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내용
선택 (룻기 1:6~14)
대선을 앞두고 누구를 선택을 할 것인가가 화두이다. 훌륭한 대통령을 선택하는 조건은 첫째가 건강이고 두번째는 비전이고 세번째는 설득력이라고 한다. 일생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을 하게된다.
1. 말씀이 들리는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다. (6절) 찬송의 떡집에서도 말씀이 안들리더니 영적으로 멸시받는 모합 땅에서 드디여 하나님 말씀이 오늘 들렸다. 나오미는 즐거움과 희락이라는 뜻이 있는데 즐거움과 희락의 사람이니 믿음의 가문 유력한 가문에서 즐거움과 희락의 사람이라서 모합으로 이민을 갔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아들이라고 했는데 원문에는 두 아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기때부터 말씀을 키워야 하는데 말씀의 집에서 그모스 신을 섬기는 모합 땅으로 세상으로 이민을 갔다. 즐거움과 희락의 성격으로 고난을 잘 헤쳐나가다 보니깐 남편이 죽고 아들 둘이 죽기까지 말씀이 안들린 사람이 나오미이다. 착하고 성격이 너무 좋으면 인생이 심각하지 않아서 말씀이 안들릴 수 있다. 무엇으로 무엇인든 긍정으로 생각하다보니 기가막힌 고난에서 성품으로 넘어가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분이 택자이다보니 너무 심한 고난을 자초한다. 나오미의 성격은 낙천적이였다. C.S 루이스가 고통은 귀먹은 사람의 마이크라고 했다. 하도 안되니깐… 흉년을 피해서 점점갔는데 더 큰 흉년이 오는 것이다. 드디여 택자가 되어 말씀이 들리게 되었다. 권고는 방문하셨다는 뜻도 있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시니깐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가 하나님의 총애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합 땅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정신을 차린다. 너무 유력한 가문에서 고난이 와도 피한방울 흘려도 꼼작도 안하고 항상 즐거움과 희락의 표정으로 있다가 드디여 말씀이 들린 것이다. 정신이 들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고 회개는 유턴을 의미한다. 방향을 완전히 돌이켜서 모합에서 이스라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말씀에 근거한 것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직도 유턴이 없고 변명이 많고 회개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더 손을 보셔야 한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세상 축복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그 축복은 돌이여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이 흉년으로 말씀이 들렸기 때문에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미리미리 말씀이라도 들어두면 나중에 돌이키는 과정이 더 빨라질 것이다. 나오미도 미리 들어 두었기 때문에 돌이키는 것이 빨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 좋은 소문이 모두에게 들려서서 유턴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2. 자유의지로 선택하게 하신다. (7절~13절) 너희는 모합. 너희 남편. 어머니집 고향으로 돌아가라.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내가 지금 아들을 낳아서 계대혼인으로 너희게 줄 아들이 없다. 오늘 밤에 아들을 생산한다고 해서 그것을 기달려서 너희들의 신랑이 되기에는 너무 멀다. 어떻게 기다리겠냐. 하나님이 나를 치셨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슬프다. 이러면서 돌아가라고 한다. 이 좋은 말씀의 떡집. 찬송의 떡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 혼자만 돌아가는 것이 말이 되는가? 왜 며느리보고 너는 같이가지 말자. 라고 말하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이 큐티이다. 왜 좋은 길인데 같이 예수믿고 가자는 것인데. 나오미 자기는 회개를 했는데 같이 가자고 안그러는가? 이런 본문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어야 한다. 이 좋은 것을 같이 가자고 권하는 것이다. 회개에서 유턴한 것. 그런데 같이 가다보니깐 자기가 이렇게 가기까지 선전수전과 공중전을 다 걸치며 남편 두아들 잃을 때까지 자기가 정신을 못차렸는데 자기는 모태신앙인데 이들은 불신인데 이것을 그냥 가자고해서 될 일이 아니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은 보이는 것이 없는 것. 이것은 십자가의 길이다.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보장이 되어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가도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지금 남편잃고 두아들 잃은 세과부가 들어가며 얼마나 혀를 끌끌차겠는가… 게다가 결혼과 거리가 멀고 여호와의 총애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기 자부들하고 누가 이스라엘 청년들이 결혼을 하겠는가? 앞길을 봐도 깜깜한 것이다. 게다가 나오미가 가자고 하는 이 믿음의 좋은 땅은 자신이 이미 떠났던 곳이였다. 왜 그 좋은 땅을 옛날에 떠났고 떠나고 나서 믿는 사람으로써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고 남편죽고 두아들 죽은 것밖에 보여줄 것이 없으니깐 더더욱 권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나오미는 보지 못하는 것을 믿고 바라는 실상을 놓고 걸어가는 그 하나님 나라. 천국을 확신하며 자기는 걸어가지만 자부들은 아직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자부들의 상황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앙은 고집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은 다른 사람도 빨리 만나면 좋겠지만 자기가 고집스럽게 말씀을 안들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자부들이 택자라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든지 돌아오게 하실거다. 주님을 만나게 하실 것라는 나오미는 믿었다. 그 일은 내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래가지고 이땅에서 자기는 최선을 다해서 재생의 길을 열어줄려고 애쓰는 매력적인 시어머니로 돌아온 것이다. 인격적인 접근을 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나를 치셨기 때문에 나는 죄인인 것이다. 그런 어떤 마음이 있을 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17세기 어떤 수녀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다. 주님 주님께서는 재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하여금 말 많은 늙으니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때나 무엇이나 한마디 해야된다는 치명적인 버릇에서 걸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사람을 바로 잡고자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옵소서 저는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재가 점점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에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선뜻 칭찬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시옵서소 #8211;아멘- 신앙이라는 것은 항상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항상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오미는 자기 며느리들하고 같이 가면 좋다. 이 길이 외롭기 때문이다. 그렇치만 자부들을 위해서 좋은 길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갈 길은 이타적이고 야망이 아닌 사명의 길이고 영생의 길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은 좁은 길이다. 이길은 너희 힘으로 갈 수 없는 길이라고 간절한 심정을 전한 것이다. 나오미는 자부들이 내 옆에 있어 주기만을 바라지 않고 객관적인 현실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너희들은 자유의지로 선택하라. 내가 나는 너무 좋아서 가는 걸 온 몸으로 보여주는 것 그러나 그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다. 너희 자유의지로 선택해라. 선악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먹지 말라고 했지만 봉쇄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깐 선악과를 먹고 안먹고는 너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열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메뚜기같고 아낙자손은 장대해서 도전히 절대로 올라가서 정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호수아하고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의지로 열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알아서 인도해주시면 좋겠지만 하나님이 이런 선택 하나하나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해 가신다. 우리가 좋은 선택을 하면 좋겠지만 그러나 잘못된 선택을 통해서도 우리가 택자라면 훈련해 가신다. 우리는 다 좋은 결혼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알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믿음에 결혼을 하라고 하지만 그래도 자부들의 믿음이 각각 다른 것처럼 그 상황에 따라서 그렇게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결혼을 할 때 신결혼을 하면 이래야 한다. 나는 가진 것이 없어요. 배운 것이 없어요. 우리집은 상처가 많아요. 그러니깐 다른 사람과 하세요. 나는 주님을 믿고 가지만 당신은 육신적으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신앙인이다. 아니 믿음만 있으면 됐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완고한 사람인 것이다. 나오미가 그런 것이다. 이 길이 좋지만 너희들이 가기에는 어렵다. 자기가 선택해라. 회사면접을 볼때도 항상 솔직하고 진솔한 것이 제일 최고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냉정하게 들리겠 지만 가장 상대방을 위한 배려이다. 좋아서 가는 길이 아니다.
3. 사망과 생명의 선택은 우리가 한다. 사망과 생명의 선택은 이렇게 회개해서 자기 죄를 보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자유의지를 선택을 하라고 그랬는데도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고 사망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생명의 선택을 해라. 선택은 두 길이 있는데 은혜의 길과 멸망의 길이 있다. 시어머니가 강건을 하니깐 오르바는 떠났고 룻은 남았다. 맨 처음에는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따르겠다고 했지만 결국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남았다. 그렇게 오르바는 성경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방면 룻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14절) 입맞춤을 조심해라. 유다도 입맞춤을 하고 떠났다. 오르바는 작은사슴이라는 뜻이다. 작은사슴은 얼마나 가련하고 연약하고 보기에도 착해보인다. 룻은 선한 벗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르바가 외모로 가련하고 착해 보이는 용모를 가지고 세상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역할을 했다. 그 이름에는 돌아오는 자라는 뜻도 있다. 우리는 착해보이는 용모에 속으면 안된다. 위클리프 성경사전을 보면 거기의 랍비의 문헌을 이용하여 이 오르바가 골리앗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골리앗은 다윗의 물맷돌에 맞아 죽은 블레셋의 거인 장수이다. 키가 여섯규빗 한뼘이면 지금 3미터가 헐씬 넘는 다윗이 쳐다볼 수 없는 장대한 장수였다. 오르바는 떠나서 세상적으로 너무 잘 살았다. 장군을 키워낸 엄마가 되어 나중에 지옥에 갔다. 오르바는 골리앗의 어머니가 되었고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 위클리프 성경사전에는 오르바가 룻과 함께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십보를 따라가다가 돌이켜 그모신 그 백성에게 돌아갔는데 공교롭게도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이 40일 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자녀교육에서 쉐마를 낭송할 때 꼭 낭송해 준다. 이제 오르바 의 길이 멸망의 길이고 룻의 길은 생명의 길이다. 결혼할 때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하나의 길이 너무나 큰 차이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말을 문자적으로 그럼 뭐야 그 교회를 간 사람은 룻이고 안 간 사람은 오르바야. 이렇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다. 큐티 말씀 적용이라는 것은 재가 자유의지로 선택한 재적용이다. 떠난 오르바도 남은 룻도 다 착한 며느리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오르바의 친정이 부자여서 돌아 갔고 룻은 친정이 가난해서 시어머니를 따라갔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가진 것이 있는 자는 떠나기가 싶다. 오르바도 처음에는 믿는 시어머니 따라가기를 신앙적으로 결단을 했었다. 그러나 구원은 만세전부터 예정된 것이지만 믿음은 우리의 선택인 것이다. 울고 입맞추고 지금 너무나 교양있게 두번쯤 강권을 한 다음에 헤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옳고 그름을 인간적인 사람은 이해가 안된다. 오르바가 무엇을 잘못했냐... 나오미가 가라고 하지 않았냐… 이러면 안된다. 교양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악을 쓰고 쓰면서도 하나님을 붙좇아야 하는 것이다. 오르바가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길을 선택의 길을 선택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욕심을 좇아서 은혜의 길을 버렸다는 것이다. 사울은 초대의 왕으로 선택이 되었지만 다윗을 미워하느라고 그 욕심 때문에 비참한 멸망의 길을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 유다도 예수님의 12제자 속에 들어가는 엄청난 복을 누렸지만 은30냥에 눈이 팔리고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 먹는 그 저주의 길을 선택한 것은 자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 어째서 나에게는 은혜의 기회를 안 주셨습니까? 라고 변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통해서 계속 길을 제시했지만 선택은 자기가 하는 것이다. 합리화를 시키면서 자기가 했다는 것이다. 오르바는 나오미가 맨 처음에 권유를 할 때 눈물을 흘리며 따라갔지만 룻도 오르바도 같이 눈물을 흘렸지만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였다. 이렇게 보니깐 우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나부터 믿을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울어도 진짜 회개를 해야한다. 진짜 눈물을 흘려야지 성품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 가지고는 안된다. (히브리서 10장 38절, 39절) 중도에 포기하면 오르바처럼 아니 간 만 못하는 인생을 살게된다. 정욕과 열심,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갈 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르러 영광의 멸류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핑개될 것이 없다. 언제나 생명의 선택을 하는 것은 나이다. 그런 엄청난 선택은 날마다 순간을 결정할 때가 대부분이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하지만 순간의 선택이 가장 힘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늘 인도함을 받고 사소한 것도 적용할려고 하는 사람들은 큰 선택도 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말씀 묵상과 나눔은 큰 힘이 될 것이다. 선택을 하는 것에 있어 공동체는 큰 도움이 되는 것같다. 행복과 불행의 선택도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것도 영적인 선택이 된다. 원초적인 오픈이 없다면 처방을 들을 수 없다. 오픈이 얼마나 영적인 선택인지 알았다. 영적인 선택을 하니깐 영적인 처방이 들리는 것. 내가 육적인 선택을 하니깐 육으로 밖에 생각이 안되어서 목장에서 은혜를 못 받는 것이다. 오픈하는 것도 엄청난 영적인 생명의 선택인 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선택은 회개하고 돌아 올 때 말씀이 들리 때에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죽고도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서 이처럼 권고하고 방문해 줄 것을 믿어야 한다. 나오미는 남편 한사람이 죽어서도 돌이키지 못하기 때문에 아들까지 다 잃었다. 그러고 회개하고 유턴해서 돌이키는데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회개하고 돌아 올 때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오미는 룻과 오르바에게 같이 가야 한다고 편협하게 강조하지 않았다. 이 길이 힘든 길이고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치셨다고 자신은 죄인이라고 자신이 죄인이라고 아는 것은 고집스러운 신앙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힘든 이 십자가의 길을 같이 갈 수 있는 이런 자유의지를 촉구해야 한다. 사망과 생명의 선택은 우리가 해야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늘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떻게 선택을 할까 할 때 말씀이 들려야 한다. 또 말씀을 들어야 할려고 해야하고 신앙인격으로 자유의지로 결정해야하고 사망과 생명의 갈림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며 최고의 선택을 해야한다.
기도나눔
이현우 - 1. 순간마다 말씀으로 선택하게 2. 영혼 구혼에 우선 순위로 두기.
김성순 - 매사에 생명의 선택하는데 기도로 준비할 수 있게.
이지형 - 직장에서 잘 견디고 진로 선택 잘 하기.
이상헌 - 1. 일대일양육교사 마무리 잘하기 2. 큐그레이더 자격증 공부 시작할 수 있게 3. 내 욕심이 하나님의 계획에 막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