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5
주일예배
본문: 마가복음 16:1-9
제목: 그가 살아나셨다.
설교 말씀
부활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논리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증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 증명하지 못한다며 무시합니다. 그러면 그가 살아나셨다의 증인이 누구이고 무엇인가요?
1.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십니다.
1-2절.
안식일이 지나고 첫 날은 너무 중요한 날이기에 사복음서에 등장합니다. 이 때 생명의 주의 날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을 목격한 첫 목격자가 막달라 마리아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다른 마리아도 있지만 3인칭 단수로 쓰여 있습니다.
왜 막달라 마리아가 주인공이 됐을까요? 예수님을 알게 된 후 주님을 만나 살아났기에 무서운 것이 없는 그녀가 가장 먼저 부활을 목격합니다. 엄청난 열심과 사랑으로 예수님의 무덤으로 떠났습니다.
3절.
담대함으로 왔지만 부활체인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면서 무덤의 돌문을 열어줄 자를 걱정합니다. 이런 걱정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중에 제자들의 멸시를 무릅쓰고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들고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베다니 마리아도 있습니다. 그녀는 부활의 실체를 믿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액면 그대로 말씀을 믿고 시체를 보러가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예수님 발 아래 듣던 실력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무덤에 안 갔을까요?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동족들이 부활한 나사로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이 흔들리니 죽이려고 했습니다. 세상은 예수 믿는 세력을 죽이고자 합니다. 진짜로 믿으면 핍박이 오게 됩니다.
안식 후 첫 날의 의미를 잘 아는 그녀가 무덩메 가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에 현장에 오지 않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처럼 부족해서 예수님만 붙드는, 가장 낮고 낮은 창기인 막달라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4절.
그런데 돌이 굴려져 있습니다. 이미 치워져 있는 것을 영적인 시력으로 봐야 합니다.
적) 부활이 확실히 믿어지세요, 머리로만 믿어지세요? 부활의 증명을 원하세요 증인을 원하세요?
날마다 묘지 찾아가서 누가 돌을 굴려주리오 하면서 죽은 자를 살핍니까?
더 중한 구원의 일이 있다는 것을 분별하세요?
2. 양육이 필요합니다.
5-6절.
부활의 장면을 직접 본 자가 없기 때문에 믿기가 힘듭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시력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부활의 장면을 본 자가 없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죽었습니다. 병 고친 살아남입니다.
여인들은 부활만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에 돌 문을 비유하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유일무의 합니다. 이땅에서 단 한번만 있기 때문에 창조적인 부활입니다.
돌이 치워져 있으면 그 때라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왜 믿지 못할까요?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았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무덤과 시신을 찾아갑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앞에 계셔도 동산기지로 착각하고 슬퍼합니다. 그 다음에 시체 찾아 가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마릴린 먼로의 두번째 남편이 유명한 야구선수였습니다. 딱 9개월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그 남편은 그 후 혼자 살아서 먼로를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인생의 허무함을 전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착이 무섭습니다.
이 땅에서 시체 찾아 삼만리 하는 것은 무덤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을 함부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천히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는데, 모두가 무서워합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있는 와주에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주님이 양육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양육을 받을 때 양육자를 떠나서 양육 받는다는 것 자체가 택자로 인정해 주신 것과 같습니다.
살아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시면서 양육해 주십니다.
모두에게 특별한 부활의 경험이 없으면 수치의 간증을 인정하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여인들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그만큼 낮아져 있기 때문에 머리로는 메시아임을 알고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머리로도 알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다 똑같습니다. 택자가 아니면 부활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도 양육을 받았지만 다 도망갔습니다. 제자들이 믿음으로 부활의 주님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택자이기에 인도함을 받은 것입니다.
6절.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으키심을 받아 부활하셨기에 무덤이 비워졌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우월성과 탁월성이 여기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무덤을 신성시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셨기 때문에 숭배받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의 광대하심이 드러났기에 무덤이 없습니다. 너무나 구별되는 차이입니다. 기독교의 자랑은 그래서 초라하게 비워진 무덤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화려하게 겉을 꾸미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것도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믿게 해주셔서 입니다.
특별한 경험은 하나님만이 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증명을 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부활의 증인이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예수님이 지질해 보입니다.
입으로 믿음을 시인하면 부활에 이르기에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택자는 이것조차 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부활을 조소하고 경멸합니다.
살아나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삶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목사님 간증 (사부님 이야기)
말씀 하나가 뭐가 대단하냐고 하지만, 남편이 죽은 그날 큐티한 것을 지금까지 쓰임받게 해주실 줄 몰랐습니다. 이 부활을 경험해야 모든 것이 풀리고 들리고 모든 것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증명과 완전히 다른 증인, 그 길은 하나님이 증인 삼아주셔야 합니다.
천사가 막달라 마리아를 양육합니다.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합니다. 죽음을 경험하니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갔기 때문에 반드시 살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집에서 장례를 치루고 남편을 장지에 묻고 왔습니다. 하지만 변함 없이,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를 했습니다. 이처럼 평범하게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양육입니다. 죽음은 전혀 무서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런 평범한 본문으로도 말씀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적) 우리의 사건에서 죽은 예수를 찾습니까, 살아나신 예수를 찾습니까?
교회를 다니고 큐티를 해도 아직도 죽음이 너무 두렵습니까? 간증 들을 때 무시가 되세요, 부러우세요?
양육에 참여해서 실제적인 부활을 경험해 보시면 어떨까요?
3. 사명 주시기 위함입니다.
7절.
이 땅이 가장 무서워하는 죽음을 정복한 것을 전하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부활을 만난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이라도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이 여인에게 예수님을 부정한 베드로에게 부활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수제자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위해 막달라 마리아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기 때문에 말씀듣고 큐티하고 적용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실패하고 버린 곳입니다. 누구도 가기 싫어했던 땅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고 부활을 경험하니 못했던 제자들은 본업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갈릴리에 먼저 가서 기다린다고 하십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가주신 것으로 최고의 땅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라면 은혜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시체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함을 아시고 가기 힘든 우리에게 가서 기다린다고 하십니다. 사명의 자리는 그래서 일류의 자리입니다.
8절.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인 복음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보면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말하니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다르게 묘사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시각에서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조건반사적으로 두려워했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현장에서 양육시키려면 이런 막달라 마리아가 필요합니다.
몹시 놀라 떨며 무서워하는 지체가 있다면 그 지체를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면 목장 식구 전체가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목장마다 막달라 마리아가 있으면 진보하게 되지만 베다니 마리아만 있으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9절.
부활을 가장 먼저 외쳐줄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입니다.
말씀으로 양육해주시니 큰 기쁨이 옵니다. 무덤을 향해 앉은 이, 부활을 처음 목격한 이, 인류에게 가장 유명한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여인들은 너무 가난해서 바라볼 사람이 주님밖에 없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여인들을 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인을 부활의 증인으로 택하셨습니다.
여인들이 증인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일꾼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증인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적) 내 삶의 자리는 천합니까, 일류입니까?
사명의 자리를 사모하세요, 세상의 높은 자리를 목말라 하세요?
여러분은 누가 여러분의 부활 간증을 들어줬으면 좋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 같은 자입니까, 지식 있고 권세 있는 자입니까?
A - 토요일날 재건축투표로 재건축담당건설사로 나오는데 삼성물산이 나올수있기를
B - 1. 목장 식구들 영육 강건 하기를
2. 신교제 하나님의 때를 잘 기다릴 수 있기를
C - 1. 대량계약건이 주말에 많아도 주님만을 사모하기를
2. D의 친구 믿음으로 잘 이끌어주시길
3. D의 친구 일자리에서 실수가 잦아들길
D - 1. 이번달 경제적 부족한부분을 주님께서 메워주시길
2. 당장에 처해있는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3. 앞으로도 실수없이 무사히 엄무 마치길
E - 1. 몸 건강 잘 할 수 있길 ,치료 잘받을수 있길
2. 주에 한번 쓰는 큐티 적용 할 수 있길
3. 감사한 마음 잘 유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