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 마지막 찬송 -
계 15 : 1 ~ 8
오늘은 어떻게 마지막 찬송을 해야 하는 것인지 살펴 보고자 한다.
첫째 , 마지막 재앙이 마지막 찬송이 되어진다. 그것은 마지막 이적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심판은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이 진노에는 끝이 있다. 이 진노로써 드디어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지난번에는 곡식과 포도송이 그리고 추수할 때가 이르러 마지막 심판을 했다고 했는데 오늘 15장의 또 마지막 재앙이 있다고 그러면 14장과 15장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볼 때 어떤 게 더 먼저인가? 성경을 연대기적으로 읽지 말라. 마지막 때라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교회사 시대에 일어나는 전 기간을 말하는데 마지막 종말의 전 시간에는 인과 나팔과 대접재앙이라는 세 가지 시각이라는 보여준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이다. 그야말로 심판의 인을 떼고 그리고 나팔경고를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깐 대접으로 쏟아붇겠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이게 세가지 같지만 한가지이다. 초점과 관심을 다른데 두고 동시에 예언을 한 것이다. 인을 떼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나팔을 불어도 회개를 안 하더니 이젠 대접 심판을 받고 났더니 이젠 믿게 되었다하면 이건 연대기적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동시에 반복적으로 예언한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 보니깐 진정한 천사는 좋은 일 착한 일만 하는 게 아니다. 마지막 재앙이니깐 이젠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믿는 성도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왜냐하면 그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땅에서 마지막 찬송을 하는 것은 구원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 때에 부르는 노래이다. 육을 떠나는 날에 부르는 찬송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갈지 부인하며 갈지 두렵고 떨림으로 마지막 찬송을 준비하라. 지금은 찬송을 하지만 마지막 날에 찬송을 안 한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계시록은 정말 너무나 사랑의 책이다. 바로 사단과 싸우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자기 아들을 죽이셨다.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돌아오라고 하는 이야기이지 협박을 하고자 하는 책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늘에서는 크고 이상한 이적이 계속 베풀어지고 있고 마태복음 24장에는 제자들이 무슨 징조가 있으리이까 하니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출현하고 전쟁과 기근과 불법들이 성행하여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그럴 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다. 그럼 누가 마지막 심판받는 재앙의 당사자가 될까요? 인 재앙이 끝나고 내팔재앙이 끝나면서 다섯째 나팔재앙이 첫째 화가 되가지고 이억의 유브라데 이억명의 군사가 쳐들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9장 20절에 보면 마지막까지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가장 큰 죄악은 내가 내 인생 끝까지 이 세상에서 짐승과 바벨론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가장 반대로 가장 큰 선은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왜 크고 이상한 이적이라고 했는가? 이 재앙이 끝나면 그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안 믿는 사람에게는 재앙이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찬송이 더 이상 구원이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찬송이 되기 때문이다.
두번째 , 믿는 사람의 편에서는 불바다를 지나야 한다.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장소가 바로 천국보좌 앞이다. 어린양께 속한자는 정결하고 흠이 없어서 짐승의 수를 경배하지 않기 때문에 비참하게 살다가 극복하고 흔들어도 마지막 이한 낫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자기의 흠 때문에 아파하고 나는 저 불바다를 건너갈 수 없어라며 내 죄 때문에 아파서 민감해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밖에 없기에 그래서 주님이 손잡고 건너가게 해 주시는 자이다. 이 세상의 666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날 수 없지마는 이 불을 통과해서 주님이 붙잡아 주셨기 때문에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활활타는 불바다 시련에서 유리바다로 건너갔다. 그래서 일관성이 있어지고 불바다 건너편에 가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도구로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양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인내할 수 없지만 주님이 손잡고 지나면서 걸어갈 수 있게 되어졌다는 것이다.
세번째 , 마지막 찬송의 내용이 모세의 노래이고 어린양의 노래이다. 그것은 자기를 높이는 노래가 아니다. 경건한 두려움과 진정한 거룩한 경외심으로 마지막 찬송이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구원이 시작되어진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고 내 이름이 하나도 없다. 내가 사랑하고 온유하며 겸손케 되었다는 것은 100% 하나님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음란을 가장 싫어하시는데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배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땅에서 슬픔을 깊이 만나면 저절로 눈물의 신앙고백이 있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찬송이다. 도저히 자신의 출신과 죄로는 하나님 보좌 앞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는 자들인 것이다. 이 고백의 감동이 제일 큰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갔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홍해바다에서 안고 업어서 같이 건너오셨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이다. 마지막 숨질 때 하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이라는 그 고백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환경을 허락하셔도 그 환경이 바로 최고의 환경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지 않으면 이 찬양을 할 수가 없다. 홍해바다를 건넌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 스스로 구별하여 자원하여 살게 된다. 내 힘으로 이긴 것이 아무것도 하나도 없다.믿음은 헌신일 뿐만 아니라 모든 걸 하나님의 힘으로 인도받고 간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이다.우리의 생각과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다.
네번째 , 마지막 찬송을 부르는 것이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에 이젠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은 언약의 성취다. 영적 고아 , 영적 과부는 주인이 없기 때문에 불쌍하다. 내가 천국을 누림으로 담아내는 그릇이 상식적이고 올바르며 예의바라야 한다. 지금부터는 내가 나 자신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이한 찬송이 있는가를 봐야 한다. 이미 성경의 가치관 곧 구속의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바로 성공의 인생이다. 요즘은 배려있는 사람인가 인간관계를 잘 하는 사람인가를 본다. 하나님 자체를 찬송하는 것이 그야말로 마지막 찬송이다.
- 내 아빠 하나님 , 이 고백이 당신을 향한 마지막 찬송이 되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늘 모자르지만..... 항상 사랑합니다.....^^
- 기도제목 -
< 안미정 목자님 >
1. 지금 이 진노의 시간에서 십자가의 참지혜로 통과하는 분별력을 가지도록
2. 영과 육을 잘 관리하도록
( 생활예배와 건강관리 잘하기)
3. 안 나오는 목원들 그리고 중등부 조원들을 위해 계속 기도할 수 있도록
< 김민지 >
1. 목장 잘 나오기와 주일성수 잘하도록
2. 아웃리치를 기도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3.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하나님 앞에서 잘 분별해 낼 수 있도록
< 강은혜 A >
1. 마지막 찬송을 올바로 잘 해서 사명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2. 안 나오는 목원들을 위해 애통함으로 계속 기도할 수 있도록
3. 일대일 양육 잘 받고 학원일을 하나님의 가치관과 죽어있는 적용으로 계속해서 잘 할 수 있도록
4. 아픈 목과 귀가 잘 나을 수 있도록;;;
( 더 이상 악하되지 않도록 아푸네;;;ㅜㅜㅜ)
5. 믿음의 배우자
- 약한 나로 강하게 -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었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 주셨네.....
( 후렴 )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 십자가를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왠지 받아들이기는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나 자신이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이고 나 때문에 예수님이 처참할만큼 그렇게 잔인하게 찢기셔야 했다는 사실이 저로선 그저 좀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으론 계속해서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남모르게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비로써 십자가를 진 그 예수님 때문에 마치 혈루병 여인과 같기만 했던 저의 상처가 이젠 내 안에서 온전히 나았음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어 감사하고 하나님의 인도가 저와 함께 계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서 정말 다행입니다.
- 나의 신랑이자 내 영원한 남편이신 예수님..... 당신이 내 마음 안에 있어서 이젠 정말 참 좋습니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 그들이 )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 렘 30 : 17 )
-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 시 119 : 116 ~ 117 )
* 헤아릴 수 없이 홀로 지낸 세월... 내 영혼 주를 갈망하네... 하지만 이젠 힘 잃어 더 이상 이 세상에선 천국을 볼 수 없네... 여기 인생의 끝에 사람의 수고 다 헛되네... 은혜 아니면...어디인지 모르는 그 곳 찾아 헤매며 걸어도... 내 구원은 얻지 못해... 나 어디로 갈지... 내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네... 끝없는 경주... 은혜 아니면... ( 은혜 아니면이라는 찬양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