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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요약◀ (12월 25일)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기도" [요한계시록 8:1~5]
이번에 결혼식에 주례를 갔습니다. 원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곳이었는데 너무나 시끄러워서 주례를 할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객들에게 여기가 목욕탕인가요? 시장인가요? 라고 물었을 정도입니다. 주례할때에도 말씀을 사람들이 들어야 축복을 받을수 있지 았겠습니까? 결국 중보기도까지 하고 결혼은 은혜스럽게 마쳤습니다. 안믿는사람에게 야단친다고 믿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안들리는 사람은 떠들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하나님를 얘기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심판의 얘기를 계속하고 계시는데 백성들은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너무 듣고 싶으셔서 오늘 조용해 지셨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올려지는 기도를 하기 바라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어서 조용하셨는데 여러분도 조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올려지는 기도는 어떤기도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침묵을 겪어야 합니다.
1절: “일곱째 인을 데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로마의 핍박이 굉장히 심할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은가가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의 악이 더 크다고 하시면서 6째인까지 떼시고 7째인을 떼시기 직전에, 앞으로 재앙이 엄청나게 오기 직전에 반시동안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십니다.
하박국 1장 13절 : “주께서느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이 물음이 오늘의 우리의 주제가 아닙니까? 엔도슈사코라는 사람이 침묵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한 신부의 스승이 배교를 했는데, 끓는 가마속에서 성도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배교의식은 예수님의 초상화를 발로 밟고 가는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 이세상에 왔다. 너희는 밟는것 자체로 아픔이 충분하다.’ 신부는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끓는 가마속에 죽어가고 있는데 침묵하고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나는 침묵하지 않았다. 고통을 나누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늘 고통당하는 그 순간에 늘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2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천사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있다고 합니다. 7인의 재앙은 하나님으로 부터 옵니다. 귀신으로 부터 오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존귀와 능력이 되십니다.
이사야 63장 9절: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셔서 대적하여 치시기도 하시지만 드시기도 하시고 안기도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이 잔소리를 하다하다 딱 끊으셨습니다. 반시동안입니다.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시동안이 너무나 평생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도리질을 하고 원망하고 욕을 합니다. 로마의 핍박이 있었지만 크리스챤들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앞에 기도했습니다. 아무소리 안들리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올려지는 기도가 무었인지 너무나 경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침묵의 시간을 많이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2. 금향로에 담으시는 기도입니다.
3절: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금향로에 담으시는 기도에는 네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공평과 정의의 바른 기도를 금향로에 넣으십니다.
바른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금향로에 담깁니다. 사람은 다 치우쳐있습니다. 감정에 치우치면 정신이 없고 이성에 치우치면 메말라 있습니다. 성적으로 방종하면 부족해도 넘쳐도 다 문제입니다. 죄의 어원은 과녁을 빗나가다 입니다. 신앙생활도 큐티, 구제, 선교중 한군데 치우치면 이단입니다. 균형잡는것이 어렵습니다. 사람은 치우쳤다는것을 모릅니다. 디모데후서 3장1절: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것 만큼 고통이 임하는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택한백성은 자기자신의 공평치 못하는 것을 보는것이 택한 백성입니다. 안치우쳐 있는사람이 없습니다. 신앙이라는것은 치우침없이 가려는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내 자신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다루시고 다른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다루신다는것을 믿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엄청난 박해속에서 지하 카타콤에서 울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간절이 기도했는데도 로마는 점점 강대해지고 순교자들은 늘어났습니다. 이런상황속에서 잘 깨달아질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환경이 달라지고 바뀌는것만이 응답이 아닙니다. 공평과 정의의 바른기도를 한다는것은 치우침이 없는 바른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는 치우침이 있습니다. 치우침을 보는것이 안보는사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들의 기도는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전부 들으십니다. 마가복음11장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의 분량대로 응답받는다고 하십니다. 로마도 바뀌기가 313년이 걸렸습니다.
두번째는 간절한 기도를 담으십니다.
어떤 목사님의 아내의 뇌종양 병을 통해서 만병통치약을 찾는 돌팔이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도저히 지금까지 갈고닦은 기도의 이론 감동적인 기도가 생각이 안나고 머리가 고갈되고 회개기도도 생각이 안나고 "아 하나님" 두단어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있는 기도인지 알수없지만 할수있는 기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괴로운 시간이 반시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반시밖에 안되지만 우리는 평생이라고 합니다. 내 평생에 못했던 기도를 이 반시동안 간절히 할수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성실하게 준비하는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기도에 항상 힘씁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기도에 익숙하지 않아서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외적 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최고의 기도는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입니다. 시간을 정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식사기도 해야합니다. 회사와 불신친구 앞에서 꼭하시고, 누워서도 앉아서도 차타고 가면서도 남의 집 방문해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문을 써서합니다. 원고를 갖다놓고 원고를 안보시면서 거의 외워서 기도하는정도로 하시면 성령이 쏟아놓으시는 기도가 되며 은혜를 주십니다. 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믿습니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의 순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공예배에는 꼭 공동체의 회개기도가 있어야 하며 3분을 넘기시면 안됩니다. 우리들 교회는 말씀을 통한 중보기도회가 있습니다. 목장에 모이면 기도하시고 교회 밖에서 모임하는것은 조심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무시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시간정해서 하는것보다 무시로 하는것은 더 힘듭니다. 외적인 훈련을 하다보면 내적인 공허함이 생깁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한다는것은 인격적으로 읽는가운데 하나님의 생각과 음성을 듣는것입니다. 기도는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기도할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무엇인지 살피는것이 중요합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친밀함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도 머리속에 하예지는 일이 안생깁니다. 우리는 날마다 목자을 통해 주일예배 수요일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친하여 놓으면 급박한 순간에 우리를 따라올 자들이 없습니다. 세련되고 교양이 있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 살기 때문에 세련되어 질수밖에 없는것입니다. 우리 목장모임에서의 나눔은 기도훈련의 좋은 시간입니다. 성실하게 기도를 준비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네번째: 기도의 결론은 전도라는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이 로마의 핍박을 잘 견디어 내고 기도했기 때문에 로마를 전도했습니다. 내 환경에 잘 매여 있는것이 가장 영적으로 시간을 절약하고 아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믿고 로마를 무서워하고 원망하면 절대 전도 할수가 없습니다. 내 자신에게 심판이 임하니까 계속해서 아픕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반드시 겪어야 됩니다.
3. 심판을 불러오는 기도를 하는것입니다.
심판은 바로 사실 구원입니다.
5절: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당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금향로에 담을 기도를 쌓아놓고 있으면 내 기도가 심판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이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는 대통령도 아니고 성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바꾼것은 세종이 아니라 이름모를 선교사의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모든 기도를 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면 그런 기도가 금향로에 모아져서 그 금향로가 땅에 쏟아지면 이 땅에 공평과 정의가 오는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기도는 저 남편이 왜 돈이 없냐가 아니라 내가 돈에 치우쳐서 돈 없는 남편을 만났다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보는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번개와 지진의 심판이 임하여서 남편이 그 심판을 받고 구원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심판이 옴으로 육은 죽고 영은 살아나오는 것입니다. 암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천국 가는것이 최고의 유산이고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불평이 없어지고 우리의 기도로 로마같은 사람이 예수믿고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말씀이 절대 들어갈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해도 제대로 하는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에스겔 8장에서 모든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해 기도하고 25명의 지도자들이 동방태양신을 위해 울며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가증하다고 하십니다. 환경의 고통보다 말씀이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환경이 전부가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들리게 하기 위해서 침묵속에 던지실수도 있는것입니다. 밤낮 돈주시고 건강주시고 하는 기도가 평생 안달라 집니다. 달라! 달라! 하는 기도가 드디더 내 자신의 부패함을 보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보는 기도가 되기까지 재앙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로마는 결국 멸망했습니다. 기독교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것처럼 보이십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내 옆에 계십니다. 300년이 걸릴만큼 나의 수준이 그러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빨리 응답되는것이 좋은것이 아닙니다. 좋은 얘기만 하면 사람들은 분별이 안됩니다. 어떤분이 아내의 실수로 두채의 집중 한개를 정리하고 빛을 갚으려고 사채를 쓰다가 나머지 집도 정리하고 전세를 갔는데 그것마져 날리게 생겨서 구제신청을 했는데 4개월동안 답이 안나오고 서울지방법원에 신청했는데도 접수도 안받아 주어서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정말 솔직한 자기죄의 오픈의 내용입니다. 자신이 살아온날의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결함 받았다고 하십니다. 어떤 여집사님은 목자의 편지도움으로 몇명의 변호사를 이기고 이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판사도 들어주는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진실되게 자기의 가증을 보면서 해야할 우리의 결론은 전도입니다. 우리들의 기도의 결론은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교회가 전도를 안하고 선교를 안하면 정말 웃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결론이 아픔이 없어지는 기도가 아니라 가증과 부패를 보면서 전도를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하나님앞에 올려지는 기도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때는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때이며 이 침묵의 시간을 견뎌야 하나님앞에 올려지는 기도가 되는것입니다. 로마는 전도 되었습니다. 심판을 부르는 기도로 육이 망하고 영이 채워져 전체로 영이 채워져 구원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싸인이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친하여 지는 기도를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목장나눔
▶행섭형님:
그동안 대학원 열람실이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사람가운데서 생활했는데 가끔 같은과 대학원생들과 점심이나 저녁먹으러 갈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만빼고 친밀해 보이는것을 어느순간부터 느껴졌다. 나만 혼자 따돌림 당하는것 같은 느낌.....,사학과 대학원생들이 많이 모이는 열람실이 있는데 친밀해지기 위해 3년만에 한번 올라가 보았다. 전반적으로 한두명 빼놓고 그냥 좀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2주동안 있으면서 다시 다른곳으로 갈까라는 생각도 숫하게 했다. 이번달에 과제가 너무많아서 힘든시간이었다.
▶경호목자:
사람이 편하고 다 내 능력으로 할수있으면 기도가 안나온다. 그러나 물한모금 먹을수없는 환경이면 그것만 보고도 하나님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이들것이다. 그것이 기도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그런 생각조차 없으면 내가 믿는 사람인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것 같다. 하나님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도 갖고 하나님을 찾았으면 좋겠다.
▶경석:
제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형이 참 자주 웃었으면 좋겠다. 상투적으로 표정을 웃고 다녀라가아니라 TV 컨텐츠라도 개콘이라도 볼이유가 있는것이 사람과 편하게 지낼수 있는 방법은 공감하는 것이다. 개그맨들은 항상 연구한다. 공감하기 위해서. 그러니깐 그런 부분도 다른사람들과 공감할수있는 방법이 될수있다. 형은 항상 전화오면 계속 학교에만 있는것 같은데 그 생활자체가 형을 경직되게 만드는것 같다. 자기 짜투리시간에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고 그리고 하나님께 좀 구했으면 좋겠다. 절대 기복적인것은 아니다. 형이 많이 힘드니깐 걱정도 되고 한다.
형이 할수있는것은 답답한것들을 목장에서 다이야기 하고 우리가 함께 기도하는길이 아닌가 싶다.
▶행섭: 일주일마다 하는 세미나만 준비하고 싶고 사실 잠수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경호목자: 형이 외로워서 그런지 그사람들과의 관계때문에 그런지
▶행섭: 자꾸 그사람들과 불편하다 보니깐 다시 다른 열람실로 내려갈까란 생각들고 왜 내가 올라왔나는 생각이 든다.
▶경호목자: 하나님이 공동체 만드신 이유가 있다. 형을 받아주고 찾아주는 공동체에는 들어갈 생각을 안하고 안되는 공동체에 자꾸 스트레스를 받고 인정하지 못하는거 같다. 안되는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경석: 나도 교회에 첨 왔을때 사실 아는사람이 없어서 좀 힘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잘 어울리고 아는척 하는모습을 보고 경건하지 못하다고 정죄하기도 했다.
▶경호:
나도 2005년에 교회왔는데 상당히 힘들었다. 그당시 자취하던 때여사 힘들었는데 어울리고 싶어도 사실 어울리지 못했다. 그땐 목장모임보다 목장이후 사적 모임에 끼고싶어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목장에 친한사람을 한명씩 두명씩 만나면서 나아졌고 수련회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한사람이 출발점이 되는것 같다. 그때 외로웠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묶어주신 지체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목장식구들은 나눔만 하고 우울한 이야기만 하는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고 영화도 보러다니고 하는 재미있는 모임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외로운것이다. 목자가 지경이 왜 #45335;어지냐면 목원이 재미가 있던 말던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케어하고 데리고 가야 하기때문에 지경이 넓어 지는것이다. 내 열매가 곧 저경이다. 그렇지 못한 목자도 있다. 대충 목장하고 목원들은 외로워하고 그런..., 나도 그런 목자였었다. 아무튼 하나님은 절대 나를 외롭게 하시지 않는다는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람낚는 어부이기 때문에 절대 혼자 두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