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4.(주일) 요나 3:1-10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결과」
성승완 목사님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은
첫번째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큰 물고기 배에서 회개한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세요. 1장에서 말씀하신 그 말씀 그대로 하시죠. 뭐라고 하시나요? “큰 성읍 니느웨로 가라. 그리고 그들에게 선포해라.” 뭘 선포해요? “너희는 망할 거야.”
4절에 보면,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것을 선포하라는 거예요. 무너질 것을 말하라는 이유는 뭔가요? “회개하고 돌아와라. 돌아와서 살아라.” 이거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굳이 가지 않겠다는 요나를 이렇게 끝까지 붙들고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말씀하셨어요. “니느웨로 가라.” 그러나 요나는 너무 가기 싫어했어요. 그래서 어디로 내려가냐면 ‘욥바’라는 곳으로 내려가요. 왜? 욥바로 가서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1장 3절에 보니까 이렇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욘 1:3)
요나가 도망가려고 욥바로 내려갔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대요. 이건 뭐예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배일까요? (요나가) 이 배를 타고~ 풍랑을 만나고 물고기 배에 들어가고 거기서 회개를 하고 다시 사명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멋지게 준비하신 배가 마침̇ ̇
욥바에 다다른 걸까요? 이게 문제예요. ‘마침’, ‘때마침‘ 이게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뭐 정확한 타이밍이야. 이건 빼도 박도 못해. 이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야. 이건 가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타이밍이야!’ 그러고 배에 딱 올라타는 거예요. 뱃삯을 다 지불하고 이렇게 올라타는 거예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거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우리 인생에서, 특별히 이제 ‘목장’에서 하라는 것이 더 많은가요? 하지 말라는 것이 더 많은가요?
그러면은 가라는 곳이 더 많은가요?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이 더 많은가요? 진짜 그런가요? 처음에 목장에 가면 많은 경우 “이거 하지 마세요. 저거 하지 마세요” 해요. 뭐, 다 하지 말래~ 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 갔을 때 목장이 힘들어요. 이제까지 내가 좋아하던 것만 해왔던 인생인데 다 하지 말라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뭐라 그러냐면 “양육 받으세요.” 이 말 들어보신 분 많으시죠? “부목자 하세요.” 이 말 들어보신 분 많으시고. “뭐 하세요~ 뭐 하세요~ 적용하세요!” 어느 순간부터는 이렇게 “하라”는 것이 많아요. “하지 말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순간순간 시간이 지나가면은 이제 “하라”는 것이 훨씬 더 많아집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가지 말라”는 것은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또 우리가 행복하려고 살아왔던 삶에서 거룩으로 좀 돌아오라고.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삶이 내가 좋아하고 내가 가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던 인생에서 이제 좀 하나님 앞에 그 모든 것들을 좀 버리고 거룩을 위해서 좀 살아가라고 계속 하지 말라는 거예요. 거룩으로 돌이키는 시작인 거예요.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우리 장휘성 집사님이 오늘 간증하신 것처럼 “붙어만 있으라”는 거예요. 어려우니까 붙어만 있으라는 거예요.
그러면은 “하라”는 것은 뭘까요, “가라”는 것은 뭘까요? 이건 우리의 사명을 위해서 “하라”는 것이고 “가라”는 거예요.
“부목자 하세요”, “목자 하세요”, “주차 봉사 하세요”, “뭐 하세요”.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공동체가 참 중요합니다. 공동체에서 검증을 받아야 하는 거예요. 결정권이 나에게 있으면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고 또 가지 말라는 곳에 가고 싶어 합니다.
왜 그러냐면 우리가 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또
내가 좋아하는 곳 이것을 버리기가 너무너무 어렵죠. 그래서 공동체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가 참 어려운데 다른 사람은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게 참 쉽거든요. 그런데 이거를 듣는 게 참 어려워요. 특별히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게 너무너무 어렵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이렇게 “가라”고 하십니다.
‘다시스로 가지 말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니느웨로 가라
”고 하세요. 왜요? 사명을 위해서, 영혼 구원을 위해서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영혼 구원을 위해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위해서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4절에 보니까 그냥 하루 동안 다니며 외치고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 말밖에 한 것이 없어요. 하루 동안 가서 “니느웨는 무너질 거야” 이 말밖에 한 게 없어요. 요나가 한 것이라고는 딱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하루 동안.
그런데 우리는 알잖아요. 하루 동안 요나가 “니느웨는 무너질 거야” 이 말 한마디밖에 안 했는데 12만 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어요. 이게 부르심̇ ̇ ̇이에요. ’하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 안 하고, 안 가는 것이 부르심이 아니라, “하라”는 것을 하고 “가라”는 곳에 가는 것이 부르심입니다.
나의 어떠함 때문에 12만 명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가라”고 하시고 어찌 됐든 그곳에 가게 된 요나의 한마디의 외침을 통해서 12만 명이 돌아오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사명은 “하라는 것을 하고 가라는 곳에 가는 것”
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요나에게 두 번이나, 두 번째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십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선 포기하지 않으세요.
오늘 간증하신 우리 장휘성 집사님도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 이 자리에 간증자로 세우셨네요. 우리 장휘성 집사님이 나간다고
막 그 난리를 치셨을 때 제가 거기 있었거든요. 제가 전화도 했었어요. 그런데 제 전화도 안 받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요.^^;; 내가 하기 싫어서 나가겠다고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나가도 다시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붙어 있게 하세요. 그래서 그 사명으로 오늘 이렇게 눈물 흘리면서 간증하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하도 하고 싶은 게 많고, 가고 싶은 곳이 많으니까 손발을 다 묶어 놓으시고 아니, 어떻게 100군데에 이력서를 냈는데 한 군데에서도 전화 큐티엠은 굉장히 지금 자존심이 상하네요. 저런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요나는 진짜 별로 한 게 없어요. 사역이라고는 딱 한 줄 나옵니다. 그냥 하루 동안 “니느웨는 무너질 거야”. 좋은 말도 아니에요. “니느웨는 무너질 거야.”
이 자리에 불러놓으셨는데 내가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생색이 나고, 또 ‘이 자리는 역시 내 자리가 아니었어. 부목자로서 전화하고 타이핑 치고 이게 무슨 사명의 자리야’ 하십니까? 그런데 이 자리에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불러놓으신 자리에 그냥 있기만 하니까 12만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에서 불러주신 그 자리! 내가 그 자리를 잘 지킬 때, 그 자리가 12만 명이 돌아오는 은혜의 자리가 될 줄 믿습니다!
▪ 적용해 보시겠어요?
Q.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있게 하신 나의 오늘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Q. 아무것도 하는 것 없는 것 같아서 분이 나시나요?
그 자리가 사명의 자리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2. 회개밖에 없습니다(5-9절).
요나의 이 한마디 선포로 요나가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니느웨 사람들이 어떻게 하죠? 본문 5절에서 이렇게 9절 말씀을 보면요.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
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
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
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5절에 하나님을 믿었어요. 또 금식을 선포하고요. 또 6절에 왕에게 이 일들이 들
리고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었어요. 7절에 왕이 금식을 선포합니다. 또 8절
에 그 금식 앞에 모두가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회개를 촉구하죠. 9절에 이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기를 구합니다.
어찌 됐든 요나는 니느웨로 갔어요. 이게 중요합니다. 간 게 중요해요. 이 자리에 앉아서 울고만 있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그 자리에 간 게 중요합니다.회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가기 싫은 곳에 가기로 결정하는 것! 또 한 발을 내딛는 것에서부터 회개는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나의 회개의 이 한 걸음을 통해서 니느웨에 이렇게 12만 명이 돌아오게 되는 것이죠. 회개의 역사가 내가 가기 싫었던 그곳에 한 발을 떼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마음만 돌이키는 게 아니에요.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돌이키는 것’은 ‘유턴’을 의미한다고 하셨어요. 돌아서 다시 걸어오는 것이죠. 또 ‘공동체와 함께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혼자서는 정말 어렵습니다. 혼자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가 너무 어렵다 그랬잖아요. 그래서 공동체와 같이 일어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거룩의 조건은 공동체 말에 순종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에서 열어놓은 예배에 다 가는 것! 목장 예배, 수요 예배, 또 주일 예배 나에게 허락하신 예배에 참석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와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말하는 것을 듣는 게 쉽지가 않죠. 그 쉽지 않은 것에 한 걸음을 떼는 것에서 우리의 인생의 12만 명이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요나가 혼자의 생각으로 니느웨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큰 물고기라는 공동체를 주셨어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유턴하는 기회를 허락을 하십니다. 큰 성읍 니느웨에서 떵떵거리며 잘 사는 사람들에게 이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요나 선지자의 이 하루 동안의 외침으로 인해서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어요.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예요. 요나가 한 거는 그냥 가서 말한 것밖에 없는데,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하셨습니다. 왕이 듣고 금식을 선포하고 온 백성-공동체-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러니 온 공동체가 일어나는 것이죠. 나 한 사람의 회개가 바로 그런 거예요. 요나의 회개가 왕에게 들리게 되고, 왕이 금식을 선포하니까, 그 왕을 따르는 모든 백성이 회개를 하게 되는 것이죠. 나의 죄패, 나의 고난 이 모든 잎사귀가 약재료가 되어서
회개의 큰 운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죄인이 죄인을 살립니다”
“죄인이 죄인을 살립니다”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하시나요? 우리 QTM 식구들 한 명 한 명을 보면은 작기가 그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QTM이라는 공동체를 주셨어요. 이 공동체 안에서 구속사의 말씀으로 책을 만들고, 또 영상을 만들고, 포스터를 만들고, 회의를 하고, 집회를 진행하고, 책을 포장하고, 부치고, 행정, 회계, 수많은 업무들이 있습니다. 보셨던 것처럼 우리들은 다 죄인이에요.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죄인들이 모여서 한 가지 사명을 발견했어요.
“나를 살리는 이 구속사의 말씀이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것.”
“죄인이 죄인을 살립니다.”
QTM 건물을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이뻐요. 빨간색 벽돌로 너무 이쁘게 져놨습니다. 근데 그 건물 안에 사무실은 아주 치열합니다. 한 책상에 모니터 4개를 놓고 일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빛이 들어오면 방해가 돼서 텐트를 쳐놓고, 그 좋은 사무실에서 텐트를 쳐놓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하도 앉아 있어서 엉덩이에 허리가 아파가지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시는 분, 또 목장갑을 끼고 열심히 포장하고 책을 나르시는 사람, 또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사람, 또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이거는 좀 몇 명 안 되죠.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하면서 눈을 만지는 사람. 대구 광주 제주 강원 충청 전국 8도를 이렇게 누비는 사람. ‘비단 치마 속에 넝마’라고 목사님께서 늘 목사님의 인생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게 QTM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죄인 된 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이제 이 강을 건너서 바다로 나아가자’라는 이 소망 하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간사님들이 자주 하는 표현 중에 하나가 “저는 간사라고 생각하지않고 진짜 사역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말에 “아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는 이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글자 하나 때문에 혼쭐이 나고, 또 디자인 하나에 몇 번을 고치고, 숫자 하나에 목숨을 걸고, 4천 원 큐티책 한 권 팔려고 애를 쓰고 정말 작은 자리에 있지만 요나가 그냥 하루 동안 한 것이 하나밖에 없잖아요. 우리를 불러주신 그 자리를 그냥 지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이 구속사의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전한 방식으로
내일 또 출근을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모든 자리가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목장에서 이 세 네 시간 동안 사람이 많으면 고작 한마디 두 마디. 또 어느 날은 한마디도 못할 때도 있겠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나의 사명의 자리이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우리의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살고 세계가 사는 일이 될 줄을 믿습니다. 오늘 요나는 정말 한 게 없다니까요. 거기 가서 막 웃으면서 회개를 전했겠어요? 아니면 울면서 회개를 전했겠어요? 그냥 하기 싫어도 “40일 후에 망한대” 이거 이거밖에 없다니까요. 근데 하나님께서 불러놓으신 그 자리에 그냥 가 있는 거예요. 오늘 공동체에서 불러주신 그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최고의 사명자로 살아가는 길인 줄을 믿습니다.
▪ 적용해 보시겠어요.
Q. 돌이켜야 할 회개 제목은 무엇입니까?
Q. 돌이키고 앉아 있어야 할 나의 자리가 목장임을 믿으세요?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셋째로
3. 하나님께서 살리십니다(10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의 외침 한마디! 그 한마디를 듣고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하는 니느웨! 이 모든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시면 뭐든지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고 또 작정하시면 돌이키실 수 있는 분이시죠. “무너지리라고 가서 선포해!”라고 하셨는데 안 무너져요.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원하는 것이지 우리가 무너지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회개를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진노의 잔을 옮기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이지 고통이 아닌 거예요. “엄마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아니 아빠는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하나님은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이게 우리의 주제가예요. 고통이 조금만 오면 우리의 주제가는 바로 “내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섬겼는데 하나님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시는 거야?”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과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은 이유가 없으신 게 없어요. 이유가 없으신 게 없어요. 고난이 고난으로 그냥 끝나면 그냥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첫 번째 대지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어요. 언제까지요? 우리가 고통 가운데 무너질 때까지? 아니요! 회개할 때까지! 유턴할 때까지!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하나님이 계시긴 하신 거야? 나한테 진짜 이러시기야?” 이런 말이 나오신다면 죄송하지만 오늘 저랑 같이 회개했으면 좋겠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우리 사역자들에게 자주 하시는 이 질문들이 있으세요.
“그래서 회개는 했니?” 무슨 일만 있으면 이렇게 질문하세요. “그래서 회개는 했니?” 이 말 많이 들어보셨죠? 저에게는 좀 다르게 물어보셨어요.
“성 목사, 구원은 받았니?”
제가 이제 우리들교회에 2012년 12월 2일에 입성을 했는데 그때가 이제 사역한지 15년? 16년? 좀 넘었을 때였어요. 근데 그때 목사님께서 들어온 지 1년 후에 저에게 질문하신 겁니다. 애통해하시면서 질문하셨어요. “성 목사, 구원은 받았니?” 제가 치리를 막 받을 때였어요. 이 말을 처음 듣고 이제 무슨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또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사역을 시작했어요. 선교단 간사 또 전도사를 지나면서 목사가 되었어요.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구원 받았습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꼭 구원파 같네요.--;; 이 질문을 받고 2주 동안 정말 먹지도 못하고 매일 눈물을 흘렸어요. 몸무게도 빠지고 이렇게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구원은 받은 것 같은데 목사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신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하다가 아무 생각이 안 나서 향한 곳이 정신과였습니다. ‘구원은 받은 것 같은데 이런 질문을 하신 이유가 뭘까?’ 계속해서 생각하는데 한 가지 결론으로 나왔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안 나타나니까 이런 질문을 받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께 또 제일 많이 들은 표현이 “일원론! 일원론!”이에요.
“너는 일원론이 안 된다. 어쩜 그렇게 앞뒤가 다르고, 이거는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내가 일원론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치열하게 회개를 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또 열등감으로 인정만 받기 원하는 저의 모습이 인정
이 되었어요. 그러니 나를 인정해 주셔야 하는 분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왜 치리를 받았냐면, 제가 부임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이제 열등감이 제 주제인데. 그러다 보니까 인정받는 게 사명이 돼 가지고 인정 중독이 있어요. 그래서 목사님 계실 때 열심히! 열심히! 했습니다. 밤낮 안 가리고 열심히 했는데 목사님께서 이 한 달 동안 미국으로 집회를 다녀오시는 기간이 있었는데 이제 목사님이 타신 비행기를 딱 뜨자마자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 했어요. 한 달 동안 초원 모임도 안 들어가고, 목장 탐방도 안 하고, 뭐 일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뭐 사역자도 이렇게 많고 성도님들도 이렇게 많은데 목사님한테 걸리겠어?’ 했는데 저희 목사님 오시자마자 목사님께서 딱! 아셨어요. 그리고 나서 저에게 주셨던 질문입니다. “너 구원은 받았니?” 나에게 월급을 주는 교회로 여기며 사역했던 저의 모습들을 보았고, 또 구원에 관심이 없고 일로만 인정을 받으려 했던 저의 모습을 보았고, 그러니 앞뒤가 다른 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에서는 이렇게 웃고 있지만 뒤에서는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인생은 “치리를 받기 전 vs. 받고 난 후” 이게 확실히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일들은 제가 목회자 세미나 때마다 간증을 합니다.
저의 구원에 관심이 있으셨던 목사님의 질문 하나로 요나와 같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고 또 가고 싶은 곳만 가려고 했던 저의 인생에서 이제 사명을 조금 발견하게 되는 것 같은데... 눈물과 회개의 시간들이 저의 약재료가 되어서 가는 곳마다 이 잎사귀들을 약재료로 내어놓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들교회 성도님들, 우리의 재패와 고난은 다 이렇게 쓰이게 될 것이에요. 큐티인에 실리는 모든 간증들이 다 약재료가 되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 일에 저희 목사님께서 앞장서고 계시고 오늘도 여전히 일본에서 수많은 선교사님들 앞에서 우리들의 약재료와 모든 것들을 들고 가 계십니다.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목사님의 사역을 돕는 QTM 모든 스텝들이 또 우리 각자의 약재료에 마음을 담아서 글자 하나하나, 영상 1초 2초, 책 옮기는 한
걸음 두 걸음. 이 모든 시간들이 다 우리들의 약재료가 되어서 이렇게 사람들을 살리는 이 사역에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적용해 보시겠어요?
Q. 지금 어디에 관심이 있으세요?
Q. 그 모든 것보다 구원에 관심이 있으세요?
Q. 나의 약재료를 목장에서 한번 나눠보세요.
목장 중보기도 제목
가
1. 신교제, 신결혼
2. 아버지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 되시도록
3. 간호하는 어머니 힘 주시고 지치지 않으시고 목과 허리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하시도록
4. 누나가 영적육적 회복될 수 있도록
5. 형 발목 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6. 책 집필 잘 할 수 있도록
7. 매일 큐티 할 수 있도록
8. 사업과 학교 강의 위에 기름부어 주시길
9. 면접 결과 붙회떨감 할 수 있도록
나
1. 위드 공동체에 처음 가서 그곳에 계신 분들과 잘 어울리며 지낼 수 있도 록
2. 더 추워진 기온에몸 관리 해서 꾸준히 건강을 유지하도록
3. 주님의 귀한 자녀를 배우자로 만나 매주 감사 기도와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도록
4. 저의 오빠 전도와엄마, 오빠의 꾸준한 건강유지되도록
5. 저의 영적인 부분이 항상 깨어 있어서주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을 계속해 서깨닫고 따르도록 기도해 주세요
다
1.어머님 건강 지켜주시고 아버지랑 예수믿고 구원받게 하시길
2.직장에 기름부어 주셔서 기쁘게 일할수 있도록 은혜주시길
3.신교제.신결혼할수 있도록 만남의 축복주시길
라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 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3.제 동생 가족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4.부목자 직분 잘 감당할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5.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잘 유지할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6.간혹 목장에 뭍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할때가 있는데 목장에 잘 뭍고 적용해 나아갈수 있는 용기 주시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