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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9.(주일) 사무엘하 23:1-7 「영원한 언약」 이성훈F 목사님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무엘하 23장 1절부터 7절 말씀입니다.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밑동 잘린 인생, 늘 흔들리며 사는 저희들이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저희를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영원한 언약’을 오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본문은요 11년 전에 우리 목사님께서 ‘마지막 말’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신 본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도 그 설교를 다시 여러 번 들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요. 목사님께서 설교해 주신 것이 많다 보니까 저희 사역자들이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감사하고. 그리고 오늘 특별히 ‘영원한 언약’을 우리 믿음의 유산으로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도 이렇게 목사님께 물려받은 것으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눌 수 있어서 특별히 감사합니다.그런데 오늘 제목은 ‘마지막 말’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이에요.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니까 여러분은 ‘아! 또 저 얘기겠구나, 맨날 우리 듣는 얘기겠구나’라고 하면서 ‘오늘 좀 짧게라도 끝나면 좋겠다’ 이런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죠? 제가 관심법은 없어도 … 여러분 마음을 (잘 압니다.) 저도 그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러나 여러분, ‘영원한 언약’이라는 이 단어가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영원한 언약’이라는 단어,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단어인데 이것이 성경의 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까지,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살았던 그 역사를 기록한 전체 역사에서 이 ‘영원한 언약’이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나오거든요. 그게 바로 오늘 본문인 거예요. 특별하죠? 안 특별해요?너무 특별해가지고 제가 이것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게다가 이 ‘영원한 언약’이라는 단어를 쓴 사람이 누구냐? 그는 돋는 해처럼 떠오르는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그런 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집이 흔들릴 대로 흔들린 ‘인생 말년의 다윗’이 남긴 이 마지막 말에 등장하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다 무너져 본 사람입니다. 다 무너져 본 사람이 생의 끝자락에서 붙잡은 그 단어가 이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이죠.게다가 이 ‘영원’이라는 단어도 그 의미가 우리가 떠올리는 의미와 좀 다릅니다. 영원이라고 하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 저 멀리 있는 곳, 시간을 넘어서 있는 저 우주 바깥에 있는 것, 상상도 하기 어려운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하잖아요.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 영원한 언약이라고 할 때 이 ‘영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 집, 지금 나의 일상에서 좋은 때나 나쁜 때나 어떤 날이든지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는 끝까지 계속되는 그 언약을 ‘영원한 언약’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우리 삶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한가운데 우리 삶과 같이 가는, 끝까지 가는 그 언약을 ‘영원한 언약’이라 부릅니다.우리 인생과 가정이 다윗의 집처럼 많이 흔들리잖아요. 그렇죠? 얼마나 우리 삶이 흔들립니까.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이 영원한 언약으로 붙들어 주신다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오늘 여기 나오실 때 삶이 너무 흔들리고 위태롭고 그래서 피할 곳이 없어서 주님 앞으로 나온 분들 계실 텐데, 오늘 그분들에게 특별히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언약으로 붙들어 주신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흔들리는 삶을, 흔들리는 나의 집을 붙들어 주실까요? 첫 번째는, 1. 여호와의 영이 나를 세우십니다(1-2절)여호와의 영이 나를 세우시는 거예요. 이건 성령의 역사입니다. 1절이에요.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_삼하 23:1다윗의 ‘마지막 말’은 임종 직전에 남긴 유언이 아닙니다. 40년 나라를 다스렸던 그 왕이 인생 전체를 결산해서 백성 앞에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그 최후의 발언인 거예요.그런데 그 첫마디가 여러분, 기가 막힙니다. 중요한 연설이나 발언에 앞서서 여러분, 첫마디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 다윗은 어떻게 말하느냐? ‘이새의 아들 다윗’의 마지막 말,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맨 앞에 내세우고 있습니다.그런데 여러분, ‘이새의 아들’은 영광스러운 호칭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다윗을 깎아내릴 때 부르던 이름입니다.여러분, 사울이 신하들 앞에서 다윗을 이렇게 말했잖아요.“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겠느냐”(삼상 22:7).이거는 다윗을 부른 게 아니라 다윗을 조롱하는 것이죠. 게다가 지난주에 우리가 봤던 반역자 세바도 “다윗에게 우리가 받을 유산이 없다” 이렇게 한 게 아니라 “이새의 아들에게 우리가 받을 유산이 없다”(삼하 20:1) 그러면서 반란의 나팔을 불었단 말이죠.그러니까 ‘이새의 아들’은요, 다윗이 가진 많은 명함이 있을 거 아니에요? 평생 살면서 유명한 장수고, 사울은 천천인데 만만인 장군, 최초로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한 왕 … 이렇게 화려한 명함들이 많을 텐데, 지금 다윗은 ‘이새의 아들’이라는 명함을 이 중요한 ‘마지막 말’을 하는 제일 앞에다가 딱 붙여 놓고 있는 겁니다.우리에게도 ‘이새의 아들’과 같은 이런 것들이 하나씩 다 있지 않습니까? 남들 앞에서 제일 먼저 지우고 싶은 나의 이름, 나의 역사, 나의 기억, 나의 삶. 그런 것들이 사실 우리는 다 있는 것이죠. 내세울 것 없는 이 집안과 학벌, 또 실패한 사업 그리고 이 직장에서 초라한 나의 직함. 이런 것들을 우리 다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이것을 덮으려고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성취와 더 많은 돈과, 내가 안 되면 내 자녀의 성적으로 내 자녀의 성공으로 우리의 ‘이새의 아들’을 덮으려고 우리가 얼마나 그렇게 애를 쓰면서 살아요. 왜 그렇게 지우고 싶을까요? 그 이름이 드러나는 순간 내 값이-내 몸값이, 내 가치가- 폭락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에요.저도 제 ‘이새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무얼까 생각해 봤어요. 그랬더니 저는 그게 생각나더라고요. ‘이혼당할 뻔한 목사.’ 이게요, 사실은 여러분들 우리 인생의 선배이시자 고난의 대장부들이신 여러분 앞에서는 ‘뭐 저런 거 가지고 그래?’ 그러실 수도 있겠지만요. 우리 집안 어르신들이 너무 걱정을 하셨거든요. 제가 설교 때 막 이렇게 이혼할 뻔한 거 얘기하고 이러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이제 우리 소위 교계 어르신들이 걱정을 많이 하신단 말이죠. “너 그 딱지 붙여서 어떻게 목회할래?” 그러니까 이거는 그 관점에서 보면 저는 이걸 감춰야 되는 거예요. 숨겨야 되는 겁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아직도 저를 힘들어하는 아내를 계속 구박했을 거예요. “야, 교회 가서는 티 내면 안 된다. 웃는 얼굴로, 우리 사이 좋은 얼굴로 팔짱 끼고 다니자” 이렇게 또 하다가 이제 진짜 이혼을 당하는 거죠. 그렇죠? 저도 이런 ‘이새의 아들’과 같은, 감추고 싶고 사람들한테 드러났을 때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처럼 불안한 이런 것들이 다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덮기 위해서 큰소리를 치는 것이죠. 집에서도 큰소리를 치는 거예요. 이렇게 큰소리를 내면 내가 좀 누를 수 있을 줄 알고.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 경험해서 아시겠지만은 큰소리를 치면 칠수록 집안은 더 흔들리기 마련입니다.어느 남편 집사님이 목장에서 나누신 것인데요. 이분이 평소 먹던 순두부를 아내 분한테 사 오라고 주문을 하셨대요. “이 메이커에 이 순두부가 맛있으니까 이걸 사 와라.” 또, 아내가 물어봤다는 거예요. “어떤 순두부 사 올까?” 그랬더니 “이걸 사 오고, 이게 이렇게 해서 좋고 이렇게 해서 맛있고…” 다 설명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아내분이 마트에 가서 살려고 딱 보니까. (요새 우리 성분을 다 보시잖아요? 여러분, 그 국적을 또 다 살피시죠? 그러시죠?) 딱 보니까 이거는 사면 안 되는 것 같았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막 고민 끝에 제일 좋고 안전한 순두부를 남편을 위하는 마음으로 딱 사 간 거예요. 그랬더니 이게 난리가 난 것이죠. 이 순두부 하나, 이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서 이 두 부부가 전혀 부드럽지 않은 모습으로 거기서 그냥 전쟁을 벌인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남편 집사님이 목장에서 이렇게 나누신 거예요. “화가 난 건 순두부 때문이 아니에요, 순두부 때문이. 아무려면 내가 순두부 때문에 그랬겠어요?! 순두부가 아니라 아니, 무슨 순두부를 사 올까 물어봤는데, 그래서 내가 친절하게 다 설명을 해줬는데, 그런데 그거 하나도 듣지 않고 다 무시하고 엉뚱한 거 사 오니까 그게 그냥 열이 확 받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냥 그게 그냥 싸움이 됐다는 거예요. 내가 무시당했다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는, 무시당했다는, 그래서 내 가격 가치가 떨어진 것 같다는 그 생각에 분노가 이제 올라왔다는 겁니다.여러분, 순두부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건드려진 건 우리의 ‘자존심’인 것이죠. 우리 자존심이 건드려져서 화가 나는 거예요. 내 가치, 내 값! 이게 건드려지면, 깎이는 것 같으면 버럭 화가 나는 것입니다.여러분의 순두부는 무엇인가요? ‘나는 그렇게 목소리 내지 않아! 나는 얌전한 사람이야’ ‘나는 교양 있는 사람이야. 나는 절대 소리 지르지 않아’라고 하시는 분들도 이 중에 한 10%는 계실 거예요. 그분들도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게 목소리 높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나는 부족해서 안 돼’ ‘나 같은 게 뭘 하겠어’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도 겸손한 척하면서 움츠러드는 것도 사실은 목소리 큰 것과 뿌리가 똑같은 거예요.★교만은 자기 값을 비싸게 매기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렇게 겸손한 척하는 이 열등감은 자기 값을 싸게 매기는 거예요, 싸게 매기는 것. 문제는 뭐예요? 똑같은 건 뭐예요? 그 가격을 매기는 사람이 누구예요? 나 자신인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매기는 것입니다. 내가 높게 부르기도 하고 낮게 부르기도 하고, 결국 내가 내 가치를 매긴다는 것이 문제의 근본인 겁니다.다윗은 자기 가격을, 자기 값을 절대 자기가 매기지 않았어요.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높이 세워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야곱처럼 속이고 사기치고 나쁜 짓하고 이런 사람들을 살리시는 그 ‘야곱의 하나님’이 야곱 같은 나도 높이 세우셨다는 것을 다윗이 지금 고백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값을 자기가 매길 수가 없는 거예요.★하나님은 잘난 다윗을 스카우트하신 게 아닙니다. 사울보다 더 뛰어나서 다윗을 데려오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다윗을 스카우트 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내가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삼하 7:8) 그랬어요. “목장에서 데려다가.” 무슨 하버드처럼 ‘그 좋은 학교에서 데려다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귀족 집안에서 데려다가’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내가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이게 ‘이새의 아들’의 뜻인 것이죠. “양 냄새나는 그 목동의 자리. 아무 별 볼 일 없이 평범한 그 이새의 집안에서 제일 존재감 없는 그 막내의 자리에서 너를 불러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내가 지우고 싶은 이름’ 그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자리인 거예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디에서 데려오셨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느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셨어요? 여러분이 잘나갈 때, 여러분이 세상에서 성공할 때, 여러분이 힘이 있을 때, 그때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아니면 정말 낮고 낮아진 그 자리에서 여러분이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그 무너진 자리가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자리인 거예요. 그래서 그 이름을 내가 지워버리면 내 은혜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내가 잊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지막 말은요,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내가 했다”라는 말이 하나도 없어요. 본문을 보세요. “내가 했다”라는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했다”라는 게 아니라 “내가 높이 섰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높이 세우셨다” “내가 왕이 되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다” 전부 하나님이 하신 일인 거예요. 다윗이 이렇게 기름 부음을 받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사무엘상 16장 13절에 보면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 ‘감동되었다’는 건 마음이 뭉클해졌다는 그것만 뜻하는 게 아니에요. 이거 물론 그런 것도 포함이 되겠죠. 울림이 있고, 마음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이런 것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여호와의 영이 다윗의 삶을 붙드셨다는 겁니다. 그전까지는 다윗이 마음대로 살았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족쇄를 채우셔서 다윗을 붙드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윗을 하나님 당신의 뜻대로- 여호와의 영의 뜻대로- 사용하셨다는 겁니다. 이게 이제 ‘성령에 감동되었다’는 뜻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도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이 순간에 다시 한 번 여호와의 영에게 감동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 이 사무엘상 16장 13절에 이어지는 바로 다음 14절에선 정반대 장면이 나와요.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러분, 아시는 대로 사울은 다 갖춘 사람이었어요. 외모도 갖췄죠. 집안도 갖췄죠. 능력도 갖췄습니다. 모든 걸 다 갖추고 이제 왕좌까지 차지한 사람이에요. 스펙으로는 세계에서 최고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여호와의 영이 떠나시니까 그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겁니다. 사람을 높이 세우는 건 우리가 열심히 쌓아 올린 스펙이나 조건이 아니에요. 사람을 세우는 것은 오직 성령이신 겁니다. 이 성령께서 다윗 인생, 그 험난한 인생에 맺으신 게 있는데, 그게 다름 아니라 ‘노래’였어요. 찬양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요?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시편 절반 가까이가 다윗이 쓴 노래잖아요. 성령의 감동 되어 부른 찬양인 것이죠. 그래서 다윗은 이 마지막 말에서도 ‘여호와의 영’이라는 이 단어, 그 한 단어! 자기를 울리게 하고, 자기를 감동 있게 하고, 자기 평생을 완전히 성격을 바꿔놓은 그 ‘여호와의 영’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절이에요. 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_삼하 23:2“내 혀에 있도다. 내 혀에 있도다.” 다윗이 인생의 끝에서 제일 높이 여겼던 것! 제일 자랑했던 게 뭘까요? 왕좌가 아니죠. 다윗이 제일 자랑한 것은 다름 아니라 자기의 ‘혀’인 거예요. 혀. 근데 그냥 혀가 아니라 ‘성령에 감동된 혀’. 그래서 성령께서 그 말씀을 두신- 성령의 말씀을 담은- 그 혀를 다윗은 최고 자랑거리로 여겼던 것입니다. ‘혀’야말로 사실 우리 마음대로 나불거릴 수 있는 기관이잖아요. 그게 이제 거기에 성령의 말씀이 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를 높이 세우셨다’는 것은 우리 목소리를 크게 하시는 게 아니에요. 내 말을 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혀에서 내 말을 내리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자리에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올리시는 겁니다. 우리에게도 마지막 말을 할 날이 오겠죠. 언제인지 모르나 반드시 마지막 말을 할 날이 옵니다. 다윗의 마지막 날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닙니다. 평생 그 시편을 노래하면서 그의 혀가 준비한 말이 마지막 말로 나온 거예요. 우리의 마지막 말도 지금 준비되고 있는 겁니다. 그날 내 혀에서 나올 말은 오늘 내 혀에 있는 말인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내 혀에 있는 혀에 담는 그 말부터 우리가 좀 바꾸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바꾸는 거 사실 너무 어려워요. 말 그대로 이게 습관이 되면 마음대로 나오거든요. 사실 그 거친 말, 욕 이런 거 진짜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나오는 것들이 우리 혀에 밴 것들이거든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마는. 이런 것들을 우리가 좀 이렇게 그 말을 몰아내고 거기에 성령의 말씀, 매일 큐티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말씀을 우리 혀에 담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적용 질문Q. 최근 누구 앞에서 화를 내거나, 기가 죽었습니까? Q. 화를 내거나 기가 죽었던 그 순간 드러날까 두려웠던 나의 '이새의 아들'은 무엇입니까?Q. 바로 그 숨기고 싶었던 이름 위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믿는다면, 이제 내가 -나를 화나게 하거나 나 때문에 기가 죽은-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어떤 말을 다시 건네겠습니까?영원한 언약의 하나님은요, 흔들리는 내 집을 어떻게 세우실까요? 첫 번째는 여호와의 영이 나를 세우신다고 그랬고요. 두 번째는 2. 참된 왕이 나를 살리십니다(3-4절)이건 성자 하나님이세요. 참된 왕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시잖아요. 성자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절이에요.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_삼하 23:3여기에서 밑줄 그어야 될 구절은 다른 게 아니라 ‘내게 이르시기를’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요? 다윗은 지금 왕이지만 통치의 기준을 자기가 만들지 않았어요. 자기 말을 먼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르시는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여요. 다윗이 제일 잘한 것 중에 하나가 그거잖아요. 묻는 것! 여호와께 묻는 것! 자기가 기준을 만드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얼어붙게 합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경우가 사울이잖아요. 사울은 묻는 적이 없잖아요. 늘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판단하고 그 생각대로 그냥 일을 저지르는 게 사울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을 그렇게 예뻐하다가도 자기 기분이 확 상하면 어떻게 했어요? 다윗을 향해서 그냥 창을 던지는 거예요. 그냥 ‘기분’이 자기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을 다 얼어붙게 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을 듣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죠. 이 다윗이 하나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특별히 ‘이스라엘의’ 뭐라 그래요? ‘반석’이라고 그래요! 어제 말씀에도 오늘 말씀에도 시편 많은 곳에서도 다윗이 하여튼 입만 벌리면 자주 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이 ‘반석’인 거예요. 이게 여러분 뭘 보여주는 것 같습니까? 다윗의 인생이 그만큼 쉽게 깨지고 그만큼 흔들거렸다는 반증인 것이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늘 무너지는 자기 삶을 살다 보니까 저 산에 있는 바위를 보기만 하면 나처럼 깨진 인생도 지켜가시는- 이끌고 가시는-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반석! 반석! 바위! 깨지는 삶을 지켜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반석에서 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또 고백하는 것이죠. 쫓기고 흔들렸던 그 세월 내내 붙들었던 하나님의 이름인 거예요.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하나님 다윗은 이제 늙었지만 그 반석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왕의 통치 기준 2개를 알려주셨다고 그래요? 뭐죠? 하나는 ①공의 그리고 두 번째는 ②여호와를 경외함, 하나님을 경외함인 거예요. ★하나님을 경외해야만 자신도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 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그게 ‘공의’가 되는 겁니다. 함부로 대하는 건 공의를 깨뜨리는 거잖아요. 여호와 경외하는 것이 ‘뿌리’인 거예요. 내가 먼저 ‘여호와를 경외’해야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공의’로운 관계, 바른 관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왕에게 숙제를 내주세요. 왕이 될 사람에게 숙제를 내주시는데 이게 무엇이냐, 거창한 게 아니라 이겁니다. “율법책을 손수 베껴 써라. 서기관한테 맡기지 말고 네 손으로 직접 율법책을 베껴 써라. 그리고 그것을 평생 옆에 두고 읽어라.” 이게 뭐예요? 우리가 매일 하는 ‘큐티’인 거예요. 큐티!! 우리 여기 쓰면서 여러분 큐티 하시잖아요. 말씀을 쓰고 그것을 묵상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큐티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왕이 될 사람에게 내주신 그 숙제라 이 말인 것이죠. 하나님이 내주신 과제인 거예요. 근데 왜 내주셨어요? 이거 괴롭히려고 내주셨어요? 쉬는 꼴을 못 봐서 내주셨을까요? 그게 아니에요. ★숙제를 내주신 목적은 여호와 경외함을 배우기 위함이라 그다음에 나오는 거예요. 여호와 경외함을 배우도록. 여호와 경외함을 배워야 그 통치가 바로 설 것이기 때문에! 그게 뿌리이기 때문에! 여러분 이게 왕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요? 우리 각자에게도 다 해당되는 말인 것이죠. 우리 집안에서도 여러분 집안에 서열이 다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집안에 서열이 다 있으시죠? 제일 무서운 사람, 제일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누구세요? 여러분 집에. 상황마다 바뀔 거예요. 상황마다 바뀌겠지만. “제일 무서운 사람이 그게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 자신이다. 나의 기분이 우리 식구들이 제일 눈치 보는 것이다”라는 분들 회개하셔야 됩니다. 그 집은 지금 ‘공의’가 깨져 있는 거예요. ★내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 두려운 줄 알 때,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 때 가정에서도 이 관계가 공의로운 관계가 세워지는 줄 믿습니다. 다윗에게도 이렇게 경외함이 무너진 날이 당연히 있었죠. 늘 무너지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죠. 경외가 무너지자 공의가 무너졌던 것이고, 공의가 무너지자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밧세바를 취했고 그래서 그걸 감추려고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충신을 죽였어요. 살리라고 주신 권력인데- 사람 살리라고 주신 권력인데- 그것을 사람 죽이는 데 쓰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다스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것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림 한 폭을 그냥 딱 보여주시는데 그게 4절입니다. 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_삼하 23:4여러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세요.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근데 아침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되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환하게 햇볕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그 햇볕을 받은 풀들이 깨끗한 상태에서 돋아나는! 지금 그 그림이라는 말이죠. 이 그림에서 그 햇빛의 빛을 받는 그 ‘새 풀’은 누구일까요? ‘왕을 포함한 백성’인 거예요. 여러분 해가 풀을 잡아당겨서 키우나요? 해가 풀에게 명령을 내리고 억압을 해서 풀을 자라게 합니까? 그렇지 않죠. 해는 그냥 빛을 비추는 거예요. 그 빛을 받아서 풀이 돋아나는 겁니다. 살아나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태양과 같은- 햇빛과 같은- 사람들 옆에 계셔 보셨습니까? 그분 앞에만 가면 이상하게 내가 자라나는 것 같고, 실수하는데도 다시 해보고 싶은 그 용기를 얻는 그런 분들 만나보셨습니까? 여러분들 이런 사람들- 이런 리더들- 만나시기를 축복하고 또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이 이런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진짜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자녀들에게 비춰주고, 목장 식구들에게 비춰주고, 이웃에게 비춰주는 그런 분들이 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반대도 있죠. 반대가 사실은 더 많죠. 그 사람이 출근하면 사무실이 이제 얼어붙고요. 그 사람이 집에 들어가면 애들이 이제 방으로 다 도망가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 같습니다. 남 얘기가 아니라 이제 제 이야기인 것이죠. 신학교 때, 옛날 옛적이에요. 신학교 때 우리 신학생들이 토론을 하잖아요. 신학에 대해서 목회에 대해서 토론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제 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제 딱 한마디를 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제가 한마디 하면 그냥 더 이상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썰렁해지는 거예요. 조용해지는 겁니다. 이게 이제 반복이 되다 보니까 저는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아! 내가 워낙 명쾌한 정답을 내놓으니까 더 이상 이제 할 말이 없는 것이구나 내가 모든 토론을 종결했구나! 역시 나는 똑똑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살았거든요. 근데 이제 오늘 말씀 준비하면서 이제 생각을 해봤어요. 그때의 모습을 생각을 해보고 그때 그 친구들의 선후배들의 표정을 제가 다시 한 번 떠올려 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분들이 설득이 되고 납득이 되어서 말을 그친 게 아니더라고요. 하도 기가 막혀서 이제 입을 다문 것이더라고요. 여러분 이게 학교 교실에서 또 사역지에서만 그랬겠습니까? 거기에서도 그랬으면 제가 집에서는 얼마나 더 심하게 그랬겠어요? 그러니까 아내랑 아들이 제 눈치 보고 저를 이제 힘들어 했던 게 너무 맞는 것이죠. 제가 지금 계속 과거형으로 말씀드리고 있잖아요? 저는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근데 이 발언을 듣는 저의 아내와 아들은 혹시 이것을 지금 뭐 듣고 있다면 “저거 과거형으로 얘기하는 게 맞나?” 이제 이럴 것 같아서 지금 제가 약간 지금 긴장이 되네요. 그런데 이 그림대로 다스린 왕은 이 말씀을 직접 들은 다윗도 아닙니다. 그 잘난 아들 솔로몬도 아니에요. 이 그림대로 다스린 왕은 따로 있습니다. 천 년 후에- 이 다윗의 마지막 말이 있은 지 천 년 후에- 노 제사장인 사가랴가 다윗과 마찬가지로 성령에 충만해서 이제 말한 게 있어요.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눅 1:78) 참된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돋는 해’로 오셨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받은 왕이었지만 이 그림을 온전히 이루신 참된 그리스도는 예수님이신 거예요. 다윗은 자기 왕조 지키려고 우리아의 피를 흘렸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기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렇게 ‘햇살’이기 이전에 참된 왕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살아가야 할 이 풀인 것이죠. 우리 ‘풀 같은 인생’인 것이죠. 그래서 내 결심으로 좋은 부모 되려 하고, 좋은 자녀 되려 하고, 좋은 친구, 좋은 지체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유효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요. 사흘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참된 왕의 그 빛 아래에 서야 되는 것이죠. ★매일 말씀 앞에 서야 되는 거예요. 매일 큐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으로 살아나야 되는 거예요. 내가 살아나야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적용 질문Q.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삼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Q. 참된 왕의 빛 아래 살아난 사람으로서(여러분 다 살아나셨죠?), 이번 주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떤 말이나 태도를 바꾸겠습니까?저도 지금 생각해 보니까 집에서 제 확신으로 얘기하고 “그거 아니야! 어디!” 그런 태도를 좀 이제 바꿔야 되지 않을까?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왕의 그림은 이렇게 눈부셔요. 아름다운 그림이에요. 정말 생각만 해도 상쾌해지는 그런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받아 적은 다윗이 자기 집을 돌아봤을 거 아니에요. 자기 집이 과연 이 구름 한 점 없는 아침이었을까요? 아니었겠죠. 큰아들 암논은 이복동생 다말을 짓밟았습니다. 그 오빠 압살롬이 이 암논을 죽였어요. 그리고 그 압살롬은 아버지를 향해서도 칼을 휘두르다가 나무에 걸려 그렇게 죽고 말았습니다. 나단의 예언대로 다윗의 집에는 칼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눈부신 왕의 그림,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그 눈부신 왕의 그림. 그리고 자기의 다 무너져 내린 그 집의 모습. 다윗은 지금 이 두 모습 사이. 그 멀고 먼 그 간격 사이에 지금 다윗이 끼어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과 내 실제 모습. 여러분 우리는 이 ‘간격’이 뭔지 너무 잘 알죠. 저도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우리가 꿈꿨던 가정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의 모습인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줄 압니다. 결혼할 때 꿈꿨던 모습이 저도 있었어요. ‘좋은 남편 되고 좋은 아빠 되고 좋은 목사 되겠다’라는 그 그림이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간격을 너무 알고 있어요. 우리 이상과 우리의 현실. 다윗도 지금 이 멀고 먼 간격 사이에 서서 지금 세 번째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원한 언약 세 번째는 3.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이루십니다(5-7절)이거는 성부 하나님의 역사라고 우리가 할 수 있어요. 5절입니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_삼하 23:5“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라고 할 때 그 “이같지”는 지금 앞에 나왔던 그 깨끗한 아름다운 아침의 그림인 거예요. “내 집이 지금 이 같지 아니하냐”라고 하는 것이죠. 근데 여러분 우리 다윗의 집안이 어떤지 너무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귀를 의심하는 거예요. “다윗이 지금 자기 지금 현실 파악이 안 되나? 왜 저래? 왜 저렇게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어?” 이렇게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데, 다윗은 지금 자기 집의 실체를 그 폐허를 못 본 척하는 게 아닙니다. ★다윗은 그 폐허에, 그 눈앞에 있는 현실에, 다 무너져 내린 자기 집에 자신의 마지막 말을 맡기지 않는 거예요. ★자기 집을 현실 성적표로만 평가하고 판단하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록 다 무너졌을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아래에서 지금 그것을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붙든 언약은 사무엘하 7장의 약속이에요. 다윗이 하나님께 집을 지어드리겠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걸 뒤집으셨죠. “야!야! 네가 무슨 집을 짓니? 내가 너를 위해서 집을 지어줄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어가 “나”에서 이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이 복음인 거예요. 내가 뭘 하려고 하는 것에서 하나님이 내 인생에 해 주시는 걸 깨닫고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게 복음입니다. 이 ‘영원한 언약’은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되었다’고 그래요. 영원한 언약의 내용이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되었다고 그랬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시는 약속이다”라는 뜻입니다. 특히 ‘만사에’라고 그랬어요, 만사에. 여러분 만사에!!! ‘모든 것’이라는 뜻이에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만한 것만 골라서 그 고른 것에 대해서만 하나님의 약속을 견고하게 지키시겠다가 아니라! 전혀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일에 대해서도! 심지어 하나님이 책임지시면 안 될 것 같은 그러한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약속을 견고하게 하신다. 준비시키신다. 이루어질 준비를 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집은 폭삭 무너진 집이에요. 이건 뭐 모두가 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여러분 지난주에 본 그 반역자 세바, 옳고 그름의 화신이기도 했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해요. ‘불량배’라고 기록합니다. 이 불량배 눈에 보기에도 다윗의 집은 왕으로 인정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새의 아들에게 받을 유산 없다”고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무시하잖아요. 폭삭 망한 집안이에요. 사실 다윗의 집안이 자랑할 게 있는 집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이새의 아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유산으로 주시는 거예요.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다윗의 그 모든 구원과 그 구원을 바라보면서 품은 그 모든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겠다! 모든 구원과 모든 소원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반드시 그것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에 ‘이루다’라는 단어는 싹을 싹 나게 하다 ‘싹트게 하다’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4절에서 뭐가 싹 텄죠? 뭐가 돋았어요? ‘새 풀’이 돋았잖아요. 그렇죠? 그 그림이 지금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무너진 폐허에 우리의 구원을 싹 틔우시는 거예요. 내 인생의 무너진 자리, 어떠한 소망도 생각할 수 없는 자리 ‘여기에서 어떻게 내가 일어설 수 있을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이 폐허 같은 나의 삶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싹 틔우시는 ‘하나님의 밭’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싹이 틔웠어요. 싹이 났습니다. 이사야는 이사야 11장 1절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이렇게 예언했잖아요. ‘다윗의 줄기’가 아니라 ‘이새의 줄기’예요. ‘이새의 아들의 줄기’라는 말이겠죠. 부끄러운 자리예요. 거기다 이 줄기는 멀쩡한 나무의 줄기가 아닙니다. 이 ‘줄기’의 뜻이 뭐냐? 줄기가 잘리고 남은 그루터기를 말하는 거예요. 밑동. 우리가 말하는 그 ‘밑동’이 바로 이 ‘이새의 줄기’라고 할 때 그 ‘줄기’입니다. “이새의 그루터기에서-이새의 밑동에서- 도저히 싹이 날 수 없고 그냥 죽음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의자로만 쓸 수밖에 없는 그러한 밑동에서 그루터기에서 하나의 싹이 날 것이다.” 이사야가 예언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끝났다고 도장 찍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싹이 난다는 거예요. 그 싹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같은 땅에서 다른 것이 자랄 수도 있어요. 6절과 7절입니다. 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_삼하 23:6-7‘가시나무’는요, 언약을 거부한 -언약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인생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여러분 성경에서 제일 처음 가시가 난 자리가 어딘지 아세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자마자 그 땅에서 가시가 자라난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원래 자리가 가시나무라는 겁니다. 우리는 언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거예요. 언약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남 찌르는 데는 전부 다 선수잖아요. 그렇죠? 그냥 찌르는 데는 타고나는 그 재능이 있는 거예요. 이게 이제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시’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가시를 심판하실 그 왕께서 참된 왕께서 대신 십자가로 가시는 날, 우리 대신 십자가로 형벌 받으러 가시는 날 머리에 쓰신 게 뭡니까? ‘가시관’을 쓰신 거예요. 맨손으로도 만지기 힘든 그 가시를 우리 주님은 맨머리에 받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임할 저주를 주님이 자기 머리에 받으시고 가시 같은 우리를 이 언약의 땅으로 옮겨 심으신 거예요. 그래서 오늘 내 삶이 폐허 같아도 나의 폐허 같은 삶에도 구원의 싹이 돋게 하신 겁니다. ▪ 적용 질문Q. 우리 집에서 내가 '이미 끝났다'고 결론 내린 문제는 무엇입니까? Q. 하나님이 아직 끝내지 않으셨음을 믿으며, 이번 주 무엇을 다시 시작하겠습니까?여러분 뭐 경제 상황, 건강, 자녀 문제, 부부 갈등 뭐 여러 가지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만 문제가 있으면 ‘끝났다’고 단정하잖아요. ‘끝이야!’ 찌르는 말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끝이 아닙니다. 한 성도 나눔이에요. 이분은 우리들교회가 태어나서 처음 다닌 교회라고 하십니다. 이혼의 아픔이 있는데 그 아픔을 교회 나오기 전까지는 그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고 그래요. 그냥 꼭꼭 숨기고 사셨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이거 다 숨기면서 아이가 이제 둘이 있는데 그 아이 둘 뒷바라지 하시면서 그렇게 그냥 사셨대요. 그러다가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는 거예요. 어디에 대해서? 우리들교회에 대해서 화가 나는 일이 생겼대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불신결혼 안 된다’는 그 말이 자기한테 너무 열받게 하는 이 상황이 있으셨대요. 그래서 그냥 막 씩씩거리다가 하루는 ‘도저히 안 되겠다’ 그래서 그냥 따지러 오신 거예요. 목사님한테 따지려고 판교로 오셨답니다. 그런데 그 분노의 발걸음을 하나님께서 은혜의 발걸음으로 돌려주셔서 교회에 등록을 하시고 목장에 안내가 되셔서 목장에 이제 나가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처음 목장에 나가셔서 자기가 17년 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혼의 삶, 이혼 이후에 그 힘든 삶들을 거기서 이제 털어놓으셨대요. 그랬는데 이제 그 처음 그걸 얘기하실 때 그 자기의 마음을 이제 기억하시면서 목장에서 이렇게 나누셨더라고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고백을 통해 (그 처음 나눴던 그 고백을 통해서) 큰 자유와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17년 동안 여러분 정말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그 분노의 발걸음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목장에서 털어놓게 하시는 순간 이제 이렇게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하신 것이죠. 그래서 그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서 이어지는 38주 동안 교회에서 하라고 하는 모든 양육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다 받으셨다는 거예요. 다 한 번에 수료하시면 전부 다 다 하셨대요. 그래서 “이제는 어떤 일도 이제 서두르지 않고 내 뜻대로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때를 기다리겠다”고 이렇게 이제 나누셨더라고요. 17년 동안 여러분 끝났다고 … 이분이 끝났다고 속으로 얼마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정죄를 했겠어요? ‘내 삶은 끝이다’ 죽지 못해 사셨을 것 같아요. 정말 폐허라고 결론 내렸던 그 삶인데 … 그런데 하나님은 끝내지 않으신 겁니다. 말씀의 공동체 꺼내놓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이 싹트게 하신 거예요. 여러분 성도에겐 ‘폐허’가 마지막 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힘든 일 보면 폐허 같은 내 상황 보면 “끝났어! 끝이야!” 이런 말 너무 많이 하지만 성도에겐 그 폐허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성도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냐? 성도의 마지막 말은 언약인 거예요. ‘영원한 언약’인 거예요. 거기에 우리의 마침표가 있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께서 이 나누신 성도님의 집도 또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집도 또 우리 공동체도 끝까지 붙들어 가실 줄 믿습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은 여호와의 영으로 나를 세우세요. 그리고 참된 왕의 빛으로 나를 살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모든 구원을! 일부 구원이 아니라! 부분 구원이 아니라! 모든 구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다윗의 마지막 말은 ‘이새의 아들’이라는 그 부끄러운 … 가장 초라한 이름에서 출발해서 ‘영원한 언약’이라는 가장 견고한 약속에 도달했어요.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를 수 없는 길인 것이죠. 그러니 우리 삶의 무너진 자리에 우리의 마지막 말을, 마지막 판단을 맡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폐허’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언약’이 마지막 말입니다.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구원을 끝까지 이루실 줄 믿습니다. 찬양하겠습니다.♬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2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2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2♬▪ 기도제목나의 갈 길을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영원한 언약이에요. 그러나 우리 삶에 무너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부끄러운 것 투성이입니다. 감추고 싶고 잊고 싶고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님 저희가 일어설 힘이 없어요. 주저앉고 싶은 저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여호와의 영이 저희를 일으켜 세워 주시옵소서. 저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자신이 왕이 되려 했습니다. 참된 왕이신 주님 앞에 회개하오니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다시 살려주시옵소서. 그래서 여러분 우리 힘으로는 구원의 문턱에도 이를 수 없어요. 그러나 오직 영원한 언약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언약, 굳게 믿고 맡겨주신 귀한 삶을 끝까지 잘 살아 낼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큐페와 티티를 위해서, 우리 목사님, 케냐와 터키 사역을 위해서, 우리나라 위해서 다 함께 “주여”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흔들리고 넘어지고 주저앉는 저희가 기댈 곳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오늘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주님 저희를 받아주시옵소서. 아버지, 저는 오랫동안 제가 하나님의 기준을 듣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제가 기준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제 답이 명쾌해서 사람들이 조용해진 줄 알았었는데, 제 말 앞에서 아내와 아들도 말문이 막히고 마음이 얼어붙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제 기분을 높이고 아직도 제 안에 왕노릇하려는 저의 이 질긴 죄를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주님은 이런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영으로 성령으로 친히 일으켜 세우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저희 혀에서 저희 말을 내리시고 그 자리에 성령의 감동된 말씀을 올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제 끝났다고 스스로 도장 찍은 그 폐허가 바로 주님께서 구원을 싹 틔우시는 밭인 줄 믿습니다. 저희들의 이 말씀의 공동체 앞에 그 부끄러움과 연약함과 죄악을 꺼내놓을 때 그 자리에서 구원의 싹이 돋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유와 위로를 누릴 수 있도록 주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고난하고 갈한 저희의 인생입니다. 아버지 살아 가는 것이 너무도 고됩니다. 너무도 갈합니다. 주님, 불쌍히 여기시고 이 힘든 저희의 인생길을 주님께서 끝까지 함께 지나 주시옵소서. 그래서 마침내 구원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진행되는 모든 큐티 페스티벌과 또 띵크 트립 위에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오가는 길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모든 관계와 섬김과 수고의 모든 사역에 여호와의 영께서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목사님 케냐와 터키 사역에 만사형통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어두운 땅에 말씀의 빛, 복음의 빛이 돋는 해의 아침 빛처럼 밝히 비춰져서 그곳에 죽어가는 영혼들이 움이 돋는 새 풀처럼 살아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나라의 그 자유와 법치를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모든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의 뜻이 있어서 이 약하고 악한 나라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줄 믿습니다. 주님, 저희가 회개합니다. 이 나라 살려주시옵소서. 악한 가치관의 가시를 성령의 불로 불살라 주시옵소서. 성령의 감동된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주의 공의로 나라와 국민을 섬기는 지도자들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폐허가 아니라 영원한 언약을 저희의 마지막 날로 삼아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서 드린 이 예물을 주님 연납하여 주시고 주님 나라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물드린 손길마다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나눌 것만 있는 인생 되도록 우리의 건강과 가정과 학업과 직장과 관계와 아이디어와 프로젝트 위에 성령께서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언약 믿고 끝까지 갑시다!”
*** 목장 기도 제목 ***
A: 마음에 위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인생 가운데 주님의 큰 사랑이 있도록 기도합니다. 가족 구원보다 내 구원이 먼저인 것을 알고 예배가 회복되어 참 평강을 누리도록 기도합니다. B: 흘린 모든 눈물이 큰 용사의 뿔로 세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손해 난 것 같은 시간과 인생을 모두 계수하시고 충만하게 하신 것을 믿습니다. 둥이는 101호에서 102호로 옮겨 가는 것이고,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내 인생을 힘차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두려움이 올 때 가만히 멈춰서 숨 쉬고 말씀 보는 평강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버지 병원에 가셔서 검사 중인데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것에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C: 나를 살리는 회개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게 만들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필요한 곳에 약재료가 되어 많은 사람을 살리도록 기도합니다. D: 부서진 것 같은 돌도 주께서 쓰시고자 하면 머릿돌이 되게 하심을 믿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교회와 목장으로 인도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피로 산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여 영육의 회복 위해 병원 가고 약 받아 올 수 있는 용기와 힘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중인데 용기와 지혜와 명철을 더하여 주시고 나누고도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E: 억울한 자를 기억하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을 믿습니다. 사단을 우리의 발아래 두시고 넉넉히 이겨 기뻐 찬양하는 인생 되도록 기도합니다.이번 한 주도 영원한 언약이신 하나님께 우리를 맡겨 드리고, 언약을 믿고 끝까지 자리에서 맡은 바 순종하는 저희들 되기를 원합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주님 잘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맛있는 음식으로 섬겨주신 목자님과 목원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