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2.(주일) 마가복음 7:1-13 「말씀과 전통」 김용호 목사님
모임인원 이진국 목자님 외2명
모임장소 카페 로쥬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첫째, 깨끗한 척하기 때문입니다(1-5절).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찾아왔는데, 꼭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파견된 것처럼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권위와 인기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내 자존심, 내 가치관, 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 하나 걸리는 거 없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현미경 보듯 예수님과 제자들을 감시했습니다. 우리도 내 기득권이 위협받으면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감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하나를 발견합니다.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_막 7:2
드디어 바리새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씻지 않고 먹는 ‘부정한 손’ 하나를 본 것입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 기적도 보여 주시고 천국 복음이 선포되는 이 엄청난 현장에서, 그들이 본 것은 고작 씻지 않은 부정한 손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온 목적 자체가 예수님을 책잡고 모함할 근거를 찾기 위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표적을 행하는 손이 아니라 부정한 손 하나만 보인 것입니다.
목적이 악하면 보는 눈도 악해지고, 은혜가 메마르면 눈이 나빠집니다.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도 은혜는 보이지 않고 사람의 허물만 보입니다. “저 집사님 간증은 왜 저래?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어? 어떻게 저렇게 말하시냐?” 구속의 은혜는 보지 못하고 세속적인 더러움만 찾아 정죄합니다. 우리가 진짜 봐야 할 것은남이 손을 씻었는지 안 씻었는지가 아니라, 내 속의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을 봐야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도 참 안타까운 것 같아요. 그런 것만 보이는 거잖아요. 행위 구원에 머물러 있으니 은혜를 모르고 구속사를 모릅니다. 제가 그랬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 그런 것만 보이더라고요. 한창 신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때 ‘사역자는 이래야 한다’는 나만의 전통을 세워서 정죄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거짓말을 참 많이 하는 거예요. 학교에서는 교회 갔다고 하고, 교회에서는 학교 갔다고 하고, 또 집에 연락하면 집에는 없고. “이 친구는 도대체 길 위에서 무엇을 하는 건가?” 그래서 제가 ‘그 거짓말을 고쳐 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거짓말하지 못하게 삼자대면까지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람을 아주괴롭히는 사람이에요. 나만의 전통으로 아주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후배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위아래 안 가립니다. 나의 더러움은 보지 못하고 그렇게 뭐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참 저는 더 큰 죄인이고 그런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을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았는데, 죽었다 살아난 경험도 있는데 제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나를 써 주신 은혜로 감사함이 보입니다. 우리 가정이 말씀으로 어떻게 살아났는지 매주일마다 보입니다.
지난주 미취학 영상 다들 기억하십니까? 자신의 혈루의 근원이 ‘혈기'라고 고백했던 아주 예쁜 집사님이 있었는데 그 집사가 저의 사모(아내)거든요. 자신의 혈루를 고백하게 된 은혜가 보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달라져야 해요.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배우자의 문제, 자녀의 문제만 보입니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만 보이십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봐야 합니다! 아직도 날 위해 일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봐야 합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우리 가정이 왔는지, 내가 왔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취학부 헌신 예배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우리 학부모님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여전히 우리 자녀들이 참 잘 못하는 모습들, 또 부족한 모습들, 실수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지요? 하지만 오늘 하루는 말씀 가운데 거하는 우리 친구들의 모습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예배드리는 모습, 큐티하는 그 모습을 볼 때 칭찬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죠. 너무 이쁘지 않습니까 진짜?마가는 전통을 따르는 유대인들을 이해하기 쉽게 주석을 달아 주었는데요, 그게 3절, 4절입니다. 그래서 괄호로 되어 있습니다.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_막 7:3-4- 3
당시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손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갔다 오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갔다 오면 그곳에 부정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꼭 몸을 물로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리고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으로 부정한 사람이 만질 수도 있으니까- 씻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여러분 듣기에 어떻습니까? 이게 잘못된 것입니까? 제가 결혼하고 많이 혼난 부분이 있는데 제가 손을 잘 씻지 않거든요. 그래서 많이 혼났습니다. 특히 자녀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바이러스에 약하기 때문에 손을 잘 씻어 주라고 했는데 저는 오늘도 손 씻지 않으면서 “출발할 때 씻고 왔다”라는 변명으로 그렇게 잘 지키지않았어요. 그래도 지금은 적용을 잘하고 있습니다. 손을 잘 씻으니까 우리 가족을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데 유익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들이 옳은 말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_막 7:5
여기서 ‘묻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로토신'은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단어가 아닙니다. 죄인을 고소할 때 사용하는 단어예요. 그들이 수백 리 길인 예루살렘으로부터 오직 예수를 책잡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내 안에 은혜가 없으면 멀리서부터 지체의 허물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부라리며 달려옵니다. 오늘 내가 가족에게 묻는 질문은 살리기 위한 심방인지, 아니면 정죄하기 위한 취조인지 깊이 묵상해 봐야 합니다.
사실 모세 율법 어디에도 일반 백성이 식사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원래 손을 씻는 정결 예식은 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을 위한 규례였습니다. 짐승을 잡아 피 묻은 손을 씻으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율법학자들은 이것을 일반 백성에게도 강요하며 ’전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율법을 더 잘 지키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관습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희미해지고 사람들이 만든 전통이 말씀보다 더 높이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벽증처럼 행위적으로만 깨끗이 씻었어요. 겉은 깨끗할지 몰라도 정작 그 속은 자기 의가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부정함을 씻는 겸손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열심히 씻었는데 너는 왜 안 씻냐?” 자기 의가 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좋은 전통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새벽 예배있는데요. 하루 시작하기 전에 예배당에 나가 말씀을 듣고 우리 가정을 위해, 또 이 나라를 위해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얼마나 좋은 전통입니까? 또 제가 졸업한 신학교에도 좋은 전통이 있었는데 누굴 만나든지 몇 번을 만나든지 인사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학교가 작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만나도 서너 번씩 인사를 하는 거예요. 저희 집에도 좋은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료를 좀 준비해 봤는데요. 『임씨 집안의 절약 정신』. 저는 ’김씨‘인데 왜 ’임씨‘냐고 했냐면 저 정신은 저희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에요. 저희 어머니가 ’임씨‘거든요.
절약 정신은요,
⓵소변 한 번으로 물을 내리지 않아야 합니다. 두세 번 눠야 물을 내릴 수 있어요. 한 번 넣고 물 내리면 “왜 물값 아깝게 물을 내리냐?” 그래도 물이 너무 노라면 내릴 수 있습니다.
⓶그리고 또 화장실 쓸 땐 불을 켜지 말라고 하십니다. “문 열어 놓고 싸라. 씻을 때도 문 열어 놓고 씻어라.” 밤에만 오직 불을 켤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요즘에는 불 켜는 스위치 밑에 환풍기가 있잖아요? 그거는 테이프로 막아 놨습니다. 그건 틀지 말라고.
⓷그리고 화장지는 세 칸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두 칸은 찢어지니까 안 되니까 세 칸만 사용하라는 거예요. 네 칸은 안 됩니다. 혼나요. “휴지 왜 이렇게 많이 쓰냐?”는 거예요.
⓸그리고 수건은 한 번 사용하고 빨면 안 되는 거예요. 말려서 써야 되는 거예요. “냄새나기까지 말려서 잘 사용해라.”
⓹또 옷도 한 번 입고 빨면 안 됩니다. “네가 빠냐? 얼마나 빨래가 많은데 더 입고 빨아라.” 생각보다 옷이 한 번 안 빨아도 오래 입을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또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빨래를 하지 말라는 것이죠. 오직 세탁기는 ’탈수용‘으로만 사용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손빨래하고 계시거든요.
이렇기 때문에 제가 아내를 굉장히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도 많이 고쳐졌는데 여전히 아직 안 고쳐지는 부분이 빨래 부분이에요. 그래서 한 번 빨래를 하면 아내는 서너 벌씩 빨랫감이 나오는데 저는 속옷 한 장 나옵니다. 저는 아주 씻지 않는 손에 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저희 딸은 저를 닮아 절약 정신이 투철해요. 그래서 불이 켜져 있으면 “지구가 아프다!”며 항상 불 끄기 바쁩니다. 아끼는 건 너무 좋죠. 절약해야 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는 아끼는데 넌 왜 아끼지 않냐? 너는 누구 닮아서 그렇게 예의가 없냐?
나는 깨끗한데 너는 왜 더럽냐?” 비난하고 정죄하는 게 문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왜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며 비난하며 정죄합니다. 깨끗한 척, 잘난 척, 구속사를 다 아는 척하는 나의 위선을 봐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 오래 있었다는 것이 나의 훈장이 되어 갓 들어 온 지체들을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잣대로 정죄하고 있지 않은지,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우리들교회 스타일이라고 또 다른 율법으로 공동체를 숨 막히게 하는 나의 위선적인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랬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해야 할 말들이 있죠. 그런데 우리는 옳고 그름으로 정죄하는 게 문제입니다.
사람을 비방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깨끗이 씻어야 할 더러움입니다.
▪ 적용 질문
Q. 거룩한 척, 행복한 척, 깨끗한 척하며 ’외식‘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Q. 유독 남에게 엄격하게 들이대는 ’전통‘이나 ’율법‘이 있습니까?
Q. 요즘 내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지체들의 ’살아난 간증‘이 보입니까, 아니면 ’말투나 옷차림, 예의 없음‘이 보입니까?
Q. 남의 허물이 보일 때 그것이 나의 내가 회개해야 할 ’나의 더러움‘임을 인정하십니까?
말씀보다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두 번째 이유는,
둘째, 핑계(고르반) 대기 때문입니다(10-13절).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_막 7:10-11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뜻하는데, 오늘날 하나님께 드려지는 ’특별 헌금‘과 같습니다. 자신의 재산 중 어떤 것을 구별해서 “고르반”이라고 선포하면 다른 목적으로 절대 사용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을 때 그것을 악용하기도 했고, 고르반을 명분 삼아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은근슬쩍 어겼습니다. 그래서 누가 달라고 하면 “이건 하나님께 드린 거야! 고르반!” 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거룩한 핑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돌보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교회 일이 많아서 가족 돌볼 시간이 없어요” 말합니다. 이것이 ’현대판 고르반 신앙‘입니다. 내가 하기 싫은 마음을 감추려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아내도 다 알아요.
당시 율법은 부모 공경을 아주 엄격하게 명령했는데 얼마나 엄격했냐면 “부모를 모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번 명절에 부모님을 공경하셨습니까? 만약 부모를 모욕했다면 다 죽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섭게 말씀하신 이유는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육신의 부모는 나를 이 땅에 오게 한 생명의 통로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를 돌보는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모욕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날 힘들게 하고 못살게 굴어도 그 사건을 통해서 예수 믿게 해 주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보여 주신 예시처럼 이혼 증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여인들이 남편에게 버림받아 돌에 맞아 죽을 것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인 이혼 증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살리는 법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이혼 증서를 써 주며 합법적으로 아내를 버릴 수 있다며 자기 정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처음엔 신앙고백으로 “고르반” 했을 거예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진정성은 상실되고 남 주기 싫고 설령 그것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일지라도 드리지 않아도 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나는 가족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고르반!” 하고 “교회 다니면 됐지, 이 정도 하면 됐지” 하는 모습들이 있지 않습니까?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_막 7:12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한 자녀가 부모에게 화가 났다고 “고르반” 외칩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가 잘못한 거예요. 그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 이제 부모님께 드리겠다고 한다고 해도 “안 돼!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
지! 이건 이미 하나님 거야! 부모님한테 주면 신성 모독이야!” 바리새인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율법을 핑계로 회개를 막는 것입니다.
저도 아내와 다툴 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사과를 하면 아내가 자기 잘못을 깨닫지 않을까 봐 사과를 스스로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또 상대방이 회개할 기회를 막는 것과 같아요. 내가 세운 기준과 원칙이 회개하고 돌아올 다리를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번 고민해보세요. 나는 지금 무엇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까?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_막 7:13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 처분했습니다. 이것이 어쩌다 한두 번 실수한 것이 아니라 뭐라고 합니까?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한 것을 보니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저지른 죄입니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할 때가 있습니다. 운전할 때 자주 그러죠. 차 안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성경책을 놓고 운전하지만 험하게 운전하고, 불법을 행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차로까지 이어집니다. 교회 앞에 불법주차를 많이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르반 신앙‘이라는 거예요.
오늘은 취학부 헌신 예배이기 때문에 특별히 우리 교사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오늘 또 취학부뿐만 아니라 교육국을 또 섬기시는 우리 선생님들 이 자리에 계실 텐데 너무 고생 많으십니다. 또 주일도 이렇게 섬겨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그런데 오늘 말씀이 핑계 대지 말라고 하네요. 섬긴다고 가정을 덜 돌보시면안 됩니다. 핑계 대지 않아야 해요. 또 핑계 대며 지각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교사 회의부터 꼭 가시길 바랍니다. 또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 심방도 해 주시길 바라요. 고르반 교사가 되지 않길 소망합니다.
▪ 적용 질문
Q. 내가 ‘하나님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Q. 내가 세운 전통 때문에 배우자나 자녀가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내가 세운 엄격한 잣대가 회개를 허락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십니까?
전통보다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6-9절).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_막 7:6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십니다. 헬라어로 이 말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라고 우리가 많이 들었잖아요? 굉장히 센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역자인 저한테는 사역자 행세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닙니까? “그러고도 우리들교회 목자야!” 오늘 깨끗한 척, 하나님 핑계 대는 우리에게 ‘외식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은 멀기 때문입니다.
오늘 손을 씻기 위해 이 예배의 자리를 찾았지만 정작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심습니다. 바리새인은 책망과 율법을 심었고, 예수님은 말씀과 생명을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무엇을 심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메말라 가고 자기만족과 과시,인정중독과 세상자랑, 주식과 도박을 심으며 가꿉니다. 당연히 자기 계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심고 가꾸어야 하죠. 하지만 말씀이 기초가 돼야 하는데 사람의 전통으로 지키느라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져 있으니 입술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 속은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또 입술로는 “주여! 주여!” 외치면서 정작 내 가족의 아픔은 보지 못하는 거예요.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_막 7:7
‘사람의 계명’은 쉽게 말해서 세상적인 가치관을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도 세상적인 가치관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의 배우자감을 찾을 때에도 “예수 믿어야지. 하지만 돈도 있어야지”, “믿음 좋아야지. 하지만 더 좋은 직장도 있어야지.” 합니다. 최근 ‘합숙 맞선’이라는 프로를 제가 보았는데 엄마와 함께 남녀가 5대 5로 맞선을 보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모든 부모가 보는 것이 똑같더라고요. ‘능력’만 봅니다. 그래서 어떤 한 남자가 자기 직업을 밝혔는데 변호사인 거예요. 와- 그랬더니 여자 쪽의 엄마들이 다 변호사한테 자녀들을 앉혀 놓는 거예요. 자기 딸하고 맞선 보라고. 그걸 보면서 ‘와- 진짜 난 다행이다. 우리 장모님 대단하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저의 경제적인 어떤 그 부분도 물어보지 않으시고 “왜 사역자가 되었냐? 사명은 뭐냐?”만 물어보셨거든요. 그리고 우리들교회에 오신 지 1년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오지 않고 계세요. 제가 아직도 하나님의 계명을 보이지 못하고 사람의 전통도 보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번 고민해 보세요.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교훈 삼아 자녀를 가르치고 있습니까?
교회에서는 “믿음만 있으면 결혼해라, 가스버너만 있으면 결혼해라” 하는데 부모님께서는 “믿음만 보면 안 된다! 그게 지혜가 아니다!” 그렇게 가르치니 자녀들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십니다. 아무리 목장을 섬기고 열심히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여도 내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그 모든 행위는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 방식으로 살면서 “성공하게 해 주세요, 자녀가 잘되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경배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안 되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건 머릿속으로 아는데 참 행동으로 안 되는 부분들이지요. 그래서 진짜 예배는 내 고집이 무너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돈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자존심이 생명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씀을 보 니까 내 우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내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아무리 손을 깨끗이 씻어 봐야 더러워진 마음이 씻어질 수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회개할 때 더러워진 마음을 씻을 수 있습니다.물론 겉으로 드러난 잘못된 모습들-술 담배 성실하지 못한 모습들-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짜 씻어야 할 것은 드러나지 않는 모습,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세상적 가치관, 고집, 나만 알고 있는 더러운 마음입니다.그렇게 마음을 먼저 씻을 때 술 담배 같은 씻어야 할 외적인 부분들도 씻겨질 줄 믿습니다.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_막 7:8-9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이자 핵심입니다. 결국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잘못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버리다’는 것은 ‘방치하다’라는 뜻이에요.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지 않았어요. 예배도 드리고 큐티도 합니다.” 그게 아니에요. ‘방치했다’는 거예요. 세상 정보를 위해서 내가 말씀을 방치하고 예배를 방치하고... 그게 내가 예배와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그들은 왜 전통을 이렇게 목숨처럼 지킬까요?
전통이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나는 이렇게 깨끗하게 살았다’라는 자부심, ‘나는 저 세리들과는 다르다’라는 우월감이 그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와서 “그거 가짜다, 외식이다” 하니까 자신들의 존재 가치가 무너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 자존심, 내 계획, 내 돈을 빼앗길까 봐 바들바들 떨며 꽉 붙잡고, “서로 사랑하라 용서해라 회개하라” 주님의 계명은 너무나 쉽게 방치합니다.
오늘 본문에 ‘전통’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오는데 ‘장로들의 전통, 너희의 전통, 사람의 전통’ 이렇게 ‘전통’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내가 만든 전통이 그만큼 많다라는 거예요. ★내 가치관, 내 자존심, 내가 세운 전통이 무너지지 않으면 하나님
의 계명이 내 안에 와서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내 삶에 살아 숨 쉬려면 내가 무너지고 썩어져야 합니다. 내가 움켜쥐고 있는 내 생각을 내려놔야 비로소 말씀을 붙잡을 수 있어요.
★결국 마음을 씻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전통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듣습니까? 듣질 않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양육하시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예수님 옆에 누가 서 있습니까? 제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렇게 얘기함으로써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육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도 목장에서 한 사람만 많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얘기하다가 목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한 사람만 얘기하다가 아무것도 얘기하지 못하고 왔어” 이럴 때가 있지요.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우리에게 최고의 훈련이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한테 왜 그렇게 얘기하나?’ 아니요! 곁에선 우리가 훈련되는 거예요.
이처럼 예수의 제자와 같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바리새인과 같은 내가 오늘도 들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나이지만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내 배우자를 위해 또다시 오늘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와 배우자가 “목자까지 되었는데도 똑같다”고, “그렇게 우리들교회 오래 다녔지만 변한 게 없다”고 나를 고발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양육을 위해 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비록 영광만 좋아하고 예수님 우편에 서기만을 좋아하는 제자들이지만, 또 십자가 앞에서 다 떠난 제자들이지만, 오늘도 보세요. 어부 출신으로 무식해서 손을 씻지 않고 먹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잖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너무 무식하고 진짜 아는 게 없어요. 그런데 옆에서 양육 잘 받고 있으면 진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취학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사랑하는 우리 취학부 친구들, 우리 가정에 찾아온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한번 봅시다. 지켜봅시다. 오늘 간증했던 별이네 가족도 2년 전에는 심방 자리 아빠가 오지 않았다니까요. 8년 동안 집을 나가 계시다가 오늘 이 자리 가운데서 간증을 하시잖아요. 이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렇게 듣다 보면 보고 있기만 하다 보면 예수의 제자가 되어 있을 거예요.
▪ 적용 질문
Q. 절대 놓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승진, 체면, 자존심, 성공 등)
Q. 나는 지금 무엇을 저버렸습니까? 다시 지켜야 할 계명은 무엇입니까?(용서, 사랑, 인내 등)
Q. 우리 자녀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오늘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목장나눔
적용질문
1. 깨끗한 척하기 때문입니다(1-5절).
Q. 거룩한 척, 행복한 척, 깨끗한 척하며 ’외식‘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Q. 유독 남에게 엄격하게 들이대는 ’전통‘이나 ’율법‘이 있습니까?
Q. 요즘 내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지체들의 ’살아난 간증‘이 보입니까, 아니면 ’말투나 옷차림, 예의 없음‘이 보입니까?
Q. 남의 허물이 보일 때 그것이 나의 내가 회개해야 할 ’나의 더러움‘임을 인정하십니까?
가.
ㅇ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아예 말 하지 않는 외식과 교만함이 있음.
ㅇ 깨끗함, 청결 등에 민감하여 씻지 않는 것을 싫어해 정죄하는 모습이 있음. 이번에 어떤 계기로 씻지 못할 상황이 있었는데, 그런 환경에 놓여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청결에 대해 정죄했던 일들이 떠올랐음.
ㅇ 목원들과 서로 알아가는 기간이다 보니 살아온 환경에 대해 알게 되었음. 겉모습도 보이고, 보이는 부분으로 판단하기도 했었던 것 같음. 개인적으로는 율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말이 씨가 되어 주변에서 나를 평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ㅇ 더러움을 정죄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을 외형으로 판단하지 않으려 함. 허물이 보일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함
나.
ㅇ 회사에서 거룩한 척 하는 것 같음. 회사 매출이 좋지 않아서 누군가는 퇴사가 필요한데, 빌런행동을 많이 하는 동료가 있음. 전체적으로 그 사람을 외톨이를 만들고 있는 상황인데, 직접 개입하지 않고만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동조하게 됨.
- 관계에 있어서 선 긋기가 중요하지만, 무리의 행동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듦. 참으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 함께 동조하지 말고 기도와 큐티 필요.
- 경계가 필요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목장에 나누면 좋을 것.
ㅇ 예의 없음이 보임. 섬김부서에서 오해로 인해 언쟁이 있었음. 예의 없는 사람을 안보려고 함.
- 스스로 판단해서 피하지 말고, 기회가 되면 대화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볼 것. 판단하거나 싸워 해결하려 하지 말고, 내 혈기를 먼저 보아야 할 것. 이 문제에 대해 회개하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
ㅇ 내가 회개해야 할 나의 더러움임이 인정이 됨.
다.
ㅇ 여러 가지 척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척들이 교회에 처음 와 나눔할 때 많이 드러났던 것 같음. 행복한 척, 거룩한 척을 많이 하니 나눔이 잘 되지 않고, 수치를 드러내기 싫어서 더 척을 많이 했었음. 예전에 비해 척하는 것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말씀듣고 큐티를 통해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니 그렇게 된 것 같음.
ㅇ 가족들이 화내거나 싸우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나는 평화주의자라고 생각 했는데, 오히려 내가 화내고 참지 못하는 것은 그냥 넘겼던 것 같음. 나는 되고 남은 안된다고 생각했고, 내가 화내는 것은 화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지 않은 일에 대해 얘기 하는 것이라 여겼던 것 같음.
ㅇ 큐티 하면서 사람들이 살아난 간증도 많이 보게 되지만, 주로 직장에서 예의없는 행동이나 말투 등으로 동료들에게 잣대를 들이대고, 판단 했었음. 정작 내 모습은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알고 깨달아 지는 순간이 있었음. 그래도 큐티를 하다 보니 말씀으로 나를 되돌아 보게 됨.
2. 핑계 대기 때문입니다(10-13절).
Q. 내가 ‘하나님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Q. 내가 세운 전통 때문에 배우자나 자녀가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내가 세운 엄격한 잣대가 회개를 허락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십니까?
가.
ㅇ 오늘 말씀을 들으며 떠올랐던 것이, 부모님과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부모님이 편히 교회 가실 수 있도록 모셔다 드리고 교회에 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엄. 섬김부서에 와야 하고 나도 교회를 와야 하니 시간이 없다고 하며 모셔다 드리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 한편으로는 부모님과 함께 우리들교회에 같이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는데, 어떤 게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음.
ㅇ 혈기가 올라올 때를 생각해보면, 내 계획을 누가 틀면 혈기가 생김. 보통 어머니가 내가 생각한 계획에 대해 반대하거나 다른 생각을 많이 얘기 하셔서 예전 목장에서 나눌 때 엄마와 의견조정이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는 처방을 받았음. 어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엄마를 잘 알게 되었음. 현재 훈련이 70%정도 까지 왔다고 생각이 들며, 입다무는 적용을 하게 됨.
또 그 과정에서 엄마도 많이 참아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엄마를 다시 보게 되었고, 훈련은 계속되는 중임.
나.
ㅇ 교회간다는 핑계로, 해야 할 일을 물어보지 않고 피하게 됨. 아버지께서 지방일정으로 출장이 있으셨는데, 도와드려야 할 부분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음
- 적용으로 아버지를 더 이해해 드리고, 말씀으로 해석해 보려는 노력을 할 것
ㅇ 아버지에게 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음. 아버지께서 일찍 주무시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요리를 하시는데, 내가 자고 있는 시간에 요리를 하셔서 소음 등으로 수면이 방해 되니, 아버지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었음. 하지만 아버지께서 가족들에게 손수 요리를 해 주시고, 한끼라도 가족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해 주려 하시는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을 다무는 적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듦.
ㅇ 좋은 모습은 보지 못하고, 안좋은 모습을 보려고 했었다는 생각이 들며 회개가 필요함.
- 거짓 화평이 끝났을 때, 진짜 화평이 올 것
다.
ㅇ 가족들에게 개인적인 약속에 대해 적당히 핑계댈 것이 없으면 주로 교회간다고 했던 것이 내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 같음.
ㅇ 시간 약속을 무조건 잘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을 해서 조금만 늦어도 약속 나가기 전부터 가족들을 괴롭히고, 기분 나쁘게 만들때가 있음. 성격이 급하고, 기다려 주지를 못해서 가족들이 힘들었을 것.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내 말이나 행동으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말씀을 되새길 것.
ㅇ 엄격한 잣대 때문에 내가 잘했다고 늘 생각해 왔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회개가 더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듦.
3.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6-9절).
Q. 절대 놓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승진, 체면, 자존심, 성공 등)
Q. 나는 지금 무엇을 저버렸습니까? 다시 지켜야 할 계명은 무엇입니까? (용서, 사랑, 인내 등)
Q. 우리 자녀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오늘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가.
ㅇ 나태한 마음을 움켜쥐고 있었음. 서서히 깨주고 계신데, 지금 상태로 안된다는 것을 느끼고 기도 하게 해주심. 혼자되지 않는 것은 동역자를 붙여주신다는 생각이 듦.
ㅇ 나태해 져서 부지런함이나 계획적인 삶 등을 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듦. 이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 할 것.
ㅇ ‘내가 바리새인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말이 씨앗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그런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으려고 함. 율법주의적인 것들이 드러나 목장과 지체들과 사건을 통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듦. 이번 수련회를 통해 몰랐던 회개가 8년 만에 이루어 졌는데, 내게 큰 울림을 주었고, 회개도 하게 해주시는 때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나.
ㅇ 건강. 가족. 성공 등을 움켜쥐고 있음.
건강은 회복중에 있음.
어머니께서 병원에 다니시는데, 엄마가 곁에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들어 불안한 마음이 있음. 가족과 건강을 위해 기도가 필요함.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 내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데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음.
- 움켜쥐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해야 할 것.
ㅇ 용서와 인내가 필요. 내가 세운 잣대를 내려놓고 용서하고 인내 해야함 입 다무는 적용 필요
다.
ㅇ 정말로 마음에서 내려놓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것을 움켜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듦. 그중에서도 가족이나 건강은 특히 내려놓기가 힘듦. 엄마가 고향에 혼자 계신데, 늘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고, 엄마의 구원과 건강에 대해 기도하고 있음.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음이 부족함.
ㅇ 인내심이 많이 부족한 편임. 기다려주지 못하고, 내가 빨리 해버리려고 해서, 늘 좀 기다려보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 다른사람에게도 시간과 기회를 주고 내가 해야 된다, 지금해야된다 하는 생각을 좀 내려놓고 인내심을 가지는 적용을 해야한다고 생각함. 하나님께도 맡기고 안심해야 하는데, 매사에 성격대로 하니 하나님께도 맡겨드리지 못했다는 생각도 듦.
ㅇ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꾸준히 큐티하고 기도하며 인내를 가질 것.
목장 중보기도 제목입니다.
같이 중보기도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가
1. 실력 있는 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길
2. 신교제, 신결혼
3. 기도로 책 집필 할 수 있도록
4. 사업과 학교 강의와 아이디어 위에 기름 부어 주시길
5. 아버지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되시도록
6. 간호하는 어머니 힘주시고 지치지 않으시고 목과 허리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하시도록
7. 부모님 잘 주무실 수 있도록
8. 누나가 배 염증 속히 회복하도록
9. 형 발목 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나
1. 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 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제 동생 가족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3. 요즘 양쪽 어깨가 많이 아픈데 치료 잘 받고 후유증 없게 해달라고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4. 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5. 아버지 현재 지방에서 근무하는데 몸 건강히 안전하게 일하고 주말에 집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다
1. 주님이 예비하신 귀한 형제님을 만나 주님의 사랑을 받는 교제와 결혼을 하게 해 주세요
2. 설날에 엄마와 오빠를 만나 좀 더 친근한 분위기를 갖게 해 주심 감사 기도 드립니다
3. 봄이라 일이 많아지고 있는데 일정 조율 잘하고 제가 해낼 수 있는 체력을 주시고 계속 길러 주세요
4. 양육을 받아야 하는 게 압박감으로 다가오는데 제가 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빠지지 않고 끝까지 잘할 수 있게 주님 도와주세요
5. 엄마가 식사 잘하시어 지금의 건강 꾸준히 유지되게 해 주시고 오빠는 일 할 때 항상 안전 운전하며 다니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상하지 않게 돌봐주시고 저는 예민한 장이 많이 좋아져서 살이 찌고 건강해지고 있는데 이 건강을 계속 유지하도록 주님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