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8.(주일) 마가복음 3:31-35 「가족」 신승윤 목사님(요약)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아버지 하나님, 오늘 예수님의 가족은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가정을 이루었으며, 또 이루어 가야 할 우리 모두가 가정의 목적에 대해 깨닫고 가족에게 구원을 전하기로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위드 큐페 영상)
마가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은 기쁜 소식이잖아요. 지금 예수님을 통해서 그 척박한 땅 그 식민지 이스라엘에 천국 잔치가 시작됩니다. 말라기 이후에 400년간 침묵하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회개와 죄 사함의 복음이 선포되고, 귀신이 쫓겨가며 자격 없는 이들이 제자로 세워지고요. 몸과 마음의 병이 치유되는 잔치입니다.
그런데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신의 그 지위를 내려놓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이 잔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참여하지 못하는 부류가 더 있습니다. 나는 이 잔치에 참여해서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지는데 누구보다 함께 누리고 싶은 내 친족과 내 가족이 이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제 말씀에 나오죠. 예수님의 친족은 예수님을 붙잡으러 옵니다.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_막 3:21
여기서 ‘붙잡는다’는 그저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체포하여 감금한다는 뜻이거든요. 억지로 데리고 간다는 뜻이죠.
지금도 가문이나 집안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중요하잖아요. 그때는 당연히 지금보다 더 심했겠죠. “너희 집안 사람 미쳤더라” 이 소문이 들리자 사실인지 아닌지 중요하잖아요. 따지지 않아요. “우리 가문의 망신이다! 내 이름에 먹칠을 했다!” 이 생각이 드니까 순간 바리새인 서기관과 딱 하나가 되어 버려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더더욱 안타까운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세월 동고동락했던 육신의 친어머니와 동생들도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해요. 예수님은 오늘 이 가족과 둘러앉은 사람에게 진짜 가족, 참된 예수님의 가족은 누구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여러분, 이제 다음 주면은 가족을 만나러 갑니다. 지금 너무 신경 쓸 것 많으시고 분주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 잠시 멈추고 오늘 말씀 앞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주님께서 배우자와 자녀, 부모를 이 땅에서! 이 한 번뿐인 삶에서 그 사람을 왜 만나게 하셨는지 가족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분명한 구원의 사명을 붙들고 그렇게도 사랑했으며 또 미워했고요. 또 애통했던 가족을 만나러 갑시다!
가족으로 만난 목적을 알려면요. 첫 번째로,
1. 밖에 서 있는 가족을 보아야 합니다(31-32절).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_막 3:31-32
예수님의 소문이 이스라엘 온 땅에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요.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새 교훈을 선포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세요. 장소가 이제 산에서 집으로 바뀌는데 집 앞도 예수님을 만나고자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이때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아마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들었겠죠. 바빠서 너무 바빠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니까 걱정이 되었겠죠. 손에는 어릴 적 예수님이 좋아했던 음식 몇 가지가 들려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디 있어요? 밖에 있습니다.
▪ 마리아와 가족이 밖에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⓵ 먼저는 말씀과 멀어졌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혹시 ‘수태고지(受胎告知)’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누가복음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남편이 될 요셉과 약혼을 하고 결혼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요. 그래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건데 이름을 예수라 지을 것이며 장차 이 아들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어 갈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마리아는 “내가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해요.” 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수태고지죠.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너무나도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어요. 그런데 지금 밖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아래에 있는 동생들도 함께 밖에 서 있는 거예요.
본문에 기록된 ‘밖에’는 원어로 ‘엑소’거든요.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엑시트(exit, 출구)의 어원이에요. 출구, 탈출구는 한 공간이 있고 거기에 완전히 단절된 다른 공간을 말하잖아요.
마리아가 점차 생활과 세월과 사건에 치여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던 그 약속의 말씀을 놓아버렸어요.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의 사역도 도대체 이해하지를 못하고, 자신도 구원의 잔치 그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구원에 감격하는 잔치에 참여하지를 못해요. 그 결과 예수님과 단절된 공간, 즉 밖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금 밖에 있지는 않습니까?
마리아에게 분명한 표적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이 들려서, 너무 감사해서 자복하며 회개하고, 엎드려서 눈물 콧물 다 쏟았던, 그래서 회개의 감격으로 하루를 살았던 내 삶의 표적이 있습니다.
허나 사연을 넘어서지 못하고 세상에 너무 좋은 것이 많아 점점 말씀과 멀어지는 것이 지금 내 모습이 아닌가 점검해야 합니다. 간절할 때 그렇게도 붙잡았던 큐티를 놓아버렸다면, 말씀을 들어도 회개와 감격이 없다면 우리 다시 말씀으로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⓶ 마리아와 가족이 밖에 있는 이유는 다음으로 기대와 자랑 때문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데 원어에 보면 참 독특한 표현이 하나 있어요.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 서 있다’ 이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그 앞에 정관사 '그'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어요. 우리가 흔히 '바로 그 사람' 이렇게 하잖아요. 특정 대상을 높이는 거예요.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당연히 예수님은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겠죠. 지나갈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따르고 쳐다보는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가족이 온 거예요. 그래서 가족이 밖에 있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요. "바로 그 어머니 그리고 그 동생들이 밖에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가족은 나사렛 시골 목수 집안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던 시절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경외와 존경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바로 저 사람이 예수의 엄마란 말이야? 예수의 동생들이란 말이야?" 그 시선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때 한마디 하는 거죠. "내 아들 좀 나와 보라고 해요." 지금 이 순간 가족에게 예수님은 나의 열등감과 그동안의 사연을 해소해 줄 도구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이 얼마나 중요한 사역을 하시는지,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나 같은 실수 반복하지 마라"는 말 뒤에 내 욕심을 감추고 자녀와 배우자를 자랑의 이유로 삼는 것은 나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려는 가족도 밖으로 끌어내는 힘을 가집니다. 자녀와 배우자가 잘되는 것은 복이에요. 하지만 오직 이것만 목적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자녀와 배우자가 구원받는 것보다 이 땅에서 잘되는 것에 점점 내 관심이 기울어지고 있다면 ‘지금 내가 밖에 서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 뜻을 이루어 줄 거야",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줄 거야" 오직 이 문제로 울고 웃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면 우리 다시 구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식구가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날 한밤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죽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한 형제를 만나러 갔었어요. 보니까 마흔이 넘은 분인데 옷이 다 찢겨 있고 팔뚝 살이 다 벗겨져서 피가 계속 나는 거예요. "어머니하고 싸워서 이렇게 됐니?" 물었더니, 성질이 나서 본인이 자기 옷을 다 찢었대요. 그리고 모기가 팔을 물었는데 "너까지 나를 쏘아붙이냐!" 그러면서 박박 긁다가 피부가 다 벗겨질 정도로 긁었다고 합니다. 말을 들어보니까 본인은 어릴 때부터 알아주는 영재였고 부모님의 많은 사랑을 받았대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이 망하고, 누나는 진작 결혼해 나갔으며 남은 본인은 어떻게든 해보려는데 잘 안 되더래요. 뭘 해도 안 돼서 너무 답답한데 그때부터 어머니가 너무 쏘아붙이고 잔소리를 해서 살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다 그날은 분노가 극에 달해서 죽음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면서 참 안타까웠어요. 사연이 없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머니는 배우자를 갑자기 여의고 그 하나뿐인 아들에게 얼마나 기대를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들은 뭐라도 해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우리 가족 대부분의 다툼이 이런 것 아닙니까? 안 해본 게 아니라 해봤는데 각자 기대와 생각이 다르니까 다투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서로 기대만 하니까 나도 밖에 있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끄집어냅니다.
며칠 전에 이 이야기를 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으려고 형제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양육도 받고 목장에서 나누면서 문제의 근원이 집착이 아니라 본인의 주체할 수 없는 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자매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용서하는 나눔을 들으며 자신을 많이 돌아보았다고 해요. 그리고 어머니와 큐티 나눔을 하라는 처방을 받았는데, 이건 아직 안 된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줬습니다.
이렇게 어느 한쪽이라도 안으로 들여오려는 애씀이 결국 밖에 있는 가족을 안으로 들어오게 할 시작이 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가족은 구원을 위해 맺어주신 만남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모르면 기대와 자랑이 가족의 이유가 되는 거예요. 점점 말씀과 멀어지고 가족에 대해 기대와 자랑만 커져 간다면 "아, 내가 지금 밖에 있구나" 인정하며 돌이켰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과 친척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위드 지체들이 많아요. 여러분, 기대는 조금만 내려놓아 주시고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조금만 참아주시면서, 믿음과 인내로 허락하신 만남의 때를 준비하는 자녀들을 잘 기다려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말씀 듣는 구조 안에서 기대와 자랑을 내려놓고 함께 동행하는 가족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소망하겠습니다.
▪ 함께 묵상하며 적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Q. 지금 밖에 서 있는 가족은 누구입니까?
Q. 우리 집안의 가훈이 있습니까?
Q. 그 가훈을 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까?
가족으로 만난 목적을 알려면 둘째,
2. 둘러앉은 자리로 불러야 합니다(33-34절).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_막 3:33-34
어쩌면 정말 매몰차게 느껴지죠. 이 말씀은 실제로 이단이 주로 많이 쓰는 구절입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부모를 버리라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가족을 버리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가족’이라는 단위를 친히 만드셔서 이 땅에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잖아요. 하나님께서 이것을 깨버리라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하셨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은 팔다리가 못에 박히고 허리는 창에 찔려 단 한마디 하기도 어려우신 순간에 요한에게 부탁하세요. 마리아를 보고 "보라 네 어머니다" 그때부터 요한은 마리아가 소천하기까지 어머니로 극진히 모시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끝까지 효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 이 선언은 혈연을 근본으로 여겼던 당시 이스라엘에 예수님이 던지셨던 한 덩어리의 바위입니다. 이제 더 이상 너희가 울타리 짓는 가족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씨족 사회였던 당시 이스라엘 가족의 기준은 혈연관계인 ‘가문’이었습니다. ‘누구의 아들이며 아버지인가’가 그 사람과 가족의 위치와 대우를 결정했습니다. 잘나면 당당하고 내세울 것이 없으면 위축되어 노예처럼 사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습니다. 이렇게 가문과 혈연으로 가족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그 옛날 이스라엘의 풍조일 뿐일까요?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오늘도 힘들게 하는 가족 때문에 죽고 싶습니다. 내 부모나 자녀가 훌륭하면 기를 펴고 삽니다. 부모의 재산, 배우자의 직업, 자녀의 학교가 가정의 안정과 만족을 지켜주는 틀이 됩니다. 여전히 내 가족, 내 식구에 집착하다가... 결국 그것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가족의 목적을 몰라 서로에게 집착하는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을 알려주세요.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_막 3:34
누가 가족입니까? 둘러앉은 자들이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면 보이는 자리, 함께 둘러앉아야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 없이 가족끼리만 둘러앉아 서로만 보고 있으면 결국 집착과 원망만 남아요. 예수님 앞에 앉아야 말씀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족이 됩니다.
어떤 집사님이 남편에게 반해서 두 달 만에 결혼하셨대요. 결혼 전 남편이 "하루 24시간 중 2시간만 빼고 22시간을 너와 함께 있으마" 했는데 그 말을 믿었대요. 그래서 잠옷만 네 번 갈아입으면서 남편을 붙잡아뒀대요. 자유롭게 자란 남편은 숨을 쉴 수 없어 죽겠다는데, 아내는 "네가 내 종이 되어 주겠다고 하지 않았냐"며 가두고 구속했대요. 서로 집착하며 다투다가 결국 우리들교회에 와서 목장에 붙들려 가며 이제는 서로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한마음으로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구속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가정도 서로를 구속하고 지치게 했지만 공동체의 자리에 둘러앉으니까 구속(拘束)하던 삶에서 구속사(救贖史)를 쓰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또 한 집사님은 20년 전부터 주말부부로 지내며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셨대요. 남자들은 생활비가 없으면 다 내 탓 같고 어떻게든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아내에게 돈을 줄 수 없으니 거짓말이 늘어가고 너무 힘들어 절망에 빠지셨대요. 그래서 사고를 가장한 자살 시도를 하게 되셨습니다. 차량 사고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내려 시도하다가 차가 튕겨 나가면서 실패로 끝났대요.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방법을 탐색하며 이동하던 중 우리들교회 현수막을 보셨대요. 거기서 "그럼에도 살아냅시다"라는 문구를 보신 거예요. 끝이 보이지 않던 고난에 끝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목사님께 메일을 드려 교회에 나오라는 초청을 받으시고 나오게 되셨습니다. 그때 첫 말씀이 "주신 이도 하나님이요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다"였는데 그 말씀에 은혜받아 지금까지 붙어 오고 계신대요..
그래서 택자임을 확신하며 나와 내 가정에 주신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며 살아가고 계시지만, 아직 남은 구원이 있다고 해요. 자녀 두 명이 고등학교 시절 교회를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대요. 두 분이 한마음으로 자녀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인내하고 계십니다. 큰아이는 입시를 이유로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고, 둘째는 하나님은 믿지만 우리 교회는 인정하지 못하겠대요. 그 모습이 예수를 모르던 예전 내 모습 같아서 회개가 되고 아들의 구원을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집사님은 목사님의 “와 보라” 초청을 받아 먼저 둘러앉은 자가 되셨어요. 공동체와 가족이 된 거예요. 매일 죽음을 생각하던 삶이 말씀을 듣는 구조 안에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만 둘러앉았다고 끝이 아니죠. 집사님은 남은 두 자녀를 이 공동체에 둘러앉히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사건을 주셔서라도 나를 구원의 자리에 앉히신 주님의 부탁은 한 가지입니다. 내 가족과 내게 붙여주신 한 사람을 말씀 공동체의 가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집착과 애정에서 벗어나 구원이라는 사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가족이 된 목적입니다. 고난을 피할 수 없는 인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고 함께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가족 사랑임을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 명절까지 한 주 남았습니다. 부부와 자녀와 함께 이번에 만날 한 분의 가족이라도 예수님 앞에 둘러앉히기 위해 준비하고 작전을 모의해 보신다면, 늘 겪는 귀성길 전투, 차안대첩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 적용해 봅시다.
Q. 어떤 배우자와 자녀, 부모이길 바랍니까?
Q. 억지로라도 둘러 앉아있고 싶은 무리와 자리는 어디입니까?
가족으로 만난 목적을 알려면 셋째,
3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35절).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_막 3:35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자녀를 낳고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예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인 말씀이 목적이 되어 그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가 되어갑니다.
청년들에게 '어떤 상대를 원하는가' 설문했을 때, 압도적인 1위가 '큐티 하는 사람', 2위가 '공동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청년들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사랑 때문에 두 번이나 낙태를 하고 우울증에 빠졌던 한 자매가 있습니다. 또 투자와 투기를 끊지 못해 망하고 패배 의식에 빠진 한 형제가 있습니다. 자매는 구속사의 말씀을 들어야 숨을 쉴 수 있어 매주 먼 지방에서 서울을 오갑니다. 형제는 공동체에서 힘든 지체를 섬기며 자신이 얼마나 교만하게 살아왔는지를 회개합니다. 이런 두 분이 띵크 트립에서 만나 서로의 진심을 보고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이 낳고 잘 삽니다. 형제의 남은 빚이 있지만 서로 정죄하지 않고 가정의 거룩을 위해 함께 빚을 갚아나갑니다. 세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말씀 때문에 두 분은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가족이 된 이 가정을 그리고 이처럼 말씀 안에서 결정하며 순종하는 모든 교제와 결혼을 우리 주님이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위드 공동체의 강점은 말씀을 오래 들은 리더들이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들도 연약해 무너질 때가 있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말씀 앞에 회개하며 큐티로 살아냅니다. 상담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오늘 말씀 보면서"입니다. 이 리더들의 영향력이 공동체 전체에 퍼지고 있습니다. 부모님들,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근심하지 마시고 이들의 힘과 위로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역할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삶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인 말씀대로 순종하는 모범적인 부모이자 배우자가 되어야 한다고 당차게 말하고 있는 제가, 불과 며칠 전 아내에게 이혼 서류를 받았습니다. 하필 말씀도 '가족'이라 고민하다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와이프가 서류를 실수로 목장과 딸, 장모님께 보내버린 거예요. 본인 말로는 챗GPT 때문에 잘못 간 거라고 하는데 저는 안 믿어요.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겠습니다.^^;; 처음 받아봤는데 생각보다 받을 만합니다. 그래도 몇 번 받아보신 분들 존경합니다. 갑자기 저와 못 살겠다는데 잘못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목사인데 음주가무도 안 하고, 늦게 들어와도 청소 다 하고, 제 일은 제가 합니다. 이런 나를 두고 대체 뭘 더 바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씩씩거리고 있는데 훌쩍 커버린 아들이 제 머리를 자기 무릎에 누이고 말합니다. "아빠는 엄마를 필요한 사람이지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아. 아빠는 힘들어하는 엄마보다 항상 더 힘들어해. 엄마 말에 관심이 없어. 엄마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겨. 나는 둘이 헤어지면 엄마랑 살 거야." 틀린 말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왜 아내가 22년 만에 이런 생각을 했는지 돌아보다가 오늘 말씀을 보았는데, 그동안 아내와 제가 소통이 단절된 분명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씀으로 가족과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불화의 원인입니다. 사역자로서 지체들과는 "오늘 말씀 보니까" 하며 종일 대화하지만, 집에만 들어가면 입을 닫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유독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석에는 요셉은 병으로 일찍 소천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도 예수님이 구주로 오셨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친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것을 보면, 생전의 요셉이 가족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저임을 인정하며 회개합니다. 저는 아내의 헌신을 보지 못한 무심한 남편입니다. 하지만 더 큰 죄는 가족들과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지 않았던 영적 무심함의 죄인입니다. 이제 일주일에 3회 이상 아내와 큐티 묵상을 나누고 자녀에게도 깨달은 죄를 나누겠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깨닫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깨닫는 것이 먼저가 될 때 이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므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 함께 묵상하며 적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Q. 우리 가족, 우리 부부는 언제 하나가 됩니까?
Q. 말씀 때문에 내 뜻을 꺾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말씀 맺겠습니다. 이제 가족을 만나야할 명절이 다가옵니다. 먼저 내가 말씀과 멀어지고 자랑과 교만이 주인이 되어 밖에 있는 자임을 회개할 때, 밖에 서 있는 가족을 예수님 곁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끼리 둘러앉으면 상처를 주고받지만, 예수님 앞에 둘러앉을 때 예수님의 가족이 됩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 맺어주신 가족과 이우을 초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족으로 맺어주신 그 목적입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가족으로 엮어주신 그 목적을 깨달아 내가 부서지고 깨어지더라도 이걸 복음을 알지 못하는 친족에게 이 귀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으로 나아가시길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겠습니다.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다 버리고 다 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1.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겸손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2.
당신의 그 순종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사랑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불타는 사명으로 가득찬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의 가족이 되라고 오늘 우리를 불러주시는데, 저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만 고집하다가 우리 가족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가는 것도 막아버린 죄인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맺어주신 가족이 부르시는 주님의 자리에 둘러앉아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살아나는 예수님이 가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귀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나고 살려내는 사명 감당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맺어주신 위드 공동체가 예수님의 가족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한마음이 되어 주 앞에 둘러앉은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예수님이 부르시는 자리에서 지금의 때를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기다리는 이들의 만남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구원을 위해 한 가족을 이루어 주시는 그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예수 가족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곧 명절입니다. 이번 명절에도 여전히 밖에 서 있는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작정하며 나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동행해 주시고 힘을 더해 주시길 원합니다. 주님, 내 곁에 있는 식구 부모, 형제, 자녀들, 지체들도 예수 이름 때문에 구원받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구원을 위한 모든 여정 가운데 우리 주님 동행하여 주시옵고, 힘을 주시옵고, 능력을 주시옵고, 내가 잘 죽기로 결단할 때 나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에도 하나님 주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것을 잊지 않고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주님 기억하여 주시옵고, 하나님께서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사 모든 사업과 프로젝트와 학업과 기획하는 모든 일 가운데 기름을 부어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며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예수의 가족이 되어 감사와 기쁨 가운데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2026.02.08.(주일) 마가복음 3:31-35 「가족」 신승윤 목사님
예수님은 진짜 가족, 참된 예수님의 가족은 누구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주님께서 배우자와 자녀, 부모를 이 땅에서! 이 한 번뿐인 삶에서 그 사람을 왜 만나게 하셨는지 가족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기 원합니다.
가족으로 만난 목적을 알려면,
1. 밖에 서 있는 가족을 보아야 합니다(31-32절).
▪ 마리아와 가족이 밖에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⓵ 먼저는 말씀과 멀어졌기 때문이에요. ⓶ 기대와 자랑 때문입니다.
Q. 지금 밖에 서 있는 가족은 누구입니까?
Q. 우리 집안의 가훈이 있습니까?
Q. 그 가훈을 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까?
2. 둘러앉은 자리로 불러야 합니다(33-34절).
Q. 어떤 배우자와 자녀, 부모이길 바랍니까?
Q. 억지로라도 둘러 앉아있고 싶은 무리와 자리는 어디입니까?
3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35절).
Q. 우리 가족, 우리 부부는 언제 하나가 됩니까?
Q. 말씀 때문에 내 뜻을 꺾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기도제목
A: 이번 한주도 평안하길, 몸 건강하길
B: 큐페기간동안 아이들이 영육으로 보호 받고, 푹 즐기다 오길
C: 구속사로 이어진 가족, 목장 위해 중보하기
D: 힘을 빼고 긍휼과 말씀으로 하루만 살기
E: 붙회떨감하고 기도하고 하루만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