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우리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기 위해
첫 번째, 끌어다가 세운 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시기했다라고 합니다. 시기심을 받아서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 들어가죠. 하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꺼내셔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성전에 서서 이 일을 전하라. 그래서 베드로가 새벽부터 성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것을 묵상하면서 어제 큐티 본문 말씀이죠. 새벽에 그래 일부 예배가 새벽부터 나와야 되 나도 새벽에 서서 성전에 서서 말씀을 전해야겠다. 이게 또 해석이 되더라고요. 감옥에서 나온 사도들이 첫 번째 한 일은 새벽에 성전을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어요. 날이 밝았고 이제 대제사장들과 사내들이 이제 의원들이 찾았어요. 감옥에서 그들을 한번 끄집어내봐라 했는데 가보니까 없습니다. 이들이 도망가지 않고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끌어와라 이렇게 한 거죠. 그래서 이제 경비원들이 얼른 가서 사도들을 붙잡아 이제 옵니다. 오늘 27절은 이런 사도들이 한 번 더 끌려와서 이제 다시 그 공회원들 앞에 선 그 법정에 선 본문이 오늘 27절의 시작이에요.
27절을 보면 그들을 끌어다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끌어다가 그들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죠. 끌려왔습니다. 누가복음 22장 54절에 똑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예수를 잡아끌고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세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여기에도예수를 잡아 끌고이 끌고와오늘 끌어다가 는 똑같은 단어예요.정말 똑같은 단어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모두 누가가 썼음 22장 54절 = 사도행전 27절 저자가 같음.
불과 두달전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음
현재 사도행전의 베드로는 누가복음의 예수님처럼 끌려갔음. 도망가지않고 부인하지않고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서계심.
그런데 베드로는 첫번째 끌려온게아닌 두번째 끌려왔습니다. 오늘 두 번째 끌려온 것이죠. 반복해서 계속 반복해서 내가 실패했어도 또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똑같은 상황을 주시는 것을 나에게 똑같은 상황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뭐냐 하면 이곳이 나의 사명의 자리라는거! 여기서 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무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주님 저희 십자가 너무 무거워요.
하면서 던져버리죠. 그러면서 튼튼해 보이는 그 새 십자가를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새 십자가를 쥐면 어떻습니까? 너무 무거워 나무하고는 비교가 안 돼 쇠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또 던져버립니다. 그러면서 이왕 십자가 질 거 예쁜 십자가 장미 십자가를 달라고 합니다. 너무 예뻐 보이니까. 그런데 또 그 십자가를 지면 어떻습니까?
가시 정말로 그 십자가의 가시로 더 큰 고통이 임하는 것이죠. 사명의 자리를 피해서는 안 됩니다. 이혼을 해서는 안 돼요.
당하더라도 이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곳이 나의 거룩을 위한 최고의 사명제인 증인으로 서야 할 자리임. 나의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반복되는 환경을 주십니다.내가 원해서 간 자리가 아니라 원치 않아 간 그곳이 내가 증인으로 서야 할 자리입니다. 우리가 다들 원치 않아 간 자리가 한 자리는 가정. 가정 내가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고르고 골라서 나에게 맡긴 것.
저희 아버지는 아무도 감당을 못합니다.
형제들도 버렸어요. 형제들이 저희 아버지 이름, 친척들이 저희 아버지 이름만 얘기해도 욕을 합니다. 전부 다 버리는 사람을 고르고 골라서 누구에게 저에게 주님 왜 접니까? 저에게 맡기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맡기신 겁니다. 이 힘든 아버지 힘든 어머니 이 힘든 자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인 나를 먼저 살려주셨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곳, 떠나고 싶은 그곳, 두려워서 도망쳤던 그곳에서 우리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먼저 나를 살려주세요. 오늘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다면 오늘 나에게 주님 나에게 살려달라고 좀 부르짖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용?)
나는 무엇의 증인인가요? 주식 다이어트, 맛집, 여행지 제테크?
내가 성공한 경험, 실패한 경험이 무엇인가요?
원치 않지만 서게 된 곳은 어디입니까?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십니까?
두번째 내가 나무에 달아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존재 자체가 증인이니까 사람들이 계속 묻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가정을 지키셨어요? 어떻게 그 부모님을 섬기셨어요? 어떻게 그 자녀를 섬기셨어요? 어떻게 살아나셨어요?
또 우리는 묻죠. 뭐라고 묻나요? 어떻게 살 빼셨어요? 어디 피부과 다니세요?
그리고 너희 가르침이라고 표현을 하죠.
그럼 왜 이렇게 표현한가요? 예루살렘에 전부 가득하게 됐는데 유일하게 누구 대제사장 그리고 그 앞에 선 사람들에게는 이 복음이 닿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을 이 사람 복음을 너희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대단한 베드로 요한 사도들이 서 있고,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그 앉은뱅이가 서서 자기 눈앞에 있는데도, 그리고 어떻습니까? 베드로의 설교로 하루에 3천 명 5천 명 그때 당시 예루살렘 인구가 10만 명이었다고 해요. 여자 어린아이 치면 한 2만 명 됐을 거예요. 사람 가득했다라는 표현은 완료형으로 가득 찰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고 이 땅에 이 성읍에 가득 찼다는 표현이에요. 이미 가득 찼다는 표현입니다.그런데 여전히 대제사장은 믿지 않죠 왜 믿지 않나요?스스로가 이 진리를 언급했기 때문입니다.모든 세상이 다 외쳐도 귀를 막고 있는 것이죠. 스스로 금했다는 거예요. 굉장히 강하게 명령했다는 거죠. 강압적인 태도입니다. 강압적인 태도가 베드로와 사도들에게만 간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이 강압적인 태도가 타인에게로 간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도 향하는 거죠. 이거는 절대 말하면 안 돼. 이거는 절대 드러나서는 안 돼. 절대 절대 이거는 말하면 안 돼 하면서 명령하고 또 명령합니다.
왜 이렇게 강하게 명령합니까?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그들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아 죽였기 때문에 강하게 언급하고 또 언급하는 거죠. 제로 대제사장 이 가야바와 안다스 가문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 공허에서 두 달 전에 십자가에 못 박아라 판결을 내렸어요. 이 판결에 모든 사내대인 공예원과 사도 개인들이 동의를 한 것이죠. 불과 두 달 전이에요. 그리고 안나스와 가야바를 비롯한 동일한 사람들이 이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가르침, 모든 것에 가득한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이들은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았다는 것을, 내가 그를 죽였다는 것을, 무고한 그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거죠. 이걸 받아들이면 인정하게 되니까 온 힘을 다해서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겁니다. 우리는 내가 틀렸다를 인정하지 못하기에 금하고 또 금합니다. 명령하고 또 명령하죠. 왜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내가 죄인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아내하고 남편이 싸우다 아내 말이 다 맞아요. 다 맞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내가 진 것 같아요.인정해야 됩니다. 내가 예수님의 저주받은 나무에 달아 죽인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엄금하고 또 엄금하고 숨기기 위해서, 내 가오와 내 과시가 내 죄를 숨기기 위해서 금하고 또 금합니다. 가면을 써야 됩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의 증인이 아니라 자기 행동에 자기 자신의 증인으로 살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 자랑을 하고 변명을 합니다. 왜냐하면 제 뿌리 깊은 연약함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결국은 이 태도가 다른 곳에서 변명으로 이 가면을 쓰게 되는 거죠. 인정해야 합니다. 가면을 벗어야 돼요. 저는 제가 가면을 벗으면 사람들이 저를 떠난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뭔가 잘못을 하면 저 사람도 나를 떠날 걸 알기에 변명을 하는 거예요. 계속 변명을 하는 겁니다. 내가 이랬어 이랬어 이랬어 이랬어. 근데 그런 변명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더 진절머리 나죠.
대제사장이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정말로 자기가 살인자가 되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해야 할 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 한마디예요. 이게 안 되니까 재판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또 싸우고 또 위협하고 전쟁하고 때리고 옥에 가두는 거예요. 모든 분란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 때문입니다. 직면하는 훈련을 해야 돼요. 자기 안에 이기심 질투 열등감 같은 어두운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만 보려 합니다. 그리고 포장을 하죠. 그래야 덜 부끄러워 보이고 덜 약해 보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따라서 타인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내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교육받아왔고 집에서도 그렇게 커왔어요.그런데 우리의 가치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증인인가에 우리의 가치가 결정됩니다.남을 만족시키는 태도는 완벽해 보이는 가면을 만들지만 그 속에는 어떻습니까? 억울함, 피로감, 진짜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진정한 관계는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연기가 아니라 오해받을 위험이 있더라도 진짜 내가 경험한 것을 드러내고 고백하고 인정하고 증언하는 겁니다.
적용?)
어느 누구도 알아선 안 된다며 금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안전한 공동체에서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나무 위에 달린 십자가가 부끄러워 숨기고 있습니까?
입에도 꺼내기 싫어서 이 이름이라고 칭하고 있는 수치는 무엇입니까?
부모입니까? 내 모습입니까?
세번째 회개함과 죄사함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이 정말로 입에도 꺼내기 싫어서 이름이라고 얘기하는 대제사장에게 정확하게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 이렇게 정확하게 말하죠. 아예 그냥 죄를 그냥 구부려 팝니다. 지적합니다.
근데 왜 이렇게 말할까요? 너희가 죄인이야 너희가 죽였잖아 이 어떤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까요? 우리는 보통 죄를 지으면은 그 죄를 지은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정죄합니다. 그 죄를 알려줍니다.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라고 사랑하라고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저주를 퍼부으며 외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제사장에게 지금 할 말 없어?
이런 정도가 아니에요. 당신이 지금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너희가 가 너희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잖아 외칩니다.
왜 이렇게 외치나요? 정죄감이 아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베드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정당하다.
니가 틀렸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는 분을 너희가 알아라.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너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우리 모두 죄인이다. 회개함과 함 죄사함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베드로는 정확하게 알아요. 주시는 거예요.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신다고 합니다. 언제 주시냐? 인정했을 때 회개는 과거의 완전한 단절이에요. 옛날에 출애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잖아요. 홍해를 건넜는데 다시 돌아가나요? 안 돌아가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입니다. 내가 노예로 세상의 노예로,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내 삶과의 완전한 단절.
근데 이 단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주셔야 돼요.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죄인인 우리의 심령에 하늘의 문을 여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야 돼요.
이게 언제 오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인정할 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이것을 고백할 때 우리는 과거의 죄에서 완전한 단절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였다. 이번 대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까지 우리는 증인이 되어야 돼요.
각오의 완전한 단절.
내가 이 죄를 끊어냈습니다. 내가 이 예수님이 살려주신 이 죄로는 다시는 이제 안 돌아갑니다.회개함까지 우리의 간증이 되어야 되고, 이 회개함까지 우리의 증인이 돼야 돼요.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31절에 주시려고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삼았다고 합니다.
임금=심판 하는자리
우리가 하나님이 돌이키게 해 주셨는데 또 돌아가는 그 죄를 반복하면 심판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영원한 심판 이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걸 알아야 됩니다.
임금뿐만이 아니라 구주로 삼으셨어요. 구주는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님 나에게 구주이십니다.
주님 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옵소서.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내가 할 수 없게 구해야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제발 살아나라.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지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신다.
제발 살아나라. 세상에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집단이죠. 은과 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세와 재물이 아니라 베드로는 담대히 외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함과 죄사함을 너희가 받아야 된다.
회개는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죄인인 것이 인정이 된다면 여기에서 인정하는 것에 그치면 회개가 아니에요. 돌이켜서 내 행위를 바르게 해야 되는 거예요. 내 죄를 끊어내고 바르게 해야 됩니다. 내가 정말 주님을 못 박은 죄인임이 인정이 되고, 주님이 슬퍼할 만한 행위를 돌이킨다면 오늘 베드로는 이스라엘 최고의 사람들 앞에서 죄의 사함이 있을 거라고 선포합니다. 너희들이 바라보던 성전 이 성전에서 뭐가 하나요?
매일 소를 잡고 양을 잡으면서 죄의 사함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우리에게도 베드로는 선포하죠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구하여 온전히 우리가 주님께 돌이킬 때 온전한 죄사함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거예요.
이것을 믿고 구해라는 겁니다.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31절 하반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았다는 것이죠. 32절에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오 이 일의 증인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나의 추악한 과거뿐만 아니라 이런 죄를 용서함 받은 일에도 그리고 용서함 받아서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해서 죄를 완전히 끊어내고 돌이킨 일에도 증인이 돼야 되는 거예요.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어야 됩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내가 이 말씀에 순종해서 내가 이 죄를 끊어내고 이것을 고백할 때 하나님이 나의 수치를 가려주시고 나의 증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죠. 성령을 부으셔서 나의 증인이 되어 주십니다.
어떻게 증거해 주십니까? 이는 죄인이 아니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증언해 주시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순종하여 증언할 때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증언하여 힘 주시고 높여주실 것입니다.
적용?)
회개함과 죄사함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내가 결코 돌아가지 말아야 할 완전한 단절 끊어야 될 회개함과 죄사함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내가 끊어야 할 주제는 무엇입니까? 또 넘어졌다면 다시 고백하고 순종할 때 성령께서 도우시는지 믿으시나요?
오늘 베드로는 대제사장에게 마지막 판결을 내린 게 아니에요.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들도 돌이키라는 거죠. 돌아오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또 외치고 또 외치고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도 돌이키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나고 살아난 사람은 뭐가 되죠? 증인이 됩니다.
주일 목장은 목자 부목자 목원 2명 이렇게 총 4명이서 목장을 했습니다.
(부목자가 지각을 좀 했습니다amphellip죄송합니다 꾸벅)
한주간 어떻게 보냈는지 나눔을 하고 내가 어떤 증인이 되고 있는지
내가 서게된곳이 어디인지를 나눴습니다.
목장에 참석 못해도 기도제목 나눠주는 형제 자매님들 감사합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A
1. 가정, 직장, 공동체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 수 있기를
2. 신교제와 신결혼 인도해주시기를
3. 목장과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 주 되기를
B
1. 소화 잘될수 있도록
2. 업무 능숙해지도록
3. 저녁에 아무것도 안먹을수 있도록
D
1. 그냥 하기
2. 진정성
3. 마음을 고요히 하기
E
1.신결혼.
2.큐티 빠지지 않고, 항상 말씀에 묻고 사모하길.
3.체력관리.
4.금주 금욕 금연 잘지키길.
5.일에 쏟을 지혜와 체력주시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시작할수 있길.
F
1.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받은 죄인임을 인정하게해주세요
2. 엄마와 동생의 구원
3. 매장에 진상손님들 그만오길
(제발 쭉정이그만오고 알곡손님들좀..)
4. 신교제 신결혼
G
1. 건강한 한주 보낼 수 있도록
2. 옆에 있는 사람들의 감사함을 알도록
3. 남자친구와 저 둘 다 목장에 잘 붙어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