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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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설교 요약>
제목 : 사람의 본분 (요한계시록 4장 6절 ~ 11절)
어느 날 자신이 암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너무나 공포와 분노의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잘 믿던 외과 의사도 말기 위암 판정을 받고 무당굿을 하다가 죽었다고 하고, 어떤 수도자에게 말기암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했더니 정신적 쇼크에 빠져서 며칠만에 급사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평소에 종교를
핍박하던 사람이 시한부 선고를 듣고 종교에 입문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빌고 생을 마감한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서로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 어디 의사와 환자 사이 뿐이겠습니까. 나쁜 소식에 대한
저마다의 반응과 입장 때문에 최근 의학 교육에서는 ‘나쁜 소식 잘 전하기’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조금이라도 흉한 소식을 너무나 두려워하고 떨려 하고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들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생물’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뜻은 ‘사람’
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기독교 핍박시대에서 사람, 성도라는 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물'에 '사람'을
대비해서 오늘 본문을 보면서 사람의 본분에 대해서 오늘 살펴보려고 합니다.
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계 4장 6절)
우선 바다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구약의 성전 마당에 있던 물두멍을 바다라고 한 표현이 있습니다.
(대하 4:6) 제사장이 성전 출입 시 손을 씻던 물두멍을 바다라고 가르키는데 (겔 1:22) 생물의 머리위에
유리바다가 있다고 합니다. (창 1:7) 하나님의 창조를 연상시키며 지상보다 아주 큰 바다를 의미하고 보좌와
생물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는데
너무나 요동 없고 고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번 ‘하늘 보좌’ 설교에서 번개와 뇌성이 있다고
했는데 6절에 이어서 하늘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번개를 주실 수도 있지만 유리바다와 같은 조용함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번개 같은 사건이 올 때 나의 요동치는 모습을 보면서 유리바다 같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즉, 나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나를 돌아보는 것이란 내가 왜이리 요동치는가, 바다와 물두멍에서 자신의 악과
분노와 미움을 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성전 출입 시 손을 씻는 것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씻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과 절대적인 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하고 싶어서 이런 사건을 주셨습니다. 내 인생에 찾아오는 여러가지 번개 같은
사건에서 우리는 유리바다처럼 고요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정답처럼 사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요동하지 않는 모델이 옆에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 그리고 동시에 나를
돌아보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려면 앞뒤에 눈이 가득하다고 했고, 눈은 통찰력을
의미하니까, 항상 깨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자님의 손주가 태어나기 직전에 호홉이 잠깐 멈춰서 뇌파
검사가 안 좋게 나왔는데도, 목자님은 너무나 속히 되고 마땅히 되어야 할 일이고, 온 식구가 기도하라고 이런
일을 주셨다고 하면서, 너무나 요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오히려 옆에 사람이 ‘믿음이 좋으면 저런 일을
당하는구나’ 하면서 감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개도 무섭지만 수정 같은 유리바다도 무섭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네가 울고불고 하는 모든 사건들이 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너는 오직 너를 돌아보아서 너의
모든 두려움과 미움과 악을 바다에 씻어서 거룩하고 성결하게 나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번개와 뇌성으로 온 사건에서 요동을 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눈이 많아서 다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번개의 사건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의 고요함으로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②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계 4장 6절 ~ 7절)
에스겔 1장 5절에 보면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니 사람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에스겔 시대도 바벨론 포로
시절이었고 지금도 로마의 식민지 시절이라서 함부로 사람 얘기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시고 나서 사람의 형상을 보이십니다. (미 6:8)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네 생물의 본분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네 생물을 사복음으로 이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왕으로 오신 사자의 마태복음, 종으로 오신 송아지 같은
마가복음, 인자로 오신 사람의 누가복음,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독수리를 요한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알레고리 같은 풍유적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지만 적용 차원에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겔 1:10) 주의 일을 하면서 가장 나타내야 하는 형상인 얼굴인데, 복음을 전할 때 사자처럼
용감하고 소처럼 인내하고 사람처럼 지혜롭고 독수리처럼 민첩하게 성도로서의 얼굴을 책임지고 보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이렇게 균형 잡힌 얼굴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인으로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주눅도 들지 말고
온유함으로, 담대함으로 지혜롭고 민첩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이렇게
대단합니다. 로마 황제를 타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부셔버려야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하고 있는데 그들을 섬기고 가라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 얼굴에
책임진다는 것은 내 인생이 해석되어서 내 사명을 깨달을 때 얼굴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없을 때면 이 세상 산다는 것이 복수를 하려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떤 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③ 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없습니다. (계 4장 6절, 8절)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6장 2절에서 스랍의 여섯를 연상하게 합니다.
여섯 날개가 둘씩 연합해서 연결이 되었는데, 얼굴을 가리웠다는 것은 영광을 자기가 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발을 가리웠다는 것은 발로 한 모든 행적들, 근면함과 성실함의 생색을 가리웠습니다. 그리고 두
날개로 날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기 위해서 있는 자리에서 두 개로만도 얼마든지 날 수 있다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눈이 가득하다는 말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가리고 있지만 그들의 충만한 눈으로 세상을 살피고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리고 있어도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리우며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지만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착한 것과 믿음을 혼동하지 마시고, 내가 당하기만 하는 것이 착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과
믿음의 분량 때문에 내 눈이 안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속고 사기를 당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내 앞, 뒤와 안과 주위에 하나님의 눈이 있는 것을 써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속았습니까. 또
속였습니까.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④ 쉬지 않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계 4장 8절 ~ 9절)
여섯 날개 가지고 눈이 가득한 것을 가지고 하는 찬양의 내용이 하나님이 거룩하다입니다. 구별되게 살겠다는
것이 거룩인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인생인 것입니다.
(계 14:11) 그러니까 쉬지 않고 밤낮 거룩, 거룩 경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쉬지 않고 우상을 경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상을 경배합니까,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구별되게 살지 아니하고 날마다
내 자식, 내 돈, 어떤 사람을 우상 자리에 놓고 경배하면, 지금 속으로 딱 생각했을 때 누구를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면, 이것이 짐승과 우상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거룩하게 외치게 되면 바로
뒷구절에 ‘전능하신 이요’ 라고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해석되고,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것이
여호와의 권능이 임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모시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 행복
부르짖었더니 불행 밖에 안 오는데, 거룩, 거룩 부르짖었더니 행복이 오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시는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날마다 경배해야 됩니까. (계 4:9) 로마 황제에게 경배를 돌리는 것이 아니고
세세토록 사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려야 합니다. 웨스터 민스터 소요리 문답 일문항에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어보면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영화롭게 해서 영화로워지는 분은 아닙니다. 누구도 그를 영화롭게 하실 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의 목적이 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 돈, 골프 이런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래서 이것을 위하여서 진짜 목숨을 내버릴 수 있을 만큼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것을 최고의
이타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인을 위해서 내가 죽었다고 해도 인류 전체에 유익을 하나도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돌아가심으로 인류 전체에 유익을 줍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니까 직업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결혼도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해야 합니다. 이것을 비그리스도인이 보면 얼마나 조롱하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던 안 하던 철저히 하나님께 의존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서신서를 쓸 때 늘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니까,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지 그렇게 노예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조롱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⑤ 자기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계 4장 10절 ~ 11절)
이 땅의 가장 큰 면류관은 구원의 면류관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주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내 노력으로 안 되는 것, 내 인내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정말 축복이었습니다. 정말 구원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은 내 힘으로 안 되더라구요.
내가 합격하고 내가 잘났다고 나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하나도 없더라구요. 내가 힘들고 어렵고 내가 예수 믿고
나니까 나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생기지, 제가 네네네네 할 때는 아무도 나 때문에 예수 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게 되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던지지 아니하고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니까 사단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사단의 밥이 얼마든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커져도
그게 내 능력인 줄 알고 사단의 밥이 되고 애가 공부를 잘 해도 다 내 능력인 줄 알고 사단의 밥이 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폴리갑과 안디바도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렸기 때문에 24 장로 반열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죄인인데 무슨 영광을 취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사야 6장 5절에 보면
여호와의 임재와 영광을 본 이사야의 첫 고백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였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입니다. 자기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놔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본분을 알려면
자기 정체성의 고백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죄인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자들에게 더 높은 보좌인 하늘 보좌를 보여주시면서,
참 힘들지라도 구원과 심판은 마땅히 될 일이기에, 너는 잘 기다리고 이 상황 가운데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 보좌
옆에서 수종 들며, 자기 면류관을 던지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돌리는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십니다.
(계 4:11) 나의 고난도 영관도 다 하나님의 장중 아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배부르며 왕 노릇하는 자는 같이 기도하며 견해를 같이 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계시록은 고난 받는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목장 나눔>
이번 주일에는 임정현 형제님(76또래)과 강원희 형제님(79또래)이 목장 모임에 처음 나오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 여느 때와 같이 자기소개로 목장 모임을 시작해서 오늘 주신 말씀으로
나눴습니다.
▶ 질문
- 번개와 뇌성 같은 사건에서 나는 요동치는가 혹은 편안한가?
- 내가 내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 내가 숭배하는 나의 우상은 무엇인가?
▷ 천대근 목자
오늘 말씀에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하는데 요즘 일하는 곳의 팀장님이 ‘왜 그렇게 얼굴이 않좋냐,
무슨 일 있냐’고 하면서 다음주 휴가를 쓰라고까지 합니다. 저는 두렵고 불안한 것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새로 들어온 여직원이 너무 마음에 안 들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싫어서 계속
삐딱하게 말이 나오니 그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제 안의 감정을 살펴보니 너무나 싫은데
아닌 척 감정을 속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노숙인 재활 센터에 20여명이 있는데 그 중에는 어려운
분들도 몇 명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혈기가 나고 그런 것들을 누르고 직장 다니는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직장에서는 교회 열심히 다니는 것 다 아는데 얼굴이 왜그러냐는 소리를 들으니 교회에 먹칠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우울증도 조금 오는 것 같고 주말까지 교육이 이어져서 피곤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몸으로
위로 받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음란한 생각도 났었습니다. 싫어하는 여직원에게 미워하는 마음은 가라앉혔으나
무관심해지면서 기본적인 것만 해주자는 식이 되었습니다. 이번주 직장도 너무 가기 싫고 사람들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어쨌든 하루를 사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들 교회 와서 하루를 폐인처럼 살지는 않는 것 같고
이런 얘기를 목장에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경상도 집안에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도보니 껍데기로만
살았었고 전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많아서 회복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 임정현
교회는 오래 다녔으나 공동체 모임에 나오는 것은 처음입니다. 정부지원 IT 관련 학원을 다니면서 취업
준비중입니다. 아는 형의 소개로 교회에 온지는 3주정도 되었고 지난 주에 등록하였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다 결혼했는데 저는 직장도 구해야 하고 이성에 대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집에서 장남이다 보니 걱정이
많습니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 믿음 안에서 좋은 사람 만나기를 원합니다.
▷ 강원희
원래 교회를 안 다녔고 어쩌면 싫어하기도 했었습니다. 교회의 융통성 없는 면이 싫었고 군에서 트러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여자 목사님이시라 듣다 보니
편하고 들으면서 좋은 부분이 있어서 지금은 스스로 나오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교회에서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평소에 싫어하던 제가 교회에 나간다고 하니 주위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자동차 검사원으로 일하다가 공인중개사 시험을 마치고 공동체 모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는 뒹굴 거리다가 3일 연장 술을 마셨습니다. 여자친구가 너무 싫어해서 다퉜고 술을 먹지 말라고
합니다. 요즘은 일이 있어도 주일 예배를 꼭 챙겨 듣습니다. 그런데 평소 책 보는 것을 싫어하는데 큐티책을
보라고 하니 힘듭니다. 그래서 큐티책 보는 대신에 드라마도 좀 보는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목장
모임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어렵고 들어주는 것이 피곤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모임은 술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에 이런 모임은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서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김철주
지난 주는 회사에서 체력적인 한계에 도달할 정도로 바빴고 숙소에 와서는 쓰러져 자기에 바빴습니다.
그렇게 한 주를 회사에서 보내고 주말에 집에 왔는데 동생이 친구 컴퓨터를 고쳐준다고 하다가 하드 디스크를
날려먹어서 데이터 복구 비용으로 70만원을 썼다는 얘기를 어머니를 통해 들었습니다. 너무 피곤한데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동생에게 화가 났고 동생 방에 들어가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습니다. 생활 면에서 열심히 안
하는 것 같고 돈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부분이 걱정이 되고 화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정작
나 자신도 그다지 바람직하게 살지 않았고 이번 달에는 지출이 많았던 것이 생각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연약한 부분을 치유 받고 상담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선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같은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서 어렵습니다.
저의 우상은 지금 딱 생각해보면 ‘여자’인 것 같습니다. 음란한 부분도 있겠고 나이도 있다 보니 어떤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박승호
오늘 주일 설교말씀 '사람의 본분', 평소 궁금하고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 나왔습니다. 착한 것과 믿음 있는 것이
다르다는데, 착한데 믿음이 없는 것과 악한데 믿음이 있는 것에 대해서 잘 이해가 안됩니다. 내 안의 믿음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에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이 고민이고 강요하는 부분이 잘 이해가 안됩니다.
여자친구 생긴지 얼마 안되었는데 다행히 믿음이 좋아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학부 때는 봉사활동
좋아해서 독거노인 봉사도 했었는데 요즘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료 과외를 할까 생각 중입니다.
우리들 교회에도 비슷한 것이 있는데 일대일 양육을 받아야지 가능해서 무료과외 사이트에 등록해서 해보고자
하는데 연락이 온 곳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어머니도 좋은 것 같고 아이도 의욕이 있는 것
같은데 가장 걸리는 것이 그 집안이 그렇게까지는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이 여기에 지원할 때는 더
어려운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생각했었는데 친구 의견은 정말 어려운 힘든 아이들은 이렇게 연락조차 못하고
지금이 가장 최선인 것 같다고 합니다. 회사에서는 감사한 것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기회와 혜택도 많이
옵니다. 다음달에는 미국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중요한 자리에서 발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걱정되는 것은
직급 차이가 얼마 안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 이계휘
언제나 그랬듯이 큰 일 없이 지냈습니다.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기준을 세운다는 것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못하는 얘기를 할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죄를
범하는 시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신을 돌아봐야할 것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요즘은 같이 만나서
얘기하고 하는 사람들이 좋고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도 제목>
1. 천대근 형제님
- 고난 가운데 마음이 황폐화 된 것이 회복될 수 있도록
- 업무를 할 때 지혜와 능력을 주시도록
- 자매를 만날 수 있도록
2. 이계휘 형제님
- 믿음 회복과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도록
3. 강원희 형제님
-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 여자친구에게 말을 조심히 할 수 있도록
4. 임정현 형제님
- 나에게 맞는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직장, 배우자)
5. 박승호 형제님
- 바닥치고 있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 여자친구와 신교제 잘 할 수 있도록
- 여자친구 아버지 건강과 조직 검사 결과 잘 나올 수 있도록
6. 김철주 형제님
- 동생이 우리들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 교만을 내려놓고 내 죄를 잘 볼 수 있도록
- 생활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 신교제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