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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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0715 김재동 목장 보고서
홍태진
이번주는 평안 했는데 조금 힘들었다. 마음이 여유가 생겨 할게 없으니까 음란물을 찾게 된다
회사일은 이제 하면 된다 생각하고 자격증도 하나씩 따니까 회사에서도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하루종일 회사에서 움직이지 않고 일만 하고 오히려 말을 하는게 귀찮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이렇게 지내는게 더 좋다 여직원들 하고 어울리는것보다 남자직원들과 어울리는게 더 좋고 오히려 예전에는 내가 왜 그랬나 생각이 들고 지금 내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자연 정상적인 것 같다. 그러니 내 마음이 편하고 다른 직원들 만나니 목사님 말씀 처럼 다 별거 없고 감투를 많이 써서 특별해 보이는 것 처럼 보이고 배워야 하는게 있지만 겁먹을것도 아닌 것 같다. 요새는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재동
외롭다라고 느끼는게 건강한거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쉬는 시간에 여직원들과 얘기 하고 일에 묻혀서 살때는 그런걸로 외로움을 덮었다 이제 정상적인 생활을 찾으니 외로움이 찾아온거다
처음에 형을 봤을 때 얼굴도 괜찮고 직업도 괜찮은데 왜 아직 결혼을 안했을까 했는데 이제 형이 본궤도를 찾아 외로움을 느끼는게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형이 이제 결혼하실때가 된 것 같다
상담 선생님한테도 요즘 외롭다고 얘기를 했다. 그전에는 자기 자신을 볼줄도 몰랐기 때문에 그때 결혼을 했으면 싸웠을텐데 이제는 말씀들으면서 자기 자리를 잡다 보니 이런게 올라오는 거고 담배 유혹도 이겨내고 하면서 이제 지금 처럼 신중하게 해왔던 것 처럼 천천히 준비해서 사람을 만나 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섬세하면서 날카로운 사람을 만나왔고 거의 만난 대부분의 사람이 디자이너였다. 아니면 음악하는 사람들.. 이런식으로 내 본능에 따라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제는 겁이 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잃게 될까봐 겁나서 주저 하는게 많다. 내가 쫓은것에 대해 결과가 좋지 않고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건가 겁이 난다고 상담을했는데 그건 바꿀수 없고 예전보다 균형적으로 보고 지금은 자기 스스로 컨트롤 하려 하고 알아가려고 하고 천천히 하려고 하니까 그것에 대해 너무 얽매이지 말고 움직이라고 하셨다
강원희
형 성격이 여기에서 말하는 그성격 그대로 인가 아님 욱하거나 돌발적인 부분이 있나?
우리랑 얘기할때의 차분하고 편하고 착한 면모 말고 업무적인 부분에서 욱하거나 혈기부리는게 있나?
예전에는 그랬다 사회 생활 초반에 그런데 여기와서는 자연적으로 가라 앉게 되고 예전처럼 컨트롤 못하지 않는다 어떤 분노인지도 몰랐는지 양육받으면서 내 문제점을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다운 되고 옛날의 혈기가 서서히 줄어 들게 #46124;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우리들에 오기 전까지 육체와 정신이 모두 황폐해진 상태까지 만들면서 결과물을 냈는데 그게 돈벌로 생활하는걸로 하다 보니 결국 중독으로 갈수 밖에 없다 세상사람들은 열심히 살았다고 하지만 이런게 좋은게 아니다
하나님 없이 효를 행해도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 가는거다. 이제 형이 정상 궤도에 들어와서 베필을 만날때가 되서 몸도 정신도 정상적으로 온거고 정상적으로 돌아와서 음란한 생각이 드는 것
첫번째 레드앤블랙 얘기 했을 때 레드는 분노 형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욕구가 하나는 분노다
돈을 벌어 가족에게 줘야 하고 삶이 내 원대로 돌아가지않는것과 엄마의 요구를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분노가 레드이고 블랙은 정욕이다. 정욕의 대부분은 어두운곳에서 일어나니까..
형의 경우에는 본궤도로 돌아가려고 하고 예수믿으니 새사람이 되려하고 거룩한 신분이지만 우리는 어쩔수 없이 추잡한 것을 보면서 살수 밖에 없다. 형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사회에 적응을 잘하고 정상적인 허전함의 반응이 오는데 이게 아주 정상적이고 제대로 되고 있는것지만 문제는 형을 그동안 사로잡고 있던것들이 끌어들인다 나갈려고 하니 끌어 들이는데 그것의 대표적 주제가 레드앤블랙인데 내속안에 처리되지 않은 분노와 정욕의 문제 인거다. 분노는 없어지지않는다 화는 조절되는것만 있지 없어지지 않는다. 화는 아무때나 낼수 없는 거고 조건하에서만 낼수 있는게 화다. 화를 나게 만드는 대상은 따로 있고 내가 화를 내는 대상은 따로 있는게 화.
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 화의 종착역이었다 우리 부모의 모든 화가 우리에게 왔기 때문에.. 문제는 이 화가 없어지지 않고 나를 화나게 한사람과 풀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다.
태진형의 앞으로 발목을 잡을 일은 그 두가지다. 일단 이 화가 지금 상태에서는 없어진게 아니라 가라앉아 있는 상태다.
친구하고의 문제도 덮어둔게 아니라 기다리고 있다 그 전에는 정리가 안됫는데 이제는 어떤식으로든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 사람한테 욕을 먹더라도하려고 한다.
그게 당연한거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지만 다 그런거고 그게 세상의 이치다. 그러니 목장에 와야 한다. 지금은 어머님이랑 떨어져 있고 회사도 전에 있던 상사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형의 화가 컨트롤 되고 있다 . 두번째 정욕에 대한 문제는 남자한테 가장 힘든거는 정욕인것같다
모든 중독은 없어 지지 않는다. 고린도 전서 7장 큐티를 보면 고린도 전서7장 전체가 결혼에 대한 얘기다. 그 이유는 고린도 라는 데가 예전에 로마의 식민지인 항구도시인데 서쪽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동쪽은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이집트 정가운데에 있었다.
멀리 가려면 무조건 배를 타야 하다 보니 항구도시가 중요 했고 고린도가 무역에 요충지였다. 로마의 식민지중 문화의 다양성과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잘살아 의식 수준이 높았고 철학도 발달해서 사상과 의식이 높았다. 하지만 굉장히 음란한 곳으로 다신교로 다신을 믿어 고린도에 12신전이 있었다 제일 큰 신전이었던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에 천명의 여자 사제가 있었는데 그당시 종교는 하나님을 믿는건 거룩하고 절제할게 많아 믿지 않고 주로 믿는건 쾌락과 풍요와 다산을 비는 것으로 여사제가 필요 했다.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드리고 나면 행음을 했다 그당시 여사제는 행음을 하는 것으로 쓰였고 매춘과 성도덕이 타락한 상황에 교회가 있었으니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위해 고린도 전서 7장이 있었다. 이 타락한 고린도에 결혼을 지키기가 어렵고 문화 영향을 안받을수 없으니까 사도바울이 걱정이되서 결혼에 대해 한장을 결혼에 대해 쓴거고 성경을 쓰는 사람을 사도라 하고 지금은 더 이상 성경이 쓰여지지않기 #46468;문에 사도와 선지자가 없다 성경에 있었던 직분이 지금 없고 그당시에 있었던 은사가 지금 없을수 있다 있는은사도 있고 없는 은사도 있고 모든은사가 다 있는건 아니다. 독신의 은사는 한마디로 주의 일을 위해서 독신으로 사는것이다. 내 개인적 취향같은게 아니다. 바울사도 처럼 모을 던져서 할게 아니면 결혼을 해야 한다 독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의 특징은 결혼을 할수도 있고 못할수도 있다 라는 열린 생각을 가진 거다. 성경에도 결혼하라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고 혼자 지내는게 낫다라는건 사도바울이 이시대 사람에게 권고 하는 거지만 그건 특별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 나에게 독신의 은사가 있다 라고 사도바울처럼 순교 하고 교회 세우고 하는게 아니다
사도 바울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있으니 여러가지 연약한것에 대해 말을 하는데 정욕을 못참겠거든 결혼 하라는 것 처럼 우리는 정욕을 참지 못하니 결혼 하는게 맞다 그러니 결혼을 빨리 하는게 건강한 거다. 고린도 전서 7장을 일반적인 결혼에 대한 내용인데 7장 16절까지는 불신자가 안믿는 사람이랑 결혼을 해서 이혼을 하고 그거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거고 구원은 내가 시키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고 하나님께 구원이 속한 걸로 그 이후에는 굳이 그걸 붙잡지 말고 가급적이면 이혼을 절대 하지 말라는게 성경 전체의 말씀
7장 17절 에서 큐티를 할 때 제일 중요한 단어가 “행하라” 부르심 그래도 행하라.
행해야 하는데 각사람에게 나누어 주신대로 부르심 대로. 이혼을 했으면 이혼한 그대로 결혼했으면 결혼한 그대로… 부르심 그대로.. 어떤 환경에 어떤 상태이던지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사건그대로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셨다는건 굳이 내가 선택한건 아닌 것. 예를 들면 부모님. 목자, 목장식구들.. 개인적인 중독이나 사건 .. 어떤 사건으로 부르심으로 이자리에 왔는지 어떤 직업 이던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한게 먼저다.
내 환경이 달라져서 내가 바뀌는게 아니다. 내가 지금 당장 결혼을 해야 내 인생이 피는게 아니고 내가 뭔가 확 바껴야 하는게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게 뭔지 이미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종이니 내가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려고 노력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게 있고 선택하고 싶고 갈망 하는게 끊임 없이 있지만 하나님은 나랑 어떤 관계를 맺고 나랑 어떻게 소통하고 대화 하고 오늘 목사님 말씀 처럼 하나님이 정한 목적에 참여를 하는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데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안 되는걸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 하나님이 관심 있는 건 내가 오늘 하나님과 소통 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이 나랑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하나님은 나란 존재가 없으면 못 하는게 나랑 소통 하는것이다 이게 일단 먼저고 나누어 주신대로 해야 하는 것.
우리가 정욕을 다 못 참는 존재 이니 빨리 결혼해야 한다.
황희정
오빠가 온지 2주정도 #46124;다. 오빠 방을 창고처럼 쓰고 있어서 정리를 해야 했길래 침대도 버리고 안쓰는 가구를 혼자 다 치웠다 내 성질에 내가 못 이겨서 해야 했길래 하는데 갑자기 화가 확 나면서 이런 동생이 세상에 어딨나 오빠 온다고 청소를 하는데 갑자기 화가 올라오다가 엄마가 와서 엄마한테 화풀이를 했다. 오빠가 왔는데 객지 생활하면서 쓰던걸 다 갖고 왔는데 거실에 가득 1주일 동안 있는걸 보니 속에서 또 올라왔는데 엄마가 나서서 치우자 해서 책 정리를 하고 치우는데 결론적으로 그걸 또 엄마랑 내가 다 했다. 엄마한테 왜 하냐고 내가 화를 내다가 안 풀려서 아빠한테 전화해서 이사 가자고 닥달을 했다. 집에 버릴게 많은데 엄마가 안 버리고 자꾸 밖에서 주워 오시니까 내가 청소를 한 것도 엄마 없을 때 버려야 해서 버린 거였다.
오빠가 집에 와있는데 정말 더럽게 방을 쓰레기통 처럼 쓰고 오빠 자체가 싫으니까 말 시키는 것도 싫고 내 눈에 안보였으면 좋겠고 말 시키는 것도 싫은데 난 왜 교회 다니면서 아직도 오빠가 싫지 생각하고 오빠가 오자 마자 엄마한테 미친 듯이 짜증을 내고 있다.
집에 오빠랑 둘이 놀고 먹는게 웃기고 실업수당 받고 있고 엄마가 아침에 먹으라고 음식 하고 나가시니 의무감으로 먹고 이러다 보니 오빠가 더 싫다.
아빠가 오빠한테 이력서 넣고 있냐고 물으시고 낮에 맨날 겜만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오빠랑 같이 한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싫고 오빠가 쉬고 있으니까 무시가 되고 더 올라오고 그러다 내가 오빠를 무시하고 있구나 하니 더 죽겠고 무시가 안되지는 않고 오빠가 살을 되게 많이 쪄서 왔고 셔츠를 같이 가서 산 옷인데 터질려 하고 아저씨 같이 되서 왔다.
엄마랑 있을때는 여자 밖에 없으니 생활이 편했는데 갑자기 시끄러워지고 남자랑 같이 공간을 쓰는게 불편하고 그나마 다행인게 담배를 끊은거. 오빠가 내 십자가가 맞구나 하면서도 오빠가 불쌍하니까 하고 다니는게 보기 싫어서 옷이나 신발도 사다 주는건 애증.
오빠가 왜 무시가 될까?
근본적인 원인은 엄마가 오빠를 싸고 도는게 싫다. 오빠가 이력서를 넣는 것 까지 관여 하시니까
난 한번도 내가 뭘한다 하면 제재를 받은적이 없다 완전 방목되서 크다 보니까 잡아 주는걸 좋아하고 잡으면 잡혀 주는데 회사 생활도 규율이 있는걸 힘들어 하지만 그런걸 더 좋아 한다
낯짝이 두꺼운거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결혼하면 적응 잘하겠다 다 오빠 같은 남자 일 테니까. 결혼은 한 죄인을 가장 가까운거리에서 관찰 하는거라고 생각한다 결혼 생활의 키는 장점을 단점보다 크게 보는게 맞지만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은 그냥 그 사람 꺼고 나랑 별로 상관이 없다.
난 내 배우자는 절대 무시 안할꺼다. 내가 존경할수 있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니까
성실하고 자리 관리 철저한 사람이랑 결혼할수 있다 그걸 장점으로 삼아서 결혼을 하는데 내가 관리가 철저한만큼 상대에게 요구 하고 자기가 깔끔한 만큼 맞춰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사람의 어긋난 부분이 있으면 그게 무시가 된다.
넌 여동생이지 엄마가 아니다
오빠 동생의 관계가 있었던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오빠 동생의 정상적인 관계가 뭔지도 난 모르겠다.
태진형도 우리들에 오기전에 엄마와 분리가 안되 돈다 갖다 주고 일중독으로 가고 정신이 병들었는데 이제 정상적으로 회사에서도 적응이 되고 있고 외로움을 느끼는 순서를 밟고 있는 것처럼
예를 들면 너희 엄마는 아직도 오빠에대해 못내려 놓고 있는걸 기대지 말고 오빠는 오빠 인생을 살게 두지만 동생으로서 해야 하는 말이나 행동은 하되 엄마 처럼 되면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는게 오빠 동생의 관계인지 물어보고 정립해 가는게 필요 하다
동생이상의 역할을 하면 네가 져도 되는 부담이상을 받지도 못하는상태에서 해버리면 생색이 올라오고 상대가 미워지고 관계는 더 나빠진다. 장기적으로 봤을#46468; 오빠와 관계가 더 안좋아 진다
부모님은 결국 아들에게 기댈수 밖에 없지만 넌 아니고 오빠가 널 먹여살릴 의무도 없고 그러지도 않을것이기 #46468;문에 넌 여태까지 해준 만큼 보상심리를 바라게 될거니 지금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려면 말을 아에 안붙이게 되고 단절이 되버린다
그건 니가 해야 하는 것 이상의 것을 하니 생색이 나니까 화가 올라오는 것으로 정상적인 여동생의 역할을 해야 한다 최소한의 여동생이라면 이 정도 라면 하겠다 를 억지로라도 하는게 적용이다 그래야 남편이랑 잘 지낼 수 있다 여동생 역할을 잘하면 부인역할을 잘 할 수 있다. 엄마가 아들을 대하는 방식중 니가 하는걸 빨리 하지 말아야 오빠도 널 엄마 같지 않으니까 좋아하게 된다.
주희
오빠랑 일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 건가?
내 말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할 때랑 다르다는 걸 느끼니까 말을 안 하게 된다. 오빠는 말을 붙이려고 하는게 보이는데 그걸 응대 하는 난 남한테도 안 하는 말투로 하니까 그게 인식 되면 아에 대화를 중단해 버린다. 내가 오빠한테 눈물을 보이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고 그런 어색한 서로 불편한 상황이 싫다 굳이 얘기를 꺼내서 마음 상하는게 싫은 것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만 해야지 안 그럼 나도 상대도 병들게 된다. 오빠는 평생을 의존하면서 살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독립 시키는 거다. 오빠 동생이상의 돈 거래도 하지 말아야 한다.
오빠를 의존적으로 만든건 엄마인데 거기에 보태서 같이 뒤치닥 거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오빠가 살쪄서 돌아온건 외롭고 고민하는게 많았기 때문이다. 오빠에 대해서 오랫동안 쌓였다
그동안 화가 없었던게 아니라 가라 앉아 있었던 거다.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고 오빠를 무시하는데 이게 역전될까봐 두려운 것 같다. 능력이나 인격에 순종하는게 아니라 질서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질서로 변할수 없는거니 순종해야 한다. 내가 선택할수 있는 상황에서는 훈련이 안된다 그러니 가족이 있는거다.피할수 없어야 훈련이 된다.
호진
회사가 학기초에 진행을 해야 하다 보니 이제 바빠지는 때라 일에 집중을 하려고 한다. 진로에 대해서는 지난번 만난 목사님을 수요 예배 끝나고 만났다. 제안을 한게 ccc에 smtc라고 있는게 그걸 받아 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셨고 캘리포니아에 가정사역이 중심이 되는 대학이 있는데 거기 대학을 해보라고 하셨다 예전에도 smtc를 해보고 싶었는데 제안을 하셔서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요즘 생긴 습관이 출근을 하면 강의실 점검을 하고 마지막 강의실에서 기도 하고 업무를 시작하는데 요즘에 기도 하는게 대학원이랑 smtc를 가는 것에 소망이 생겨 하나님 뜻을 구하면서 기도를 했는데 성경적인지는 모르지만 머릿속에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이사야서 2장 8절을 묵상 한게 아닌데 기도하면서 떠오르고 예전에 봤던 성경구절 일부분이 생각이 나서 이게 무슨 의미인지 왜 생각이 나는 걸까 했는데 처음에는 단순하게 하나님이 정말 나에게 가라고 하시는 건가? 양육에 나오는 건데 왜 이 말씀을 주시는 걸까 생각하고 다른 생각난 구절을 따로 적어두고 시간이 나면 이걸 찾아봐야 겠다. 이런거에 대해서 그 목사님께 말씀 드리니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 말고 말씀 있는 본문을 전체적으로 묵상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지 내가 가장 성령충만할 때 내 소망이 뭔지 잘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말씀을 보면서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마음속으로 계획하기는 올 해 안에 직장 정리를 하고 계획을 바꿔서 smtc를 지원을 하려고 한다 재학생이나 졸업생 대상으로 하는데 미국 smtc 훈련을 받고 그 이후에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걸 생각한다. 가정사역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 하신 분이 세운 학교인데 정규 학사석사를 받을 수 있고 한국어로 수업하고 토플이 면제 된다. 국내에서 상담심리 준비하고 교수님 받아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미국에서 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하고 학생하고 그날 배운 주제에 대해서 활동하면서 배우는 수업이라 어렵지는 않다 지금 두 가지 다 결정해서 하겠다는 아니고 이런게 마음에 기대감과 소망으로 있어 하나님께 더 물어 봐야 겠다. 좋은 직장이라 감사하지만 언젠가는 놓지 않을까 한다. 8월에 교수님을 만나려고 하는데 이런 내 계획을 말하고 전문가 이니까 조언을 더 들으려고 한다.
Smtc를 갔다 온 사람끼리 만나는 동창회가 있어서 간사님이랑 모임에 갔다 왔다.
계속 말씀을 보면서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봐야 될 것 같고 일대일도 9월부터 받고 싶은데 그 시간에 말씀을 해주실 것 같다
9월에 지원을 하면 내년2월에 나가는데 최대 2년까지라 기간은 내 선택이고 그 이후 공부는 내가 지원을 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도 양육을 받았는데 그때는 꾸준하게 하지 않고 양육 프로그램에 들어간게 아니라 교회 형이랑 개인적으로 했던 거고 CCC 가서는 연결이 되서 했었다 ,
집에는 어머님한테만 얘기 드렸고 8월경에 아버지한테 진로에 대해 상의 할게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아버지는 알았다고 하시는데 어제는 형이 그 얘기를 얼핏 듣더니 화를 많이 내면서 결사 반대를 했다
형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우리 형도 내가 신대원에 간다고 했을 때 아무 말도 못 한 건 내가 4년 동안 돈을 갖다 바쳤기 #46468;문이다. 그런 시간이 괜히 필요 한게 아니다
형이 반대 하는게 어떤건지 내가 알겠다
내가 졸업하고 2~3년 동안 시간을 허비한걸 알기 #46468;문에 그렇게 한다
형은 그렇게 다 얘기 하지만 숨은 동기는 그게 아닐 수 있디
그걸 받아 치려고 했는데 그거 맞고 인정 한다 라고 하니까 형이 니가 참 공부를 하겠다 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밖에서 들으시다 인신공격하는 발언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감사한건 그런 형한테 혈기 부리고 싸우지 않고 인정하면서 더 화 안내고 자리를 피했다 더 얘기를 하면 화만 날것 같고 형이 유학생활을 해봤고 아직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형도 공부를 늦게 시작했지만 형은 잘하니까 걱정을 덜 하시는데 날 걱정하신다
부모님이 형을 편애 하시나?
형은 주도적으로 잘하는데 난 그렇지 못하니까 요즘 드는 생각은 집에 들어가면 방문 닫고 안나오고 하는데 이제는 안그래야 겠다 생각이 든다. SMTC를 가던 유학을 가던 결국 부모님한테 돈을 받아야 하고 허락이 있어야 가능 한거니까 어떤 결정을 하던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 하기 때문에 .. LA지구 담당했던 간사님이 하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남들이 보기엔 미친 1년이 될수 있는데 장기적으로 봤을#46468; 어떻게 될지 모르니 잘 결정 하라고 하셨다. 정말 무모할 수 있지만 자꾸 가고 싶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분명 호진이가 하고 싶은게 있고 누가 뭐라 하던지 하고 싶고 계획하고 앞으로 해 나갈건데 그러면서도 난 뭔가 얘기를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게 너무 힘들다
난 성경적인 근거로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아침마다 기도 하는 건 꼭 필요하고 좋고 잘하고 있는데 문제는 기도랑 말씀은 다른게 아니다 기도 중에 말씀이 생각난다고 했는데 기도와 말씀이 다른게 아니다 언제나 말씀과 기도는 함께 해야 한다. 말씀 없는 기도는 쉽게 기복적으로 자의적으로 갈수 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시는 분들 중 잘못된 기도를 하신다. 철저하게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기도는 사람이 마음에 원하는게 있어 기도할 수밖에 없고 쉽게 그쪽으로 갈수 밖에 없고 안그런사람도 없고 성경적이지도 않다. 성경에서도 말씀과 기도가 다르지 않다는 걸 말씀하시고 김양재 목사님이 늘 말씀 하시는 것도 말씀에 근거에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사람은 듣고 싶은거 보고 싶은 것만 보니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듣기 싫은 얘기를 들어도 내 안에서 필터링을 하기 때문에 내가 객관적 결정을 할 수 없고 내가 미래를 예측해서 뭔가를 하면 그 예측의 기반은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 데이터를 수집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내가 듣고 싶고 하고 싶은걸 형성해서 그 안에서 내가 결정을 하니 객관적이 될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예측한대로 되지 않아 불행한 것. 그게 한계다.
반대 하는 사람이 있는게 복인 건 내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아 줄 수 있고 시간을 늘려 주기 #46468;문 이다. 시간을 늘려 주니 그게 나에게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기도도 하나님이 나에게 매일 주어지는 말씀에서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위로 받고 싶어서 시편을 본다고 그게 하나님의 메시지인가? 내가 직접적으로 말씀을 찾지 말고 주어지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묶어주신 공간에서 (큐티 수요 예배) 찾는게 자위적인 기도 자위적인 부르심이 아니다.
이사야 6장은 웃시아왕이 죽었을 #46468; 이사야가 소명 받는 장이다 내가 의지하던 아버지나 큰 존재가 있는데 그게 없어진 위기 상태 (웃시아왕이 죽던해) 시기적으로 보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이었고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하고 남 유다가 멸망하는데 이사야가 북 이스라엘 선지자로 누구를 위하여 갈꼬 라는 부르심은 성경적으로 하나님이 이사야가 가도 그루터기가 남을 때 까지 황폐하고 돌아오지 않을거다 라고 하는데도 이사야에게 갈꺼냐 하는거다. 부르심이란 그런 것
아무도 안 돌아올거지만 네가 가라 . 네가 말하면 큰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돌아오는게 아니다
라고 목사님이 선교사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씀 하셨다.
결국 이사야도 외치는 자의 소리로 있다가 죽었고 이게 부르심이다. 내가 기도 한다고 해서 그게 부르심이 아니다.
이사야가 내 입술의 부정함을 보고 하나님이 사해 주셨다 어떠한 부르심도 내 죄를 먼저 봐야 한다 수제자가 되는 비결은 내 죄를 보는 것이다. 모든 부르심의 과정에는 내 죄를 보는게 있어야 하고 올바른 부르심의 핵심이다. 부르심 이랑 이 과정을 겪은 사람이 갈수 있다 내가 시간을 내서 기도를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 내가 막는게 아니라 이 과정을 호진이가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쓸모 없는 죄인이니까 하나님이 어떤 열매를 안주시더라도 고생을 하겠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부르심은 지속적인 부담감으로 다른 길이 없는 것 이다.
나도 신대원 가기 전제 트리니트 신학원을 가려고 했었다. 왜냐면 장신대나 총신대는 들어가기 너무 힘들고 서울대 나온 사람도 떨어진다. 장신대 총신대는 교단이 크니까 갈수 있는 사역지가 많다. 그리고 학문적이고 시험도 까다롭다 보니 학문적 인게 나랑 맞지 않고 트리니티가 실제적이고 영어 수업을 하고 입시가 없어 거기를 가려고 했을 때 목사님이 총신이나 장신을 가라고 하셨다 입시 준비 안하고 기본 실력으로 갈수 있는 곳을 가려고 했는데 청천벽력같이 들려 그때부터 입시 공부를 했다. 교회 소속된 목사님 추천도 받아야 하고 인터뷰도 봐야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목사님은 우리들 교회는 다른 교회에서 보면 메이저가 아니니까 백그라운드라도 정통 신학을 배워서 뿌리 있고 보수적인 정통 신학을 배워 누가 우리들 교회에 대해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백그라운드를 갖추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친구가 남들이 좋다고 하는 학교는 이유가 있고 호진이가 상담심리가 진짜 하고 싶으면 명문을 가는게 훨씬 나을 것 같다 아카데믹한 백그라운드를 갖추면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다. 학교는 간판이고 학교가 나를 만들어 주는게 아니다
어차피 자기 노력이니 그럴거면 정통의 백그라운드가 있는 곳을 가는게 낫다. 미국 내에서도 상담 심리하면 여기 하는 곳으로 그래야 형도 인정 해줄거고 그게 지혜 인 것이다.
총신대 나왔다고 사역 다 잘 하는거 아니다 그 다음에는 다 자기 노력이고 훌륭한 롤 모델이 필요 하다 굳이 그렇게 하겠다면 미국에서 상담심리로 제일 좋은 곳으로 가야지 해야 차선이라도 간다. 선교사님과 생각이 다르지만 이왕이면 아무도 너의 말에 찍소리 할 수 없도록 학교는 전통 있는 곳으로 가는게 맞다
회사에서 도시락 같이 먹는 멤버가 있는데 볼링을 치러 갔다 목적은 재미도 있지만 한명이 대리급으로 최근에 왔는데 기존에 있던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다는데 같이 밥먹는 자리에서도 말을 안시키고 그래서 새로운 직원이 조직에 적응을 못해 나가려고 하니까 과장님이 우리팀에서 붙잡아 달라고 해서 친목도모차 갔는데 한편으로는 이 직원이 그만 두면 내가 또 새로 직원을 뽑느라 수고해야 하니까 기분이 별로 안좋았다. 집도 근처고 동생이고 잘 따르는데 그만두더라도 내가 다시 구하면 되는데 사람구하기도 힘드니까
예전에는 집에 빵을 사오면 내가 잘라서 통에 먹기 편하게 넣었는데 그걸 안하니까 동생이 교회다니면서 변했다고 했다 말도안되는 소리라 대꾸도 안했는데 다음날 제주도 모임이 있어서 나가려고 하는데 햄버거를 사오라고 해서 끝나고 시간이 되면 사오겠다고 했는데 집안일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동생이 연애를 안하고 있지?
연애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오늘 말씀에 타인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입는거라 했는데 내가 아웃리치 준비한다고 나가기만 하고 가족들 위해 기도도 하지 못해서 찔렸다. 한편으로는 아웃리치 가면 동생이 뭐라 할지 궁금해지고..
구원을 위할 때는 다를 수 있지만 동생에게 순애보적이나 희생적인 건 오해다.
사랑이 희생이냐 물으면 사랑은 희생이 맞고 예수님도 자기 자신을 희생의 재물로 우리의 사랑을확신하셨지만 사랑이 자기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랑은 예수님의 희생이다.
즉 내가 하는게 내 성품 이라던지 내 의로 하는게 아닌 예수님 때문에 해야 하는 거고 그게 아니면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게 낫다. 주희가 가족구원의 유일한 통로이지만 내가 노력해서 쟁취하거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오빠랑 엄마랑 여동생의 구원을 위해 애통하게 기도하고 가능하면 나이스 하게 하되 내가 해줄 수 없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동생은 언니가 나 말고 친밀감을 느끼는 것에 뺐긴 거다 그게 분리가 안되면 여동생도 연애할 생각을 안 할 수 있다. 친한 친구와 언니가 있으니까 구원을 위해 해야 할 것과 해야 할말은 자극하지 말되 해야 한다. 동생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것에 정죄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