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9.(주일) 열왕기하 20:7-13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김양재 목사님
모임장소 카페로쥬
모임인원 이진국 목자님 외3명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이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고 생각한 고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라는 왕이 있었어요. 근데 어느 날 유명한 제자 솔론이 궁전에 왔는데요. 왕이 그때 자기 보물고를 다 보여주었어요. 그리곤 물었어요. “이제 아시겠어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그때 솔론이 한마디 했어요. “끝을 보기 전에는 아무도 행복하다 말할 수 없죠.” 그런데 그의 끝은 아주 비참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와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히스기야가 딱 이렇게 해요. 그는 죽을병에서 살아난 왕이에요. 하나님이 눈물을 보시고 살려주신 왕이에요. 그런데 그가 글쎄 보물을 자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제목이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입니다. 보물만 다 보였다는 말이 아니에요. 히스기야 안에 있던 것도 다 드러났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은 사건을 통해 우리의 무슨 실제 상태를 드러내고자 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첫째는
1. 상처가 나아도 징표를 구합니다(7-8절).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_왕하20:7
히스기야는 이제 이사야, 역대하, 열왕기하 모두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어요. 다윗을 지나 여호사밧 이후에 300년 만에 나온 성군이에요. 그래서 구속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인데요. 제가 지난 주에도 얘기를 했지만 조금 보충을 해보면요. 히스기야가 개혁한 내용만도 역대하 29장에서 31장까지 3장이나 나오는데요. 아버지 아하스가 폐쇄했던 유월절, 성전 정화, 범국가적인 속죄제, 레위 반차, 십일조 제도 등의 복원 등으로 예배를 회복시켰어요. 그러니까 이사야도 이사야서 36장부터 39장까지 4장에 걸쳐서 히스기야를 다루고 있어요. 이 대단한 개혁 내용을 열왕기 저자는 짧게 6절로 기록을 했는데 여러분, 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어요. 역대기는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신앙적인 면을 주로 기록했고요. 열왕기는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보다 솔직하게 사실적으로 기록해서 포로기의 유대인들에게 경고와 소망을 가지게 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 보는 거 하고 또 신앙도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는데, ‘신앙의 보수’는 역대기라고 하면 ‘신앙의 진보’는 열왕기라. 세상 신(信)과 불신(不信)도 달라지는데, 그러니까 똑같이 예수를 믿어도 이 구속사를 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거예요. 다른 성경에서는 히스기야를 이렇게 많이 언급해 주는데 여기 열왕기는 아주 냉정하잖아요. 딱 그 개혁한 거를 여섯 절로만. 그냥 산당 제거하고 놋뱀을 부수고 이런 얘기만 하잖아요. 그죠? 이런 것도 우리가 좀 적용을 해볼 수가 있어야 돼요. 내가 뭘 잘한다고 사람들이 교계에서 칭찬해 주는 게 아니다, 아니다. 이 말이에요.
히스기야는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개혁을 했을까요? 악한 아버지 아하스가 자기가 성공하겠다고 글쎄 자식을 불태워 죽이는 몰렉 우상을 섬겼잖아요. 얼마나 무서워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기도하는 어머니 스가랴의 딸 아비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악한 부모라도 그 역할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 악한 아버지 밑에서 아이러니하게 히스기야 같은 최고의 성군이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욕하지 말자 이거예요. 다 역할이 있다고요.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그 악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14년 동안이나 전심으로 개혁을 했는데요. 근데 이제 죽을병에 걸렸잖아요. 히스기야 몸에 생긴 상처는 욥의 온몸에 생겼던 종기, 애굽에 내린 재앙 중 하나인 악성 종기와 같은 건데요. 사람은 고칠 수 없는 문둥병적인 무서운 피부병으로 보는데요. 조선 왕들 중에 종기로 죽은 왕들이 여럿이 있다고 그러잖아요. 그냥 종기는 항생제가 없던 그 당시는 아주 이렇게 무서운 병이었어요. 이처럼 온몸에 수포가 생기는 고통스럽고 냄새나는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이제 죽음의 문 앞에 놓였어요. 이게 진실과 전심의 결과라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통곡했겠어요.
여러분, 우리 인생이 이렇게 상처투성이 아닐까요? 히스기야의 상처는 곧 우리 인생의 단면이에요. 몸에도 마음에도 종기 같은 상처를 안고 삽니다. 이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사야 38장은요, 9절부터 20절까지 히스기야의 기도로 다 채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네 기도를 들었다”고 그랬잖아요. 그냥 그 기도 전문이 이사야에 실려 있는 거예요. 다 읽지는 못하고 좀 읽어보세요. 집에 가서.
13.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_이사야 38:13-14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가 이게 히브리어 ‘하가’ 동사로요, 시편 1편 2절의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에서 그 ‘묵상’에 해당하는 단어가 ‘하가’예요. 그러니까 율법을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수용하고, 깨닫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 이게 ‘묵상’인데요. 이거는 늘 제가 인용하는 그 비둘기같이 약한 자가 구구거리고 읊조릴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이 말씀을 온종일 일생 동안 반복적으로 웅얼거린다는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맨날 강의하는 시편 1편의 그 ‘묵상’의 ‘하가’ 동사를, (묵상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에 특별히 없어요.) 하가! 즉, 하루 종일 반복적으로 웅얼웅얼거리는 것.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그 ‘하가’ 동사를 이 히스기야가 썼다는 게 너무 반가운 거예요. ‘묵상’의 그 ‘하가’ 동사를. 근데 그렇게 비둘기같이 슬퍼하면서 하루 종일 웅얼거리며 진심으로 지금 기도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히스기야 기도도 진심이에요. 근데 그렇게 묵상하면서 기도하니까
18.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_이사야 38:18-19
그러니까 기도한 히스기야의 결론은 ‘사망’, 즉 죽은 자는 주를 찬양하지 못해요. 산 자만 감사한다고 했어요. 구덩이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찬양하겠어요? 그래서 주의 신실을 자녀에게 알게 하고 싶다고 했어요. 부활의 주님을 경험한 자는 “감사합니다”가 저절로 나오지만 경험하지 못하면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한다고 했어요. 이거를 이 대단한 개혁을 했던 히스기야가 이 고통 가운데 이거를 진짜 깨달아야 되는 거예요. 개혁을 너무 열심히 했지만 이걸 깨닫게 하려고 피부병을 준 거죠. 깨닫고 눈물로 기도하니까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거예요. ‘하가’ 웅얼웅얼, 웅얼웅얼. 우리는 기도를 크게 할 수 있는 건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요. 기도도 할 수 없는, 너무 아파서 아니면 핍박받아서. 이걸 하나님이 들으신 거예요. 이 기도를. 그래서 이제 그걸 들으시고 이제 이사야를 통해서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고 했죠. 그 반죽을 상처에 놓으니까 나았어요. 무화과 반죽은 기껏해야 민간요법이었을 거예요. 히스기야가 그런 거 안 해봤겠습니까? 근데 지금 이사야가 시킨 대로 하니까 나았어요. 비결이 어디 있어요? 무화과가 아니죠, 반죽도 아니에요. 이사야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이에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시는 하나님이 “너를 낫게 하리니” 말씀하셨어요. 말씀대로 이루어진 거예요. 지금도 아프리카 등에 가면 그냥 항생제 한 알만 딱 주면 죽을병이 낫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그냥 선교사님이 기도 한 번 딱 해주고 항생제 한 알을 딱 주면 그들은 내성이 없어서 금세 낫는다는 거예요. 어떤 병도 금세 나아가지고 다들 “신이시여” 하고 믿게 된다는 거예요. 근데 무화과 반죽이 꼭 이 항생제 한 알 같지 않아요? 몰라요, 항생제도 하나님이 발견하게 하신 거잖아요. 그죠? 근데 그것도 가져다줄 ‘무리’가 있어야 되고 ‘시킨 대로 먹어야’ 낫는 거예요. ‘무리’가 갖다 줬잖아요. 하여튼 ‘공동체’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사건이 오고 문제가 생기면 먼저 말씀 앞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그런 후에 약도 찾고 사람도 찾고 하는 게 순서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상처를 덮어주시기를 원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상처보다 더 깊은 불신이 이 말씀 앞에서 드러난거예요.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_왕하20:8
히스기야의 상처가 나았잖아요. 이미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히스기야가 뭐라고 묻습니까?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이미 고침을 받았는데 또 징표를 구해요. 이미 은혜를 입었는데 또 확증을 구합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않은 불신(不信)이에요! 기도를 그렇게 해놓고. 상처는 무화과 반죽으로 나을 수 있었지만 이 불신은 낫지 않았어요. ★치명적인 악성 종기보다 더 깊은 병이 바로 이 불신(不信)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막 무시하던 알코올중독 이 상처 많은 아버지는 영접을 하는데 그 똑똑한 엄마는 불신의 더 깊은 병에 걸렸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대조가 하나 있는데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징표로 얻게 된 그 일영표(日影表)1)가 다름 아닌 아하스 왕과 관련된 일영표라는 사실을 이제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이사야 7장을 보면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에게 한 징조를 구하라고 했어요. 근데 아하스는 거절했어요(이사야 7:10-12).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어요!” 얼마나 경건해 보입니까? 근데 사실 그건 불신이에요. 하나님이 구하라 하시는데 “저는 안 구해요” 이거 거절하는 거잖아요. 예, 하나님 말씀하시면 들어야 되는데. 근데 반대로 히스기야는 이미 실체를 받았는데도 징표를 구합니다. 왜죠? ‘실체’는 눈에 잘 안 보이고 ‘징표’는 짠하고 보이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하는데 징표는 눈에 바로 보여요. 그러니까 바라는 거를 실상으로 놓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하면서 가야 되는데 우리는 말씀보다는 보이는 증거를 더 원해요. 구원보다는 당장 해결되는 것을 더 원해요. 이게 바로 징표를 구하고 또 구하는 ‘불신(不信)’이에요.
★아버지는 거절함으로 불신했고 아들은 간구함으로 불신했어요. 모양은 다르지만 뿌리는 같아요. 지금 여기도 ‘앗수르’라는 뿌리가 같아요. 욕하면서 닮는다고 둘 다 앗수르에 생각하는 게 서로 다 너무 친앗수르, 반앗수르 다르잖아요. 달라 보이는데 결국 뿌리는 같아요. 욕하면서 닮는다고 둘 다 양상은 달라도 지금 이제 앗수르가 있어요. 미워하고 너무 좋아해도 이게 다 우상 단지잖아요. 그죠? 주님이 상급이 되지 못하면 우리는 그래서 그대로 부모를 닮아가요. 술 먹는 아버지 욕하면서 힘들어지면 술 먹고, 이혼한 부모 욕하면서 힘들어지면 부모 길을 따라가는 거예요. 불신은 이렇게 다른 얼굴로 반복돼서 오는 거예요. 게다가 히스기야가 구하는 징표는 무엇에 대한 것이죠? ‘내̇가 낫고 내̇가 성전에 올라갈 징표’예요. 하나님은 이미 ‘너와 네 성 예루살렘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하지만 히스기야는 그건 쏙 빼놓고 자기 몸만 생각하는 거예요. 여전히 자기가 주어예요. 우리 기도는 어떻습니까? 내 문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물론 나를 위한 기도가 중요하죠.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관심이 상처가 낫는 데만 머물러 있으면, 내 문제에 매몰되어 있으면 구원이 우선순위가 아닌 거예요. ★영원한 것은 상처가 낫는 기적이 아닙니다. 영혼이 살아나는 구원이 영원한 거예요. 그래서 큐티의 결론은 영혼 구원인 거예요. 우리도 상처가 깊고, 우리나라도 상처가 지금 너무 깊어요. 아픈데 아픈 줄도 모를 만큼 심각하게 병들었어요. 깨진 거울이 너무 처음에는 흉측해 보이지만은 그걸 바꾸지 않고 자꾸 보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 깨진 거울 보고 다 화장하고 나와요. 똑같아요. 이게 무서운 거예요. 제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모든 사회 1)『천문』예전에, 해의 그림자로 시간을 헤아리던 기구 기사마다 이렇게 악플이 심하게 달리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무슨 ‘기레기’부터 아니 왜들 그렇게 욕을 하죠? 리플을 달아도 거친 표현, 육두문자... 이런 건 좀 쓰지 마세요. 진짜 왜 그렇게 아주 이쪽 편은 무조건 욕하고 이쪽 편도 또 똑같이 따라서 하고. 이게 무슨 뭐 욕하기 대회 하는 것 같아요. 간절히 그래서 기도해야 되겠어요.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하겠어요. 눈에 보이는 징표만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구원의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적용질문
Q. 이미 말씀으로 응답받았는데도 또 구하고 있는 징표는 무엇입니까?
Q. 너무도 아픈 상처는 무엇입니까? 그 상처보다 더 깊은 내 불신이 인정되십니까?
Q. 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얼마나 기도합니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첫째는 그러니까 그렇게 상처가 나아도 징표를 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둘째는
2. 징표가 임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9-11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 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왕하20:9a
히스기야가 징표를 찾으니까 이사야는 한 징표가 임할 것이라고 예언을 해요. 히스기야가 구한 것은 자기 병에 대한 징표였어요. 근데 잘 보세요. 9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주실 징표는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한 징표”인 거예요.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한 징표예요. 징표의 초점이 어디 있어요? 말씀̇ ̇이에요. ‘징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에요. 사인이에요. ★그러니 징표가 크면 클수록 공부를 잘해도 돈을 많이 벌어도 내가 명예를 가져도 그 징표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그 징표를 가지고 가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자체가 징표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징표로 인해서 이제 말씀도 안 보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아무리 대단한 징표를 보고 또 봐도 여러분 결국 인생길을 낭비하는 거예요. 병만 보고 몸만 생각하고 낫기만 구하면 인생은 늘 제자리걸음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히스기야는 어떻게 하죠?
9b. ……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_왕하20:9b-10
잘 보세요. 이사야가 두 가지를 제시했어요. “해 그림자가 10도 앞으로 나가게 할까요? 뒤로 물러가게 할까요?” 그러자 히스기야가 뭐라 그래요? “쉬운 걸로 하지 말고 어려운 걸로 10도 뒤로 물러가게 해주세요.” 히스기야는 더 눈에 띄는 징표! 확실한 징표! 짠하고 보여줄 수 있는 기적을 원했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방식보다 내가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해달라는 거예요. 우리도 그래요. “주여, 제 병을 고쳐주세요.” 여기까지는 기도해요. 그런데 “수술 없이요! 약으로요! 아니 약도 없이요! 제발 저절로 치료되게 도와주세요!” 이런 거를 구체적인 기도라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해서 읊어 댑니다. 물론 우리는 사명을 위해서 구체적인 기도도 해야 해요. 그러나 기도의 모양은 남아 있는데 속은 내가 다 정해놓은 것을 하나님이 따라와 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기도만 하는 것을 하나님이 안 속으신다는 거예요. 내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되겠죠. 근데 이제 사명 때문에 그 기도를 하는 건지vs 오직 나만을 위해서 하는 건지. 그러니까 늘 이제 자기가 원하는 걸 위해서 기도하니까 “선지자님이 하나님 뜻대로 해 주셔야죠” 이러지 않고 “더 어려운 기적을 좀 주세요! 쫙 낫는다던가. 뭐 그런 징표로.”그러니까 기도의 모양만 남아 있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도 잘 안 들으니까 다른 사람 말도 경청을 안 해요. 그래서 늘 내 뜻을 내려놓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는 이제 결정적인 장면이 11절에 나와요.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_왕하20:11
지금 여호와께 간구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누구예요? 여러분 성경 안 봐요? 선지자 이사야예요, 이사야. 잠깐 앞으로 돌아가 볼게요. 히스기야가 마지막으로 기도한 게 언제였어요? 지난주 2절, 3절에 낯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했던 그 장면이에요. 그 이후로 히스기야가 한 말은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묻고 “10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본인이 다 지정해요. 예. 본인은 지정하고 간구는 이사야가 합니다. 이 차이가 커요.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는 거예요. ‘지정’은 나를 향하는 거예요.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맡겨요. 그런데 지정하는 사람은 자기가 정해놓고 그대로 되기를 원해요. 무서운 것은 이거예요.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서 자꾸 지정의 자리로 슬금슬금 미끄러질 수 있어요. 히스기야가 바로 그 자리예요. 2절에 ‘기도하던 히스기야’와 10절에 ‘지정하는 히스기야’ 사이가 몇 절 안 돼요. 근데 그 사 이에 서 있는 자리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병이 나았잖아요. 우리도 그래요. “주여”로 시작하지만 내가 뭔가 되면 속은 내가 다 정해놓고 있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여러분, 이 본문에 숨어 있는 결정적인 또 한 가지가 있어요. 9절, 10절, 11절에 등장하는 세 단어가 있는데 ‘물러가다’라는 말이 세 번 나와요. 이 ‘물러가 다라’는 말의 원어는 ‘돌아오다, 돌이키다’ 그리고 ‘회개하다’를 말할 때 쓰는 유명한 단어 ‘슈브’예요. 오늘은 참 유명한 동사- 하가 동사, 슈브 동사- 이런 것들은 너무 유명한 히브리어니까 기억해 두세요.
이 세 절에서 ‘슈브’를 세 번 쓰는데 한 번도 사람에게 쓰지 않아요. 오직 ‘해 그림자’에만 써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해 그림자는 물러가는데, 돌이키는데 사람은 돌이키지 않는다는 거예요. ★해의 그림자를 만드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진짜 물러가시고 돌이키시고 죽기까지 하셨는데… 시간은 뒤로 물러가는데 내 마음은 조금도 물러가지 않아요. 이게 본문이 우리를 침묵으로 고발하는 거예요. 이게 가장 슬픈 대목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시간을 거슬러 해를 뒤로 돌리셨어요. 자연의 법칙을 뒤집으셨어요. 여호수아 때는 멈췄잖아요. 그보다 더한 기적이에요. 그런데 그 엄청난 징표를 받은 히스기야의 마음은 어디로 갔어요? 곧 보겠지만 바벨론으로, 세상 앞으로 갔어요. 하나님을 향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회개하는 것,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러므로 해가 거꾸로 가는 일보다 더 큰 기적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이에요. 그러니 징표를 더 구할 것이 아니라 돌이키는-슈브하는- 은혜를 구해야 되는 거예요.사람이 회개하는 게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그러잖아요. 우리나라가 예수를 진짜 열심히 믿었는데 진짜 요새 안 믿어요. 그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갈렸어요. 하나님이 심판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 은혜를 받은 다음이 더 위험해요. 죽음의 위기에는 하나님만 찾았는데 회복의 자리가 되니까 금세 내가 주도권을 쥐려고 합니다. 해는 10도나 물러가는데, 우리의 마음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아요. 고난 중에는 회개하는 것 같다가 고난이 그치니까 금세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는 너무 어렵지가 않은 거예요. 하지만 소망̇ ̇이 있어요. 오늘 히스기야가 기도하지 않는 그 자리에서 ‘이사야가 대신 기도했다’고 그러잖아요. 우리도 그래요. 나 대신 기도해 주는 사람, 내가 기도 하지 못할 때 내가 지정만 하고 있을 때, 나 대신 하나님께 무릎 꿇어주는 사람. 그게 누구예요? 공동체예요, 목장이에요. 성령께서 교회를 통해서 우리를 안아주시는 거예요.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이거예요. 꼭 붙어 있어야 돼요. 내가 기도의 자리에서 미끄러질 때 나를 붙들어줄 한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회개하지 못하는 나도 회개하는 공동체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끝내 돌이키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천국까지 인도해 가셔야 돼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끝까지 참고 인내하시고, 히스기야를 이렇게 양육해 가시고, 택자니까. 또 참고 인내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사야의 입장에서, 히스기야 입장에서 다 나에게 주시는 소리로 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보면서 “어떻게 히스기야는 저럴 수가 있냐!” 이러시면 아니 되는 거예요. 최고의 성군인 히스기야가 그랬으면 우린 천 배 만 배 더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목장에 가서 딴 사람들을 전부 다 공감을 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Q. 내 삶에 임한 징표 같은 일은 무엇입니까?
Q. 내 마음은 여전히 징표를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돌이켰습니까?
Q. 나는 요즘 ‘기도’의 자리에 있습니까, ‘지정’의 자리에 있습니까?
Q. 내 곁에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이사야 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Q. 내가 이사야 같은 지체가 되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옆에 이사야 같은 지체가 있으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이사야가 되어 줘야 되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정말 한 사람을 돌이키게 한다는 건 너무 힘들고, 내 죄를 볼 때 가능한 것 같아요. “저 사람이 왜 저래?” 이래 가지고 되겠어요? 근본적으로 하나님 저에게 제 죄를 보게 할 수 있는 은혜를 처음부터 주셨지만, 제 죄를 보니까 사역하고 왔지, “내 교회, 목회 잘해야 되겠다” 이딴 생각하면 여기까지 왔겠어요? 제 죄를 보는데 자꾸자꾸 더 보게 하시니까요.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첫째 상처가 나아도 징표를 구합니다.
둘째 징표가 임해도 회개하지 않아요. 셋째는
3. 예물을 받아도 보물을 자랑합니다(12-13절).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게 된 히스기야는 그냥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나라를 크게 번창시키는 거예요. 역대하 32장에 보면 부와 영광이 지극한 거예요. 재산이 심히 많아 풍성하게 되었어요. 이제 이렇게 병도 낫고 재산도 많으니까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_왕하20:12
이렇게 12절이 그냥 지나가는 한 절 같지만요, 이건 열왕기 역사에서 가장 지금 무서운!! 순간의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바벨론이 유다 궁정에 들어오는 첫 순간이에요. 장차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불사르고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갈 그 바벨론이 지금은 군대가 아니라 편지와 예물을 들고 들어와요. 병문안의 얼굴로 들어옵니다. 여러분, 멸망의 문은 꼭 칼 들고 열리는 게 아니에요. 예물로 열릴 때가 있어요. 친절로 열릴 때가 있어요. 히스기야는 지금 이 방문을 영광으로 지금 해석했어요. 예물까지 받았잖아요. “야! 바벨론이 나를 알아봤구나! 나를 높이 봤구나!” 그러니까 친절할 때 다 넘어가잖아요. 큐티를 하면 이거를 그래도 비교적 분별할 수 있어요. ‘무슨 유익이 있어서 나한테 잘하나?’ 이거를 좀 생각해 봐야 되는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건 시험이었어요. 역대하 32장 31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 때 히스기야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시험하셨어요. 그 시험이 뭐예요? 히스기야 자신이 자기 실제 상태를 보게 하시려는 거예요. 그래서 사건이 올 때 말씀으로 잘 해석해야 되고, 나는 너무 모르니까 큐티하고 목장에 가서 물어봐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어떻게 다 알겠어요? 친절하게 오는 사람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분별해요? 결혼할 때도 어떻게 분별해요? 친절하게 하며 속이면 누가 분별해요? 그래서 큐티를 갖고 공동체에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물어봤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책임지세요. 왜냐하면 “너와 네 성을 보호하리라” 그랬잖아요. 겸손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물어봐요. 그럼, 히스기야는 어떤 상태인가요?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_왕하20:13
이 한 절 아래 ‘모든’이 원어까지 세 번이 나오는 거예요. ‘모든 것을 다’, ‘모든 것 중에서’,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한 가지도 남기지 않고 다 보였다는 거예요. 외교 사절에게 보물고를 조금 보여줄 순 있어요. 그런데 군기고까지 보여주고, 창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나라 안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줍니다. 왜죠? 지금 그 나라의 모든 것이 ‘자기̇ ̇ 보물고’라고 시작하잖아요. ‘자기 보물고’래요. 이게 지금 이 궁전과 나라의 모든 것이 자기 거래요. ‘자기 보물고’라고 시작해서 ‘그의 군기고, 그의 창고, 그의 나라’. 겨우 한 절 안에 반복해서 쓰인 소유격 표현을 보면 맞아요.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다 내 거! 내 거! 내 거! 군기고도 내 거! 보물도 내 거!” 자기가 개혁 잘 해서 부자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귀한 것들을 다 보여주었는데, 이렇게 지금 병 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게 다 보여줬는데 한 가지 빠진 게 있어요. 보여준 귀한 거 다 보여줬는데 한 가지 빠진 게 뭐죠? 하나님이 빠졌잖아요. 바벨론의 사자들을 만났다면 가장 먼저 “내가 가진 이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내가 15년 더 살게 됐다”라고 하나님 자랑해야 되잖아요. 이건 외교가 아니에요. 과시예요. 자랑이에요.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했다고 해요(이사야 39:2). 바벨론 왕이 보낸 예물을 받았잖아요. 여러분, 이게 중요해요. 히스기야는 산당을 부순 왕이에요. 아세라를 찍어낸 왕이에요. 놋 뱀까지 깨뜨린 왕이에요. 그런데 그 왕이 지금 무엇 앞에서 기뻐해요?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는 것 앞에서, 세상이 주는 예물 앞에서 기뻐해요. 다른 우상은 다 깨뜨렸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못 깨뜨린 거예요.★산당보다 더 뿌리 깊은 우상이 뭐예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에요.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에요. 내가 이만큼 됐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목회를 야망으로 하면 커졌으면 다 대접받고 싶지 않겠어요? “내가 이렇게 이루었다!” 우리도 그렇지 않아요? 회개도 했어요. 끊은 죄도 있어요. 안 가고, 안 보고, 안 마시고, 안 하고. 그리고 맨날 내가 얼마나 거룩한가! 이런 거 이제 적용하겠죠, 그죠? 근데 정작 못 깨뜨리는 게 뭐예요? 자기 자신이에요. 누가 나를 알아주면 기분이 좋고, 무시하면 며칠이 힘들고. 내 자식, 내 집, 내 직장, 내 학벌. 게다가 더 나아가서 내 경건, 내 이력서를 그냥 막 보여주고 싶어 해요. 한 장로님이 본인이 자랑한 건 아니고요, 윽박질러서 좀 알아냈는데요. 딸이 대학은 존스 홉킨스를 가고 건축사 시험도 붙었는데 이번에는 하버드대학 대학원을 전액 장학생으로 간다네요. 세상은 이걸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어요? 근데 자랑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해드리는 거예요. 사실 이런 것이 얼마나 무서운 우상인지 몰라요.
히스기야가 14년 동안 개혁하며 참 ‘슈브’했죠. 회개하고 돌이키느라고 14년 동안 너무 어려웠는데, 세상으로 돌아오는 거는 그냥 순식간에 돌아와 버렸어요. ‘내가 되었다’ 함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히스기야가 보여준 걸 보세요. 금, 은, 향품, 보배로운 기름, 군기고. 돈과 영광과 힘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끝까지 쫓아가 보면 뭐가 있어요? 끝에는 돈̇이 있어요. 유다 최고의 성군의 끝에도 ‘보물고’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끝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가장 아픈 대조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5절에서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내가 네 눈물을 보았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히스기야의 눈물이었어요. 그의 약함이었어요. 그의 부서진 자리였어요.
근데 13절에서 히스기야가 바벨론에게 보인 것은 뭐예요? ‘보물’이에요. 자기의 강함이에요. 자기가 가진 것이에요. 그걸 다 보여주었어요. 그러니까 이거예요. ★하나님이 보신 것은 내 눈물인데 내가 세상에 보이고 싶은 것은 내 보물이에요. 주님은 내 약한 것을 보시는데 나는 내 강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해요. 주님은 내 부서진 자리를 보시는데 늘 나는 내 잘남을 보이고 싶어 해요. 이게 오늘 본문에 가장 아픈 자리예요. 그래서 마지막에 뭐라고 합니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여러분, 이게 히스기야의 결론이에요.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보여줬어요. 감춰야 할 것까지 다 보여줬어요. 그리고 그렇게 보여준 그것이 나중에는 그대로 빼앗깁니다. 여러분, 보여준 만큼 빼앗깁니다. 자랑한 만큼 잃습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그래서 죄를 오픈해야 사는 거예요. 자랑하지 말고. 이게 다 전부 구속사인 거예요. 근데 세상 앞에서 자랑하면 그 자랑이 심판이 되는 거예요. 자식 자랑하다가 자식 때문에 울고, 돈 자랑하다 돈 때문에 무너지고, 건강 자랑하다 병 때문에 쓰러져요. ★세상 앞에 꺼내 자랑한 그것이 결국 내 눈물이 되는 거예요. 여기서 끝나면 소망이 없겠죠. ★히스기야는 세상 앞에서 자기 보물을 드러냈어요. 근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앞에서 자기 영광을 감추시고 십자가의 수치를 드러내셨어요. 히스기야와 정반대예요. 히스기야는 자기 강함을 보였고 주님은 자기의 약함을 보이셨어요. 그런데 바로 그 약함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사건 앞에서 우리 불신과 회개하지 않음과 보물과 사랑이 다 드러날지라도 우리를 살리는 것은 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비우심이에요. ★나의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가 살리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기 때문에. 그러니 ★내 소망은 내 눈물도 내 경건도 내 보물도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뿐인 걸 믿습니다. 이렇게 그러므로 우리들교회를 우리가 왜 그렇게 모든 걸 얘기하냐?, 이거 너무 성경적인 거예요. 성경을 이렇게 자세히 안 보기 때문에. “네 눈물을 보았노라, 기도를 들었노라” 이거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죠? 히스기야가 이러니까 이제 얼마나 18장부터 나라를 말아먹는지 우리는 미리 읽었어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13:12)” 했는데, ★하가하고 슈브하면-묵상하고 돌이키면- 풍족하게 되는데 묵상도 안 하고 회개도 안 하면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거예요. 히스기야를 보면서 믿음은 또 단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위로도 되지만 경고도 받아야 되겠죠.
Q. 나를 기쁘게 하는 예물은 무엇입니까?
Q. 내 보물고에 쌓아 두고 세상 앞에 자랑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Q. 반대로 공동체 앞에서 감추고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회개하겠습니까?
여러분, 주님은 십자가에 팬티 하나 없이 못 박히시며 수치를 당하셨어요. 누구 때문에요? 나 때문에요. 모두가 희롱하고 욕하고 지나가는 자까지 고개를 흔들고 같이 못 박힌 강도까지 조롱할 때 그 강도의 얼굴이 보고 싶겠어요? 주님은 물과 피를 쏟으셨는데 그것은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서 심장이 파열되신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악해도 주님은 내 얼굴이 보고 싶으신 거예요. 우리도 남편의 사랑에, 자녀의 사랑에, 부인의 사랑에,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서 심장이 터지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그 심장이 터지려고 해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죽을 때, 내 옆의 식구들이 구원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큐티를 하면 글쎄 아침에 그 남편이 보고 싶었대요. 내가 주님과의 교제가 너무 황홀하니까. 그죠? 주님하고 그 말씀을 알아듣게 되는 것이. 그러니까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가 맞죠. ★해 그림자인 주님이 물러가신 것처럼 이 집사님도 돌이켜 회개하니까 쫓아낸 그 남편의 구원 때문에 보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이것이 사건 앞에서 세상이 감당 못 하는 믿음의 실체로 나타난 것이에요. 다 구원에는 역할이 다르다고 했어요. 이런 남편도 있고, 서두에 이야기한 우리들교회 목자인 남편도 있어요. 이건 비교 대상이 아니에요. 세상 자랑하지 말라고 붙여주신 내 몫에 태인 가장 아름다운 십자가인 거예요. 말씀 맺을게요.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는 상처가 나아도 징표를 구한다고 그랬어요. 징표가 임해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예물을 받아도 보물을 자랑한다고 했어요. 우리의 행실을 기억하시는 게 아니고, 기억 마셔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우리 행실을 주님 앞에 내놓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지난 주일에 “나의 모든 행실을 주여 기억 마시고” 그랬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도 큐티하고 목장 한 것은 좀 기억하셔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지난주 찬양을 다시 한번 불러보며 기억 마셔야 될 것도 있고, 기억하셔야 될 것도 있고 찬양할게요.
목장나눔
가.
1. 건강. 형식적으로 건강하게 해달라 기도 하는데 큰 병은 없었음.
2. 직장 고난에 대해 기도 하고 있는데, 감정적으로 사람을 대하게 될 때 되돌아 보면, 간절히 직장을 구하는 기도 했을때와 다른 내 모습을 보게 됨. - 지금 상황을 훈련 받는 상황으로 생각하길.
ㅇ 아픈 상처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음. 내 불신을 인정해야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가 않음
ㅇ 나라를 위해 기도를 잘 안하고 있는 것 같음.
나.
ㅇ 응답 받은데 대해 또 구하고 있는 징표는 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고, 아픈 상처를 굳이 생각해 보자면 권고 사직인데, 그 또한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픈 상처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말을 가려서 해야겠다는 생각.
ㅇ 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생각이 들면 하기도 함
다.
ㅇ 직장에서 어린 상사들 중 마지막 상사가 상처를 많이 줘서 해석이 안될 때가 있었음. 사명이 영혼구원이니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고, 그때는 이기적인 마음과 교만 때문에 자리를 지키지 못했니 하는 생각도 있으나 현재 있는 자리에서 사명을 다 할 것임.
ㅇ 수요 예배 때 기도를 많이 하게 됨. 예배 회복을 해야 겠다는 마음이 많이 들어서 회복하며 더 기도 할 것. 예배 회복과 함께 공동체와 나리를 위해 기도 할 것임.
라.
ㅇ 말씀을 통해 죄사함을 위해 기도하면 깨끗케 해 주신다고 했고, 분명 응답해 주셨을텐데도 두렵고 믿음이 없어 회개 기도를 하게됨.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연약함 때문에 기도 하게 됨.
ㅇ 현재는 가족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예배 자리도 떠난 상태라 그것이 마음이 아프고, 말씀이 없는 결과로 인생을 살고 있는 가족들을 보는 것이 고통임. 그렇지만 이 모든 상황이 나의 믿음 없음으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회개하고 기도해야 함.
ㅇ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요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져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됨, 나라를 위해 기도하다보니, 교회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교회를 위해서도 같이 기도를 하게 되었음.
ㅇ 내게 지금 일하는 직장을 주신 자체가 징표임. 내 상황이나 스펙을 고려해 볼 때 들어가지 못할 직장에 붙여주시고, 지금까지 일하게 해주신 것이 징표임.
ㅇ 징표를 이미 주셨음에도 더 많은 것을 보여 달라고, 더 많이 주시기를 구하고 있음.
ㅇ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기도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함. 큐티하면서 기도하고 있음.
ㅇ 주변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많은 지체들이 있다고 생각함. 나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특히 예배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과, 믿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것.
ㅇ 하나님 앞으로 돌이켜야 하는데 눈으로 보고 확인하려 하고 내 의로 하려는 게 많았음. 기도의 자리 보다 형식적으로 할 때가 많음.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기도 하면 될 것.
ㅇ 목장, 사랑부. 부모님께서 기도해 주심
ㅇ 반대로 기도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듦. 직장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해드려야 함.
ㅇ 아픈 데가 빨리 회복되어 지는 징표를 보여주심. 요즘은 아버지 일 도와드리는 것도 재미있고 쉬면서 잘 지내고 있음
ㅇ 어머니께서 빨리 회복되어 일어나시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 한가지 기도만 하지 말고, 직장과 가족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징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됨.
ㅇ 목장식구들 지체들이 기도를 많이해 줌
ㅇ 나도 목장식구들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할 것.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 필요
ㅇ 직장에 대한 일, 먹고사는 문제가 내게 징표임. 노력하지 않고 나태한 삶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심을 알고 있음. 현재 정규직이 아니라서 정규직으로 가기 위해 알아볼 것. 신결혼을 위해 여러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기도 밖에 답이 없음. 요즘 더 징표 같은 일을 많이 보여 주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며, 스스로 징표를 잘 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듦.
ㅇ 기도의 자리에 있음. 여러 가지를 놓고 기도 하나, 내 위주의 기도 보다 사명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할 것
ㅇ 목장뿐 아니라 중보기도 학교, 유아부, 가족들 등 지체들이 기도를 많이 해주고 있음
ㅇ 우리 목장식구들과 중보기도 조원들, 나라와 교회 가족들을 위해 이사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함. 기도가 많이 필요함
ㅇ 나를 기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 요즘은 일 끝나고 혼자 있는 시간과 휴식 하는 것이 나를 가장 기쁘게 해주는 것 같음. 쉴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냥 흘려 보내고 낭비하는 시간들도 많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기도할 것.
ㅇ 보물고에 쌓아 두고 자랑할 것은 없는 것 같음.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ㅇ 공동체 앞에 내놓지 못하고 감추는 많은 죄들이 있음. 하지만 하나님 앞에는 회개 기도를 하고 있으며, 기회가 될 때 드러낼 수 있을 것.
ㅇ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드리고 있어서 만족이 됨
ㅇ 자랑하고 싶은 것은 없음
ㅇ 아직 공동체 앞에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가족사이며, 내 죄에 대해 오픈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음. -마음을 주실 때 해야 함
ㅇ 하나님 앞에 회개 하고 있음. 우리들교회에 오게 된 이야기를 하면서 죄패를 나누기도 함.
ㅇ 일 끝나고 쉴 때가 가장 좋음
ㅇ 쌓아둔 것이 없음. 짝이 있다면, 자랑하고 싶음
ㅇ 공동체에 나누고 있음. 회개는 잘 안하고 있는 것 같음
ㅇ 안주하는 삶이 내게 기쁨이 됨. 지금 시기가 내게 중요한 때인데, 안주하고 나태해서 힘들어졌다는 것을 느낌.
ㅇ 신결혼을 해야하는데, 쌓아둔 것이 없음, 경제적 독립을 일찍 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안타까움. 스킬업이 필요함
ㅇ 좋은 기회들을 많이 보여주시는 것 같고, 우연은 없다는 생각이 듦
ㅇ 아빠가 아프신데, 조금이라도 회복이 되면 과하게 일을 하심. 그때 답답한 마음에 흉을 보게 됨.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반복, 지속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회개 해야 함.
목장 중보기도입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
1.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도록
2. 가족들의 구원과 건강, 예배 회복. 언니가 강박에서 벗어나고 자유케 될 수 있도록
3. 회사 일들이 순전히 진행되고 일욕심부리지 말기
4. 말씀이 잘 깨달아지고 잘 해석될 수 있도록
5. 매인 데서 풀려나고 자유케 되는 은혜 주시길
6. 신교제 신결혼에 대한 소망이 생기길
나
1. 가족들을 만나 함께 식사하며 마음이 편안한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버이날에도 가족들을 잘 만나고 올 수 있게 해 주세요
2. 엄마의 고혈압, 관절염 꾸준히 약으로 잘 다스려져서 지금 건강 유지하게 도와주세요
3. 오빠가 조경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꿰매었다고 합니다
2주 후 잘 아물어져서 다시 일상 생활 하는데 손가락이 편하도록 해주세요
4. 엄마와 제가 교회 갈 때 오빠도 함께 가도록 전도하게 해 주세요
5. 신교제, 신결혼하여 평생 주님 뜻을 알고 따르는 가정을 만들게 해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영육도 허락해 주세요
특히 장이 예민하지 않고 소화가 잘 되게 도와주세요
6. 제가 갖고 있는 아파트 잘 이용해서 저의 노후에 크게 활용이 되도록 해주세요
다
1. 성숙하고 실력있는 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길
2.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신교제 누리도록
3. 기도로 책 집필 할 수 있도록
4. 사업과 아이디어와 학교 강의 위에 기름부어 주시길
5. 아버지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 되시도록
6. 간호하는 어머니 힘 주시고 지치지 않으시고 목과 허리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하시도록
7. 부모님 잘 주무실 수 있도록
라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3.제 동생 가족구원을 위해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4.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5.요즘 양쪽 어깨와 허리가 좀 않좋은데 건강 지켜 달라고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6.직장 고난으로 몸과 마음이 좀 힘든데 잘 이겨낼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