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9.(주일) 마태복음 18:21-35 「가장 어려운 일-용서」 Jul Medenblik 목사(칼빈신학교 총장)
* 본문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말씀
안녕하세요.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목사님께서 저희 켈빈(신학교)에 오셔서 영어로 설교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주 용기가 탁월한 그런 여성분입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한국말로 설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통역해주실 형을 데려왔습니다. (저보고 형이라고 그래요^^ 한국말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섬기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한 일이고, 영광이고, 우리가 큰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증거함으로써 또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귀한 메시지를 증거함으로써 우리가 서로가 세워지고 교회도 세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를 먼저 시작합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여기에 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 밖에 문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 안에는 그 여인의 아버지가 누워 있었습니다. 암으로 지금 운명을 달리하려고 하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은 테드입니다. 아버지는 이제 젊을 때부터 아주 인생을 악착같이 살려고 항상 주먹 쥐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삶이 곤고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삶을 살았고,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대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살고 마음에 그런 강함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은 바로 아버지로서도 강한 아버지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광경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여인이 뭔가를 지금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여인이 기다리는 것은 아버지가 운명을 달리하시기 전에 돌아가시기 전에 그 여인에게 “너무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다오.”라는 말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내가 너한테 그동안 거친 말을 많이 했는데...... 그리고 거친 행동을 많이 했는데 용서해 달라. 제발 내가 했던 모든 잘못된 것을 용서해 달라.” 그러면서 기다리는데 그 아버지가 자기에게 용서해 달라고 그렇게 고백하기를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잘 아는 것은 제가 그 옆방에 있었습니다. 그때 기다렸던 그 여인이 바로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 테드는 제 외조부입니다. 그래서 제 미들 네임(중간 이름)은 그 외할아버지 이름을 따서 테드라고 지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증거하는 메시지 바로 이 용서라는 그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특별히 어떤 슬픔과 깨어진 관계와 그런 것 때문에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현실인데 거기에 관계된 것입니다. 우리가 목사로서 목회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많은 상담들을 하게 되는데 그 상담의 중요한 중심은 언제나 그 깨어진 관계들 때문이었습니다. 울면서, 정말 갈등하면서, 화가 나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가지고 상담을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배반하는 그 배신 때문에.
오늘 우리가 말씀 가운데 듣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무자비한 종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금 보게 되는데요.
오늘 어떻게 마태복음 18장이 시작되나요? 마태복음 18장이 시작하기를, ○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시더니 겸손에 대한 교훈을 주십니다. ○ 그다음에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를 주시면서 한 양이 그룹 가운데 벗어났을 때 안타까움으로 찾는 비유, 그리고 찾았을 때 기뻐하시는 그런 주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관계가 깨어지고 힘들 때, 어떻게 하면 이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상처 입은 영혼들을 교회 앞으로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에 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 이 교훈 후에 베드로가 개인적으로 주님에게 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형제가 나에게 범죄하거든 얼마나 많이 자주 용서해야 됩니까? 7번 용서하면 됩니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을 한 학급처럼- 한 그룹처럼- 지금 가리키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런 경험 있으시죠? 학급에서 선생님들한테 교육을 받을 때 다 교육받고 난 다음에 개인적인 질문이 아마 있을 거예요. 이제 다 같이 그룹으로 중요한 그날의 가르침, 교훈을 받고 난 다음에 베드로 혼자 질문이 개인적으로 생겼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그런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어떤 형제하고 가졌던 갈등이 있는데 이 갈등을 좀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끝내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똑같은 죄로 나에게 계속 와서 나를 상처 입힌 형제를 내가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용서하고 7번까지 용서했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어떤 이론적인, 어떤 신학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 안에 지금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개인적인 그런 상처 때문에 지금 주님에게 질문하는 겁니다. 베드로에게 개인적으로 계속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어려움을 주는 형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여러분 누구를 용서해야 됩니까?” 그렇게 질문한다면 여러분이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충분히 용서를 실천했습니다!”라는 그런 태도로 주님에게 질문하는 겁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많이 용서했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충분하지 않다. 70번씩 7번 용서해야 된다”고 말씀하는 거예요. 더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그 마음이 너무 깨어져서요. 상심이 됐습니다. 실망이 됐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 말씀을 듣고 베드로의 얼굴이 어땠을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베드로는 실망스럽게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지금 돌아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마음속에 그 갈등이 생겨서 돌아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절망으로 돌아서려고 하는 베드로의 어깨를 딱 잡으시더니 주님이 이런 말씀하십니다. 오늘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용서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십니까? 마태복음에서만 이 용서에 대한 구절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산상수훈에서 마태복음 5장에 23-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예배보다도 먼저 가서 형제에게 가서 화목하고 와서 예배드리라고 말씀합니다. 몇 구절 뒤로 가보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용서에 대해서 진지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대답은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용서에 대한 것을 진지하게 여기셨다면 우리들도 용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용서에 대한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가슴으로 그리고 삶으로 살아내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근데 용서라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매일매일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압니다. 주님이 이 말씀을 가리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기를 원하지, 우리 마음에 가슴에 누구를 용서하지 못해서 쓴 뿌리를 가지고 살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것을 가리키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성숙도가 바로 용서를 얼마큼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성숙도가 달려 있다고 그렇게 지금 말씀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세상에도 또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시카고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를 시작하는 초창기였습니다. 방문하는 가운데 어머니가 저보고 단둘만 나가서 잠깐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네 식당 한 쪽에 어머니를 앉혀드리고 제가 반대쪽에 앉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 흘리시면서 이런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들아, 용서해라. 내가 그때 너무 어려서... 19살밖에 안 됐는데 너는 내 첫아들이다. 내가 너를 키우면서 너무나 많은 실수를 했다. 내가 너에게 잘못한 모든 것들을 지금 고백하는데 용서를 비니까 내가 나를 좀 용서해 달라.” 저는 그 순간에 어머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머니 어머니는 나한테 최선을 다하신 어머니였어요. 그리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너희 어머니는 너 키우는데 최선을 다한 어머니라고 그렇게 칭찬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보세요. 제가 지금 목사까지 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서로 이 용서 문제를 가지고 말을 주고받았어요. 제 입을 통해서 “어머니, 어머니의 죄를 용서해 드릴게요”라는 그런 말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에 “어머니 용서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에게 “내가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잘못하고 부족한 게 많은데 저도 용서해 달라”고 그렇게 어머니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그 식당에서) 뭘 먹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저는 기억해요. 그날에! 그 순간에! 우리가 어머니가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고, 어떤 영적인 축복을 주셨는지를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뒤돌아볼 때 어머니가 왜 저에게 그런 일을 하셨는지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3년 전에 그 어머님이 8월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건이 저로 하여금 뭘 생각나게 하면 어머니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문밖에서 아버님한테 정말 화해하고 아버님이 용서를 빌기를 그래서 용서를 해드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지만 그 순간이 안 왔잖아요. 그런 것들이 가슴에 있어서 아들에게는 바로 살아생전에 이거를 했던 것입니다.
저는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 어머님을 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하나님 품에 안겼지만 내가 어머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마음속에 어떤 상처나 아픔을 가지고 평생 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님한테 그 용서를 받을 이유도 없고, 또 서로 용서를 서로 나누고 그를 화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바로 그 용서의 메시지를 들었고 저도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님은 저에게 그 용서에 대한 능력과 그런 은사들을 저에게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한 말씀이 생각나게 합니다. 골로새서 3장에 12절 13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우리 모두 다 옷을 입잖아요. 여기 모자도 쓰고 계시고. 그래서 우리가 뭐를 좋아하고 우리가 누군지가 입는 옷을 통해서 또 나타납니다. 우리는 바로 어떤 옷을 입은 사람들이냐 하면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바로 다 용서라는 옷을 입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근심시키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성령을 통해서 성령의 우리를 도구로 사용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는 통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우리의 관계 속에 상처와 아픔과 쓴 뿌리와 이런 많은 것들을 나누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많은 빚을 졌고요, 서로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용서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시면서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 빚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우리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주님이 탕감하시고 갚으셨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교훈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너희도 피차 서로 용서하고 그 용서의 메시지를 증거하며 그런 삶을 살으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여러분, 자비로우세요? 여러분 사랑하면서 사세요? 여러분은 서로 용서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오늘 이 무자비한 종의 그런 비유는 어떤 수학적인 것을 지금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자가 그 용서를 베풀고 사는 삶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여러분이 용서를 실천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큰 죄를 용서하셨는지를 우리들이 경험하며 나누면서 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두 질문을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Q.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그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렇게 돌아가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그 주님의 용서를 다 받으신 분들입니까?
Q. 여러분들은 그 받은 용서를 실천하며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용서의 옷을 입고 살고 있다고 그렇게 드러내 보이면서 사십니까?
오늘 말씀을 맺기 전에 한 이야기를 더 여러분들에게 한 그림을 그려드립니다. 이것은 완벽한 용서에 대한 그림입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그 이후에 그를 괴롭혔던 그 형제와의 관계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베드로가 주님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실을 압니다. 베드로는 즉각적으로 이 용서의 공동체로부터 자기는 벗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이 공동체 안으로-용서의 공동체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셨습니다. 마가복음 마가복음 16:6-7.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에 보면 빈 무덤 앞에서 서성거리는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너희는 예수님을 찾는구나! 그는 살아나셨다!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라! 그리고 베드로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용서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의 삶을 살도록 다시 초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말씀을 이제 들으시면서 떠오른 용서 못해서 괴로워하는 대상들이 있으세요? 떠올려 보시면서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여러분 가슴에다 손을 대고 이제 같이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 나에게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인데...... 하나님, 이 어려운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것을 실천해서 용서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시고, 내 안에 쓴 뿌리가 없이 저를 용서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우리 문화 속에서는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용서를 빌지 않습니다.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어른들도 자녀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됩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서로 용서를 고백하고 용서해 줌으로써 우리 자녀들도 우리 부모님들도 가슴에 쓴 뿌리가 없도록 그래서 하나님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한 목소리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메시지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대상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되는데 아버지 하나님 성령의 근심시키는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관계 속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것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괴로움과 역경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허락하신 귀한 메시지, 교훈을 일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하기 힘든 것, 그러나 꼭 우리가 실천해야 되는 것이 용서입니다. 우리 마음이 아직도 용서하지 못해서 관계 속에서 쓴 뿌리들이 많고, 미워하는 대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평생 탕감받지 못하는 큰 죄를, 내가 도저히 하나님 앞에 받을 수 없는 은혜를 저희들이 받고 탕감받았습니다. 우리도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어서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우리 공동체가 회복되고, 내가 만나는 모든 그 관계 속에서 깨어진 관계들이 회복되어서 하나님 앞에 은혜의 사랑으로, 은혜의 공동체로, 은혜의 가정으로 하나님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양재 목사님)
은혜를 너무 많이 받은 우리나라인데 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개독교 시대가 되었어요. 보수는 기독교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너무 한쪽은 또 이제 악의 평범성으로 가고, 또 이쪽은 너무나도 본을 못 보이고 있어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냐? 진짜 우리가 회개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 같고. 하나님이 사사기를 통해서 너무 은혜를 잊어버리니까 400년 노예 생활을 구원해 주고 40년 동안 훈련시켰는데 사사기 들어가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전쟁을 많이 일으키십니까? 우리가 전쟁이 올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본을 너무 못 보이는 거예요. 용서를 안 해요. 용서를. 그리고 맨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이럽니다. 우리는 이쪽저쪽 다 불쌍하고 다 말씀이 들어가야 되잖아요.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참된 크리스천을 보기가 힘든 시대에 저부터도. 그래서 주님 마음을 우리에게 달라고 주님 마음 달라고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우리는 이제 다음 주일에 전도 주일을 앞두고 정말 용서해야 될 식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렇죠? 세상 모든 사람을 용서하겠는데 우리 식구를 용서를 못해. 그죠? 제가 보니까. 식구 4명인데 우리들교회에 왔는데 같이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가슴이 미어져요. 오늘 이렇게 1만 달란트 빚진 자가 100 데나리온 탕감을 못해 주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께 죄 사함을 받았는데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게 안 되는 거예요. 내 자신을 진짜 직면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진짜 우리나라가 5천 년 만에 어떤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지금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거예요. 진짜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이거 어떻게 되려고 진짜. 그러면 맨날 나가서 “여기 틀렸다” 그렇게 외쳐야 됩니까? 거기도 또 다 같이 기복에... 전쟁이 안 나는 게 목적이 아니고 회개를 해야 되는데... 용서를 해야 되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전쟁으로 다루시잖아요.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지금 이편저편 나눠서 싸울 것이 아니라 내가 회개하고 기다리고 본이 돼야 되잖아요. 남편이 바람을 펴도 “남편 틀렸다” 그러면 돌아와요? 그 남편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내가 본을 보여야 되잖아요. 예수 믿은 사람, 용서받은 자의 그 모델로 본을 보여서 성령이 운행을 하셔야 되는 거죠. 이게 교회고 나라고 다 일원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이제 옳고 그름을 따져가지고는 되는 일이 이제 하나도 없는 거예요.
베드로가 제자잖아요. 용서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하라니까 7이 완전수니까 죽을 때까지 용서하라는 거잖아요. 근데 내가 용서할 수가 없다고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서 “오늘 말씀만큼만 용서하게 해달라고.”
근데 우리들교회를 왔는데도 온 식구가 밥을 같이 먹어본 적이 없다고. 그게 다 남의 얘기가 아닌 거예요. 전 세계를 용서하는데 내 집 식구를 용서를 못하는 거예요. 근데 그러면 또 여러분들 손가락질 하시겠어요? 그게 다 내 얘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요셉처럼 살면서 유다를 용서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인정하기도 어려워요. ‘저딴 게 어떻게 우리 집에 나왔나?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요셉이 되었는데!’ 이 고정관념을 없애야 되는 거예요. 나는 요셉처럼 살지만은 내가 주님의 용서를 받았다면 유다를 인정해야 되는 거예요. 유다가 겸손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용서를 우리가 좀 그냥 마음 깊이 생각하면서 이번 전도 주일에 이런 모든 식구들에게 안 와도 좋아요. 내 신앙고백으로 보내는 거예요. 안 와도 어떡하겠어요? 근데 하나님은 다 보시고 아시고 들으시고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정말 한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저보고 다 열정이 있다고 그래요. 제가 무슨 열정이 있어요? 오늘 마지막처럼 생각하니까 가서 한 분이라도 가정이 살아나야 되니까 이건 세계적인 일이기도 하니까.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부터 전도가 돼야 되잖아요. 우리 교회에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내가 성공했다’ 이런 얘기가 아니고 그냥 내가 내 죄를 사함 받은 것처럼 여러분들이 그냥 가서 입을 떼는 거예요. 너무 힘든 거 알아요. 죽기보다도 싫어요.
그런 마음으로 이번 전도 주일에 한 사람이라도 초청하게 해달라고.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는 걸 내려놓게 해달라고. 주님, 저에게 70번씩 7번 용서할 수 있는... 죽을 때까지 나는 옳은 게 없고 하나님 100% 옳으시고 우리는 100% 죄인이고. 나는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고, 우리 식구는 100 데나리온... 말도 안 되는 죄를 지은 그걸 인정하게 해달라고. 당신이 나보다 무조건 옳다 이런 마음으로 전도하게 해달라고 다 같이 우리 주님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나는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인데, 백 데나리온 나에게 빚진 부모를 아버지를, 어머니를, 배우자를, 남편을, 아내를, 자녀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내 힘으로는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가가서 전도하기가 너무 두려워요. 말을 걸기도 두려워요. 자꾸 회피하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나님이 몰라서 우리에게 맡겼겠습니까? 주님,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아시는데 우리는 너무 두려워요. 한 발을 떼기가 너무나 두려워요. 주여,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가 하나님께 사함 받은 자인데 이것을 이제 행함으로 옮기기가 너무나도 어려워요.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인도하고 천국에 가야 하는데, 주님, 우리에게 이렇게 기회를 주시는데 우리의 두려움을 주님께 올려드리오니 주여, 입이 떨어지게 도와주시고, 발걸음이 아버지 하나님 떨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그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겠사오매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이 중요한 줄 압니다. 아직 우리의 전도 대상자가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은 나에게 훈련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천하보다 귀한 것이 아버지 하나님, 정말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이 예수님이고 천하의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사오니 내 부모가 아무리 나이스하고 멋있어도 예수 안 믿으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여, 이런 마음을 주시고, 주님 내가 무엇을 회개해야 될지를 깊이 생각하여서 이번 이제 전도 주일에 많은 영혼들이 추수할 영혼들이 아버지 하나님 모여들어서 예수 이름을 들어보는 아버지 하나님 추수감사절 전도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의 그 용서의 말씀이 신앙고백으로 들리게 깨달음을 주셔서 저희들의 신앙고백으로 드린 이 헌금을 주님 흠향하여 주시옵시고,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의 산업을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회사와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에. 이 모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건강과 물질과 이 인간관계와 이 목장에 주님 기름을 철철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끝없이 용서합시다!”
*** 적용질문
Q.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그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그렇게 돌아가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그 주님의 용서를 다 받으신 분들입니까?
Q. 여러분들은 그 받은 용서를 실천하며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용서의 옷을 입고 살고 있다고 그렇게 드러내 보이면서 사십니까?
**** 기도제목
A.
1. 피해사고에서 벗어나서, 현재를 살고 긍정의 꼬리말을 달도록
2. 하루를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B.
1. 매일 큐티 말씀묵상 잘 하고-바뀐 약을 잘 먹어 보도록
C.
1.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붙회 떨감 하도록
2. 프로젝트들 (예** 태** 울***)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말고는 없다는 것을 알고 하루를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