어 죽지 않고 먹고 살기 위해서 막노동을 해야 한다. 구걸하고 이삭을 주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생기는 거 하나도 없이 기대할 수 없는 나오미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나오미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의리로 쫓아서 베들레헴까지 따라왔다. 그러나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이삭을 줍게 되고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한 만남을 소중히 여길 때에 그 만남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국 예수님의 조상으로 은혜와 영광의 여인으로 바뀐 것이다. 나한테 오는 소중한 만남 불쌍하고 나이 많고 초라한 어머니라고 함부로 여길 법 하지만 그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한테 절대적인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너무나 예의 바르게 ‘나는 모압 여자다’ 라는 것이다. 룻은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데 어머니는 천국 가치관을 가지고 베들레헴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나 어머니에게 천국의 가치관을 물어보는 것처럼 우리도 적용하기를 바란다. 내 밭도 아니고 남의 밭에서 거지처럼 구걸을 해야 되는데 그냥 가도 되는 작은 일이지만 물어봤다는 것이다. 룻은 이방여인이지만 이미 은혜를 아는 여자인 것이다. ‘은혜를 입어야지 제가 이삭을 주울 수 있겠네요’ 하는 언어와 태도가 최고의 만남을 가져오게 하는 비결인 것을 믿는다. 가치라는 것이 있다. 돈, 학벌, 권세, 재미, 좋은 차 등 모두 가치이다. 그런가 하면 믿음, 소망, 사랑도 가치이다. 겸손도 의리도 효도 가치이다. 절대적인 가치가 있고 상대적인 가치가 있다. 이 고부간에는 상대적인 가치를 버리고 절대적인 가치로 뭉쳐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적인 가치를 얻으려고 절대적인 가치를 포기한다. 성공을 위해서 효를 버리고 육체의 사랑을 위해서 신의를 버리고 불행이 쉬지를 않는다. 천국은 가치관이다. 효의 절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이삭을 주우러 가도 될까요 이삭을 줍겠어요’ 하는 이것이 천국이다. 룻이 형편없는 늙은 어머니를 예수 가치관이 있으니까 모신거 아니겠는가. 다른 다 떠나서 예수 가치관을 넣어줘야 하는 것이다. 룻이 그렇다면 보아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보아스도 얼마나 이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지 봐야 한다.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보아스도 금새 만난 가난한자들을 소중히 여기고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고 복을 빌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을 소중히 여기는 보아스의 태도가 참 친절하고 아름다운데 이방소녀인 뉘 소녀냐 하고 물은 것이다. 영적 출신을 묻는 것이다. 믿는 사람인지를 묻는 것이다. 룻과 보아스가 동시에 사환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스라엘 율법으로는 가난한 자, 나그네, 과부들은 곡식을 끝까지 못 따고 이삭을 남겨두게 되어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삭을 물어볼 필요 없이 주워 오면 된다. 마땅히 주워와도 되는 일을 룻은 사환을 쫓아가서 정중하게 부탁을 하였다. 이순간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그녀의 태도가 그녀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사환의 보고를 소중히 듣는 보아스도 마찬가지인 것이 사환의 말을 소중히 듣는 것은 밑의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삭 줍는 일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하는 하찮은 일인데 룻이 너무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옆의 사람들이 감동할 정도로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해서 그 소문이 들리는 것이다. 자기 하찮은 일을 열심히 할 때에 옆에 사람들이 감동을 하여 예수를 믿고 싶어 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악해서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주위의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교회, 목장에서도 여러 가지 만남들이 있다. 그 만남들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안 들 수도 있다. 룻인들 나오미가 마음에 들었겠는가. 내 손이 가고 발이 가고 헌신이 가야 하는데 생각만 하면 짜증이 나는 시어머니를 너무나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결국에는 최고의 사람을 만난 거 아니겠는가. 남편과 아내가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만남들이 악한 만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붙여주신 만남인 것이다.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목장 식구들도 나에게 붙여주신 만남인 것이다. 그런데 내 유익을 따라서 내 마음, 감정, 신분에 따라서 차별하고 구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에게 은인이 될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은인도 원수도 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서 여러분들에게 은인도 원수도 보내시는 것이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우연한 만남이 룻에게는 최고의 만남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전에 적용이 끝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우연한 만남이 심판의 만남이 될 수도 있다. 엘리멜렉하고 결혼할 때 나오미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지는 않았다. 사명을 감당하는 결혼생활은 아니었다. 문제가 없다고 하나님의 상인 결혼은 아닌 것이다. 내가 제일 원수가 집에 있다. 그런데 원수를 만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인 것이다. 믿음의 분량만큼 맞는 보내주신 원수라는 것이다. 우리가 고른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의 따라서 고른 사람을 원수라 부르면 되겠는가. 그 우연 속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섭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룻에게는 상이 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심판을 통해서 훈련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세상에는 우연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뜻이 있어서 그 사람을 보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셨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만남을 물을 주어가면서 가꿔가야 하는 것이지 버려야 하는 만남이 아닌 것이다. 내가 싫어서 버리면 후회할 일밖에 없다. 예수가 없는 만남은 최악의 만남이다. 자기 부족을 보니까 룻처럼 자기가 만나는 사람을 자기 이익에 변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소중히 여기고 나의 자유 의지로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는 누구라도 최고의 만남으로 이끌게 될 것을 믿는다.
3. 천국 공동체의 만남이 절대적인 것이다.
룻 보고 나의 소년들과 함께 있어라 공동체를 떠나지 마라 룻을 도와주고 싶어도 보아스의 밭이 천국 공동체인데 이 밭을 떠난다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붙어만 있어도 변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단이 건드리지 않게 보호해 주겠다.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떠나지 말라고 한다. 천국 공동체에서 보아스는 도와줄 것만 있는 사람이다. 은혜를 또 알아서 목장에서도 나 같은 것을 이렇게 나 같은 것이 무엇이라고 목자님께서 기도를 하시고 나 같은 것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 주시고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천국 공동체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서로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생색내지 않는 줄 믿는다. 천국 공동체를 믿고 누리는 것은 자기한테 천국이다. 나오미는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평생에 룻 하나 건졌다. 나오미 인생에 최대의 축복은 남편도 아니고 두 아들도 아니고 영적 동반자 룻을 만난 것이다. 부부 사이라고 부모 자식이라고 영적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룻을 만나기 전에는 인생이 외로운 것이다. 자기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왕이면 처음부터 룻 같은 자식과 배우자를 얻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런 사람 하나 있다면 내 인생은 성공한 인생인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불쌍한 과부 둘이 모인 것이지만 갖은 흉년 다 겪고 룻 하나 건져내고 룻도 모압땅에서 살다가 믿음의 사람 어머니 한 사람 건져내서 이 둘의 만남이 인류 최대의 영적 계보를 가져오는 최고의 만남을 가져오게 하는 비결이 된 줄 믿는다. 믿음에 대해서는 서로 말하기를 그치는 관계 눈빛만으로도 헤아릴 수 있는 영적 동반자를 얻고 나면 내 인생의 흉년이 끝나고 보리추수 할 때에 이른다고 한다. 룻은 세상적으로 텅 비어서 복이 없는 사람 같았지만 천국 공동체의 지체인 나오미를 만나서 하나님 만나고 영적 부모님 만나고 그러더니 진짜 육적 배우자를 다시 만나고 자녀도 잘 만나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 천국 공동체 우리들 교회의 나눔을 통해서 최고의 만남으로 인도하는 것을 보면 감사하다. 눈물의 권면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듣게 해주시고 서로 목자들이 보면 자기 죄를 보는 이런 천국 공동체의 권면이야말로 장차 최고의 만남을 만나게 한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을 소중히 여길 때 최고의 만남을 만나게 되는 줄 믿는다. 항상 나의 유익을 고하지 아니할 때 인류 최고의 배우자가 와서 룻에게 청혼을 하게 되는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