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2025.11.02.(주일) 사도행전 21:15-26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김현우 목사님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 본문
하나님 아버지, 원수 되었던 우리, 구원받을 자격 없는 우리를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영접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도 구원을 위해서 성령의 영접으로 나아가 복음의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성령의 열심으로 전도하길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안녕하세요. 혼외자로 태어나 무서운 피해의식으로 죽었다가 (혹시 저를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 봐) 구속사로 살아난 김현우 목사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요, 진짜 혼내는 건 아니고 요즘 고등부에서는 ‘혼외자’가 아니라 ’혼내자‘로 활동 중입니다.
여러분을 주일 아침에 뵙게 돼서 너무나 반가운데요.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면서, 오늘 <큐티인> 제목 자체가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이라서 우리 서로 보면서 환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잘 오셨습니다. 함께 예배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동역자들과 함께 온 사도 바울이 소수의 형제들의 영접을 받게 되죠. “기꺼이 영접한다”라고 쓰여 있는데 그러고 나서 그다음 날 바로 야고보와 예루살렘 장로님들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 보고 선교 보고를 합니다. 하지만 바울에 대한 유대인 성도님들의 오해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풀기 위해 바울은 예루살렘 장로님들의 처방에 따라서 바로 성전에 들어가는 적용을 하는 장면이 오늘 말씀인데요. 우리 목사님께서 이 본문의 말씀으로 <성령의 영접>, <성령의 열심>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해 주셨는데 기억나시나요? 함께 말씀을 묵상하면서 원수였던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영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쉬지 않으시는 성령 하나님의 열심을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영접’이라고 하면 빼놓지 못할 말씀이 생각이 나는 게 하나 있는데 요한복음 1장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뭐가 돼요?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만세 전에 우리를, 우리가 먼저 영접한 게 아니라 만세 전에 우리를 영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11월 전도 축제를 우리가 준비하면서 우리 가족과 주변 친척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또 사랑으로 영접할 때 주님이 구원으로 응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구원을 위해 기꺼이 영접하려면 첫 번째,
1. 여러 날을 기다려주며 함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15-19절).
15절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이 여러 날 후에”라고 합니다. 왜 바울은 당장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지 않고 ‘이 여러 날 후에’ 출발할까요? 예루살렘에 올라가느라고 사도 바울이 유두고도 떨어뜨려 죽였는데…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나요?^^; 사도 바울이 밤새 설교하니까 3층 유두고가 창가에 매달려 있다가 졸다 떨어져 죽었잖아요. 그래도 유두고를 살려놓고 다시 밤새도록 설교했던 게 밤새도록 떡을 뗐던 게 사도 바울 아닙니까? 엄청 바빴던 사도 바울이 왜 여러 날을 기다려야 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 집사님의 집에 있었습니다. 앞서 선지자 아가보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니까 함께하는 동료들, 우리들이 울면서 바울을 막으려고 했어요. 여기서 바울은 (우리 인생이 뭐 따라왔다가 뭐 따라가죠?) ‘사명 따라왔다가 사명 따라간다’라며 울지 말라고 양육했어요. 이렇게 양육의 시간이 지난 ‘이 여러 날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원어로 보니까 ‘여장을 꾸려 올라갔다’는 문장에 주어가 ‘우리’예요. 바울이 아니에요. “우리가” 제가 읽어볼게요.
“이 여러 날 후에 (우리가)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마찬가지로 우리 각 사람도 사명의 길을 혼자 갈 수가 없습니다. 함께하는 우리가 있어야 해요. 그렇기에 우리는 영적 진실성의 결론인 인내로 우리가 되기까지 이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목장 식구들을 그래서 기다려야 해요. 자녀들을 기다려야 해요. 등짝 스매싱이 필요한 친구들이라도 기다려주고. 때려서라도 데리고 와야 돼요. 부모님들, 그리고 배우자의 구원을 위해서 이 여러 날을 기다려야 될 줄로 믿어요.
우리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구원의 날까지 기다려야 되는 건데요. 이렇게 인내로 기다리며 여행 짐을 싼 바울의 일행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또 있네요. 16절 말씀입니다.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사실 바울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님 중에 한 분인 빌립 집사님이 같이 가길 원했을 거예요. 그러나 빌립은 동행하지 않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가이사랴의 몇 제자’만 함께합니다. 가이사랴가 어떤 동네예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말씀을 전하고 그곳에 있는 동료들에게 성령이 임했어요. 그렇기에 아마 이 제자들은 이방인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동행하는 우리예요. 그리고 한 명,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이제 동행을 하는데 “오랜 제자”라고 소개하는 “구브로 사람 나손”이 동행을 하는데요. 이 “오랜”이라는 단어를 원어로 보니까 “태초에”라고 하는 단어가 붙어 있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초창기 제자’라고 읽을 수가 있네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는 것부터 함께한 초창기 멤버. 우리 식으로 하면 뭐죠? ‘개척 멤버’ 나손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핍박과 결박이 분명한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나손은 사도 바울과 동행하고, 심지어 이방인들이 많은 그 사도 바울의 일행한테 자기 집까지 내주고 있을까요? 앞서 집을 내준 사람들, 바울을 영접한 사람들은 다 끌려가고 잡히고 보석금을 내고 이러면서 고난을 많이 당했는데 어떻게 이런 적응을 할 수 있었을까요?
나손이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에요?) 구브로 사람이라는 것에서 우리가 힌트를 얻을 수가 있어요. 그가 구브로에서 태어나 선민의식이 심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이 고난과 힘든 핍박이 있는 겸손한 환경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편견 없이 사도 바울을 영접할 수 있었던 거죠.
우리 교회는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겸손한 환경에 있는 분들이 모여서 함께하는 공동체입니다. 가이사랴의 몇 제자, 그리고 구브로 사람. 이 겸손한 환경에 있는 성도님들이 모여 계시기 때문에 장차 올 환난의 복음을 듣고도 함께하는 우리들이 되는 것 같아요. 잘나갈 때는 (죄송하지만) 잊어버려도, 힘들 때 반드시 생각나는 그 한 분, 우리 교회와 우리 목사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의 길을 향해 여러 날을 기다리며 나아갈 수 있는 줄로 믿어요.
이렇게 사명을 향해 나와 함께하는 우리를 예루살렘에서 영접하는 형제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17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냥 영접하는 게 아니죠. “기꺼이 영접”합니다. 아주 기쁘게 자발적으로,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영접하는 거죠. 어떻게 예루살렘에 있는 이 형제들은 바울을 기꺼이 영접할 수가 있었을까요?
자격 없는 나를 기꺼이 영접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을 기꺼이 영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영접하셨기 때문에, 그것도 기꺼이 영접하셨기 때문에 나도 힘든 사람을 기꺼이 영접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앞서 사도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은요 16절에서 ‘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갔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17절에서 바울을 영접한 사람들은 뭐라고 부르죠? ‘형제들’이라고 합니다. 제자와 형제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은 둘 다 같은 말이지 않습니까? 형제가 돼야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된 사람들은 형제잖아요. 그런데 누가가 16절과 17절 이 두 절에서 의도적으로 나눠놓은 것 같아요. 예루살렘을 향해서, 고난을 향해서 함께 각오하며 가는 동료들은 ‘제자’라고 부르고, 고난 한가운데서 서로를 영접할 때는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거죠. 우리는 고난이 예정된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는 제자들인 줄로 믿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힘든 자들을 영접하는 형제들인 줄로 믿어요. 다른 사람들의 나눔에 있는 그대로 “나도 그랬다, 그럴 수 있다” 하면서 기꺼이 영접할 수 있는 우리 형제 같은 목장들이 다 되길 소망합니다. 목장에 나오는 어떤 분이라도, 어떤 중독이 있더라도 기꺼이 영접하면서 그 영혼을 그대로 안아줄 수 있기를 소망해요.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도 영접해 주셨는데, 이 혼외자도 영접해 주셨는데 영접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제자이기 때문에, 또한 형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적용이라고 생각해요.
연말인데 서로 인사해 볼까요? “목장에 끝까지 붙어 갑시다!”
이렇게 함께하는 우리가 된 바울의 일행이 다음 날 야고보에게 들어갑니다. 18절 말씀 같이 읽어볼게요.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00km 정도라고 합니다. 차가 있으면 금방 갈 거리지만 (사실 차가 있어도 힘든 거리죠.) 그런데 이 먼 길을 여행한 바울은 쉬지 않고 ‘그 이튿날’ 선교 보고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거예요. 함께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날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이미 도착한 예루살렘에서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우리도 구원을 위해서 힘든 사람들, 구원해야 될 그 전도 대상자들을 여러 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구원을 위해서 지체하지 않는 적용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인내는 해야 하지만 ‘차차 마귀’는 쫓아내야 되는 거예요. ‘차차 마귀’ 뭔지 아시죠? “차차 전도하자, 차차 교회 가자.” 이거는 쫓아내야 해요. “교회 가자, 예수 믿어야 한다”라는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여러 말을 참아야 할 때도 있어요. 근데 구원을 위해서 말해야 할 때는 지체 없이! 일시적인 평화가 깨진다고 할지라도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구원을 위해서 (우리 목사님 자주 쓰시는) ‘칼날 위에 물방울’이 돼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깨어 있어야 십자가의 타이밍을 알 수 있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야고보에게로 들어가야 하는 십자가의 지혜와 타이밍이 생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누굽니까? 바로 예수님의 형제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예요. 그리고 모든 장로님들도 거기 있었다니 쉽게 말하면 예루살렘 당회가 소집이 된 거예요. 그런데 오늘 우연치 않게 우리 목사님이 <글로벌 하베스트 서밋(Global Harvest Summit)>이라는 천 명의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모이는 곳에 가시잖아요. 우리가 제주도에 있지는 않지만 우리 목사님을 위해서 함께 들어가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곳에서 살아나야 할 그 한 분이 정말 말씀 듣고 살아나서 세계에 구속사의 말씀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장차 올 환난의 복음을 들으며 온 공동체가 함께하기에 담대하게 적용하는 우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저를 기다려준 간증을 좀 할게요. 제 아내와 공동체가 저를 기다려줬는데요. 저희 장모님 얘기를 좀 할게요. 저희 장모님은 1998년도에 우리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큐티 모임에 오셔서 말씀으로 살아나신 분이에요. 우리 목사님이 강도사님이실 때. 그리고 방황하던 저희 아내도 2000년도에 장모님의 인도를 따라서 큐티 모임에 나왔고 말씀이 들려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목사님이 댁에서 개척을 하실 때는요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있는 인천의 한 교회에 오게 됐습니다. 저만 수지맞았어요^^. 저에게 유다의 구속사, 큐티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바로 저의 아내예요. 연애를 그때부터 한 건 아니고요. (아내는 당시) 고등부 선생님이고 저는 학생인데, 연애를 그때부터 했냐고 이렇게 막 막장 드라마를 쓰시는데요,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군 전역하고 나서 (아내를) 쫓아다녔습니다. 제 출생이 막장이지 제가 혼외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연애도 막장으로 한 건 아닙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내는 저와 연애를 하면서 제가 신학 대학원생으로 열심히 공부할 때, 초창기 <큐티인>을 사줬어요. 근데 제가 당시에 너무 교만해서 <큐티인>을 안 쓰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헬라어로 큐티 하는 사람이야. 큐티인 필요 없다”고. 그래서 아내 혼자 <큐티인>으로 큐티하는 오랜 시간이 있었어요. 그렇게 저를 기다려줬어요. 잔소리 하나 하지 않고, 가자는 얘기도 안 하고. 묵묵하게 매일 아침마다 <큐티인>으로 큐티하면서 그 모습을 -항상 식탁에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여러 해 동안 저를 기다려줬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우리들교회의 <큐티인>으로 큐티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제가 결혼한 뒤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있잖아요. 저희 어머니가 저를 혼외자로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 없이 자란 그 상처를 어머니께 풀기 시작했어요. 제가 자랄 때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 보고... 중년 남자들은 무서우니까 착한 사람으로 자랐거든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비빌 언덕이 생기니까 어머니한테 그렇게 지랄 총량을 쏟아냈어요. 심지어 제 상처로 딸 육아도 제 상처로 했습니다. 제가 기저귀 차고 있을 때부터 어머니가 저를 떼놓고 나가셨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저희 딸을 절대로 부모님에게서-나에게서- 떼놓을 수가 없다. 제가 어린이집을 안 보냈어요. 파트 사역자 일을 하면서 애를 (아내가 이제 피아노 강사였거든요.) 오후에 출근해서 저녁에 올 때까지 온전히 보는 거예요. 그러다가 육아 우울증에 걸렸어요.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코로나까지 오네요. 이 겸손한 환경이 오니까, 구브로 사람이라는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겸손한 환경이 오니까, 제가 비로소 <큐티인>으로 큐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큐티인>으로 묵상하면서 제가 ‘진짜 이 책이 예수 믿게 하는 책이고, 사람 살리는 책이 맞구나!’ 이걸 제가 확인했어요. 숨이 쉬어지더라고요. 많은 성도님들의 간증을 읽으면서 너무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우리들교회에 오고 싶은 마음에 아내가 가자고 한 게 아니에요. 제가 오고 싶어서 사역자 게시판, 우리 교회 게시판을 막 보다가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되게 신중한 사람인데, 1년 동안 이력서를 써서 3년 전에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그렇게 목장에 온 첫날에, 저와 제 아내가 그동안 한 번도 내색한 적 없거든요. 근데 결혼하면서 자기는 우리들교회에 절대 못 올 줄 알았대요. 그러면서 우리들교회 오니까 너무 행복하다고 나눔을 하는 거예요. 참 아내가 기다려준 게 맞죠?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우리들’이 생기니까 인생의 방황, 열등감이 그치고 요즘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좀 행복합니다. 진짜 행복해요.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을 위해 초청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동안 잘 기다리셨죠? 반응이 잘 못 기다리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그날까지 다다음 주까지 칼날 위에 물방울처럼 깨어서 십자가의 지혜로 기다릴 때와 말해야 될 때를 분별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Q. 구원을 위해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하는 VIP는 누구입니까?
Q. 내가 편견 없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한 겸손한 환경은 무엇인가요?
Q. 고난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기꺼이 영접하고 계십니까?
Q. 지체하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 적용을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위해 이제 기꺼이 영접하려면 두 번째,
2. 말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가며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20-24절).
말로는 할 수가 없어요. 말로는 천 냥 빚을 갚는다 해도요. 말로 할 수 없는 게 있더라고요. 19절입니다. 같이 읽어볼게요.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예루살렘 당회에 들어간 바울은요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을 통해서 이방 가운데서 하시는 일을 하나 하나 하나 ‘낱낱이’ 원어로 보면 ‘하나 하나’ 거든요. ‘낱낱이’라는 말도 맞죠. 생각해 보면요. 바울이 할 말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우리가 여름에 2박 3일만 국내 띵크 트립 갔다 와도 할 말이 많잖아요. 근데 바울은 몇 년을 다녀왔습니다. 몇 년을 다녀왔어요. 그러니 바울의 사역을 낱낱이 말하려면 하루가 모자랐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유두고가 떨어졌죠. 그런데 바울의 선교 보고를 들은 누가는 이 선교 보고를 딱 한 문장으로 요약을 해놓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해요. ‘성령행전이었다’라고 말하는 거죠. 똑같은데, 오순절에 성령이 임해서 초대교회가 방언으로 말할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에 성령 받은 사람이 몇 명이었죠? 120명이었어요. 120명이 방언을 했으니까 얼마나 많은 말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딱 한 문장으로 요약을 했어요. 뭐죠? ‘하나님의 큰 일’ ‘하나님의 큰 일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 이렇게 했어요. 이렇게 바울도 낱낱이 보고하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 120명이 얘기해도 ‘하나님의 큰 일’ 이었어요.
우리도 가족과 대화하는 언어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좀 정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우리 딸하고 말할 때 ‘하나님이 하신 일’, 우리 엄마랑 말할 때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어떤 말을 해도 은근히 ‘내가 했다‘, ’나 좀 잘했죠‘ 이게 있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하신 구속사가 아니라 내가 했다는 세속사가 섞여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저도 생색이 올라 올 때가 왜 없겠어요? 그런데 주차봉사 끝나고, 판교 로비층 화장실을 갈 때마다 회개를 합니다. 화장실에 이렇게 써 있거든요. “은혜를 아는 만큼 생색이 없어집니다”
바울은 험난한 산지 그리고 그 파도 치는 바다를 건너가고,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지만, 자신이 섬긴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셨다‘는 일관된 내용을 분명하게 전했어요. 우리의 언어가 이렇게 구속사의 한마디로 정리될 때 우리 배우자, 우리 자녀, 우리 부모님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구원의 말씀을 전할 수 있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나오는 데 우리가 사용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은혜로운 선교 보고를 받은 예루살렘 당회의 반응이 이런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0절입니다.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바울의 사역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 거예요. 영광을 돌렸어요. 그런데 예루살렘 당회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의 힘든 실정을 말해줍니다. 유대인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래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다 율법이 열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아니, 예수님 믿으면서 율법의 열성인 게 뭐가 잘못됐어요?”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옳고 그름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니 바울에 대해서는 구속사의 관점으로 볼 수가 없어 오해를 하게 되는 거죠.
21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이런 오해를 한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사도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 들어갔잖아요. 가는 곳마다 회당에 들어가서 전할 때,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핍박했어요. 그들은 유대 율법주의니까 율법도 얼마나 잘 지켜서 명절을 지켜 예루살렘에 얼마나 자주 왔겠습니까? 올 때마다 바울 욕을 하는 거예요. 올 때마다.
저녁마다 저는 저의 아버지 욕을 들었거든요. 그러면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 아빠는 쳐 죽일 ㄴ(니은)‘이 되는 겁니다. 저녁마다 아기 때부터 들으니까. 이렇게 명절에 예루살렘에 온 게 한 해, 두 해가 아니라 여러 해가 됐을 거예요. 그리고 한 지역에서 온 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유대인이 왔는데 똑같은 얘기하는 거예요. “바울이 율법 지키지 말라 그랬다.” 그러니까 오랜 오해가 쌓일 수밖에 없는 거죠.
예루살렘 당회는 그래서 이런 상황에 바울에게 이런 처방을 내리네요. 22절부터 좀 길지만 2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예루살렘 장로님들은 말이 아니라,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손수건과 앞치마의 적용만이 이 오랜 오해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겹겹이 쌓여온 오해를 짧은 시간에 말 한마디로 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나실인 서약을 한 사람 한두 명도 아니고 네 명을 데리고 직접 성전에 들어가는 수고를 하래요. 그리고 비용까지 내는 적용을 하라고 해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손해를 보라고 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손해 보는 적용하는 그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믿는 유대인들을 묵상해 보니까 우리나라가 너무나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제가 무슨 애국자겠습니까? 근데 우리나라에 켜켜이 쌓아온 지역감정, 진영논리가 있지 않습니까? 전국에 교회가 있어요. 전라도에도, 경상도에도 교회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동네마다 교회가 있어요. 그런데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를 풀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성전에 같이 들어가는 적용’으로 그리고 ‘비용을 내는 적용’으로 광주와 대구에 채플을 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바울에 대한 오해를 풀기가 대단히 힘들었잖아요. 우리나라도 말로만 오해를 풀 수가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 대구, 광주 채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손과 발이 가는 적용, 손해 보는 적용으로 이 두 채플에 있는 많은 성도님들 통해서 정말 이 나라, 이 민족을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존재적인 가해자가 되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상처를 주었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오래 기다리면서 해야 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손이 가는 적용, 발이 가는 적용을!그리고 앞치마와 손수건(행 19:12)을 두르고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되는 줄로 믿어요. 돈으로 막는 게 제일 쉬운 적용인데요. 구원을 위해서 손해 보는 적용할 때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교 보고로 ... 저도 선교를 좀 다녀와 가지고 좀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준비를 했습니다. 호주에 다녀왔는데요. 호주 케언즈 15만 명밖에 안 사는 그곳에서도 공항에서 1시간 반을 더 타고 들어가는 아주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햇살은 정말 끝내주게 내려오고 자몽나무 아래서 동그랗게 우리 선교팀과 우리 그 지역에 있는 목사님들, 성도님들이 모여 가지고 기도회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파푸아뉴기니 출신 우바오 목사님을 만났는데 놀라운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파푸아뉴기니라는 섬을 아시나요? 이 호주 바로 위에 있더라고요. 이 동네에 사셨던 목사님. 그 지역에 원래 교회가 있긴 했대요. 근데 이 목사님이 대학에 가느라고 이 섬에서 나와서 공부를 하고 명절에 돌아갔는데 이 교회가 이상해졌대요. 어떻게 이상해졌냐? 예배가 안 끝난대요. 얼마나 뜨거운지 예배가 안 끝나고 계속 예배를 드리고 간증하고. 그러다가 이제 목사님이 저녁에 있는데 교회 근처에 집이 있었나 봐요.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더래요. 근데 우리 아버지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데 유창한 영어로 막 샬라샬라 하는 거예요. 그 목사님이 공부를 대학교에서 했기 때문에 영어를 좀 할 수 있으니까 받아 적어가지고 ‘이게 뭐지?’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버지가 영어 방언을 받으셨는데 킹 제임스 성경 영어 방언을 받으신 거예요. 파푸아뉴기니에는 아직도 80여 개 부족이 문자가 없어서 성경을 전해줄 수 없는 부족이 아직도 있대요. 그러니까 그 문자로 예수님을 전할 수가 없는 그 부족에게 다가가게 하시려고 이렇게 성경을 영어로.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주여, 나도 영어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긴 했지만^^ 성경을 영어로 이렇게 하시고. 너무 마음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그렇죠. 근데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경험하고 목사님이 되고 나서 더 놀라운 일을 하셨더라고요. 놀라운 경험을 하셨더라고요. 코로나 때 많은 분들이 안타깝게 소천하셨잖아요. 근데 우바오 목사님이 자녀들이 많은데 ‘둘째 아들이 코로나에 걸려서 응급실에 간다’ 이 소식을 며느리한테 들었대요. 조금 있다가 ‘아들이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거예요. 자녀는 가슴에 묻잖아요. 사모님이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래가지고 목사님한테 말씀드렸대요. 같이 울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목사님은 갑자기 기타를 꺼내오더니 “여보, 찬양합시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까 찬양합시다!” 그 교회에서 저희를 초청하셨습니다. 저의 간증을 듣고 놀라셔 가지고 또. 그래서 저희가 간증을 영어로 준비하고, 설교도 영어로 준비하고. 아예 통으로 저희한테 예배를 맡겨주셨어요. 그날 큐티 본문이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시고 교회가 흩어지는 장면이었어요. 흩어져서 복음 전했잖아요. 남아서 울었잖아요. ‘크게 울었더라’ 했는데 그게 또 ‘회개하고 기도한다’는 의미도 있으니 흩어진 자리, 남아 있는 자리, 내가 있는 자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서 역할을 해야 되는 자리다. 이 설교를 하면서 “핍박하는 사울도 하나님이 그 역할로 쓰셨더라”라고 하면서 “제가 어머니를 사울이라고 생각했던 진짜 사울이라고” 간증을 했어요. 어머니가 과부인데 혼외자를 낳고, 어머니가 죄로 너를 낳았다. 이 간증을 이렇게 한 거예요. 그런데 혼외자는 영어로 이렇게 와 닿지가 않을 것 같아서 영어로 제가 “우리 엄마는 과부고, 우리 아빠는 (그 엄마와) 바람피워서 날 낳았다.” 그리고 나서 이제 어머니께 이게 해석이 돼 가지고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Thank you. I love you.” 했다고 했더니 성도님들이 다 박수를 치시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 선교팀에게 다 끝나고 파푸아뉴기니 모투모투어로 축복송을 불러주셨습니다. 제가 영상을 짧게 준비해 봤는데요. 제가 그때 감격을 너무 받아가지고 이 모투어가 너무 이쁘더라고요. 우리 성도님들과 같이 나누기 위해서 짧게 준비해 봤습니다.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영상)
기타 치고 계시는 분이 우바오 목사님이세요. 그러니까 이때도 기타를 치셨지만, 아들이 죽은 다음에도 바로 기타를 꺼내서 찬양을 하신 거예요. 페이스북에도 저희 사진을 올려주시면서 너무 고맙다고 그렇게 하면서 저희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가 간증을 하고 설교를 했던 그 자리에 우바오 목사님의 친척이 있었는데 그 친척은 부모님과 싸우고 고향에서 도망쳐 나온 친척이었대요. 저희 간증과 설교를 듣고 부모님께 찾아가서 사과하고 싶다고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거예요. 이 파푸아뉴기니로 돌아간 돌리 자매가 손과 발이 가는 적용으로 파푸아뉴기니 땅이 변화되도록 같이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믿어지십니까? 구원을 위한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손과 발이 가는 적용으로 섬길 수 있고, 그것을 또 간증하여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Q. 내가 하는 말을 요약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됩니까, 아니면 은근한 내 자랑과 생색입니까?
Q. 말로 회복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손과 발이 가는 적용,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영접하려면 세 번째,
3. 나의 죄를 항상 보아야 합니다(25-26절).
한 번 아니라 항상 봐야 돼요. 25절 같이 읽어봅니다.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바울이 이렇게 놀라운 이야기를 너무나 낱낱이 얘기를 했잖아요. 물론 영상 준비는 안 했을 거예요. 바울은 못했을 거예요. 근데 그냥 듣기만 해도 놀라운 얘기들이 있잖아요. 바울의 이야기는 이미 놀라워요. 그런데 이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영광을 돌리고 예루살렘 당회가 하는 말이 뭐냐면 ‘예수를 믿는 이방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바울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앞에 ‘형제’라고 했어요. 형제여. 근데 아직도 넘어서지 못하는 거예요. 예수를 믿는 그들이 나의 형제라는 게 인정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오피셜하게만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에게는’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나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우리의 편견과 가치관을 꺾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그러니 자기 죄를 보는 것은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더 큰 표적이 맞습니다. 엊그제 10월 31일이 종교개혁 기념일이었어요. 우리는 매일매일 개혁해야 돼요. 나를 말씀으로 개혁하고 회개하는 날이 되어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 줄로 믿어요. 이렇게 예루살렘 장로님들도 바뀌지 않는데 나와 우리 목장 식구들이 오랜 시간 동안... 10년이 되어도, 20년이 되어도 바뀌지 못하는 것은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그래도 혹시나 올해 말씀이 들려서 ‘우리 성도님이 바뀌셨다. 우리 목장 식구가 변했다.’ 그러면 연말에 꼭 목장에서 파티를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하려고 합니다. 저희 제가 신임 목자라서 저희 목장에 너무 감사할 일이 많아요. 하나님이 하신 기적이에요. 이게 다. 내가 바뀌는 거는요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공회를 참석하고 나서 예루살렘의 연약함을 체감했을 것 같아요. ‘여기까지구나. 안 되는구나.’ 인간적으로는요 예루살렘 공회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아이고 말이 안 통하네. 어떡하지?’
하지만 바울은 한마디도 토를 달거나 반박하지 않아요. 곧바로 질서에 순종합니다. 같이 읽어볼게요. 26절입니다.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여기서 주어를 잘 보세요. 앞서는 ‘우리가’라고 했잖아요. 계속 누가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했는데,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는 건 이방인은 안 되잖아요. 바울이 혼자서 적용하는 거예요. 장막을 만들며 자비량 선교를 해 온 바울이잖아요. 손수건과 앞치마까지도 쓰임 받았던 바울이잖아요. 그런 바울이 네 사람의 결례 비용을 자기가 모은 돈으로 지불하면서 예루살렘 당회의 처방에 홀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십자가를 홀로 지신 예수님처럼, 우리는 십자가를 질 때는 누군가의 뒤가 아니라 내가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자기가 비용까지 대가면서 예루살렘 교회 질서에 이렇게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예루살렘이 바울에게 어떤 곳인지를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예루살렘은 바로 사도 바울이 스데반 집사님을 죽인 죄패가 있는 도시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천사의 얼굴로 말씀을 전할 때, 무서운 얼굴로 무서운 열심으로 돌을 들어 치라고 증인을 섰던 게 바울-‘사울’-이었어요. 이렇게 내 죄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구원을 위한 적용과 순종을 곧바로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죄패가 확실해야 생색 없이 섬길 수 있고, 곧바로 적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침에 제가 설교하고 나니까, 모르시는 분이 또 계시다고 그래서.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제가 잠깐 간증할게요.) 저희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낳고 남편이 자살을 해서 과부가 된 분입니다. 그러다가 딸까지 익사하는, 물에 빠져 죽는 그 고난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식당을 차리고 그곳의 단골손님인 유부남이셨던 저희 아버지와 저를 낳으셨어요. 저희 아버지는 저를 호적에 올리시지 않아서 저는 어떻게 해도 아버지를 찾을 수가 없고.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 막혔는데... 그래도 저는 착한 아들로 자랐는데 지랄 총량을 채우는 어머니가 저의 예루살렘이십니다.
이번 주에 청소년부 촬영을 하려고 이제 양주에 갔어요. 좀 산뜻하게 좀 뭔가 해보자고. 거의 다 도착해서 어머니가 전화를 하신 거예요. 친척이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목소리가 막 떨리면서 저희 어머니는 너무 슬프면 그걸 다 표현하시는 분이거든요. 너무 슬퍼하시며 누가 돌아가셨다라고 하는데 잘 들어보니까 제가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이름도 처음 들어본 친척이었어요. 오촌 누님. 네. 제가 경기도 양주에 가고 있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같은 경기도니까 경기도 광주에 가서 조문을 하고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웃으시는 분들은 뭔 소린지 아세요?^^ 네비를 찍어보니까 경기도 양주에서 경기도 광주까지 70km가 되었습니다. ‘주일 설교도 준비해야 되고, 밀린 일들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런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참 어머니가 진짜 비빌 언덕이 없는 인생을 사셨는데 그래도 어머니를 위한 적용으로...’ 앞치마 적용해야 되잖아요. 그날 또 제가 목장을 인도해야 되는데 또 그래도 또 적용해야겠다 해서 장례식장에 갔어요. 70km를 달려서. 장례식장에 들어가서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어쩜 아는 분이 그렇게 없는지^^; 한 분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장례식장 갔다 온 것 같았어요. 저희 집에서 목장예배드리는 날이라서 급하게 조문만 하고 잠깐 음료수만 마시고 돌아오는데... 아니, 인천까지 2시간 걸리더라고요. 2시간 좀 넘게 걸렸어요. 저희 집에서 목장이라서 테이블 세팅도 해야 되는데 겨우 임박해서 도착했고, 아내는 얼굴이 빨개져 있고. 빨개졌다니까 화난 게 아니고 막 혼자 음식하랴~ 세팅하랴~ 제가 분명히 빨리 온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었거든요. ^^; 죄송합니다. 완전히 막 생색이 올라올 만한데 막 손수건, 앞치마 적용을 하고 오니까 생색이 안 나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어머니를 위해 이런 적용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3년 전에 저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게 불가능한 일이에요.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어머니가 10~15분 거리에 사시는데 한 번을 안 찾아갔어요. 명절이 아니고선 찾아가지 않았어요. 그런 제가 어머니 말을 듣고 70km를 달려서 갔다 왔다는 게 어머니한테 돌을 던지던 제가 이제 어머니의 그런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는 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고선 어떻게 설명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저를 만나주시고, 구속사로 살려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저를 회복시켜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앞치마를 두를 수 있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죄가 보여서 구원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내 힘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기적인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표적을 구하며 가족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며, 결국에는 이 전도축제 기간에 많은 우리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는 귀한 구원의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Q. 예수님을 믿고 공동체 안에 오래 있었어도 여전히 꺾이지 않는 나의 세상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Q. 내 죄를 기억하게 하는 예루살렘은 어디이고, 무엇입니까?
Q. 내 죄가 보이기 때문에 이번 주에 곧바로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이튿날’ 들어가잖아요. 오늘 설교를 들으셨고, 주일이 지나셨으니까 곧바로 한번 내일 작은 것부터 적용해 보실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할게요. 구원을 위해 기꺼이 영접하고 영접을 받으려면, 여러 날을 기다려주며 함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말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가며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돼요. 그럴 때 기다려야 될 때와 바로 말해야 될 때를 알아야 우리 가족의 구원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나의 죄를 항상 봐야 돼요. 우리가 항상 생색이 올라오거든요. (내 죄를) 항상 봐야 생색 없이 섬길 수 있고, 구원을 위한 적용을 할 수 있어요. 항상 그 예루살렘을 내 앞에 둘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원제:물이 바다 덮음같이)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 보도록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손과 발 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섬기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보리라 그날에 주의 영광 가득한 세상
우리는 듣게 되리 온 세상 가득한 승리의 함성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같이♬
기도 제목 손과 발 되어 섬기길 원하는데 참 우리는 기다려주지를 못합니다. 너무나 기다려주질 못해요. 해야 될 말과 하지 못할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말을 구별을 못해서 우리 가족의 구원을 막는 건 아닌가 정말 고민할 수 있고, 주님 앞에 가슴을 치며 회개할 수 있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정말 말해야 될 때는 평화가 깨지더라도 말해야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세요. 곧바로 들어가야 되는데 주여, 우리에게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정말 구속사의 가치관을 가지고 정말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을 분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말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가는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된다고 하셨어요. 이 땅에 교회들을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길 원합니다. 말로는 해결이 안 돼요. 주여,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로 둘로 나뉘어서 싸우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원을 위해서 적용하지 못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것을 할 수 있는 건 나의 예루살렘이 내 앞에 있어야 돼요. 내 죄패가 분명히 보이고, 항상 보여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저의 내 죄가 보여서 정말 이런 적용으로! 이런 간증으로! 이런 회개로! 이런 섬김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한 번 부르고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해야 되는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되는 말은 하지 말아야 되는데, 아버지를 전도하러 간다고 하면서 아버지의 말을 끊지 못하고 해야 되는 말을 하지 못해서 제 교양과 체면 때문에 저희 아버지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그렇게 가셨는데... 아버지, 이번 주에 구원을 위해서 적용해야 될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참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그리고 그 한마디를 주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힘있게 담대하게 말하여서 우리 가족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주여, 이 나라의 민족이 둘로 나뉘어져서 옳고 그름으로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로 반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하나님, 율법에 열심이어서 바울을 오해했던 것처럼 우리도 벗어날 수 없는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로 구속사의 말씀을 오해할까 두렵사오니 주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며 울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나라를 살려주시고, 아버지, 대구와 광주 채플을 통해서 그 지역감정과 진영논리가 허물어지고 녹아내려서 이 나라의 모든 악법들은 막아지고 철폐되며 태아 생명을 보호할 그 한 법이 세워질 수 있는 그 지도자 한 사람이 나타날 수 있도록! 세워질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항상 우리의 죄를 보며 이러한 적용을 할 때에 자격 없는 우리를 기꺼이 영접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여서 드린 헌금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사명을 위해 감당하는 사업과 프로젝트 아이디어와 모든 학업 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이 있고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는 우리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구원을 위해 기꺼이 영접하려면
1. 여러 날을 기다려주며 함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15-19절).
Q. 구원을 위해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하는 VIP는 누구입니까?
Q. 내가 편견 없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한 겸손한 환경은 무엇인가요?
Q. 고난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기꺼이 영접하고 계십니까?
Q. 지체하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 적용을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 말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가며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20-24절).
Q. 내가 하는 말을 요약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됩니까, 아니면 은근한 내 자랑과 생색입니까?
Q. 말로 회복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손과 발이 가는 적용, 손해 보는 적용을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3. 나의 죄를 항상 보아야 합니다(25-26절).
Q. 예수님을 믿고 공동체 안에 오래 있었어도 여전히 꺾이지 않는 나의 세상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Q. 내 죄를 기억하게 하는 예루살렘은 어디이고, 무엇입니까?
Q. 내 죄가 보이기 때문에 이번 주에 곧바로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기도제목
A.
힘을 빼고 배형으로 그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영육의 힘 주시도록
아버지가 복수가 차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속히 돌아와 예배 드릴 수 있도록
B.
내 죄를 보는 큐티를 할 수 있도록
C.
내가 지은 죄의 무게를 알고 회개 기도하고 거듭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