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3.(주일) 열왕기하 21:1-9 「듣지 아니하였고」 김양재 목사님1.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3.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5.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6.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8. 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하셨으나9.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하나님 아버지, 히스기야 같은 선한 왕 아래서도 얼마든지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하며 내 악행이 자식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카페에 가면 테이블마다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음악도 나오고 그릇도 부딪히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시끄러워도 마주 앉은 친구와 얘기할 때 그 얘기는 듣잖아요. 그죠? 이걸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하는데요. 많은 소리 중에서도 내가 집중하는 소리를 골라 듣는다는 거예요. 예전에 우리 옆집 아이가 아무리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놔도 그 앞에서도 걔는 책을 읽는다는 거예요. 텔레비전 앞에서도.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이렇게 듣고 살아요. 그런데 볼륨이 저마다 다 다르죠. 자녀의 성적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리죠? 사람들의 평가도 모기 소리만 해도 들려요. 집값 소리도 작지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가요? 말씀이 잘 들리십니까? 귀가 없어서 못 듣는 게 아니죠. 마음이 다른 소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크게 듣는 소리가 결국 나를 끌고 가는 소리예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데요.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는데요. 첫째로, 1.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웁니다. (1-3절)1절이에요. 1.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_왕하 21:1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자 가장 오래 통치한 왕이에요. 그런데 뭐 그런 왕도 등장은 아주 평범합니다. 즉위한 나이, 통치 기간과 어머니 이름이 나오는데 특이하게 아버지 이름이 빠졌어요. 물론 20장 마지막에 언급했지만 이제 21장에 므낫세의 처음 소개는 (그가) 너무 악해서 도저히 히스기야 아들이라고 저자가 써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모친 헵시바는 ‘내가 그를 기뻐한다’는 뜻이에요. 이사야 62장에서 회복된 백성에게 주신 이름이기도 한데요. 참 좋은 이름이에요. 그러면 헵시바가 므낫세를 낳을 때가 언제였나요? 므낫세가 12살이니까 히스기야가 15년의 삶을 연장받은 후에, 앗수르도 물러간 후에 태어난 아들이에요. 그러니까 히스기야 통치 전성기였어요.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온 나라를 우상 천국으로 바꾸었어요. 그러니까 히스기야는 15년 더 살면서 그때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최고로 악한 왕이 되었고 보물 자랑하더니 바벨론에 잡혀가는 빌미를 제공했죠. 그러니까 병만 낫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우리의 ‘평탄한 길(에스라 8:21)’은 오늘 아침 우리 큐티 본문처럼 정확한 길을 가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병만 낫게 해달라고 그러지 말고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 뜻대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고, 그것이 바로 큐티 하면서 물어보는 기도를 말하겠죠. 그 아들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어요. 므낫세는 누구 이름이에요? 요셉의 장자 이름이에요. 무슨 뜻이죠? ‘잊게 하는 자’예요. 요셉은 애굽에서 당한 모든 고난을 하나님이 잊게 하셨다는 의미로 아들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어요. 히스기야도 앗수르에게 당한 고난을 생각하며 아버지 아하스 시대의 악이 다 잊혀지기를 바랐을 거예요. 참 우리의 본능적인 요셉 사랑은 대단해서 히스기야까지 요셉의 장자 이름으로 지었네요. 자고로 하여튼 요셉이 좋긴 해요. 그래서 히스기야가 망했지 뭐예요. 그런데 아니 아버지 히스기야가 그렇게 종교 개혁을 하고 선한 왕으로서 지금까지도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데 므낫세는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도대체 또 무슨 악을 행했을까요? 2~3절에 보니까,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3.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_왕하 21:2-3이 모든 것을 갖춘 므낫세가 한 건요 단 하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거예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랐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여호와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일은 우리들 보기에도 가증스러워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가증하다 그러면 “네, 우리도 가증하다” 그래야 되잖아요. 성경이 가증하다 그러면 “예, 가증하다”고 해야 되죠. 사실 동성애가 그렇죠. 하나님과 우리가 보는 눈이 다르면 안 되잖아요. 이것저것 다 떠나서 동성애도 낙태도 인권도 다 좋은데 생명이 끊어지는 건 안 되잖아요. 생명이 끊어지면 앞으로 예수 믿지도 못하잖아요. 생명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건 악법 중의 악법이라는 거예요. 안 그래도 인구 절벽인데 만삭의 임산부도 낙태할 수 있는 것을 권리라고 발의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남자가 여자 되고 싶은 것을 ‘가증하다’고 해야지 인간의 권리라고 인권을 부르짖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솔직히 ‘동성애 찬성법’이라고 하면 온 국민이 반대를 하고 알아들을 텐데 이걸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니까 다들 “차별을 금지하는 게 왜 나빠” 이래요. 모든 사람들은 하나도 심각하지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속에 성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게 포함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탄이 말을 교묘하게 해서 “선악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해야 되는 걸 “죽을까 하노라” 이렇게 해서 꼬였잖아요. 그죠? 이 말 한마디가.저는 이제 “탄핵이고 계엄이고 우리에게는 발작 버튼이 눌려진다” 이 얘기 하나 했다가 지금 얼마나 온 국민에게 (욕을 먹는지 모르겠어요). 완전히 그러니까 이 언어를 이렇게 가져다가 쓸 수가 있어요? 헌법은 양성평등이잖아요. 성이 ‘남녀’ 두 개밖에 없다는 거예요. 근데 ‘양’ 자 하나 빼고 성평등이라고 하는 거, 성평등 이게 이제 ‘모든 성이 다 평등하다’ 그래서 이게 동성애 찬성을 하는 거예요. 동성애자들을 너무 사랑하죠. 근데 하나님이 이거를 이제 그럼 안 된다고 가증하다고 하셨으니까 이렇게 교묘하게 호도하기에 하나님과 시선이 다른 거예요. 하나님이 가증하다 그러면 우리도 가증하다고 해야 하는데. 근데 여러분도 이렇게 차별금지법을 하도 듣다 보니까 다 무디어졌어요. ‘아이고, 하거나 말거나~’ 이렇게 됐어요. 맨 처음에는 “어머, 그게 말이 안 되지” (하다가) 너무나 다 무뎌졌어요. 선한 아버지는 ‘고통을 잊게 해줄 아들’이길 기대했는데 므낫세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아들’이 된 거예요. 결론은 가장 선한 왕 밑에서 가장 악한 왕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도 훌륭하시고 어머니 헵시바는 히스기야의 부인인데 아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이런 아들이 나왔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헵시바가 이사야 선지자의 딸이라는 전승이 있어요. 그 악한 아하스가 자기 아들 히스기야에게는 또 이사야의 딸을 배필로 맞게 했다는 것이 참 재미있지 않아요? 그 전에 성군 여호사밧은 저기 저 금송아지 섬기는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데리고 오더니 이 악한 아하스는 유명한 선지자의 딸을 며느리로 데려오고. 정말 저는 천국에 가서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1부는 아주 반응이 일절 없네요. 어떻게 그래요? 1부라고 ^^;)그래서 결국 한 일이 뭐예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웠다 그러잖아요. ‘다시!’ ‘다시’가 중요해요. 여러분들 이게 원어로 뭔지 아세요? 이게 또 유명한 “슈브” 동사예요. “슈브.” ‘돌아섰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회개’가 아니라, 세 번이나 해 그림자로 물러가신 하나님의 사랑만큼 강력하게 하나님을 떠나는 타락으로 ‘슈브’한 거예요. 아버지의 개혁에서 돌이켰어요. 오직 여호와만 의뢰하는 신앙을 버렸어요. 그 대신 북이스라엘 악의 화신인 아합의 길에 다시 섰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어렵게 철폐한 산당을 다시 세웠어요. 아세라 목상을 다시 만들고 바알과 일월 성신 우상을 다시 숭배했습니다.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운 거예요. 히스기야가 그리도 어렵게 없앴는데 므낫세는 그냥 왕이 되자마자 여봐란듯이 다시 세웠어요. 자식과 아버지의 가치관이 너무 다른 거예요. 우리는 이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이제 직면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똑같이 돌아서는 행위고 돌이키는 행위잖아요. 그런데 하나는 선이고 하나는 악이에요. 그러니까 ★문제는 ‘목적’이고 ‘방향’인 거예요.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면 생명인데, 하나님을 등지고 돌이키면 죽음이에요. 그런데 이제 등지다가도 마지막에 하나님을 향하면 그건 또 생명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이 세상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슈브가 ‘회개’잖아요. 회개만큼 강력한 그 힘으로 아합의 길로 다시 타락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행위가 아니고 믿음이라 그러잖아요. 믿음은 회개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회개하지 않는 믿음은 가증할 수밖에 없어요. 교회를 나가지만 회개하지 않는 믿음은 가증할 수밖에 없어요. 참 하나님의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히스기야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버지 아하스도 제일 악한 왕인데 그 때문에 본인은 최고의 성군이 되었는데, 그런데 또 그 아들은 할아버지보다 더 악한 왕이 됐어요. 그런데 우리는 ‘악한 아버지 밑에서 악한 아들이 나왔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선한 아버지 밑에서 선한 아들이 나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거꾸로예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는 거예요. 콩 심은데 콩이 나야 하는데 팥이 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계속 이 성경은 우리의 허를 찌르고 있어요. 악한 데서 선이 나고, 선한 데서 악이 나고, 또 악한 데서 악이 나고, 선한 데서 선이 나고.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과 계속 다른, 이것이 왜 이런가 하면은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는 거예요. ‘문제아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것이 믿는 우리가 적용할 원리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외해도 이런 악한 아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하고, 물론 이거를 합리화하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전자동으로 인과응보 격으로 ‘저 사람이 착하니까 이렇고~ 저 사람 악하니까 저렇고~’ 쉽게 이런 생각을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내 자신에게만 적용하면 돼요. 즉,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한테만 적용해야지 남한테 절대 적용해선 안 돼요. 근데 우리가 큐티하면서 워낙 들은 것이 많다 보니까 들은 걸로 전부 남한테만 적용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 그래서 자녀가 엄마한테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는 거 알지?” 뭐 이래 가면서. (또 엄마는 자녀한테 하는 그(런 얘기는) 안하죠.) 그러니까 자녀에게 줄 최고의 선물은 <문제 안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예요. 자녀에게 그 선물을 하세요. 이걸 줄 때 제일 좋아해요. 자녀들이 그러니까 그 선물을 하세요. 부모들은 자녀에게 “부모 탓이야.”라고 하는 것이 신앙고백이니까. ★무슨 말씀이든지 내 자신에게만 적용하세요. 왜냐하면 나도 그렇지만 그 사람도 어떻게 바뀌고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저 사람은 안 돼!” 그럴 사람 없어요. 그러나 이런 설명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 자체인 거예요. 우리는 죄의 공장이에요. 90%도 99%도 아닌 100% 죄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성전보다 가증한 산당이 너무 좋아요. 가증한 산당 세우는 일은 훨씬 더 자연스러워요. 죄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돼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나무 조각이라도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아세라) 목상이 더 믿어지는 거예요. 멀리 계신 것 같은 GOD보다는 내 손 안에 들어오는 GOLD가 너무 귀한 것 같아요. 그러니 하나님을 향해 힘겹게 겨우겨우 10도 돌려놓은 개혁도 이제 잠깐 방심하는 순간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우는 자리로 홱 돌아가는 거예요. 이게 죄악의 태엽이에요. 가만히 두면 저절로 하나님께 가는 게 아니라, 저절로 산당으로 가요. 수없이 목회자 세미나를 하지만 다들 은혜 받으셨어요. 그런데 이제 큐티인을 가지고 큐티 목회를 하는 거는 정말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이제 끊임없이 모래에서 바늘 찾기 하는 거예요. 그래도 언젠가는 열매를 맺으라고. 쉬운 게 아니에요. 다 은혜받으셨지만은 그렇게 금세 ... 왜냐하면 이제 너무 은혜받았는데 내가 떠나고 나면-돌아가서 큐티 목회를 해보려고 하면-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도 온지 10년이나 돼도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래도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소쩍새가 수도 없이 울고 가려고요. 저는 계속 울어대고 가려고요. 그래서 큐티에서 끊었던 죄, 목장에서 오픈해서 무너뜨렸던 자존심, 통곡하면서 회개했던 원망과 불평, 다시는 안 하겠다고 했던 중독과 혈기와 음란과 소비와 비교와 욕설과... 그런 거 끊을 때는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조금 부해지면 그냥 어느 순간 다시 (산당을) 쌓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이제 맨날 말씀 듣고, 주일날 또 말씀 듣고, 월요일 날 듣고 수요일 날 또 듣고, 그러면서 내가 쌓았던 걸 계속 무너뜨려야 되는데, 아무것도 그런 작업을 안 하고 있으면은...어떤 목사님이 “우리들교회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챗GPT에 물어봤더니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갈 교회가 아니다.’ 이렇게 나왔대요. ‘그러면은 편하게 신앙생활을 다른 교회를 소개해 줄까?’ 그랬지만 또 그렇게는 썼대요. ‘진짜 (제대로 신앙생활)하려면 가라.’ 그랬데요. 진짜 챗GPT가 약간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러면 편한 거 좋아하니까 대부분은 그 말 듣고 안 오겠네요. 그죠? 이것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돌아가는 ‘산당의 자리’예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산당을 내 안에 다시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죠. 방심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어요. ★늘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죠.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앞에서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안의 므낫세를 날마다 죽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내가 므낫세라는 거를 알아야 돼요. ‘성경에 나쁜 거는 늘 내가 아니고~ 나는 그래도 히스기야지, 므낫세는 아니야~’ 이딴 소리 하지 마시고, 오늘 므낫세가 나왔으면 내가 므낫세인 거예요. 므낫세는 대체 왜 그랬을까요? 이제 성경에는 이제 문자적으로 이런 얘기를 안 가르쳐 주죠. 침묵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찾으려고 큐티를 하는 거예요. 세속사적으로는 너무 완벽한 부모잖아요. 그죠? 히스기야와 헵시바가. 그러니까 부모 밑에서 눌리죠. 우리는 죄인인데. 죄인이 영적인 부모 밑에서 눌리죠. 그러다가 권력을 잡고 반항이 터진 것일 수도 있고, 양육의 문제였을 수도 있어요. 청소년기 반항심이 권력을 만나면 일기장에 욕을 쓰는 게 아니고, 이제 산당을 다시 세우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우리는 다 상담받고 병원도 가고 그래요. 근데 거기서 우리는 구속사적으로 하나 더 나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서 왜 그 이유를 찾아봐야 되는 거예요? 구속사적으로! 므낫세는 전쟁도 끝나고, 아들도 없던 중에 15년 연장 기간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얼마나 애지중지했겠어요.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부귀영화와 더불어 아버지 어머니의 신앙 인격까지 더해서 태평한 시대를 살았어요. 영육간의 금수저예요. 허벅지를 꼬집어도 므낫세는 말씀이 들리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그러니 ‘부자가 천국 못 간다’는 모델이 되어서 구속사로 입문을 전혀 못하는 거예요. 구속사가 안 들리는 거예요. 이런 사람 있지 않겠어요? 우리는 이런 므낫세를 또 이해해야 되는 거예요. ‘왜 저러나? 부자가 뭐!’ 이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인간이 100% 죄인인데.한 재벌가의 사위가 이혼하고 감옥에 갔는데 그 아들은 너무 반듯하게 컸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이게 이제 그래도 저는 그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 생명으로 오게 해줬잖아요. 그 아버지도 그럴 이유가 반드시 있었을 거예요. 이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있는 게 구속사라는 거예요. ★다 그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게 내 죄를 보는 태도예요. 그런데 그냥 맨날 행위로만 판단해서 “이 사람은 no! 그 아버지는 이제 안 만나야 된다! 관계를 끊겠다!” 뭐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내 아버지 밑에서 내가 나왔는데 어쩌라고요. 그러니까 (오늘 새벽 설교 中 청년의 이야기) 새아버지는 그냥 ‘우리 엄마가 데리고 사는 남자’ 이 정도로 알았다가 우리들교회 와서 그 아버지를 전도했다잖아요. 오늘 새벽 기도에... 천국 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속사는 끊임없이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야 되는데. 우리는 계속 옳고 그름으로... 근데 그 생각 자체를 할 수 있는 게 구속사인데 그게 쉬워 보이는데 너무 안 돼요. 이걸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어요. 말씀이 들리는 거는 이런 걸 의미해요. 적용 질문Q. 내가 은혜로 헐어 버린 산당은 무엇입니까?Q. 공동체에서 끊어낸 죄악은 무엇인가요? 내 죄악의 태엽은 무엇이에요? 그냥 맨날 오뚜기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는 죄악의 태엽은 뭐예요? Q. 혹시 요즘 나도 모르게 그것을 다시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Q. 내 자녀들을 세속사로 판단합니까, 구속사로 기다립니까? 그 기다림이 회개로 나타납니까?구속사로 구속사가 들리는 거는 기다려야 되고, 회개로 기다려야 돼요. 회개로. ★구속사로 기다리는 거는 그냥 죽는 날까지 회개하다 가는 거예요. 근데 자꾸 여러분들은 ‘내가 이렇게 하면 돌아올 거야! 돌아올 거야!’ 이러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회개밖에 없어요. 한 목자님의 큐티 나눔이에요. 최근 회사 동료 중에 우리 교회 가고 싶다 하여 찾아온 후배가 있대요. 열심히 전도한 것도 아닌데 와주니까 감사하면서 사명감을 느끼지만 ‘내가 회사 생활을 잘한 건가?’ 하는 교만과 ‘앞으로 회사에서 행동의 제약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대요. 회사에는 왕년에 함께 룸살롱에서 접대받던 동료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볼까? 걱정도 됩니다. 진정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 그 후배가 세례 간증을 썼는데 봐달라며 보내온 것을 보니 내가 얼마나 가증스러웠는지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배는 “교회 다니는 사람과 멀리하라”는 이 부모님의 가르침을 지키며 착실히 교회를 안 가고 살아왔는데, 남은 것은 음란과 방탕 가운데 결혼도 되지 않는 현실. 종국엔 자살을 꿈꾸는 자신을 발견했을 그 무렵에 제가 회사에서 “교회에 가서 결혼하자!”라며 무심코 던진 그 한 말이 그의 구원의 동아줄이었다는 내용이었어요. 간증을 읽는 내내 구원보다 ‘이젠 회사에서 욕도 못 하겠네~’라며 걱정했던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구원, 사명” 입으로만 외쳤지 정작 관심도 없던 내 모습에 참담했어요. 내가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니 감당케 할 영혼을 붙여주심으로 오늘 말씀처럼 포로에서 돌아와 역할을 감당케 하시는 사건이라 해석이 되었습니다. 내 삶의 어느 곳이든 이제 옛것의 포로를 떠나 성전으로 돌아와야 할 때임이라 말씀하시는 듯 묵상 됩니다. 적용!! 이제 회사에서 믿는 자로 합당한 말과 행동을 하겠습니다. 고난 있는 또 다른 동료들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던지는 말을 해보겠습니다. 아멘!!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다고요. 그냥 와서 ‘되었나 보다’ 하면 다시 세우고 ‘되었나 보다’ 하면 다시 세우고. 여러분!! 회사 다니는 여러분들 너무 공감되시죠? ‘전도는 해야 되겠는데, 와도 싫어~ 내가 하도 죄가 많아서’ 그러니까 그게 행위로 생각해서 그래요. 방향만 이쪽으로 잡으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하나님 쪽으로 잡는다고 우리가 착하게 살아요? 우리가 형편없지! 그래도 방향만 이쪽으로 잡으면 늘 회개를 할 수 있죠! 그런데 하나님쪽으로 잡지 않으면 회개가 안 돼. 회개가 안 돼요. 그러니까 방향을 이쪽(하나님쪽)으로 잡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걱정하지 말고 전도하세요. 회사에서 욕먹으세요. 욕먹어요!! 하나님 책임져 줄 거니까!!!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첫째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웁니다. 둘째 그렇게 되면 2.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습니다. (4-7a절)악을 쌓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4절에서 7절입니다. 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5.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6.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7a.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_왕하 21:4-7a므낫세가 다시 세운 산당은 어디 있죠? 산에 있어요. 성읍 한가운데 있는 성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증한 죄악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아요. 외곽에 머물지 않아요. 저 멀리 산 위에서 시작된 우상숭배가 점점 안으로 들어왔어요. 산당이 성전 안으로 들어와 제단이 되었어요. 성전 마당에 온갖 잡신을 위한 제단으로 채워졌어요. 그러곤 마침내 성전 안에 아세라 목상이 세워졌습니다. 아버지가 찍어버렸던 그 목상을 다시 다시 고이고이 살려서 성전에 둔 거예요. 이 단락을 감싸는 두 개의 동사를 주목해야 되는데요.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셨다”고 하잖아요. 어디요? 예루살렘 성전이요. 하나님이 거룩한 이름을 성전에 두셨어요. 그런데 7절에 보니까 므낫세가 아세라 목상을 어떻게 했다고 해요? (몰라요? 지금 읽었잖아요.) 므낫세가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두었다’와 ‘세웠다’가 원어로 같은 동사예요. 똑같은 단어예요. 장소도 똑같이 ‘성전’이에요. 하나님은 거기에 자기 이름을 두셨는데 므낫세는 거기에 자기 우상을 세웠어요.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모르고 한 행동이 아니고 실수로 한 행동도 아니라는 거예요!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된 악행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정면으로 무시하며 거스르는 가증한 죄악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므낫세의 행동은 엄청난 반역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이용해서 예배의 형식으로! 예배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긴 것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가장 큰 타락이 일어난 곳이 어디예요? 광야가 아니에요. 변두리 작은 동네가 아니에요. 예루살렘이에요. 그것도 성전이에요. 어떤 성전이었나요? 문제투성이 성전이 아니에요! 바로 자기 아버지가 회복했고 지켜냈고 부흥케 한 성전이에요.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게 된 곳이에요. 아버지의 회개의 눈물이 서린 곳이란 말이죠. 그런데 바로 이 자리에서 아들 므낫세가 끔찍한 반역을 저지른 거예요. 그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았어요! 신앙의 가장 위험한 자리는 고난의 광야가 아니에요! 광야에서는 오히려 부르짖고 훈련받고 양육 받습니다. ★정말 위험한 자리는 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자리예요. ★가장 타락하기 쉬운 자리는 놀라운 은혜로 귀신이 떠나가고 싹 수리된 자리예요. 더 이상 영적 싸움을 안 해도 되는 그런 편안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거예요. 므낫세가 지금 그렇잖아요. 그죠? 우상숭배는 어디까지 갑니까? 처음엔 저 멀리 산만 있으면 될 것 같던 우상이 점점 조여오더니 결국 성전까지 들어오죠.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6절을 보니까 마침내 자식까지 요구하는 거예요. 할아버지 아하스가 몰렉에게 자식을 바쳤어요. 그런데 아버지 대를 거쳐서 므낫세가 모압의 그 가증한 일을 완전히 따라 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니,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까 이렇게 교회에서 사는데 성전에서 사는데 거기까지 넘어가는 거예요. 자식을 우상의 제물로 바치는 것까지 가는 거예요. 오늘도 우리는 자식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합니다. 우리가 못 먹고 못 살 때하고 지금 비교가 안 되게 입시의 불, 비교의 불, 성공의 불, 내 한풀이의 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하지만 그게 과연 정말 자녀를 위한 것인가요? 내 욕심 채우려는 우상 아니에요? 자녀들은 그 욕망의 불 가운데서 지쳐가고 눌리고 타들어 갈 수 있어요. 내 욕심의 불은 결코 자녀를 살리지 않아요. 오히려 자녀를 삼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욕심은 한쪽으론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한쪽으로 점치고 사술을 행하고 기복 종교를 찾게 합니다. 요새 얼마나 무당이 또 판을 치는지 모르고. 또 믿는 사람이 또 무당까지 찾아갑니다. 뭐예요? 결국 앞날을 내 생각, 내 뜻대로 만들고 싶은 것이죠. 내가 컨트롤(통제)하려고 하는! 내가 하나님 되려는 욕심이에요. 하나님 자리에 내가 있어요. 아담과 동일한 악이에요. ★★여러분 우리 자녀도 미래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예배의 자리입니다. 자녀 문제도 하나님께 맡기고, 미래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내 욕심대로 만들려는 게 바로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는 거예요. 교회를 빙자하고 교회를 다닌다고 예배를 다닌다고 하면서 다 이중생활을 하는 거죠. 욕심으로 이렇게 가증한 산당을 교회에서 쌓고 있는 거예요. 이런 많은 악행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무서우세요? 덤덤하세요? 아니면 ‘아니,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하나님이 나한테 진노하실 수 있어?’ 그러시나요? 그래서 더 화가 나시나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기에 소망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내 새끼라고 여기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악을 행해도 ‘남의 자식’이면 진노하실 일이 없잖아요. ‘내 자식’이니까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진노하며 혼을 내시는 것이죠. ★그러므로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에 맞는 사건이 올 때, 우리는 “왜?”가 아니라 무조건 회개해야 돼요! 왜죠?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징계하시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돌아서라고! 악을 쌓는 일을 멈추고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사랑이에요. 그러므로 히스기야 인생 중 최고의 축복은! 병 걸린 것도 아니고 뭐 아들 낳은 것도 아니고 앗수르 18만 5천 명이 쳐들어온 거예요. 그것 때문에 회개했잖아요. 그 입으로 ‘환난과 징벌과 책벌의 날’이라고 본인이 회개했잖아요. 진심으로 회개한 것보다 더 축복은 없어요. 적용 질문Q. 나는 요즘 어떤 제단을 쌓고 있습니까? Q. 돈, 시간, 노력, 관심을 제일 많이 드리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Q. 자녀를 어떤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있습니까? Q. 내일 어떻게 될지 가장 궁금한 건 지금 뭐예요? 그것을 알고자 매달리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여사는 사실 기독교 종주국의 수상이잖아요. 예배를 매주일 드렸겠죠. 정치인으로서 성공했어요. 그리고 영국을 위해서는 히스기야 같은 구원자예요. 포클랜드 전쟁(Falklands War, 1982)을 승리로 이끌었어요. 예를 들면 지금 트럼프가 이란과 전쟁했는데 이겼다 이거지요. 미국에서는 구세주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대처가 그렇게 포클랜드 전쟁에서 이겼어요. 그런데 아주 엄마로서는 아주 불행한 삶을 살았는데 그 딸이 전한 바에 의하면 자기는 이란성 쌍둥이인데 엄마가 아들만 애지중지해가지고 딸과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불편한 관계로 지냈다는 거예요. 반면에 아들은 수상인 엄마의 명성 덕분에 결혼해서 전 세계 곳곳에 저택을 가지고 있을 만큼 부자로 살았는데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엄마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고 해요. 세계 최고의 정치가도 이런 일이 있네요. 여러분 대처는 므낫세일까요, 히스기야일까요? (목사님은 아휴~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이렇게 맨날 하세요? 그냥 들어주는 것만도 고맙지~ 그런 질문을 하지를 마세요!) 그러니까 이 대처는 므낫세일까, 히스기야일까? 근데 사실 히스기야도 그 힘들게 낳은 아들을 얼마나 끼고 돌았겠어요? 히스기야도 죄가 있는 거죠. 끼고 돌 수밖에 없죠. 뭐. 지금 이 나라에 후계자가 없는데. 어떤 또 이제 나눔은 미국 이란 전쟁 여파로 원유 수입이 막혀서 사업에 이제 직격탄을 맞았는데 원자재 가격이 5배 폭등을 해가지고 근데 그마저도 구할 수가 없어 가지고 이제 아주 반강제적으로 일이 중단됐대요. 그래 가지고 기술자 직원들과 답답한 마음에 지금 같이 술을 먹는대요. 한동안 술 끊는 적용을 하며 아내와 함께 목장도 나오고 예배도 참석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시금 옛날로 돌아가 가지고 지금 이제 내가 술을 더 의지하면서 “누가 내 돌문을 굴려주리오.” 한탄만 한 대요. 기도를 하셔야지!!! ★저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보다 부자는 이 땅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거보다 성공한 인생이 이 세상에 없어요.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20년 전에 비하면 다 여러분들이 성공했어요. 이거보다 더 완전한 성공은 없어요. 성경을 우리가 제대로 읽잖아요. 이게 굉장한 일이에요. 자,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래서 가증한 산당을 세우고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아요. 그리고 그렇게 쌓다 보니까 셋째는 3. 더 심한 악으로 꾐을 받습니다. (7a-9절)꾐-꼬임-있잖아요. 꾐을 받아요. 지금까지 본문은 므낫세가 무엇을 했는지 보여줬어요. 산당을 다시 세우고 성전에 악을 쌓았습니다. 7절 후반부부터 분위기가 달라져요. 이제는 므낫세의 죄가 왜 그렇게 심각한지 알려줍니다. 끝에 이제 충격적인 결론을 던집니다. 7절이에요. 7. …… 옛적에 여호와께서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_왕하 21:7하나님께서 성전에 대해 약속하신 말씀을 상기시키죠. “내가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4절에 이어서 다시 강조합니다. 이거는 영원한 약속이에요. 근데 조건을 말씀하시네요. 8절이에요. 8. 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하셨으나_왕하 21:8그러니까 영원한 약속 뒤에 따라붙는 조건은 사실 무서운 거죠. 하나님의 약속은 깨지지 않지만 그 약속을 누리려면 지켜야 될 조건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거는 하나님의 명령과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영원한 약속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받는 구원은 무조건적인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잃어버릴 수는 없어요. 그러나 구원의 평안과 능력을 이 땅에서 온전히 누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말이에요. ★★구원받았지만 구원받지 않은 것처럼 살 수 있다는 거예요.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그러니까 매일 매일 아니 매 순간이 사실 이런 선택의 기로예요. 우리가 말씀 듣고 순종하기를 누가 가장 바라겠어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죠. 그러니 이렇게 조건을 달아서라도! 경고를 해서라도! 혼을 내서라도! 때론 매를 들어서라도! 제발 말 좀 들으라고 외치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본성상 말씀 듣는 게 너무 어려워요. 유다 백성도 안 듣잖아요. 9절입니다. 9.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_왕하 21:9“여러 민족과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그러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이- 세상보다 더하다. 더 심하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기를) 간절히 원하시지만 그러나 이 백성이 어떻게 했어요? 선택된 백성이 어떻게 했어요? ★듣지 않았어요!! 이게 충격이에요. ‘악을 행했고’라고 하신 게 아니에요! ‘우상을 섬겼고’라고 하지도 않으셨어요! “듣지 아니하였고!! 듣지 아니하였고!!”라고 하세요. 여러분 하나님 백성의 신앙 출발점이 어디예요? 신명기 6장 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들으라! 듣고 그대로 행하라!” 이게 하나님 나라 인생의 시작점이에요.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이 백성이 듣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고 오래 기다리셨지만 백성은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 결국 다른 것을 듣게 되죠. ★하나님 말씀을 안 들으면 반드시 세상 말을 듣게 돼 있어요. 뭘 들었어요? 므낫세의 꾐을 들었어요. 온 백성이 므낫세의 꾐을 들었어요. 거기에 넘어갔어요. 므낫세가 설득을 잘해서 넘어갔나요? 물론 그것도 있겠죠. 그러나 그들도 므낫세와 똑같기 때문에 다 넘어간 거예요. 히스기야 때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잖아요. 앗수르 무서운 거 알아가지고. 그래서 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어요. 그런데 히스기야가 태평과 진실의 시대를 열었더니 잘 살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온 국민이 다들 전자동으로 산당으로 꼬이는 므낫세의 꾐에 넘어갔어요. 온 국민이 넘어갔어요. ★유혹받은 자는 유혹한 자를 탓할 수 없어요. 둘 다 욕심의 죄는 똑같아요. 오히려 유혹에 넘어간 사람 욕심이 더 큰 거예요. 그래서 속인 자보다 속은 자가 더 악한 거예요. 타락한 우리와 너희가 만나면 악은 지극히 정상인 것처럼 자리 잡게 돼요.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악은 정말 평범한 거예요. 그것이 악의 무서움이에요. 그래서 악인 줄도 모르고 다 넘어가는 거예요. 우리가 다윗 때도 압살롬이 온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고 했잖아요. 그죠? 다윗을 놔두고도 온 백성이 압살롬에게 넘어갔어요.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게 바로 이 무서움이에요. 산당을 다시 세우는 악이 성전을 더럽히는 악으로 번지고 그것이 다시 온 백성을 물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죠? 하나님이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게 되는 거예요. 지금은 어려서의 그 우리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에요. 가난했던 그때는 예수가 고마웠어요. 학교도 병원도 세워주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곳곳에서 예수 믿는 것을 인정받았어요. 그리고 내가 못 믿어서 그렇지 예수 믿는 거를 핍박받을 날이 올 줄은 상상을 못했어요. 누구 탓이겠어요? 이게 다 우리 삶의 결론인 거예요. 믿는 우리끼리 하나가 안 되고 믿는 우리끼리 서로 자중지란이 계속 일어나니까 아무리 회개해야 된다고 얘기해도 믿는 우리가 더 듣지를 않아요. 지금 70%가 기독교를 불신한다고 그래요. 불교, 천주교, 기독교가 3등 140만 명이 줄었대요. 4명 중에 1명이 교회를 떠났대요. 여러분 어렸을 때 특별히 20살 때까지 교회를 안 나가면 평생에 돌아올 확률이 너무 희박해요. 다음 세대가 다 떠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진짜 정말 팔수록 손해인 그 <새싹 큐티인> 영유아부 교재 사지를 않아요. 애들한테 읽히질 않아요. 그래도 만들어내야 돼요. 만들어내는 데가 없어서. 죽어라고 만들어내야 돼요. 그에게 몸에 배지 않으면은 정말 돌아오기가 어려워요. 다 떠나고 다 떠나고. 특별히 20대 전에 아이들이 다 떠난다잖아요. 아모스 8장에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고 그러잖아요. 우리 주님도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 11:21)”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보다 더 힘든 게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거죠. 영적 교만이 제일 무서워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한지 몰라요. “하나님이 유일신이라~” 이러면서. 우리 교회에서도 말씀이 제일 안 들리는 사람이 우리 사역자들이에요. 뭐가 부족해서 그러겠어요? 아니죠. 오히려 말씀이 익숙해서 그래요. 안다고 생각하니까 더 안 들려요. 이게 문제예요. 여러분 말씀이 들리려면 내가 안 들리는 사람이라는 거를 알아야 돼요. 들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귀가 딱 닫혀요. 이 말 듣고 기분 나쁜 사역자가 있으면 정말 안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들리지 않는다는 낮은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야 해요. “주님, 제 귀 좀 열어주세요. 말씀이 들리게 좀 해주세요.” 그럼 주님이 반드시 들리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듣지 않는 것이 죄의 본질이에요. 아담도 듣지 않아요.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듣지 않았어요. 왕도 듣지 않았고 백성도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 히스기야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갔어요.그런데 이 모든 듣지 않은 가운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달리 다윗의 후손으로 주님의 언약을 지켜가셨어요. 참 사람이자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남유다에는 계셨어요. 오늘 본문에 이렇게 가증하게 악을 행하는 이야기밖에 없잖아요. 오늘 므낫세의 악을 행한 이야기밖에 없어요. 근데 그 가운데 숨어 계시는 분이 계시네요. 9절까지 ‘여호와’가 거의 절마다 여덟 번이나 등장하는 거예요. 2절에 ‘여호와’ 두 번, 4절에 ‘여호와’가 두 번, 5절에 한 번, 6절에 한 번, 7절에 한 번, 9절에 한 번 너무 놀랍지 않나요? 히스기야 때는 해의 그림자가 되어 세 번이나 물러가신 주님은 이 악한 므낫세를 위해서는 더욱 쉬지 않고 절마다 여덟 번이나 숨죽이고 보고 계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셨죠. 그러니까 므낫세가 뭐가 공로가 있어요? 이렇게 악한 놈인데. 근데 결국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지키셔서 므낫세도 이제 하나님의 택자가 되는 거죠. 마태복음에 올라가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행위에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구원은 듣지 않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죽기까지 들으신 주님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죽기까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숨죽이고 보고 듣고 기다려야 돼요. 우리의 방향은 죽기 전까지라도 하나님께 돌이키면 하나님은 그 마지막에 우리의 회개도 들으세요. 방향만 딱 턴(turn)하면! 그래서 우리는 밤낮 찾아가야 돼요.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방향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시면서 우리가 방향만 틀기를 늘 기다리시죠. 우리가 영접할 때 믿겠다고 고개만 까딱해도 회개로 받아주시고 우리의 언어로-고백으로- 다 들어주세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오늘 너는 듣고 있느냐?” 듣고 있다면 자꾸만 세워지는 산당을 무너뜨려야 돼요! 예배의 자리에마저 쌓고 있는 악을 악의 우상을 뽑아내야 돼요! 나 한 사람이 돌이켜 회개할 때 가정과 공동체가 살아나요. 바로 그 회개의 자리에 하나님이 영원히 자기 이름을 두실 줄 믿습니다!적용 질문Q. 나는 누구의 말을 가장 크게 듣고 있습니까? 상처, 사연, 이웃, 친구, 부모, 자식, 배우자입니까? 말씀입니까?Q. 내가 받고 있는 꾐은 무엇입니까? 내가 꾀하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Q. 나는 말씀이 들립니까? 듣고 있습니까? Q. 나의 악함에도 주님이 숨죽이며 보고 계시는 것이 믿어지시나요? (믿어지면 그러시겠어요? ^^; 주님이 얼마나 애통한지 여러분이 와서 닿습니까? )정말 택자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의 모든 택자인 자녀들을 위해서 이렇게 ‘구원받을 거다!’ 기다리고 회개하고. 한 부목자님이 3년째 승진이 되지 않아 회사에 화가 많이 났는데 2025년도 성과에 대한 평가가 ABC 등급 중에 B 등급을 받았다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다는 거예요. ‘아니, 회사에서 나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나가라고 하는 건가!’ 나는 이제 승진 케이스인데 이 최고 등급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회사에서 승진을 시켜준다고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매년 4월 1일 회사에서 승진자 인사 발령을 공고하는데 이제 내 이름이 없다면 나는 바로 사직서를 팀장에게 던져야겠다고 계속 생각하였다. 4월 1일이 되었다.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었다. 그리고 승진에 대한 연봉 인상률이 궁금했는데 B를 받으면 3% 인상과 승진 인상률 3%에서 6% 인상률을 예상했는데 연봉 계약서를 보니까 10%가 인상되어 있었다. 붙회떨감이 되었다. 목장에서 “붙어만 있으라”고 했는데 적용을 했더니 나의 생각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보상과 하나님께서 나의 수준을 아시고 붙여주신 것 같아 회개가 많이 되었다.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큐티하면서 적용해 나가겠다.이렇게 악행을 행했는데도 여호와가 돌보셨네요. 아휴~^^; 여호와가 이렇게 돌보셨네요. 우리가 잘나서 돌보시는 게 아니에요. 목장에 붙어 있었던 것 아시고 하나님은 나의 숨소리조차 들으시고 응답하셨어요. 말씀 맺을게요.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첫째,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운다고 그랬어요. 또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는다고 그랬어요. 더 심한 악으로 꾀임을 받는다고 했어요. ‘나 행한 거 죄뿐이니’ 찬양하고 기도할게요.♬1.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나의 몸과 나의 마음 깨끗하게 하옵소서2.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악한 생각 다 버려도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하리이다3. 어둔 눈을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그보다 더 원하오니 정결한 맘 주옵소서4. 거룩하신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오셔서주님 뜻만 따르도록 나를 가르치옵소서[후렴]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기도 제목 가증한 산당을 세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지 않게 해달라고, 더 심한 악으로 꾐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우리의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고요. 늘 이렇게 방향을 주님께 슈브(Shuv, 돌이키다)하는 이 회개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게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행위로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고 믿기만 하면 주님의 백성이 된다고! 이것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나의 죄를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거예요. ‘왜 저렇게 됐나’ 이해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나라에 하나님이 보시는 위정자를 허락해 달라고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내 죄가 보이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말씀이 안 들리니 늘 내가 옳다고 우깁니다. 합리화합니다. 예배의 자리에까지 악을 쌓고 있습니다. 왜 히스기야의 아들이 이렇게까지 악한 것인지 우리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그 사이에 그 악한 므낫세에게 온 백성이 꾀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여 어찌합니까? 그것도 55년 간이라고 합니다.히스기야 히스기야에게 세 번이나 해 그림자로 물러가신 주님, 므낫세에게는 이 짧은 구절에 그 악행 가운데에서도 ‘여호와’가 절마다 여덟 번이나 보고 계십니다. 주님, 우리도 끝까지 기다리고 회개하고 아무리 타락해도 우리의 회개와 기도로 우리의 모든 식구들이 돌아올 줄 믿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고 언약의 자손이기 때문에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말씀이 안 들리니까 회개도 안 되고 가증한 일을 자랑스럽게 행하고 온 백성이 꾀임을 받습니다.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물러가시고 숨어 계시고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에 목이 메입니다. 주님,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가 므낫세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는 피로 값 주고 사신 나라입니다. 믿는 우리가 본을 못 보였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회개합니다. 이 나라를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주시옵소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회개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살려주시옵소서. ‘듣지 아니하였고’의 말씀을 듣고 신앙고백으로 드린 우리들의 헌금을 흠향해 주시옵시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지 않기로 결단하여 하나님에게는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는 줄 것만 있도록 저희들의 사업과 회사와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특히 건강과 물질과 관계와 목장에 기름을 철철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기도제목A: 예배의 자리로 속히 돌아오도록 B: 영혼구원 위해 큐티하기 C: 신앙생활 유지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 함부로 살 인생이 아닌 것을 깨달아 비전위해 기도 하고 땀흘려 일 할 수 있는 직장허락해 주시도록D: 돈과 회사의 주인이 예수님인 것을 알고 ((천국 백성 자존감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고, 불안하고 조바심 날 때 큐티에서 약속과 비전의 말씀 찾아내도록. E: 불안하고 공허한 마음에 말씀을 채우고 사마리아와 땅끝이 나라는 것을 잊지 않고, 일본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먼저 복음에 인리치 되도록. F: 충주TT에서 나눔 잘하고 올 수 있도록G: 레위인 중 쓸만한 자가 한명도 없고, 교회안에 불신결혼한 자가 113명이라는 것과, 속건제와 통곡의 회개를 하여도 죄에서 구원 하실 분이 예수-한분이라는 것을 깨달아, 보내 주신곳에서 최선을 다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