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 열욍기하 20:7-13 / 김양재 목사님
히스기야 안에 있던 것도 다 드러난다. 사건을 통해 실제 상태를 다 드러나게 하신다.
1. 상처가 나아도 징표를 구합니다.
아버지가 폐쇄했던 것들을 예배 회복 시킨다.
이사야서도 36-39장부터 4장에 걸쳐서 다룬다. 하지만 열왕기에서는 히스기야를 짧게 6줄만 다룬다.
열왕기는 인간의 약함과 악함 보다는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히스기야도 선한 게 없다고 한다.
히스기야 아버지는 몰렉 우상을 태워죽이는 무서운 아버지 였지만 그런 아버지 밑에서 기도하는 믿음의 어머니가 있었다.
14년을 전심으로 개혁을 했는데 악성종기인데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문둥병과 같은 병이 났다.
온몸에 수포가 생기는 고통스럽고 냄새나는 상처투성이가 되는 죽음이 눈 앞에 놓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상처투성이 아닐까, 히스기야의 상처는 곧 우리 인생의 단면이다.
몸에도 마음에도 종기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 이럴 때 슬피 울고 진심으로 묵상하고 기도하게 된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산 자는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가 나온다.
부활의 주를 경험한 자는 감사한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무화과 반죽을 바르니 나았다 -> 하나님 말씀이 중심, 무화과 반죽도 전해줄 무리(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이 상처를 덮어주시길.
상처보다 깊은 불신이 말씀 앞에서 드러난다 8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이미 고침을 받고 은혜를 받았지만 확증을 바란다. 악성 종기보다 불신이 더 깊은 병임
히스기야 아버지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라고 했더니 거절함 -> 또한 불신함
히스기야는 징표를 달라고 함 -> 이것도 불신이다.
바로 눈에 보이는 증거를 더 원한다, 구원보다 당장 해결을 원한다.
모양은 다르지만 뿌리는 같은 마음. 아버지는 거절함으로, 아들은 간구함으로 불신했다.
내가 낫고 성전에 올라갈 징표를 바라고 있는 히스기야 -> 내가 주어고, 내 문제만 생각하는 모습
내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상처가 낫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 영원히 구원받는 것
상처가 너무 깊고, 아픈데도 아픈 줄 모른다.
간절히 기도하고 회개해야 한다. 한 사람의 기도가 소돔 고모라를 살린다고 했는데 한 사람이 없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고 내가 회개가 없어서 그렇다, 눈에 보이는 징표만 구하지말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드림 너와 내 성을 보호해주리라 ->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밖에 없다 , 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미 말씀으로 응답받았는데 도 또 구하고 있는 징표는 무엇입니까?
너무도 아픈 상처는 무엇입니까
?그 상처보다 더 깊은 내 불신이 인정되십니까? 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얼마나 기도합니까?
2. 징표가 임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9 히스기야가 구하는 것은 병에 대한 징표이다. 하나님이 주실 징표는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한 징표이다.
초점이 다르다. 아무리 큰 징표를 보고 또 봐도 인생이 제자리 걸음인 것이다. 분별을 못하고 헤매인다.
바쁘다고 말씀 보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면 인생 길을 낭비하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더 확실한 징표 기적을 요구했다. 내가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구했다.
-> 우리의 모습이다, 구체적인 기도라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을 바란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기도의 모양은 있지만 방법은 내 방법을 구하는 나의 뜻이 깔려 있는 기도이다.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했던 그 장면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간구는 하나님을 향한 것, 지정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
우리는 히스기야처럼 기도의 자리에서 지정의 자리로 갈 수 밖에 없다.
2 기도하는 히스기야와 10 지정하는 히스기야 완전히 달라져 있다. (병이 나았기 때문에)
기도하지만 속은 내가 다 정하고 있다, 징표를 구한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을성있게 인도해주신다.
9 10 11 해 그림자가 물러가다가 3번 나옴 - 물러가다 = 돌이키다, 회개하다/
해 그림자는 돌이키는데(하나님이 만드심) 사람은 돌이키지 않음, 내 마음은 물러나지 않는다.
고난중에는 회개하는 거 같다가 고난 끝나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징표가 목적이 되서 세상으로 돌아간다. 나 대신 이사야처럼 하나님께 기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공동체이다.
@내 삶에 임한 징표 같은 일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은 여전히 징표를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돌이켰습니까?
나는 요즘 기도의 자리에 있습니까, 지정의 자리에 있습니까?
내 곁에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이사야 같은 지체가 있습니까? 내가 이사야 같은 지체가 되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예물을 받아도 보물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게 된 히스기야는 나라를 번창시켜서 부와 영광이 지극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많이 주셨다고 한다.
재산도 심히 많이 주시고 병도 나았다. -> 14년 개혁에 대한 상을 많이 주셨다.
12 열왕기 역사에서 중요한 구절, 멸망의 문은 예물로 열릴 때가 더 많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심중에 있는 것을 아시고 시험하셨다, 말씀으로 잘 해석해야 한다.
가치관이 변하는 건 말씀을 한 절 한 절 봐야 한다.
13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모든이라는 단어가 원어로 한 절에 3번 나온다.
보물고 군기고 창고 소유격 표현이 많음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개혁자라고 생각하는 것
내 소유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15년 더 살게 되었다고 하나님 자랑을 해야하는데 자기 자랑을 한다.
사자들을 만났을 때를 자랑하지 않고 본인 보물 등만 과시함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 앞에서 기뻐한다,
다른 우상은 다 깨뜨렸는데 본인 인정받고 싶은 마음, 대접받고 싶은 마음은 깨지지 않는다.
14년 개혁하고 회개하고 끊은 죄도 많다. 정작 하나님의 시험에 걸려들어서 못꺠뜨리는 것이 자기 자신이다.
누가 나를 알아주면 기분 좋고, 무시하면 힘들고, 내 자랑, 내 경건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인생은 지옥 뿌리에서 올라온 자기애(에고이스트)이다.
이타적으로 생각하는 건 인간이 못함,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잘 돌아간다.
모든 끝까지 쫒으면 돈이 있다. 유다 최고 성군의 끝에도 돈이 있었다.우리 끝이라고 다를까?
5 네 눈물을 보았노라와 대조되는 13 자기 강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내 약함인데 내가 세상에 보여주는 것은 강한 것, 잘난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13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가 히스기야의 결론, 그 보여준 것을 다 빼앗겼다.
그런데 공동체 안에서는 죄를 오픈하면 살아난다.
자랑하다가 그것 때문에 울게 됨, 세상 앞에 꺼내 자랑한 그것이 내 눈물이 된다.
예수님은 세상 앞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수치를 드러내셨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겸손함이다. 내 소망은 내 눈물 경건 보물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 뿐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예물은 무엇입니까?
내 보물고에 쌓아 두고 세상 앞에 자랑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반대로 공동체 앞에서 감추고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회개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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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임 목사님 사역 집회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신결혼에 대해서 조급하지 않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길
바빠질 것 같은 사역에 대해 담대함을 주시길
ⓑ
아빠의 구원을 위한 기도
외삼촌 수술을 통해 가정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
체력적으로 부족함을 인정하며 운동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길
ⓒ
큐티 꾸준하고 깊게 할 수 있도록
기도 시간을 정해두고 (밤에 씻고 큐티하고 나서 10분) 기도할 수 있도록
신교제를 위하여
삼촌 간암 4기로 판정되어 수술 못하는데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이직을 두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마음을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