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흥황과 세력
(사도행전 19:8-20)
강승현 목사님
1. 날마다 말씀이 있는 우리들서원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1차와 2차 때 다녔던 여러 지역을 재방문하여 그 공동체를 더욱 돈독하게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심의 교회 공동체가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은 돌아가는 길에 잠시 정박하여 유대인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아볼로라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 도시에서도 회당에 먼저 찾아갔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늘 유대인 중심, 회당 중심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을 너무 사랑했고,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베소에서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율법을 믿어왔던 유대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불편했습니다. 자신이 누리고 알고 있던 것들이 ‘리셋’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말씀을 통해 순종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말씀이 있는 공동체, 우리들서원이 있어야 합니다.
굳고 뻣뻣해서 불편한 사람들이 말씀 앞에 서니까 유연해지고,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들교회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날마다 말씀이 주시는 우리들서원이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 잣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사역하면 된다” 하며 살아온 강승현 목사님은 뻣뻣하고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서원에 보내주셔서 자신이 얼마나 불편한 사람인지 알게 하시고, 마음이 풀리게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아웃리치에 가서도 일하려고만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한 청년이 “저희와 같이 누리고 가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목사님께 울림이 되었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셨습니다.
사역을 일로만 하던 목사님이, 그 청년의 입을 통해 변하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누릴 수 있었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를 간증으로 나누셨습니다.
그 지역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서원 안에서 매일 말씀으로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부드러운 목사님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한 것은, 목사님이 얼마나 불편한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다른 사역지로 이동하시려 합니다.
적용 질문
날마다 말씀으로 믿고 살고 누리나요? 반대로 날마다 잔소리로 의심하고 죽이고 불안해하나요?
나는 다른 사람에게 뻣뻣해서 불편한 존재인가요, 아니면 부드러워서 함께하고 싶은 존재인가요?
날마다의 말씀이 나를 불편하게 하나요? 예전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여유롭게 하나요?
여전히 불편하다면 왜 그럴까요?
2.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
바울이 자리를 옮깁니다. 3개월 뒤 옮기고 2년 동안 구속사를 전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역마다 그 특색에 맞게 복음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손과 손수건과 앞치마를 통해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 언어로 바울의 손, 손수건, 앞치마는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술, 도박, 성중독 등으로 무너지는 가족들을 공동체가 막아주는 ‘앞치마’ 같은 역할, 그것이 우리들의 목장입니다.
목자와 목원들이 기도하고, 연락하며, 악한 영으로부터 막아주는 것 — 이것이 바로 앞치마와 같은 사역입니다.
목자의 손에서, 목원들의 손에서 병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들교회 모든 곳에서 매주 똑같은 말을 하고 듣는 것 같아도, 닦아주고 막아주는 목장임을 믿습니다.
세력을 얻는 최고의 현장 공동체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적용 질문
내가 목장에서 경험했던 ‘손수건과 앞치마’는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 상처받을 때 화만 나나요, 아니면 “이번 일이 손수건의 적용으로 쓰이겠구나” 생각하나요?
나의 손수건과 앞치마는 너무 깨끗한가요, 아니면 목원의 ‘땀, 눈물, 콧물’의 흔적이 가득한가요?
3.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의 고백이 바로 자복입니다.
자복은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내가 죄인입니다”를 인정하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적으로 살았지만, 말씀과 복음 앞에서 “나는 옳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무너졌고, 공동체가 아프고, 가정이 갈라졌습니다.”라고 드러내는 것이 자복입니다.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곧 회개입니다.
드러내는 것은 어찌 보면 수치의 사건입니다. 감추었던 것이 드러나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적으로 볼 때, 그 수치를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의 통로입니다.
자복해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인도하십니다.
자복은 공동체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목장 공동체 앞에서, 서로 앞에서 고백해야 말씀의 흥황과 자복이 일어납니다.
이 사람이 자복했는지, 단순히 감정적으로 뉘우쳤는지는 자복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값을 지불하는 회개입니다.
자신에게 유익을 줄 복, 가정의 평강을 줄 것, 자녀를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 붙잡았던 ‘부적 같은 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형통을 통해 평생 모은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불사르라고 하십니다.
자복하고 회개하는 ‘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 “모든 사람 앞에서”
자복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며, 자복의 열매로 내가 품고 있던 것들을 사람들 앞에서 불태우는 것입니다.
일부러라도 공동체 앞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해야 합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고 흥왕할 때, 내가 세력이라 여겼던 것을 끊고 불태우고 값을 지불할 때, 그 세력이 참된 흥왕이 됩니다.
적용 질문
나의 회개는 ‘하나님 편’에서 하는 자복입니까, ‘감정의 편’에서 하는 후회입니까?
최근에 가장 큰 값을 치르며 얻은 세력과 흥왕은 무엇입니까?
아직까지 이고 지고 모으면서 불사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값을 치르겠다고 결단하겠습니까?
목장 모임
장소: 커피스미스
인원: 3인
이번주 목장은 서로가 서로의 손수건이 되어 주었습니다. 여러 갈등으로 쓴뿌리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날마다 말씀이 있는 우리들서원 공동체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오후 6시 30분까지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들어주고 품어주는 공동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어쩌면 다 다른 목장식구들이지만, 서로 들어주고 품어주고 돌봐주는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임에 늘 감사합니다.또한 자복하여 고백할수 있는 목장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기도제목
a
1. 하나님과 편안한사이 되기를
2. 동생 11월16일 초청예배때 같이 예배 목장 할수 있기를
3. 동생 엄마 구원.
4. 신교제 신결혼
b
1. 좋은 습관
2. 좋은 환경
3. 행동하기
c
1. 소화 잘될수 있기를
2. 음식절제,소식
3. 건강회복
d
1.신결혼
2.알콜중독 끊어지도록
3.일에 쏟을 지혜와 체력주시길
4.매일큐티
5.예배자리 꼭 사수
e
1. 마음 편하게 가질 수 있도록
2. 주변의 관계나 상황이 안정되도록
f
1. 여전한 굳은 마음과 불순종에서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2. 가족간의 갈등이 구원의 큰 지진이 될 수 있기를, 내 자리 잘 지키도록
3. 업무가 많은데, 일의 우선순위를 두고 성령의 지혜로 해나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