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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5.(주일) 열왕기하 23:4-14 「우상을 가루로」 김양재 목사님
오늘 읽을 말씀은 열왕기하 23장 4절에서 14절까지 되겠습니다. 예, 4절부터입니다. 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6.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9.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주님, 우상을 어찌 가루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만들었네요. 오늘 우상을 가루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저희들이 듣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이제 한 해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이라고 해요. 사는 건 늘 힘들어요. 그래도 오늘 주님께 감사한 것 하나씩 꼭 생각해 보시고.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당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지 않아요? (아멘) 네, 그런데 감사해야 할 주일에도 우리 마음은 지금 쉽게 불평과 원망으로 이렇게 가게 돼요. 지난주 월드컵이 32강 진출에 실패하니까 한 사람에게 비난이 쏟아집니다. 많은 사람에게 우리 말 그대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어요. 우리나라 국민성이 ‘이기고 이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맞는 것 같아요. 지면 못 견딘다고 했는데, 지금 잘살게 되니까 지면 못 견뎌서 이혼하고, 지면 못 견뎌가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거예요.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그러니까 우리가 화가 나면 누군가를 가루로 만들고 싶어져요. 잘못한 직원, 배신한 친구, 말 안 듣는 배우자, 속 뒤집는 자식 등 가정과 회사에서 우리는 죄와 죄인을 늘 분별하지 못하고 ‘저걸 그냥 확!’ 이게 우리 주제가 아닌가요? 그렇죠. “학씨” 기억나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정말 가루로 만드는 사람이 나옵니다. 요시야가 헐고 태우고 빻아서 뿌려 버려요. 그런데 그가 가루로 만든 건 사람이 아니고 우상이에요. 지난 본문에서 입으로 세운 언약이 오늘 본문에서 손의 행동으로 적용된 것입니다. ★말씀으로 회개한 사람은 이처럼 잘못한 남이 아니라 내 안에 우상을 부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상을 가루로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 세 가지 길을 함께 생각을 해보겠어요. 1. 꺼내 불사릅니다(4-7절)4절이에요.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_왕하 23:4이제 말씀을 들려주고요. 회개한 자들이 모이면 저절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게 있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술, 담배, 용돈, 친구 관계, 식성 등 모든 분야에 저절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 교회를 통해서 계속 말씀이 들려지게 하는 게 이게 절대적인데요. 그런데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회가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니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은 우리의 타락을 가져오는 지름길이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전과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우시고 노하셨어요. 사회를 보고 울지 않으셨어요. 개인 구원이 사회 구원이기 때문에 특히 이 개인 구원을 위해서 성전 청결은 반드시 이제 필요했어요.그러니 언약을 세운 요시야가 먼저 이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서 대제사장 힐기야부터 문지기까지 성전을 섬기는 사람을 이렇게 총동원하는 거예요. 회개는 혼자 골방에서 끝내는 게 아니고요, 공동체가 함께 움직이는 일입니다.이들에게 뭘 명령하나요? ‘우상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꺼내라’고 합니다. 우상숭배의 그릇들이 신전도 산당도 아니고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었다는 말이잖아요. 그죠? 이거 누가 세웠어요? (요시야의) 할아버지, 유다 왕 할아버지 므낫세가 채워놓은 거예요. 그런데 50년이 지나도록,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것이 하나님 섬기듯 우상 섬기는 게 자연스러워졌어요. 그리고 이상한 줄도 다 모른 채 이 성전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릇들을 꺼내 어떻게 합니까? 기드론 밭에서 불살라요. 재로 만듭니다. 이 ‘재’가 오늘 제목인 ‘가루’와 같은 단어예요. 우상의 도구를 가루로 만드는 거예요.이 ‘기드론 시내’는 다윗이 압살롬 때문에 울면서 건넜던 그 기드론 밭인데 여기서 우상을 불살랐어요. 예루살렘 성안에 재를-가루를- 남겨두는 것조차 부정하기에 우상숭배의 본거지인 총본부 ‘벧엘’에 그 잿가루를 보냅니다. 왜죠? 북이스라엘이 열심히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했다가 지금 망했잖아요. 그렇지만 요시야는 그들도 한민족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곳에 경고를 한 거예요.‘기드론 밭’은 묘지였어요. 우상을 재로 만들어 ‘죽은 자들의 자리’로 보내는 거예요. 생명을 준다던 우상이 사실은 ‘죽음’이라는 뜻이에요.그릇만 꺼낸 게 아니죠. 5절입니다.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_왕하 23:5물건을 넘어 사람에게까지 갑니다. 여기 이 ‘제사장’은 유다의 제사장이라기보다는 ‘가나안의 제사장’을 가리키는 ‘케마림’이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거짓 제사장들을 유다 왕들이 세웠다는 거예요. 유다 왕들이 대대로 자리 주고 월급 주면서 키웠어요. 그래서 우상을 섬기게 한 그 제사장들과 수백 년 내려온 제도를 지금 요시야가 폐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 제사장들을 따라 분향하는 자들까지 폐하는 장면이 지금 기록되고 있어요. 아마 그들은 우상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요시야 왕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였을 거예요. 왜죠? 우상 제사로 먹고살던 제사장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는데 반발이 엄청났을 거죠. 그러나 ‘폐하다, 폐하다’가 지금 한글 성경에는 두 번 나왔잖아요. 원문에는 이것이 단 한 번 나왔어요. 성경 원문에는 ‘페하다’가 완료형으로 단 한 번 쓰여서요, 이 일이 ‘매우 단호하고도 완전하게 시행되었다, 폐했다’는 거예요. ‘제사장, 분향하는 자’. 그런데 성경은 그 반발을 기록하지 않아요. 반발이 없었다는 게 아니에요. 언약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아서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거예요. 요시야의 믿음이 대단하고 권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회개하고 언약을 세운 공동체가 받쳐주었기 때문에. (이런 공동체가 지금 없네요. 요시야 공동체가)이제 이렇게 전무후무한 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공동체가 한마음이 되어서, 요시야가 회개해서 다 모였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문제가 일어나도 ‘태풍의 찻잔’이 아니고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공동체가 너무 중요한 거예요. 공동체가 하나가 된 것은 전무후무한 개혁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게 한 줄 믿습니다!그래서 요시야의 개혁은 더 깊이 들어갑니다. 6절이에요. 6.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_왕하 23:6‘아세라 상’은 우상 대표예요. 그런데 므낫세 할아버지가 이걸 성전 안에 세웠어요. (므낫세를 향해) ‘대단한 위대한 유다의 영웅!’ 그들은 그랬을 거 아니에요, 55년이나 집권을 했으니까. 그런데 이걸 손자 요시야가 할아버지를 틀렸다고 개혁하는 거예요. 꺼내서 태우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무덤에 뿌립니다. 우상을 죽이는 거예요.그런데 이 기드론 시내는요 다윗이 눈물로 걸어간 요즘(큐티 본문에 나온)의 장소예요, 기드론. 거기에 ‘평민의 묘지’가 있어서, 가루를 그 위에 뿌린 것은 부정한 시체와 관련해서 우상의 저주스러움과 멸망을 보이고자 함이 있는데요. ‘이런 우상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것도 상징하는 거예요.다시 한번 보면 ‘기드론’은 다윗이 압살롬 때문에 눈물로 걸어갔죠. 그런데 우상을 제거하기 위한 ‘평민의 묘지’가 거기 있는 거예요. 이것이 가장 거룩한 성 예루살렘 경계선에 있다는 거예요, 기드론이. 그러니까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간 기드론이, 다윗이 걸어간 그 길이 지금 우상을 태워서 갖다 버리는 이 장소가 됐잖아요. 그러면 여러분이 뭘 생각해야 해요? 구속사는 좋은 역할 나쁜 역할이 없는 거예요. 이거 따로 적용하면 ★내가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면서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다면 모든 우상의 재를 받아내는 묘지가 될 수 있어야 돼요. 쓰레기를 다 받아낼 수 있어요.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쓰레기도 받아낼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땅에서는 주어진 역할이 최고의 역할이고, 그것이 바로 낮은 자리에서 예수 믿게 해 주는 이 역할인 거예요!그러므로 ★어제의 ‘좋은 환경’에서 오늘은 ‘나를 손가락질’해도!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기 때문에 이 기드론의 다양한 역할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 믿는가, 아닌가’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와, 나는 좋은 역할만 감당하고 싶은데……’ 기드론이 오늘 많이 나오는 거예요.그런데 아세라가 끝이 아니에요. 7절입니다.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_왕하 23:7(뭔지 아시죠?) ‘남창의 집’이 어디 있어요? 어디 있었어요? 남창의 집이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딱 있었다는 거예요. 여인들이 아세라를 위해 휘장을 짜던 곳인데 거기 남창도 살았다는 거예요. 무슨 말이에요? 우상숭배와 음란은 하나라는 거예요. 우상숭배 자체가 영적인 간음이거든요. 신랑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따라가는 것이니까 반드시 육적인 음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지난 주일에 법원이 동성 커플을 ‘사실혼에 준하는 생활공동체’로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어요. 그리고 정부가 사실혼과 비친족 동거 가구까지 가족 지원 서비스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사실혼과 유사한 생활 공동체는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집단)으로 봐야 한다’고 이렇게 판시를 했어요. 우상이 조금씩 조금씩 (물드는 거예요). 조금씩 조금씩. 또 지난주에 국회에서는 이 태아생명보호법(꼭 우리가 쓰는 언어로 이렇게 나와서 막 호소를 했는데요.) 만삭이라도 일주일 전이라도 낙태하는 걸 합법화하고, 그다음에 약물로 하는 손쉽고 간단한 태아폐기법, 그러니까 약만 먹으면 낙태가 되는 거예요. 그 낙태법 발의를 장관직을 걸고 통과를 시키겠다고 하니까 이게 여성 인권 보호법인가요? 그러니까 약만 먹으면 낙태가 되니까 성관계를 마음대로 할 거 아니에요. 그죠? 약만 먹으면. 그러니까 점점 더 문란해지고, 아이는 안 낳고, 그리고 또 임신하면 낙태를 하고, 이거를 이게 장관직을 걸고 통과시켜야 되는 여성 인권보호법인가요? 여성들이 그게 좋은 걸까요? 생명보호법이 제정되도록 직을 걸어도 시원찮은데요. 그냥요 안타깝지 않아요? 우리나라 인구절벽인데 근데 각종 이즘과 이념이 종교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이 인권을 이념처럼 이제 이렇게 믿으니까, 진짜 안 변하는 거예요. 이 공산주의가 무서운 것은 하나님 자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인데요. 기독교를 가장 대적하는 것이 공산주의 아닙니까? 그래서 막스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해놓고는 그리고는 또 예 사람을 하나님 자리에 이제 놓는 거죠. 여러분 진보건 보수건 고난은 누구나 올 수 있는 거잖아요. 그죠? 그래서 주님을 만나야 하잖아요. 그러면 주님을 만나면 당을 떠나서 낙태법, 동성애를 찬성할 수 없죠. 이 문제는 정치가 아니잖아요. 제가 광주에 교회 세웠잖아요. 그죠? 이건 정치가 아닌 거예요. 대구에도 세웠지만은. 그러니까 이제 이거는 진짜 무슨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닌데. 그러니까 우리 어떤 장로님이 자기는 지금 보수를 너무너무 미워해 가지고, (그렇게 미워하는데 글쎄 장로까지 올라오셨네요.) 그랬는데 자기는 진보에서도 태아 생명(을 해치는 것) 여기에는 당연히 반대할 줄 알고 그랬는데, 거기(진보)에서 발의를 했다는 거를 이게 이렇게 드러나니까, 이게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저한테 메일을 보내고 본인을 좀 이제 치리를 좀 해달라고.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하는 게 종교기 때문에 그걸 못 바꿔요. 이게 그냥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신앙 교육이 너무 필요한데요. 내가 아는 많은 분들이 진짜 수십 년 전부터 진짜 아무리 고난이 와도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더라고요. 무엇이든지 이렇게 ‘성역화’라는 것은 독재를 의미해요. 왜냐하면 토를 달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김일성은 명령만 하잖아요. 어떤 성도님들이. 우리 그런 성도님들 많죠. “우리 가정이 살아났다”고 살아났다고 하면, 이제 처음 오신 분이나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니 하나님이 살려주셨지 왜 김 목사가 살려줬냐! 여기는 이상하다!” 근데 저도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절대로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저기 (간증문) 원고도 (그런 말 빼고)쓰셔놓고는 나와서 원고에 없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걸 제가 또 어떡하겠어요? 어떡하겠어요? 이게 자발적으로. 그러니까 우리가 “뭘 해라, 말라” 이런 게 아닌데. 그런데 이제 우리는 설교 댓글 창도 열어놓았죠. 열어놓은 데가 참 거의 없더라고요. 저는 이메일도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열어놓았어요. 그런데 그 나눔에서나 어디에서나 저와 교회에 대한 피드백을 아주 여과 없이 하는 분들이 많아서 제가 힘들 때가 많았죠. 그래서 이제 이거를 이 큰 교회가 되면 ‘언제 닫아야 하나’를 수없이 고민했지만은. 천하보다 귀한 구원이 있잖아요. 그 살아나는 한 분 때문에! 제가 그 살아나는 한 분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요. 하지만 모든 것에 답을 제가 다 드릴 수는 없어요. 제가 열어놓으니까 여러 가지 부탁을 하고, 재정 도움 요청을 하고, 그리고 악의적인 편지를 이제 보내는 거는 제가 참 못 도와드려요. 이건 양해를 해 주세요. 그러니 제가 이걸 열어놨으니 힘든 사연... 받은 분들은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또 제가 그것 때문에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눈물 마를 날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제 이 교회를 하고자 하는 것이 ‘말씀 묵상 가정 중수’ 잖아요. 그 핵심 가치가 무너지면 안 되는 거고. 내가 이 땅에서 교회를 무슨 목회 성공을 위해서 한 것도 아닌데… 나의 한마디가 오늘 그 가정을 살린다면. 그런데 하여튼 이렇게 이제 제가 여기까지 왔어요. 이건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사람 살리는 것을 끝까지 완주하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시기를 바래요! 쓸데없는 메일은 좀 보내지 말아주세요. 정말 그거 제가 정말 여기 답장받으신 분들 너무 많을 거예요. 여기서만 오는 게 아니고 정말 전 세계에서 힘든 분들이 보내세요. 여러분 거꾸로도 마찬가지예요. 남편 버리고 아내 버리고 가정을 깨뜨리면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일원론이에요. 그래서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깨뜨리는 사람이 되면 안 되죠. 그런데 기적같이 우리 청년부에서 조현병도 조울도 결혼을 하니까 사단이 놀라서 도망가는 것 같아요. 맞아요. 병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그냥 가정을 지키겠다고 하니까, 예배를 나오니까 도와주셔서 가정을 다 지키더라고요. 놀랍지 않아요?이처럼 요시야의 개혁 1단계는 성전에서 우상을 꺼내 불사르는 거예요. 성전은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하는 곳이 아니죠.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예요. 거룩이에요. 팔복이에요. 그런데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 성신에게 제사한다’는 건 뭡니까? 이 땅에서 성공하고 번영하고 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거죠. 세상 행복이고 기복이에요. 그러니까 성전 안에 우상 단지가 있다는 건 지금 이 ‘거룩’의 자리에 세상 ‘행복’이 놓였고, ‘팔복’의 자리에 ‘기복’이 자리 잡은 거예요. 그러니까 행복을 놓고 다 기도하는 거예요. 이게 옛날 유다만의 이야기입니까? 오늘 우리 이야기예요.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세요. 우리 공동체가 성전이고 우리 각 사람이 성령의 전이에요. 그럼 오늘 본문은 지금 어디를 스캔하고 있어요? 우리 마음을 살피고 있어요. 우리는 우상숭배 안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이것 없이는 못 산다”고 하는 것, 그 모든 게 다 우상이에요. 칼빈이 그랬죠. “우리 마음이 우상 공장”이라고. 우상을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가만히 있어도 돈을 탐내는 ‘바알’, 능력 있는 자녀를 보험 삼고 싶은 ‘아세라’, 미래를 통제할 힘을 의지하는 ‘일월 성신’을 끊임없이 우상 공장에서 뽑아주고 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그게 뽑아져요. 국수 가락이 뽑아져도 뽑아져요. 이렇게 스스로 만든 우상에 깔려 죽어가는 게 인생이죠.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찾아오셨어요.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회개케 하시고 구원의 언약을 맺으셨어요. 그래서 ★예수 믿은 순간부터 천국 갈 때까지 성도의 삶은 종교 개혁이에요. 그 첫 단추가 우상을 마음에서 꺼내 불태우는 것이죠. 성전에서부터 이 일이 일어나야 되는데 우상을 어떻게 꺼냅니까? 우상 어떻게 꺼내요? 오픈한다는 거죠. 우상은 안에 숨겨두면 절대 안 죽어요. 죄는 공동체 안에서 오픈할 때 힘을 잃어요. 그게 목장에서 하는 오픈이죠. 내 우상을 내 입으로 꺼내놓는 순간 우상은 이미 타기 시작하는 거예요. ‘불사르는 것’은 다시는 쓰지 못하게 없애는 거예요. 우상은 재활용하는 게 아니에요! 아깝다고 보관해도 안 돼요! 반쯤 태운 우상은 반드시 다시 살아나거든요! 완전히 끊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렇게 태울 불이 없어요. 갈멜산에서 바알 제사장 450명이 빌고 빌어도 불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한 사람이 기도하자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물은 물론 나무와 돌과 흙까지 태우셨죠. 오늘 우리에게도 이 불이 필요해요! 성령의 불이 임하셔서 우리 마음속 우상들을 태워 주셔야 합니다. 이번 주에 함께 기도합시다! “주여!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의 더럽고 악한 우상들, 탐욕과 정욕과 교만과 미움과 불안과 중독까지 모두 태워 주시옵소서!” 아멘이시죠. 적용 질문Q. 너무 가지고 싶어서 달아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Q. 아직 꺼내 오픈하지 못하는 내 안의 ‘욕심’은 무엇입니까?Q. 이번 주 목장에서 오픈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시길 간구하겠습니까?Q. 오늘 기드론처럼 구원의 역할은 좋은 역할, 나쁜 역할이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슨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한 목자님이 자녀에게 할 유언은 “예수님 잘 믿어라. 우리들교회 가라. 빚은 꼭 갚아야 된다. 이혼하지 마라.” 아내에게는 “천국에서 만나자. 그리고 만약 사망보험금이 있다면 교회에 헌금해라.” 목자가 되고서 목장 공동체 안에 있으니 한 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거룩한 나눔을 하셨잖아요? 근데 지난주 주차부에서 있었던 일을 이분이 고백하는 거예요.) 앞에 아파트 사시는 어떤 여성분이 주차 정리를 왜 안 하냐고 잘하라고 해서. “그러면 와서 직접 하시라고!” 그분이 “이 원수 같은 교회는 안 온다”고 하셔서 제가 쫓아가서 “욕을 왜 하고 가냐고” 하니까 남편분까지 내려서 욕을 하면서 서로 고성을 지르고 싸우셨다는 거 아니에요? 교회에 덕이 되어야 되는데 참지 못했습니다. 주차부 카톡에 “잘못했습니다”라고 올렸습니다.여러분 기가 막히지 않아요? 이분이 목자님인데, 교회도 좋아하는데 구원 때문에 이 분노를 조절해야 되는 게 안 되는 것 같아요. 사회 같으면 당장 아웃인데요. 그러기에는 유언을 너무 근사하게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 미워할 수가 없는 거예요. (특별히 왜 미워할 수가 없는가? 사망보험금은 교회에다가 주라고 그래 가지고^^;; 미워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마음이 막 체휼이 되는 거예요. 교회를 사랑하시고 신앙고백도 있으신데 이런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이런 분들은 교회도 나오시고 주차부도 섬기시고 자기의 죄를 오픈함으로 이렇게 불태웠다고 생각이 되는데. 이러는(판단만 하는) 사람들은 주차부도 안 섬기고 이러죠. 그러니까 분노조절이 안 되는 분들은 그렇게 주차부를 또 지원을 많이 하시더라고. 그러니까 여러분 주차부에는 그냥 다...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싸우지를 말아요. 여러분 주차봉사 안 하려면 주차부원들을 존경해야 돼요. 아셨어요? 이런 의리가 있으니까 와서 또 하루 종일 지하 6층까지 주차를 하시잖아요. 얼마나 교회를 사랑해요. 그런데 이분이 교인(이웃)하고 싸웠다고요. 제가 진짜 막 눈물이 나려고 그래요. 아, 이런 분들은 주님을 사랑하는데 교양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제 판단만 하고 “왜 저러는가!” 이러는데, 우리 정말 판교에서 주차를 해보시면 이 더운 여름에 지하 6층까지. 계속 거기 계셔야 되잖아요. 그래서 행위로 천국 가는 게 아니에요. 구속사는 그 사람 입장에 서 있어야 되는 거에요. 이게 내가 사랑하는 데도 분노조절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분들은 약을 좀 드시면 좋겠어요. 약을 드시면 훨씬 나으니까. 그렇게 해서 모든 목장에서도 이렇게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마시기를 바라요. 어떻게 우상을 가루로 만들까요? 그래서 첫째 꺼내 불사르고요. 둘째는 더럽게 하는 거예요. 더럽게!! 2. 더럽게 합니다(8-10절)8절이에요.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_왕하 23:8개혁이 이제 성전을 나와 온 땅으로 흘러갑니다. 게바는 유다의 북쪽 끝이고 브엘세바는 남쪽 끝이에요. 전국 구석구석 성문 어귀까지 다 훑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삶의 길목 길목까지 산당이 쫙 서 있었다는 거예요. 산당이 뭡니까? 높은 곳에 차린 내 방식의 예배예요. 여호와를 섬긴다면서 성전이 아니라 내가 높은 자리에서 내가 편한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가 산당 예배에요. 요즘엔 진짜 온라인 예배가 산당 같아요. 아사도 여호사밧도 좋은 왕들이었는데 성경은 꼬리표처럼 기록해요.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였더라” 왜 그래요? 한 번 세워보니까 너무 편한 거예요. 한 번 온라인 예배를 드리니까 너무 편한 거예요. 이 주차 전쟁을 안 해도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싸워도 안 오고~ 바빠도 안 오고~ 아파도 안 오고~ 이제 안 올 그거를 마련했어요. 그래서 이 산당을 없애지 않는 거예요. 요시야의 증조할아버지 히스기야가 마침내 여러 산당들을 제거했는데 아들 므낫세가 금세 도로 백(back)해서 세웠어요. 없애도 다시 살아나는 거, 그게 산당이에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혼합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거죠. 그래서 요시야는 제거만 하지 않았어요. 제거만 했다간 다시 와서 세우니까 더럽혀요. 다시는 산당을 예배처로 못 쓰게 봉인하는 거예요. 어떻게요? 산당 터는 태워 없앨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자리를 부정하게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으로! 선언하는 거예요. 그래서 14절에 “해골로 채웠다”는 것이 더럽게 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다시는 아무도 거기서 예배를 못 드리게 만드는 거예요!요시야의 개혁은 너무도 구체적이고 너무 진심인 것이 느껴져요. 정말 생명을 걸고 하면은 디테일(구체적)이 있어요. 구원은 디테일이에요. 여기 진짜 맨 처음에 여기(휘문 강당) 못 올라오고 저기 식당 쓰고 너무 장소가 없는데 여기 바로 밑에 제칠일 안식교. 거기는 토요일이 안식일이니까 주일날은 비어 있잖아요. 그분(안식교 목사님)이 거길 쓰라고 그러는 거예요. 바로 여기 밑에 있는데요.(^^;;) 그러니까 이게 장소로 보면 써도 되는데, 그래서 그 좋은 거를 안 썼어요. 그래서 이렇게 적용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우리는 타협할 일이 너무나 많이 있잖아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지마는 우리가 이제 제칠일 안식교, 그 교회가 되는 수가 있잖아요. 그게 보여질 수가 있잖아요. 이어서 산당 제사장들에 대해서 조치를 내리는데요. 9절이에요. 9.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_왕하 23:9산당 제사장들은 죽이지는 않고 먹고살게는 해줘요. 다시는 제단에 못 올라가게 합니다. 직을 봉인하는 거죠. 근데 그들도 다시 양육 받아야 했기 때문에 첨가물이 없는 ‘무교병’을 먹게 해서 다시 원리(원칙)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요시야는 또 이런 것들을 아주 그냥 아량을 베풀어서 통합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죄는 미워하고 죄인은 사랑하고 이런 걸 적용하더라고요. 이어서 10절입니다. 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_왕하 23:10우상숭배의 끝판왕이죠. 바로 자녀를 바치는 거예요. 그런 끔찍한 일이 저질러지던 곳이 ‘도벳’입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었어요. 우상 숭배자들은 거기서 자기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했어요. 예레미야 7장 31절을 보면 “그들의 자녀를 불에 살랐다”고 해요. 얼마나 끔찍했으면 이 골짜기 이름 게힌놈(Ge Hinnom)이 신약의 게헨나(Gehenna), 즉 지옥이라는 말이 됐어요. 우상은 이렇게 끝까지 갑니다. 가장 우상 중에 지옥이 자녀! 자녀 우상이에요. 처음에는 복을 준다더니 여기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 복을 준다더니 결국 내게서 가장 소중한 것, 자녀까지 내어놓으라고 해요. 그래서 우상은 삼키는 거예요. 이게 남의 이야기일까요? ★산당은 내가 높이 쌓아 올린 자리예요. 성공, 승진, 사람들의 인정, 내 머리에 씌운 왕관 같은 것들이죠. ‘성문 어귀까지 산당이 서 있었다’는 건 집, 시장, 직장, 학교, 길 심지어 핸드폰과 컴퓨터 등 삶의 모든 길목 길목까지 산당 제사가 이제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주일에는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월요일부터는 산당에서 그냥 사는 거예요. 도벳은 내 체면과 성공의 제단에 자녀를 딱 올려놓는 거예요. “다 너를 위해서야!” 하면서 사실은 “나를 위해” 아이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거예요. 이번 주 어떤 목자님이 “내 자녀들 공부를 위해서 대치동에 이사 왔는데 공부도 하지 않고 아이 셋이 다 교회를 지금 떠나 있는 상태라고” 이렇게 나눔을 하니까, 우리가 참 요시야 공동체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럽혀야 해요. 내가 높인 그 자리를 부정하다 선언해야 돼요. 다 갖춘 것 같아도 너무 오르고 싶어 보여도 그곳이 하나님 떠난 자리임을 인정하고 선언해야 합니다. 다시는 거기서 절하지 않도록 봉인해야 해요. 이게 뭐냐면 내가 낮아지는 겁니다. 산당이 왜 생겼습니까? ★높아지려 하니까 생기죠. 성공으로, 인정으로, 자식으로 높아지려고 지금 한층 한 층 쌓아온 건데, 그런 산당을 더럽힌다는 건 결국 나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내 왕관자리에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죄 패를 쓰지 않고는 산당을 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성경이 이 ‘낮아짐’을 한 단어로 말합니다. ‘재’이자 ‘가루’인 거예요. 바로 우리 원재료인 ‘흙’이에요. 이 ‘가루’가 스스로 ‘금덩어리’가 되고 싶으니까 금송아지 우상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우상을 가루로 만들려면, 산당을 다시 못 쓰게 하려면 내가 ‘가루(재)’라는 걸 인정해야 돼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는 티끌이나 죄와 같사오니”(창 18:27) 이거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가루’임을 아는 것, 그게 회개예요. 욥이 뭐라고 합니까? “티끌과 죄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내가 가루일 뿐임을 인정해야 내 우상도 산당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높인 것을 낮춰야 하나님이 높아지십니다.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산당을 쌓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케 하시려고 그걸 허무세요.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기 때문이에요. 한번 스스로 물어보세요. “이것만은 건드리면 안 돼!!” 하는 게 뭐예요? 그것을 더럽히는 게 상상도 못 할 일이라면 바로 그것이 내 최고 우상인 거예요. “이것만은 못 건드려!” “상상도 못 해!!” 그게 우상이에요. 적용 질문Q. 나에게 “이것만은 건드리면 안 된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Q. 내 체면과 성공의 제단에 자녀를 제물로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Q. 삶의 어느 자리가 내 산당입니까? 어떻게 더럽혀 멀리하겠습니까?이 역린이 돼서 이거 다 설교에 올리지 못하는 그 나눔을 하나 좀 올려드리겠어요. 이제 (부)목자 모임에서 ‘아, 이것만은 건드리면 안 되는데’ 우리 아내가 차별금지법 동의하고 성소수자 옹호하는 쪽이라 담임목사님 말씀이 걸리기 시작해서 눈치가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 신경 쓰느라고 말씀이 안 들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보다 옳도다”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어렵고, 낙태와 동성애는 이제 우리 아내와 자기는 옳다고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다른 목자님이 “그래도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을 양보할 수는 없다. 동성애나 생명과 같은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가 없다. ‘나보다 옳도다’는 죄 고백에 대한 부분이고 아내의 구원을 위한 길이 십자가의 길이긴 하지만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와 기준은 전도에 있어서는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랬더니 또 이제 어떤 분이 “아내가 새신자 한 명을 데리고 와서 설교를 같이 들었던 입장에서 내 이야기는 아니지마는 아까 우리 그 부목자님 말씀 일부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이제 이러는 거죠. 지금 공감하는 사람 많죠?) “그래서 부목자 역할에 대해서 ‘부담 된다’는 생각부터 ‘책임감을 가져야지’까지 다양한 생각이 드는데 내가 훈련을 통과해서 목자가 될까 봐 나는 걱정이에요.” 이러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막 교통 정리를 해야 되니까) 역할에 대해서 공동체에서 한마음을 갖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도 하게 된대요. 이제 구속사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끝없이 생각해 보는 거라 그랬잖아요. 그러나 그 사람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고 “살인도 옳고~ 거짓말도 옳고~ 그것도 옳아~” 이건 또 아니잖아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기 때문에 원칙은 또 있는 거예요. 그러나 이렇게 서로 나누면서 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런 얘기를 올리지조차 않는데, 오늘 7절에 ‘남창’이 있다고 그러고 도벳의 ‘자녀 우상’이 있다고 그러고 이 성경에 나온 얘기니까 성경을 이렇게 말씀으로 얘기를 한 거예요. 어떻게 우상을 가루로 만들까요? 꺼내 불살라야 되고 더럽게 해야 된다고. 셋째는3. 빻아 내립니다(11-14절)11절입니다.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_왕하 23:11태양의 말과 수레를 누가 들였습니까? 유다 여러 왕이예요. 한 왕이 아니라 여러 왕이 대대로 들인 거예요. 그게 어디 서 있었어요?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 근처에요. 예배하러 들어가는 문 앞을 대대로 물려내려 온 우상이 지키고 있었던 거예요. 12절입니다. 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_왕하 23:12이제 고조할아버지 아하스까지 나와요. 아하스가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 할아버지 므낫세가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 그러니까 요시야가 지금 뭘 헐고 있어요? 자기 집안이 대대로 쌓아온 죄를 헐고 있는 거예요. 헐어서 빻아 내려요. 가루를 만들어 생각조차 나지 않도록 기드론 시내에 쏟아버리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지금 예를 들어서 대통령이 자기 고조~ 증조~ 지금 쫙 내려온 대통령이 다 틀렸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이 개혁이 진짜 어려운 거예요. 실제적인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요시야가. 계속 이어집니다. 13절이에요. 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_왕하 23:13이번에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갑니까? 솔로몬까지 가요. 300년 전이에요. 성전을 지은 바로 그 왕이 이방 아내들을 위해서 산당도 지은 거예요. 그게 300년 넘게 예루살렘 앞산에 그대로 서 있었던 거예요. 그 산은 원래 기름 부음의 산인 ‘감람산’이에요. 근데 성경은 이름을 비틀어 ‘멸망산’이라고 불렀어요. 우상이 서 있는 동안 축복의 산이 멸망의 산이 된 거예요. 솔로몬이 너무 너무 대단한 왕이잖아요. 그죠? 그렇게 그냥 부와 저기가 그냥 극했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부인이 막 천 명이 되고. 그러니까 누구도 솔로몬을 건드리지 못해요. 그래서 맨날 “솔로몬” 하면은 ‘지혜로운 재판, 여인’ 이것밖에 모르잖아요, 여러분. 지혜로운 거 그랬는데 이거를 요시야가 산당의 원흉으로 솔로몬을 지목한 거예요. 너무 지금 구체적인 개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 14절입니다. 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_왕하 23:14‘해골’ 나오잖아요. 석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고 그 자리를 사람의 해골로 채워요. 시체의 부정으로 영원히 봉인해서 다시는 그곳에 아무것도 세우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시신에 접촉하는 것이 종교 의식상 부정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해골로 채웠다’는 거예요. 우리가 개혁을 하는데는 금지 구역이 없어야 돼요. 매우 단호하게 제하고 불사르고 빻고 깨뜨리고 찍고! 개혁의 제외 구역은 없다는 거예요. 금지 구역도 없다는 거예요. 지금 그냥 물건, 사람, 제사장, 분향하는 사람, 아세라, 남창, 또 그냥 자녀를 위한 도벳. 다 우리 인생에서 다 일어나는 일들이잖아요. 여러분 마지막 단락의 우상들이 다 뭡니까? 전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잖아요. 뿌리예요. 내가 만든 우상이 아니라 태어나 보니까 이미 집 안에 서 있던 우상이에요. 가문의 자랑, 물려받은 기질, 대물림된 상처. 날마다 “우리 집안은 원래 이래” 하는 가치관. 물론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 자체가 죄라는 말은 아니에요. 근데 그것이 내 의지처가 되고 내 자랑감이 되고 내 피난처가 된다면 그 어떤 유산이 우상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우상을 지금 줄줄이 열렬히 붙들고 있는 건 부모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보세요. 가장 깊은 (우상의) 뿌리는 가장 좋았던 시절에 심겼어요. 솔로몬의 산당이잖아요. 가장 지혜롭고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절에 심긴 죄가 가장 오래 갔어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 죄의 뿌리는 실패한 시절보다는 잘나가던 시절에 심겨요. 자랑이니까 아무도 못 건드리는 거예요. 우리 옛날에 젖어 살아요. “옛날에 내가 그랬는데~ 저랬는데~” 그러면 이 뿌리도 빻아 내리면 되겠네요. 근데 여러분 여기서 막히죠. 그릇은 꺼내면 되고 산당은 봉인하면 돼요. 근데 ‘뿌리’는 뽑으면 나무가 뽑혀요. 물려받은 기질, 가치관, 상처 그게 곧 ‘나’거든요. 성경이 ‘옛 사람’이라고 부르는 내 자아예요. 결국 마지막 우상은 내 자신인 거예요. 나 자신인 거예요. 근데 내가 나를 빻을 수 있습니까? 없어요. 아까 내가 가루임을 인정하는 게 회개라고 했잖아요. 근데 인정까지는 하겠는데 이 마지막 우상은 내 손으로 빻을 수가 없어요. 안 부서지는 거예요. 12절에 ‘빻아내리다’를 히브리어를 보면 ‘상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이 단어 어디서 봤죠? 설교 제목으로도 나왔었어요. 《상한 갈대》 기억하시나요?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라” 열왕기하 18장에서 했죠. 그 ‘상한’이 ‘빻아 내려진’ 것과 같아요. 이건 또 이사야가 메시아를 예언하며 쓴 바로 그 말이기도 해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여러분 이게 복음이에요. 빻아져야 할 것은 우상만이 아니에요. 우상을 만들고 산당을 쌓은 건 ‘나’예요. 나! 이미 밑동 잘리고 허리 꺾인 상한 갈대 같은 나라고요. 근데 하나님은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은 꺾지 않으시고 우상의 제단은 빻아 내리세요. 부수세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반대로 하잖아요. 상한 사람은 부수고 오래된 우상은 지켜요. 그냥 지질한 사람은 계속 부숴대고 오래된 우상은 지켜요. 권력 앞에서 맨날 절절 매고. 근데 주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우리가 섬기는 우상을 그래서 가루로 빻아 내리시는 거예요. 금송아지를 가루로 빻아 내리시는 거예요. 더 놀라운 게 있어요. ★주님은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꺾지 않으시려고 자신이 대신 상하셨어요.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래서 성경이 “내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못 빻는 내 뿌리를 빻으시려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이 가루가 되기까지 내어주신 거예요. 우리가 큐티에서 다윗을 보고 있는데요. 압살롬이 죽었다는 이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하잖아요. 아비의 애끓는 정으로도 아들을 살려내지 못하는데 구원을 위한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 해 주실 수 있어요. 요시야를 보세요. 그는 이미 훌다 선지자에게서 재앙이 돌이켜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최선을 다해 회개했는데도 심판은 온다는 선고를 들었어요. 억울해서 다 부숴버리고 싶은 자리 아닙니까? 근데 요시야는 말씀을 찢지 않았어요! 사명을 내려놓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이해되지 않고 절망만 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부었어요! 그건 바로 내 속에 우상을 부수는 거예요. 내가 우상인 거예요. 그러니 마지막 우상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어요. 내 힘으로 안 된다고 무릎 꿇고 나 대신 상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은 하나님을 의뢰할 때 살아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적용 질문Q.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차마 못 건드리는 우상은 무엇입니까?Q. “원래 우리 집안이 이래”하며 정당화하는 뿌리는 무엇입니까?Q. 부수고 있는 상한 사람은 누구이고, 지키고 있는 오래된 우상은 무엇이에요?(적용할 거 너무 많아요)Q. 내 힘으로 안 된다고 원망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겠습니까?그래서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된다면서 목장에서 이 부목사님이 아내와 너무 힘들다고 힘든 나눔을 했더니 목자님과 권찰님이 아내 보고는 “남편 목사에게 돈 벌어오라는 말 그만하고 돈 많이 벌어서 수고하는 남편 맛있는 거 많이 사주라”고, 그리고 이제 남편 목사님 보고는 “불신결혼했으니까 대가 치른다고 생각하고 이혼은 생각도 말고 목회자로 준비가 덜 되었으니 써주는 거 감사하고 겸손하게 교회에 잘 붙어가시라” 그러니까 이제 이 목사님이 그냥 처방을 듣고 이제 둘이 한마음이 됐어요. 기분이 다 확 나빠졌어요. 아내는 불신결혼이라는 것에 “내가 불신자라는 거냐?” 하면서 그리고 이제 목사님은 “능력이 없다고 부족하니까..” 이제 둘 다 화가 나서 그다음 주에 목장 가서 “너무나 상처받았다고! 기분이 나빴다고! 목자님으로 잘 양 떼처럼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너무 무례하시다고 사과하시라고!” 그랬더니 그냥 그 말을 듣자마자 60세가 넘은 목자님이 딱! 인정을 하시고 딱 일어나서 4개 국어로 사과를 하셨대요. “죄송합니다. 스미마셍. 아임 쏘리. 러시아어로” 4개 국어로. 우리가 이게 중요해요. 사랑으로 했어도 상처받았다고 하면 딱 일어나가지고 점핑해서 “잘못했어요! 아임소리! 스미마셍! 죄송합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상한 사람을 부수고 있다가 자기 속에 우상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서로 무릎을 꿇기에. 요시야 공동체가 개혁을 이룬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까 어떤 것도 우리가 정죄가 되지 않아요. 오픈을 하면 우상이 가루가 돼버리니까 없어져버려요. 우상을 끼고 있으면 다 ... 그런데 가루가 돼버리니까 없잖아요. 앙금이 없어요. 이번 주도 이런 목장을 하시기를 바랍니다!말씀 맺어요. 어떻게 우상을 가루로 만들까요? 첫째 꺼내 불사릅니다. 둘째 더럽게 합니다. 셋째 빻아 내립니다. (‘성령의 불로’를 불러보니까 연습 안 하고 부르니까 다 모르시더라고 그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하나님 이름 높여 기리세.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1절)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하나님 이름 높여 기리세온 천하 백성 모두 나와서다 같이 하나님만 섬기세(2절)세상의 헛된 우상 버리고인간의 모든 부귀 영화와거짓과 불의 모두 버리고온전히 하나님만 섬기세(3절)주님의 백성 서로 헤아려시기와 미움 아주 버리고하나님만을 홀로 섬기는천국을 어서 이뤄 주소서 아멘♬기도 제목 드립니다. 우상을 쌓아두면 결국 죽는대요. 무엇보다 내 속에 우상을 꺼내어 불사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생각도 나지 않도록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가 되도록 형체도 찾을 수 없도록 가루를 만들게 해달라고, 상한 사람을 부수지 말고 오래된 우상을 부수게 해달라고, 동성애법, 낙태법들을 직(職)을 걸고 통과시키겠다고 아니고, 생명보호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이 나라를, 우리 교회를, 우리 집안을, 우리의 회사를 모두 불쌍히 여겨달라고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아버지, 다윗이 눈물로 맨발로 걸어간 기드론 시냇가,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다면, 우리가 이제 어떤 빻아 내려져 간 쓰레기 같은 가루를 받아내는 역할도 똑같이 해야 되는데, 우리는 이제 이 역할, 저 역할을 생각하면서 짧은 인생길에 다윗이 살아간 그 열다섯 광야를 생각하면서 이 기드론 시냇가에서 울고 걸어갔는데, 이 세상의 모든 우상의 가루들을 다 받아낼 수 있는 시냇가와 묘지와 이 밭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주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될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특별히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상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 빻아지길 원하는데, 요시야가 할아버지, 아버지의 우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헐고 빻고 척결을 했습니다.주여! 이 개혁을 할 때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게 도와주시옵소서! 경상도 T.T.에 기름을 부으시고 그곳의 우상들을 가루로 만들게 해 주시옵소서. 아프리카 케냐도 그곳의 모든 우상들을 가루로 빻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생명보호법이 제정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우상을 가루로 말씀을 듣고 신앙고백으로 드린 헌금을 받아 주시옵시고 하나님께는 드릴 것만 있게 하시고 사람들에게는 줄 것만 있도록 우리들의 사업과 회사와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건강과 물질과 관계에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처음 오신 분 아프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오니 피 묻은 손으로 안수하여 주시옵시고, 고쳐 주시옵소서! 모든 문제가 해석되어 해결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내 자신이 우상입니다”
*** 기도제목 ***A: 사고가 났는데 잘 처리될 수 있도록 위로 받도록B: 우상을 잘 빻아서 묘지에 버리고 많은 사람 살리도록 / 경계 분별 하도록C: 살려주신것에 감사하고, 영육이 건강해지도록 스스로를 위로하고 약받아 올 수 있는 용기 주시도록D: 오랜 친구이자 가족인 둥이와 인사 할 수 있는 준비 하고, 직장과 인생의 주인이 주님 것이라는 것 알고 잘 살기 위해서 약 받아 오도록 E: 하나님 보다 앞 서는 내 열심의 우상을 잘 빻아서 버리고 회복되도록
첫 목장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목원 한 명이 못 오기는 하였으나,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서 그런지 솔직한 나눔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목자님이 각자에게 맞는 처방을 내려주면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해 봅니다.
각자의 삶에서 우상을 빻는 적용을 해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