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2025.09.07.(주일) 사도행전 3:1-10 「일어나 걸으라」 김성우목사님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 말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도행전 3장 말씀 앞에 우리가 모였습니다. 주님, 이 시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을 듣고 일어설 수 없는 그 환경에서 주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 많은 분들이 다음 설교자가 누군가 참 궁금했을 텐데... 주일 설교 말씀을 이제 이렇게 받고 이번 주 큐티를 하는데, 제비 뽑아서 하나님이 저를 또 올려보내셨습니다. 뭐 잘나서도 아니고, 정말 많은 사역자님들이 계신데 하나님이 제비 뽑아... 이렇게 제가 맛디아다 이렇게 나누니까 어떤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맛디아는 그렇게 뽑히고 사라졌는데 너는 너만 올라가면 너 자랑을 하니까^^ 뭐 어쨌든 맛디아입니다. 이성훈 목사님 통해서 두 달 동안 많은 은혜를 받으셨죠? 특히 히브리어에 너무 능통하셔 가지고, 우리들교회의 품격이 이렇게 올라간 것 같아서 저도 너무 좋았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히브리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한 달 전쯤인가? 이제 목사님 설교를 듣고 초원 모임에 갔는데 초원님이 이렇게 저를 쳐다보시면서 이러시더라고요. 우리는 히브리어를 모르니까 같이 씨브리어를 하면 된다고. 저도 할 줄 아는데^^ 저를 바라보며 씨브리어를 같이 하자고. 예, 교회에서 히브리어가 아니라 씨브리어를 구사하다가 입쌀롬으로 치리 받은 김성우 목사입니다. (왜 박수 치는 거죠? 박수 친 사람도 치리 받을지어다. 얼마나 힘든데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죠. 우리 인생이 참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았던 섬도 가면, 어떤 푯말이 있냐면 환상의 섬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환상의 섬, 밖에서 보면 환상의 섬이지만, 가까이에 들어가 보면 폭력, 중독, 이혼, 바람, 감옥... 이 모든 비극이 저희 가정에서 일어났었어요. 그래서 저는 참 제 고향을 싫어했습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도 인생의 비극에 내가 어떻게... 내가 선택해서가 아니라 이 비극에 주저앉은 한 사람이 있을 줄 압니다.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일어설 힘조차도 없는 한 사람, 삶의 무기력에 이제 익숙해져 버려서 학습이 되어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무기력함에 찌들려 버린 한 사람, 바싹 말라버린 씨앗처럼 일어날 의욕의 불씨조차 꺼져버린 한 사람이 예배와 공동체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에 평생 주저앉은 한 사람이 등장하죠. 어떻게 이 사람이 그 비극의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을까?
우리가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으려면, 첫 번째로
구걸하는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1-3절)
1절 3절입니다.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우리가 쭉 큐티를 해오면서 사도행전이 시작됐죠.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 오순절은 50일이라는 뜻입니다. 칠칠절을 지나서 7amptimes7=49, 50. 구약에서는 50일에 어떻게 되었냐면, 출애굽한 백성이 50일째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요. 50일째에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죠.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죽으시고, 50일 만에 이 성령이 임함으로 교회가 세워집니다. 50일 오순절은 그저 성령 받아서 막 많은 사람들이 방언하고 기도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출발하는 시점이에요.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 교회가 출발한 이후에 처음으로 제자들에 의해서 기적이 베풀어지는 현장입니다.
이 성령 충만한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 가운데서, 오늘 두 사람이 등장하죠. 누굽니까? 요한과 베드로. 이 베드로와 요한이 뭘 하나? 1절에 보니까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성전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기도를 하러 가는 것이죠. 구 시 기도 시간이라는 말은 이 유대인들은 제3시, 제6시 그리고 제 9시 이렇게 세 번 기도를 드렸어요. (우리들교회도 이렇게 세 번 드렸었는데 오늘부터 네 번이 돼 가지고^^ 너무 좋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오늘 본문의 제 구 시는 오후 3시입니다. 9시에서 6을 더하면 우리가 지금 예배드리는 시간, 우리가 지금 지내는 시간, 그러니까 오후 3시(9+6=15시)에 기도하러 올라간 것이죠. 놀라운 역사! 어마어마한 경험! 3천 명이 몰려드는 이 놀라운 은혜 가운데서도 베드로와 요한은 여전히 정해진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갑니다. 성전에 올라가다를 미완료 과거형으로 사용해서 계속해서-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든~ 나 은혜 받았든~ 은혜가 없든~ 꾸준하게 습관적으로 예배드리러 기도하러 올라간다는 것이죠.
우리들교회는 8월이 참 뜨거웠습니다. 국내외, 국내에 수많은 3500명의 우리 성도님들이 펼쳐나가셨고, 국외로도 수많은 아웃리치-띵크 트립으로, 띵크 로드로- 또 세미나로, 또 수많은 큐티 페스티벌로. 하나님이 정말 오순절 성령 강림 같은 은혜를 부어주셨고,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간증들, 얼마나 많은 고백들, 그리고 서로의 물질과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은혜를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나는 게 아니에요. 여전한 방식으로 오늘 첫 주일부터 여전한 방식으로 우리는 목장과 예배와 기도 시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 혼자 간 게 아니죠. 요한과 함께 갔다는 것은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올라갈 때, 하나님께서는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셔서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세요. 하나님의 관심은 그 3천 명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일어나는 그 한 사람에게 주목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누가 나옵니까? 2절에.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2절에 보니까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가는 의사이기 때문에 의사니까 정확하죠. 이름을 적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데 원문에 보면 이렇게 표현됩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앉은뱅이인 어떤 자라고 기록합니다.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나면서부터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이 사람의 나이가 나오는데 40세로 그러니까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서 본 적이 없는 40여 년간 굳어질 대로 굳어져 그의 뼈가 펴져서 정상적인 활동은 결코 할 수 없는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사람이 하는 일이 뭡니까? 이 사람의 직업이 뭐죠?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합니다. 자발적으로 하나요? 자기가 자원해서 구걸 하나예요? 아니죠. 2절에 보니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성전 문에 두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두다 누군가가 그냥 툭 두는 거예요. 사람들이 메고 와서 이 사람을 통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성전 문에 매일 아침에 툭 두는 거죠. 자기가 원치 않은 장소에 던져진 것입니다.
던져진 존재, 원치 않은 모습으로 태어나서, 구걸하는 원치 않은 일을 해가며 살아가는 것이죠. 그냥 던져진 존재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던져진 존재로 태어나고, 누군가가 두고 메고 와서 툭 던져진 존재로 구걸하며, 심지어는 그 구걸한 돈까지도 사람들이 가져가요. 먹을 것만 딱 빼고, 사람들이 다 가져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없는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모습이죠. 이 세상에 그저 던져진 채로 그저 이 던져진 그 실존으로 구걸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이 사람이 앉은 곳이 어딥니까? 이 사람이 앉은 곳이 어디죠? 미문 미문 앞. 성전에 여러 문이 있어요. (이렇게 동서남북 이렇게 쭉 있으면 이제 헤롯 성전-스룹바벨 성전 이후에 헤롯이 성전을 증축한 뒤에- 이렇게 성전을 따라서 문을 두는데 남쪽에 2개, 이쪽 동서... 서쪽에 3개, 북쪽에 하나 두 개? 이렇게 인가요? 모르죠. 제 마음대로 말해도^^) 하여튼 남쪽엔 두 개가 있어요. 남쪽에 두 개가 있는데 그 첫 번째 있는 문이 미문입니다. 이 미문이 뭐냐 하면, 영어로는 Beautiful Gate [뷰티플 게이트]라고 하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문이에요. 이 성전의 이 아름다움 앞에서... 이 미문은 높이가 23미터. 23미터면 얼마예요? 아파트 한 10층? 와 너무 크네요. 황동으로 됐고, 이중문입니다. 이 황동에는 금과 은으로 치장되어서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이 미문이죠.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구걸을 어떻게 하나요? 이 아름다운 문을 이 성전을 등에 두고 앉아서 구걸을 합니다. 평생 매일 그 성전 앞에 앉지만 그 성전을 바라보거나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늘 그저 그 문 앞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며 성전에 오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죠. 세상을 향해 구걸하는 이 모습!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입니다. 이 우리들교회도 지금 예배당 앞에 누가 있죠?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제가 1부 때 이렇게 구걸을 하면서 펀드레이징을 얘기하니까 어떤 목사님이 와서 구걸하고 왔습니다. 이러더라고요.^^ 저 문 앞에서.
정말로 우리는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저 던져진 존재로 그저 이번 한 주도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구걸한 돈이 어떻게 되나요? 내 손에 있나요? 아니죠. 빠져나가요. 통장을 바라보면 빠져나갑니다. 돈은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갑니다. 머물지 않아요. 카드값 나갔습니다~ 전기세 나갔습니다~ 학비 나갔습니다~ 이렇게 스쳐 지나가죠. 그러면서 또 한 주를 또 살아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니까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저희 아버지였어요.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 딱 그림이 뭐냐 하면, 이 지방에 시장이 있습니다. 시장에 들어가는 그 문. 그 문 길가에 딱 앉아 가지고 계속 술을 마시는 아버지. 일어서지도 않아요. 늘 그 시장 길 모퉁이에 앉아서 큰 대로변에 앉아서 계속 술을 마십니다. 근데 이제 그 시장 안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생활도 하고, 생필품도 팔고, 막 일어나서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는데 저희 아버지는 절대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그저 문 앞에 앉아서 그 시장 문에서 직장도 잃고, 재산도 잃고, 건강도 잃고, 아내도 떠나가고, 자녀들도 떠난 그 인생 속에 아버지가 한 유일한 일은 홀로 그 길 모퉁이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일이었어요. 아버지가 감옥 갔다 오신 이후로 실직당하고, 실직당한 뒤에는 평생 이제 알코올 중독으로. 그러다가 집도 경매에 넘어가고, 어머님도 떠나가게 되고. 평생 술을 마셨어요. 그냥 술만 마시면 오죽 좋겠냐마는 그 옆에 이제 그 시장 길목 딱 들어가는 길목이니까 옆에 누가 있냐면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이 나물을 뜯어가지고 팔기도 하고 또 이제 옆에 이렇게 뭐 뭐도 팔기도 하고 하는데 어느 날 이제 또 전화가 오는 거예요.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그 할머니를 때려가지고 또 경찰에 붙들렸다고. 또 찾아가서 벌금을 내고, 검찰까지 가가지고 또 검찰에도 벌금을 내고. 저희 아버지가 소천하신 뒤에도 연락이 왔습니다. 검찰에게서 벌금을 내라고. 거액의 벌금을.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상속 포기를 했거든요. 상속하면 큰일 날 것 같아 가지고. 보지도 않고 상속 포기를 했는데 그 벌금은 또 저보고 내라고 그러더라고요. 이 아버지의 핏값이다 생각하고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아버지가 계신 지방에 내려가면 그 아버지를 붙들고 이제 들어가죠. 그러면서 저는 얘기하는 거예요. 아버지한테 잔소리를 합니다. 왜 여기 있냐! 왜 술을 마시냐! 돕지는 못하고 처음에는 계속 일어나라! 일어나라! 말만 했어요. 지금 뭐 하냐! 정죄하고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그러니까 떠나가지 않느냐! 교회 가라! 계속 말만 했어요.
그러다가 우리들교회를 통해서 적용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 아버지 집에 들어가서 청소를 하는 거였습니다. 집에 들어가니까 이제 작은 집이에요. 원룸이에요. 작은 집인데 이 안에 막 술병과 썩은 음식과 냉장고를 열어보면 음식들이 다 썩어 있는 거예요. 다 치우고 그다음에 이제 부엌을 이렇게 청소하는데 부엌에 이렇게 이렇게 청소를 하다 보면 다다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려요. 뭔지 아세요? 구더기 알이 터지는... 이 구더기가 터지는.... 안 해보셨어요?^^ 저도 안 해봤어요. 저는 비유가 약한데 그렇게 다 청소를 하고 아버지 목욕시켜 드리고 오고 이렇게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올라오면 매일 아침에 아버지에게 전화가 와요. 어떤 전화냐면 구걸 전화입니다. 돈 보내라. 제가 2만 원. 매일 아침에 2만 원씩 아버지께 돈을 보내드렸는데 정말 하루도 안 빠지고 큐티하듯이 아침에 2만 원씩 드렸어요. 하루에 2만 원. 교회 나가면 5만 원. 거의 10년을 보내드리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전화가 와요. 2만 원 보내라 이렇게 하고. 주일 아침에 또 전화가 와요. 돈 보냈냐? 그러니까 아버지, 교회 다녀오셨어요? 이러니까 갔다 왔대요. 제가 그럼 교회에서 무슨 얘기했냐?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했다고 그랬대요.^^ 아버지 안 갔다 오셨죠? 그러니까 확 끊어버리더라고 그다음 주에 또 전화가 옵니다. 주일날 아침에. 주일은 5만 원이니까 크잖아요. 이 만나도 두 배를 거둬야 되잖아요. 5만 원 크니까 아버지 교회 갔다 오셨죠? 갔다 왔대요. 그러니까 뭐라고 하셨냐고 그러니까 도마 이야기를 하셨는데 도마는 안 보고도 믿으니 더 복되다라고 목사님 말씀하셨어요. 이러니까 어! 아버지 갔다 오셨네요. 5만 원 보내드리고. 처음엔 한번에 한 60만 원 70만 원 드렸어요. 처음에. 정말 우리들교회 오기 전에 초창기에는 한 번에 60, 70을 드렸는데 60을 한 번에 딱 드리니까 다음 날 또 전화가 옵니다, 구걸 전화가. 돈 달라고. 아니, 어제 60만 원 드렸잖아요! 한 번에 다 쓰신 거예요. 술 마신다고. 한 번에 다 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한 번에 다 안 주세요. 아시죠? 주면 아마 지금 여기 없을 거예요.) 다 술 마시기 때문에. 죄 지을 거 뻔히 아시니까. 아버지가 저에게 전화하는 유일한 이유는 돈을 달라는 전화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사는지, 어떤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하는지 일절 관심이 없었고, 한 번은 제가 장례가 끝나고 밤 12시에 차를 몰고 집에 오는데 교통사고 7중 추돌이 나서 뉴스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제 앞차가 즉사하셨기 때문에 제 차는 그 두 번째 차였고 7중 추돌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도 아버지는 관심이 없어요. 아들이 죽을 뻔 했다라고 얘기를 해도 아버지가 하는 말은 뭐죠? 돈 보내라. 저도 진짜 이런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아들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연금 들 필요도 없잖아요.
3절에 보니까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구걸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 왜 구걸을 할까? 저희 아버지는 왜 구걸을 할까? 이걸 묵상하니까 아버지가 저보다 더 대단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 구걸하는 이유가 뭐죠? 자기가 앉은뱅이임을 알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걷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자신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자기가 이 성문 앞에 던져졌고 자기는 결코 일을 해서 벌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구걸을 하는 거죠. 이게 중요한 겁니다. 구걸이 나쁜 게 아니에요. 구걸이라는 헬라어 단어를 찾아보고 제가 깜짝 놀랐어요. 이 단어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을 담고 있는 자비, 동정, 긍휼이라는 단어더라고요. 이 엘레오스(ἔamplambdaampepsilonampomicronampsigmaf)라는 하나님을 뜻하는 이 단어에서 파생된 엘레에모쉬네(ἐamplambdaampepsilonampetaampmuampomicronampsigmaύampnuampeta) 구걸하다 이 단어가 쓰인 엘레에모쉬네가 쓰인 9장 36절, 10장 2절, 사도행전 24장 17절에는 자비의 마음으로 나오는 구제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칭찬을 하십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닌 누군가가 주어야만 하는 거죠. 이 거지는 자기에게 이게 없음을 아는 거예요. 이게 지혜입니다. 그런데 ★구걸하는 행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대상을 바로 찾아야 되는 거죠. 남에게 구하면-옆집 아저씨에게 구하면- 구걸이지만 뭡니까? 내 아버지께 약속으로 구하면 뭐가 되죠? 기도가 됩니다. 말씀으로! 약속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되는 것이죠! 저희 아버지도 저에게 (제가) 돈을 안 보내면 2만 원 보내고 또 달라 했을 때 안 보내면 저에게 정말로 쌍욕을 퍼붓습니다. 목사가 되고 이렇게 쌍욕을 먹은 적이 없는데 아버지께서는 늘 저에게 쌍욕을 해 주세요. 어느 누가 저에게 욕을 하겠습니까? 목사인데.(뭐 목장에서 옛날에 우리 부목사님이 저에게 쌍욕을 하기도 하셨는데 오늘 오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만 보면 이렇게 껴안아요.) 쌍욕을 퍼붓는데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저주를 하고 쌍욕을 퍼붓고 네가 목사냐! 하면서 개XX 하면서 퍼붓고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떻게 하냐면 전화를 하십니다! 반가운 목소리로! 뭐라고? 돈 달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믿음인 것 같아요. 아들이 반드시 줄 거라는 믿음! 비록 내가 술 먹고 쌍욕을 퍼붓고, 비록 내가 죄를 지었지만 우리 아들은 나에게 돈을 줄 거야!! 믿음이죠. 10년 동안 빠지지 않고. 마찬가지예요. 내 모습이 또 넘어지고, 또 실수하고, 또 술 마시고, 또 중독에 넘어져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의지해서 우리가 구할 때! 주님, 내가 앉은뱅이입니다. 주님 내가 일어설 수 없습니다. 주님 나에게는 이게 없습니다. 엘레에모쉬네!! 당신에게 있는 것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나에게는 이게 없습니다! 당신에게 있는 것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구걸이 아니라 기도죠. ★우리가 정확한 대상과 정확한 말씀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걸해야 되는 것이죠.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나 혼자 살 수 있다. 나 혼자 이 두 발을 딛고 나 스스로 이 땅을 살아낼 수 있다. 내가 이거 할 수 있다. 이런 사람 하나님 제일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유롭게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나님께 구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셨죠.
날 때부터 내가 앉은뱅이이고, 날 때부터 내가 죄인이며 뼛속까지 죄인임이 인정되는 이 사람이 바로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내가 설 수 없다라는 사람, 주님의 약속과 말씀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죠. 아침마다 일어나서 구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저보다 믿음이 좋았던 것 같아요. 거절해도 또 전화하시고, 또 전화하시고.
베드로와 요한 역시 성전에 하나님께 구걸하러-기도하러- 우리 아버지께 올라가죠. 왜요? 베드로는 안 거죠. 이렇게 3천 명이 모이고,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을 때 하나님, 제가 결코 제힘으로는 이 교회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장소에, 하나님께 올라가서 정말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죠.
그때 누구를 만납니까? 자기처럼 구하는-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정확한 뜻과 계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예배당 안에 던져졌죠.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로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것은 던져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확한 뜻과 계획으로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정말 이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일주일 동안 내가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환경, 넘어진 환경, 스스로 힘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환경에 처했다면! 구할 때 긍휼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내 안에 없는 무엇을 하나님께만 있는 그 무엇을, 무엇입니까? 성령을 구하십시오.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내가 지금 주저앉아 일어서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요?
Q. 그래서 사람에게 구걸하나요, 하나님께 구걸하나요?
Q. 무엇을 구걸하나요?
Q. 시간을 정해놓고 구걸, 즉 기도하나요?
우리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더불어 주목해야 합니다. (3-5절)
3절에서 5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갈 때 구걸하는 이 앉은뱅이를 바라보죠. 그런데 3절에 보니까 이 거지가 먼저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봅니다. 이 3절부터 5절, 우리가 읽은 구절에서는 총 4번에 걸쳐서 이 보다라는 동사가 반복됩니다. 3절에서 보고 4절에서 주목하여 보라 5절에 바라보거늘 이 다 본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 똑같은 내용인데 놀랍게도 원문에는 네 번 다 다른 단어가 쓰였어요. 전부 다 보다, 바라보거늘, 본다, 주목하다, 본다 이렇게 했는데 원문에는 다 다른 단어가 쓰였습니다. 이 원어를 하나하나 살펴서 제가 뜻을 풀어드리고 싶지만.. 시간 되시면 이성훈 목사님께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한 가지만 다루겠어요. 3절에 보고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4절을 읽어보면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여기에 주목하다 이 단어! 이 단어를 우리가 좀 주목했으면 좋겠어요. 주목하다 원어로는 아테니조(ἀamptauampepsilonampnuίampzetaampomega,헬라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하냐?
베드로와 요한이 더불어 주목했어요. 누구를? 구걸하는 거지를. 날 때부터 하반신 장애를 입은 일어설 수 없는 앉은뱅이를. 평생 성전 문 앞에 앉았지만 성전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한 사람,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 동전 몇 푼 던져 주고 사람들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그 사람을!
더불어 주목한 거예요. 아테니조. 이 아테니조가 언제 쓰이냐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이 단어가 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약에 이 단어가 언제 쓰였냐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50일, 오순절 50일 뒤에 시내 산에 뭐 있죠? 약속 받아오잖아요.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돌판. 그걸 들고 올 때 모세의 얼굴이 어떻게 됐죠? 광채처럼 빛이 났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이 광채를 보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했어요. 두려워하면서 마치 모세를 바라보기를 하나님 보듯 한 거예요. 이때 쓰인 단어가 아테니조입니다. 너무 두려워서 수건으로 가렸죠. 저분은 하나님이다!
신약에도 이 아테니조가 나오는데,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을 하신 후에 9절에 구름이 그를 가려워 보이지 않게 되었죠. 그리고 10절에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올라가시니까 10절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자세히,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 자세히 쳐다보는 이것이 아테니조예요.
그리고 스데반이 죽기 직전에 사도행전 7장 55절에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광을 바라본 그 봄! 예수님을 바라본 그 봄이 이 아테니조 똑같은 단어가 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쓰였던 이 단어가 지금 어디에 쓰이죠? 거지를 바라볼 때! 구걸하는 한 사람을 바라볼 때!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총독도 아니에요, 율법사도 아니에요, 바리새인도 아니에요, 그 유대 사회에서 제일 탁월한 사람도 아니에요. 누구를? 내 옆에 있는 이 구걸하는 한 사람을! 나에게 도움이 전혀 안 되고 불필요한 감정을 일으키는 한 사람!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는, 어떻게 쳐다보나요? 요한과 베드로가 더불어 그 사람을 하나님처럼 바라보는 것이죠. 가리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대단히 멋있고 성공하고 그래야 거기에 하나님 영광이 있는 줄 알아요. 뭔가가 합격하고 막 뭔가 대단해야 와~ 하나님 영광 받으시겠다~ 하는 줄 알아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숨어 있는 것이죠. 구름에 가리운 것처럼 볼 수 없기에 자세히 봐야 합니다. 내 옆에 한 사람- 쓸모없다고 여기는 한 사람- 그 사람을 어떻게? 아테니조!!! 마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숨어 있어요.
우리들교회 와서 평생 증오하고 원망했던, 매일 나에게 전화해서 구걸하던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한 번은 전화가 오면 아버지, 저에게 돈 맡겨놨냐? 아버지 제가 대기업 뭐 연봉이 높은 사람인 줄 아냐? 저 목사다. 그럼 또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나요? 돈 보내라. ^^ 어우~ 참 믿음이 있어요. 이 아버지, 매일 나에게 전화해서 구걸하던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속에 하나님 영광이 숨어 있는지 저는 몰랐어요. 숨겼습니다. 이 아버지는 나에게 불필요한 존재, 내 사역에는 없어야 할 존재였어요. 그런데 우리들교회에 와서 제 속에 거대한 죄악을 직면하고 나니까 내가 얼마나 얼마나 하나님 앞에 죄인인지 깨닫게 되니까 평생 죽이고 싶었던 저희 아버지를 아테니조!!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 바라봄이 우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세요. 한 주 동안 열심히 큐티하고 예배드리신 분도 계시지만, 넘어지고 또 쓰러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큰 죄악 중에 있다가 또 오신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신다고요? 독생자의 영광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 언약과 약속으로 말미암아 구걸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마치 아들처럼! 마치 내 아들처럼! 그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테니조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바라보시고 나의 구걸,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면 이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 옆에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제일 안 되는 게 가족이에요. 우리,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막 긍휼이 일어나서 막 전화도 걸고 울기도 하고 그러는데, 내 옆에 가족만 보면 이 아테니조가 아니라 원수를 바라보듯 바라보죠. 제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술 먹고 욕을 퍼붓는 내 가족을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듭니다. 하지만 가족은 우리 거룩을 위해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묶어주신 최고의 공동체예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도울 힘도 나에게 주십니다. 평생 아버지에게 2만 원씩 드렸는데 그때 제 통장이 마르지 않았어요. 지금 보면 계산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도울 힘을 주세요. 실수하고 죄 짓고 넘어지는 우리를 여전히 아들처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일으키시고 또 옆에 있는 사람을 일으킬 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잠언 19장 17절에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여호와께 빌려드리는 것이니 그가 한 일에 대해 그분이 갚아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내 옆에 하나님을 두신 거예요!
적용 질문드립니다.
Q. 나를 힘들게 하는 내 가족, 직장 상사, 내 친척, 너무 꼴 보기 싫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이 믿어지나요?
Q. 목장에서 또는 부서에서 힘든 지체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Q. 내가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주목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바라봄으로 우리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려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손을 잡아 일으켜야 됩니다. (6-10절)
6절에서 8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아멘. 베드로와 요한이 구걸하는 이 앉은뱅이를 더불어 주목하죠. 자신을 바라보는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면서 이 거지는 어! 동전 한 닢 오늘 얻을 수 있겠다 생각했겠죠. 그런데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아멘. 은과 금을 이야기한 이유가 뭘까요? 눈앞에 미문이 있잖아요. 이 미문이 어떻습니까? 은과 금으로 황동문에 이중문에 은과 금이 다 이렇게 발려져 있잖아요. 마치 성전에 들어가면 은과 금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과 금을 주는 것처럼 믿게 하는 문이 미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면 뭔가 은과 금이 올 거야~ 예배를 드리면 뭔가가 풀릴 거야~ 뭔가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베드로는 뭐라 말합니까? 은과 금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이름을 전합니다! 그냥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실 수도 있었는데 왜 나사렛이라 했을까요? 나사렛은 예수님이 어릴 적 자란 해발 380미터의 작은 마을이에요. 정말 보잘것없는.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나사렛을 뭐라고 얘기했냐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할 정도로 무시하고 멸시받는 장소죠. 그런데 무시받고 멸시받는 이 이름- 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베드로는 한 사람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전해야 합니다. 나의 가장 낮은 모습, 나의 실패, 숨기고 싶은 나의 연약함, 심지어는 나의 죄까지도 이것을 가장 추악한 나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한 사람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예루살렘, 베들레헴, 멋진 성전 미문에 앉으신 예수님이 아니라 일어설 수 없는 한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하나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면서 7절에 어떻게 합니까? 말만 하는 게 아니죠. 우리는 일어나라고 할 때 말만 해요. 야! 너 일어나! 너 청소해! 너 공부해! 너 왜 안 해? 안 해? 말만 막 하죠. 이것을 우리들교회 대표 언어로 뭐라 합니까? 수잔이라고 그러죠. 말만 합니다. 제 별명도 고등부에서 아가리 파이터예요.^^ 말만 해요. 저 싸움을 못 합니다. 말로 조집니다. 말만 해요. 말만 하면 막 미치겠네. 귀에서 막 피가 나고...
말만 하면 안 돼요. 베드로 어떻게 합니까? 7절에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곧 힘을 얻고 오른손을 잡았어요.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힘을 얻은 것이죠. 베드로 아마 생각했을 거예요. 베드로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나사렛이 있어요. 뭡니까? 비슷한 경험 언제 있죠? 예수님 부인한 거? 비슷하죠. 근데 그게 아니에요.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베드로가 물에 빠져 죽을 때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예요. 태어날 때부터 이 갈릴리 바닷가는 거의 내 나와바리였어요. 내가 전문가예요. 그냥 눈만 떠도 바람이 어떻게 이는지, 풍랑이 어떻게 이는지, 바람이 물결이 어떻게 이는지... 저도 해군 출신이라서 바다만 보면 쫙 알아요. 어릴 때부터 저는 바다에서 자랐기 때문에 물살만 봐도 알아요. 몇 대 몇 대 몇 대 오늘 어떻다~ 기후만 봐도 알아요. 쭉 이렇게 보면 아는데 자기가 전문가라고 여겼던 그곳에 베드로가 어떻게 됩니까? 빠지게 됩니다. 빠져 죽게 돼요. 죽게 된 그 상황에서 그냥 죽었구나가 아니라 풍랑에 이르는 것을 보면서 베드로가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면서 베드로가 한 말이 있어요. 주님, 살려주시옵소서. 주님, 살려주시옵소서. 주님, 나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 나 살려주시옵소서. 그때 예수님이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오른손을 내미십니다. 베드로를 오른손을 잡아서 어떻게 합니까? 일으키시는 거죠.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그 물 위를 베드로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일으키세요. 그냥 베드로야, 너 일어나! 야! 걸어!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손을) 내미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붙드시는 것이죠. 베드로가 이 기억이 있었을 거예요. 아! 나의 나사렛! 내가 실패한 그곳에서 주님도 내 손을 잡아주셨구나! 이것을 기억하며 베드로도 어떻게 합니까? 이 거지 이 앉은뱅이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어떻게 합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도저히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우리를 일으키시는 것이죠. 주님을 생각하며 손을 잡았을 거예요. 자기 실패, 연약함을 기억하며. 믿음이 없어 물에 빠진 자신. 심지어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저주합니다. 모르셨죠? 원어에는 그렇게 기록돼 있어요. 저주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하고 증오하여서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떠났던 그 자신의 손을 우리 예수님은 한 번도 놓지 않고 계셨던 거죠. 그러니 실패했던 이 베드로가 교회의 리더가 되어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주님이 놓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주님께서 내 모습이 아니라... 주님께서 너의 실패를 한다, 너의 아픔을 안다, 나도 십자가에서 똑같이 조롱당하고 수치를 당했다 하며 우리의 손을 붙잡는 것이죠. 오늘 이 시간 이 손을 다 붙잡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목요일에 한 집사님을 심방했어요. 저녁에 목장 탐방을 갔는데 한 집사님이 오셨습니다. 한 집사님이 오셨는데 이제 목사님이 긴급하게 좀 탐방을 해 달라 해서 오셨는데 왜 그랬냐면 이 집사님이 접근금지명령을 당한 거예요. 이전에 굉장히 많은 죄를 지었고, 아내에게 잘못했을 것인데.. 그걸 다 떠나서 그냥 접근금지명령만 딱 보면은 좀 억울한 면이 있더라고요. 뭐냐 하면은, 이제 아들이 왔는데 아들이 자기(집사님) 방에 썼어. 방이 없는 거야. 거실에서 자기 지갑과 열쇠와 이런 걸 테이블에 놔뒀어요. 테이블에 놔뒀는데 이제 배가 고파서 아내에게 냉면을 좀 해달라. 아내가 또 냉면을 해줬대요. 맛있게 이렇게 해주는데 아내가 그걸 보면서 테이블 좀 치워라 말만 한 거죠? 이렇게 자기가 좀 치울 수 있는데~ 오늘처럼 야! 해라~ 해라~ 해라~ 이렇게 말만 한 거죠. 아, 물론 또 그 아내 집사님이 잘못한 건 아니에요. 제가 그 남자 집사님 얘기만 들었기 때문에. 그날 아내 집사님은 안 오셨었어요. 처음에는 조금 그냥 뭐 이랬는데 또! 또! 또! 네 번째 얘기하니까 너무 화가 나고 자기 있을 공간도 없고 너무 화가 나서 냉면 그릇을 이렇게 엎어버렸대요. 그리고 집을 나가버렸대요. 집을 나가고 좀 화를 삭히고 이렇게 들어와서 비밀번호를 탁탁탁 누르는데 번호가 바뀌어 있는 거예요. 그 뒤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제 접근금지명령을 당했습니다. 폭력을 행했다고 해서. 자기는 때린 적은 없다고 그러시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 얘기했는데 이제 목자님이 막 처방을 하시는 거예요. 막 처방을 하는데 이 집사님이... 목자님이 처방을 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막 두드리는 거예요. 뭐가 다다다다다다다다다 이러면서 막 두드리는데 저는 좀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시간에 이걸 두드려야 레벨이 올라가고, 레벨이 올라가야 돈을 받는다고 그러더라고요. 막 다다다다다 두드리니까. 그런데 목장 사람들이 아무도 뭐라 안 하고 옆에 있던 부목자님이 집사님, 제가 대신 두드려 드리겠습니다. 하시더니 그 부목자님은 목장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해. 나눔도 안 하고 그것만 두드리는 거예요. 그것만 두드리고 목자님은 얘기하고 그 집사님은 듣고. 그러면서 그 부목자님이 마지막에 그 집사님에게 딱 보여주면서 이겼습니다.^^b
근데 이 집사님이 그 접근금지명령을 당한 것을 막 이야기하는데 제가 점심 때 또 심방을 간 곳에 만났던 다른 집사님이 또 접근금지명령을 당한 거예요. 이분은 이 딸을 때리려고 (때리지는 않았는데) 액션을 취했는데 아내가 말려서 아내를 살짝 밀치고 나갔는데 폭력으로 고소 접수가 되어서 2년 반 동안 집에 한 번도 못 들어갔습니다. 그 길로 나와가지고. 그리고 지난주에 이혼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집사님도 너무 억울한 거예요. 이게 자기가 이 정도까지는 될 줄은 모르고 그냥 나오고 경찰이 이렇게 와서 조서를 쓰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심각한 줄을 모르고 그냥 경찰 조사에도 안 갔대요. 근데 그게 결정적인 문제였어요. 그 얘기를 하니까 이 집사님이 이 두드리던 집사님이 조서는 꼭 받아야 된다고.. ^^
그러면서 이 나사렛 간증을 들려드리고-다른 집사님의 똑같이 접근금지명령을 당한 나사렛 간증을 들려드리고- 온 목장이 함께 기도하고. 그리고 이 집사님이 목장 밥이 너무 맛있다고 접근 금지를 당하니까 혼자 지내야 되니까 밥이 너무 맛있어 가지고 온다는 거예요. 이 밥을 먹고 온 목장이 함께 울고 웃으니까 이 집사님이 어떻게 하냐면 마지막에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겠다고 적용을 하시는 거예요. 더 놀라운 적용은 예배를 안 드리고 있었는데 내가 이번 주에 예배드리러 가겠다. 그리고 아까 1부 예배 때 오셨어요. 이분이 이제 경비일을 하셔가지고 주일 예배를 아예 못 드렸거든요. 그런데 오늘 예배를 드리고 직장을 바꿔가지고 주일 성수를 하겠다고 결단하신 거예요.
어떻습니까? 평생 성전을 등지고 있다가 일어나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우리가 함께 두드리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우리의 죄-나사렛- 간증을 하니까 한 영혼이 주님께 일어나 성전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기뻐 뛰고 예배하는 겁니다.
평생 저희 아버지를 미워했어요. 원망했어요. 그런데 정말 저도 함께 일어나게 되고, 저희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함께 일어나게 되니 저희 아버지가 어떻습니까? 사진 한번 띄워주세요. 여기 휘문 성전에 오셔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휠체어 타고 오셨죠? 자리에서 일어나서 평생 그 길거리에 앉아 있던 저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구주를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하셨습니다. 저에게만 일어난 일인가요? 아니에요. 이 당시에 이 거지에게만 일어난 일인가요? 아니에요!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좀 붙들었으면 좋겠습니다.
8절에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평생 성전에 등을 돌렸던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죠. 세상을 향해 구걸하다가 이제 하나님을 향해 어떻게 기도하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사렛 공동체예요. 우리는 세상에 은과 금을 공급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은금이 없고 가난했어도 나사렛 예수 이름만 있으면 생명이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걷고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구원을 위해서 우리는 적용하고 구원을 위해서 거절해야 합니다. 평생 넘지 못했던 미문을 열고 들어가 예배하는 것이 가장 복된 것입니다. 구걸만 했기에 앞으로 구원을 향해 힘든 훈련들이 있을 거예요. 이제 보니까 이 거지가 나중에는 가족들에게도 버림을 받습니다. 평생 구걸만 했기에 예수님을 영접한 뒤에는 꽃길이 아니라 그 뒤에는 평생 이제는 구원을 향한 훈련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히 감당하지 못할.
그리고 이 거지가 미문으로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갔나요? 옆에 누가 있죠? 더불어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들어갑니다. 원래라면 두 명만 들어갔을 그 문을 이제는 이 거지와 함께 일어나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게 교회입니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셨는지를 바라보면서 내 옆의 지체를 바라볼 때 우리의 나사렛 간증으로 주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여러분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 나가실 것입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목장에서 밥을 하고 있나요?
(참 죄송해요. 너무 더워가지고 7,8월은 좀 이렇게 간편식으로 하기도 하죠. 근데 밥이 중요해요.)
Q. 나의 나사렛 간증은 무엇인가요?
Q. 공동체가 함께 손을 잡고 일으켜야 할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말씀 맺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저앉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이 주저앉은 사람이 첫 번째로는 나입니다. 이런 나를 하나님이 붙들어 주세요. 실패하고 무너지고 또 주저앉은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죠? 자신의 영광으로. 예수 그리스도. 나를 독생자 아들의 영광으로 우리 하나님이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내 손을 붙들어서 오늘 일어나 걸으라 하십니다. 이 말씀에 반응해서 우리가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일어난 사람은 내 옆에 사람을- 내 옆에 거지를, 내 옆에 너무 싫은 한 사람을, 내 인생에 불필요하다는 그 사람을- 아테니조!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한 주 그렇게 적용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같이 시선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모든 두렴 사라질 때
주의 일을 보겠네
황폐한 땅 한가운데서
주님 마음 알게 되리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주님의 영광 임하네 주 볼 때
주님의 영광 임하네 주 볼 때
주님의 영광 임하네 주 볼 때
주님의 영광 임하네 주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
기도제목 우리가 한 번 더 기도하며 나가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나를 일으켜 달라고! 하나님 또 넘어졌다고! 하나님처럼 이 자리에서 일어설 힘이 없다고! 주님 내 손을 잡아 주여 일으켜 달라고! 주님 살려달라고! 예수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아멘. 주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연약합니다. 주님 우리가 일어설 힘이 없습니다. 내 옆에 저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주님 일어설 힘이 없습니다. 이런 저를 주님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독생자의 영광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죄의 자리에서, 중독의 자리에서 내가 앉지 말아야 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는 성전을 향하여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쓰러질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을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간증으로 함께 들어가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나를 일으키신 그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하나님, 예물을 드린 모든 손길을 복 주시옵고, 주님 그 가정과 직장과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에 기름 부어 주셔서 이 예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일어설 수 없는 한 사람이 일어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우리가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으려면,
1. 구걸하는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1-3절)
Q. 내가 지금 주저앉아 일어서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요?
Q. 그래서 사람에게 구걸하나요, 하나님께 구걸하나요?
Q. 무엇을 구걸하나요?
Q. 시간을 정해놓고 구걸, 즉 기도하나요?
2. 더불어 주목해야 합니다. (3-5절)
Q. 나를 힘들게 하는 내 가족, 직장 상사, 내 친척, 너무 꼴 보기 싫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이 믿어지나요?
Q. 목장에서 또는 부서에서 힘든 지체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Q. 내가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주목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3.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손을 잡아 일으켜야 됩니다. (6-10절)
Q. 목장에서 밥을 하고 있나요?
Q. 나의 나사렛 간증은 무엇인가요?
Q. 공동체가 함께 손을 잡고 일으켜야 할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 기도제목
A
1.앉은 곳에서 일어 나는 것은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매일 큐티에서 약속의 말씀 찾고 일어나는 적용하도록
B
1.큐티 손 잡고 환상의 간격이 좁혀지는 평범한 일상 누리도록
C
1.자세히 보여 주신 대로 기도 사명따라 선할 길로 인도 함 받도록