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7일 김재동 목장 - 우리들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말씀 : “요한계시록 22:06~12”
제목 : “내가 속히 오리니”
[말씀요약]
요한 계시록 주네는 “내가 속히 오리니”다. 박해 받는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천국와 지옥이 속히 올 일이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자 믿음이 약해졌다.
(베드로후서 3: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재림을 믿지 않는 자들이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이단과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친다. 이는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초림까지 2000년이 흘러서 재림까지 2000년이 지났다. “내가 속히 오리니”는 이는 주님의 오래 참음이다. 주님이 속히 오리니 몇가지 당부하신다.
첫째 신실하고 말씀에 굳게 서라
(6절)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결코 속히 될일은 참된 말씀이기에 믿고 믿어야 할 말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표해도 여러 번 바뀌지만 하나님 말씀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 주님의 말씀에 감탄하게 된다. 다 각기 다른 시대에 썼음에도 같은 쓰임을 받았기에 다 똑같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 말씀은 구약이나 신약도 똑같다. 그러나 듣지를 않는다. 하나님게서 신약시대에 로마의 핍박이 쎄니까 주께서 체험과 환상을 보여주셨다. 체험하지 못한 로마인들은 요한 계시록을 전혀 이해 하지 못하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7뿔 7나팔을 이해 하게 된다. 말씀에 굳게 서서 할 때 계시록은 환상을 보여주신다. 중요한것은 말씀에 굳건히 서야 하는데 체험위주 환상위로 빠지면 성화가 되지 않는다.
둘째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라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방언도 체험이지만 믿음의 성숙하고는 별개이다. 이 세상은 음녀의 복이기에 내가 망해야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지켜야 할 것은 말씀을 지켜야 복이 있는 것이다. 말씀을 알고 지켜야 한다. 우리가 매일 성경 공부하고 분석하고 인물별로 알아도 당장 오늘 누군가 성경만 알면 다냐고 비판하면 내 혈기와 분노와 화가 나서 돌뿌리에 넘어지게 된다. 나에게 비난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환상이나 체험으로 받는게 아니다.
(8절)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말씀을 왜 못지키는가 하면 보이는세상 사람으로 넘어지게 된다. 요한이 천사를 경배하고 싶은데 19장에 경고를 받는다. 우리는 영적 환상 앞에서도 엎어진다. 변화산이 좋아서 베드로도 여기서 살고자 한다. 유대인들이 믿어도 틈만 나면 우상을 섬긴다. 그 유혹대로 끌려가고 싶어한다. 내가 자식이 남편이 너무 이쁘면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영적이 우상이 가장 무섭다.
“오직 영광은 하나님 뿐이다. 천사도 안된다.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다.”
환상을 보여주면 경배하려 한다. 그러나 절대 안된다. 역술가가 대선에 대해 얘기하자 만일 예언대로 되면 울 나라가 다 쫓아가고 절하게 될 것이다. 이게 가장 경계해야 한다. 내가 이세상을 너무 좋아해서 십자가 지는게 너무나 힘든 거이다.
세번째 말씀을 전파하라
(10절)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성경을 펴라는 것은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이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말씀 전파하는 태도는 항상 기뻐하고 용서하는 태도이다.
(다니엘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요한계시록 10: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인봉하여 기록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 마지막 22장에서는 상처를 받던 안받던 예수 믿으라고 전해야 한다. 인봉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곱재앙 안에서 구원의 심판을 보여 주신다. 성경은 보여주기도 감추기도 한다. 인간의 논리로는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계시록이 어렵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전할 때 감추는 것도 보여지는 것도 있다. 믿음에 따라 다른 것이다. 들리는 때가 있어 듣던지 아니 듣던지 말씀을 전해야 한다. 네가 말씀을 전할 때 인봉할때와 아닌때가 있다. 아무얘기나 한다고 말씀전파가 되는게 아니다. 소박한 나눔도 감동이 있어야 한다. 말씀에 굳게 서고 지키고 전하라는 것이 중요하다. 싸웠어도 말씀안에 우리가 있기에 서로 위로를 받는 것이다.
네번째 일한대로 갚아주신다.
(11절)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주님은 일한대로 갚으신다고 하신다. 너를 위해 애쓰고 내 아들이 죽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내가 그만 버리겠다고 하신다. 종말이 올 때는 급하게 오신다. 출애굽도 하루밤이다. 항상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의 모든 걸 내려놓고 천국에 가야 한다. 우리가 내일 못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속히 오시니 우리가 항상 준비해야 한다. 일한대로 갚아주는 상은 무엇일까?
내딸이 떨어지고 아들도 떨어지고 남편이 죽은 것은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거룩한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항상 큐티와 예배와 목장을 계속 지속해야 한다. 양육훈련도 받아야 한다. 기도도 훈련이고 기도도 꾸준히 해야 한다.
[목장 나눔]
목자 #8211;
추석연휴때 어떻게 지냈는지?
나를 말씀 못 지키게 하는 내 안의 원수는 무엇인지?
나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구분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구원을 위한 상급을 나는 원하는지 또 주께 지금 갔을 때 주께서 나에게 주실 상급은 있는지?
나만을 위해 사는지 주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지 다양하게 나눠주세요!
홍태진 #8211;
“나도 속도 남도 속는 착한척”
추석연휴때는 집에서 잘 보내고 왔다. 오늘 말씀처럼 왜 나는 말씀을 잘 못 지킬까? 음녀 바벨론의 유혹에 자꾸 넘어가는 나를 보게 된다. 나는 돈에 약하다. 자기한테 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썼을때 그에 대한 대가가 없으면 화가 난다. 어제 전 목장 목원들과 이촌역으로 불꽃축제 보러 갔다. 내가 과일을 갖고 오겠다고 했는데 말해놓고 괜히 꺼낸거 같았다. 마트가서 장보고 씻고 잘라서 락앤락에 담는데 왜이리 짜증나는지! 왜 말을 꺼내서 이 고생을 할까?
또 에그타르트 얘기가 나와서 안국동에 있는 에그타르트 전문가계에 가서 사왔다. 그럴필요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전부터 어디 모이거나 하면 내가 자진해서 준비하면서도 짜증 내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난 좀 착한 사람이에요 나 괜찮아 보이죠? 이런걸 인정받고자 하는 맘이 강했다. 그러면서 혼자 짜증내고 스트레스 받고 또 돈 나가니까 짜증나고 화난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준비해 갔는데 반응이 시원찮으면 또 화가 났다. 이 모든게 내 욕심에 내 잘난맛에 이제것 한것이다. 오래전부터 엄마한테 용돈을 더 드린다던지 엄마를 위해 더 좋은 약을 사드려서 내가 칭찬을 받고자 한것이다. 어렸을때부터 칭찬을 잘 듣지 못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하면 칭찬해주겠지 하는 내안의 욕구가 있었다. 과일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거 같다. 에스겔의 두로와 시돈의 말씀을 보면서 나를 보게 되고 나의 잘못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모일때는 고기 먹고 싶다는 말에 먹고 싶은 사람이 준비해서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전에는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한 나도 속고 남도 속는 착한 사람인 척한것이다. 큐티가 매일 하는게 힘들지만 그래도 지키며 계속 했더니 한 말씀이라도 알려주셔서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이사건으로 집에서 혼자 곰곰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가치와 능력”
형이 요즘 들어 자기문제를 분석도 하고 보기도 잘하고 있다. 거기에 자기 문제를 인정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잘 하는데 두 가지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사람은 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이 두 가지가 그 사람을 결정하는 요소라 본다. 어떤 사람이 좋은 소리를 하거나 않좋은 소리를 했을 때 아니면 선물을 받았는데 내가 얼마나 가치가 있냐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고 받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나를 얼마나 가치 있냐고 생각하는게 중요하다. 내가 무가치하고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내가 능력이 있으면 상대방과 대화할 때 꼬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호의를 베풀고 선물을 해줬을때 내 능력으로 그 사람에게 호의와 선물을 베풀어 줄 수 있으면 자기는 괜찮은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부담스러운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다시 해줄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담스러운것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나를 채우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능력이 없고 내가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너의 관심, 너의 칭찬에 난 목말라 있다. 아무나 칭찬과 관심을 주나? 이 사람의 칭찬과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
사람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있는데 집에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배우면 좋은데 그렇지 못할 때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는 수동적인 여자와 결혼한다. 그 아래서 태어난 자식은 엄마나 아빠가 한쪽으로 치우쳐 배울께 없지만 그래도 결국 둘 중에 한명을 선택하게 된다. 여자가 엄마를 닮게 되면 수동적으로 되면서 자기 자아가 없게 된다. 나중에 수동적인 여자는 남자가 성관계를 원하면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원하지 않지만 죄에 빠지고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더 이상한건 자기가 싫어하면서도 그런 아빠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익숙하고 편한것도 있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을 보면서 해결하지 못한 그 문제를 내가 나중에 풀고 싶은 욕구가 있는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자기 의사표현과 경제력이 생기면서 다시 그 틀 안에 들어가 내가 엄마 역할을 하면서 엄마가 못 누렸던 삶을 자기가 보상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똑같은 집안이 대대로 전해지는 비극의 시작인 것이다.
“소외된 나”
나는 엄마하고 누나끼리만 얘기하는 걸 싫어했다. 엄마나 누나는 남자가 옆에서 들을꺼 없다고 했지만 난 혼자였기에 누구랑 얘기할 상대가 없어서 소외감도 들고 심심해서 자꾸 옆에 껴서 듣게 되었다. 내가 사회에 나와서는 남자들하고는 얘기하는게 익숙치 않아서 남자보다는 여자하고 말하는게 편하지만 정작 여자하고 같이 있어도 소통이 안되는건 마찬가지다.
“물질보다는 믿음”
물질주의는 인류역사를 보면 단 한번도 인간를 만족시킨게 없다. 우리는 돈 때문에 잘살꺼라 착각하지만 물질보다는 믿음이다. 정서적 유대감이 아주 중요하다. 가난해도 유대감이 강하면 금방 벗어난다.
“두가지 태도”
형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형 특유의 계획적이고 주도적이고 거기에 성실함이 결합되서 어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형은 두가지 태도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태도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공격성이 강하다. 형이 계획하고 성실하게 준비한데로 따라와 주지 않으면 형은 화가 난다. 그렇지 못화면 눈치를 보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없기 때문이다. 공격적으로 나오는 사람한테는 누구도 피하거나 겁을 먹게 된다. 또 눈치보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나도 편치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공격적인 성향이 나올 때 부드러워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생색낼 것은 않해야 한다. 상대방한테 열심히 하는데 오히려 불편해 한다. 나의 열심은 상대방이 불편해 하면 안된다. 내가 정말 이정도 돈이면 아깝지 않겠다는 선에서 써야하고 노력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나도 편하고 그도 편한것이다. 아무리 잘해줘도 맘이 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내가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내가 부족한 점도 있고 단점이 있지만 그걸 인정하고 내 장점을 자꾸 살릴려고 노력해야 한다. 형은 성실하고 계획적이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게 장점이다. 이게 형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자기가 능력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내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더 줄일 수 있어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기에 능력이 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부정하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아들이고 누나의 동생이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자꾸생각해야 가치 없다는 생각들을 잘라내게 된다.
“균형”
형이 공격성과 단호함과 결단력은 남성성이다. 여성성은 수용과 공감이다. 이게 필요하다. 형이 남성성을 발휘될 때 여성성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성이 많아 수용하고 공감성이 많은데 반해 단호함과 결단력이 부족하면 자기의 남성성을 끌고와야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착하다는 뜻에는 아주 많은 뜻이 있다. 수동적이고 가면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형의 능력과 가치는 하나님 때문에 높이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는 어렵다. 말씀 듣고 깨닫는것도 자기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가정을 이뤄서도 내가 앞으로 더욱더 이렇게 변할 것니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 해야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박성아 #8211;
“변하지 않는나”
내가 긴 시간을 지나서 하나님 곁으로 다시 돌아 왔는데 이제 것 전도를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1년 넘게 친구를 안만나다가 오래 만에 만나서 곱창을 먹으며 난 술을 못하니까 친구에게 술 따라주고 술병 드는것도 어색하게 느껴져서 뿌듯했다. 친구 얘기를 들어주다가 내가 그 친구에게 하나님 얘기를 하고 싶은데 잘 안되서 하나님께 기도 드렸더니 어느 순간 친구 앞에서 지난 1년간 있었던 내 간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하고의 관계에서도 화를 참게 되었고, 엄마, 직장 동료들하고도 싸우지 않게 되었다. 큐티를 하면서 말씀을 깨닫게 되니 참 좋았다. 나에게 인간관계를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거 같다. 내가 똑같은 죄를 계속 반복하는걸 보면 그런거 같다. 그러면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다가도 어떤 사건 앞에서 변하지 않는 내 모습에 또 실망하게 되었다. 양육 받기도 싫어지다가 이러면 또 세상으로 돌아갈까봐 양육을 꼭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난 변한게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아직은 내 죄에 대한 고백과 죄를 보는게 아직도 안되는거 같다. 난 단번에 변하고 싶다. 김양재 목사님 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환경에 따르지 않고 화평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한번에 되는건 없다.”
우리는 다 악하고 음란하다고 예수님께서 그러셨다. 이 악한 곳에서 벗어나 목사님처럼 천국을 누리며 살고 싶어한다. 악한것은 자기가 나쁜 것을 알아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악한것을 의식하는 순간 내가 악하다는 것을 결사적으로 저항한다. 악은 죄책감을 회피하는 행동에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목사님처럼 남을 살리는 삶을 살려면 자기가 십자가 지고 사는 것이고 내가 없는 자기 부인이 되어야 한다. 목사님께서는 13년간 걸레질과 큐티, 남편의 죽음과 목회사역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한번에 변하는게 없다. 내가 악함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악에 대한 회피는 나중에 빵터진다. 마귀중에 제일 무서운 것은 ‘차차귀신’이다. 변하는 성아와 변하지 않는 성아도 바로 너다. 그러니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네가 갈등을 느끼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어루만져 주신다.
“회개는 애통함이다.”
회개는 애통함을 동반해야 회개가 된다. 밑바닥까지 내려가 고통속에서 회개가 되는 것이다. 참된 회개는 애통함을 동반하지만 회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올바르게 할 수 없기에 교회와 이 구조안에 있는게 중요하다.
“교회 구조안에 꼭 있어야 한다.”
이 교회 구조안에 목장과 내죄를 고백하는 랩의 라임처럼 라임 같은 삶이 반복될 때 우리 삶이 깨끗해진다.
우리들 교회안에서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목장에 꼭 참석해야 한다.
윤혜진 #8211;
“툴툴되는 나”
이번 추석때 친척들과 휴양림에 갔다 왔다. 오빠를 오랜만에 만난는데 아직도 적용을 못했다. 엄마한테 잠결에
전화와서 받았는데 엄마는 추석때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보는데 내가 잠결에 전화를 받아서 짜증나서 툴툴됐
더니 엄마가 전화하는게 불편하냐고 해서 나는 응!해버렸다. 전화끊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다시 엄마한테 전화
와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화해 했다. 엄마랑 전화통화하면 새로운 것은 잘 듣는데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얘기를
내가 싫어 하는거 같다. 엄마는 나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장봐서 해먹으라 하는게 내가 걱정되서 얘기해도
내가 않하면 그만 이라서그런 얘기 듣는게 싫다.
“풀지 못한 숙제”
엄마가 왜 걱정을 할까? 전화로 왜 자구 물어볼까? 혜진이는 누군가 궁금한 사람없어? 엄마도 사랑받고 싶어
한다. 엄마가 너에게 챙겨먹으라하는 것은 네가 않먹어서 피곤하니까 잘 챙겨먹으로라 하는것이다. 1인칭이
아닌 2인칭을 쓰는건 내가 안심이 안되니 네가 그렇게 먹으면 내 불안감이 없을꺼 같다는 것이다. 엄마는 사실
미국에서 따로 살기에 외로우신 것이다. 딸이 보고 싶은데 자기 감정으로 전화해서 나를 감추고 네 얘기만 하
니 네가 맘에 와닿지 않아서 계속 부담되고 힘들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네가 엄마하고의 풀리지
못한 문제가 있는거 같다. 엄마도 네 맘에 있는 네가 좋아하는걸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너도 엄마가 듣
고 싶은말을 하지않는 너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엄마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빠랑
엄마하고의 관계는 어때?
“굳어진 나”
오빠는 엄마를 걱정하는 말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니 그말을 엄마는 그래도 오빠가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
서 좋다고 내 딸한테도 듣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입밖으로 그런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싫은데
굳어져서 하기 어렵다. 전화로 살갑게 주고받고 해야 하는데 머리속에서는 계속 맴돌지만 안된다. 아빠가 돌아
가시고 엄마랑 떨어져서 거의 10년을 혼자 살았다. 엄마가 어렸을때부터 내가 고생한 것이 맘에 걸리셔서 항
상 날 볼때마다 미안하다고 하신다. 미국에서 온전히 엄마랑 같이 보낸 시간이 몇 개월뿐이지만 그때 정말 많
은 대화를 했다.
“꺼진 감정의 스위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네가 엄마랑 떨어진 시간이 많아서 정서적으로 채워지지 않으니까 외롭고 불안함에 네가
감정의 스위치를 다 끈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감정을 키려하니 불안하고 싫은 것이다. 조기유학 간 애들이 거
기서 혼자 살아가야 하니까 옆에 나를 돌봐줄 엄마가 없어서 불안하니까 자기 감정을 끄고 공부와 숙제하는
것으로 대부분 살게 된다. 예를 들어 팔에 암세포가 있는데 그게 나를 너무 아프게 해서 내가 결단하기를 강력
한 진통제로 마비시키면 내 고통은 덜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 할 뿐 더 악화되어 간
다. 감정을 끊어놓은 시간이 길수록 나중에 데미지가 더 크다. 지금 10년 이라는 긴 시간을 혼자 살아서 감정
을 끊은 것이다. 난 잘 모르겠지만 혼자 있던 시간이 길어서 이제서야 엄마가 나한테 해주는게 늦은거 아냐?
오랫동안 혼자 나를 나뒀으면서 이제와서 어쩌라구! 이걸로 될꺼 같아? 미국에서 엄마랑 같이 보냈던 몇 개월
로 다 보상이 될꺼 같아? 그러면서 옆에 없고 떨어져 있는 엄마가 나를 컨트롤하면 반항 하는 것이다. 결국 지
금은 엄마가 옆에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네가 마음을 열어 감정을 받아주는데 떨어져 지
내고 있으니까 정말 싫은 것이다. 엄마하고 이부분을 얘기해야 한다. 엄마하고 얘기하다가 엄마한테 상처를 준
다할찌라도 해야 한다. 혜진이는 엄마 혹은 엄마 같은 따스한 존재가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너의 욕구가 있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천상 여자이다. 엄마와의 매듭이 많이 풀려지면 네 자신이 더욱더
자신감이 있어지고 남자를 만나면 더 좋아질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자를 만나면 너의 감
정과 마음을 알지 못하니 서로 싸우게 된다. 네가 만날 남자는 바쁜 남자면 안된다. 항상 옆에 있고 편안 남자
가 너에게 잘 어울릴 것이다. 너의 대해 알아야 너에게 맡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
김지은 #8211;
“미해결 문제”
내가 우리들 교회와서도 엄마의 문제가 해석이 잘 되고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름에 아는 누나네 집에가
서 세수하고 샤워기를 돌돌 말아놓고 내 화장품을 쓰고 화장품을 진열해 놓으면 누나가 네 뒤를 쫓아다니며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욕실을 쓰면 뒷정리를 엄마가 치워주셨기에 다른집에 가서야 엄마의 소
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교회에와서 엄마를 너무나 않좋게 얘기해서 걱정이 된다. 이번에 내 방을
옮겼다. 내 방이 좀 답답하게 느껴져서 동생방이 비웠기에 그쪽으로 옮기려고 했더니 부모님이 그방은 손님방
으로 주신다고 했지만 결국 내방이 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이다. 내
가 원하는대로 먹는거 인형도 다 마찬가지다.
“감정의 혼돈”
아직도 나는 감정이 혼돈 가운데 있는거 같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네 물건 버리라는 것
이다. 나를 따라 다니며 자꾸 버리라는 것이다. 엄마는 먼저 헤아려줘야 하는데 그런게 없다. 엄마의 모든 것이
다 가식처럼 느껴진다. 나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서 조카들한테는 사랑한다고 말할때마다 난
정말 싫었다. 엄마한테 품은 감정은 엄마하고 나하고 너무 맞지 않은거 같다. 엄마는 나한테 거짓말을 너무 많
이 한다. 동네 의류함에 쓸만한 옷을 버리면 나는 이런거 입는 것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준것도 내가 잘
받아서 쓰고 헌물건들을 아끼고 잘 쓴다. 난 재활용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정말 싫어한다. 난 엄마 말을 신뢰할
수가 없다. 난 재활용하는것에 재미을 느끼고 너무 좋아하는데 엄마는 무척 싫어하고 버리라는 것이다. 난 엄
마의 버리라는 말이 너무나 싫다. 또 언제부턴가 봉제인형이 좋아서 인형을 모으게 되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
에 엄마는 불만이어서 나만 보면 내물건을 버리라고만 한다. 내가 엄마 아빠한테 좋게 얘기하지 않고 부모님
도 나에게 좋게 말하지 않는다. 엄마는 뭐하나 잘못하면 좋게 말하지 못하고 다 지적한다.
“나의 이중성과 혼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애정이나 인정이 필요하다. 남자는 인정이고 여자는 관심을 필요로 한다. 엄마가 나를 챙
겨주신걸 알지만 그 표현이 비난으로 나오기에 정말 힘든 것이다. 사랑과 비난이 같은 엄마의 뿌리에서 나와
서 혼란스러운 것이다. 나의 이중성이나 혼란은 거기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엄마의 비난이 아프기에 마음을 열
다가 닫고 그리고 챙겨주면 열고 하는 것이다. 누나두 힘든 것은 엄마의 비난이다. 대인관계 속에서 그 사람이
엄마의 모습을 보일 때 그 관계가 끊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 하는게 느껴질 때 힘든데 그렇다고 자기
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 힘들다. 남의 시선으로 자기가 결정 되는 건 아니다. 누
나와 엄마는 서로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까 내가 이상하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내가 깨는 것도 있지만 남보다
독창적이다. 이렇게 생각해라!
“버리지 못하는 나”
누나는 왜 물건을 모아요? 물건을 잘 모으돼 못 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부분을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예
를 들어 한 여성분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의 원인을 의사들이 정말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가서 조사해
보니 집에 자기가 쓰던 모든 물건을 쌓아 놓은 것이다. 거기서 바이러스가 발견돼서 바이러스 치료를 받게 되
었다. 근데 남편은 부인이 모으는걸 좋아해서 그대로 놔둔 것이다. 부인은 예전에 아기를 유산해서 그 상실감
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옷이 헤어져도 못 버리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에 자기가 사
랑 받고자 하는 것이다. 누구든 주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존물이다. 다른 사람 생각보다 내가 생가하는 내가 중
요하고 내 모습을 내가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 나눔할 때 자기 모습을 보길 바란다. 그리
고 물건을 버리지 못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우리 목원들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이 계속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