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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제목 : 나는 부자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 ~ 22절)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 외에도 각종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서 어떤 분이 말하길 거기에는
경쟁코드, 독설코드, 사연코드가 수렴되어서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그 당시 사회의 경쟁구도 속에서 독설을 참아내고 살아남는 사연으로
‘나는 부자다’라는 성공 스토리가 주를 이루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도 일곱 교회를 영적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경쟁코드, 독설코드, 사연코드가 수렴되는 성장코드로 평가해오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십자가의 얘기는
주님의 독설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평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 너는 부자다. (계 3장 14절)
라오디게아 교회는 정말 부자 교회입니다. 버가모와 에베소를 통하는 삼거리의 대로변에 있고 에게해와
요브라데 강을 잇는 통상로의 연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인 조건 상 일찍부터 경제 중심도시로
발전했습니다. 특별히 은행이 발전을 했고 유대인 거부들이 그곳에 칠천오백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대형
경기장과 온천이 많았고 염색이 필요없을 정도로 검은 양들 때문에 검은 카페트가 유명했고 의류 제조업,
직물 공업이 크게 발달한 패션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특별히 유명한 것은 부르기아의 분말로 유명한 안염제가
만들어져서 세계적으로 수출할 정도이고 도처에서 치료 받으려고 모여들어서 유명한 약학, 의과 대학과
의원들을 자랑했습니다. 소아시아에 불어닥친 기근의 때에도 로마의 도움 없이 자력 갱생할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이 도시를 바울의 제자이고 동역자인 에바브라가 전도를 해서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골로세의 교회와 히에라볼리 교회와 더불어,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세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을
했는데, 도시가 부유하다 보니 교회 속으로 세상이 들어오기 시작을 했고 유행을 타고 물질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계3:14) 이 교회에 주님은 아멘, 즉 헬라어로 진실하시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교회는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지만 참으로 진실됨이 없고 참된 증인도 없고 충성된 자도 없고
거짓되며 주님을 창조의 근본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며 예수님이 인간이었다고 하는
자들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요1:3) 창조의 근본인 내가 아니면 네가 잘 살 수
없고, 너는 부자이지만 너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② 나는 부자다. (계 3장 15절 ~ 17절)
남들이 봐도 부자니까 나는 부자라고 외치는 어리석은 모습이 있습니다. 부자의 특징을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부자는 미지근합니다. (계 3:15~16) 라오디게아 교회가 모든 것을 갖췄지만 오직 물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16km 떨어진 골로세 교회에서 차고 깨끗한 물을 수로로 끌어서 가져오고, 9km 떨어진
히에라볼리 교회에서는 뜨거운 광천수를 끌어옵니다. 그런데 찬 것도 오다가 미지근해지고 뜨거운 것도 오다가
미지근해져서, 보기에는 온천수가 너무 멋있지만 먹으면 토하여 낼 것처럼 역한 것입니다. 뜨거운 물처럼
사람의 피로를 회복시켜줄 수도 있어야 하고 차가운 물처럼 목마른 자의 목을 시원케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뜨겁든지 차든지 둘 중에 있는 사람은 그래도 교회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뜨겁고 찬 것인데,
미지근한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미지근한 이유는 너무나 가진 것이 많아서
은혜를 하나도 깨닫지도 못하고 그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했거나
이단에 빠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한번쯤 주님의 칭찬을 받을만도 한데 주님이 살펴보실 때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할 것이 한 개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 난공불락의 성 사데 교회도 흰 옷 입은 사람 몇 명은 있었는데,
완전히 책망만 받은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인 것입니다. 성도들도 도시의 부유함을 누리면서 한마디로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아닌 무관심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인데
라오디게아 교회가 무관심합니다. 주님은 그들을 역겨워서 토해버리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책망을 넘어서
저주인 것입니다.
두번째,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외치는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AD 60년에 대지진이 일어났어도,
다른 모든 소아시아 교회들은 로마에 가서 손 벌리고 있는데, 이 교회는 나는 부자이니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부자다, 부족한 것이 없다, 나한테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나는 가련하다, 나는 어리석다, 나는
곤고하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너희들이 실상은 곤고한 상태라는 것은 자기 핑계를
일삼으면서 늘 그리스도의 명령에서 삐뚤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가련한 상태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상태는 영적인 파산 상태를 의미하고 눈먼 상태는 영적인 소경이고
앞날이 아무것도 안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벌거벗은 상태는 하나님 앞에서 아주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상태입니다. 결국 이 세상 것을 이 세상에 다 두고 떠나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영벌에 처해지는 것도 모르는
인생이 어찌 가련하지 않으며, 어찌 눈이 멀지 않았으며, 어찌 벌거벗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천국에 가지고 갈 것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인생인데 나는 부자다, 나는 상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기 실현을 달성하려면 자기를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우리를 거절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거절하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교만과 마음이 굳어져서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옥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에 관한 것에는 도통 흥미를 찾을 수 없고 회개하고는 담을 쌓는 무력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거절만 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더라도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존 스타트 목사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모든 기독교적인 신앙고백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피상적인 교회로 눈멀고 벌거벗은 거지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사로라는 거지는 부자의 대문에서 구걸을 했었는데 짧은 인생에 거지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자마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눅 16:23~24) 부자는 이것을 살아서 봤으면 좋았을 텐데 죽어서야 나사로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옥 간 부자는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물 한방울을 원하지만 그것도 안주는 것이 지옥입니다.
(눅 16:25~28) 한번 죽으면 절대로 천국이 지옥으로,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죽어서도 자기 가족 밖에 모릅니다. 형제끼리 사이가 좋고 너무나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너무나 무섭지 않습니까. 이런 가족 신화와 가족 우상이 똘똘 뭉쳐서 부자집에 호화로이 연락을
하는데 아무도 구원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눅 16:29~31) 예수님 재림 때까지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가
살았다고 할 것이고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고 하겠지만, 성경을 읽고 깨달아지지 않으면 어떤 집회에서
은헤를 받아도 헛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 제일 확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읽는 공동체에 데려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전도입니다. 그래서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옆에서 난리를 쳐도 성령이
오셔서 내 마음을 두드리지 않으면 그 누구도 전도가 될 수가 없습니다. 부자는 살아서 좋은 것을 다 받았고
거지 나사로는 하나도 못받았습니다. 그런데 거지 나라소의 이름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이 도우셨다’
의 뜻입니다. 부자집의 상에서 떨어진 것을 먹고 헌데를 개들이 핥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평생 도우셨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부자들은 하나도 이름이 없는데 이 거지 나사로는 성경책에 이름이 올라갔고 그
이름을 의인이라고 칭해줬습니다. 거지도 죽고 부자도 조금 더 살다가 죽었습니다. 조금 이 세상에서 더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옳으심을 믿고 나사로처럼 환경이
어려워도 누구도 미워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모든 환경을 족한 바로 여겼기 때문에
천국을 누린 것입니다.
③ ‘그는 부자다’가 되어야 합니다. (계 3장 18절)
주님이 칭하는 객관적인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얘기할 때 3인칭을 쓰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딴 사람에게 얘기할 정도로 주님이 인정하는 ‘그는 부자다’가 되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부자의 세 가지 처방이
첫째,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합니다. 부자라고 금 자랑하지 말고 시련을 통하여 굳건해진 믿음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고난을 겪은 사람은 내게도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고 적용이 무엇인지 들려주니까,
우리가 그 길을 가기 위해서 ‘고난을 사라’는 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은 오직 주님에게서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차적으로 이 교회는 부자니까 너는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값을 치르고 만나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를 돕는 것도 있고 헌금을 하는 것도 있지만, 모두 값을 치르고 대가와 희생을 치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했습니다. 의류 사업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 교회에 흰 옷을 입으라는 것은
육신의 수치를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수치를 내어놓으면 영적 수치를 가리우는 비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육으로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면 진정한 수치가 가려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옷으로 치장을 해도 영혼의 수치는 감출 수가 없다고 말씀을 합니다.
세번째,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안약을 가지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영적 눈을 떠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가야 할 천국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기 때문에 영적 안약을 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정욕에, 명예와 이기심에 눈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어두워져 있는 눈에는 세상의 썩어질 것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제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눈이 밝아지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가치하게
보여지고, 그 동안 무가치하게 보여졌던 것들이 갑자기 신령한 것들로 얼마나 귀하게 보여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에 대한 차별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④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계 3장 19절 ~ 22절)
열심을 내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계3:19)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값 없이 주셨지만, 그래도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고 애쓰고 수고하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을 내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 수요 예배, 목장 예배는 정말 보배입니다. 거기를 가게 되면 흰 옷 입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안약을 살 수 있습니다. 불로 연단한 금들이 좔좔히 있습니다. 나는 라오디게아 교회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내 옆에 있어서 육적인 수치를 다 내려놓기 때문에 영적인 수치를 감추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보배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너희들은 열심을 내고 180도 유턴해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계3:20) 문 밖에 서서는 현재 완료형이고 두드리는 것은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이 문
밖에 서심은 오래되고 완성되었다는 것인데, 지금도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문을 열면 주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가 있는데, 그와 더불어 먹고는 아침식사나 점심식사 처럼 급하고 간단히
먹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저녁 식사처럼 굉장히 거창해서 오랫동안 얘기하면서 사귐의 교제를 먹는다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시는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 밖에는
문고리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안 여시고 안에서만 열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렇게 잘 살다보니까 주님을 문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랫동안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서서 문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문 밖으로 쫓겨난 손님이 되었고 교회와 주인석을 차지한
신자들이 계속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있는 것입니다. 1907년 평양의 장대연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이
설교할 때 설교 제목이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었습니다. 주인이 귀빈인데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안
열어주고 괴이한 주인은 자기는 주인도 아니면서 문을 안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대연 교회에서 주님이,
성령님이 오셨는데 다들 문을 걸어 잠그고 내 쫓고 있다고,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있다고, 이게 왠일이냐고,
여러분들은 마음 문을 여셔야 된다고 하면서 먼저 자신의 수치를 드러냈습니다. 자기 친구가 죽으면서 부인의
재산관리를 부탁했는데 목사님이 100달러를 훔쳤다고 고백하면서 눈물을 흘리니까 여기저기서 통곡의 외침이
터져나오고 교회가 눈물바다가 되면서 성령님이 강하게 임재하시면서 장대연 교회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으로 생각해도 수치의 고백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한국 교회의 오순절이라고
표현하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교회는 다시 하나님을 내쫓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이 교회가 욕을
먹고 있고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경제대국 10위 안에 들었는데 누구 하나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을 내어쫓았습니다. 이것은 불신자에게 주시는 음성이기 보다는 라오디게아 교회이니까 과거에
주님을 모셔 들었지만 지금 문 밖으로 쫓아내신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회개하시고 주님을
마음에 모셔드리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망을 하시면서 주님이 오늘 정말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계3:21) 부족함이 없을 때 이기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내가 마음대로 먹을 수도 있고, 입을 수도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은 너무나 난이도가 높잖아요. 그러므로 난이도에 맞게 대하시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내 보좌 옆에 이기는 자 옆에 앉을 수 있게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특혜이고 은혜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어떻게 뜨거워질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모셔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데 내가 예수님을 언제까지 문
밖에 세워두시겠습니까. (계3:22) 이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음 속이 화염
맞은 것 같아서, 강팍해서, 바위 같아서, 나는 부자야,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데, 오늘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고, 흰옷을 입고, 안약을 사는 공동체들의 간증이 너무나 즐비한 이 예배를 와서 듣고 마음 문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목장 나눔>
이번 주일에는 이계휘 형제님(76또래)이 등반하셔서 함께 목장 나눔을 하였습니다.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밝고 긍정적이신 형제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가웠고 축복합니다.^^
▶ 질문
- 교회를 오래 다니면 뜨겁지도 차지도 않는 상태가 될 수 있는데, 가장 부요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내 안의 미지근한 모습은 무엇인가?
- 주님이 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시는데 열어주고 있는가? 들어오셔서도 하나님과 같이 가고 있는가?
- 내가 가진 가치관에서 180도 유턴해야 할 가치관은 무엇인가?
▷ 이계휘
살아오면서 크게 어려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학부 졸업 후에 취업이 잘 안되었고 스트레스가 쌓옇습니다.
직장에 들어가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일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대해주질 않아서 내 안에 조금씩
쌓이다보니 우울증도 생겼었습니다. 그래서 모태 신앙이었지만 신앙생활에서 멀어졌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하는 친구 덕분에 우울증에서는 조금 빨리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신앙생활을 회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상처가 많습니다. 몸이 불편한 것은 잘 모르지만 오히려 주위에서 다르게
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다행히 복 받아서 학교 생활할 때는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는
어머니 친구분 통해서 3주전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 동안 다녔던 교회와 예배 형식이 달라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저와 같은 상태이고 저와 같은 믿음인 것
같습니다. 교회만 나갔지 진정한 믿음은 없고 율법만 지키는 상태의 교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안의 180도
바뀌어야 할 가치관은 아직까지는 조금 모호합니다. 직장 생활에서는 서로 크게 부딪힐 일이 없는 회계시스템
전산관리 일을 하고 있어서 크게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중에 봤을 때 내가 부족한 것이 많아
보입니다.
▷ 박승호
저를 얘기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나는 부자'라는 것이 금전적으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조금
부족해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미지근한 것이 있어서 믿음이 불타오르지 않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믿음에 다가가야 하는데 너무 의심이 많고
많이 따지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가장 나쁜 것일 수도
있는데 세상적으로는 나쁜 것이라고 안하니 어렵습니다. 내가 그런 부분이 부족하니 내 친구나 부인은 그런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은 아직 잘 안되지만 붙어만 있으라고
해서 붙어만 있고, 나의 속도에 맞춰서 가다 보면 믿음이 확 올라갈 때가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김철주
저는 계속 노력은 하고 있지만 내려놓지 못하는 안목의 정욕 때문에 사람 만나는 일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다운이 많이 되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전 목장 형제님의 결혼식에서 형제가 결혼하면서 은혜를 받아서 우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고,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데 신교제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교만해서
그렇다는 말이 듣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 말씀 중에 중학생 간증을 들으면서 내 문제는 문제도 아닌데
내가 괜히 징징댄 것 같았고, 내가 그 동안 무관심 했었던 가족과 주변 분들이 생각나면서 처음으로 예배시간에
눈물이 났었습니다. 180도 바꿔야 할 내 안의 가치관은 아직까지도 세상 성공에 대해서 욕심이 많고 기복적인
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가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나와 내 가족이 잘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더 큽니다.
▷ 천대근 목자
저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예수님 복음 확장에 무관심했다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전도 축제인데도 누구 한 명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해서 직장에서
무시되는 여직원에 대해서는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속은 편하지만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우울증이 심할 때면 심한 음란물 중독이 있었습니다. 음란물 보고 나면
죄책감으로 대인 기피증도 있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와서는 가장 치료받은 것이 음란물을 안 보는 것
같습니다. 목장에서도 얘기하고 TV도 없애고 컴퓨터나 휴대폰은 동생에게 통제를 부탁했습니다. 이번주
교회에서 콰이어를 섬기라는 연락이 왔었지만 입구까지 갔다가 힘들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는
짜증도 나고 음란물을 보면서 잠시의 즐거움을 찾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환경적으로 차단이 되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음란과 씨름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영적인 교만과도 싸우고 있습니다.
자아가 강하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여 교묘하게 아닌 듯 속이면서 인정받으려는 것이
있습니다. 여태껏 마음 문을 열려고 했으나 그것이 잘 안되어서 주님께서 뚫고 들어와 주시길 기도했지만 오늘
목사님 말씀에서 내가 열어드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고 정체도 불분명한 교만의 실체가 잘
안 깨달아집니다.
<기도 제목>
1. 박승호 형제님
- 신교제할 수 있도록
- 회사 행사, 개인사 잘 치를 수 있도록
- 여동생 신교제 할 수 있도록
2. 김철주 형제님
- 회사 선배 결혼 휴가로 회사 업무 잘 감당할 수 있도록
- 내 죄 잘 깨닫고 애통한 마음 가질 수 있도록
- 소년부 페스티벌 잘 치를 수 있도록
- 신교제 할 수 있도록
3. 이계휘 형제님
- 신앙생활 회복할 수 있도록
4. 천대근 형제님
- 시간 관리 잘해서 큐티를 최우선으로 하고 교육 과제물 잘 제출할 수 있도록
- 믿음이 뜨거워지고 굳세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