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2025.09.14.(주일) 사도행전 5:27-32 「증인」 김성우목사님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 설교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 사도행전 5장 말씀 앞에 섰습니다. 주님 이 시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가 지난주에 일어설 수 없었던 한 사람을 묵상했습니다. 그 사람이 여전히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어섰죠. 어떻게 일어섰나요?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더불어 주목하고 바라보며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오른손을 뻗어서 잡아 일으켰죠. 근데 이 일어난 사람이 들로~ 산으로~ 이렇게 떠나지 않고. 일어났으니까 얼마나 돌아다니고 싶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떠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 곁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어떤 집사님께서 지난주 설교를 듣고 이렇게 물으시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 목장에서도 어느 누구도... 우리들교회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하면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 저는 교회를 떠나고 싶어요. 목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에게 묻더라고요.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교회를 떠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우리가 이 교회에서 잘 양육을 받으면 또 가야 할 때가 있다면 또 가야 되죠. 우리가 또 사명이 있으면 가야 됩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에 치리 받고 아! 이거 억울해! 해서 뛰쳐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평생 아버지와 원수로 살았을 것 같아요. 아버지를 결코 저는 용서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안 찾았겠죠. 그런데 이곳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내 죄가 보이고, 이것이 해석이 되니까, 아버지를 교회로 모시게 되고, 어머니를 교회로 모시게 되고. 저희 어머니와 함께 또 이렇게 일어나 가지고 찍은 사진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어머니도 모시게 되고. 함께 예수 그리스도로 일어서서 살아나게 되니까 이 살아난 사람이 어떻게 됩니까? 증인이 되는 것이죠.
제가 여기서 설교자로 서 있지만 또 한 사람의 증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체의 증인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올 초에 어떤 이제 목장을 탐방 갔었는데, 이제 올 초에 대선이 있었잖아요. 대선 전에 이제 목장에 탐방을 갔었는데 이 집사님이 이제 또 너무 기구해요. 장애인 아들을 홀로 키우고 사업이 쫄딱 망해서 이제 쫓겨난 거예요. 오늘 간증하신 우리 문인기 집사님처럼 쫓겨났어요. 쫓겨났는데 이제 장애인 아들과 같이 쫓겨났죠. 돈도 없고, 사업도 망하고, 원룸에서 사는데.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주식 투자를 하신 거예요. 주식 투자를 했는데 망해야 되는데 잘 된 거예요. 제가 갔을 때 슬쩍 물어봤어요. 집사님, 어느 정도 버셨나요? 그러니까 한 4배에서 한 5배 정도. 그래서 이 집사님이 주식의 증인이 되셨어요.^^ 어떻게 됐냐면 우리가 아침마다 이렇게 목사님 말씀, 그리고 보석 상자 말씀, 극동 큐티 말씀 올리잖아요. 그걸 올리면서 그 밑에다가 이 집사님이 종목을 하나씩 넣어놓은 거예요. 종목을 하나씩 넣어놨는데, 그 목장 사람들도 그럼 같이 그걸 했냐? 이 목장 사람들은 다 나이가 들어 가지고 주식을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거야. 종목이 뭐 이게 뭐야? 이러면서 몰랐는데 꾸준히 열심으로 종목을 올렸는데, 그 올린 종목마다 대박이 난 거예요. 근데 목장 사람들은 (부러우세요?^^) 목장 사람들은 아무도 안 한 거야. 이분만 막 열변을 토하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제가 갔을 때도 이제 올리시는데 저도 좀 궁금하더라고요. 근데 이제 목장 사람들과 함께 그날 큐티 말씀, 주일 말씀으로 함께 예배하면서 대선이 끝나면 절대 주식을 하지 않겠다! 이제 적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께서 주식을 끊고 이렇게 했죠. 근데 여기서 내가 살아나니까 주식의 증인이 되는 거죠.
우리는 무엇의 증인인가요?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뭐의 증인인가요? 야! 두 달 만에 10kg 빠졌대! 무슨 약이야? 무슨 약이야? 어디 가야 돼? 저희 아내도 뭐 먹고 있던데 두 달 됐는데 한 몇 백 그램 빠졌더라고요. 자기 말로는 뭐 이게 과정이다. 이제 뭐 칼슘이 채워져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안 빠지더라고요. 뭐 근데 건강은 해졌어요. 그래서 제가 건강한 돼지가 된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건강하면 되죠. 요즘 우리 또 남자들은 어떤 거에 이제 관심이 있나요? 탈모. 저도 나이가 드니까 이렇게 앞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데. 야! 거기 가니까 머리가 나기 시작하더라! 난리가 나죠. 우리가 다 그런데 증인이 됩니다. 결국은 내 경험을 얘기하면서 내가 살아난 그곳에 내가 증인이 되죠. 하지만 정말 무서운 사람은 내가 살아난 그 경험의 증인 된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왜냐하면 이것이 옳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게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경험이 다른 사람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주 설교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람은 자기 경험 야! 이렇게 했더니- 손 잡았더니 일어났어! 이렇게 하나요? 아니죠. 베드로가 정확하게 해석을 해 줍니다.은과 금은 내게 없고... 왜 나를 주목하느냐! 내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셨다! 정확하게 해석을 해줍니다. 나의 경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이 앉은뱅이가 떠나가지도 않고 성전으로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죠. 베드로도 마찬가지죠. 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자기 공로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한 것은 그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밖에 없는데, 이런 나를 예수님이 먼저 손 내미셔서 살리셨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도 성전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끌어다가 세운 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7절)
27절 우리 한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 그리고 앉은뱅이가 성전에 들어간 이후에. 이제 이 일이 퍼지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시기하죠. 시기했다라고 합니다. 시기심을 받아서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 들어가죠. 하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이 베드로와 사도들을 꺼내셔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성전에 서서 이 일을 전하라. 그래서 베드로가 새벽부터 성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어제 큐티 본문 말씀이죠. 이것을 묵상하면서 아! 새벽에... 그래, 1부 예배가 새벽부터 나와야 되지. 나도 새벽에 성전에 서서 말씀을 전해야겠다. 이게 또 해석이 되더라고요.^^
감옥에서 나온 사도들이 첫 번째 한 일은 새벽에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어요. 날이 밝았고 이제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의원들이 찾았어요. 감옥에서 그들을 한번 끄집어내봐라. 했는데, 가보니까 없는 거야.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턴가 소문이 들리는 거예요. 이들이 도망가지 않고,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끌어와라. 이렇게 한 거죠.
그래서 이제 경비원들이 얼른 가서 사도들을 붙잡아 이제 옵니다. 오늘 27절은 이런 사도들이 한 번 더 끌려와서 이제 다시 그 공회원들 앞에 선, 그 법정에 선, 본문이 오늘 27절의 시작이에요. 근데 27절에 이렇게 시작하죠. 27절을 보면 그들을 끌어다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끌어다가 그들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죠. 끌려왔습니다. 누가복음 22장 54절에 똑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누가복음 22장 54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눅22:54)
여기에도 예수를 잡아 끌고 이 끌고 와 오늘 끌어다가는 똑같은 단어예요. 정말 똑같은 단어입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사도행전은 누가 썼나요? 제 질문에 답이 있죠? 누가가 썼습니다. 누가복음은 누가 썼나요? 누가가 썼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원래 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가 쭉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집필을 했어요. 그런데 누가복음 22장 54절에 쓴 단어와 오늘 단어 똑같이 썼는데 여기에도 똑같은 인물이 등장하죠. 베드로. 이 구절에도 베드로가 등장하고, 이 구절에도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 등장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끌려가고,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갑니다. 멀찍이 따라가요. 멀찍이 따라가며 사람들이 이제 불을 피우고 앉아 있는데, 예수님이 똑같은 장소로 끌려간 거예요. 오늘 베드로가 그 사람들 앞으로 끌려갔듯이 예수님이 끌려갔는데, 베드로는 따라가요. 따라갔는데 확신했겠죠. 나는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했던 베드로가 따라갑니다. 불이 확 비치고 얼굴이 드러나자 종이 탁 지적하죠. 어! 너 예수님하고 같이 다녔던 사람 아니야? 부인합니다. 한 번 더 이렇게 보니 종이 딱 보니까 그 사람 맞는데? 절대 아니야! 이제는 종이 너무 화가 나 가지고 장담하면서 너 그 사람 맞잖아! 장담하니까 베드로가 저주하면서 나 절대 그 사람 아니야! 하는데 어떻습니까? 닭이 세 번 웁니다. 그리고 멀찌기 따라갔던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죠. 바로 그 사람들 예수님을 끌고 갔던 그 사람, 그 동족 안나스 가문 가야바 대제사장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원. 그 끌고 갔던 그 사람들이 오늘 베드로를 다시 끌고 왔어요. 예수님이 끌려갔던 게 불과 두 달 전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이 불과 두 달 전이에요. 두 달 전에 예수님이 똑같이 끌려간 그 상황을 베드로가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죠. 두 달 후에 오늘 누가 끌려가나요? 끌어다가 똑같은 사람들 앞으로 도망간 베드로가 끌려옵니다. 그런데 이제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부인하나요? 도망가나요? 도망가지 않아요.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서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큐티를 하면 알겠지만 오늘 첫 번째 끌려온 게 아니에요. 4장에서 한 번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또 놓임을 받았는데 도망가지 않아요. 또 끌려왔죠. 오늘 두 번째 끌려온 것이죠. 계속 반복해서 내가 실패했어도 또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똑같은 상황을 주시는 것은- 나에게 똑같은 상황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뭐냐 하면, 이곳이 나의 사명의 자리라는 거예요. 여기서 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주님, 저는 이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요. 하면서 던져버리죠. 그러면서 튼튼해 보이는 그 쇠 십자가를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쇠 십자가를 지면 어떻습니까? 너무 무거워요. 나무하고는 비교가 안 돼. 쇠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또 던져버립니다. 그러면서 이왕 십자가 질 거 예쁜 십자가 장미 십자가를 달라고 합니다. 너무 예뻐 보이니까. 그런데 또 그 십자가를 지면 어떻습니까? 가시. 정말로 그 십자가의 가시로 더 큰 고통이 임하는 것이죠. 사명의 자리를 피해서는 안 됩니다. 이혼을 해서는 안 돼요. 당하더라도 이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곳이 나의 거룩을 위한 최고의 사명지인 증인으로 서야 할 자리인 것이죠. 나의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반복되는 환경을 주십니다. 내가 원해서 간 자리가 아니라 원치 않아 간 그곳이 내가 증인으로 서야 할 자리인 것이죠.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원치 않아 간 자리가 어딘가? 우리가 다들 원치 않아 간 자리가 한 자리는 있어요. 어디죠? 가정이죠! 가정. 여기서 내가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 있나요? 그러니까 내가 보니까 딱 보니까 저쪽 부모님은 좀 사이가 좋아~ 얼굴도 예뻐~ 연봉도 억대야~ 근데 어디 매체를 보니까 어떤 사람이 저 연봉 억대입니다. 이러니까 와 놀라면서 얼마예요? 이러니까 0.1억입니다. 억대 연봉이죠.^^ 우리 다 억대 연봉입니다^^. 연봉도 많고. 아! 내가 저 부모님을 택해야겠어! 하면서 태어난 사람 있나요? 정말로 그런 선택권이 있었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좋았을까? 저는 저희 부모님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는 지금 저희 부모님이 최고의 부모님이시지만 그때 당시에 하라고 하면 안 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끌려온 것이죠. 내가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성령에 이끌려 예수님께서 광야로 이끌려 가셨듯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영원한 택함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주님의 손에 이끌려 나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죠.
제가 왜 저희 부모님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뭐 짧게 이야기하면 저희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때 감옥을 가시고, 감옥을 나오신 이후로 평생 무직으로, 알코올 중독자로, 노숙자로 사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폭행과 그 술주정과... 거의 지옥이었어요. 그걸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어느 날 제가 고3 때 지금 이제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거의 이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고3 때 제가 가방을 메고 집에 오니까 어머니가 안 계신 거예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척이나 구타하고... 뭐 이게 지금 좋은 표현이죠. 음... 지옥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떠나신 거죠.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어떤 자리에 증인이 됩니까? 내가 선택한 자리가 아니라 끌려온 자리! 그곳에서 증인이 됩니다. 실패한 자리. 반복해서 세워진 자리. 우리는 다 끌려와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고르고! 고르고!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나에게 맡긴 거예요.
저희 아버지는 아무도 감당을 못합니다. 정말이에요. 형제들도 버렸어요. 형제들이 저희 아버지 이름, 친척들이 저희 아버지 이름만 얘기해도 욕을 합니다. 전부 다 버리는 사람을 고르고~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누구에게? 저에게! 주님 왜 접니까? 저에게 맡기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맡기신 겁니다. 이 힘든 아버지, 이 힘든 어머니, 이 힘든 자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인 나를 먼저 살려주셨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곳, 떠나고 싶은 그곳, 두려워서 도망쳤던 그곳에서 우리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살려주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다면 오늘 나에게 주님, 나에게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지난주에 제 설교를 듣고 정말 피투성이라도 너무 살 수가 없어서 ... 늘 때리고 술에 취하는 남편 때문에 이 지옥으로 만드는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든데 이 남편을 어떻게 아테니조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또 어떤 분은 그냥 남편의 존재 자체가 싫은 거예요. 그냥 집에 가면 누워 있는 것 자체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아테니조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늘 이렇게 도끼눈으로 쳐다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대체 김성우 목사는 그 아버지를 아테니조 할 수 있었는가? 하면서 저 이제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고 해요. 뭐라고 물었냐면 도대체 김성우 목사는 무슨 죄가 있어 가지고 그렇게 아버지를 감당할 수 있었나요?^^ 죄가 많습니다. 네, 죄가 많아요. 그런데 내가 죄인이다라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내가 죄인인 것도 알고, 주님이 나를 살려주신 것도 알지만 저 역시 아버지를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를 보면 속에서 분노가 올라오는 거예요. 얼마 전에 어머니를 뵐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 떠나간 어머니를 이제 성인이 돼서 1년에 몇 번씩 자주는 아닌데 이제 뵙는데 한 3, 4주였나요? 어머니를 딱 뵙는데 어머니가 이제 치매에 걸리셨어요. 치매에 걸리셔서 새 아버지가 그때 어디를 가신다고 해서 어머니를 한 시간 거리 어디에 태워 달라라는 요청을 받고 이렇게 갔는데 이제 어머니가 아들이 온다라는 말을 듣고 제가 가자마자 현관에서 쭈그려 앉아서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짐을 다 싸고. 아들을 계속 아침부터 기다렸대요. 근데 이제 그런 어머니를 제가 바라보는데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옆에 태우고 이렇게 가는데 어머니 뭐 어떻게 지내셨어요? 하는데 눈에서 눈물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이게 증오인지, 원망인지, 뭐 그리움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는 거예요. 연약합니다. 우리는 할 수가 없어요. 근데 그날도 저는 어머니에게 너무 가기 싫어 가지고 안 간다는 걸 옆에 누가 있었냐면 아내가 이제 같이 가자. 같이 가자. 지금도 어머니를 뵙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 아버지 뵙는 게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래서 늘 안 간다. 안 간다. 하는데 옆에 누가 있죠? 베드로 옆에 요한이 있었듯이 아내가 같이 가자. 같이 가자. 아버지 뵈면 또 막 화가 올라와 가지고 예배고 뭐고 다 때려 치우려고 막 떠나는데도 아내가 제 손을 붙잡고 같이 또 예배드리자고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주세요. 공동체를 주시고 내 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공동체가 없지 않아요. 내 옆에 한 사람을 주시고, 아무도 없는 그 순간에 누가 함께하시냐면 성령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우리도 혼자 할 수 없어요. 내가 죄인인 것도 알고, 살아난 것도 알지만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안 되는 나를 또 나누고, 또 나누고... 이 고백을 또 들어주는 공동체. 그리고 내 옆에 한 사람. 한 지체.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신(信) 결혼해야겠죠. 이 옆에 사람이 나를 도우니까. 저는 비록 연상이지만 신(信) 결혼했습니다. 있을 유(有) 믿을 신(信) 이름이 믿음이 있다예요.
정말로 우리는 옆에 공동체와 함께 내가 원치 않은 그곳, 내가 끌려서 가게 된 그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증인이 되려고 뭔가 하지 않아도 돼요.
어떤 분은 일어서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저에게 상담했어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너무 힘들다고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좀 앉아 계시면 됩니다. 앉아 계시면 돼요. 뭔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증인이에요. 그저 우리의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성전 미문에 앉은 거지가 한마디라도 합니까? 아니요. 아무 말도 안 해요. 그냥 서 있습니다. 그냥 서 있기만 해요. 고난의 흔적을 가진 우리가 그저 살아내기만 해도! 그저 존재 자체가 증인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왜 이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 있나? 저의 오래된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아버지가 소천할 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아버지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증인이셨구나!! 우리는 그저 고난의 흔적을 지니기만 해도 존재 자체로 증인입니다. 지금까지 너무 잘 살아오셨어요!
적용 질문드립니다.
Q. 나는 무엇의 증인인가요? 주식, 다이어트, 맛집, 여행지, 금테크의 증인이 되고 있나요?
(야! 거기 갔더니 너무 좋더라~그러니까 막 목장 식구들이 다 가죠? )
Q. 내가 성공한 경험, 실패한 경험이 무엇인가요?
Q. 원치 않지만 서게 된 곳은 어디입니까?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시나요?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두 번째로
내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8-30절)
28절에서 30절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끌려가 서게 되니까 이제 묻죠. 대제사장이 물어요. 27절 하반절에 대제사장이 묻되 이렇게 물었다고 나오죠? 그러니까 우리가 존재 자체가 증인이니까 사람들이 계속 묻습니다. 어떻게 가정을 지키셨어요? 어떻게 그 부모님을 섬기셨어요? 어떻게 그 자녀를 섬기셨어요? 어떻게 살아나셨어요? 또 우리는 묻죠. 뭐라고 묻나요? 어떻게 살 빼셨어요? 어디 피부과 다니세요? 무슨 화장품 쓰세요? 어떻게 부자 됐어요? 어떻게 자녀를 서울대 보냈어요? 그러니까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증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거예요.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물으면서 이렇게 얘기를 해요. 28절에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는데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했다. 이는 너희가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다! 이렇게 말하죠. 예수님을 이 사람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너희 가르침이라고 표현하죠. 그러면 왜 이렇게 표현하는가요? 예루살렘에 전부 가득하게 됐는데 유일하게 대제사장 그리고 그 앞에 선 사람들에게는 이 복음이 닿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을 이 사람 복음을 너희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대단한 베드로, 요한, 사도들이 서 있고,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그 앉은뱅이가 서서 자기 눈앞에 있는데도, 그리고 어떻습니까? 베드로의 설교로 하루에 3천 명, 5천 명 그때 당시 예루살렘 인구가 10만 명이었다고 해요. 3천 명, 5천 명이 남자만 센 숫자니까 아마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치면 한 2만 명 됐을 거예요. 10만 명에서 2만 명이면 5분의 1입니다. 5분의 1이 가득하게 되어도 믿지 않는 거죠.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너희 가르침, 이 사람. 가득했다는 표현은 완료형으로 가득 찰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고 이 땅에 이 성읍에 가득 찼다는 표현이에요. 이미 가득 찼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대제사장은 믿지 않죠. 왜 믿지 않나요? 성경에 나오죠. 28절. 제가 한번 읽겠습니다.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이들이 믿지 않았던 이유는 이들 스스로가 이 진리를 엄금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상이 다 외쳐도 귀를 막고 있는 것이죠. 스스로 금했다는 거예요. 엄금하다의 원어는 우리가 너희에게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을 명령했다. 명령을 명령했다. (그리고 메타인지도 똑같은 거예요. 생각을 생각하다 뭐 이런 표현도 있죠. 명령을 명령했다는 말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요. 부정어를 두 번이나 썼어요. 굉장히 강하게 명령했다는 거죠. 강압적인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 강압적인 태도가 베드로와 사도들에게만 간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이 강압적인 태도가 타인에게로 간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도 향하는 거죠. 이거는 절대 말하면 안 돼! 이거는 절대 드러나서는 안 돼! 절대절대 이거는 말하면 안 돼!! 하면서 명령하고 또 명령합니다. 왜 이렇게 강하게 명령합니까? 왜 이렇게 강하게 명령하죠? 30절에 나오죠. 베드로가 바로 얘기해 줍니다.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그들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아 죽였기 때문에 강하게 엄금하고 또 엄금하는 거죠. 실제로 대제사장 이 가야바와 안나스 가문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 공회에서 이 장소에서 두 달 전에 십자가에 못 박아라! 판결을 내렸어요. 이 판결에 모든 산헤드린 공회원과 사두개인들이 동의한 것이죠. 불과 두 달 전이에요. 그리고 안나스와 가야바를 비롯한 동일한 사람들이 이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가르침- 모든 것에 가득한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이들은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았다는 것을- 내가 무고한 그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거죠, 이걸 받아들이면. 인정하게 되니까 온 힘을 다해서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겁니다. ★우리는 내가 틀렸다를 인정하지 못하기에 금하고 또 금합니다. 명령하고 또 명령하죠. 왜?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내가 죄인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아내하고 남편이 싸우다 아내 말이 다 맞아요. 다 맞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내가 진 것 같아. 그래서 막 괴성을 지르고 나가버리죠. 인정해야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저주받은 나무에 달아 죽인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엄금하고 또 엄금하죠. 숨기기 위해서. 내 과오와 내 과시가 내 죄를 숨기기 위해서 금하고 또 금합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이제 술에 취해서 온 거리- 정말로 온 거리-에 술에 취해서 욕을 하는데, 이제 어머니가 바람 폈다.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입에 담기 힘든 거의 상스러운 단어와 문자로 욕을 하고. 정말로 이렇게 고함치는 아버지가 너무 수치스럽고, 너무 미웠어요. 고3때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안 계시고 이제 술 취한 아버지의 욕설과 고함 소리만 가득한 집에서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순간 그게 현실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것을 말하는 순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말하는 순간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 내가 예수를 매달아 죽인 것 같은 기분.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데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굉장히 착했습니다. 사귄 적도 없어요. 여자하고 사귄 적도 없어요. 공부만 했어요. 진짜 공부만 했습니다. 탁월한 머리가 아니라서 열심히 했어요. 새벽부터 저녁까지 밤까지. 그리고 교회에서는 회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마하나임이라는 중창단 리더였어요. 리더가 아니었나? 단원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말하는 순간...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교회 선생님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요. 우리는 말할 한 사람이 없어서 죽고 싶은 것이죠. 금하고 또 금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내 아버지가 술주정뱅이 노숙자가 아닌 것처럼. 저만 인정하지 않는데 아버지가 막 하고 다니니까 주변에는 가득한 거죠. 아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말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가면을 써야 됩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의 증인이 아니라 자기 행동의-자기 자신의- 증인으로 살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 자랑을 하고 변명을 합니다. 제가 얼마나 변명을 잘하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제 뿌리 깊은 연약함.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결국은 이 태도가 다른 곳에서 변명으로 이 가면을 쓰게 되는 거죠. 우리들교회에 처음 왔을 때에도 목장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거의 1년 동안. 그리고 우리들교회에 처음 왔을 때 저희 가정이 이렇다. 제가 이런 죄를 지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목사니까 근데 우리들교회 와서 뭔가 굉장히 막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말을 해도 별로 상관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어떤 위치냐면 주차하는 위치였어요. 사람들이 저를 목사인 줄 몰랐어요. 근데 이 주차하는 위치에 있으니까 더 어떻게 되냐면 더 막 가면을 쓰는 거예요. 무시 안 당하려고. 그러니까 이제 무시 안 당하려고 하는 말이 나 공부 잘했다. 나 잘생겼다. 듣기 싫은 말만 하는 거죠. 그런 말을 하니까 어떻습니까?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치리^^. 그 입을 다물라!! 말 금지 치리를 받았습니다.
저만 금하고 또 금할 뿐이지 온 예루살렘에 가득하다 하잖아요. 인정해야 합니다. 가면을 벗어야 돼요. 저는 제가 가면을 벗으면 사람들이 저를 떠난다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저를 떠났기 때문에. 내가 뭔가 잘못해서 떠났나? 내가 뭔가 죄를 지어서 떠났나? 관계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뭔가 잘못을 하면 저 사람도 나를 떠날 걸 알기에 변명을 하는 거예요. 계속 변명을 하는 겁니다. 내가 이랬어~ 이랬어~ 이랬어~ 이랬어~. 근데 그런 변명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더 진절머리 나죠. 지난주 설교할 때도 1부 때 굉장히 빨리 읽고 끝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백보드 시계를 잘못 봐 가지고. 근데 또 저는 변명을 하죠. FD가 잘못해 가지고 제가 그랬다고. 제가 잘못한 건데. 남 탓을 합니다. 예수 십자가가 안 믿어지는 거죠. 내가 나무에 달아 나무에 달았다는 것은 저주입니다. 수치죠. 인정이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정말로 자기가 살인자가 되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해야 할 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 한마디예요. 이게 안 되니까 재판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또 싸우고 또 위협하고 전쟁하고 때리고 옥에 가두는 거예요. ★모든 분란은 인정하지 못하는 나 때문입니다. 직면하는 훈련을 해야 돼요. 자기 안에 이기심, 질투, 열등감 같은 어두운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만 보려 합니다. 그리고 포장을 하죠. 그래야 덜 부끄러워 보이고, 덜 약해 보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따라서-타인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내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교육받아 왔고, 집에서도 그렇게 커 왔어요. 그런데 ★우리의 가치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증인인가에 우리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남을 만족시키는 태도는 완벽해 보이는 가면을 만들지만 그 속에는 어떻습니까? 억울함, 피로감, 진짜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진정한 관계는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연기가 아니라 오해받을 위험이 있더라도 진짜 내가 경험한 것을 드러내고 고백하고 인정하고 증언하는 겁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어느 누구도 알아선 안된다며 금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Q. 안전한 공동체에서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고 있나요? 나무에 달린 십자가가 부끄러워 숨기고 있나요?
여러분들은 정말 좋은 교회 다니는 거예요. 우리는 바람 피웠다고 고백해도 가십거리가 안 됩니다. 너무 많아 가지고. 누가 폈더라? 맞나? 하면서 이걸 까먹죠.^^
Q. 입에도 꺼내기 싫어서 이 이름이라고 칭하고 있는 수치는 무엇인가요? 자녀, 부모, 내 모습입니까?
세 번째로 우리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함과 죄 사함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31-32절)
31절 32절에 우리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베드로와 요한. 이 사도들이 이 정말로 입에도 꺼내기 싫어서 이 이름이라고 얘기하는 대제사장에게 정확하게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 이렇게 정확하게 말하죠. 아예 그냥 죄를 그냥 후벼팝니다. 지적합니다. 근데 왜 이렇게 말할까요? 너희가 죄인이야 너희가 죽였잖아 어떤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 였을까요?
우리는 보통 죄를 지으면은 그 죄를 지은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정죄합니다. 그 죄를 알려줍니다. 저도 집에서 제 죄를 알려주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있을 유, 믿을 신. 그분이 이제 저에게.. 그때는 뭐 이렇게 뭐 굉장히 공손하게 성우 씨 잠깐 얘기 좀 해요. 잠깐 얘기 좀 하자고 그러면 저는 그때부터 이제 도망가고 싶습니다. 두려움이 확 몰려와요. 너무 감사하게도 저희 교회에도 제가 두려워하는 한 분이 계십니다. 트라우마가 있는데 담임 목사님께서 다른 부목사들 다 나가라 그러고 저만 딱 부릅니다. 딱 부르면서 뭐 별 말씀도 안 하세요. 김성우 목사, 나에게 할 말 없어? 그때부터 저는 이제 미친 듯이 이제 멘붕이 오고, 두려움에 뜹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서워요.^^ 돌이켜 보면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목사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라고 살아나라고.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저는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이제 어릴 때는 제가 힘이 약하니까 대들지 못했지만 힘이 생기니까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면 그 아버지의 당신이 한 일이 뭔지 좀 봐라고 하면서 이걸 좀 깨달으라고 하면서 가시 박힌 말들을 막 날렸습니다. 당신이 했던 일들과 저질렀던 행태를 이야기하면서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고 당신이 이렇게 하니까 아내가 집을 나가지 않았느냐! 당신 같은 사람과는 나도 살기 싫다!라며 정말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어요. 저주를 퍼부으며 외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제사장에게 지금 할 말 없어? 이런 정도가 아니에요. 너희가! 네가! 너희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잖아!!! 외칩니다. 왜 이렇게 외치나요? 그저 정죄감을 주기 위한 게 아니에요. 31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베드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정당하다! 네가 틀렸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는 분을 너희가 알아라.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너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우리 모두 죄인이다. 회개함과 죄 사함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베드로는 정확하게 알아요. 주시는 거예요.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신다고 합니다. 언제 주시냐? 인정했을 때! ★회개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이에요. 옛날에 출애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잖아요. 홍해를 건넜는데 다시 돌아가나요? 안 돌아가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입니다. 내가 노예로, 세상의 노예로,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내 삶과의 완전한 단절! 근데 이 단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주셔야 돼요.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죄인인 우리의 심령에 하늘의 문을 여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야 돼요. 이게 언제 오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인정할 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이것을 고백할 때! 우리는 과거의 죄에서 완전한 단절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였다. 2번 대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까지 우리는 증인이 되어야 돼요. 회개함! 회개가 뭡니까? 제가 설명을 했죠.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 내가 이 죄를 끊어냈습니다. 내가 이 예수님이 살려주신 이 죄로는 다시는 이제 안 돌아갑니다. 이 회개함까지 우리의 간증이 되어야 되고, 이 회개함까지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돼요.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31절에 주시려고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삼았다고 합니다. 임금이 뭡니까? 심판하는 자리죠. 우리가 하나님이 돌이키게 해 주셨는데 또 돌아가는 그 죄를 반복하면 심판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영원한 심판 이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걸 알아야 됩니다. 임금뿐만이 아니라 구주로 삼으셨어요. 구주는 뭐예요? 이것을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님은 나에게 구주이십니다. 주님 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옵소서.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내가 할 수 없기에 구해야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제발 살아나라!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지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신다! 제발 살아나라!
세상에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집단이죠. 은과 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세와 재물이 아니라 베드로는 담대히 외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함과 죄 사함을 너희가 받아야 된다. 회개는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죄인인 것이 인정이 된다면 여기에서 인정하는 것에 그치면 회개가 아니에요. 돌이켜서 내 행위를 바르게 해야 되는 거예요. 내 죄를 끊어내고 바르게 해야 됩니다. 내가 정말 주님을 못 박은 죄인임이 인정이 되고 주님이 슬퍼할 만한 행위를 돌이킨다면, 오늘 베드로는 이스라엘 최고의 사람들 앞에서 죄 사함이 있을 거라고 선포합니다. 너희들이 바라보던 성전, 이 성전에서 뭐 하나요? 매일 소를 잡고 양을 잡으면서 죄 사함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아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우리에게도 베드로는 선포하죠.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구하여 온전히 우리가 주님께 돌이킬 때 온전한 죄 사함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거예요. 이것을 믿고 구하라는 겁니다.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31절 하반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32절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이 일의 증인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나의 추악한 과거뿐만 아니라 이런 죄를 용서함 받은 일에도 그리고 용서함 받아서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해서 죄를 완전히 끊어내고 돌이킨 일에도 증인이 돼야 되는 거예요.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어야 됩니다. 증인은 마르투스라고 하죠.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입니다. 마르투스 증인은 순교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시대의 순교는 혈기를 죽이는 거예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죽이고 내 혈기를 죽이는 것이 바로 증인입니다. 내가 끌려간 그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혼자가 아니고 공동체가 있고.
그래서 오늘 32절에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내가 이 말씀에 순종해서 내가 이 죄를 끊어내고 이것을 고백할 때, 하나님이 나의 수치를 가려주시고 나의 증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죠. 성령을 부으셔서 나의 증인이 되어 주십니다. 어떻게 증거해 주십니까? 이는 죄인이 아니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증언해 주시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순종하여 증언할 때,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증언하여 힘주시고 높여주실 것입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회개함과 죄 사함의 증인이 되고 있나요?
Q. 회개함과 죄 사함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내가 결코 돌아가지 말아야 할-완전히 끊어야 할- 죄는 무엇인가요?
Q. 또 넘어졌다면 다시 고백하고 순종할 때 성령께서 도우시는 것을 믿으시나요?
오늘 베드로는 대제사장에게 마지막 판결을 내린 게 아니에요.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들도 돌이키라는 거죠. 돌아오라는 겁니다. 돌아오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또 외치고, 또 외치고.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도 돌이키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나고 살아난 사람은 뭐가 되죠? 증인이 됩니다.
공동체 고백이에요. 한 장로님이 평생 자기의 죄를 숨겼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완벽한 범죄였는데 자신이 원치 않았던 환경, 바로 자신의 자랑이었던 가장 사랑했던 그 아들이 연상의 여자와.. (연상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결혼을 실패한 여자와 (이것도 왜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하려고 하는 사건 앞에서 자신이 원치 않았던 환경, 끌려간 그 환경을 마주하며 바로 이제 들어올 예비 며느리가 나보다 옳도다,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앞에서 이것을 고백하고, 공동체 앞에 과거 유부녀와 두 번 바람을 핀 사건을 오픈하고 공개 치리를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죠. 그렇게 주홍 글씨를 달아서 이제 죄 사함과 회개함,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는 회개함의 자리까지 간증하시며 증인이 되셨습니다. 과거에 너무 수치스럽고 힘든 그것에 용서함, 평생 죄인으로 이제는 내가 이 죄를 끊어내겠다. 증인이 되신 거죠. 얼마나 많은 바람피운 분들에게 간증하며 아내가 바람핀 남자에게 또 가서 눈물로 사과하고 많은 사람을 살리며 사명 감당하는지 모릅니다.
무엇입니까? 이분 존재 자체가 증인인 것이죠. 여기 증인들이 많이 앉아 계시군요. 오늘 하루 내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도 나를 증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 아버지 앞에 섰을 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주님, 저자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딸입니다. 증거해주시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흔적, 삶, 우리의 눈물, 우리의 간증, 우리의 상처, 우리의 고백, 우리의 존재 자체가 증인입니다. 살아내셔야 돼요. 끌려가 세움 당한 그곳에서 살아내셔야 됩니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라는 자리까지 가셔야 됩니다. 그리고 이런 나를 예수 십자가로 어떻게 용서하시고, 회개케 하셨는지 증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로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어요. 베드로를 통해서 앉은뱅이를 일으켰던 그 성령의 능력이 오늘 나와 함께해서 나를 증거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하며 찬양하며 기도하며 나가겠습니다.
♬ 허무한 시절 지날때 깊은 한숨 내쉴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 하는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 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주에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나라 꿈 꾸게 하시네
억눌린자 갇힌자 자유함이 없는 자
피난처가 되시는 성령님 계시네
주의 영이 계신곳에 참자유가 있다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셨네 ♬
기도제목 이제 우리가 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며 가겠습니다. 우리가 살 수 없는 이 자리,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끌려온 것 같은 이 자리가 사실 사명의 자리입니다. 주님, 이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주님, 약속한 성령을 받아 증인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인정합니다. 주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았습니다. 주님, 내가 죄인입니다. 이것을 엄금하고 엄금하며 금하였던 모든 것을 이제는 고백하고 주님, 내가 간구하오니 주여, 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회개함과 죄 사함을 통하여서 주님 나에게 성령을 주셔서 이제는 내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으로 살게 이 시간 한번 주여 한 번 부르짖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연약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조차도 온전한 회개함이 이루어지지 않아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넘어집니다. 주여, 우리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옵소서. 참으로 그러하기에 이번 한 주 또 내가 죄인임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저주 받은 그 나무에 못 박아 죽인 죄인임을 고백하며 나아갈 때,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주의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주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끌려간 그 자리. 정말로 내가 원치 않았던 그 자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임을 깨닫고,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허락하신 자리임을 깨닫고, 증인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성령을 부어주시옵소서. 주님께 부르짖는 모든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죄의 용서함을 얻기를 간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먼저 우리를 살리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증인된 삶을 살기로 결단하며 주님께 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예물을 드린 모든 손길 하나님 복 주시옵고, 하나님 예물을 드린 모든 그 가정과 또 사업장과 또 하나님 아버지, 아이디어와 또 프로젝트에 주님, 기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옵시고 참으로 하나님이 귀한 예물이 또 하나님 흘러가 일어설 힘이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으켜 증인이 된 공동체가 세워지는데 아름답게 사용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우리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1. 끌어다가 세운 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7절)
Q. 나는 무엇의 증인인가요? 주식, 다이어트, 맛집, 여행지, 금테크의 증인이 되고 있나요?
Q. 내가 성공한 경험, 실패한 경험이 무엇인가요?
Q. 원치 않지만 서게 된 곳은 어디입니까?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시나요?
2. 내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8-30절)
Q. 어느 누구도 알아선 안된다며 금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Q. 안전한 공동체에서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고 있나요? 나무에 달린 십자가가 부끄러워 숨기고 있나요?
Q. 입에도 꺼내기 싫어서 이 이름이라고 칭하고 있는 수치는 무엇인가요? 자녀, 부모, 내 모습입니까?
3. 회개함과 죄 사함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31-32절)
Q. 회개함과 죄 사함의 증인이 되고 있나요?
Q. 회개함과 죄 사함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내가 결코 돌아가지 말아야 할-완전히 끊어야 할- 죄는 무엇인가요?
Q. 또 넘어졌다면 다시 고백하고 순종할 때 성령께서 도우시는 것을 믿으시나요?
**** 기도제목
A.
1.상처와 아픔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사명인 것을 알고 약속의 말씀 찾아 큐티 하도록
B.
1. 끌어다가 세운 직장에서 예수의 증인 되어 매일 감사와 기쁨으로 큐티하기
2. 혈기가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 위로하고, 스데반 집사님 얼굴 떠올리며 기도하기
C.
1.끌려온 장소와 환경에서 피흘려 죽으신 나사렛 예수님 증인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