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2.(주일) 열왕기하 20:1-6 「네 눈물을 보았노라」 김양재 목사님
모임장소 카페 로쥬
모임인원 이진국목자님 외2명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한 목자님이 “제 소원이 뭐였냐면 내가 결혼해서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게 꿈이었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 쉬운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고 이 목자님이 결혼하고 6개월 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거죠. 그러니까 “저의 소원에서 제 욕심이 들어간 게 뭐가 있냐!!”고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셨다고 해요.
오늘 본문에 히스기야도 그랬을 거예요. 누구도 못한 개혁을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형통을 누리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임했어요. 이런 상황을 만나면 “내가 왜!”가 먼저 나오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 982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죽음은 늘 남의 일 같고 먼 일 같지만 매일 우리 곁을 지나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죽음이 내 이름 앞에 올 것처럼은 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머니도 즉시 가시고 남편도 하루 만에 가는 죽음을 경험하다 보니까 죽음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남의 일 같지 않은 이것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큰 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다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죽음은 남의 일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남의 일이 왜 나에게.’가 먼저 나오죠? 히스기야가 욕심으로 한 개혁이 아닌데요. 히스기야도 통곡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눈물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눈물의 종류가 어떻든 모든 성도가 흘리는 눈물을 보십니다.
왜 우리의 눈물을 봐주실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띵크해 보겠습니다.
“네 눈물을 보았노라!” 첫째,
1. 최선을 다해도 죽음 앞에서는 통곡합니다(1-3절).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_왕하20:1
오늘 20장은 연대순으로 쓴 게 아니에요. 작년 6월에 19장 마지막까지 설교했는데요. 마지막에 앗수르와의 싸움에서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몰살을 당하잖아요. 그들이 도망갔어요. 그리고 예루살렘이 구원이 됐습니다. 열왕기 기자가 바벨론 포로로 가 있는 1차 독자인 유다 백성에게 이걸 쓴 거예요. 그러니까 유다가 왜 구원됐는지 재해석을 해주고 경고와 소망을 가지라고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특별히 20장에 쓰여졌어요. 그러므로 “그 때에”는 18장 13절에 히스기야 왕 제 14년을 말하고요. 히스기야는 25세에 등극해서 14년 된 때이기 때문에 39살이 되었을 때예요. 주전 701년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때 발병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음 주에 보겠지만 13절에 아직 왕궁의 창고에 많은 보물이 쌓여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 1차 침공과 발병이 동시에 일어났는데, 아주 이렇게 간발의 차이로 침공 전에 발병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엄청난 개혁을 마친 직후 인생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때였어요. 그러니까 히스기야는 최선을 다해 개혁을 하고,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손대지 못한 놋뱀을 부숴버렸고 산당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개혁을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유다 여러 왕 중 하나님을 가장 많이 의지한 사람이라고 열왕기하 18장 5절에도 나오죠. 그런데 바로 그때! 이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 거예요. 칭찬을 해줘도 부족할 판에 이사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죽는다”, “살지 못한다”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거예요. 아주 강조가 아니라 ‘확정’이에요. 그러니 “집을 정리하라!” 합니다. 유언을 남기고 죽을 준비를 하라는 거예요. 한마디로 “너 죽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을 잘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 있잖아요. 여호와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선지자가 전하면 “네, 알겠습니다” 해야 하는 게 맞잖아요? 우리가 큐티를 하면 늘 이렇게 띵크해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 이때 죽었으면 히스기야는 성군 중의 성군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니 어떤 말씀도 기쁘게 들어야 하고, 또 (듣기 힘든 말씀도) 말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해야 합니다.
★항상 말씀에 순종하면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해석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너는 죽으니까 빨리 정리해라” 이런 메시지를 말해준다면 순종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요. “내가 왜! 내가 왜 죽어!” 하지 않은 사람을 저와 가까운 사람 가운데 한 사람 보기는 했어요. 제 남편을 봤지요. 진짜 단 한마디를 안 했어요. 그냥 하라는 대로 유언하고 정리하고 갔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적 같기는 합니다. 그 일이 큰일이기는 했는지 이렇게 쓰임을 받고 있어요.그러나 죽음이 가장 무서운 원수인데 이렇게 이유도 알 수 없는 사망 선고를 받는다면 얼마나 괴롭고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죽음은 늘 부지불식간에 이렇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고난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최선을 다한 이력서도 죽음 같은 사건 앞에서는 한 줄도 힘을 쓰지 못해요. 히스기야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형통을 누리던 바로 그 시기에 들은 사망 선고라 순종이 힘들었을 거예요. 이유가 뭔지도 몰라요. 차라리 “네가 범죄했기 때문에”라는 설명이라도 있으면 좀 나았을 텐데요. 인생에는 이유와 설명이 다 붙지 않아요. 갑자기 이별 통보하고, 해임 통보하고, 진단 선고를 듣는 것도 괴로운데... 이유를 알지 못하니까 더 고통스러워요. 그래서 우리의 주제가는 “이유라도 알자” 전부 그러잖아요. “이유라도 알자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늘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해석이 안 되니까 늘 해결이 안 되는 일이 많이 있는데, (1부에 제가 잘못 보고를 받고 전해드렸는데) 하여튼 우리들교회에 마약하고 적용했던 여자 청년이 있어요. 그래서 죽어라고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면서 미혼모로 마약을 하면서 아이를 둘이나 낳았는데, 이제 셋째를 또 임신했다고 들었는데 그 아이를 낳기로 해서 너무 이쁘다고 그랬는데 1부 끝나고 보니까 걔를 낙태를 했다네요. (그래서 지금 이 얘기를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도 이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이 아이가 예뻐요. 말씀도 사모해요. 교회도 좋아해요. 그런데 마약에 한번 중독되니까 정말 약이 없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여기 있네요. 정말 아이들을 얼마나 잘 키워야 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기저에, 가장 기저에 어머니가 이혼하신 것이 있죠. 그러니까 (어머니는 이혼하고) ‘이 이쁜 딸하고 잘 살리라’ 그러셨겠죠. 그죠? 그런데 이럴 줄은 상상도 못한 거죠. 집에는 아빠가 있어야 해요. 이럴 때 아빠라도 있었으면 힘이 될 텐데요. 몇 달 전에 설교하셨던 우리 이 권사님도 그 아들이 한밤중에 아파트 유리창을 부술 때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어도 이혼을 안 하고 있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전화할 데가 남편밖에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게 아니라서 여전한 방식으로 이 아들 부부가 지지난주 유아 세례 받을 때도 싸워서 도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그래요. 그래도 그 아버지가 25년을 두 집 살림을 해도 이혼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아들들이 아빠를 무서워하고 경계가 있는 거예요, 이 집에. 경계가 있어요. 아빠 무서운 줄을 다 알아요. 그래서 결국은 지금 그 남편도 교회 나오잖아요. 하여튼 집에는 아빠 엄마가 있어야 해요. 정말 어떤 경우라도 아무리 무능해도 아무리 나쁜 아빠라도 그 역할이 있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 집이 너무 많아요. 훈련이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들교회는 하여튼 아이 낳기로 하는 자녀들도 기적이지만 부모들이 적용해 주니까 낳는 거잖아요. 이건 정말 부모들이 너무 훌륭한 거예요. 구속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홀 할머니로 두 손주를 키우시느라고 기가 막힌데, 별 인생이 없는데요. 그래도 해석이 되니까 교회를 사모하시고 또 여기 와서 처방받고 또 (마약) 신고도 하시고 다 공동체에서 “반드시 신고하셔야 된다고” 하니까 이걸 혼자 어떻게 (직접 신고)하시겠어요. 그렇죠? 그래서 얼마나 상급이 크시겠어요. 하여튼 이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려요. 우리는 처음에는 남편이 힘들게 하니까, 술 먹고 난리 치고 바람 피우고 별일이 많죠. 또 여자도 또 반대 급부로 그렇게 있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다 엄마 보고 ‘이혼하라’고 하면서 엄마 편을 드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이혼하고 나면 마음대로 살기가 너무너무 쉬운 거예요. 그다음에 말 안 들어요. 앞에 자매는 엄마가 일나가면 집에 아무도 없는 데다가 예쁘니까 가출을 일삼다가 마약까지 빠지게 됐어요. 마약은요,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고 그러잖아요. 마약을 한 번 했다가 이렇게 됐어요. 한 번 했다가. 그 마약이 너무 안 끊어지니까 자기도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너무 자기도 안 좋은 생각을 한다고 해서 제가 “아이들에게는 마약하는 엄마라도 있어야 한다” 그랬더니 자매가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의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이 기가 막힌 막달라 마리아 같은 이 집이 밑동 잘린 나무같이 짧은 인생 가운데서 (아무리 여기 와서 들어도 목장도 안 나가시고 정말 그런 분이 더 나은가) 이렇게 온 교회의 기도를 받으면서도 안 되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늘 마음이 ‘나 때문에 저 아이가 안 된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인 거예요. 우리 인생의 고난도 마찬가지예요.
★최선을 다한 히스기야의 이력서도 죽음 같은 사건 앞에서는 한 줄도 힘을 쓰지 못해요. 그러니까 이렇게 죽음 같은 사건들이 있는 집이 곳곳에 있어요. 정말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를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히스기야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_왕하20:2
이제 죽음의 벽 앞에 섰어요. 늘 보던 벽이 이제 달라진 거예요. 늘 교회에 와도 팔복산 기도회에 와도 내게 죽음 같은 사건이 있으면 교회가, 성전이 달라 보여요. 내가 그동안 보던 교회가 아닌 거예요. 열왕기상 21장을 보면 아합도 벽을 향했어요(왕상 21:4).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얻지 못해서 그냥 정말 삐졌어요. 그럴 때 해결사 이세벨이 딱! 와서 딱! 해결해 주는 거예요. 말 한마디 안 하고 그저 돌아눕기만 해도 해결해 주는 사람이 딱 있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을 찾지 않죠. 해결사가 딱!딱!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갈 것까지 뭐 있겠습니까? 아합은 사람에게 해결을 구한 사람이에요.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통곡한 사람이에요. 지금 히스기야는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 앞에 섰어요. 옆에 많은
사람이 있어도 소용이 없어요. 성전에 갈 수도 없을 만큼 아파요. 우리가 항암을 할 때 그 인생의 고독을 정말 이렇게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 고독의 영성이 이제 이때 나오는 거죠. 히스기야에겐 지금이 철저히 혼자 되는 시간이에요. ★사람에게 답이 없으니까 결국 하나님을 찾는 거예요. 여러분 막다른 곳에서 어디로 향하세요? 사람부터 찾아요? 하나님께 가져갑니까? 히스기야가 뭘 기도하죠?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_왕하20:3
“기억하옵소서” 간절한 매달림의 표현이에요. 원문 속에는 히브리어 감탄사 “제발”이 등장해요. “하나님, 내 진실과 전심으로 한 행실을 제발 기억해 주세요.” 눈물로 호소하며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히스기야는 내가 붙들 수 있는 마지막 이력을 들고 하나님께 나온 거예요. 바로 ‘진실과 전심’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히스기야는 진짜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죽음 앞에서는 그 진실과 전심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에요. 히스기야는 할 수 있는 말을 다 했어요. 자기 이력서에 마지막 줄까지 다 읽었어요. 근데 그것으로 죽음 앞에 설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할 수 있는 건 심히 통곡하는 것뿐입니다. 이건 원 어로 보면 “통곡으로 통곡했다”에요. 얼마나 크게 울었으면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그 이유를 성경은 자세히 밝히지 않아요. 죽음이 두려웠을 수도 있고, 나라가 걱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억울함이 컸을 것 같아요. “하나님,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잘했는데 이런 진실과 전심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어떻게 제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저 솔직히 너무 억울해요!” 최선을 다했던 만큼 더 크게 울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우리도 매일 자기 이력서를 들고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서잖아요. “저 이만큼 헌신했어요! 이만큼 충성했어요! 이만큼 수고했고 희생했어요!”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끊임없이 자기 진실과 전심의 이력서를 펼칩니다. 그리고 그게 인정받지 못하면 억울해서 다 이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거죠. 억울한 이유가 뭐예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하죠. 억울함이 커질수록 회개가 안 돼요. 히스기야의 통곡 안에 이 억울함이 있고, 오늘 우리의 통곡 안에도 이 억울함이 있어요. 이렇게 유다 역대 왕 중에 하나님을 가장 의지한 왕(사람)도 자기 이력서로는 죽음 앞에 설 수 없었어요.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어요? ★★어떤 진실로도! 어떤 전심으로도! 어떤 선행으로도! 인생의 근본 문제인 죽음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우리 행위는 우리 존재를 구할 수 없어요!! 아무리 좋은 열매도 밑동 잘린 나무를 살릴 수는 없는 거예요!!!
▪ 적용질문
Q. 내가 가족이나 지체에게 생색내는 나의 선행은 무엇입니까?
Q. 죽을 것 같은 상황 앞에서 나는 누구(무엇)를 찾고 있습니까?
Q. 통곡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그걸 혼자 삭이고 있습니까, 목장에서 나누고 있습니까?
빚을 진 대기업 상무님이 계셨어요. 근데 이제 우리들교회에서 빚지지 말라고 하니까 교회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2천만 원의 빚 때문에 은마 아파트를 파셨어요. 적용으로 파셨는데 그 아파트가 그 후에 올라도 너무 오른 거예요. 얼마나 하나님께 생색이 나셨겠어요? 나는 적용했는데 근데 그걸 목장에서도 저와도 의논한 일은 아니었는데요. 사실 두고두고 후회하실 일이었지만 어쨌든 빚을 갚느라고 파셨어요. 근데 이분이 워낙 애가 요셉과라 유다가 다 안 깨달아지신다고 맨날 그러셨는데, 그야말로 이제 돈 훈련을 받게 되어서 결국 지금 목사님까지 되셨어요. 요즘엔 유다가 아주 잘 깨달아진다고 하세요. 그리고 참 재미가 없으셨는데 재미까지 있어지셨어요. 그 말씀의 순종은 사실 은마 아파트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이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우리들교회 목사님으로 이제 자리매김을 했다. 이거는 영원히 기억되는 최고의 이력서 아닐까요? 최고 유산 아닐까요? 팔았기 때문에! 적용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축복을 하 셨다고 생각해요.
<네 눈물을 보았노라> 첫째는 최선을 다해도 죽음이 올 수 있고 죽음 앞에서 통곡합니다. 근데 둘째는
2. 통곡의 기도에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4-5절)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_왕하20:4
통곡하며 기도하는 히스기야를 뒤로 한 채 아주 냉정하게 이사야는 왕궁을 나갑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아직 궁전 구역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합니다. 말씀으로 응답하시는 겁니다. 이사야 65장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만 해도 기도보다 먼저 출발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죠. 응답이 어떻게 왔어요? 환경이 바뀐 게 아니에요. 병이 갑자기 나온 게 아니에요.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응답은 곧 말씀으로 오는 거예요. ★하나님은 해결보다 먼저 말씀을 주시고, 병보다 먼저 사람을 고치십니다.
지금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환경이 바뀌기를 기다리세요? 말씀이 임하기를 기다리세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통곡에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_왕하20:5
여러분, 이 말씀의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죠? 큐티를 자세히 돋보기를 가지고 해야 해요. 말씀이 임해야 예 이게 응답인 거예요.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주권자’라고 부르세요. 성경에서 제일 많이 ‘주권자’로 불린 사람이 누구인 줄 아세요? 바로 ‘다윗’이에요. 하나님은 자신을 뭐라고 소개하세요? ‘(히스기야)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세요.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히스기야 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으세요. 히스기야가 한 진실과 전심과 선행만으로 평가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다윗 언약의 계승자로! 택자로! 보시는 거예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기도는 들으시고, 눈물은 보셨어요? 히스기야는 말로 기도하고, 말이 다 떨어진 자리에서는 통곡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말도 들으시고, 말 너머의 눈물도 보셨어요. 하나 님은 정리된 말만 들으시는 분이 아니에요. 말이 다 떨어진 자리에서 흘리는 눈물도 보세요. 기도를 유창하게 잘해야 들으시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말이 막혀도, 그냥 울기만 해도 하나님은 다 듣고 다 보십니다. 여러분이 팔복산에 올라와서 그냥 우리는 “저는 말씀도 잘 몰라요” 근데 간절하니까 팔복산에 올라오셨어요. 그 눈물을 주님께서 다 보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뭘 알아서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 어린애가 뭘 알아요? 그냥 엄마 품으로 파고드는 거죠. 그러니 말씀 붙들고 드리는 기도, 말이 다 떨어지면 눈물로 드리는 기도, 이 모든 기도를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세요. 요즘 시편 69편에서도 잘난 아들 압살롬, 아도니아의 반역으로 다윗이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다고 하죠. 깊은 수렁에 빠지며 큰물이 내게 넘치니 부르짖으므로 피곤하여 목이 마르도록 눈이 쇠할 만큼 간구하는 거예요. 다윗의 이력서로도 이 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안 되기에 기도를 할 수밖에 없게 시키시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인 거예요. 히스기야의 통곡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고 하세요?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치유의 주체가 하나님 자신이에요. 그런데 병 낫는 게 끝이 아니에요. 히스기야가 3일 만에 어디를 간다고 하세요? 여호와의 성전에 가게 하신대요. 이게 뭐에요? 예배의 자리로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 인생의 목적은 병 낫는 게 아니에요. 예배의 자리로 회복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문제만 해결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에요. 예배의 자리, 하나님 앞으로 다시 데려가시기 위한 게 목적이에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이에요. 우리는 질병, 부도, 실직, 불합격, 갈등, 다툼 등 문제 상황의 회복만을 바라고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그런 회복으로 만족하지 않으세요. 그런 것들은 다 잠깐̇ ̇이기 때문이에요. 영원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어요.그래서 이 문제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너의 문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라!!” 예배가 회복되고! 목장이 회복되고! 큐티가 회복되고!!! 이걸 위해서 문제를 주셨는데, 문제만 해결되기를 바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응답을 기다릴 때 먼저 말씀 앞으로 가야 해요. 큐티 책을 펴야 돼요. 거기에 내 사건의 해석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면 말씀이 꿀송이 같은 거예요! 그러시죠? 진짜.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거예요.
▪ 적용질문
Q. 지금 간절히 기다리는 응답은 무엇입니까?
(아이가 변하는 거, 애가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우리 남편의 승진, 남편이 외도했는데 돌아오는 거, 병이 낫는 것 많겠죠?)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거!! 우리 아이들의 구원, 남편의 구원, 아내의 구원, 나의 사명의 인생! 이게 돼야 되는데.. )
Q. 그 문제 해결이 예배 회복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습니까?
Q. (문제 해결을 통해서 예배 회복으로 이어져야 되는데 문제) 해결 받고 예배의 자리를 멀리 떠난 적은 없습니까?
여러분 낙태를 하고 안 하고는 다 ‘말씀을 듣느냐 안 듣느냐’ 예요. 그래서 예배가 회복이 돼야 되는 거에요. 그냥 “아이를 낳아라, 낳지 마라!” 이런 얘기는 정말 울리는 꽹과리인 거예요. 기복이 바로 이런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몰래”가 어디 있어요? 어떻게 참 귀엽죠? 하나님 몰래. 하나님은 모르시는 게 없어요. 환경이 겸손한 것만 겸손이라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 기도 응답은 예배의 회복이에요. 아이 자체가 아니에요. 아이! 아이! 아이!를 부르짖으니까 아이를 주셨는데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상급이 돼야 되는데 예배의 자리를 떠난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그랬잖아요. “아이! 아이!” 해 가지고 떠나라고 그랬는데 조카 롯을 데리고 가니까 이게 할 수 없이 이제 잘못된 결론으로 이스마엘을 주셨잖아요. 아들이 너무 좋아서 그다음에 하나님이 필요 없어요. 13년 동안 아브라함하고 하나님 하고 교제가 없어요. 86세에 낳아서 99살까지 기록이 없는 거예요. 그냥 그 이스마엘이 너무 좋아서. 약속의 자녀 다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나는 이스마엘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나는 이 잘난 아들만. 그래도 이런 나눔을 비밀이라고 하시면서 나누신 것이 아주 택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엄청난 약재료가 생기셨네요.
<네 눈물을 보았노라> 첫째는 최선을 다해도 죽음이 올 수 있고 죽음 앞에서는 통곡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니까 통곡의 기도에 환경보다 말씀으로 먼저 응답하셔서 깨달아야 되요. 깨달아야지 병이 난 것에 대해서 해석을 할 수가 있어요. 근데 병부터 낳으면 이제 말씀이 도망가는 거죠. 그래서 큐티를 하셔야 돼요!
세 번째는 중요한 건데, 결국은 병이 나도
3. 언약 때문에 살리십니다(6절).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_왕하20:6
하나님의 응답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5절에서는 히스기야의 병을 낫게 하시겠다고 했는데, 6절에 오니까 범위가 확 넓어져서 15년 수명 연장을 해주겠다고. 생명은 오직 하나님 손에 달린 거예요. 이게 다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앞으로 닥칠 그 침공에서도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세요. 히스기야가 앗수르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잖아요. 이 무서운 앗수르... 그러니까 앗수르가 언제 쳐들어와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쳐들어오기도 전에 앗수르로부터의 구원을 약속하세요. 보세요. "너와 이 성"이 묶여 있잖아요. 히스기야의 질병도! 앞으로 닥칠 앗수르의 침공도! 하나님이 미리 다 보고 계시고 다 아시는 거예요! 한 사람의 회복이 공동체 회복과 분리되지 않아요. 하나님은 한 사람의 회복을 통해 공동체가 살길도 열어주시는 거예요. 교회는 늘 ‘공동체’를 말하는 거예요. 나 혼자 잘 살라고 기도 응답해 주시는 게 아니에요! 정말 전 믿음도 없지만, 저 잘 먹고 잘 살라고 대학교 입시에 붙은 게 아니잖아요. 우리 엄마가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에, 그렇게 변소 청소하면서 기도했기 때문에 저를 붙여주셨어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쓰임받게 하려고 그러니까 그 구원 때문에 기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딸 잘 먹고 잘 살고 시집 잘 가라고 일류 학교 가야 된다” 난 머리털 나고 그런 기도를 받아본 일이 없어요. 여기까지도 너무 놀라워요. 그런데 이 본문에 진짜 핵심은 아직 안 나왔어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히스기야를 살리시고 왜 예루살렘을 구원하십니까? 무엇을 위해서 이 성을 보호하신다고 하시나요?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다 같이 한번 읽어볼래요. 시작!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구절을 놓치면 안 되는 거예요. 3절에서 히스기야는 뭐라고 했었죠?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내가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주어가 ‘나’였어요. “내가, 내가...” 히스기야 자신 이에요. “내̇가 했어요. 내̇가 잘했어요. 그러니 기억해 주세요.” 이것이 히스기야의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6절에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세요?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즉,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여러분 들리세요? 구원의 주어가 바뀌었어요! ★히스기야는 “내가 잘했으니까 살려주세요”, 하나님은 “내가 나를 위하여 살린다” 구원의 이유가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왜 살려주신 겁니까? 단순히 그가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앗수르로부터 유다를 지켜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도 “이 병이 구원 때문에! 병 낫게 해주셔야 돼요! 구원 때문에! 이혼도 하지 않아야 돼요” 이러잖아요.
그렇게 분명한 목적을 알려면 큐티̇ ̇를 해야 되는 거예요! 구속사̇ ̇ ̇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말씀을 알아야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이걸 모르면 밤낮 몽학 선생 수준의 기도, 그냥 입에서 나오는 기도만 하게 되잖아요. 히스기야는 그래도 이 목적을 알고 그것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고 응답을 받았어요.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고통을 무시하신 게 아니에요.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눈물도 보셨어요. 그러나 구원의 최종 근거가 그 눈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눈물에 응답하시되 오직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살리시는 거예요! 평소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의 말씀으로 받고 큐티하는 게 이게 언약의 말씀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히스기야가 거짓말한 거예요? 아니잖아요. 히스기야는 그렇게 진짜 살았어요. 유다 역대 왕 중에 이만큼 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만큼 한 사람도 자기 이력서로는 구원받지 못하는 거예요. 이만큼 한 사람도 결국은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사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도, 히스기야 왕도 행위로 보면 기가 막히지만 다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사는 거예요. 더 크게 쓰임 받은 사람은 히스기야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겠어요? 부활의 증인!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누구를 차별하면 안 되는 거예요.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그렇게 악했는데도 그냥 전쟁 없이 지나가더라고요.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렇게 선한데도 질병이 오고 이후에도 침공이 오고 책망이 이어지는 거예요. 왜죠? 하나님이 택자를 그냥 두지 않으시기 때문이에요. 끝까지 구원하시려고 계속 다뤄가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난을 안 받는 것이 복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붙들려 구원받는 것이 택자의 특권이고 은혜예요.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걸고 주시는 거잖아요. 우리는 100% 죄인이고 하나님은 100% 옳으신데, 그 옳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과 자기 언약을 걸고 우리를 구원하신다 이거예요. 나중에 앗수르가 실제로 쳐들어왔을 때도 하나님이 똑같은 말씀을 하세요. 우리 지난번 19장 34절에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작년 설교 기억나시죠? 설교 제목이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질병 앞에서도, 나중에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도 구원의 근거는 늘 동일한 거예요. 환경이 달라져도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아요. 위기의 종류가 바뀌어도 구원의 이유는 하나예요. 하나님의 언약, 그것뿐이에요. 히스기야가 다윗 때문에 살았다면 우리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사는 거예요. ★우리 구원은 내 눈물의 크기에도, 내 진실과 전심에도 달려 있지 않아요. 십자가에서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소망이야말로 우리 영혼을 요동치 않도록 지켜주는 영혼의 닻인 거예요. ★우리는 늘 흔들리고 몸도 마음도, 의지도 지식도 감정도 다 쇠해져 가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흔들림이 없어요. 하나님이 자기 때문에 지켜가시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의뢰는 내 이력서가 아니에요. 내 진실과 전심도 아니에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를 살리는 유일한 근거예요.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해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그렇게 작정하신 자를 끝까지 붙드시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이렇게 살려주셨는데 히스기야는 이후에 보면 또 흔들려요. 18장, 19장에서 히스기야가 흔들리는 거 우리가 봤잖아요. 그래서 히스기야도 "되었다 함"이 없어요. 저도 여러분도 모두 그래요. 은혜를 받아도 되었다 함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통곡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에요. “나의 모든 행실을 주여 기억 마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눈물 흘릴 일이 가득한 인생길이에요. 그러나 되었다 함이 없음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에 담대히 천국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면 나를 통해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살리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언약은 너무 중요한 거예요. 신앙의 근간인 거예요. 에베소서에서는 “부모 공경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는 구체적인 복이 뒤따르기 때문에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넘어서는 가정의 기초가 되는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명령은 마태복음 19장 6절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예요. 결합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이나 상황이 그 결합을 깼을 권한이 아무도 없음을 강조하는 거예요! 이게 언약이기 때문에! 결혼이 인간의 합의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임을 선포하신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약속 있는 계명을 더 넘어가서 명령이고 선포이기 때문에 언약의 성취를 위해 가정을 지켜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을 위하여, 다윗을 위하여 보호하시는 것이 있듯이 우리도 똑같이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물론 그것은 십자가 길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고 가정을 지켜주기 때문에 끝까지 언약을 붙들고! 말씀을 붙들고! 가정을 지켜내실 줄 믿습니다.
▪ [적용질문]
Q. 요즘 나는 무엇을 근거로 버티고 있습니까? ‘그래도 나는 이만큼 했다’고 붙드는 영적 이력서는 무엇입니까?
Q. 인정받지 못하면 바로 억울해지고 분노하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Q. “나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산다”고 정말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제가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는 이런 나눔을 하셨어요. 제가 드디어 이제 입으로 참 알아도 언급하기가 정말 어려운... 그런데 이분은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회개를 하셨는데 제 남편은 공식적으로 이런 일을 행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밤마다 끔찍하다고 머리를 흔들었어요. 그래서 술을 마셨고요. 근데 저는 또 믿음이 좋은 사람이잖아요.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았지만은 낙태를 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간절히 못했어요. 여러분 악의 평범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온 국민에게 아편을 먹이는 것과 같아요. 도덕과 윤리의 개념이 악으로 치달으면 다 같이 악을 행하면서 “너도 하니 나도 한다” 하며 악의 개념이 없어지는 거예요. 진리는 절대적인데 말입니다. 근데 남편은 계속 괴로워했어요. 그래서 그 많고 많은 죄 중에 마지막에 결국 낙태죄 하나만 콕 집어서 회개하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천국 갔잖아요. 근데 그 회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저는 이제 사명을 감당할 수밖에 없게 하셨어요. 근데 바울 사도가 성도 중에 자기가 지극히 미미한 자(에베소서 3:8)라고 고백하더니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고린도전서 15:9)라고 하더니 마지막에는 죄인 중에 괴수(디모데전서 1:15)라고 하셨잖아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사실이잖아요.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잔멸했잖아요. 스데반을 죽였잖아요. 이걸 잊은 적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스데반 돌 던질 때 거기 있었다 이거예요. 저에게 이게 그대로 다가왔어요. 그 정죄와는 아주 다른 개념인데 남편의 회개가 저의 회개를 불러와서 남편의 낙태 간증으로 많은 사람이 주 앞으로 돌아오는데 이 죄의 산실인 병원은 어쩌나 눌리기 시작했어요. 결국 죄의 값을 치른다고 했지만 그러고 나서 더욱더 갚아지지 않는 것이 있더라고요. 부부는 한 몸이잖아요. 바울이 스데반 죽이는 현장에 있었듯이 저도 병원에서 낙태할 때 그 현장에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이 죄의 값을 갚았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꾸 이제 그 생명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이게 정말 말하기가 “남편의 죄고 나하고 상관이 없다.” 처음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근데 마지막에 바울이 자기가 스데반 죽인 그 현장에 있었다는 거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이 너무 깨달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자꾸 자꾸 가면서 회개의 양이 자꾸 자꾸 생각이 되니까 저 회개하라고 온 성도가 저 때문에 다 수고한다는 생각이 들고 제가 회개하지 않아서 여러분들이 아직 못 돌아오는구나. 이 생각이 이렇게 막 드는 거예요. 그러므로 제가 이렇게 처음부터 저는 오늘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사명 감당한다고 했지만 정말 애초부터 저에게 생색낼 일은 전혀 없었다는 거예요. 눈물로 눈물로 회개해도 이 죄를 갚을 길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다윗을 위해 언약을 세우셨기에 감히 제가 이렇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거지 제가 애초부터 통곡을 했어요. 그러나 통곡해도 공로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제가 천국 갈 때까지 회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죄인 중의 괴수 맞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다는 이력서는 내놓을 것이 정말 하나도 없어요. 제가 여러분들이 무슨 죄를 짓고 와도 제가 이제 할 말이 없어 하잖아요. 그죠. 어떤 사람이 무슨... “저 사람은 안 돼” 그럴 사람이 없어요. 제가 이걸(생각을) 이렇게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를 용서하지 마시라고 했다가... 저 좀 용서하시라고 했다가... 그래도 저 좀 용서해 주세요. 저 좀 용서해 주세요. 기도할 뿐입니다.
목장나눔
1. 최선을 다해도 죽음 앞에서는 통곡합니다(1-3절).
Q. 내가 가족이나 지체에게 생색내는 나의 선행은 무엇입니까?
Q. 죽을 것 같은 상황 앞에서 나는 누구(무엇)를 찾고 있습니까?
Q. 통곡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혼자 삭이고 있습니까, 목장에서 나누고 있습니까?
가.
ㅇ 목장에서는 생색낼 것이 없는데, 가족들에게 생색내는 것을 생각해 보니, 부모님께서 병원이나 식당 등 어디 가실 때 모셔다 드리는 것에 대해 생색이 나는 것 같음. 특히 바쁠때나 다른 일정이 있을 때 갑자기 모셔다 드려야 할 상황이 생기면 더 생색이 남
ㅇ 결혼에 대해 준비된 부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좌절감이 생김. 현재 상황이 인정되면서도 좌절이 왔음. 중보기도 하고 있는데 기도가 많이 필요
ㅇ 통곡할 일에 대해 나누며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고 더 기도해야 할 것임.
나.
ㅇ 현재 일을 쉬고 있어서 아버지 일을 도와 드릴 때 생색나는 것 없이 잘 도와 드리고 있음. 그렇지만 일을 하고 있을 때 생각 하면, 주말에 도와 드릴 때 생색이 났었음. 목장에서나 지체들에게는 생색나는 부분이 없음.
ㅇ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면 짝꿍과 직장을 찾고 있음. 친구들은 다 결혼해 잘살고 있으니 짝을 찾게됨
ㅇ 목장에 나누며 가고 있음.
다.
ㅇ 집안일 할 때, 내가 혼자 살고 있었다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할 때 생색이 많이 남. 기본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내가 희생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 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듦.
ㅇ 하나님 밖에 찾을 분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듦. 과거에도 힘든 일들을 겪었을 때 의지할 데가 없으니 저절로 하나님을 찾게 되었음
ㅇ 가족들, 특히 언니 때문에 통곡하게 됨. 언니의 가정 문제와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기도하고 있으나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니 통곡할 수 밖에 없고, 목장에 나누며 가고 있음.
2. 통곡의 기도에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4-5절).
Q. 지금 간절히 기다리는 응답은 무엇입니까? 현재 상황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Q. 문제 해결이 예배 회복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습니까?
Q. 해결 받고 예배의 자리를 멀리 떠난 적은 없습니까?
가.
ㅇ 신결혼을 위해 기도 하고 있는데, 결혼을 통해 영혼 구원과 연결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으며, 기도에 응답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 결혼에 대해 준비되어야 할 부분들을 생각하며 되돌아 보니 과거에 시간 낭비했던 것이 후회되며, 회개 기도 하고 있음.
ㅇ 수요예배를 다시 회복하려 하고 있음
ㅇ 주일 예배를 떠난 적은 없으나, 비교적 평온해지니 수요예배를 간절히 찾게 되지 않음
나.
ㅇ 어머니 건강 회복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
ㅇ 문제해결을 위해 예배를 드려보기도 했으나 예배가 잘 회복되지 않았음.
다.
ㅇ 하나님이 언니를 깊이 만나주셔서 언니가정의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나도 매인데서 풀려나고 자유케되는 은혜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
ㅇ 과거에도 문제 해결을 위해 날마다 교회에 갔었던 경험이 있음.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이 맞다고 인정되는 것이, 극심한 고난이 오니,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고 예배가 회복될 수 밖에 없는 사건이 되었음.
ㅇ 예배의 자리를 떠났다고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문제가 해결되니 느슨해 지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됨.
3. 언약 때문에 살리십니다(6절).
Q. 요즘 나는 무엇을 근거로 버티고 있습니까? 그래도 나는 이만큼 했다고 붙드는 영적 이력서는 무엇입니까?
Q. 인정받지 못하면 바로 억울해지고 분노하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Q. 나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산다고 정말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가.
ㅇ 공동체에 붙어 있엇던 것으로 버틸 수 있었음. 부목자 목자 유아부 등 섬긴 것들이 영적 이력서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듦.
ㅇ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거나, 상황이 안될 땐 억울하고 분노하지만 들은 말씀으로 생각해 보니 내 삶의 결론임이 인정됨. 기도 하고 있음.
ㅇ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살고 있음.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기도하지만 답답한 상황들이 많이 있음
나.
ㅇ 사랑부 활동과 섬김이 나의 영적 이력서라고 생각됨.
ㅇ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께 인정받지 못할때가 있으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듦.
ㅇ 예수님때문에 산다고 고백할 수 있음.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생각이 듦
다.
ㅇ 날마다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큐티하고 말씀 보며 버티고 있음. 과거의 섬김보다 현재 섬김이 중요한데 요즘에 섬기는 자리에 참여를 하지 않고 있어서 영적 이력서를 채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ㅇ 일할 때도 그렇고,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기면 억울하고 분노 할때가 아직도 많이 있음. 하지만 들은 말씀을 떠올리며 혈기를 누르려 노력하게 됨.
ㅇ 다른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을 나도 모르게 떠올리게 되지만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산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음. 결국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죽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목장 중보기도입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
1. 가족구원과 건강, 가족들의 예배 회복
2. 다이어트 및 체중감량할 수 있도록
3. 말씀이 잘 이해되고 기억날 수 있도록
4.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지혜주시 길
5. 결혼에 대한 소망이 생기고 신결혼할 수 있도록
나
1. 실력 있는 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길
2. 신결혼으로 가는 과정 인도해 주시길
3. 기도로 책 집필 할 수 있도록
4. 사업과 아이디어와 학교 강의 위에 기름 부어 주시길
5. 아버지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되시도록
6. 간호하는 어머니 힘주시고 지치지 않으시고 목과 허리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하시도록
다
1. 양육받는 게 4번 남았습니다. 끝까지 과제물 제출 잘하게 해 주세요
2. 감기 모두 없어지고 식욕도 왕성해서 건강하게 해 주심 감사합니다
3. 엄마의 관절염, 고혈압 관리가 잘 되어 지금의 건강 꾸준히 유지되게 해 주세요
4. 저의 아파트를 활용하여 노후 자금으로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주세요
5. 오빠가 경제 활동이 활발할수록
더 안전 운전과 영육 모두 건강을 주시고 전도하게 해 주세요
6. 제게 신교제, 신결혼을 허락하시어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고 따르는
가정을 만들게 도와주세요
라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돼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3.저희 어머니 삼성병원 5월18일(검사)받고 5월28일(결과) 나오는데 검사 잘받고 좋은 결과 나올수 있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4.제 동생 5월14~17일 한국 있다가 베트남 귀국하는데 오고 가는길 지켜주시고 한국에 있는 동안에 복음이 잘 전해지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5.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 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마
1.어머니가 빨리 회복되어서 아버지랑 예수믿고 구원받게 하시길
2.신결혼할수 있도록 만남의 축복주시길
3.글씨 잘 깨우쳐 큐티와 기도 쉬지 않도록 은혜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