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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본문: 사무엘하 20:18-22제목: 충성된 자이성훈 목사님설교 말씀‘충성’ 이라는 단어를 가장 진지하게 쓰는 곳이라 하면 군대를 떠올립니다.교회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기업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디의 충성고객으로 등록되어 있고 인간은 누구나 어딘가에 충성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기업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문제는 이러한 충성을 엉뚱한 데에 하면서 살다가는 인생이 한 방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충성을 하는지 안하는지가 아닌 무엇이 충성하면서, 어디에 충성하면서 사는지 보여줍니다.압살롬의 반란이 우여곡절 끝에 끝났지만, 세바라는 자가 나타나서 반란의 나팔을 붑니다. 우리는 다윗과 나는 분깃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바를 잡으러 간 끝에서 한 사람을 충성된 자라고 내놓고 있습니다.1. 여호와의 기업을 아낍니다.18-19절.이스라엘 북쪽 끝의 아벨 성 바깥에 토성이 쌓여 있고, 군인들이 그 위에서 성벽을 깨려고 곡괭이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위태로운 성벽에,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 올라갑니다. 그 여인은 이름도 기록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여인을 사용하십니다.충성은 장군의 힘, 고관의 감투로 하는게 아닙니다. 충성은 내가 나의 목숨을 어디에 거는지의 문제입니다. 우리도 무엇인가에 목숨을 걸며 살아갑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우리는 무엇인가에 목을 매고 삽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하나님보다 마음을 쓰는 순간, 우리의 충성을 끌어당기는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여인은 성벽 위에 올라 ‘옛 말에 아벨에 가서 물어보라 하지 않았습니까’ 라며, 아벨에 가서 묻기만 하면 모든 고민을 응답받을 수 있는 곳인데, 요압 장군은 굳이 여기가지 와서 좋은 기회를 사용하지 않고 성벽을 부수려고 하냐고 질문을 던집니다.반역자 세바는 반역의 나팔을 불었습니다.반역은 왜 할까요? 전부 대의명분을 위해, 정의를 위해, 권력을 몰아내기 위해 스스로 옳다는 확신으로 나팔을 불었습니다. 세바도 문제 앞에서 옳고 그름을 외치는 자격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팔을 불고 반역을 주도했습니다. 요압은 아벨에 와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이곳에 와서 토성을 쌓습니다.그런데 여인은 먼저 묻습니다.요압의 행동을 보며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신명기 20장에 전쟁 앞에 화평을 선언하라는 말씀이 있다며 말씀을 기억하고 상대방에게 말씀으로 물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여인을 지혜로운 여인이라고 하며, 화평하고 충성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화평이 무엇일까요?전쟁이 없는 것은 화평의 현상입니다. 화평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자기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충성은 각자가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각자가 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화평이고, 지키고 있는 것이 충성입니다.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대해서 불평을 합니다. 하지만 순서가 반대입니다. 평화는 내가 자리를 잘 지킬 때, 충성할 때, 그 한 사람의 충성이 모여 화평이 되는 것입니다.세바는 지금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왕을 섬길 수 없다며 나팔을 불었습니다.요압은 탁월한 능력을 기반 삼아 늘 다윗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합니다.여인은 누구도 올라가기 싫어하는 위태로운 자리에 하나님이 보내신다는 믿음을 갖고 올라가서 요압을 막아서고 있습니다.세바와 요압에게는 성이 의미가 있었지만, 연약하고 힘도 없고 영향력도 배경도 없는 여인에게는 어머니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을 여호와의 기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 보이느냐가 바로 충성의 실체입니다. 내가 공동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내가 보는 시선에 달려있습니다.교회, 우리의 아벨 성인 교회는 주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성경 (갈라디아서 4:26)에는 예루살렘은 우리의 영원한 교회, 하나님께서 세우신 어머니라고 나와있습니다. 교회가 우리를 복음으로 낳고 말씀으로 양육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우리는 교회를, 목장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서운하면 등 돌리고 불평하고 옳다는 생각이 있으면 판단하고 가슴에 비수를 꽂지는 않습니까?내 생각이 아무리 맞아도 어머니같은 공동체인 교회를 향한 우리의 충성이 아닙니다. 어머니같은 교회를 우리는 아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끼시는 분이십니다.요나 선지자는 악한 앗수르 땅과 백성을 어떻게 하는지 두고보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명도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살다 보면 자신의 삶도 아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저주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관계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아끼십니다. 아끼시기 때문에 문제와 고난을 짊어지고 있지만 이 자리에 나와 예배하는 줄 믿습니다. 아끼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교회 공동체를 아낄 수 있는 것입니다.충성이라는 말 앞에서 내 것은 무너져내립니다.적) 가정과 교회를 볼 때 뭐가 먼저 보이십니까, 무슨 생각을 먼저 하세요?내 방패인가요 과녁인가요 여호와의 기업인가요?이번 주 내가 아껴야 할 여호와의 기업 하나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아끼겠습니까?2. 내 충성을 장담하지 않습니다.20절.여인의 말에 요압은 결단코 그렇지 않다고 두 번 외칩니다. 그 일이 그러한게 아니라며 강하게 부정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나한테 벌을 내리셔도 벌을 받겠다는 가장 강한 장담이자 맹세입니다.여인은 장군도 아니고 충성을 이야기할 상황에 있지도 않는 사람이 충성된 자라고 고백하는데 요압은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여인의 말 한 마디에 부인하고 있습니다. 요압이 거짓말 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게 무섭습니다. 요압은 자신이 이 성을 파괴하러 온것이 아니라 다윗에 충성한다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반역자를 잡으러 왔다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잘못이 잘못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다른 사람을 삼키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진실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실상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요압은 입으로 아니라고 하지만 몸으로는 성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요압은 세바를 잡으러 오는 길에 사촌을 만나 평안을 인사하며 칼로 찔렀습니다. 입은 평화, 손은 칼을 잡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숨어있는 요압을 보고 깨달으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이 아닌 행동을 봐야 합니다. 입으로는 사랑했다고 하면서, 상대방 마음에 피멍드는 일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옳은 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말로 인해 관계가 깨지고 화평이 무너지는 것이 삶에 많습니다. 그 때 우리는 내 자신의 충성이 누구를 살리고 있는지, 삼키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21절.요압에 세바를 고발합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 자기 사촌을 죽인 이야기는 뻥긋도 하지 않습니다. 다윗도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행실을 고발할 때, 죽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남의 죄를 물을 때는 누구보다 예리하지만, 자기죄를 볼 때, 그 시력은 0가 됩니다. 남에게 정확한 잣대를 대는 것은 병든 충성의 증상입니다.이어서 요압은 조건을 겁니다. 세바만 내주면 떠나겠다고 합니다. 남의 목숨을 요구하며 내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또한 무너진 충성의 이기적인 증상입니다. 요압도, 세바도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충성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바는 정의 요압은 다윗에 충성했다고 생각하지만 엉뚱한 대상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우리도 돈, 성과, 칭찬, 즐거움, 내 자신에게 목숨을 걸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문제는 그 충성이 뭔가를 삼키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에 충성하면 가족과 건강을 삼킬 수 있고, 자녀에 충성하면 자녀의 숨통을 조일 수도 있습니다. 내 편을 만들고 인기를 얻는 것에 충성하면 하나님의 뜻을 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에게 충성하고 있는지, 그 충성이 누구를 삼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요압이 장담한 것처럼 베드로도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결코 버리지 아니하겠다고 장담했습니다.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셔도 받겠다는 마음으로 맹세했던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충성을 장담하는 사람은 제일 자신하는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그 충성이 주님께 기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기댄 것이기 때문입니다.충성을 장담하는 순간, 회개에서 멀어집니다. 장담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고, 문제가 없다고, 알아서 잘 하겠다고 하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충성하는 사람은 충성을 장담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요압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꺼내지지 않고, 주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충성할 수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세요’적) 최근 “난 절대 안그래” 장담했던 일은 무엇입니까?누구의 잘못을 낱낱이 지적하고 있습니까?이번 주, “그게 아니라요” 대신 “그러게요,” 로 시작해야 할 대화가 있다면 누구와 어떤 대화입니까?3. 내 안의 세바를 내어던집니다.21-22절.반역자의 머리를 내어 던지겠다고 요압에게 약속하고, 실행합니다. 그러나 여인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지혜를 갖고 백성들을 설득했고, 백성들이 합심해서 세바를 잡아다가 목을 베어 내어 던집니다. 공동체에 의해 죄가 다뤄졌다는 뜻입니다.여인은 성을 아꼈습니다. 그 성에 들어온 세바를 감싸지 않고 내어 던졌습니다. 다윗을 보면 압살롬을 모든 자식 중 가장 아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압살롬의 죄를 도려내지 못했고,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죄를 감싸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죄를 끊어내야 합니다.내 안의 세바가 어떤 반역자인지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끼시는 기업인 목장, 공동체에서, 나를 아껴주는 지체 앞에서 내 고민과 걱정, 두려움을 꺼리지 말고 나누다 보면 깊이 숨어있는 내 안의 세바를 내어던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세바가 내어졌습니다. 반란이 끝났다고 박수칠 일이 아닙니다. 성은 살았지만 머리가 날아갔습니다. 요압은 더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세바가 외친 구호는 남아있습니다. 열왕기하 12장을 보면, 북쪽 사람들 열 지파가 외친 말이 세바가 외친 말과 동일합니다.인간의 충성의 최선이 여기까지입니다. 인간의 최선은 반란을 잠깐 진압할 수 있지만, 절대로 완전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특히 만악의 근원인 죄의 문제를 인간의 충성과 열심, 선악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오늘 본문에서 다윗 왕국을 끝까지 이어가게 하는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요?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라와 집이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려는 충성입니다. 하나님도 지키시는 자리가 있습니다.우릴 하나님의 전으로 이끄시고 말씀 듣게 하신 것이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우리가 충성하는 것들은 결국 끝에 가서 요압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 머리까지 요구하게 됩니다. 세상에 대신 죽어주는 우상은 없습니다. 우주에 나를 아끼는 존재는 없습니다. 우상은 나를 삼키려고 기회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과 정 반대로 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안계십니다.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 온 백성이 망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누구인지로 인해서 사건이 완전히 다른 사건이 됩니다.충성이 나온 곳은 전쟁과 상관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진정한 충성은 가장 뜻밖의 자리에서 나타납니다. 반역자를 처형하는 형틀에서 충성자가 나타납니다. 멸시받고 버림받으신 예수님에 대해 히브리서 3장에서는 충성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구속주의 자리를 지키신다고, 누구도 지기 싫어하는 십자가를 충성으로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충성된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충성자는 예수님입니다.요압은 머리를 요구했고 여인은 머리를 내놨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머리를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충성의 최고봉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받은 줄 믿습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 어떤 처지에 있든, 어떤 문제를 짊어지고 살든,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절대 끊을 수 없는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는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안의 세바를 꺼내 회개해야 합니다.세바를 꺼내서 던질 때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빈자리를 주님께서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20)그래서 우리도 주님께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충성에 힘입어서 말입니다.적) 내 안의 세바는 무엇입니까?삭이지 못한 억울함입니까, 오래 품은 원망입니까, ‘나만 옳다’는 자기 의입니까, 습관이 된 자기 방어입니까?이번 주 목장에서 오픈하고 회개할 한가지는 무엇입니까?
A1. 누나 전정신경염 치유 해주시고 좋은 직장으로 이직 시켜주시길2. 직장에서 생색을 누를 수 있게 해주시길3. 요즘 육적으로 많이 지치는데 체력 지켜주시길4. 금주 계속 할 수 있기를5. 자취 하기로 결정 했는데 집 잘 구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를6.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데 살려주세요7. 몸무게 4Kg만 더 빠지게 해주세요8. TT사역 한 영혼을 위해 애통한 마음 가질 수 있기를B1 건강관리하기 2 공부 꾸준히 하기3 신결혼 할 수 있길4 TT 잘 갔다올수 있길C1 주님과 공동체에서 멀어지지 않길D1 조울증재발되지 않기를2 부모님 건강회복될 수 있도록E1 이번한주 의미있게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