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설교
2025.10.26 주일예배 사도행전 19:8~20 말씀의 흥왕과 세력 (강승현 목사님)
1.날마다 말씀이 있는 우리들 서원
3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특징은 1,2차에 간 곳을 재방문하고, 이미 전한 복음을 한번더 강화합니다. 2차 전도여행을 마치며 에베소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갑니다. 바울이 떠나고 나서도 에베소에 남은 자들이 계속복음을 전합니다. 에베소는 여러가지로 요충지였습니다. 그리고 큰 신전과 도서관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적 신비주의가 흥왕했습니다. 바울은 이 지역에 들어가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간 곳이 회당이었습니다.
8절
바울의 복음은 늘 어떤 도시에 방문하면 첫번째로 간 곳이 회당입니다. 유대인을 너무 사랑하기도 했고, 회당에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기도 했습니다. 3달동안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담대히와 권면하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성경에는 권면한 것으로 보이지만 원어의 뉘앙스는 권면하기를 힘써 계속했다는 말입니다. 또 담대히라는 단어의 시제를 보니 미 완료형 입니다. 시간이 날때 잠깐 들려 한 것이 아니라, 회당에 살다시피 하며 힘써 계속 전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 결과가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9절
결론이 비방이라 합니다. 비방한다는 말은 말 그만해, 정도가 아닙니다. 욕하고 저주하고 모욕하면서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훼방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비방의 이유가 2가지 입니다.
마음이 굳어져서와 순종하지 않아서 입니다.
마음이 굳어졌다는 단어는 딱딱하고 뻣뻣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딱딱하고 뻣뻣한 것을 입으로 삼키거나 품에 안고 있다면 어떤 느낌인가요? 불편한 느낌입니다. 에베소의 유대인들이 석달동안 복음을 들었지만, 마음이 굳어있었습니다. 율법적인 것들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평생동안 고수하고 유지했던 율법과 구원의 기준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굳은 마음은 불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미완료 시제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바울이 얘기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불순종 한것입니다.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말씀에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날마다 말씀을 보는 공동체 우리들 서원에 있어야 합니다.
9절
여기서 서원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여기만 나오는데, 학교라는 단어도 있지만 여가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여가를 누리는 배움의 장소인 것입니다. 복음을 드는 자리, 믿고 살고 누리는 곳이 딱 서원이라는 단어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우리들교회 같은 공동체가 바로 두란노 서원, 우리들 서원입니다. 굳어있고 뻣뻣해서 불편한 사람들이 매일 주시는 말씀앞에 있으니 부드러워지고, 여유가 생기며 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을 보면 정말 여유가 있고, 웃고 계십니다. 웃는 분들의 여유와 유연함과 부드러움은 어떤 공동체에서 누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주시는 말씀이 있고, 그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먼저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회에서 면접을 볼때,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라고 자유롭게 말했는데, 원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전교회에 두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프로였습니다. 하던일에 2프로 오바해서, 힘이 들어갔기에 2프로 오바하는 강승현을 줄여 강프로가 됩니다. 또 하나는 강수행입니다. 이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을 외부로 많이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2프로가 오바가 되어 이렇게 저렇게 섬기고 따라다니며 오버를 하니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와서 담임목사님을 섬기고 가야 하는 일정이 생겼습니다. 저의 성향대로 열심으로 했습니다. 목사님이 강목사 너는 열심히 하는데, 불편해 라고 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수행을 한다는 것이 보디가드 처럼 딱 지켜보고 있고, 필요한게 뭘까? 하며 일로만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은 마음의 교제를 원하셨습니다. 부목자로 수행을 원하신게 아니라, 인격적인 친구처럼 동행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저는 인격적인 동행을 놓친것입니다.
제 마음이 뻣뻣하고 딱딱했기에 불편한 사람입니다. 왜그럴 까요? 내 잣대로 잘할 수 있다.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주시는 말씀에 넘어지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이 두란노 서원같은 우리들서원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날마다 말씀앞에 있으니 제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셨습니다.
올 여름 티티때 청년들과 함께 전라도 아래 있는 섬을 섬겼습니다. 도착하자 제가 다시 뻣뻣해 집니다. 멀리 구속사로 청년들과 구속사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저는 또 일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진두지휘하며 일을 하려고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청년 한명이 저에게 다가와 목사님은 이렇게 사역이 시작되면 모드 전환을 하시는군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 한마디가 저를 울렸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저희랑 즐기다가 나누고 가시지요 합니다. 누리다 가자는 이 말이 저를 울렸습니다. 즐기지 못하고 일만 하려고 말씀이 있으나 여전히 뻣뻣했던 저가 믿고, 살고 누리고에서 누리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가 목사로 온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아들로 이자리에서 살아난 것을 청년들과 함께 누리고 가는 것은 어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큐티책부터 펼쳤습니다. 사사기 말씀이었는데,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일을 하려던 저를 청년들을 통해 움직이셨고, 그후 저부터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간증도 하고, 손과발이 가는 적용의 수고로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큐티에 대해 완강 하셨던 목사님 내외가 광주 목세에 참석하시는 은혜가지 있었습니다. 우리들 서원앞에서 매일 주시는 말씀으로 자유를 얻어 부드러운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믿고 살고 누리나요, 반대로 날마다 잔소리로 의심하고 죽이고 불안해하나요?
-나는 다른 사람에게 뻣뻣하니 불편한 존재인가요? 부드러워서 다른 사람들이 같이 하고 싶은 존재인가요?
-날마다의 말씀이 나를 불편하게 하나요? 예전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나를 여유롭게 하나요? 여전히 불편하다면 왜 그럴까요?
2.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 (에 있어야 합니다.)
두란노 서원으로 가서 자리를 옮기고 날마다 말씀을 전했습니다.
11~12절
그랬더니 놀라운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에베소의 설명을 잠깐 했듯이 이곳에는 큰 신전이 있었습니다. 마술과 마법이 성행하고 유행했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역마다, 그 문화마다, 지역의 특색을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철학의 유행을 알고 철학적인 사고와 사상으로 복음을 전파 합니다. 복음을, 구속사를 시대의 언어로 바꾼 것입니다. 에베소는 신비적인 체험이 세대의 언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바울의 손과 물건들, 손수건과 앞치마를 통해 하나님이 능력을 행하신 것입니다. 신비적인 체험, 그들의 시대 언어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를 우리의 시대 언어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우리의 목장이라 생각됩니다.
당시 손수건은 이마에 동여 매어 땀을 막고, 닦는 역할을 했습니다. 앞치마는 오늘의 앞치마와 같았습니다. 이는 사도바울이 낮에 사역을 할 때, 항상 몸에 착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목장과 같습니다. 직장에서 1주일간 버티며 마음을 겨우 추스리는 집사님들이 목장에 와서 붙어만 있으라고, 그들에게 수고했다고 이마에 땀을 닦아 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목장입니다.
그리고 부부관계가 무너져 눈물밖에 날 수 없는 상황에 벌떼 같이 모여서 눈물을 닦아주는 목장입니다. 그리고 심방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아픔을 막아주는 앞치마 같은 목장입니다.
장년부 뿐아니라, 청년부, 청소년부, 주일학교에서도 일어납니다. 부모로 부터 받은 힘든 고난가운데, 선생님들과 목장들이 달려갑니다. 그리고 일어나라, 힘내라, 괜찮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목자와 목원들이 매일 연락을 하고, 기도하고 악한 생각과 영으로 막아주는 앞치마와 같은 역할을 하는것이 우리들의 목장입니다.
바울의 손에서 능력이 흘러가듯, 목자와 목원들의 손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갑니다.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최고의 현장이 목장입니다.
한 목자님이 초원나눔에서 이런 나눔을 나눠주셨습니다. 아내와 딸이 마찰로 싸웠는데, 집기 도구가 떨어지고, 남편 집사님이 딸을 밀치기도 했다 합니다. 딸이 너무 화가나서 엄마의 뺨을 때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편집사님이 너무 화가나서 나는 너보다 더 힘든 가정에서도 살아냈는데, 너는 모가 힘들어 그러냐며 화를 냈고, 딸은 경찰에 신고해서 쉼터로 분리하는 사건까지 갔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불평불만하는 딸의 모습이 자기 모습과 같았다고 그래서 목자님이 혈기가 있고, 외도했던 것들이 부모로부터 온 근원이라고 외쳤던 것들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아내 집사님도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섬기는 부서에서 이를 나누고, 같은 아픔이 있는 분과 함께 서로를 위로해줬다고 합니다.
성도의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 입으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가는 수고로 손수건을 가지고,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그 고난의 현장에서 가서 위로해 주는 것이 진정한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힘을 얻어 흥왕하고 세력이 있는 목장인 것입니다.
-내가 목장에서 경험했던 손수건과 앞치마는 무엇인가요?
-나는 뺠을 맞으면 화만 나나요? 이번 일이 손수건의 적용으로 쓰이겠구나 라고 생각이 나나요?
-나의 손수건과 앞치마는 너무 깨끗한가요? 목원의 땀, 눈물, 콧물의 흔적이 가득한가요?
3.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18절
자복하다 합니다. 이는 같이 말하고,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누구와 같이 말하나요? 하나님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편에 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과 같이 말하는 회개가 자복입니다.
단순히 도덕적 행위가 아닙니다. 자복은 하나님과 같이 말하고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자복하며 나는 옳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나때문에 직장이이 공동체가 가정이 아파합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드러냄의 회개라 말합니다. 숨기고 감춘 상처를 드러내는 건 정말 수치 같습니다. 하지만 구속사 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그 수치를 짊어 지게하시기 위한 통로 역할을 해주십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드러냄의 회개가 있어야만 나의 수치와 죄가 하나님이 대신 짊어져 주시는 연결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드러냄의 회개가 없다면 혼자 지고 힘들어 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공동체에 드러나야 합니다.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공동체에 드러나야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힘이 생깁니다.
자복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회개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19절
여기서 말하는 마술은 점술책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건강과 만사 형통을 위한 것을 모으고 모았던, 지고 이고 살았던 내가 평생을 의지했던 것을 말합니다. 5만 드라크는 엄청난 비용입니다. 최소 30억에서 50억 정도 되는 것입니다. 평생의 모은 재산 같은 그것을 많은 사람, 모든 사람앞에서 불살랐다 합니다. 이것이 회개를 했다는 고백입니다. 회개의 열매 또한 드러나야 합니다.
값을 치른다는 것은 죽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공동체에서 불살라야 하는데, 내가 일부는 남기고 나머지만 불살라 없앤다면 나는 늘 그것을 보고 즐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 없애서 자복의 열매로 나아가야 합니다.
목세에 참석하신 분이 목장탐방에서 나눈 얘기 입니다.
신학을 하겠다는 생각에 신대원에 가서 부교역자 사역을 했습니다. 개척의 기회가 와서,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가 부흥하는 듯 했지만 어느순간 실적이 우선이 되니 교회와 가정에 분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3 가정이 이혼하는 것 까지 이르게 되었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목회에 깊은 회의감이 생기던 중 다른교회 청빙이 왔는데, 그것도 잘 되지 않고, 둘째 딸이 뇌종양 판정까지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막힌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저를 책망했고, 교회벽에 머리를 박는 자해까지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께 맡기기 시작했고, 묵상을 하며 큐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님들이 이를 너무 좋아했고, 이제는 많지 않지만 교회 분위기가 너무 좋아졌습니다.
얼마전 뇌종양 판정을 받고, 그를 통해 목세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세에 와서 나는 의인이라는 생각이 너무 큰 죄이고, 아내와 저 둘다 의인이다 생각하며 서로 정죄한 것이 큰 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수련회기간 중에 한 성도님이 자신의 문제를 공동체에서 나누시는 것을 보고 공동체에서 하나님 앞에서 나눈 것이 진짜 자복이 임을 알게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서로 나눔을 것을 보시고, 그 수련회를 통해 성령이 응황하고, 세력을 얻는 것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나의 회개는 하나님 편에서 하는 자복입니까? 감정의 편에서 하는 후회입니까?
-최근에 가장 큰 값을 치루면서 얻어낸 세력과 흥왕은 무엇입니까?
-아직까지 이고 지고 모으면서 불사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값을 치루겠다고 결단 하겠습니까?
2.목장 나눔 장소 및 참석인원
: 베이커베이커 삼성역점 / 총 3명(목자, 부목자, 목원1)
3.기도제목
A.
1.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며 말씀과 기도로 살도록
2. 가족모두가 건강하고 어려움속에서도 서로 지지할수 있도록
3.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용서와 사랑으로 대할수 있도록
B.
1. 가족과 목장식구들 영혼 구원을 위해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2. 신교제와 신결혼 허락해주시도록
3. 커리어에 기름부어 주시도록
4. 등과 목 스트레칭 충분히 꾸준히 할 수 있도록
5. 가족과 예수 안에서 평안한 시간 보낼 수 있도록
6. 매일 쓰는 큐티 할 수 있도록
C.
1. 예수님의 신호를 받게 해주시길.
2. 사업의 막혔던 부분이 해소되길.
3. 신교제를 도와주시길.
D.
1. 1차 시험날까지 건강과 체력 붙들어주시길
2.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ㅠㅠ
3. 나를 인도해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