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고 베임을 통해 남은 희망의 그루터기>
주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는 전통적인 직장을 찾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장을 만들어 주시는 것을 믿고 무인지경의 강해를 개척하는 청년도 많기 때문에 이런 쇠퇴의 분석에 너무 민감하게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주 안에서 용사가 되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길을 내는 오랫동안 파괴되었던 역대의 기초를 수축하고 재 건축하는 청년세대가 되기를 바란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 가 나온다. 웃시야왕의 업적은 국방, 외교, GDP급증, 농경지 개척, 수출 증대 등의 엄청난 업적을 이룬 임금이다. 말 뜻은 야훼는 나의 힘이다 라는 뜻이다. 강력한 왕 웃시야왕이 죽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큰 애도의 대상이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왕의 보좌관이었다. 웃시야왕의 업적 중심으로 번영과 치세 중심으로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웃시야왕의 죽음은 큰 충격일 것이다. 우리 마음의 의지와 숭배의 대상인 웃시야왕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보좌가 보이고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웃시야왕은 무엇인가? 부모님, 인간관계, 특별한 능력, 장학금, 지위, 업적 등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좋은 것이고 우리들을 든든하게 만들지만 실제적으로 완전하게 만드는 대상은 아니다. 내 인생의 장래를 웃시야왕이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높으신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지 못 하게 하는 웃시야왕의 보좌가 차선인 차선이 최선의 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최선은 우리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를 뵙는 것이다. 하지만 신앙의 경지까지 못 하게 하는 웃시야왕의 보좌가 태양처럼 빛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이어야만 하나님 보좌가 보인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개입하자마자 성전 문지방 터가 요동하듯이 진동하고 요동하고 혼동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 된 삶의 틀을 부수시면서 흔드시면서 요동하면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지 못한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요동을 일으키는 분이다. 거룩한 요동자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동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속할 때까지 하나님의 영원한 성, 하나님의 진동하지 않는 성곽 안에서 우리 영원히 쉴 때까지는 우리 삶의 터를 계속 진동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의 터가 진동하거나 요동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우리 앞에 큰 가시가 놓이고 장애물이 놓인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시로 길을 막고 큰 방벽으로 우리 앞길을 막으신다.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 인생을 흔드시기 때문에 당신의 방법대로 다루시기 때문에 큰 장애물이 나타나고 큰 가시길이 나타난다. 가시 같은 친구의 조언, 내 인생을 막는 인간 장애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가시로 막으실 수 있고 인간방벽으로 막으실 수 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기대어서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동하시고 우리의 요동치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의 방주가 되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복음을 대적하고 요동하던 사람들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힘에 사로잡힌다면 요동하는 창조적 혼란기를 거쳐서 새 사람이 되고 새로운 능력에 사로잡혀서 구원의 반석에 오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접근하면 청년의 삶이 진동한다. 요동한다. 혼돈이 온다. 여기서 우리는 20대 청춘의 시절에 하나님의 간섭을 받아서 요동, 진동 당하는 사람이 복된 자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나의 누추함 때문에 아우성치는 탄식을 터뜨리는 사람이 복된 자임을 믿어야 한다. 자기 죄성을 직관적으로 통찰하고 내 인생의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없는 누추함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복음 안 에서 우리 삶이 재 구성되고 재 건축 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충분히 대접 받아야 할 만큼 자존심을 대접받지 못 할 때가 많다. 대부분 사람이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성, 충족되지 않는 자존심, 우리의 누추함, 하나님은 모든 부정적인 쓰라린 경험마저 재 구성하고 재 창조하고 긍정적 모티브로 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사야가 자기 죄를 깨닫고 자기의 죄 앞에서 소스라쳐 놀라면서 나는 죽었다고 소리칠 때 희망의 죄 사함, 소망의 죄 용서가 선포되었듯이 우리의 내적 결핍 우리가 가늘 수 없을 만큼 나는 자랑스러운 존재야 나는 괜찮아 이런 정도의 생각도 못 할만큼 수치심에 쪄 들고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자기 축소의 기근 자기가 없어졌다고 생각할 만큼 자기에 대해서 따듯하지 못한 이 마음이 하나님의 동정심을 자아내는 마음이다. 예수의 보혈을 우리 입에 묻혀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다. 주님 앞에서 우리 인생 전체를 생각하면서 내가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 이런 극한의 경험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망하게 된 그 사람에게 숯불을 가진 천사가 와서 죄 사함을 통해서 우리를 재생시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망하게 된 사람까지도 전문으로 살리시는 분이시다. 망하게 된 사람, 죽게 된 사람, 부서진 사람, 요동치는 사람, 흔들리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재구성되고 재창조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상처받는 말이 너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젊은이들의 자존심을 파괴하는 언동, 문학, 코믹, 익살, 해학 등 비판적으로 분석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자유로운 창조의 관점에서 우리의 연약함, 실수, 함몰된 지역, 정서적인 움푹 파인 곳 등 우리가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에 던져져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사람에게도 희망의 그루터기를 남기려고 하는 쓸쓸한 고독함 내가 황폐하게 되었다는 고독감 소망의 그루터기로 바꾸게 하신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할 때이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 때인 줄 믿는다. 이 시간은 버림받은 시간이 아니라 소망의 그루터기를 키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대임행군에 깊게 투신한다면 소명을 발견한다면 배우자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황폐한 곳으로 옮기고 잘리고 베이는 상처가 있게 하는 이유는 여러분 안에서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로 영원하도록 영생하는 씨앗이 되어서 그 다음 하나님 나라까지 이월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시게 하여 잘리고 베이고 먼 곳으로 옮겨지고 황폐한 곳으로 던져지는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바란다. 어두움 가운데 거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를 의뢰해야 할 사명이 남아있다.
<기도제목>
기현: 일대일 양육
시험과 여러가지 일 겹치는 데 시간 관리 잘 하도록
주형: 해야하는 일들 잘 해나가기
생활예배 잘 드리기
장원: 마음에 요동함 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가기
주님을 신뢰하면서 잘 서있기
운동 열심히 하기
생활 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