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굳에 강대상에 올라가서 하는 오픈이 아니어도, 목장모임이나
목보를 통해서 나마 부끄러운 일들을 이야기 했을때,
삶 속에서 그런 죄들이 힘을 잃곤 했는데 ,,
그러나 ! 지속시간이 참 짧네요. 유혹에 무너지는 우리들 (ㅠ_ㅠ)
그래서 공동체를 떠날수가 없네요. 하나님 ! 불쌍히 여겨주세요 ~~
연약한 우리들을 지켜주세요. 주님의 멍에를 함께 질수 있게 해주세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구원에 대한 애통함도 갖게 해주세요. 아멘 ♡
*** 오늘도 천상여자 두 명이 만나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
요리하는 거랑, 맛난 것을 먹을 때 행복감을 누리는 우리들 #9786;
목자 하진희 (83), 부목자 유혜경 (85)
*** 그리고, 쪼인도 환영하는 바입니다 (^_^) ***
우리의 무너지는 죄들이 삶속에서 힘을 잃길 바라며
기도제목 올립니다 #9786;
하진희 목자님
1. 하나님과 말씀에 집중하는 짐만 질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 우울한 마음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3. 구원에 대한 애통함을 가지고, 무관심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봐서 잘 전도할 수 있도록
지혜와 환경을 허락해 주세요
유혜경 부목자
1. 말만 거룩하게 하는게 아닌 행동으로 신앙생활을 나타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2. 엄마 아빠에게 판단의 말이 아닌, 진실된 언어사용하도록 해주세요
3. 동생과 직장동기를 교회 데려오는데 지혜를 주세요. 거리가 멀어서 데려오기 힘듭니다.
4. 스트레스를 좋은 방법으로 잘 다스리게 해주세요
5. 신교제를 원합니다. 상대쪽에서 먼저 다가와 주면 좋겠어요.
*** 나를 살리는 말씀 요한계시록 2장 18-29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
교회는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구원이 불안정한건 아니죠. 왜냐면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이예요. 작은 상공업 도시 두아디라에 쓴 편지는 다른 7교회에 쓴 편지들보다 내용도
더 길고 중요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상공업이 도시다 보니 길드 같은 조합이
발달했고, 각 조합들이 섬기는 우상신이 있어서, 먹고 마시고, 잔치하고 음행하는 데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장 사업이 힘들어지고,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행위를 각 사람에게 갚아주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갚아주실까요?
1. 하나님의 아들이 그 행위대로 갚아주신다.
버가모 교회는 날선검으로 수술한다고 표현하셨는데, 두아디라 역시 상황에 알맞게 예수님의
모습을 3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 눈이 불꽃같고 ”
두아디라는 청동 제련소가 있어서 불꽃이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면 무서워
살수 없듯이 두아디라의 음행을,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2) “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이”
많은 시련과 고난을 통한 연단을 의미하지만. 타협하고 부패된 두아디라의 죄를 그 발로 밟으시면
남아날 자 없음을 뜻합니다.
3) “ 하나님이 아들 ”
유일하게 계시록 교회 중에서 두아디라만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제우스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참 신이고 경배의 대상이 됨을 알려 주시기 위해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
셨습니다. 아폴로신은 태양신으로, 태양신 섬기는 날을 Sunday 로 표현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주일로 불러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일요일이 아니라 “ 주일에 교회가자 “라고 해야합니다.
주일은 경외스러운 표현이기 때문에. 꼭 주일이라고 표현해야 되요.
2. 두아디라의 갚아야 하는 행위가 무엇이었나?
1) 나중행위가 처음행위보다 많다 하십니다.
섬긴다는 것은 자신에게 책임감이 없어도 돌봐준다는 의미이고. 종의 입장, 어머니의 입장에서
주는 섬김입니다. 종과 어머니는 자신의 입맛을 따지지 않으며.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깁니다. 교회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예배만 드리고 가는 사람입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줄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이죠. 교회 안에 참 많은 봉사부서가 있지만 주차봉사만큼
힘든게 없는데요 ~ 이것 때문에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사역을
우리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다 보시고 기억하신데요 ^^ 킹왕짱~!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 사랑을
유지하면서 정통 신앙을 버리게 되었는데, 어떤 행위가 정통 신앙을 버린 행위였을까요?
2) 음행을 용납한 행위가 있었습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이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한번 보면 뿅 갈만큼 매력적이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로얄 패밀리라 할수 있죠.
학벌, 재물, 명예 등등 ~ 게다가 집안도 왕족이고, 아이들은 좋은 학교 가고, 남편은 착하고
아버지도 왕, 할아버지도 왕, 손주도 왕. 이런 사람이 예수 이야기를 하면서 우상숭배를 합리화
합니다. 교묘한 논리와 이론으로 “ 예수를 믿으면 잘 살아야 한다 ” 하며 맹모가 되서 자녀들을
세상 왕들과 결혼시키고 싶어 유명학원, 과외, 강사, 입시요강을 줄줄 꿰며 교육열을 합리화
하는데, 이렇게 멋진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럴듯해 보이고 사람들이 다 넘어갑니다.
그러나 중요한건 이것이 아주 무서운 우상이예요. 이런 교육열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학벌, 재력, 외모가 갖춰진 사람에게 너무 충동이 되는데, 어떤 우상보다 무서운 것은
부러워 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런 우상은 죄의식도 없이 자녀를 사랑하는 맹모우상자리잡아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 적용해 보면 이세벨이 왜 영향을 끼쳤을까요?
지금 이세벨에게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겁니다. 예수를 믿어도 최고를 부추기며 “ 할 수 있다고
하면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못하는 게 없다” 며 최고만 된다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며 교묘히
음행으로 꼬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표적을 바라는 것인데, 예수 믿어도 금메달을 따고, 표적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이세벨의 음행입니다. 특별히 이세벨은 주의 종들, 사역자들을 꾀여 기복신앙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불어넣으면서 올바른 처방이 아닌, 예언 기도해주고 성공 복음
전하고, 부도나면 피해가고 뇌물과 타협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결국 인생을 악하고 음란하게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해요.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수 있는게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진것 밖에는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어요 (ㅠ_ㅠ). 예수믿어서 잘된것이 축복이라고 하는 이세벨의 음행이 얼마나 그럴듯해 보였으면
사람들이 유혹에 넘어갔을까요?. 우리는 잘 살아야 해! 하며 음행을 용납했는데
3) 두아디라는 회개를 거절하는 행위가 있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이 회개를 거부해서 첫째아들이 죽음을 당하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도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않아 눈이 뽑혀서 개처럼 결박당해 끌려가고.. 많은 재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간 부자
청년도 결국 지옥가고~ 단순하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면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도 회개할 것이 생각나면 “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 기도해야 합니다.
3. 행위대로 갚아주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음행을 저질렀던 그 침대에 던지셔서 침상이 병상이 되게 하십니다. 이렇듯
환란을 점진적으로 이야기 하시고, 이세벨이 사람들을 꼬이고, 음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지만
결과적로는 열매가 하나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왕들끼리 모여있어도 구원이 없으면 끝이예요.
4. 항상 하나님은 긍휼하시고, 남은자에 대한 약속이 있으십니다.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고, 타협하지 아니하고, 내가 주의 일을 지키고 예배를 지키고
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일입니다. 주일, 수요일, 목장예배 가는 것이 굳게 복음을 잡고 가는
것이고, 이거 자체가 큰 짐입니다. 사망으로 끝나는 것보다 복음을 굳게 잡고 있는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 기업이나 초대형 교회는 똑같은 메시지를 말합니다 “ 우리는 할수있다 ” “당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 우리는 할수있다 “ ”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할수 있다 "
그 이면에는 숨죽인 목소리로 경고하는 어두운 메시지가 놓여 있습니다.
“ 네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용기를 잃거나 패배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네 책임이야 .“
“ 뭐든지 할수 있다 ” 는 이세벨의 음행과 닮아있습니다. 게다가 죄의식도 없구요. 성도들의 기호를
맞춰 주기위한 축복의 설교보다, 비록 듣기는 힘들어도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합니다.
매일 잘난것만 축복이라 하기에 힘들면 다 감추고 있어서 우리가 죽어가는 거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안타까워 하셔서, 오픈함으로 음행을 깨뜨리게 하십니다. 내 환경에서 복음을 잡고 굳게
다스릴 때에 새벽별의 영롱함을 주시고 왕적 권세를 주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