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말씀 2025.12.28.(주일) 시편 63:1-11 「광야의 기쁨」 최대규 목사님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딱딱합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즐거움이 있다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듣겠습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돌이키며 살지니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한 한 해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정말 저는 이 말씀의 최대 수혜자인 것 같습니다. 정말 살이 많이 쪘어요(살찌니라)^^. 우리 그런 의미에서 옆 분한테 인사하겠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사할까요?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
오늘 말씀 제목이 ‘광야의 기쁨’입니다. 광야는 고통과 더 어울리는 단어 같은데, 오늘 시편을 읽어보면요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시편 63편의 표제는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광야에 있을 때 부른 시편인 것이죠. 다윗의 광야는 좀 쉬운 광야여서 그랬을까요? 다윗은 인생에서 두 번의 광야를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젊은 시절에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광야를 전전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자 그를 훈련시키시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나이가 좀 들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도망치듯 유다 광야로 나왔습니다.
63편은 어떤 때의 고백일까요? 11절에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라는 말씀으로 학자들은 이때가 압살롬의 반역 때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의 다윗이 아니라 이제 나이가 좀 든 다윗입니다. 중년의 나이를 넘긴 다윗입니다. 젊었을 때보다 광야가 좀 더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한 번 겪었던 광야다 보니, 또다시 그곳에 들어가려니 참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아들의 배신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더불어 ‘왕위를 회복해 달라’고 ‘왕궁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한 분에 대한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된 다윗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광야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정말 메마르고 힘든 광야죠. 그런데 우리가 다윗처럼 이렇게 즐거움을 좀 느낄 수 있다면, 즐거움을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다윗이 노래한 광야의 기쁨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광야가 기쁨이 될 수 있었는지 첫 번째로,
1. 메마른 땅에 성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1-2절).
메마른 땅에 성소가 세워졌기 때문에 이 광야가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1절, 2절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다윗은 소수의 가족과 신하들, 그리고 자신을 호위하는 600명 정도의 블레셋(가드) 사람들과 함께 광야로 도망치듯 나왔습니다(삼하 15:18). 언약궤가 따라오려고 하자 언약궤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습니다(삼하 15:24~25). 다윗은 지금 정말 마르고 물이 없고 황폐한 땅에 지금 서 있습니다. 이런 광야가 여러분 상상이 되시나요? 전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 사진을 한번 보여주시죠.
검색하니까 ’광야가 이런 곳이다‘라고 보여주더라고요. 차를 타고 여행한다면 참 멋져 보이겠죠. 그런데 이곳은 사람이 절대로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이 “황폐한”이라는 뜻은요. 풀 한 포기조차 자랄 수 없는, 생명 없는 땅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왕궁에서 무엇이든 풍족하게 누렸던 삶을 빼앗기고 물 한 모금조차 구할 수 없는, 구하기 힘든 광야에 지금 있는 것입니다. 물뿐만이 아니라 먹을 양식도, 광야의 더위와 추위를 피할 곳도 당장 찾아야 되는 것이에요. 너무나도 다급하고 바쁜 다윗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물을 찾으러 다닐 때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은혜의 단비를 구해야 할 때임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마른 땅과 같이 메마르고 있다면, 지금 내가 마실 물을 찾으러 다닐 것이 아니라 하늘의 단비를 구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환경적으로도 광야지만, 사람의 마음도 마치 메마른 땅처럼 우리 모든 감각들이 쫙쫙 갈라진다면 참 너무 힘들겠죠. 그럴 때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도 오히려 다툼과 갈등만 일어날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우리들교회 한 집사님 부부를 만났어요. 8년 전쯤에 저희 아내가 우리들교회로 인도한 부부인데요. 남편은 재미교포고 아내는 한국인입니다. (이 부부가) 마른 땅과 마른 땅의 만남이니까 싸움이 끊이질 않는 겁니다. 남편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에 대한 마른 땅이었고, 아내는 1년 사이에 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시는, 이 상실의 마른 땅이었습니다. 남편이 한국말을 잘 못하니까 이 교회 와서 참 어려운 거예요. 나눔도 힘들고 아내는 육아로 지쳐가고 가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부부를 참 오랜만에 만난 거였어요. 그런데 두 분 표정이 너무 밝아진 것입니다. 특히 재미교포 남편분이 한국말도 많이 늘은 거예요. 너무 많이 늘어서 “어떻게 그렇게 됐냐?”라고 하니까 “목장 목원들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서 한국말만 들어야 해서 이렇게 늘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런 농담도 하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이분이 예전에 장인어른 장모님과 처가댁 식구들과 식사를 하며 너무 배가 부르고 답답해서 밖에 나가고 싶을 때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저 잠깐 바람피우고 올게요.”^^ 그런 농담도 이제 하실 만한 여유가 생겼더라고요.
“이 부부가 왜 이리 편해졌나”라고 물으니 아내 집사님이 하시는 이야기가 “우리가 너무 마른 땅, 너무 사랑이 고픈 사람이었는데 목장에서 사랑을 참 많이 받았어요. 특별히 남편이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목자님들이 너무 남편을 사랑해줘서 진짜 남편이 부정적인 생각밖에 안 했는데 지금은 조금 이제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마른 땅에는 물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은혜의 단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윗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지금 부르고 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것은요, ‘목사님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많이 들었습니까? 지금! 오늘! 들어야 할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에서)는요, 목마를 때에- 목마름을 느낄 때- 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계속 물을 마셔야지 탈수가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도 잠깐 물을 마실게요.^^) 내가 주님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주님을 찾는 게 아니라, 늘 드리는 그 예배와 여전한 방식의 큐티가 영적 탈수를 예방하는 길이라는 것이죠.
1월부터 판교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이 우리가 광야를 통과하는 즐거움이 된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오늘 다윗이 “간절히 주를 찾되”라고 했습니다. “간절히 주를 찾되.” 이 ”간절히“가 원어로는 ”새벽에“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 눈 뜨자마자 물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찾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혼자 있는 게 아니에요. 젊은 다윗이 아닙니다. 다윗을 따르는 가족도 군사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불평하는 자들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 하나님 찾을 때가 아니라 좀 뭔가 해야 되지 않겠냐? 손가락만 빨고 있을 거냐?!“라고 불평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당장 직장도 좀 찾고 알바라도 좀 하고 무언가라도 좀 해야 되지 않겠냐?“라는 이야기를... 그런 비난과 정죄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삶의 시간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았어요. 아무리 급해도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왜 이렇게 다윗이 사모하면서 하나님을 찾을까요? 2절에 나와 있습니다. 2절 한번 볼까요? 2절 시작!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성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다윗은 왕궁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성소가 너무 그리운 거예요. 그래서 이 광야에서라도... 이 광야가 성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났던, 은혜를 경험했던, 내가 흘릴 수 없는 그 눈물을 흘렸던 그 성소! 이 광야가 그 성소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왜요? 왜 그렇게 성소를 바랄까요? 왜 그렇게 예배를 바랄까요?
그것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 당할 때는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애통 절통했는데 왕궁의 삶에 조금씩 편해지니 결정적으로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편안한 삶에 무료해지고 게을러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거룩한 감각을 다 잃어버리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에는 밧세바까지 범하는 일을 저지르잖아요. 시편 51편이 이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 고백인데, 다윗은 다른 어떤 고백이 아니라 이 고백을 하며 주님께 회개합니다. “주여,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시편 51:12) 다윗은 예배를 통하여 이 구원의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기를 원한다는 고백을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요, 이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순간 자신의 삶에 파고드는 세상의 그 무수한 것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연말이 되면 우리가 좀 느슨해지죠. 목장도 예배도 마음도 연말이라 그런지 좀 느슨해집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가 내 삶의 성소를 잘 세워야 하는데, 세상의 것이 눈에 들어오면서 어느샌가 우리가 산당을 짓게 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믿음의 방패, 말씀의 칼도 들어야 하고. 그런데 제일 먼저가 뭐냐면 이 나풀거리는 옷을 확 동여매는 허리띠를 먼저 차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칼을 들고 말씀이 있어도 옷이 나풀거리면 싸울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 느슨해진 우리의 삶을 이 진리의 허리띠로 동여매야 하는 것이에요.
참 우리가 많은 광야가 있죠. 저도 개인적으로는 많은 광야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 안 바뀌는 것’이 참 너무 저에게는 힘든 광야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자녀가, 또 여러분에게 가족이 그렇겠죠. 그 마음만 조금만 돌이켜주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그 생각이 조금만 바꿔지기라도 한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진짜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참 너무 힘든 광야예요.
저도 막 차 타고 가다가 갑자기 집에서 온 전화를 받습니다. 집에서 전화가 오면 좀 놀래요. 집에서 전화 오면 놀래. 딸이 전화하면 놀래. 전화하면 이런저런 막 얘기를 해요. 전화를 끊고 제 마음이 요동을 또 하죠. 화도 나고 속도 상하고. 뭔가 이렇게 이 자리에 온 것 같은데 다시 돌이켜 보면 저 자리에 가 있는 것 같고…… 마음이 막 요동치는 광야가 있어요. 그래서 화도 나서 ‘어떻게 할까, 말까?’ 막 이런 생각도 들고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러면 ‘주님, 마음이 바뀌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마음을 조금만 이렇게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주님!’ 이런 마음으로 하면 제 마음에 주님이 이 한 단어가 생각나게 하세요. “니(너)는?”^^;; 그런 마음이 들면, ‘그렇지. 나도 이렇게 안 바뀌고 안 돌이키는데 “왜 이렇게 안 돌이키냐고” 지금 내가 가서 그런 소리를 할 게 아니지.’ 또 이런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여지없이 들여다보면 제 삶도, 또 우리 가족에도 큐티의 성소가 아주 허물어져 있는 걸 보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은 생활 예배의 성소, 말씀의 성소와 기도의 성소와 한 영혼을 향한 우리 시선의 성소를 다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그 직장에도 성소를 세워야 하고, 상처가 난무한 가정에도 성소를, 그리고 질병 때문에 고통하는 그곳에도 성소를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광야를 즐거움으로 통과할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Q. 관계, 직장, 습관, 영적 침체, 상실과 슬픔, 불확실성, 영적 전쟁 등 어떤 광야에 있습니까?
Q. 광야에서 하나님을 찾나요, 다른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Q.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세상 기쁨에 취하려고 합니까?
Q. 나부터 먼저 성소를 잘 세워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성소, 예배의 성소, 사랑의 성소, 복종의 성소 중 나부터 잘 세워야 되는 성소가 무엇입니까?
Q. (그리고 중요한) 1월부터 판교에서 함께 예배드리시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온라인 예배 드려야지’ 이게 아니고 판교에서 성소를 잘 세워야 합니다!
광야가 기쁨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두 번째,
2.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주의 사랑 때문입니다(3-5절).
나 때문이 아니라 주님 때문이죠. 우리 3절부터 5절까지 읽습니다. 시작.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지금 다윗의 입술은 물을 먹지 못해서 부르트고 굉장히 메말라 있어요. 이런 입술로는요. “물 좀 주세요” 이렇게 간구하거나 아니면 이렇게 만든 배신자들을 향하여 저주하는 것을 입으로 말할 것 같은데, 실제로 11절에 다윗의 원수들은 끊임없이 거짓말하는 입술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다윗은 오히려 그 입술로 주님을 찬양했다고 해요.
“내 입술로 주를 찬양할 것이라” 메마른 입술로 그런 찬양을 한다는 게 어려웠겠죠.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찬양합니다. ‘찬양하다’가 원어로 [샤바흐] 입니다. 이거 작은 소리로 힘없이 찬양하는 게 아니라 큰 소리로 찬양하자는 뜻입니다. 먹지 못해서 배고프기도 할 텐데 일부러 큰소리로 찬양을 한 것이에요. 반역자들에게 지금 들키면 큰일 나는데 숨죽여 지내도 모자를 판에 오히려 들으라고 다윗은 큰 소리로 더 찬양을 합니다. 환경이 좋아서 찬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기 때문에 우리가 찬양을 하는 것이죠. 근데 조용히 할 수도 있잖아요? 가만~ 가만히~ 찬양할 수 있잖아요. 왜 굳이 이렇게 큰 소리로 찬양을 할까요? 이 [샤바흐]라는 단어에는 굉장히 또 특별하고 재미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요. 이 ‘막 요동치는 그 마음을 진정시키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비결은 찬양이라는 거예요. 자신도, 자신과 함께한 그 가족이나 사람들도 지금 요동이 치잖아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적군은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그 요동치는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 다윗이 부른 찬양을 통하여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너무 요동을 치세요? 가정이 뭔가 큰 사건 때문에 요동이 일어납니까? 그때 우리가 뭐예요? 찬양을 부르라는 거예요! 그 찬양을 부르는 입술에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신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 다윗은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두 손을 들겠다”라고 고백합니다. ‘송축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라크]입니다. 우리가 담임 목사님 설교를 들었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 그 ‘복’이 ‘바라크의 복’이다. 복! 바라크의 복! 이 다윗은 지금 한 가지의 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내 평생에 주님을 찬양하는 복’이에요. 어떤 순간에도 찬양하는 것이 멈추지 않는 복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어요. 어떻게 이런 복을 누릴까요? 이 [바라크]는 ‘무릎 꿇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찬양을 하는 거예요. “높으신 주님! 높으신 주님! 찬양을 받으세요!” 주님은 이미 높으신데 어떻게 더 높아질 수 있어요? 높아질 수 없어요. 내가 낮아질수록 주님은 더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나의 낮아지는 환경은 “나를 통하여 주님이 더 높임을 받겠다”라고 하시는 것이죠.
다윗은 손을 들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지금 적군이 언제, 배신자들이 언제 자신을 찾아올지 모르는 그런 순간입니다. 다윗은 평생 칼자루를 손에 들고 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려놓고 이제 손바닥을 펴서 “하나님, 내가 이 칼자루로 싸우지 않고 주님께 무릎으로 나가겠습니다! 싸우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손에 든 것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주님께 내어놓는 것으로 싸우겠다는 것이죠. 그럴 때 다윗이 이렇게 고백을 하죠. “골수를 먹음같이 내 영혼이 만족합니다.” 골수는 최고급 기름을 말하는 거예요. “그것을 먹음같이 내 영원히 만족합니다!”
인생이 만족을 몰라서 부부가 싸우고, 자녀와도 다툼을 합니다. 서로의 칼자루를 들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이 우리의 삶이죠. 근데 다윗은요. 다 내려놓고 “주님께 만족합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사람이 왜 만족을 참 못할까요? 이 <사람은 왜 만족을 모르는가>라는 책이 있는데 로리 애슈너라는 상담가가 10년 동안 사람들과 상담하면서 사람들이 만족을 못하는 걸 많이 느낀 거예요. ‘아! 사람들에게 만성 불만족 증후군이라는 게 있구나!’ 그러면서 그런 이유들에 대해서 막 이 사람이 생각해서 책을 썼어요. 여러분도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좀 불만족을 주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이 사람이 얘기하더라고요.
- 어떤 목표를 향해서 내가 나아가는데 그러면서 진짜 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냥 스톱을 한다는 거예요. 주저앉게 되는 이 자포자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거죠.
- 그러면서 또 무언가 나에게 딱 맞는 어떤 사람을 내가 늘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상대의 결점을 참지 못하는 완벽주의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늘 불만족을 하게 되는 거예요.
- 어떤 사람은 늘 잘 베푸는 사람이에요. 늘 잘 베풀고 선을 행하고. 그런데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 관계를 통하여 안전한 마음을 갖고 싶어서-통제가능한 어떤 그런 관계를 만들고 싶어서- ‘나라도 그냥 희생을 해야지’라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하기는 하지만 이 불만족을 가진다는 거예요.
- 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냥 ‘이게 훨씬 안전한 선택이야’라고 하며 안전한 선택만을 하다 보니 늘 불만족 상태가 지속이 된다는 거예요.
- 어떤 사람은 늘 비교의 콤플렉스에 빠져 만성적인 불만증을 갖고 있다고 해요.
이거 보면서 저도 실패를 두려워해서 나에게 안전한 선택을 하는데 그 선택을 저도 늘 불만족하게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그 불만족이 제 안에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에서 “결론적으로 왜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가?”에서 “대부분 유년기 시절의 경험과 가족과의 관계에서의 결핍이 만족을 방해한다”라고 이 사람은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면 이 책을 따라서 생각해 보면, 다윗이 대표적으로 가정에 불화가 있고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잖아요. 그런데도 다윗은 불만족이 아닌 “지금의 광야에도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이 3절의 고백이죠. 우리 3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아멘! 하나님의 인자함! 헤세드의 사랑! 언약의 사랑!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끝까지 주님 품으로 인도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아무것도 끊어질 수 없는 그 사랑이 내 생명보다 값지다는 것! 나보다 값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통하여 분수령적인 회개를 했습니다. 내가 죽어 마땅한 인생인데 하나님이 살려주셨다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깨달았어요. 그래서 광야에 들어가게 하는 것도 나가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지금 자기 아들이 자신에게 칼을 든 이 상황도 자신의 죗값을 물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다윗은 알았어요.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그 자녀들과 어찌 할 수 없는 것을 아신 하나님이 친히 그것을 정리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도 다윗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광야로 자신을 보낸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좀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가 만든 우상으로 계시길 원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하면 뭔가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그렇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죠. 그럴 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내가 죄인일 때에!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할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예수님을 이미 너에게... 나의 독생자를 너에게 주었다.” 예수님도 하늘 영광을 버리고 점으로 이 땅에 너를 위해 왔다는 것으로 사랑을 계속 말씀해 주시죠.
제 딸이 이제 1월 1일부터 재수 생활을 시작하는데 어제 아침부터 같이 밥을 먹는데 공부하기 싫다고 막 징징댄 거예요. “공부하기 싫어~~” 막 이러면서. 그런데 남동생이 같이 고등부에 있는데 동생이 누나의 얘기를 듣다가 “누나, 지난 주일 간증을 듣고도 지금 이래?” 이러는 거예요. “지난 주일 간증했던 그 누나가 뭐라 그랬어? 자기는 친구들은 시험 끝나면 다 놀러 가는데 자기는 아빠를 간병하러 간다고. 나도 공부가 고난이고 싶다고 그런 말 들어보지 않았어?” 막 이러면서 처방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고등부 친구의 간증이 뭐였을까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고등학교 3학년 이제 대학부로 오는 그런 친구인데 그 친구의 간증을 여러분 그냥 읽어드릴게요.
저는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의 폭력을 거의 매일 보며 자랐고, 아버지와 실랑이 하던 중 엄마가 집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출동했고, 어머니는 그 경찰을 또 돌려보내기도 했어요. 저와 언니 또한 아버지에게 맞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품었고, 그 분노는 저를 잠식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소식을 제가 처음 들었을 때 아버지를 걱정하기보다 아버지가 불쌍하기보다 ‘더 이상 안 맞고 살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즉사하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아빠가 그렇게 반대하던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예수님은 폭력과 상처로 가득 찬 채 제 과거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안아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은 가정을 바라보는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사고로 인하여 뇌 손상을 입으신 아빠를 계속 증오하는 저였지만 지금은 이전처럼 미움과 증오만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신 가정이 최고의 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이제 저는 분노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 상처를 솔직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가끔 혈기를 부리시는 아버지를 통하여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제 감정을 하나님께 맡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큐티를 통하여 마음에 깊이 남은 말씀은 이스라엘과 유다는 여호와께 버림을 받지 아니하였다 예레미야 51장 5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제 삶이 죄와 상처로 가득해 보였을지라도 하나님은 한 번도 저를 버리신 적이 없고 오히려 상처 입은 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라는 것을! 그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의 기도 제목은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저를 한순간도 놓지 않으시고 품어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이것이 다윗의 고백 같지 않으십니까? 폭력의, 분노의 광야에서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니 그 사랑 때문에 “나와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똑같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길 원합니다”라는 것이 이 아이의 기도 제목이었어요.
로마서의 바울이 얘기하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리라!”(로마서 8:35, 38-39)
우리가 당하는 광야가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Q. 지금의 환경에서 찬양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Q. 내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두 손 들고 하나님께 항복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Q. 하나님이 날 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Q. 두고만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이 광야가 사랑인 것을 느끼십니까?
광야가 기쁨이 될 수 있는 이유는요. 첫 번째는 광야에서 성소가 세워졌기 때문에, 두 번째는 끊어지지 않은 주님의 사랑 때문에. 세 번째로 광야가 기쁨이 될 수 있는 이유는요.
3. 고통의 밤을 가득 채울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6-11절).
고통의 밤을 채울 뭐가 있다고요? 말씀이 있기 때문에 광야는 고통스러운 밤이에요. 하지만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6절에서 8절까지 읽어봅니다. 시작!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침상은요. 다윗이 낮에는 사람들과 이렇게 있다가 막 이것저것 막 하다가 이제 저녁이 되면 침상에 홀로 다 있습니다. 개인의 공간이고 일상의 장소예요. 그리고 그 밤은 홀로 있는 시간, 자신의 일상의 시간입니다. 왕궁에서는 참 편안하고 즐거운 밤이었겠죠. 하지만 이 광야에서는 외롭고 홀로 서야 하는 시간입니다. 편안함이 아니라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하고 괴로운 곳이에요.
여러분도 침대에 누워서 밤에 어떤 밤을 보내고 계십니까? 그냥 잠에 곯아 떨어지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도저히 잠들지 못하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 생각이 너무너무 많고 걱정과 염려가 많아서. 다윗도 그런 밤이었습니다.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다윗을 많이 했겠죠. 압살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결국에는 다윗의 생각의 끝이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참 많은 생각을 하시지만 그 끝이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 돼야 하는 거예요. 염려와 두려움으로 그냥 다 포기하는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을 기억해내는 것이죠. 저도 토요일 밤엔 잠에 잘 들지 못해요. 누웠다 앉았다 물 마셨다 시계 봤다가.. 시계를 보는 것도 시계를 딱 봤는데 새벽 1시, 또 보면 새벽 1시 10분, 이런 거요.^^ “주여,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는데 왜 저는 잠이 오지 않나요? 잠을 제발 재워주세요.” 막 이렇게 토요일 밤을 보내도 그렇게 주일에 오는데.
다윗이 그 밤에 침상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겠죠. ‘아! 이 침상이, 이곳이 십수 년 전 사울에게 그렇게 쫓기면서 내가 숨었던 이곳이구나.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바위 틈에 숨기시고 사울의 손에서 결국에는 건져내셔서 나를 인도하셨구나’라는 기억을 해낸 것입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주님이 나를 어떻게 구원으로 인도해 오셨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너무 절망스러울 때는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이 은혜의 자리에 놓으셨는지를 기억해 내야 합니다. 그러면 의외로 쉽게 답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 기억 끝에 다윗은요. 밤새 말씀을 읊조렸습니다. 밤새 말씀을 묵상했다는 거예요. 여러 생각이 딱 떠오를 때 바로 그냥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떠올리는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여러 잡생각이 막 들 때에 그냥 말씀을 봤습니다.말씀을 막 읊조렸어요. 소리 내어 얘기했어요. 그리고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생각만 하고 끝내면 안 돼요. 늘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 거죠.
그렇게 밤이 새도록 그런 밤을 보내고 난 뒤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7절에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주님이 정말 도움이셨구나”라는 고백을 하는 거예요. ‘한 번도 나를 돕지 않은 적이 없으시구나’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그것만 기억이 났을까요? 다윗이 너무 편안한 왕궁에 있을 때에 부하들은 다 전쟁터에 나갔는데 자기는 침상에 누워 늦은 시간까지 게으름을 부리다가 그렇게 침상에서 일어나서 왕궁 위를 거닐다가 밧세바를 훔쳐보는, 그리고 그 훔쳐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데리고 침상에 와서 침상을 더럽히는 죄까지 다윗이 저지른 것을 생각할 때에 지금의 이 허름하고 불편하고 괴로운 이 침상, ‘이것이 마땅한 자리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고난이 내 죄보다 크지 않다’라는 고백을 다윗이 했을 거예요. ‘아! 그 편안한 침상에서 내가 주님을 더욱더 기억했더라면’ 이런 회개의 기도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것뿐만이 아니죠. 다윗은 이 밧세바 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이렇게 다윗이 침상에서 고백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편 6:6)
내가 눈물로 지냈던 그 밤을 생각하고 ‘그 응답으로 내가 이 광야로 주님이 보내셨구나.’ 우리는 눈물로 기도하면 호텔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눈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광야의 침상을 주신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뭐라 그래요? “주의 날개 그늘 아래 내가 있습니다”(시 63:7) ‘가장 안전한 곳이 이곳이구나. 이 침상이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 있는 것처럼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구나.’ 여러분 침대는 과학이 아니라 ‘침대는 주의 날개 그늘’입니다. 이 불편한 침상이! 외롭고 괴로운 침상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고백이죠.
우리는 불편한 상황이 있습니다. 불편한 사람도 있어요.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님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곳이 내가 누워 있어야 할 침상입니다. 새벽을 맞이하기까지 보내야 될 밤인 것이에요.
어떤 청소년 친구도 아침 일찍 주일에 교회를 옵니다. 왜요? 집이 불편해서 교회를 옵니다. 그 친구가 목장 선생님을 참 좋아합니다. 왜요? 부모님이 너무 불편해서. 이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죠.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축복된 일인 것입니다.
8절 한번 읽어볼까요? 8절 다시 한 번. 시작!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주님께 가까이, 가까이 간다는 건요. ‘가까이 따르니’는 ‘남자 여자가 한 몸으로 한몸이 된다, 연합한다’라는, ‘결혼해서 남녀가 한 몸을 이룬다’라는 그 뜻과 같은 뜻입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께 딱 달라붙어 있겠다!’ 이런 마음인 거예요. ‘공동체에 내가 붙어가야지! 내가 말씀에 붙어가야지! 내가 목자님에게 붙어가야지! 내가 담임 목사님 그 매일 큐티 말씀에 붙어가야지!’ 이렇게 “딱 달라 붙어가야지!”라는 그런 마음의 결단이에요.
그런데 다윗은 “그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라는 고백을 뒤이어서 합니다. 뭐예요?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주님이 나를 붙잡는 거구나! 내가 주님께 붙어가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고 계시는구나. 2025년에 내가 공동체에 붙어간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으셨던 거구나! 목자님이 나를 붙잡으셨던 거구나! 목장의 그 고난이 나를 붙잡았구나! 목원 집사님의 그 눈물이 나를 붙잡았구나!’ 내가 붙어간 게 아니라 붙잡힌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며 우리가 구원을 내던져도 하나님께서 붙잡으시는 성도의 견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로 가는 구원을 받아요? 주님이 놓지 않으시는 구원 때문에!
여러분 마른 땅에 살다가 주님을 찾으려고 이 주일에 이곳에 나오셨잖아요. 주님이 여러분을 붙잡으신다는 거예요.
이 다윗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막 즐겁게 찬양하잖아요. 즐겁게 노래하잖아요. 그런 마음 한편에는 아들 압살롬에 대한 그런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 압살롬과 다윗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또 오늘 세 번째는 이 말씀에 대한 큐티가 너무 중요하다고 했기 때문에. 제가 수요 예배 때도 한 적이 있는데 못 들으신 그 한 분을 위해서 이 압살롬과 다윗의 큐티- 저의 큐티 이야기-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큐티를 이렇게 하라! 초급편”입니다. 초급편. 제가 어디 가도 이 간증을 많이 하는데요. 들으신 분은 또 들으시면서 큐티를 다짐하시면 좋겠고, 처음 들으신 분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7년 전에 이제 청소년부를 섬겼습니다. 더운 여름날이었어요. 제가 섬길 때는 청소년부가 중등부와 고등부를 나눠서 수련회를 했습니다. 중등부는 월화수 수련회를 하고, 목금토는 이제 고등부 수련회를 해요. 그러면 저는 주일 저녁에 들어가서 주월화수목금토 수련회를 다 끝나면 이제 토요일 날 집에 오는 그런 스케줄로 늘 이렇게 사역을 했습니다.
그해 여름, 7년 전 여름도 이제 너무 더운 여름이었는데 이제 주일 밤에 파주에 있는 수련회장에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 수련회를 했습니다. 그때 수련회 주제가 압살롬에 대한 것이었어요. “압살롬처럼 반역하지 마라. 불순종하지 마라. 압살롬처럼 하지 마라. 압살롬이 되지 말아야 된다.” 이게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일주일 동안 저도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찬양하고. 애들과 함께 있으면서 저도 너무 많은 은혜를 받고 애들도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우리 이제 압살롬이 아니다. 우리는 진짜 주님의 자녀로 살자!” 이렇게 주월화수목금토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까 너무 기쁘더라고. 여러분 큰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제 기쁘잖아요. 큰 짐을 내려놓으니까. 너무너무 기뻤는데 제가 또 마음에 또 기쁜 이유 중에 하나는 파주에서 자유로를 타고 쫙~ 운전하면서 나오는데 제 마음에 다윗처럼 기쁨이 있는 거예요. 왜 기쁘냐면 그때 아내랑 어린 두 자녀가 처가에 가고 집에 없기 때문에. 그거 생각을 하니까 막 다윗처럼 막 기쁘더라고요. 기뻤어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뭔가 밖에서 수고를 하고 딱 집에 가는데 설거지가 이만큼 쌓여 있고~ 막 청소가 이만큼 해야 되면~ 그럼 마음이 딱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럼 얼마나 기쁘게 집에 들어가겠어요? ‘아~ 집에서 씻고 쉬고 맛있는 거 먹고 편하게 쉬어야지~ 나한테 상을 줘야지~’ 이런 마음으로 기쁘게 왔습니다.
토요일 낮 아무도 없는 빈집. 저희 집은 4층이라서 태양이 바로 내리쬐는 그런 집입니다. 4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었어요. 걸어서 올라가는데 진짜 사슴처럼 뛰어 올라갔습니다. 막 뛰어 올라갔어요. 캐리어를 들고 막 뛰어 올라갔어요. 비번 띠띠띠띠띠 탁! 문을 촥! 열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아무도 없는 빈집에 시원한 바람이 확 나오는 거예요. 순간 ‘어? 이게 뭐지? 이럴 수가 없는데... 아내랑 애들이 안 갔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여보~ 얘들아~” 이렇게 했는데 집이 깔끔하게 정리가 돼 있는 거예요. 여러분 아시잖아요. 잠깐 나갔다 오면 집이 더럽지만 뭔가 어디 멀리 간다고 하면 좀 정리를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습니다.
저희 아내가 화요일 날 친정에 갔습니다. 화수목금토. 제가 토요일 날 집에 돌아온 거였어요. 그런데 거실에 있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희망 온도 20도에 맞춰 놓고 화수목금토 돌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와! 살면서 그렇게 에어컨이 시원하게 되는 줄 몰랐습니다. 온 방이 정말 바닥이 냉골인 거예요. 제가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확 난 거예요. 왜요? (죄송합니다) '이 여자가 미쳤나? 돈을 완전히 길바닥에 갖다 버렸구나' 이런 마음이 드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때 저희 집 에어컨은 인버터 에어컨이 아니라서 틀면 트는 대로 돈이 나오는 에어컨이었어요. 더운 여름날 “다 마루에서 자자” 에어컨 잠깐 틀어 놓고~ 끄고~ 키고~ 끄고~ 이렇게 하면서 그 여름을 지났는데 빈집에 5일 동안 에어컨이 계속 돌아가서 집을 냉장고로 만들어 놨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화가 막 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또 화가 났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제가 그 바쁜 수련회 일정 중에 화요일 날 아내가 친정 가기 전에 에어컨을 안 끄고 갈까 봐 “에어컨 끄고 가”라고 얘기까지 했는데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 때문에 제가 더 화가 나는 거예요. 화가 요동쳤습니다. 제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 ‘은혜받고 오면 뭔가 사단이 틈탄다. 시험이 들 수 있어. 조심해야 돼.’ 이런 말 많이 듣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게 사단의 시험인가? 내가 진짜 은혜받고 왔더니 내가 이렇게 회개하고 왔더니 지금 사단이 나를 이렇게 막 뒤흔드는 건가? 이게 사단의 시험인가 내가 지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이 막 들면서 “주여!” 막 이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근데 마음이 막 계속 요동을 치는 거예요. 아내한테 전화를 할까, 말까? 하면 싸울 것 같은데 또 안 하자니 너무 불편하고. 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하다가 전화를 했어요. 띠띠띠띠 전화해서 딱 근데... 뭔가 큰 소리로 얘기하면 싸울 것 같아서 마귀한테 질 것 같아서 아주 차분하게 부드럽게 정말 막 참아가면서 “나 왔어~” “왔어? 고생했어!” “근데 당신 화요일 날 갈 때 에어컨을 틀어 놓고 갔더라! 하하하하” 제가 막 이렇게 했어요. “집이 진짜 너무너무 시원해~ 하하하” 막 이렇게 제가 (사탄에게) 지지 않으려고, 왜냐하면 제가 성을 내면 뭔가 이게 뭔가 마귀한테 질 것 같아 가지고.
“하하하” 이랬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딱 듣더니 “아닌데?” 이러는 거예요. “아닌데?” 이러더라고요. “나 분명히 껐는데~”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 소리에 약간 또 화가 났어요. 그래서 제가 지지 않으려고 또 “아니야! 당신이 켜놓고 갔으니까 켜져 있지. 저게 AI도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 어떻게 켜지니? 당신이 켜놓고 갔어. 그러니까 이렇게 시원해진 거야. 하하하” 했어요. 그랬더니 끝까지 “아닌데?” 하는 거예요. “아닌데. 나 분명 끄고 왔는데~~”라고 하는 말에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마귀한테 졌다, 난 이제. 아 씨 마귀한테 뭐 시험이고 뭐고 난 졌어!! 오케이 니가 이겼어’ 이러면서 제가 이제 뭐 엄청나게 이제부터는 “당신!!! 어떻게 그걸 키고 갈 수 있냐!! 우리가 얼마나 아끼면서 그거를 지금 하고 있는데!! 길바닥에 돈을 완전히 갖다 버리는구나!! 길바닥에 돈을 막 뿌리는구나!! 당신이 이건희의 딸이냐! 어? 어? 당신이 갑부집 딸이냐! 당신 남편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막 이렇게 하면서 막 제가 엄청 막 쏟아냈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너무 당황해서 전화를 딱 끊더라고요. 그럼 어떻게 해요? 다시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하니까 받아요, 안 받아요? 안 받아요. 안 받으면 어떻게 해요? 카톡을 보냈습니다..^^; 또 어떻게? “당신이 부잣집 딸이냐!!!!” 막 한 20~30개 보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카톡을 그렇게 빨리 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미친 듯이 막 쳐서 막. 아내가 답장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이렇게 한바탕 하고 나니까 제 마음이 너무 허탈하더라고요. 막 너무 막... 아까 뭐 ‘마귀한테 지지 마라’ 이런 마음도 들고 하니까 마음이 너무 허탈하고 허무하고 ‘일주일 동안 내가 그 나눔 은혜 받고 이게 뭐지?’ 막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서 그날 이제 큐티책을.... 아직 큐티를 안 해 가지고 큐티 책을 폈습니다. 그날 말씀이 이거였어요. 한번 보여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압살롬의 말씀이었어요. 사무엘하 19장 1절부터 3절 읽어보겠어요. 시작!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삼하 19:1-3)
이 말씀의 배경은 이제 압살롬의 군대를 다 물리치고 압살롬까지 죽인 거예요. 이스라엘 군대는 이제 다 승리했다고 전리품을 얻으러 기쁘게 다윗한테 돌아왔는데 다윗은 오히려 압살롬이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것 때문에 애통해서 너무 슬퍼하는 이 말씀인 겁니다. 자, 이스라엘 백성이 전리품 얻으러 기쁨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딱 제 모습인 것 같아요. “쉬어야지~ 잘했다~”라고 하며 돌아왔는데 다윗이 막 너무 슬피 우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기쁘게 돌아왔는데 하나님이 너무 슬퍼하고 계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하나의 사건이 생각이 났습니다.
자, 수련회장에 주월화수목금토 7일 동안 제가 있었습니다. 수련회장은 지하에 큰 강당이 있고 제 방은 4층에 숙소가 있었습니다. 제가 강당에 있는 시간이 많을까요? 제 숙소에 있는 시간이 많을까요? 강당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죠. 아침 프로그램, 예배부터 새벽까지 다 돌아갑니다. 제 숙소는 밥 먹고 나서 잠깐 쉬러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였어요. 그리고 늦은 밤 다 끝나면 새벽 1시 2시에 가서 자는 거예요. 그런데 잠깐 들어갈 때 방이 너무 더운 거예요. 에어컨 틀고 나올 때쯤이면 시원해 지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리조트나 호텔에 가면 카드 키를 뽑으면 전기가 나가잖아요. 그래서 그 카드 키를 빼고 제 신용카드를 꽂았습니다. 그리고 그 빈방에 이제 에어컨을 계속 돌려놓은 거예요. 주월화수목금토 빈방에 에어컨을 다 돌려놓고 제가 잠깐 가면 시원해요, 안 시원해요? “어~ 시원하다~” 하고 딱 쉬고 나오고. 이렇게 했어요. 그게 생각이 난 거예요. 근데 그게 아까워요? 안 아까워요! 왜요? 내 돈이 아니니까. 이 생각이 딱 난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저한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대규야, 너는 네 것이 그렇게 아까워서 그렇게 혈기 내고 그렇게 분이 났니? 그런데 하나님의 것에는 네가 아끼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네가 그렇게 네 것에는 안달이 나서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것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니? 어떻게 하나님의 것, 내 것에는 네 마음이 그러니?” 이런 마음이 확 들더라고요. 그래서 “네가 아무리 기쁘게 수련회가 잘 끝났다고 기쁘게 돌아와도 나는 너로 인하여 너무 슬프다” 이런 마음이 제 안에 들더라고요. 제가 기쁘게 애들하고 은혜의 수련회를 하고 회개하고 예배드리고 막 기쁘게 했는데 그게 하나님께는 오히려 나한테 슬픔이 됐다는 말이 너무 막 너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제가 수련회장에서 울면서 회개했던 것보다 그날 소파에 앉아서 제가 회개를 참 많이 했어요. “주님, 제가 참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입니다.” 그러면서 그다음 날 아이들한테도 제가 나눴어요. “사실 목사님이 어제 이런 일이 있었고 수련회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사실 내가 너희들에게 압살롬이 되지 말라고 했는데 사실 목사님이 진짜 압살놈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그렇게 아까워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렇게 한 내가 압살롬이다.”라고 제가 회개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내한테 이제 카톡을 보냈습니다. “당신 내가 집에 돌아와서 이렇게 돼 있었는데 내가 큐티를 해 보니까 이런 이런 말씀이었고 내가 수련회장의 일이 다 생각이 났고, 당신이 나 때문에 수고한 것 같아. 다음 달 전기세는 내가 낼게.” 이렇게 했어요. 그때 답장이 바로 왔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저는 오히려 큰 값이 아닌 적은 값으로 저의 구원의 값을 대신한 것이 오히려 더 감사했어요. ‘진짜 이것이 아내가 나를 위해 수고한 것이구나’라는 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참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도 정확하신 분이세요. 제가 수련회장에서 에어컨을 막 돌리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우리 집 에어컨을 돌리고 계셨어요.^^
저의 이 큐티에 대한 간증이 ... 제가 진짜로 나의 큐티를 제 큐티를 이제 처음 이렇게 하게 된 사건인데 ‘왜 수많은 말씀 중에서 왜 이 말씀을 하나님이 나한테 이렇게 깨닫게 하셨을까?’라고 생각을 해보면... 여러분 이 간증을 처음 듣는 분도 계시지만 뭐 두세 번 듣는 분도 계시지만 제가 어디를 가나 제가 기회가 될 때마다 이 간증을 하는데 어느 집회에 가나 어느 세미나에 가나. 생각해 보면 한 50번 이상은 제가 이 간증을 했어요. 그러면 듣는 사람보다 사실 간증하는 제가 더 많이 이 간증을 늘 듣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게 하실까?’ 생각을 해봤어요. 여전히 압살롬이 되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주님이 저한테. 그래서 오늘 말씀을 따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힘든 두 번째 광야를 통과하면서 슬퍼하거나 울거나 아파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게 찬양했어요. 그러나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구원받지 못한 죽음에 대하여 다윗은 처절하게 애통하며 대성통곡을 합니다. 함께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소리 내지 못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게끔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이라 부르며 슬퍼해요. 다윗은 환경 때문에 울지 않고 구원 때문에 울었습니다. 2025년을 마무리하는 이때에 하나님 우리 가운데 한 번 더 질문하시는 것 같아요.
“너는 무엇 때문에 울고, 무엇 때문에 웃고 있니? 환경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마른 광야라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의 구원 때문에 울고 있니?”라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2026년을 새롭게 맞이하면서 우리가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제 환경이 비천해서 우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아들 압살롬 그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애통의 눈물을 흘리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광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Q. 침상에서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행하고 있으십니까?
Q. 하루 중에 큐티하고 기도할 시간을 언제로 정할 건가요?
Q.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과 사람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이렇게 나온 것은 주님이 부르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주님을 찾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광야가 있지만 예배와 말씀과 순종과 사랑의 성소를 세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송축할 이유가 많습니다. 주님이 버리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하십니다. 말씀으로 이타적인 적용을 하시는 것을 하나님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기에 결국에는 구원의 상급을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 말씀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2025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우리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로다
나의 몸과 마음 주를 갈망하며
이제 내가 주께 고백하는 말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생명의 피난처시니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으로
내 입술이 여호와를 찬양하리
내 평생에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으로 내손 들리라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생명의 피난처시니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으로
내 입술이 여호와를 찬양하리
내 평생에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으로 내손 들리라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으로
내 입술이 여호와를 찬양하리
내 평생에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으로 내 손 들리라
주의 이름으로 내 손 들리라 ♬
기도합시다. “우리의 메마른 삶에 하나님, 주님의 성소가 세워지게 도와주십시오. 말씀의 성소, 사랑의 성소, 적용의 성소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내 삶에 다 끊어진 것 같아도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 사랑을 붙드는 한 해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고통의 밤입니다. 잠들지 못하는 밤입니다. 괴로운 밤입니다. 주여, 말씀으로 채워지는 밤이 되게 도와주십시오”라고 이 시간 “주여” 한번 부르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우리의 삶이 메마릅니다. 하나님, 자녀의 일도, 직장의 일도, 돈의 일도 메마른 땅처럼 제 마음도 갈라져 아무것도...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참 그런 마음인데... 다윗은 이곳에서 즐거이 주님을 찬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광야의 환경이 주님을 찬양하는 환경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여! 하나님! 은혜의 단비를 우리 가운데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장 마실 물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기 전에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을 부르는 우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는 그 주님을 만나게 도와주시옵소서.
광야를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편안한 왕궁에서 그렇게 하나님을 외면했던 다윗이 그렇게 딱딱하고 외롭고 추운 침상에 누워 이것이 하나님의 주의 그늘 아래라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때에 지금의 환경이 너무나도 불편하고 힘들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끊어지지 않는 사랑임을 믿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우리가 가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그 침상에 누워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압살롬은 자신의 상처에 휩싸여 그 왕궁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결국엔 자신의 자랑인 머리가 나무에 달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도 “주여”를 부르지 않는 것이 아들 압살롬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윗이 그렇게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우리가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데, 나 때문에 수고한 것으로만 끝나고 죽는 인생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여! 구원을 상급으로 주시옵소서. 우리가 환경 때문에 울지 않고 구원 때문에 울기를 원합니다. 환경 때문에 웃지 않고, 구원 때문에 웃기를 원합니다. 내 가족을, 내 자녀를 주님!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다윗이 이기고 돌아왔지만... 하나님이 주신 그 왕권을 다시 회복했지만, 아들은 그렇게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것을 보며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2025년에 그렇게 구원을 위해서 주님께 부르짖었던 것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들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실 줄로 믿사오니 하나님, 그렇게 우리가 간구하는 또 2026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마음을 돌이키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어 속이 상합니다. 주여. 나도 돌이키지 못하는데 또 하나님 누굴 돌이키라고 또 말하겠습니까? 하나님, 나부터 잘 돌이키는 2025년이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 나라가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악에서부터 돌이키기 원하며, 나눔과 분쟁에서 돌이키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법에서부터 돌이키기를 원하며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 담임목사님의 영육과 사역에 기름을 부어 주시옵시고 선교사님의 안위를 책임져 주시옵소서. 오늘도 고통의 밤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찾아가 주셔서 하나님,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말씀으로 채워주시는 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빈손으로 나오지 않고 주님께 귀한 예물 드립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나눌 것만 있는 인생이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사업과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모든 직장과 물질과 공부와 목장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메마른 땅에 성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1-2절).
Q. 관계, 직장, 습관, 영적 침체, 상실과 슬픔, 불확실성, 영적 전쟁 등 어떤 광야에 있습니까?
Q. 광야에서 하나님을 찾나요, 다른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Q.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세상 기쁨에 취하려고 합니까?
Q. 나부터 먼저 성소를 잘 세워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Q. 1월부터 판교에서 함께 예배드리시겠습니까?
2.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주의 사랑 때문입니다(3-5절).
Q. 지금의 환경에서 찬양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Q. 내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두 손 들고 하나님께 항복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Q. 하나님이 날 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Q. 두고만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이 광야가 사랑인 것을 느끼십니까?
3. 고통의 밤을 가득 채울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6-11절).
Q. 침상에서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행하고 있으십니까?
Q. 하루 중에 큐티하고 기도할 시간을 언제로 정할 건가요?
Q.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과 사람은 무엇입니까?
*** 기도제목
A: 큐티 빠짐없이 적고 이력서 넣어보고 결과는 주님께 맡기며 붙회떨감 하기
B: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내 인생을 별보다 귀하게 지으신것에 감사하며 사명찾아 매일 큐티 하도록
C: 예배가 회복 되고 살려주신 귀한 약재료 힘든 지체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명의 말씀 주시도록
D: 할머니 위독 하신데 가족구원과 나의 구원 위해 기도 하고 준비되도록
E: 매일 큐티로 하루 살기
F: 전여자친구가 많이 아픈데 고쳐주시고 두렵게 하는 상한 마음도 위로해주셔서 평강의 날개 아래 쉴 수 있도록
G: 공사 준공이 늦어지는 것이 나 때문인것을 회개하고 추운데 애쓰는 팀위해 기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