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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79;#65279;[우리들 이야기(김재동 목장)-04월22일]
우리들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
말씀 : "요한계시록 13:11~18"
제목 : "지혜가 여기 있으니"
[말씀요약]
13장은 사단의 삼위일체를 보여주고 거짓지혜 가려져 있는 가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 거짓선지자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
1. 새끼양으로 유혹한다.
(11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땅에서 올라온 새끼양은 그리스도를 모방했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처럼 은밀하게 가장하고 올 수 있다. 예수가 없으면 적그리스도 새끼양과 같다. 로마5대 현제 중 한명인 마르크스 아울렐리우스는 300년간 5대핍박자 중 한명이다. 세상의 권세는 사단이 준것이다. 로마 황제가 광명한 천사로 보여 지금까지 그의 명상록이 읽히고 있다.
2. 짐승을 경배한다.
(12절)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땅의 선지자는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는게 목적이다. 사단의 나라는 사단이 왕이고 그의 분신이 적그리스도이며 하수인이 땅의 선지자다. 이게 삼위일체 그리스도와 비슷하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역할이 있는데 이걸 사단이 똑같이 따라해서 비슷하기에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학벌과 지식이 필요없다. 계속 짐승을 경배하게 하는게 거짓선지자다.
3. 큰이적을 행하게 한다.
(13절)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14절)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절)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초자연적 현상앞에 다들 맥을 못춘다. 사단은 보이는 이적을 보이고 무조건 숭배하게 한다. 이적은 칼의 상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부도나면 그 사실과 환경을 받아들이는게 이적이다. 거기서 살아난게 이적이 아니다. 새끼양이 죽었다가 살아난것처럼 보이니까 이단인지 분별이 안되기에 오직 말씀으로 분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한 이적이 아닌 자기를 위한 것은 이적이 아니며 이적은 보이지 않는 이적이 진짜 이적이다. 성령의 열매가 삶에서 보여지는게 진짜 이적이다.
4.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
(16절)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절)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18절)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사단의 백성으로 만드는게 거짓선지자의 일이다. 사단도 말씀을 따라하여 분간이 못하게 한다. 사단이 하나님의 인과 표를 따라했다. 요즘 시대는 명품의 시대다. 대학교, 직장 좋은데 간다면 다들 따라가게 된다. 이게 세상의 가치관을 심겨 놓은 사단의 수단이다. 유대인들은 짐승의 도움과 마귀의 유혹에 예수님을 죽인것이다. 정말 분간하기 어려워 지혜가 필요하다.
666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네로와 모든 적그리스도를 뜻한다. 인간이 아무리 영악해도 하나님의 777에는 못미친다. 사소하게 넘어갈게 없다. 구원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구원을 보고 목숨을 걸고 짐승의 수를 세어보고 지혜있게 대처해야 한다. 예수를 믿어도 무엇이든지 잘되어야 한다는게 처음에는 그럴듯해도 거짓선지자의 말로 나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오직 참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목장 나눔]
김호진 #8211; "억울한 일"
민방위 갔다가 집에 있으면서 한명 한명씩 목장 식구들이 많이 생각났다. 이번 주에 직장에서 일하다가 힘든일이 있었는데 한 교수님한테 욕먹고 혼났다. 그 이유가 강의실 관리를 제가하는데 미리 예약을 얘기해야 예약 목록을 보고 자리를 잡아주는데 그 교수의 조교가 잘 몰라서 차선책으로 강의실을 잡아 교수가 원하는 곳에서 강의 할 수 없었어 담당자인 나에게 전화해서 조교들에게 잘 알려주지 않은 제가 잘못했다면서 막화를 낸거다. 교수를 만나기 전에 팀장님한테 이런 상황을 말씀드리자 팀장님께서 같이 올라가 주셨다. 교수와 조교, 팀장님과 저 이렇게 네명이 앉아 얘기를 하고 나오면서 교수와 조교가 사과했지만 저는 잘못한게 없는거 같은데 억울한 맘이 들고 왜 이런 욕을 먹어야 하는지 힘들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예전에 공익근무원하면서 고참들의 얼차려가 억울해서 못하겠다고 분란 일으켜 나만 빠졌다가 제가 후임자에게 교육을 시킬 때 고참들이 얼차려를 주라고해서 그말에 따라했다가 후임이 다치게 되서 후임병 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게 되었다. 제가 혼나면서 고참들이 시켰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억울하지만 화를 참아야했다. 내 억울함과 내맘을 주님은 알고 계실꺼라고 생각하고 참았다. 쿨하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퇴근하려는차 강의실 램프가 고장났다는 연락에 늦께까지 힘들게 고치고 다음날에도 고장난 강의실 때문에 계속 변경해주고 안내해줘야 하는 작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새로 보직 이동했을때는 겸손하게 빨리빨리 일을 배우려고 했지만 좀 익숙해지면서 많이 나태해졌던거 같다. 이번 사건도 조교들에게 조금 더 신경썼으면 됐을 일이었다. 이 두가지 일을 겪으면서 내삶이 나태했고 내 할 일이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늦지 않게 올 수 있었음에도 내 게으름으로 예배 늦께 오니까 예배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목사님께서 말씀중에 큐티와 말씀과 양육에 목숨걸고 해야 한다고 하실 때 나는 큐티 절대사수라고 써놓치만 아침에 게을러서 잘되지 않는 내모습을 보고 많이 찔렸다. 목사님이 청년들이 말씀안들려서 안타까워하셨는데 꼭 내 얘기를 하시는거 같았다.
큐티하면서 느낀 것은 야고보서 1:14~15 중에 욕심이라는 단어가 꽂히면서 내 안의 욕심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인정, 명예, 성취의 욕심이 내 안에 많다. 내 성격이 급해서 욕심과 성격이 맞을 때 빨리 성취와 인정을 받고자 한다. 내 자신은 아직 훈련과 양육이 필요해서 내가 어느 정도 안정과 성숙이 되어야 되는데 그런거 없이 빨리 빨리 하고자 하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또 내 앞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준비 없이 내 나이를 고려해서 빨리 해야 한다고 생각만 했다. 친구들과 비교하는 나를 보면서 내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느꼈던,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한 주였다.
목자 #8211;
어제 저녁에 우울했다고 했는데 그럴땐 무슨 생각해?
김호진 #8211;
그럴때는 추억과 옛 기억들이 많이 생각난다. 민방위 받으면서 그 지역 고등학교 졸업생이어서 고등학교때와 옛 교회 추억과 대학때 있었던 일들이 많이 생각났다.
억울하게 욕먹으면 화나고 힘들다. 예상외의 억울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
신뢰하는 사람들과 얘기하거나 운동하거나 음악을 크게 틀고 방안에 있거나 한다.
모든 시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건 아니다. 야고보서에서 너희가 시험을 만나기를 기뻐하라고 했다. 왜 이렇게 써있을까?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는게 되나? 안되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씀대로 할 수 있을까? 말씀이 틀린건가?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게 힘든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김삼희 #8211;
말씀을 깨달으면 되는데 바로 되지는 않는다.
김규진 #8211;
저도 즉시는 기뻐하지는 않지만 고난 상태에서는 오직 주님밖에 의지할께 없다는 그 상태가 곧 축복이다고 생각한다.
윤주희 #8211;
지나고 나면 말씀으로 깨닫게 된다.
홍태진-
오늘 말씀처럼 이적은 자기 죄를 깨닫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시에는 바로 기뻐하지 못하지만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면 후에 기뻐하게 되는거 같다.
목자 #8211; "인내하면 승리한다."
시험을 만나면 우리는 우울과 짜증나고 화나는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주께서는 기뻐하라고 하신다. 성경은 너희가 시험을 통해 인내를 얻게 될것인데 그걸 기뻐하라고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거 같다. 엄마가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등학교 수업료, 학원비를 못 낼 때 돈으로 인한 많은 시험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은 돈이 없어도 먹고 사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음을 알게 되면서 내가 돈에 조금은 자유함을 얻게 된거 같다. 내가 다이어트를 하기위해서 빵을 안먹고 날신해질려고 한다. 현재의 희생으로 미래에 얻는게 있다면 기꺼이 할려고 한다. 인내라는 것이 이런 가치가 있는것일까? 인내가 중요한 것은 성경 전체에 나오는 것이다. 인내는 시험이 만드는 것이다. 인내는 시련과 시험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집에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기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시험과 시련을 내가 선택한게 아니다. 시험과 시련을 통해 얻는 인내가 그 만큼 가치가 있냐고 하면? 우리는 시험과 시련을 이길 수 없기에 내대신 주께서 싸워주셔야 해결이 된다. 인내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께 구하면 우리가 승리를 하지만 그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육과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인내해야 한다. 여자는 기본적으로 인내를 잘하기에 남자가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인내하면 이길 수 있다. 승리는 거창한게 아니라 교수가 욕해도 마음에 평화를 얻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참는게 아니라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움직일때까지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인내다. 예수님께서 다 이겨놨기에 우리가 그 싸움에 참여 할 때까지 인내하고 우리는 참여하면 이기기에 우리가 기뻐하라는 것이다. 내가 결혼하고 아내가 화를 많이 내고 뜬금없이 계속해서 너한테 퍼부어도 네가 그 교수를 통해 얻은 인내로 네가 그 시험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시험에 기뻐해야 한다. 지금 믿음의 시련으로 인내를 얻으면 승리하게 된다. 인내하면 이기기에 결국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기신다. 믿음에만 시련이 있지 믿음이 없으면 사단도 시험을 주지 않는다. 명품에만 짝둥이 있듯이 기독교가 제일 많은 사이비가 있다. 인내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얻게 된다.
이혜림 #8211; "주눅들어 있는나"
고등부 집사님 회사에서 알바하면서 많이 힘들다. 내가 처음에 잘못하니까 다른 두 여자분들에게 내가 위축되서 말을 못하고 머리가 하얗게 된다. 내가 똑똑하고 똑부러지는 분을 만나면 내가 많이 위축된다. 그분들은 사회에서 적응된 분들이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일요일에 하루 종일 교회에 있는데 네 사생활은 없냐고 묻길래 그 말이 맞는거 같기도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않좋은 상태에서 그 말을 듣다 보니 전에 부지런히 교회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교회에만 있던 그 시간들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저것 가려서 매력이 없는 거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나는 믿으면서 왜 불행한 걸까? 오늘 말씀 들으면서 내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지만, 내가 보기에 대단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나를 실망시키고 친척들이 나한테 의지하려는 것을 보면 힘들고 실망시키는 것을 보면서 결국 사람의 관계에서는 돈이기에 666밖에 안되고 말씀을 깨닫는게 777인거 같다. 머리로는 생각해도 마음으로는 잘 안된다. 내가 하는 일은 제약회사 영업 행사를 대신 해주는 것이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앉아 일을 하는 스타일이지 사람들한테 서비스하는 것은 어렵다. 그만두고 싶지만 집사님 때문에 참고 있다. 사무실안에서 두여자분만 메신저로 낄낄되고 나를 볼때마다 무시하는거 같고 그들 앞에서는 작아지는 내자신이 싫어졌다. 또 점심때 전날 치킨을 많이 먹어서 점심을 않먹었는데 같이 먹지 않았다고 뭐라고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좀 참아주면 되지만 그렇다고 점심 같이 안먹은거에 나무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나보다 스펙이 좋으니까 내가 한심하게 보이고 주눅이 들었다. 집에 오면 스트레스 받아서 치킨 먹었다.
일을 처음 하는데 당연히 못하는거 아냐?
이혜림 #8211;
첫날부터 누구한테 메일을 보내라고 하는데 누군지도 모르는데 메일을 보내라고 하고 잘못 보냈더니 옆에서 뭐라고 하시는거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얘가 그러니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자꾸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니까 그들에게 미안하게 생각됐다. 저 스스로 자신감이 너무 없는거 같다.
점심사건도 따지고 보면 집사님이 대표시고 내가 올자리도 아닌데 오게되고 그리고 나를 감싸준다는 것에 질투가 좀 있었던거 같다.
두 가지가 있는거 같다. 네가 그 조직에 있으면서 뭔가를 맡아서 하는건데 너 때문에 폐를끼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네가 미숙한 것이 있어서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게 아마 어렸을때부터 가졌던거 같다. 네가 큰엄마집에서 자라면서 네가 있는다는거 자체가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거 같다.
어렸을때부터 무슨일만 있으면 저탓이라고 했기에 확실히 그런게 있는거 맞다.
목자 #8211; "너는 귀한 존재다"
문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서 사는데 큰엄마 큰아빠가 했던 말들이 계속해서 지금까지 연결되서 오고 있다. 네가 있는거 자체가 해가 되는게 아니다. 네가 그런 생각이 드는건 너의 잘못이 아니라 너의 부모님으로 인해 생긴일이다. 결과적으로 거기가서 네가 그렇게밖에 생각 할 수 없게 되었다. 큰엄마 큰아빠 밑에서 긴 시간 있으면서 네가 느끼는 감정은 내존재 자체가 민폐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도 그 생각이 없어지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네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내잘못과 내잘못이 아닌 것이 있다. 우리집에 아버지가 도박으로 가난한게 내잘못인가? 내잘못인 것은 돈을 벌 때 아끼지 않는것은 내잘못이다. 내가 받은 상처는 죄가 아니다. 상처 때문에 나 자신을 학대하고 하나님을 자꾸 멀리하고 상처 때문에 거부하고 나자신을 가두는 것은 죄이다. 네가 큰엄마 큰아빠로 인해 네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것에 우리는 다 이해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그러면 안된다. 이것을 한번에 구별하기는 어렵다. 일을 할 때 바로바로 순발력 있게 할 수없다면 다이어리에 적어 놔라! 너는 어디 가든지 귀하고 이쁨을 받을 존재다. 예수님께서 너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너는 귀한 존재다.
[깨어진 유리창 이론]
뉴욕 거리에 똑 같은 차 두대를 세워두고 한차의 옆 유리창을 조금 깨어놨다. 그리고 몇 주후에 와서 보니까 유리창이 다 깨지고 카오디오는 뜯껴 갔지만 다른 차는 그대로 있었다. 이게 뭐냐면 유리창이 깨어 있으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른 실험은 뉴욕의 똑 같은 벽에 한 군데는 쓰레기를 떨어트리고 한군데는 깨끗이 치워놨더니 나중에 갔을 때 쓰레기 떨어트린 곳에는 온갖 오물과 낙서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틈으로 나의 사소한 것들이 결국은 나 자체를 몰락시킨다는 것이다. 뉴욕 시장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했다. 처음에 한 것은 쓰레기 다줍게 하고 낙서 다 없애버렸다. 그랬더니 자연적으로 범죄률이 뚝떨어졌다. 아가서에 작은 여우처럼 똑같다.
목사님께서 큐티와 예배드리는 것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목숨을 걸고 하라고 하는 것이다. 나라고 왜 유혹이 없겠어? 나라고 큐티하기전에 유혹이 없겠냐구! 네 자신에 틈을 주면 안된다.
김규진 #8211; "변화지 않는나! 고난의 연속!"
오늘 규티말씀 야고보서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계 매출이 안나와서 엄마한테 얘기하자 그만 접으라고 하셨다. 전주인이 계속 노리고 있었는데 요즘 매출이 적어지면서 관심이 줄어들었다. 엄마가 전사업자에게 사업자 등록이 당신명의로 되어있어서 장사하기 힘드니 다시 넘겨주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게 사업자를 나로 바꿀수 있었음을 알고 황당했었다. 이런일들을 보고 내힘으로 하는게 아니라 내 모든걸 주님께 맡기기로 했다. 다음날 전주인이 전화해서 규진씨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알게 됐는데 제가 무슨 오해할만한 행동을 했냐고 따져서 그런일 없다고 사과했다. 연극치료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저 스스로 확신이 없다보니 한사람 눈만 보고 다른 사람들은 내말만 듣고 있는데 내가 확신과 준비 소홀에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하게 되었다. 연극치료를 하면서 각 행동을 보고 파악한 부분을 피드백 받았을 때 치료가 불충분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전에는 칭찬받고 서울대생에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그날은 내가 너무 비참하고 그 동안 내가 변한 줄 알았는데 죄오픈하는거 외에는 달라진게 없었다. 가계도 다시 내놓게 되면 그 다음은 모든걸 주님께 맡기겠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을꺼 같다. 또 거짓말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목자 #8211; "내가 약할때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
내 행동중에 바뀐 것은 중.고등부 선생님들한테 깍듯이 대하는거다. 엄마가 나중에 네가 간사나 사역자가 되면 깍듯이 대하라고 하셔서 내가 그대로 따라 하게 되었다. 내가 상처가 나서 고름을 빼낸다고 일거에 통증이 없어지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야고보서는 행위를 강조한다. 말씀을 깨달으면 행동의 교정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자기 간증을 하는 것은 서로 공감을 얻게 되어 사람을 살리는 약재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행함도 중요하다. 믿음으로 행위가 따라 오는 것이다. 행위는 전제 조건이 아니기에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오늘 목사님이 말씀하신대로 큰 이적으로 성공과 모범을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건 아니다. 새끼양의 모습과 큰이적에 우리는 속으면 안된다. 우리의 최고의 신앙고백은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신것에 내가 참여하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내가 거기에 따르겠습니다. 이런 신앙고백이 진심으로 되어야 한다. 내 열심으로 하면 남을 죽인다. 내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만 남아야 한다. 기독교의 가장 큰 역설은 내가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주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다. 내 힘으로 못하지만 할 수 있다. 이게 기독교의 오묘한 진리다.
새 소속사를 알아보고 있는데 잘 되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란다.
윤주희 #8211; "내안의 두려움!"
엄마는 세입자를 생각해서 금액을 낮춰주기로 했지만 그분의 태도가 너무 괘씸했었다. 지금은 맘상하지 않게 해결이 잘 되길 바란다. 이번 주에 우리가 사는 빌라 하수관에 문제가 생겨서 공동회의를 했다. 한 아저씨가 저녁 늦게 엄마를 만나고자 오셨지만 너무 늦어서 되돌아가셨다. 제가 늦은 시간에 문을 열고 그 아저씨와 얘기한 것을 보고 동생이 화를 냈지만, 내안에 화가 나지 않은 것은 오빠가 가계에 있고 아빠가 없는데다가 다 여자뿐이라서 염려와 걱정을 했음을 알기에 화가 나지 않았다.
요즘 양육 숙제로 수요일 예배 셋팅 작업을 하는데 작업이 더디다고 텃세 부리는거 같다고 생각했다가 다음에 갔을때는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내가 텃새라고 생각한건 내가 새로운 것을 하는 두려움과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랬던거 같다.
오늘 말씀에 가족을 위해 맹목적인 것은 안되다고 말씀하셨는데 동생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된다.
목자 #8211;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라!"
동생이 앞으로 또 똑같은 일이 생기면 사실은 맞지만 감정적으로 하는건 아니라고 말을 해주는건 좋을꺼 같다. 그런데 주희는 왜 앞으로 이렇게 하면 좋을지 걱정하거나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걱정할까? 주희에게 두려움이 있는거 같고 왜 그 두려움이 있을까? 예전에 내가 주희가 한말을 기억한다. 주희보고 김태훈 목사님이 6개월전에 등록한 그분이시죠? 하니까 네가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기억하나?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주희는 일정한 거리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에는 죄책감이 있어서 거리를 둔다고 본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안에 없다보니 그 두려움에 하나님한테로 온 것이다. 아가서를 볼 때 큐티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죄를 찾지 못해서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죄가 두려워서 죄를 보고 자기가 평안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왜 두려워하는지 그 근원을 알아야 한다.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면 가서 확인해야 무서움이 덜한다. 확인하지 못하고 상상하면 내 맘속에 몬스터를 키우게 된다. 꼭 찾길 바란다. 그 두려움을 찾아서 원인을 찾고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너는 사람과의 관계를 딱 정해서 거리를 둔다. 그러다 나중에는 나 혼자만 남는다. 다른 사람들도 상처 때문에 거리를 두게 된다. 성경에 예수님만 좌우로 치우쳐 있지 않다. 내안에 예수님이 들어 오셔야 내가 치우쳐 있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예수님을 깊이 받아 들일수록 자기의 치우친 부분을 잘 보게 된다. 현상이 중요한게 아니라 현상을 일으키는 동기가 무엇인가? 그걸 찾아야 한다. 자기 안에 치우쳐 있는 것을 찾아야 자기 자신도 잘 알게 된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강원희 #8211; "나꼼수 김용민"
교회다니면서 의문점들을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가 의심을 최대한 하지 말고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했다. 어제 여친과 말싸움을 한게 나꼼수의 김용민 애기를 목사님께서 말씀하신게 기분이 좀 나빴다. 내가 정치경제에 대해 관심없다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꼼수가 큰 목사 큰 교회 목사들의 안좋은 점을 들어내는 이런점을 가지고 여친과 말싸움하게 되었다. 교회안에서 무조건 다 맞다고 할 수 없고 나쁜것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용민의 나꼼수 말고 교회의 조직 같은거 말고 하나님 자체에 믿어지지 않는 걸림돌이 뭐라고 생각해?
강원희 #8211;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너한테 편하게 얘기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겠다. 이런얘기를 목장에서 밖에 못한다고 여친에게 얘기했다.
강원희 여친 #8211; "세상이 지적해도 우리는 지적하지 말자"
목사님 말씀은 김용민의 잘잘못이 아니라 표현이 잘못했음을 말씀하신건데 기독교를 비판하니까 그리고 나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편을 들어주지도 않고 나도 기독교의 나쁜점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지적질 하지는 말자 지적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꼼수가 뭐라고 하든 우리는 지적하지말자는 것이다. 그쪽으로 좀 싸우게 된다.
남자친구가 왜 김용민의 말에 관심을 갖는지 알고 있나요?
강원희 여친 #8211; "나때문이다."
돈을 벌고 싶은데 사회에 대한 불만이 나꼼수가 정치와 사회 경제데 대해 딱 꼬집어 주니까 관심 을 갖게 되었다. 저는 불만인게 자기가 거기서 판단을 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걸르면 되는데 너무나 거기에 너무 빠져있는게 나의 불만이다. 그리고 제가 돈을 원하기에 돈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거 같다. 제가 돈으로 많이 쪼이고 있다.
목자 #8211; "선택해야 한다."
돈을 원하는 이유와 지금 현재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 돈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려고 하니 힘든 것이다. 이게 첫번째고 두분은 공통점과 다른점이 있다. 여친은 급해서 선택하면 쭈욱 밀고 나간다. 하지만 남친은 생각하고 조금씩 조금씩 가는 타입니다. 지금 두분 다 화가 아주 많다. 단지 서로 화푸는게 다른 것 뿐이다. 내가 화를 내도 받아주는 남자가 매력이 있는 것이다. 원희는 화를 바로 풀지 않기에 매력있지만 원희가 보기에 바로 바로 화내지 못하는 나보다 여친이 매력이 있기에 서로 끌리는 것이다. 사람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것이다. 사회의 불만이 있는 자는 개인의 불만을 사회로 표출하는 것이다. 사회에 표출하고 싶은데 자기는 못하니 김용민에게 꽂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성세대들에게 한마디하고 싶어서 김용민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자기가 어렸을 때 눌리고 힘들게 지내온 어린 시절을 누군가 해소해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다. 중립적이지도 객관적인 것도 없다. 과학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희도 결정을 해야 한다. 시어머니와 아내의 관계가 첨예하면 아내편을 들어야 한다. 엄마는 피로 연결되었기에 나중에 해결하면 된다. 아내는 남이기에 부인은 내 반쪽 이기기에 잘 해줘야 한다. 내가 어느 가치에 올인해야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홍태진 #8211; "화대처법"
친구한테 전화해서 여행갔다왔는데 나한테 선물같은거 없냐고 물어봤더니 초콜릿 사왔다면서 식사나 한 번하자고 했다. 자다 일어난 얘한테 더 이상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목요일에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자기는 오늘 회식이고 주말에는 처가에도 가야 한다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일 주소를 달라고 했더니 무슨 일이냐고 전화로 하면 안되냐는 메시지는 무시하고 할말이 있다며 메일 주소를 달라고 했다. 오후 내내 나의 서운함과 화가 난 이유를 정리해서 글로 내 맘을 썼더니 어느 정도 진정되고 화가 가라앉았다. 그때마침 누나한테 소개팅 하라는 전화가 와서 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얘기하고 친구한테 쓴 편지를 읽어 줬더니 누나가 하는 말이 그 친구는 너한테 크게 관심이 없고 자기 이익만 보는 바로 앞만 본다고 했다. 또 결혼을 막 끝낸 시점이라 정신이 없는데 지금 얘기해도 먹히지도 않고 너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잠시 정리될때까지 기다렸다가 만나서 네가 준비한대로 잘 얘기하고 그 친구가 받아주면 더 좋은 친구가 될꺼고 아니면 그걸로 너와 그 친구와의 관계는 그 정도이기에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얘기를 듣고 진정이 되서 친구한테 내가 너무 너한테 보챈거 같다. 정리되면 그때 만나서 얘기하자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변이 없었다. 그 친구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금요일에 전부서에서 떠나기 전 처리했던 일이 내 부의주로 큰 문제가 생겼다. 내 잘못으로 거래처에서 국세청에 벌금을 물게 되었다. 적은 금액이지만 거래처는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새부서로 왔는데 나의 이미지를 위해서 발뺌할려다가 큐티하고 내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될꺼 같아서 다음날 팀장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내잘못이라고 고백했더니 팀장님은 금액이 적으니까 괜찮다고 하셨다. 내가 새부서에서 잘 보이려고 했던 내 욕심으로 나중에 크게 번질 수 있었던 일을 말씀대로 깨달은 대로 실천했더니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
목자 #8211; "조금만 더!"
형이 저한테 얘기를 해서 잘알고 있던일이고 목요일에도 화가 너무 나서 저한테 얘기를 했는데 형 개인의 문제 즉 형의 성장을 위해서는 그 친구와 좀더 딜을 해야 했다고 본다. 누나는 사회적인 조언으로 한것이다. 형이 누그러진 이유는 저한테도 얘기하고 누나하고도 얘기하고 결정적으로 편지를 쓰면서 자기 자신을 정리하게 되면서 자연히 화가 누그러진것이다. 자기맘이 어느정도 정리만 되도 화가 어느정도 가라 앉는다. 저는 형보고 좀더 발전되길 원하기에 그렇게 말한것이고 형은 자기 맘도 어느정도 정리되고 누나의 격려도 받았기에 그 제안을 받아 드린 것이다. 앞으로 형이 화가 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게 되서 기쁘지만, 전 좀더 원했다.
황희정 #8211; "하나님게 원망할꺼 같다."
저를 대게 싫어했던 상사를 회사로 다시 돌아가서 만나게 되면 큐티인 책을 주려고 오늘 샀다. 신학도 하시고 기도도 많이 했던 분이시고 제가 처음에 저분의 위치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신 존경하는 분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시달렸던게 있어서 싫어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명확하게 느껴지는 야고보서를 좋아한다.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함이 일치해야 한다는 말씀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저는 언행일치를 중시한다.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에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한다고 느낀다. 시험을 기뻐라하는 것을 보면서 오늘도 목사님 말씀을 들어도 주의 뜻이 아닌 내뜻대로 되어 달라고 기도 드리고 이제 것 회사안에서는 내가 원하는데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구나 그런 생각을 갖었는데 이번에도 나는 당연히 대학원에 붙을 꺼라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안될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 사육사를 내 열심으로 정말 하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되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자꾸 앞길이 막히는거 같다. 그러면서 내 열심과 내 욕심으로 하고자 하는게 지금도 많이 있다. 주일예배 잘드리고 믿음생활 잘하고 있는데 생색이 나서 이번에 떨어지면 많이 원망하고 받아들이지 못할꺼 같은 걱정이 많이 든다. 나는 보란듯이 내가 하고싶은데로 다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왜 사육사는 안되었어?
황희정 #8211;
사육사가 안된게 서울 대공원은 계약직이다. 에버랜드는 사육사를 위해 뽑는게 아니다. 알바생들을 뽑아 보내는 것이다. 별도의 면접을 본게 있는데 그쪽에서는 내 페이와 직장이 있어서 뽑히지 않았다. 부모님도 일반인들 처럼 지내라고 하시고 오빠도 그 당시 아직 학생이어서 내가 가족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육사 길을 하나님이 막으신 이유는 알아?
주일날에도 일을 해야되서 그렇게 됐다면 여기도 오지 못했다. 그러면서 내가 예수님을 믿을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목자 #8211; "소명"
이사야 6장을 소명장이라고 한다. 웃시야는 선왕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잘 통치하다가 말년이 않좋았다. 웃시야가 죽고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동물원 사육사를 막은 것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막으실건 막고 열어놓을건 열어 놓으신다. 그건 네가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게 있기에 그걸 막는 것이다. 하나님 보다 더 좋아하면 우상이 되고 그러면 결국 멸망할 수 밖에 없다. 내가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게 하나님의 사랑이고 이게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다. 막으면 하나님의 뜻이고 열어놓아도 하나님의 뜻이다. 가장 큰 사랑은 줄때와 안줄때를 가려서 주는 것이다. 상담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만일 올해가 안되어도 맘속에 지속적으로 부담이 있다면 내년에 또 하면된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혹 딱딱 맞아 떨어져서 바로바로 되야된다고 생각한다면 너를 위해서 그건 제일 않좋은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에 사울이 아닌 어린 다윗에게 기름부워준 사건으로 다윗은 사울에게 10년간 쫓겨 다닌다. 하필이면 왜 이랬을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쓰겠다고 하셨는데 다윗에게 왜 그랬을까? 다윗이 왕이 되기전에 하나님의 뜻에 잘 따르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 다윗이 고난없이 왕이 되면 당연히 자기힘으로 왕이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윗도 말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훈련시켜도 이렇게 변할 수 있는게 인간이다. 사도 바울이 사울에서 바울로 변하게 되기까지 다메섹에서 3년동안 있었다. 또 김양재 목사님께서 13년간 걸레질을 한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야보고서가 왜 이렇게 씌였는지 간략히 설명하겠다. 야고보서는 사도 야고보가 아닌 예수님의 동생이다. 유다서는 야고보의 동생이 쓴것이다. 그 당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사도 제자들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떠나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는 야보고였다. 유대인들을 위해 써야했고 항상 율법적인 행함만 있지 하나님을 향한 행함이 없었기에 자꾸 믿음의 행함을 강조하게 되었다.
김삼희 #8211; "아가서! 에휴~!"
이번주 아가서가 나를 힘들게 했다. 술라민 여인이 아무것도 갖은게 없어도 사랑 받은것처럼 나도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수요일에 술라민 여인의 참사랑을 보면서 갑자기 심란해졌다. 주님과 나와의 사랑으로 말씀을 보는게 아니라 나도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날씨가 너무 좋아 나도 이런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데 갑자기 내가 외롭다는 생각을 느끼게 되었다.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말씀을 보면서 더 커진거 같다. 예전에 나는 뭔가 척척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된 것이다. 나도 내 힘으로 할 수 있음이 강한데 하나님을 찾게 하심에 감사드리게 되었다. 연애를 한지 오래 되서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이 많다. 아가서를 보며 심란한 나를 자꾸 부채질 했다가 야보고서를 보고 시간이 지나자 지금은 괜찮아졌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교만했음을 알게 하시고 분별하라고 하시는거 같다.
목자 #8211; "사랑의 3가지"
다들 생각해 보세요! 사랑에는 3가지가 필요하다. 친밀함, 열정, 헌신이다. 친밀함만 있다면 그냥 좋아하는것이고 열정이 있다면 섹스어필도 있어야 한다. 그냥 열정만 있다면 원나잇으로 끝난다. 헌신은 내가 손해봐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헌신만 있다면 조건적인 사랑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결혼은 감당이지 공감이 아니다.
우리 목원들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삶이 계속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