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물을 보았노라(열왕기하 20:1-6) 김양재 담임목사님
(열왕기하 20장 / 개역개정)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참석자>
병욱, 한준, 성률, 윤우, 경년
<말씀 요약>
하루 평균 982명이 사망을 했어요.
그러나 다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죽음은 남의 일인데, 죽으면 왜 남의 일이 온거야? 합니다.
히스기야도 통곡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나님은 눈물의 종류가 어떻든 모든 성도가 흘린 눈물을 봐주십니다. 왜 봐주실까요?
1.최선을 다해도 죽음 앞에선 통곡합니다(1-3절)
1절) 그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오늘 말씀은 연대 순서대로 적은 것이 아닙니다.
열왕기 상하는 유다백성에게 유다가 왜 구원되었는지 해석을 주고, 경고와 희망을 주는 해석이였어요.
히스기야 제 14년을 말해요. 39세(주전701년경) 에 적혔어요.
히스기야 14년에 침공, 발병도 일어났는데 우리는 이제 발병 이후에 침공이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왕궁에 많은 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인생의 전성기였을 때 였을 때입니다.
산당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개혁을 이루어 낼 때입니다.
그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사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너 죽는다, 너 집을 정리하라” 라는 경고를 남깁니다.
이사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 있으니, 믿음 있는 자라면 “네 알겠습니다” 해야 하잖아요?
이때 죽었으면 선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항상 말씀의 순종은 최선의 길로 인정해주십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해석해줄 수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있겠어요? 순종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내가 왜 죽어?‘ 라는 것을 한 사람을 봤어요. 내 남편을 봤어요.
죽음이 가장 큰 원수인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인데
우리 인생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같은 사건에서도 우리의 이력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유도 몰라서 순종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갑자지 이별, 진단선고, 이혼통보 등 있습니다. 우리의 주제가는 “이유라도 알자” 입니다. 알려고 하지 말아요.
이유라도 알면 있던 정이 더 없어져요. 늘 해석이 안되니까 해결이 안되요.
집에는 아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집 살림을 하더라도 이혼 안하고 있던 남편이 있었기에 전화할 곳이 남편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싸워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25년을 다른 곳에 있어도 이혼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아들이 아빠를 무서워 하고 경계가 있는 것입니다.
집에는 아빠가, 엄마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나쁜 아빠라도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다 아시고 들으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보석으로 훈련시키실지 몰라요.
우리들교회 부모님들이 구속사가 있어 적용해주니 대단한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만 별 인생이 없는데요, 교회 사모하시고, 손주 잘 키우시고, 상급이 크리라고 믿습니다.
히스기야는 통곡해요.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에게 답이 없으니 하나님께 답을 찾는 것입니다. 막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요?
항암을 또 기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지기에 좋은 것이에요.
3절)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야는 내가 붙들 수 있는 마지막 진심과 전심을 가지고 나왔어요. 죽음 앞에 섰지만 할 수 있는것이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것은 통곡 밖에 없었어요.
그 이유를 성경은 자세하게 밝히지 않아요. 히스기야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억울함이 컸을 것이에요.
최선을 다했던 만큼 크게 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희생했어요. 끊임없이 진심과 전심의 이력서를 펼칩니다. 억울함이 커질수록 회개하라는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통곡 안에는 억울함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울면 하나님이 다 보신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왕 중에서 가장 하나님을 의지하던 왕이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행위로 죽음 앞에서 나를 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밑동 짤린 나무라도 통곡할 수 밖에 없습니다.
2.통곡의 기도에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4~5절)
4절)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하나님은 말씀이 엄저 임합니다.
순서가 반드시 있어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말씀으로 임하십니다.
5절)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자신을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다윗 언약의 계승자로, 택자로 인정해 주셨어요.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너의 눈물을 보았노라, 라고 하셨어요.
말도 들으시고, 눈물도 보셨어요. 말이 다 떨어진 자리에서도 눈물을 보셨어요.
하나님은 다 듣고 보십니다. 말이 다 떨어지는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세요.
잘난 아들 압살롬, 깊은 수렁에 빠지며 눈이 새알만큼 간구했어요.
기도를 할 수 밖에 없게 시키시는 것은 다윗의 주권자가 된 것입니다.
벼랑 끝에 있어도 오늘 큐티가 깨달아지시면 그것은 기도 응답입니다.
히스기야 너를 낫게 하리리, 여호와의 성전(예배의 자리, 하나님 앞의 자리)으로 가게 해주십니다.
실직, 갈등, 다툼 등 회복만 바랍니다.
응답이 기다릴 때 말씀 앞으로 가길 기도해야 해요.
거기에 내 사건의 해석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신기하고, 산다는 것이 황올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소통과 대화가 되니까요.
3.언약 때문에 살리십니다(6절)
6절)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하나님의 응답이 점점 커집니다. 기도 응답을 들어주시고 확장하십니다.
15년의 생명을 더 주시고, 앗수르가 언제 처들어 온 적이 없지만, 앗수르로 부터 구원해주신다고 하십니다.
“너(히스기야)와 이 성”의 회복, 공동체의 회복을 약속해주십니다.
학교, 직장, 결혼 가는 기도 응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다. 깨어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하여 가정을 살리신다.
하나님 때문에 대학에 붙었어요.
여러분이 너무 간절한 것은 나의 만족 때문에 가야 하니까 불신결혼을 하면 하나님이 호되게 훈련시키십니다.
본문의 진짜 핵심은 아직 안 나왔어요. 무엇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신다고 하셨을까요?
6절)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3절에서는 나를 기억하소서, 히스기야 자신이에요. 그러니까 나를 기억해주세요. 여기에서 ‘나’는 히스기야임.
6절에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여기에서 ‘나‘는 하나님임. 구원의 이유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제목을 들으시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앗수르로 부터 하나님의 민족, 유다를 앗수르로 부터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뭘 알긴 알아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다 보셨어요. 그러나 구원의 최종 근거가 눈물에 응답하시되,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위하여 히스기야를 살리신 것입니다.
‘이만큼’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때는, 하면서 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없었는데 하나님께서는 택자를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안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붙어가는 것이 택자의 특권입니다. 언약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여러분 히스기야가 위대해요, 막달라 마리야가 위대해요? 우리는 누구를 더 믿음의 인물로 치죠?
이 땅에서 제일 위대한게 부활 아니에요?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정답:마리야언약에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19장34절: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내가 나와 나의 다윗의 종을 구하기 위함이라. 구원의 이유는 하나에요.
우리의 구원은 내 눈물의 크기에도, 내 진심과 전심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흔들리고, 지식 감정, 쇠약해지지만 하나님이 주신 구원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의뢰는 이력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치유의 은혜를 경험해도 히스기야는 또 흔들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통곡할 수 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나의 모든 행실을 기억하시고, 눈물 흘릴 인생을 가득 하여주시고.
우리는 언약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1.최선을 다해도 죽음 앞에선 통곡합니다.
내가 가족이나 지체에게 생색내는 나의 선행은 무엇입니까?
죽을 것 같은 상황 앞에서 나는 누구(무엇)를 찾고 있습니까?
통곡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혼자 삭이고 있습니까, 목장에서 나누고 있습니까?
2.통곡의 기도에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지금 간절히 기다리는 응답은 무엇입니까? 현재 상황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제 해결이 예배 회복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습니까?
해결 받고 예배의 자리를 멀리 떠난 적은 없습니까?
3.언약 때문에 살리십니다.
요즘 나는 무엇을 근거로 버티고 있습니까? 그래도 나는 이만큼 했다고 붙드는 영적 이력서는 무엇입니까?
인정받지 못하면 바로 억울해지고 분노하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산다고 정말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기도 제목>
A: 매주 교회 참석, 주일성수 할 수 있는 직장 찾아보기.
B: 중간고사 잘 보도록
C: 대출 승인되기, 결혼 기도로 준비하기
D: 야동 안보기, 베이스 1시간씩 연습하기, 운동하기, 예배참석(먼큐, 수요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