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1.(주일) 사도행전 8:1b-8 「그 날에」 김성우목사님
오늘 1절의 그날은 스데반이 순교한 날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스데반의 순교를 죽었다, 순교했다고 하지 않고 잔다라고 합니다. 성경 곳곳에 성도의 죽음을 자니라, 잠들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자는 사람이 깨어나듯 성도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깨우시면 일어나 다시 만나는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이유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끝나면 천국에서 만나고 싶은 그 얼굴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은 죽음의 날, 비통의 날, 슬픔의 날이 아니라 부활이 임하는 기쁨의 날입니다. 다시 만날 날, 그리고 생명이 임하는 날인 것이죠.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죄인된 우리에게 믿는 자마다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날에 우리의 삶에 이 기쁨이 부활이 임하려면,
1. 큰 박해가 있습니다. (1b절)
Q. 내가 당한 큰 박해는 무엇입니까?
Q. 큰 박해로 흩어져서 내 지경이 넓어졌나요? 큰 박해로 그저 예루살렘에 숨어 지내고 있지는 않나요?
Q. 깨어져야 할 자기중심성-자기 신화-는 무엇입니까?
2. 큰 울음이 있습니다. (2-3절)
Q. 내가 크게 통곡하며 울었던 적은 언제입니까?
Q. 수많은 간증을 함께 들으며 공감하나요? 아니면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평가하나요?
Q. 내 옆에 옷 맡은 자는 나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3. 큰 기쁨이 있습니다. (4-8절)
Q. 아직도 내가 넘어서지 못한 편견과 고정관념은 무엇입니까?
Q. 아직도 용서가 안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Q. 그 사람과 내가 똑같은 죄인임이 믿어지시나요?
Q. 나는 어떤 경계를 넘어서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요?
그날에 다시 만납시다!
복숭아
대학원때가 박해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사의 못된 행동을 보면서도 대학원때보다 낫다. 이런다. 내가 고난의 환경에 처해보니까 이해가 되더라. 교수님이 직접적으로 논문 지적하니까 우울이 심했다. 무기력한 상황을 보니 이해가 안됐는데 내가 처해보니까 이해되더라. 우울과 슬픔에 공감하는게 취약한 것 같다.
레몬
새엄마한테 공감이 잘 안된다. 사명의 자리가 가정인데 너무 쉽지 않다. 추석 때 남자친구랑 서로 선물하기로 했는데 남자친구가 인사하고 싶다고 엄마아빠한테 말해보고 싶다. 근데 여전히 전화하는 게 두려워서 매주 집에 간다.
포도
오늘 부서 교사회의에서 어떤 분의 아들이 여자애한테 괴롭힘 당했다는거 들으면서 나의 상처가 올라오는 것 같더라. 일곱살때부터 끊임없이 괴롭힘 당했고 힘들었던게 떠오르며 부서 언니한테 나 괴롭힌 애들 연예계에 뜨면 완전 생매장 시킬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그래서 말씀 듣다보니 마음에 찔림이 생겼다. 그리고 한의원 다닐 때 환자가 조금만 없어도 '너 때문에 환자 안오는거야.' 말하셨다. 너무 자주 그런 말을 하셨고 자존감을 깎아내려 너무 상처였고 아직도 아빠와 같이 있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래도 오늘 말씀처럼 용서해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양교에서도 이걸 나누며 상처를 잘 살펴봐야겠다.
복숭아
허리가 아픈데 필라테스 해서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직장에서 나의 의를 내려놓기를
큐티 꼭꼭 씹어먹으며 할 수 있기를
양교 하면서 화를 내지 않도록
이번주 금요일 연차낼 수 있도록
포도
통학하는데 체력 주시길
사이클 두번 탈 수 있도록
예배의 자리 잘 지킬 수 있도록
양교 숙제 잘 할 수 있도록
레몬
꼭꼭 씹어먹는 큐티 매일 하도록
가족 구원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들 위해 기도하도록
신결혼 인도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