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5.(주일) 마가복음 12:1-12 「모퉁이의 머릿돌」 이태근 목사님
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하나님 아버지, 오늘 힘든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오늘 주신 말씀으로 힘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큐티 말씀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버림받은 인생, 또 무너진 가정,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혹은 한 집에 살고는 있지만 서로 소 닭 보듯 남보다 못한 인생들도 과연 오늘 말씀처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주신 말씀이 남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나와 우리 가정에게 주신 말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울의 영어식 표현은 ‘폴(Paul)’이라고 우리가 부르죠. 베드로는 ‘피터(Peter)’, 그리고 야곱은 ‘제이콥(Jacob)’이라고 부르는데,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은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소년 다윗을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역사적인 문헌들을 살펴보니까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이탈리아의 피렌체 대성당 뒤편에는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며 방치되었던 대리석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고 해요. 사람들은 당시 그 돌을 가리켜서 ‘거인’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높이는 약 5m로, 아파트로는 2층 높이 정도 되죠. 무게는 6톤이나 나갔지만, 문제는 그 대리석의 높이와 크기에 비해서는 폭이 너무 좁고, 또 길쭉하다 보니 그 대리석에 어떤 작품을 새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앞서 2명의 조각가들이 12명의 선지자 중에 한 명을 조각하려고 작업에 들어갔는데, 첫 번째 임무를 맡은 조각가가 다리 사이에 발 부분을 조각하다가 그만 대리석의 결을 잘못 만들어서 대리석 하단 부분에 큰 구멍을 내고 말았습니다. 겁을 먹은 조각가는 작업을 중단했고, 그로부터 한 12년 후 또 다른 조각가가 2차 시도에 들어갔는데 이미 뚫려진 그 구멍에 잘못 작업하면 무너질 것 같아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금세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당대 가장 유명했던 대선배 레오나르도 다빈치조차 그 대리석을 가리켜 ‘쓸모없는 돌’로 취급을 했는데, 20대의 젊은 미켈란젤로가 쓸모없는 돌, 버려진 그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마치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어린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굴복시킨 것처럼, 이 일화는 미술사의 길이 남는 반전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쓸모없어진 그 돌, 더 이상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우리의 인생들도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면 모통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한 절, 한 절 저와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려면
1. 수치와 조롱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1-5절)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a.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_막12:1a
예수님께서 또 비유로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상대방이) 아직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해줄 말은 있지만 (상대가)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기에 자꾸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목장에서도 속 시원하게 그냥 까놓고 얘기하면 시원할 텐데, 목장 식구들이 아직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에 자꾸 비유로, 또는 예를 들어서 말을 빙빙 돌려서 설명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그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어제 큐티인 말씀에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하기를 “당신은 도대체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세 그룹은 마치 한 세트처럼 등장할 때가 많아요. 마가복음 8장 예수님의 수난이 처음 예고될 때, 마가복음 11장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을 때, 마가복음 14장 예수님을 체포하고 심문할 때, 마가복음 15장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줄 때 이 세 그룹은 종합 세트처럼 함께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당시 산헤드린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 멤버들이기도 했어요. 당시 대제사장들은 성전의 제사와 행정을 장악한 사두개파 중심의 실권자들이었고, 서기관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바리새파 중심의 지식인들이었고, 장로들은 명망 있는 가문의 수장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은 종교, 법학, 사회적 명성들이 똘똘 뭉쳐서 예수의 권위에 도전장을 던진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산헤드린을 구성하고 있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신학적인 노선과 가치관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가 없었고, 또 장로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처세술에 능한 자들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가정이 깨어지고 무너지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 가치관이 다르다며 막 이혼을 부르짖고, 또 자녀들은 ‘어디에 줄을 서야 나한테 도움이 될까?’ 머리를 굴리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비유로 말씀하셨는지 1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_막 12:1
마가복음 4장에 씨 뿌리는 비유가 있었다면, 오늘 큐티인 말씀은 청지기로 부름받은 농부에 관한 비유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 때 산 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웠다고 하십니다. 농부들이 세운 게 아니에요. 포도원 농부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도록 여러 환경들을 미리 다 조성해 주셨는데, 농부들은 어느 순간부터 ‘청지기’가 아닌 ‘주인’ 행세를 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1년 전 광주 채플의 담당 목사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광주 채플이 세워지는 데에 벽돌 한 장 제 손으로 올린 것이 없습니다. 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우는 데 제가 직접 관여한 게 전혀 없습니다. ‘초원’이라는 산 울타리가 이미 3개나 둘러진 상태였고, 즙 짜는 틀처럼 광주 채플 성도들의 기도와 눈물이 이미 있었고, 망대와 같은 직분자들이 상당수 세워져 있었기에 ‘맨 땅에 헤딩’을 한다기보다는 포도원의 농부 비유처럼 이미 여러 조각이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광주 채플 포도원의 농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농부는 포도원의 주인이 아니고 청지기라고 하십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광주 채플 헌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저에게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광주 채플의 담당 목사로 저를 보내시면서 근심, 걱정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웃는 분은 저를 좀 알아서 웃나요? 겸손한 마음으로 청지기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는데, 판교와 휘문에서 17년간 사역을 하면서 네 번이나 치리를 받은 것처럼 광주 채플에 내려가서도 또 그러는 것은 아닌지 담임 목사님의 근심, 걱정이 많으셨을까요? 없으셨을까요? 많다는 소리가 크네요. ^^;
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_막 12:2
‘때가 이르매’ 수확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포도원 소출을 얼마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다”고 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한 종을 보냈다’는 것은 농부들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내 욕심이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회개의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니다.
광주 채플에 내려와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날 때마다 담임 목사님과 함께했던 지난 시간이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많았습니다. 예전에 치리받을 때에는 나의 억울함을 먼저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광주 채플이 세워지고 또 본의 아니게 지난 1년 동안 치리 1호, 2호 (누구를 닮아서) 3호까지 세워지면서 ‘담임 목사님이 어떤 마음으로 치리를 주셨을까’ 저절로 자꾸 묵상이 되더라고요. 억울해하는 직분자들을 보면서 마치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할 말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광주 채플이 세워지고 여러 사건을 만나면서 ‘담임 목사님은 그 많은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걸어오셨을까?’ 담임 목사님의 그 지나온 시간들을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신앙고백도 있었지만 엉뚱한 소리도 참 많이 하고 “사탄아 물러가라”는 꾸중도 들었는데,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핍박과 환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날 때마다 주님이 하셨던 그때 그 말씀들을 종종 자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_막 12:3
포도원 주인이 자기의 종들을 보내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하여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모두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은 인생입니다. 목사의 직분도 청지기 역할이고, 목자와 부목자, 남편과 아내의 역할도 주인이 아닌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살림살이를 하나씩 장만하고, 망대를 세우는 일들이 다 내가 한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 청지기가 아닌 주인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나누어 줄 것도 있는데, 회개의 열매가 아닌 기복의 소출만을 원하고 있기에 사건으로 찾아오신 주님의 방문 앞에서 때로는 혈기를 부리며, 때로는 짜증을 내며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느 날 제가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소파에 앉아서 <이혼 숙려 캠프>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더라고요. (네, 이혼할 생각은 아니었고요.) 그런데 제가 지나가는 말로 “뭐, 맨날 이런 것만 보냐?” 했는데, 제가 가방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아서 새벽 1시까지 그것을 계속 보고 있었어요. 막 엄청 재미가 있다기보다는 정말 피 튀기는 싸움을 하더라고요. 마치 주인처럼 아내를 부려 먹는 못된 남편들도 나오고, 남편의 골을 그냥 파먹는 아내들도 있고…… 정말 그래요, 한번 봐보세요. 목장에서 우리가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남편 측에서 준비한 증거 영상이 있어요. 그리고 아내 측에서 준비한 증거 영상을 하나씩 틀어 주는데 마치 TV 앞에서 생생한 목장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전문가들의 조언과 핵심을 찌르는 분석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는데 과연 그런 화해와 조정이 얼마나 갈까’ 그러한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4절과 5절 말씀 보겠습니다.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_막 12:4-5
3절에서는 심히 때리고 4절에서는 머리를 상하게 하더니 5절에 이르러서는 죽이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포도밭은 어떤 형편입니까? 배우자가 나를 심히 때리고 또 내 머리를 상하게 하며, 나의 인격을 짓밟고 능욕하고 마치 나를 죽일 것처럼 달려들지는 않습니까?
오늘 《큐티인》 말씀에 수치와 조롱을 잘 감당하면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냐”고, 하나님의 방법이 너무 미련하고 답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성질대로 한다고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내가 먼저 죽어져야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처럼 특별히 나에게 허락하신 그 수치와 조롱을 잘 감당하고자 할 때, 예수님의 말씀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나도 지켜 주시고 우리 가정도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Q. 내가 쓸모없는 돌처럼 느껴질 때는 언제입니까?
Q.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하여 어떤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까?
Q. 내 성질대로 하다가 다된 밥에 재를 뿌린 적은 없습니까?
모통이의 머릿돌이 되려면 첫째로 수지와 조롱을 잘 감당해야 하고 두 번째,
2. 영문 밖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6-9절)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_막 12:6
포도원 주인은 자기가 보낸 종들이 심히 맞기도 하고, 머리가 상하기도 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종들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랑하는 아들”은 마가복음 1장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물 세례를 받을 때, 마가복음 9장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할 때 하늘에서 들렸던 바로 그 음성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주인 노릇을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고 영문 밖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시기 위하여 사명을 가슴에 품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포도원의 농부들은 자기 것도 아니면서 포도원을 가꾸는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어느새 포도원의 소출을 탐내며, 포도원의 권력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사명의 자리가 아닌 내 것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의 성벽 안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7절 말씀을 봅니다.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_막 12:78
포도원의 권세를 지키기 위하여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역모를 꾀합니다. 이처럼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였지만, 예수를 죽이는 데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갑니다. 여러분은 언제 배우자와 한마음이 됩니까? 평소에는 서로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함께 살 수가 없다고 온갖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다가 어떤 환경에서 찰떡궁합이 되십니까? 다른 사람을 흉볼 때? 또는 물려받을 유산 앞에서? 또는 자녀를 우상으로 놓고 한마음이 되십니까?
그 농부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데에 한마음이 될 뿐만 아니라 무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는 상속자니”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가장 먼저 예수님을 알아본 것처럼, 그들은 무지한 자가 아닙니다. 상속자를 단숨에 알아봅니다. 하지만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내 것 아닌 내 것을 빼앗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농부들에게 포도원은 사명의 자리가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할 나의 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싶은 여러분의 성은 무엇입니까? ‘이거는 내 거야. 이거는 내 거지, 나의 것이야.’ 자녀도 내 것, 남편도 내 것, 돈도 내 것, 집도 내 것, 차도 내 것. 여러분이 지키고 싶은 그 자리는 사명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내가 지켜야 할 나의 공고한 성이 되었습니까?
8절 말씀을 봅니다.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_막 12:
농부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던진 행위는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가신 영문 밖 골고다로 걸어가시는 사명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3장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있어야 자리는 나의 기득권을 지켜야 하는 ‘포도원 안’이 아니고 사명이 기다리고 있는 ‘영문 밖’ 그곳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안주하고 싶은 그 자리는 어디입니까?
농부들에게 포도원은 더 이상 사명의 자리가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기득권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포도원 밖으로 내던졌다는 것은 매장지조차 허락받지 않은 비참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수치를 다 당하셨기에 우리는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가 되어, 나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바라보며 “내가 누군데, 니가 뭔데, 니까짓 게 뭔데?” 이처럼 혈기를 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키고 싶은 그 성에서 나와 이제는 영문 밖 사명의 자리로 나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는 않습니까? 9절 말씀을 봅니다.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_막 12:9
나의 성에 갇혀서 계속해서 주인 노릇, 주인 행세만 하고 있으면 결국에는 사명의 촛대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주인 행세를 내려놓고 청지기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미련하고 이상한 종족처럼 보이기에 성경도 그들을 가리켜서 ‘다른 사람’이라고 표현을 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 사람들과는 좀 다른 모습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너무나 세상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언제까지 포도원 안에서 주인 노릇을 하겠느냐? 이제 영문 밖으로 나가 너의 사명을 감당할 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영문 밖의 목장이 있고, 또 영문 밖의 섬김의 자리가 있습니다. 양육의 시즌을 맞이하여 힘든 사람을 10주 동안 섬기는 것도 영문 밖에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광주채플에 있는 한 집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이 집사님은 4년 전 남편의 외도로 서울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남편이 있는 시댁으로 내려가게 되셨습니다. 남편이 한 10년 전쯤에 잘 다니던 회사를 내려놓고 “나는 시골에 내려가서 낙지를 잡겠다”고 할 때 이게 이제 남편의 그 행동과 결정이 너무 한심하고 무시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 남편과 떨어져서 나는 서울에서 자녀들을 잘 키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6년 만에 남편의 바람 사건으로 주님께서 찾아오셨고 ‘남편이랑 그렇게 떨어져서 지내더니 결국은 이혼했네’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바람피우는 남편과 시부모가 있는 시댁으로 내려오게 되셨는데, 그때부터 공동체의 말씀을 들으며 세 아이를 데리고 멀리 장흥에서 매주 광주채플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남편과 시댁의 구원을 위해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부목자인 아내 집사님이 올려주신 최근 큐티 나눔을 잠깐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비가 오는 날이 싫습니다. 여기 낙지 철이 12월부터 6월 말까지인데 새벽부터 일을 합니다. 거의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매일 고된 바닷일을 합니다. 그러다 비가 오거나 비바람이 부는 날은 쉬는 날인데 비 오는 날 여기 술집은 사람들로 가득가득한 날입니다. 남편은 항상 날 궂은 날 외박을 했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에도 비가 많이 와서 남편은 외박을 하고. 오늘은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화요일 저녁 아이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그 여자 차가 큰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낙심이 되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병원에 다녀오신 어머님은 마지막 주사 치료를 마치셨는데 3개월에 한 번 CT를 찍고 예후를 지켜보면 된다고 하니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큰 아이 기숙사 이불이 와서 세탁하려고 하는데 세탁기 안에 못 보던 패딩이 하나 있는데 모 브랜드 옷이었습니다. 어머니께 “언니가 사주신 거예요?” 여쭈어보니 “그냥 누가 주더라” 하시면서 말을 흐리십니다. 그 여자가 사준 것 같은데 남편도 같은 브랜드 옷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저를 낙심시키고 정죄가 되고 가슴이 메어져 오고 저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큐티 말씀에 “에바다” 열리라고 하십니다. 저는 귀먹고 말 더듬는 자입니다. 남편을 보면 말이 나오지 않고 귀먹은 사람처럼 들리지 않아 얼굴을 봐도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됩니다. 제가 이러니 남편의 마음도 닫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풀려야 하는데 저는 아직도 귀를 닫고 입만 다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말씀이 들려서 귀가 열리고 혀에 맺힌 것이 풀리게 해주세요. 에바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치유 받아 온전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를 이렇게 싫어하는데 이혼을 해야 하나 떠나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말씀이 열려야 하는데 제 마음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제가 잘한다고 남편이 돌아오고 제가 못한다고 남편이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이 시간들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에바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저의 귀가 열리고 혀에 맺힌 것이 풀어지고 믿음의 중보자가 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어머님의 말씀에도 귀먹은 자가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적용: 시부모님 아침 차려 드리기, 아이들과 큐티하기, 집 깨끗하게 청소하기. 에바다 열리라. 아멘.
이렇게 큐티 나눔을 올려 주셨습니다. 환경이 크게 바뀐 것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아내 집사님을 사명자로 키워 가시는 줄 믿습니다. ‘바뀐 것이 뭐가 있냐’고 하실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믿음 안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큰 상급이 되고 쓸모없고 또 외면당하는 아내 집사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세워 가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Q. 주인 행세를 하며 내가 지키고자 하는 포도원 안은 어디입니까?
Q. 나를 사명자로 불러주신 영문 밖 사명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Q. 세상 사람들과 너무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려면 첫째 수치와 조롱을 잘 감당해야 하고, 둘째 영문 밖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고, 마지막 세 번째
3.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10-12절)
10절과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_막 12:10-11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시편 118편 22절에 기록된 말씀인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쓸모없는 돌처럼 배우자에게는 버림을 받고 자녀들에게는 무시와 냉대를 받고 세상에서는 더 이상 쓸모없는 돌처럼 취급받을 수도 있지만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허락하신 이 큐티 말씀을 주의 음성으로 듣고 나의 마음 판에 온전히 새기고자 할 때 건축자들에게 버림받은 우리의 인생들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나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기보다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그동안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나는 그래도 너한테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 네가 정말 인간이라면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기보다는 나의 열린 아니 뚫린 입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다 보니 불의 혀처럼 초가삼간을 다 태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왜 자꾸 금세 금세 까먹는 걸까요? 들은 말씀은 3일만 지나도 금세 까먹지만 배우자가 10년 전에 했던 말들은 하나하나 그냥 상처가 되어서 그냥 우리 마음 판에 다 새겨져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뇌 용량이 부족하기보다는 기억하고 싶은 말만 기억하고자 하는 우리의 죄성이 온몸에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광주채플에 다급한 기도 제목이 올라왔습니다. 어젯밤 11시경 아무개 집사님이 친구분들과 술을 마시다가 부목자인 아내 집사님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통화를 하시다가 남편 집사님이 아내에게 “함께 술자리를 하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얘기 좀 해달라” 하면서 이제 전화를 바꿔 주려고 하니 아내 집사님은 남편 친구들에게 괜찮은 척 하는 것도 싫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아직도 그러느냐”라고 말 한마디를 했는데 그 말에 남편 집사님은 빈정이 상했고 그러면서 시작된 온갖 비난과 욕설과 듣기 힘든 말들을 서로 퍼붓다가 남편이 아들에게까지 또 전화를 해서 힘들게 하고 아내 집사님도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냐”고 맞받아치고 급기야는 현재 사실상 별거 중에 있던 그 남편이 12시에 찾아와 현관문을 부수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긴급한 상황에 큰아들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를 잡은 채 바닥에 내동댕이를 쳤는데 남편은 지금 구치소에 감금된 상태라고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기도 제목이 단톡방에 올라왔습니다. 시시비비를 따지자면 남편 집사님이 잘못한 것이 더 많겠지만 남편 집사님은 겨우 목장과 교회에 붙어 가는 상황이었고 남편 집사님이 양육만 받으려고 하면 아내 집사님의 그 초를 치는 그 말 한마디에 목장도 파업하고 양육도 중간에 포기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제 또 양육 시즌이 임박한 가운데 또 남편이 양육을 신청했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 버린 거예요.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배우자가 내 인생에 쓸모없는 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 감정과 상처가 아닌 주신 말씀을 기억할 때 내가 요동치는 그 자리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받아주지 않는 아내 무대뽀의 남편이 문제인 것 같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건 앞에서 기억나는 말씀이 없고 이 말 저 말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스스로 건축자가 되어 3절 말씀처럼 심히 때리고 4절 말씀처럼 머리를 상하게 하더니 5절 말씀처럼 죽이기까지 주인 노릇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악함을 먼저 봐야 한다고 하십니다.
마지막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_막 12:12
귀신 들린 자가 금세 예수님을 알아본 것처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님의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임을 금세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귀신 들린 자가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요. 그런데 회개하거나 뉘우쳤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적개심을 가지고 예수를 잡고자 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예수를 두고 그냥 물러갑니다. 즉, 이들의 행동 기준은 깨달은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 거기에 온통 관심이 있어요. 이처럼 우리도 목장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말과 행동을 살펴봐야 하는데 실컷 나눔해 놓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볼까?’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말씀이 들리는 사람들은 ‘아! 내가 바로 그 악한 농부였구나! 아! 내가 지금 주인 노릇 주인 행세를 하고 있구나! 아! 내가 그동안 주의 종들을 핍박하고 머리를 상하게 했구나!’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말씀이 들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여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담임 목사님도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말씀이 나를 찌를 때가 가장 복된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죄가 드러나면 자존심 때문에 독기를 품고 말씀을 버리고 떠나고자 합니다. 사람 눈치를 보느냐고 회개의 기회를 놓치면 결국 진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내 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머무는 자가 가정을 살리는 머릿돌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읽고 기억하셨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큐티하며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사건이 해석됩니다. 읽기는 많이 읽어도 내 사건에 적용할 말씀 하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예수를 죽이는 건축자가 될 뿐입니다.”
적용질문
Q. 크고 작은 사건 앞에서 기억나는 말씀이 있었습니까?
Q. 말 한마디에 요동을 하거나 요동을 시킨 적은 언제입니까?
Q. 막말을 하는 배우자보다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음을 인정합니까?
지난 한 주간 말 한마디에 현관문이 부서지고 경찰이 출동하고 또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긴박한 상황 속에서 공동체의 식구들이 찾아가서 나눔을 하는 가운데 아내 집사님이 이런 고백을 해주셨어요.
저는 남편이 부부 목장에서 나눔할 때 저의 귀를 막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편은 술 친구들이 “형님은 그래도 행복해 보입니다” 하니 남편은 그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남편이 바꿔주는 전화에 몇 마디 보태면 되는데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 있기에 제가 던진 그 말 한마디에 술 취한 남편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들의 신고로 구치소에 감금된 죄인인데 저는 아들의 입으로 “아빠랑 이혼하라”고 부추긴 죄인입니다.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할 건지 조서를 쓰러 나오라고 한 그날 큐티인 본문 말씀이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로 부부가 한 몸인 것과 둘로 나누지 못하며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역지라고 외쳐 주시는 거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 사건이 드러난 남편이 죄보다 들추게 한 저의 숨은 죄가 더 크다는 마음의 회개가 되었습니다. 아들과 제가 밥도 못 먹고 낙심하고 있을 때 부부 목장의 목자님과 권찰님이 한걸음에 찾아와 주셨고, 아들은 “왜 목장에 가서 시간 낭비를 하냐? 차라리 일을 더 하는 게 낫지 않냐? 아빠의 이런 일들을 왜 굳이 교회에 가서 교회 사람들에게 말하냐?”며 불평과 불만을 토로했는데, 자신의 신고로 아빠가 구치소에 감금되고 위축되어 있는 아들에게 목장 식구들이 찾아와서 “너가 정말 잘했다. 신속하게 대처를 잘해서 큰 사고를 너가 진짜 막았다. 훌륭하다 잘했다.” 칭찬해 주시니 아들의 마음도 풀어지고 한동안 아들의 예배가 단절되어 있었는데 아들이 공동체에 대해서 조금 신뢰하는 마음을 갇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만 바랬던 별거의 초막이 아니라 엄마와 아내의 자리로 잘 붙어가고 연약한 남편도 양육받고 갈 수 있기를 기도 부탁한다고 나눔을 해 주셨어요.
지난 밤에는 사생결단 난리가 난 것 같았지만 말씀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주시니 당장 깨어질 것 같은 가정도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줄 믿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나에게 주신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이 우리 가정도 세워주시고 모퉁이의 머릿돌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겠습니다.
모통이의 머릿돌이 되려면 수치와 조롱을 잘 감당해야 하고, 영문 밖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고,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가운데 내 마음에 꼭 새기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무너진 가정들이 다시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 말씀 앞에서 경외함으로
주께 홀로 섭니다
생명의 말씀 읽고 순종해
주를 예배합니다
기록된 말씀 힘이 있어서
진리로 우릴 거룩케 하며
거룩한 말씀 세세 영원히
복음이 되어 말씀하시네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
한사람 찾으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
하나님 말씀에 인생을 거는 자
순종하며 주 따라가는 자
영원한 하나님 나라
이뤄갈 주의 교회여 일어나라
말씀 앞에서 경외함으로
주께 홀로 섭니다
생명의 말씀 읽고 순종해
주를 예배합니다
기록된 말씀 힘이 있어서
진리로 우릴 거룩케 하며
거룩한 말씀 세세 영원히
복음이 되어 말씀하시네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
한사람 찾으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
하나님 말씀에 인생을 거는 자
순종하며 주 따라가는 자
영원한 하나님 나라
이뤄갈 주의 교회여 일어나라
주 말씀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는 지혜이니
목숨과 내 뜻 다해
그 말씀에 복종하라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
한사람 찾으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
하나님 말씀에 인생을 거는 자
순종하며 주 따라가는 자
영원한 하나님 나라
이뤄갈 주의 교회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
기도제목
이 시간 우리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포도원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농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주님 것을 다 내 거로 여기며 나를 위해 죽어주신 주님을 박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함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이 땅에서 주인 행세 그만하고 이제는 주인 노릇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나에게 잠시 맡겨주신 귀한 생명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배우자를 쓸모없는 돌처럼 취급했던 나의 악함을 용서해 달라고, 내가 비록 쓸모없는 돌처럼 느껴질지라도 나에게 주신 말씀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훼파된 우리의 가정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버림받은 인생, 무너진 가정, 뿔뿔이 흩어진 가정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포도원의 청지기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인 줄 알고 착각하고 살다가 훼파된 환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고 하셨사오니 이 귀한 말씀을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굳게 붙잡기를 소망합니다.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이 귀한 말씀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성실한 청지기처럼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량없는 은혜로 오늘 주님께 드린 작은 예물이 영혼 구원을 위하여 사용되고, 우리의 사업과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에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나눠줄 것만 있고 드릴 것만 있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기도제목
A: 교회 목장 잘 적응 하고, 위로 받고 세례 받았는지 어머니께 여쭤 보도록
B: 주어진것에 감사하고, 스스로 사랑하도록
C: 친구가 많이 아픈데 고쳐주시고, 친구를 위한 기도하는 나를 살펴 보고 나를 위해 기도 하도록
D: 무시히는 친구들 불쌍히 여기고 미국 출장 잘 준비 하도록
E: 직장의 주인이 예수님인 것을 알고 스스로의 문제 집중 하지 않고 말씀에 약속 받아 평강 얻도록
F: 심판을 주님께 맡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