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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열왕기하 23장 31~35절
제목:애굽으로 잡아가더니
1. 세상에 손에 붙들려 산다.
3개월 기간 통치한 여호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군 요시야가 죽자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다. 석달의 평가가 아버지의 행위가 아니라 모든 조상의 행위도록 악을 행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길이 아니라 할아버지 므낫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23세 여호아하스는 둘째아들로 백성의 선택을 받았다. 여호아하스는 위기의 나라에 대안처럼 보였겠지만
성경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에수님의 이야기이다. 상대방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는 것이 구속사이다.
성전을 수리하는 아버지를 답답하게 여겼을지 모른다. 여호아하스는 부자왕자로 살았기에 55년 산 므낫세 할아버지의 길을 택하였다. 사회구원은 개인구원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여호아하스는 요시야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는 세속사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느고에 맞서다가 죽자 백성들도 타도하자 애굽을 외치며 반애굽하기위해 반골,강성인 여호아하스를 택하였다. 백성들이 보기에는 여호아하스가 대안이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악했다. 사람의 눈을 통과했다고 하나님의 눈까지 통과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수없이 경고하시다가 망하는 결과를 얻었다. 애굽은 유다를 망하게 하는 쓰임을 받은 것이다. 애굽도 구원의 시선으로 기다려야 한다. 백성은 애굽타도를 외치는 여호아하스 현상을 보이고 있다. 나쁜 놈 좋은 놈이 없이 예수 믿게 하는 환경이 최고의 환경인 것이다. 23년 후에 나라가 없어질 위기가 되었다. 하나님의 상급이 안되면 내 성공이 내 손목을 붙들게 된다.
여호아하스는 세상의 종이 되어 아버지의 개혁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다. 구속사를 모르면 사랑도 효도도 할 수 없다. 분별이 안된다.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석달만에 왜 폐위를 시켰을까? 바벨론,앗수르,애굽중에서 애굽이 전쟁에서 졌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기회를 줬지만 요시야가 기회를 놓쳐서 애굽이 졌기에 애굽에게 숨을 죽이고 요시야 때문임을 인정해야 한다.
3개월 통치기간동안 여호아하스가 악을 행하니 예루살렘을 더렵혔다. 나라가 망해가도 믿는 사람은 회개해야한다.
회개는 안하고 애굽타도에 온 힘을 다하면 안된다. 역사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믿는 백성의 손으로 만든 왕을 세상의 손인 애굽의 손이 그를 가두고 끌어내렸다. 이제 유다의 왕을 유다가 정하지 못한다. 유다왕을 애굽왕이 정해주고 애굽왕에게 벌금을 내야 한다.
조공이 아니라 벌금이다.바로,세상이 정해주는 것이다.
왕의 몸도 나라의 돈도 바로의 손에 붙드린 것이다. 여호아하스는 구속사를 모르니 역사의식도 없고 오로지 느고만 나쁜 놈이 된 것이다. 안믿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축복의 도구,징계의 도구로 쓰일 뿐이다. 믿는 사람의 훈련을 위해 쓰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성경에서 알려준다. 하나님만 의지하는게 안된다. 돈,외모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통장잔고, 술,게임,,붙들려 있는 것이 있으니 거기에 종살이 한다. 예수믿는다 하면서 내 손목은 다른 데 잡혀있다.
이 모든 일도 하나님의 말씀안에 이루어지고 있다. 느고의 일이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상손이 내 손목을 붙들려도 하나님 말씀안에 있다. 역사는 하나님이 말씀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예수님처럼 죽으신 억울한 일을 잘 당하면 그것이 구원의 일이 되는 것이다.
2.세상이 붙인 이름으로 산다.
34절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은은 친 애굽이다. 세속사적인 친 애굽이다. 세상의 손은 붙드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꼭두각시 같은 엘리야김은 왕이 되었다. 여호아하스는 석달동안 애굽의 맘을 바꿀수 있었지만
다윗의 보좌에 바로가 왕을 세우고 엘리야김은 여호야김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것은 이름의 뜻이 아니라 바로가 내가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자기 종에게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사명의 이름은 다르다. 사명을 위한 이름이 최고 이름인 것 같다. 말씀에서 지었으니 바꾸는 것도 없다.
나라가 풍전등화인데 아무도 기도하고 회개했다는 말이 없다. 아버지 요시야 죽자 백성이 슬퍼하는데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무덤조차 없고 남의 나라에서 끝났다. 잡혀간 여호아하스는 고국을 보지 못하고 약속의 땅을 영원히 떠났다.
여호아하스는 우리의 슬픔이다. 우리는 세상에 붙들려 세상이 붙들린 이름표를 붙이고 살아간다. 이름표대로 값을 치르고 그것을 내 정체로 받아들여지고 살아간다. 이것이 종의 방식이다. 내가 한 번 불리면 권세를 휘드린다. 그 자리를 지키려고 이름에 붙들려 산다.
3. 세상의 감독자로 산다.
바로가 가두고 벌금을 물게 하고 바로가 유다왕을 세우며 바로가 이름을 짓는다. 다윗의 자손이 무대에 등장하지만 백성을 몰아붙여서 짜내는 감독자로 등장한다. 징수하였다. 이것은 몰아붙여서 짜내는 감독자의 역할이다. 출애굽때 나왔던 감독자 밑에서 부르짖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런데 유월절 지킨 13년 만에 자기 백성에게 애굽의 감독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전국민을 짜내고 있는 것이다. 백성이 매일 마주하는 것은 벌금을 내기 위해 독촉하는 자기나라 왕인것이다. 종은 당한대로 끝나지 않는다. 회사에서 눌리면 아래로 누른다. 당한대로 세상이 내민 고지서를 나의 가족에게 내미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다. 밖에서는 종처럼 살고 가족에게는 애굽처럼 군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밖에서 많이 눌렸구나..이해해야 한다.
하늘이 열려서 하늘이 열리지 않았다면 당한대로 시집살이 시켰을 것 같다. 금요일 큐티본문에서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고 하셨다. 너도 남을 짜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종처럼 사는 방식이다. 종살이는 누가 끊는가? 돈을 내어도 바로에게 종노릇한다. 종노릇하려고 백성을 더 짜내게 한다. 종은, 매인 자는 자기 몸 값을 낼 수가 없다. 누가복음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와서 예수님이 별세하실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신다는 말이 아니라 엑소더스. 모세를 통해 출애굽때 쓰인 말을 썼다.
출애굽에서 나온 백성이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하신 엑소더스는 거꾸로 감기지 않는다. 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는 백성에게 각 사람의 힘대로 값을 내게 했지만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 몸을 우리 죄값으로 내어 주셨다. 구원을 위해 사는 사람은 말이 없다.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류로이다. 예수님이 죽어지심으로 자유를 주셨다. 한 사람이 각 가정에서 죽으면 다 살아난다.
한 사람이 안 죽어서 안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자유롭게 하셨다.
기도제목
A:억울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는데 말씀을 들으며 택자가 아니였던 여호아스를 100프로 인정합니다.
항상 세상을 향해 있는 내 시선이 구속사를 향하는 한 주되길
정죄판단 하지 않고 하나님이 붙여주신 지체로 바라보길
아침 큐티 시간과 저녁 기도시간 사수하도록
다른 것에 빠지지 않고 시간 꼭 지키도록
B:하나님의 은혜로 중독이 멈추고 말씀만 따르고 행하는 삶이 되길
하루하루 잘 버티어 때에 맞는 목표 이루며 한 주간 살아나길
C: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부모님 공경하고 큐티 잘 할 수 있도록
D: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로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생겨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길
영육의 건강을 위해 운동 꾸준히 하고 건강식 잘 챙겨 먹으며 직장에서 사명생각하여 인정욕구 내려놓길
부모님,남동생,언니네가족 구원이루어주시고 가족 모두 교회 나올 수 있길/ 형부 대장암 치료와 구원위해 꾸준히 기도하길
신교제,신결혼 위해 은혤 구할 수있길
나와 잘 맞는 심리상담 기관 잘 찾아 도움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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